우리나라 세시 풍속 명절과 절기.

보름달만큼 밝고 풍요로움과 행복이 넘치는 한가위 명절 잘 보내세요-상.

풀꽃사랑s 2023. 9. 28.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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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는 토실토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알밤이 익어가고, 들녘에는 오곡백과(五穀百果)가 황금색으로 곱게 물들어, 한해의 풍요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한가위 명절이 찾아왔습니다. 힘들고 외로웠던 일은 잠시 잊어버리시고요, 보름달만큼 밝고 풍요로움과 행복만 가득한 한가위 명절 잘 보내세요.^^^

음력 팔월 보름(음력 815) 추석(秋夕).

추석(秋夕)은 음력 팔월 보름(음력 815)을 일컫는 말입니다. 추석(秋夕)을 글자대로 풀이하면 가을 저녁, 나아가서는 가을의 달빛이 가장 좋은 밤이라는 뜻이며, 한해 농사를 끝내고 오곡(五穀)을 수확하는 시기이며, 음력 8월 보름달이 유난히도 밝은 가장 풍성한 명절이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추석(秋夕)을 다른 말로 한가위, 가위, 가배(嘉俳), 가배일(嘉俳日), 중추(中秋), 중추절(仲秋節), 중추가절(仲秋佳節)이라고도 합니다. 여기서 가위’, ‘한가위는 순수한 우리말이며, 가배(嘉俳)는 가위를 이두식(吏讀式)의 한자(漢字)로 쓰는 말이라고 합니다. 이두(吏讀)=신라 때부터 한자(漢字)를 빌려 우리말을 적던 차자(借字) 표기법. 또는 그 문자. 넓은 의미로는 향찰이나 구결 등을 포함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한문(漢文)을 국어(國語) 어순에 따라 배열하고 이에 토를 붙인 것을 이른다. 고려(高麗)와 조선시대(朝鮮時代)에는 관공서 문서에 서리들이 주로 사용하였다.

중국인들은 추석(秋夕) 무렵을 중추(中秋) 또는 월석(月夕)이라 하는데, 예기(禮記=유교 오경의 하나로, 예의 이론과 실제를 기술한 책)에 나오는 조춘일(朝春日), 추석월(秋夕月)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추석(秋夕)날 밤에는 달빛이 가장 좋다고 하여 월석(月夕)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중엽 이후 한자(漢字)가 성행하게 된 뒤 중국인이 사용하던 중추(中秋), 월석(月夕)이라는 말을 합하거나 축약(縮約=줄여서 간략하게 하다)하여 추석(秋夕)이라고 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중추절(仲秋節)이라 하는 것은 가을을 초추(初秋), 중추(中秋), 종추(終秋)로 나누었을 때 추석(秋夕)이 음력 8월 중추(中秋)에 해당하므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추석(秋夕)의 시원(始原=사물이나 현상 따위가 비롯되는 처음)이나 유래(由來)에 대한 명확한 문헌이나 자료는 없습니다. 중국의 수서(隋書), 동이전(東夷傳), 신라조(新羅條)에는 음력 815일이면 왕이 풍류를 베풀고, 관리들을 시켜 활을 쏘게 하여 잘 쏜 자에게는 상으로 말이나 포목을 준다.”라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구당서(舊唐書), 동이전(東夷傳), 신라조(新羅條)에도 해마다 정월(正月) 초하룻날(음력 11)이면 서로 하례하는 예식을 여는데 왕이 잔치를 베풀고 또 해와 달의 신에게 절을 한다. 음력 팔월 보름(음력 815)이면 풍류를 베풀고 관리들을 시켜 활을 쏜 자에게는 상으로 포목을 준다.”라는 기록이 있으며. 신라인들은 산신(山神)에 제사를 지내기 좋아하며 음력 8월 보름날이면 크게 잔치를 베풀고 관리들이 모여서 활을 잘 쏜다. “라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수서(隋書)=중국 이십오사(二十五史)의 하나. 중국 당나라 때 위징(魏徵) 등이 황제의 명에 따라 펴낸 중국 수나라의 정사(正史)636년에 간행되었다. 동이전(東夷傳)=서진(西晉) 시기에 진수(陣壽, 233~297)가 쓰고, ()나라의 배송지(裴松之, 372~451)가 보충한 위(), (), () 삼국시대(三國時代)의 역사서로서 동이전(東夷傳)이라는 항목을 따로 두어, 우리나라 고대 역사 기록이 있는 책. 구당서(舊唐書)=중국 당나라의 정사(正史)를 엮은 책.

우리나라 문헌에는 1145년 고려, 17 대왕 인종(仁宗) 23년에 김부식(金富軾)이 기전체(紀傳體)로 엮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추석(秋夕)에 대한 기록이 최초로 나타나지만, 추석(秋夕)에 대한 시원(始原)을 밝히는 내용은 아니라고 합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기록된 자료를 통해서 추석(秋夕)이 신라 초기에 이미 자리 잡았으며, 신라시대의 대표적인 명절이었음을 할 수 있습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1권인 신라본기(新羅本紀)에 신라, 3대 왕인 유리이사금(儒理尼師今) 9년 조에 기록된 추석(秋夕)에 관한 기록 내용을 살펴보면 왕이 육부(六部)를  정한 후 이를 둘로 편을 나누어 두 왕녀가 각각 부내(部內)의 여자들을 거느리게 하여 편을 짜고, 음력 716일부터 날마다 마당에 모여 길쌈을 했는데 밤늦게야 일을 파하게 하고, 음력 8월 보름에 이르러 그 공()의 다소(多少)를 살펴지는 편은 음식을 장만하여, 이긴 편에 사례하고 모두 노래와 춤과 온갖 놀이를 하였으니 이를 가배(嘉俳)라 한다. 이때 진 편의 여자들이 일어나 춤추며 탄식하기를, ‘회소회소(會蘇會蘇)’ 하였는데 그 소리가 구슬프면서 아름다웠으므로 뒷사람들이 그 소리를 인연으로 노래를 지어 회소곡(會蘇曲)이라 하였다.”

위 기록 내용처럼 특히 여자들이 패를 나누어 길쌈을 했다는 것은 두레길쌈의 효시로 볼 수 있는데, 이는 그때 당시 이미 길쌈이 보편화하였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사실 추석(秋夕)은 앞으로 다가올 겨울의 의복(衣服)을 준비하고 장만하는 시기로 볼 수 있습니다. 옷감을 짜는 풍속(風俗)은 농경(農耕)이 시작된 신석기시대(新石器時代)부터 있었는데, 세시명절(歲時名節=한해 절기나 달에 전통적으로 그 사회의 대부분 사람이 해마다 즐기고 기념하는 날)은 농경(農耕)에 적응하여 생성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세시명절(歲時名節)인 한가위는 고대 농경시대(農耕時代)부터 있었던 것으로, 신라시대에는 이미 일반화된 명절로 자리 잡았다고 추정 할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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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실학자 이규경(李圭景)이 조선과 청나라의 여러 책의 내용을 정리하여 편찬한 백과사전인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 추석(秋夕)의 관습(慣習=한 사회에서 역사적으로 굳어진 전통적 행동 양식이나 습관)이 가락국(駕洛國)에서 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락국(駕洛國)=고대 부족 국가 시대, 낙동강 하류에 일어난 나라들을 통틀어 이르던 말. 금관가야(金官伽倻), 대가야(大伽倻), 소가야(小伽倻), 아라가야(阿羅伽倻), 성산가야(星山伽倻), 고령가야(古寧伽倻) 등의 여섯 나라로 이루어졌다. 562년 신라에 멸망되었지만, 수준 높은 문화를 이루었고 이후 신라 문화 발전에 영향을 주었다. 특히 김수로왕(金首露王)12대손인 김유신(金庾信)은 훗날 신라 진골로 편입되어 삼국 통일의 위업을 달성하는데 큰 몫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일본인 승려 원인(圓仁)은 그의 저서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에 그때 당시 산동(山東=중국의 성의 하나. 황허강(黃河江) 하류와 산동반도로 이루어진다) 근방에 살던 신라인(新羅人)들이 절에서 가배명절(嘉俳名節)을 즐겼던 사실을 기록한 글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일본인 승려 원인(圓仁)은 신라인들이 발해와 싸워 이긴 기념으로 추석(秋夕)을 명절로 즐겼다고 해석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추석(秋夕)에 대한 기록이 곳곳에 기록으로 전해지고 있지만, 실제로 삼국사기(三國史記)에 기록된 육부(六部)를 방증(傍證=어떤 사실의 진상을 간접적으로 증명함)할 수 있는 자료가 발굴되기도 했습니다. 신라가 육부(六部)였음은 1988415일 경북 울진군 죽변면(竹邊面) 봉평리(鳳坪里)에서 출토된 신라 비석(碑石)의 내용으로 확인이 되었습니다. 비석(碑石)은 신라, 23대 왕인 법흥왕(法興王) 11(524)에 세워진 것으로, 육부(六部) 중의 하나인 탁부(啄部) 출신의 박사가 건립하였다고 하여 가배풍속(嘉俳風俗)과 관련된 육부(六部)의 존재가 분명해졌습니다.

이처럼 신라시대(新羅時代)에 이미 세시명절(歲時名節)로 자리 잡던 추석(秋夕)은 고려시대(高麗時代) 때에도 큰 명절로 여겨져 9대 속절(俗節=제삿날 이외에 철을 따라 사당<祠堂>이나 선영<仙塋>에 차례를 지내는 날)에 포함되었습니다. 고려 9대 속절(俗節)은 원정(元正=음력 11일 설날), 상원(上元=음력 115일 정월대보름), 상사(上巳=음력 초사흗날, 삼월 삼짇날<음력 33>), 한식(寒食=음력 2~3, 양력 45일에서 6), 단오(端午=음력 55), 추석(秋夕=음력 815), 중구(重九=음력 99), 팔관(八關), 동지(冬至)였습니다. 고려 9대 속절(俗節)은 조선시대(朝鮮時代)로 이어졌고, 조선시대(朝鮮時代)에 추석(秋夕)은 설날, 한식(寒食), 단오(端午)와 더불어 4대 명절로 정해지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추석(秋夕)은 고대사회의 풍농제(豐農祭)에서 유래했으며, 신라와 고려시대에도 추석명절(秋夕名節)을 쇠었고, 조선시대에는 국가적으로 선대왕에게 추석제(秋夕祭)를 지낸 기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추석(秋夕)은 농경민족인 우리 조상들에 있어, 봄에서 여름 동안 가꾼 오곡(五穀)과 과일들이 익어 수확하는 계절이 되었고, 1년 중 가장 큰 만월(滿月=음력 보름에 떠는 둥근달)을 볼 수 있는 명절 중에서도 가장 풍성한 때입니다. 또한 여름처럼 덥지도 않고 겨울처럼 춥지도 않아서, 살기에 가장 알맞은 계절이므로 더도 말고 덜지도 말고 한가위만큼만이라는 속담(俗談)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추석(秋夕) 명절을 비롯한 세시명절(歲時名節)은 근래까지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세시풍속(歲時風俗=해마다 일정한 시기에 되풀이하여 행해 온 고유의 풍속)이 농경의례(農耕儀禮=농작물의 풍작을 빌거나 수확물의 영혼 또는 정령<精靈>을 위로함으로써 농신<農神>에 감사하는 의례나 주술<呪術>)로서 농사라는 생업과 직결되어 있었던 것만큼, 산업사회 이후 공업이 생업의 중심이 되면서 농촌사회가 변화하여 세시명절(歲時名節)이 약화(弱化)하기 시작했습니다. 추석(秋夕) 명절 또한 전통적인 성격이 퇴색하여 차례와 성묘하는 날로 축소되었지만, 국가 차원의 공휴일로 지정됨으로써 오늘날까지 우리나라에서 큰 명절로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오랜 전통과 달의 명절인 추석(秋夕)에는 풍요로움을 기리는 여러 가지 행사와 놀이가 세시풍속(歲時風俗)으로 전승(傳承=문화, 풍속, 제도 등을 이어받아 계승함)되고 있습니다. 추석(秋夕)이 되면 조석(朝夕=아침과 저녁)으로 날씨가 쌀쌀하여지므로, 사람들은 여름옷에서 가을옷으로 갈아입습니다. 추석(秋夕)에 입는 새 옷을 추석(秋夕)이라고 합니다. 옛날 머슴을 두고 농사를 짓는 가정에서는 머슴들까지도 추석(秋夕) 때에는 새로 옷을 한 벌씩 해주었다고 합니다. 추석(秋夕)날 아침 일찍 일어나 첫 번째 일은 조상(祖上)에게 예()를 갖추어 차례를 지내는 엄숙한 세시풍속(歲時風俗)이 있습니다. 가정주부(家庭主婦=한집안의 살림살이를 도맡아서 주관하는 여자 주인)가 수일 전부터 미리 준비한 제물(祭物=제사에 쓰는, 여러 가지 음식)을 차례상에 차려놓고 차례를 지냅니다.

추석(秋夕)은 애초 농공감사일(農功感謝日=한 해 동안 농사를 잘하게 해준 것을 감사하는 날)로서 이날 명절식(名節食)으로 설날과 달리 흰 떡국 대신 햅쌀로 밥을 짓습니다. 그리고 햅쌀로 술과 송편을 빚습니다. 이렇게 조상 제사상(祭祀床)에 올리는 제물(祭物)은 햇곡식으로 준비하여 먼저 조상에게 선보이며, 1년 농사의 고마움을 차례를 지내며 조상에게 전합니다. 또 성주(집을 지키고 보호하는 신령), 터주, 조상단지 같은 집안 신()들도 햇곡식으로 천신(薦新=철에 따라 새로 난 과실이나 농산물을 신에게 먼저 올림) 하며 추석치성(秋夕致誠)을 올립니다. 설과 추석(秋夕)명절 차례는 대체로 사대봉사(四代奉祀=고조<高祖>, 증조<曾祖>, 조부<祖父>, 아버지까지 4대의 신주(神主)를 사당(祠堂)에 모시는 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는 조선 후기부터 내려오는 관행(慣行=사회에서 예전부터 해 오던 대로 함)으로 전해 지고 있습니다. 차례가 끝나면 차례상()에 올렸던 음식으로 온 가족이 음복(飮福=차례나 제사를 지내고 난 뒤에 술이나 음식을 나누어서 먹음)을 합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조상의 산소를 찾아서 성묘(省墓=조상의 산소를 찾아 인사를 하고 산소를 돌봄) 겸해 여름내 무성하게 자란 풀을 깎는 벌초를 하게 됩니다. 벌초는 대부분 추석(秋夕) 전에 미리 풀을 베어줍니다. 어쩌다 추석(秋夕)이 되어도 벌초하지 않는 무덤은 자손(子孫)이 없어 주인이 없는 무덤이거나, 자손(子孫)은 있어도 불효하여 조상의 무덤을 돌보지 않는 경우여서 남의 웃음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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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秋夕) 민간신앙적 행사.

추석(秋夕) 전날 밤에 전라남도 진도(珍島)에서는 남자애들이 밭에 가서 벌거벗고 고랑을 기어 다니는 풍속(風俗)이 있습니다. 이때 밭둑에다 음식을 차려놓고 토지신(土地神=땅을 맡아 다스린다는 신. 봄에는 부엌에, 여름에는 문에, 가을에는 샘에, 겨울에는 마당에 있으며, 그때 장소를 움직이면 화<>가 있다고 한다)을 위하는 일도 있는데, 이렇게 하면 밭곡식이 풍년이 들어 많은 수확을 올릴 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몸에 부스럼이 나지 않고 건강하게 자란다고 설()이 있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농업주술(農業呪術)과 건강을 축원(祝願=어떤 일이 희망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원하고 빎)하는 행위로 볼 수 있습니다.

추석(秋夕) 행하는 의례(儀禮=어떤 행사를 치르는 법식이나 정해진 방식에 따라 치르는 행사)로 올게심니(추석 또는 중양절<음력 99>을 전후하여 벼, 수수, 조 등의 이삭을 묶어 방문(房門), 기둥 따위에 걸쳐 두는 풍습)와 풋바심(곡식이 완전히 익기 전에 베어서 떨거나 훑음)이 있습니다. 올게심니란 주로 전라남도와 전라북도 지역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올벼 천신(薦新)입니다. 다른 말로 올기심리, 올계심리, 오리십리, 올비신미라고는 이름을 붙여서 부르기도 합니다. 여기서 올벼란 일찍 수확한 벼를 말하며, 벼가 다 익을 무렵 혹은 채 익기 전에 완전히 익은 부분을 골라 정미소에서 가공한 쌀입니다. 벼가 완전히 익기 전에 미리 솥에 볶아서 말려두었다가 밥을 짓습니다. 지은 밥과 함께 술과 조기, 햇병아리, 햇무 같은 것들을 상()에 차려 조상에게 제사를 지낸 후, 온 집안 식구가 모여 그 음식을 나누어 먹습니다.

추석(秋夕)을 전 후하여 그해의 농사에서 가장 잘 익은 곡식으로 벼, 수수, () 등의 이식을 한 줌 배다가 묶어 기둥이나 문설주에 걸어두는데 이것을 올게심니라고도 합니다. 올게심니를 할 때는 술과 음식을 차리고 이웃을 청해서 소연(小宴=간소하게 차린 잔치)을 베풀기도 합니다. 올게심니를 한 곡식은 무슨 일이 있어도 먹지를 않으며, 다음 해에 종자로 쓰거나, 다음 해에 새로 올게심니를 할 때 찧어서 밥이나 떡을 해서 조상의 사당에 천신(薦新)하거나 터주를 비롯한 가신(家神)에 올렸다가 먹습니다. 올게심니는 이듬해 풍년이 들게 해달라는 기원하는 주술행위(呪術行爲=사람이 의지를 갖추고 초자연적인 존재의 힘을 빌려 재앙을 물러나게 하거나 앞으로 다가올 일을 점치는 행위)와 조상의 은혜(恩惠)에 보답하려는 추원보본(追遠報本=조상의 덕을 추모하여 자기의 근본을 잊지 않고 제사를 지내며 은혜를 갚음)이 합하여진 행위로 볼 수 있습니다.

경북 안동을 비롯한 영남에서는 올게심니와 비슷한 풋바심(곡식이 완전히 익기 전에 베어서 떨거나 훑음)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벼를 심어 놓은 논 중앙에서 누렇게 잘 익은 부분을 지게로 한 정도, 벼로는 두 말 정도, 쌀로는 한 말 정도 미리, 벼를 베어서 탈곡합니다. 이 쌀로 밥을 짓고 제물(祭物)을 갖춰 제사(祭祀)를 지내는 것은 올게심니와 같은 풍속(風俗)입니다.

또 다른 추석(秋夕)의 풍속(風俗)으로 반보기와 근친(覲親=친정에서 가서 어버이를 만나다)이 있습니다. 추석(秋夕) 때면 농가도 잠시 한가하고 인심도 풍부한 때이므로 며느리에게 말미(휴가)를 주어 친정에 근친(覲親)을 보냈습니다. 떡을 하고 술병을 들고 닭이나 달걀 꾸러미를 들고 친정에 가서 혈육을 만나 회포(懷抱=마음속에 품은 생각이나 정) 풀면서 보냈습니다. 이렇게 근친(覲親)을 갈 수 없는 경우에는 반보기를 했습니다. 충남 지역에서는 추석(秋夕) 무렵에 반보기를 하는데, 반보기는 시집간 여자가 친정에 가기 어려워, 친정 부모가 추석(秋夕) 전후로 사람을 보내서, 만날 장소와 시간을 약속하여 친정과 시집 중간의 경지 좋은 곳을 정하여, 딸은 친정어머니가 즐기는 음식을 마련하고 친정어머니는 딸이 좋아하는 음식을 마련해서, 시집과 친정 중간쯤에서 만나는 것을 말합니다.

늦여름이 다 가도록 농사에 바빴던 일가친척들이 추석(秋夕) 무렵이면 서로 약속하여, 양편의 중간 지점에서 만납니다. 이것을 반보기라고 하며, 중간 지점에서 만난다고 하여 다른 말로 중로상봉(中路相逢) 또는 중로회견(中路會見) 중로(中路) 보기, 반보기라고 합니다. 전라남도 강진지방에서는 한 마을의 부녀자들이 단체로 음식을 마련하여 경치 좋을 곳에 가서 하루를 놀고 즐기는 것을 반보기라 부르기도 합니다. 옛날에는 특히 시집간 딸이 이 반보기를 통해 친정 식구와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요즘은 반보기 풍속(風俗)이 없지만, 옛날에는 추석(秋夕) 뒤에 음식을 장만하여 친정에 가서 놀다 오게 하는 반보기라는 아름다운 풍속(風俗)이 있었습니다. 요즘은 대부분 지역에서 추석(秋夕) 전후가 되면 이런 반보기가 아니라 온보기로 새색시들이 근친(覲親=친정에서 가서 어버이를 만나다) 가는 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설날(음력 11)과 정월대보름(음력 115)에 날씨를 보고 농사점(農事占)을 보는 것과 똑같이 추석(秋夕) 때에도 그날 날씨와 사정(事情=일의 형편이나 그렇게 된 까닭)을 보아 여러 가지로 점()을 쳤습니다. 음력 8월 초순이면 대개 백로(白露) 절기가 들고 곧 서리가 내리는 중추(仲秋=음력 815일로 추석을 말한다)입니다. 만일 백로절기(白露節氣) 전에 서리가 내리면 그해는 시절(時節=한 해를 날씨에 따라 나눈 그 한철)이 나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백로절기(白露節氣)를 전후(前後)하여 날씨를 보고 그해 농사의 풍년과 흉년을 점()쳤습니다. 추석(秋夕)은 날씨가 청명(淸明)하고 밝아야 좋다고 합니다. 비가 내리면 흉년이 든다고 해서 불길한 징조(徵兆=어떤 일이 생기기 이전에 그 일에 대해서 미리 보이는 여러 가지 조짐)로 보았습니다.

추석(秋夕)날 저녁에 흰 구름이 많이 떠서 여름에 보리를 베어서 늘어놓은 것처럼 벌어져 있으면 농작물이 풍년이 들지만, 반대로 구름이 끼어 달빛을 볼 수가 없으면 보리와 메밀이 흉년이 들고, 토끼는 포태(胞胎=임신)하지 못해 번식(繁殖)을 못 하고, 개구리도 알을 낳지 못한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밖에 백로절기(白露節氣) 무렵에 바람이 불면 벼가 검은빛으로 여물면(익으면) 흉년이 든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벼는 늦어도 백로절기(白露節氣) 전에 이삭이 패야 하며, 백로절기(白露節氣)를 지나고 이삭이 올라온 벼는 결실(結實=식물이 열매를 맺음)이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추석절식(秋夕節食=추석 명절에 특별히 만들어 먹는 음식).

추석(秋夕)에는 시절(時節=일정한 시기나 때)에 맞는 여러 종류의 다양한 음식이 있습니다. 차례를 지내기 위해서는 음식을 준비하는데 설날의 음식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다만 추수(秋收)의 계절이라 햇곡식으로 밥을 짓고, 술과 떡을 빚습니다. 햇곡식이 익는 계절이 빠르면 추석(秋夕) 차례에, 햇곡식을 쓸 수가 있고 반대로 햇곡식이 익는 계절이 늦으면 아직 완전하게 익지 않은 벼를 베어 수확한 다음, 방아를 찧어서 햅쌀을 만들어서 이용했습니다. 햇곡식이 익는 계절이 늦은 해에는 미리 산도(山稻=밭에 심는 벼)를 심었다가 제미(祭米=제사에 쓰는 쌀)로 쓰는 일도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햅쌀로 밥을 지으면 맛이 새롭고 기름기가 있으며 떡도 맛이 있습니다.

음력 설날의 명절식(名節食)은 떡국이지만, 음력 팔월 보름(음력 815) 명절식(名節食)은 송편입니다. 명절식(名節食)은 차례상()에 올려 조상에게 제사(祭祀)를 지내고 가족과 친척 그리고 이웃이 나누어 먹습니다. 추석(秋夕) 떡으로 송편을 빼놓을 수가 없지요. 송편은 올벼를 수확한 쌀로 빚은 송편이라 해서, 다른 말로 올벼 송편이라고도 부르고 있습니다. 송편 속에는 콩, , , 대추 등을 넣는데, 모두 햇것으로 합니다. 송편 속에 넣는 소(송편이나 만두 따위를 만들 때 피<>속에 넣어 맛을 내는 여러 가지 재료)가 모두 햇곡식이기 때문에, 추석에 빚는 송편은 아주 맛이 있습니다. 추석(秋夕)차례 상에 올리는 송편은 음력 814일 저녁 밝은 달을 보면서 가족들이 모여, 송편을 빚습니다. 송편을 예쁘게 빚으면 예쁜 배우자를 만나게 되고, 잘 못 빚으면 못생긴 배우자를 만나게 된다고 해서 처녀, 총각들은 예쁘게 빚으려고 솜씨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또 임신 중인 부인이 태아(胎兒=모체의 태 속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가 아들인지 딸인지 궁금할 때는, 송편 속에 바늘이나 솔잎을 가로 넣고 찐 다음 한쪽을 깨물어서 바늘의 귀 쪽이나 솔잎의 붙은 곳을 깨물면 딸을 낳고. 바늘의 뾰족한 곳이나 솔잎의 끝 쪽을 깨물면 아들을 낳을 징조라고 점()을 치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 밖에 수확 철이라 다양한 음식이 선보이며 추절시식(秋節時食=제철에 나서 그 계절에 맞춰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 하여 무나 호박을 넣은 시루떡도 빚습니다. 찹쌀가루를 쪄서 찧어 떡을 만들고 콩가루나 깨를 묻힌 인병(引餠=북한에서 쓰는 말인 찹쌀떡) 그리고 찹쌀가루나 찰수수 따위의 가루를 반죽하여 밤톨만 한 크기로 둥글둥글하게 빚어 끓는 물에 삶아 낸 후 고물을 묻히거나 꿀이나 엿물을 바른 떡인 경단(瓊團)을 빚었습니다. 이 밖에 찹쌀가루를 쪄서 달걀같이 둥근 떡을 만들고, 삶은 밤을 꿀에 개어 붙인 율단자(栗團子)도 추석(秋夕) 명절식(名節食)으로 빚어 차례상()에 올렸습니다.

추석 명절식(名節食)으로 송편과 함께 미각을 돋우는 숙주나물과 토란국도 명절식(名節食)입니다. 숙주나물은 소양(消陽=양기를 약하게 함) 한다고 하지만 잔칫상에 잘 오르고, 토란은 몸을 보호한다고 해서 즐겨 먹습니다. 토란국은 다시마와 쇠고기를 섞어서 끓입니다. 화양적과 누름적도 명절식(名節食)인데, 화양적은 햇버섯, 도라지, 쇠고기에 갖은양념을 하여 볶아 꼬챙이에 끼운 음식입니다. 누름적도, 화양적과 같은 방법으로 하되 밀가루나 달걀을 묻혀서 지진 음식입니다. 이 음식들 역시 차례상에 올립니다.

추석(秋夕) 무렵에는 송이버섯의 향기가 유난히 좋습니다. 송이회, 송이전, 송이전골이 일품이며 음식의 고명(음식의 모양과 빛깔을 돋보이게 하고 음식의 맛을 더하기 위하여 음식 위에 얹거나 뿌리는 것을 통틀어 이르는 말. 주로 버섯, 실고추, 지단, 대추, , 호두, 은행, 잣가루, 깨소금, 미나리, 당근, 파 따위를 이용합니다)으로도 송이버섯을 많이 사용합니다. 한편 추석(秋夕) 무렵은 앞으로 다가올 겨울에 이용할 저장용 반찬거리를 마련할 시기여서, 박고지, 호박고지, 호박순, 고구마순도 수확하여 말리고 산채(山菜=산나물)를 말려 묵은 나물을 준비합니다.

제사(祭祀)를 지내려면 술이 꼭 있어야 하는데, 추석(秋夕) 술은 백주(白酒)라고 하여 햅쌀로 빚기 때문에 신도주(新稻酒=햅쌀로 빚은 술)라 이름을 붙여서 불렀다고 합니다. 술을 많이 준비하여야만 이웃 사이에 서로 청하여 나누어 마시고, 소 놀이패 와 거북놀이패들이 찾아왔을 때 일행을 후하게 대접할 수가 있었습니다. 남성의 접빈객(接賓客=손님을 접대하는 일)은 첫째가 술인 만큼 술을 넉넉하게 준비했습니다. 이렇게 우리네 잔치에는 술만 풍족하면 되었습니다. 혼인, 환갑, 장례, 명절 때에는 손님 중에 술에 취해서 몇 사람쯤 쓰러져 있으면 그 집 잔치는 잘하였다고 할 만큼 술은 손님 접대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되는 음식이었습니다. 추석(秋夕) 때면 풍년도 짐작되기 때문에 인심이 후해서 술대접을 서로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추석(秋夕)에는 황계(黃鷄=털빛이 누른 닭)가 살이 통통하게 올라 가장 맛있는 계절이므로, 추석(秋夕)의 명절식(名節食) 닭찜을 하여 차례상에 올렸습니다. 황계(黃鷄)는 봄에 깬 병아리를 명절에 맞추어 길렀다가 추석(秋夕) 잡아 차례상 올릴 제물(祭物)로 이용했습니다. 이 밖에 옛날에는 명절에 어른에게 드리는 선물로 닭을 많이 이용했습니다. 친정에 근친(覲親=시집간 딸이 친정에 가서 어버이를 뵘, 승려가 속가의 어버이를 뵘)하는 딸이 닭이나 달걀 꾸러미를 가지고 갔으며, 경사(慶事=축하할 만큼 매우 기쁘고 즐거운 일)가 있을 때도 닭을 선사(膳賜=남에게 선물을 줌)하였으며, 반가운 손님이 찾아오면 손쉬운 닭을 잡아 대접했습니다. 사위가 오면 장모가 씨암탉을 잡아 대접하는 것이 그 예입니다. 추석(秋夕)에 백주(白酒)와 황계(黃鷄)는 좋은 술과 안주로 아주 좋았습니다.

추석(秋夕) 차례상에 올리는 가을 과일로는 감, , 대추, 호두, 은행, 모과 등은 전래(傳來=예로부터 전해 내려옴, 다른 나라로부터 전하여 들어옴)의 것이고, 요즘에는 사과와 배가 첨가되었습니다. , 대추, 곶감은 제물(祭物)로 필수이어서 가을에 알밤을 말려두었다가 씁니다. 대추는 단맛이 있어 여러모로 쓰였고 약식에도 넣었으며 약으로도 많이 이용하고 있습니다. 호두와 은행은 값이 비싸므로 남겨 두었다가 상원(上元=음력 115일 정월대보름) 날 부럼에 쓰기도 합니다. 모과는 약으로 쓰거나 차()로 이용하고, 술로 담기기도 합니다. 추석(秋夕) 때 이용하는 풋밤은 제사상(祭祀床)에 올리고 밥과 송편에도 넣고 단자(團子=찹쌀가루에 수분을 준 다음 시루에 쪄서 스테인리스 볼에 넣어서 친 다음 속에 소를 넣어서 친 다음 속에 소를 넣고 빚은 후 꿀을 발라 고물을 묻힌 떡. 종류는 쑥단자, 밤단자, 석이단자 등이 있습니다)를 만들기도 합니다. 이 밖에 밤을 대신하여 토란을 사용한 토란 단자도 있습니다. 참고 문헌=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다음 백과, 한국세시풍속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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