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세시 풍속 명절과 절기.

행복이 가득한 설 명절 연휴 잘 보내세요.^^^

풀꽃사랑s 2025. 1. 29. 09:32

안녕하세요?

을사년(乙巳年) 새해 복 많으시고요, 행복이 가득한

설 명절 연휴 잘 보내세요.^^^

매년 우리나라에서 겨울을 보내고 봄에 북녘으로 날아가는 겨울 철새 고니입니다.

매년 우리나라에서 겨울을 보내고 봄에 북녘으로 날아가는 겨울 철새 고니입니다.

우리나라 세시풍속(歲時風俗) 설날.

은 태음력(太陰曆=달이 지구를 한 바퀴 도는 시간을 기준으로 만든 달력)에서 음력(陰曆) 정월(正月=음력 1) 첫날인 11일을 말하며, 한 해의 최초 명절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다른 이름으로 원일(元日), 원단(元旦), 원정(元正), 원신(元新), 원조(元朝), 정조(正朝), 세수(歲首), 세초(歲初), 연수(年首), 연시(年始)라고도 하는데, 이는 새로운 한 해의 첫날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은 한자어로 신일(愼日)’, ‘달도(怛忉)’라고도 하는데, 이 말은 근신하여 경거망동을 삼간다는뜻입니다. 설은 시간상으로는 한 해가 시작되는 새해 새달의 첫날인데, 한 해의 최초 명절이라는 의미도 있고 음력 정월 대보름(음력 115)까지 이어지는 민족 최대의 명절이기도 합니다. 또 설은 음력 815일인 한가위 명절과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통 명절입니다.

삼국시대 문헌에서부터 설 명절에 대한 기록이 전해지고 있으며, 의례(儀禮), 민간신앙(民間信仰), 복식(復飾)과 음식(飮食)에 따라 가족들이 모여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고, 어른들에게 세배를 올리며, 서로 덕담을 주고받는 풍습이 있습니다. 또 이날 조상의 무덤을 찾아서 성묘하기도 합니다. 또 설날을 전후(前後)하여 윷놀이, 종정도놀이, 널뛰기, 연날리기 같은 세시 민속(歲時民俗)놀이를 행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설 명절 관련 세시풍속(歲時風俗) 또한 풍성했습니다. 이렇게 설은 신성한 날이라는 신앙적 의미가 컸지만, 오늘날은 조상에 차례를 지내고 성묘하는 것만 남았고, 안타깝게도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다양한 세시풍속(歲時風俗)이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설날 당일과 그 전일 다음날 이렇게 3일간을 법정 공휴일로 정해 지키고 있습니다. 또 설날은 2023년 국가 무형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옛날부터 태음태양력(太陰太陽歷)을 이용해 왔던 우리나라에는 거의 매번 달마다 명절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태음력(太陰曆)에서 설날과 보름 명절을 중요한 명절로 여겼습니다. 특히 태음력(太陰曆)에서 설날은 한 해가 시작하는 첫 달의 첫날로서 중요하며, 보름 명절은 농경성(農耕性=농업과 관련된 성격 및 특성)을 그대로 반영하여 중요한 명절로 여겼습니다. 곧 농경 국가에서는 보름달, 곧 만월(滿月=가장 온전히 둥근달)은 풍요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한 해의 시작인 정월 초하루는 천지가 개벽 될 때의, 그 순간에 비유되어 최대의 날이 됩니다.

태음력(太陰曆)에서 보름 명절 가운데서도 음력 정월 대보름(음력 115)과 음력 8월 한가위 명절(음력 815)은 설 명절 다음으로 아주 중요하게 여긴 명절입니다. 특히 음력 정월 보름은 첫 보름이라 점에서보다 중시되어 대보름 명절이라고 합니다. 또 음력 8월 한가위 명절은 우리나라와 같은 농경 국가에서 여름내 지은 농사의 결실을 보는 시기로 수확을 앞둔 명절이라 더 큰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설의 역사적 변천(變遷=세월의 흐름에 따라 바뀌고 변하는 것을 의미).

설이 언제부터 우리의 명절이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최초의 기록은 7세기에 나온 중국의 역사서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중국의 역사서인 수서(隋書)’구당서(舊唐書)’의 신라에 대한 기록은 왕권 국가다운 설날의 면모를 잘 보여줍니다. 기록된 내용을 살펴보면 매년 음력 정월원단(正月元旦=음력 11) 아침에 신라인들이 서로 하례(賀禮=축하여 예를 차림)하며 왕이 잔치를 베풀고 여러 손님과 관원들이 모인다. 이날 일월신(日月神=해와 달 숭배하여 신격화한 것)을 배례(拜禮=절을 하여 예를 갖춤)한다는이라는 기록은 국가 형태의 설날 관습을 분명하게 보이는 내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설 명절이 역법(曆法) 체계(體系)에 따른다는 것을 고려 한다면 3세기에 나온 중국의 진() 나라 때 진수(陳壽)가 쓴 역사서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 ‘동이전(東夷傳)’의 제천의례(祭天儀禮=하늘을 숭배하고 제사를 지는 의식)에 대한 기록에서 설의 근거를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은정월(殷正月=중국 은나라 때 정월을 이르는 말), 5월과 10월의, 농공시필기(農功始畢期=고대 마한의 세시 행사로, 5월에 파종이 끝날 때 그리고 10월에 농사가 끝날 때 신에게 올리던 제사. 그 당시 사람들은 모여서 밤낮으로 쉬지 않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술과 음식을 먹었다) 등과 같은 표현은 당시 역법(역법)을 사용하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은정월(殷正月)은 은()나라의 역법(曆法)을 지칭하는데 이는 오늘날로 치면 음력 섣달(음력 12)을 말합니다. 이처럼 당시 부족 국가들은 역법(曆法)을 사용했다는 추정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따라서 역법(曆法)을 통해 각 달을 가늠하고 세수(歲首=새해의 첫머리)인 설이 존재했다는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나라에 따라 또는 정월(正月)’을 언제 설정하는가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우리나라 문헌에도 설 명절의 연원(淵源=사물이나 일 따위의 근원)과 관련된 기록이 있습니다. ‘삼국유사(三國遺事)’1, 기이(紀異) 사금갑(射琴匣)조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신라 21대 비처왕(소지왕(炤智王)이라고도 한다) 때 궁중에서 궁주(宮主)와 중의 간통 사건이 있어 이들을 활로 쏘아 죽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후 해마다 상해(上亥), 상자(上子), 상오(上午)에는 만사를 꺼려 근신하였다 하여 달도(怛忉)’라 했습니다. 여기서 달도(怛忉)는 설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므로, 설의 유래로 볼 수도 있습니다. 또한 상해(上亥), 상자(上子), 상오일(上午日)은 정초 십이지일(十二支=정월 초하루부터 열이틀까지를 이르는 말로 십이지(十二支)에 해당하는 열두 동물의 날을 말함)에 해당하는 날로 이때의 금기를 비롯한 풍속은 오늘날까지 그 잔재가 남아 있습니다.

상해(上亥), 상자(上子), 상오일(上午日)에 나오는 해(), (), ()는 천간(天干)인 십이지(十二支) 가운데 돼지, , ()입니다. ()이란 그달의 첫 번째를 말하니, 첫 번째 해일(亥日), 자일(子日), 오일(午日)입니다. 이는 매년 정월의 상해일(上亥日)1일이라고 하면, 상자일(上子日)2일이 되고, 상오일(上午日)8일이 됩니다. 이 말의 의미는 새해 첫 이틀 동안 무척 조신하게 지내다가 한 주 뒤에 하루 정도를 또 조신하게 지냈다는 의미를 뜻합니다.

고려사(高麗史)에도 원정(元正=음력 11일 설날)은 상원(上元=음력 115일 정월 대보름), 상사(上巳=음력 33일 삼짇날), 한식(寒食=양력 45~6), 단오(端午=음력 55), 추석(秋夕=음력 815), 중구일(重九日=음력 99), 팔관회(八關會=음력 11, 평양에서는 음력 10), 동지(冬至=양력 1222)와 함께 우리나라 9대 속절(俗節=명절)의 하나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원단(元旦=), 한식(寒食), 단오(端午), 추석(秋夕)과 더불어 4대 명절의 하나였습니다. ‘수서북사(北史)’ ‘고구려전(高句麗傳)’에는 해마다 정초(正初), 패수(浿水=고조선시대 요동과 경계를 이루던 강)에서 물과 돌을 서로 끼얹고 던지고, 소리를 지르며 놀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편싸움, 특히 석전(石戰)의 원류로 추정될 수 있습니다.

몇 년 전만 해도 겨울 철새라고 했는데, 요즘은 우리나라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보내는 청둥오리입니다. 청둥오리는 한때 우리나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지만, 이제는 천연기념물에서 해제되었습니다. 청둥오리는 집에서 가축으로 기르고 있는 집 오리의 조상으로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태음력(太陰曆)을 사용하던 우리나라는 고대 삼국시대 때부터 정월(正月=음력 1)은 각별한 달로 여겼으며 신라(新羅)와 가야(伽倻)에서는 시조묘(始祖墓=한 겨레의 가정 처음이 되는 조상이 묻힌 무덤)에 제사(祭祀)를 지내고 신라(新羅)에서는 정월(正月)에 죄수(罪囚)를 사면(赦免)하기도 했습니다. 삼국유사(三國遺事) 사금갑조(射琴匣條)에는 음력 115일 정월 대보름의 세시풍속과 십이지일(十二支日)의 금기 유래를 파악해 볼 수 있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박혁거세(朴赫居世)의 즉위 일이 정월 대보름이라 했고, 김알지(金閼智)는 계림 나뭇가지의 황금 궤에서 탄생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박혁거세(朴赫居世)는 박씨(朴氏) 골매기(한국의 전통적인 신앙에서 나온 용어로, 특정 지역이나 마을을 창건한 조상을 신격화하여 부르는 명칭) 이고 김알지(金閼智)는 김씨(金氏) 골매기라고 추정하기도 하는데 어떻든 이들은 모두 공동체의 시조신(始祖神)이며, 창건신(創建神), 수호신(守護神)입니다. 오늘날, 대보름을 전후(前後)하여 많이 지내는 골맥이 동제(洞祭)는 의례(儀禮)이자 세시풍속(歲時風俗)이기도 한데 그 동제(洞祭)의 원류(原流)를 여기서 찾기도 합니다.

고려사(高麗史)’에는 원정(元正=음력 11일 설날)을 비롯하여 9대 속절(俗節)이 소개되어 있지만 그 밖에 고려 속요(俗謠=가곡(歌曲), 가사(歌辭), 시조(時調) 등 지식층이 즐기던 정가(正歌)에 대하여, 대중들이 즐겨 부르던 노래를 통틀어 이르는 말, 좁게는 사당패나 광대 같은 소리꾼이 부르는 노래들이고, 넓게는 각 지방 민요까지 포함된다), ‘동동(動動)’을 비롯하여 개인 문집에도 세시명절(歲時名節=한국의 전통적인 명절과 절기를 포함하는 용어로, 매년 돌아오는 특정한 때를 의미합니다. 이는 24절기와 함께, 설날(음력 11), 정월 대보름(음력 115), 삼월삼짇날(음력 33). 한식(寒食=양력 45~6)), 단오(端午=음력 55), 유두(流頭=음력 615), 칠월칠석(음력 77), 백중(百中=음력 715), 추석(秋夕=음력 815), 중양절(重陽節=음력 99) 등의 명절을 아우르는 개념입니다) 과 세시풍속(歲時風俗)에 대한 다양한 기록들이 있습니다.

고려(高麗)에 들어서도 왕은 정월(正月)에 국가 세시의례(歲時儀禮)인 천지신(天地神)과 조상신(祖上神) 제사를 지냈습니다. 음력 11일 설날을 전후하여 관리들에게 7일간의 휴가를 주었고, 신하들은 왕에게 신년을 축하하는 예를 올렸으며, 왕은 신하들을 위해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고려사(高麗史)에는 정월(正月=음력 1) 초하루(음력 11)에 정조(正朝=설날 아침) 축하 의식을 행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동문선(東文選)‘,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양촌집(陽村集)’, ‘가정선생문집(稼亭先生文集)’, ‘도은선생문집(陶隱先生文集)’, 등 문집(文集)에 기록된 시()에는 정월(正月=음력 1) 초하루(음력 11)에 집마다 다니면서 나누는 새해 인사, 연하장(年賀狀) 보내기, 아귀(餓鬼)를 쫓기 위해 부적(符籍)을 문()에 붙이기, 장수(長壽)를 기원하는 십장생(十長生=오래 살고 죽지 아니한다는 열 가지. 곧 해(태양), , , , 구름, , 불로초, 거북, , 사슴의 열 가지를 말한다) 등의 세화(歲畫=조선시대, 새해를 축하하는 뜻으로 궐내에서 만들어 신하들에게 나누어주던 그림)보내기 등의 여러 가지 내용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삼국시대(三國時代)에도 이미 설의 세시풍속(歲時風俗)이 상당히 있었지만, 고려(高麗)에 와서는 더욱 다양해졌으며 이는 조선시대에까지 이어졌다. 실상 오늘날 논의되는 설을 비롯한 각 달의 세시풍속(歲時風俗)은 고려(高麗) 때 정착되었었던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는 4대 명절(설날, 한식(寒食), 단오(端午), 추석(秋夕))이라 했지만 그렇다고 다른 명절이 약화(弱化)된 것은 아닙니다. 민간에서는 여전히 다양한 세시명절(歲時名節)이 전승되고 세시풍속(歲時風俗)이 행해졌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서울의 세시풍속(歲時風俗)을 수록한 경도잡지(京都雜誌)’, ‘열양세시기(冽陽歲時記)’를 비롯하여 조선 전 지역의 세시풍속(歲時風俗)을 기록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를 통해서도 그 다양함을 짐작할 수 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수록된 세시풍속(歲時風俗)이 모두 당시에 전승된 것은 아니지만, 그 내용 가운데 많은 것이 현대까지 이어졌습니다.

그 밖에도 고려시대와 마찬가지로 추재집(秋齋集)’. 면암집(勉菴集)‘, ‘지봉유설(芝峯類說)’, ‘농가십이월속시(農家十二月俗詩)’,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해동죽지(海東竹枝)‘ 등의 문집(文集)에 정월(正月)을 비롯한 각 달의 세시풍속(歲時風俗)이 소개되거나 시문(詩文)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고려시대에는 팔관회(八關會), 연등회(燃燈會) 등 불교(佛敎) 세시풍속(歲時風俗)이 강세를 이루었지만, 조선시대에는 설날 차례를 비롯한 조상제사(祖上祭祀)가 중시되는 유교(儒敎) 세시풍속(歲時風俗)이 나름대로 힘을 발휘한 것도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란 말이 설날 이외에 사용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양력 24절기 중에서 22번째 절기인 동지(冬至)가 있습니다. 동지(冬至)를 다른 말로 아세(亞歲)라고 부르는데, 아세(亞歲)는 우리말로 작은 설이라는 불리는 동지(冬至)입니다. 동지(冬至)는 옛날부터 24절기의 하나면서 우리나라 전통명절인데, 설날 떡국 한 그릇 먹으면 나이 한 살 먹는다고 하듯이 동짓날 팥죽 한 그릇 먹으면 나이 한 살 더 먹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동지(冬至)를 작은 설로 여기는 까닭은 중국 후한 시대(後漢 時代 22~220)에 동지(冬至)를 세수(歲首=한 해의 첫날, 또는 설날)로 삼았던 데에서 근거합니다. 사실상 24절기는 동지(冬至)‘0’으로 하고 첫 기번(氣番=24절기 순서) 소한(小寒), 두 번째 기번(氣番)은 대한(大寒)으로 하며 입춘(立春)은 절기상에서 3번째 기번(氣番)이 됩니다.

이렇게 동지(冬至) 기번(氣番)‘0’로 한 까닭은 역()계산의 출발을 동지(冬至)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흔히 열두 띠로 일컬어지는 십이지(十二支)를 말할 때 첫 달인 음력 자월(子月), 음력 정월(正月=음력 1)이 아니라, 음력 동짓달(음력 11)이 됩니다. 이후 음력 섣달(음력 12)은 축월(丑月), 음력 정월(正月=음력 1), 음력 2월은 묘월(卯月), 음력 3월은 진월(辰月), 음력 4월은 사월(巳月), 음력 5월은 오월(午月), 음력 6월은 미월(未月), 음력 7월은 신월(申月), 음력 8월은 유월(酉月), 음력 9월은 술월(戌月), 음력 10월은 해월(亥月) 이런 순으로 불렀습니다.

조선 후기부터 현재까지 설의 변천사(變遷史).

아주 오랜 옛날부터 태음력(太陰曆)을 이용하여 온 우리나라에서는 갑오개혁(甲午改革) 이전까지 전통적으로 음력 11일인 설날과 음력 815일 한가위를 연중 가장 큰 명절로 지냈습니다. 즉 다시 말해 음력(陰曆), 설은 전통적인 명절인 곧 을 의미하며 양력(陽曆)설은 현재 사용하는 태양력(太陽曆)에 의한 설입니다. 그러므로 전통적인 명절은 설날이며 한동안 사용해 왔던 구정(舊正)이란 용어는, 용어 자체가 우리나라 전통명절인 설날의 이미지와는 맞지 않으므로 앞으로는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렇게 구정(舊正)으로 불리던 설날이 오늘날과 같이 본래의 이름을 찾기까지는 우리 민족의 수난 역사와 나란히 할 만큼 큰 진통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설날은 1895년 단행된 을미개혁(乙未改革)에 따라 189611, 음력은 18951117, 고종 32년에 태양력(太陽曆=양력)이 수용되고도 우리의 전통명절인 설날은 이어졌지만,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가 되면서 우리나라 전통명절인 설날도 수난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때 당시 일본은 우리나라의 전통문화 말살 정책에 의하여 설날과 같은 세시명절(歲時名節)마저 억압했습니다. 그들은 우리나라 전통명절 무렵이면 떡방앗간을 폐쇄하고 새 옷을 입고 나오는 어린이들에게 먹칠을 하는 사례가 허다했습니다. 반면에 일본의 명절과 그 행사의 의식(儀式)을 우리나라에 이식하여 강요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면 일본 명절인 천장절(天長節), 명치절(明治節), 기원절(紀元節) 등을 국경일로 정하여 갖가지 행사에 우리나라 사람들을 참가시켰습니다. 또 신정(新正)에는 시메나와(慓繩=표승)이라 하여 새끼줄에 귤을 꿰어 대문에 달게 하고 음력 5월 단오절(端午節)에는 고이노보리(鯉幟=리치)하 하여 헝겊으로 잉어를 만들어 풍선처럼 띄우게 했습니다.

이처럼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에는 일본인들의 방식대로 양력과세(陽曆過歲=양력설을 쇰)를 강요했는데, 이는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에서 벗어나 광복(光復) 후 공화국(共和國)에 들어서도 계속 이어졌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옛날부터 명절로 내려오던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설날과 양력(陽曆) 11일인 신정(新正)을 명절로 여기는 이중과세(二重過歲=설을 두 번 지낸다) 풍속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러자 국가에서는 이중과세(二重過歲)의 낭비성을 들어 우리나라 전통명절인 음력과세(陰曆過歲=설을 쇰)를 금했으며, 산업화 시대에 와서는 낭비성과 아울러 외국과의 무역 통상 관계를 들어 신정(新正)을 권장하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국제적으로 신정(新正)이 통용되기 때문에 우리도 그때 맞추어서 쉬고 구정(舊正)’ 때에는 외국에서도 모든 일을 하므로 우리 역시 함께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을 때 국제무역 수지에 차질이 생긴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역시 음력(陰曆) 기준의 8월 한가위 보름 명절(음력 815)은 휴일로 삼았다는 것은 모순된 논리였습니다.

오랫동안 공휴일 또는 비공휴일 문제로 몇 차례 오락가락하던 우리나라 전통명절인 설날은 1985민속(民俗)의 날로 지정되어 1일간 국가적인 공휴일이 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사실상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활 자체가 민속(民俗)인데, ‘민속(民俗)의 날이라는 명칭을 붙이는 것은 실로 어색하고 궁색했습니다. 그러다가 1989년 음력(陰曆) 정월(正月) 초하루(음력 11)부터 본명인 설날이라는 이름을 복원하면서, 설날 전후로 3일간을 공휴일로 지정했습니다. 이와 함께 1990년부터는 신정(新正) 공휴일을 2일로 단축했고, 1999년부터는 11일 당일만 공휴일로 지정하면서 우리나라 전통적인 명절로서의 설날 문화와 풍습은 온전히 음력(陰曆) 11일 전후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또 이때부터 우리나라 전통명절인 설날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무형유산 정책이 전문 기능과 예능을 보유한 전승자 중심에서 온 국민이 함께 전승 해온 공동체의 생활관습으로 확대됨에 따라, 2023년 가족과 지역 공동체의 생활관습으로 향유, 전승 되어온 설날도 음력(陰曆) 정월(正月) 대보름과 함께 국가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와 인접한 국가의 설.

설이 언젠가는 그 나라에서 사용하는 일상력(日常曆=매일 반복되는 달력)의 기준이 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89611일부터 일상력(日常曆)으로 태양력(太陽曆)을 사용하고 있지만 전통사회에서는 음력(陰曆)으로 일컬어지는 태음태양력(太陰太陽歷)을 사용했습니다. 따라서 설날은 태음태양력(太陰太陽歷)에 의한 정월 초하루였습니다. 이는 중국과 일본도 마찬가지였는데 이들 나라 역시 오늘날에는 모두 그레고리력인 태양력(太陽曆)을 일상력(日常曆)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1872년에 태양력(太陽曆)을 채용했으며 대만의 경우 손문(孫文)의 중화민국 임시정부가 건립 때인 1912년 태양력(太陽曆)이 채택되었습니다. 중화인민공화국은 1941, 동양 삼국 가운데 가장 늦게 태양력(太陽曆)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렇지만 음력(陰曆)에 의한 설 명절은 아직도 중요시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11일부터 5일을 춘절(春節)이라 하여 명절로 보냅니다. 설음식으로는 만두를 먹는데 온 가족이 모여 함께 빚어 먹으며 명절을 즐깁니다. 또 우리나라처럼 제사를 지내고 신년인사(新年人事)를 하며 폭죽놀이 등을 즐기기도 합니다. 중국에서도 설날과 추석(秋夕) 무렵이면 대대적인 민족대이동이 일고 있다고 합니다.

일본에서는 음력(陰曆)의 날짜를 그대로 양력(陽曆)으로 사용, 양력(陽曆) 11일은 국민의 축일(祝日)이라는 이름으로 명절화(名節化)되었습니다. 양력(陽曆) 11일에는 이른 아침부터 신사참배(神社參拜)를 하는데 이를 초예(初詣=하츠 모데, 정월의 첫 참배라는 뜻) 라고 합니다. 그리고 정초 약 3일간은 친구, 직장인들 사이에서 신년 인사를 다니기도 합니다. 상인들은 서로 덕담을 주고받고 문송(文松=가도마츠, 새해 문 앞에 새우는 장식 소나무)을 비롯한 각종 신년 장식물이 차려집니다. 음력(陰曆) 2일에는 황거일반참하(皇居一般參賀=고쿄잇파상가)라 해서 궁성이 공개되고 천황이 발코니에 나와서 인사를 받습니다.

이 밖에 동양적 색채와 유럽적 색채가 동시에 존재하는 러시아에서는 새해가 되면 보드카(vodlka)’를 마시면서 한해의 안녕을 기원합니다.

프랑스에서는 지금의 그레고리력을 사용하기 전에는 세수(歲首=설날)가 양력(陽曆) 41일이었습니다. 1576년 국왕 샤를르 9세 때 세수(歲首=설날)를 양력(陽曆) 11일로 옮겨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설날에 에트렌느(Etrenne=길조의 선물) 라는 선물을 교환하며 덕담을 나눕니다. 아이들은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선물을 요구합니다. 덕담은 좋은 한 해를이라고 하는 것이 보편적이며 친척이나 이웃에게 덕담하러 가는 어린 소녀들은 제가 아무리 작아도 다리 밑으로 지나왔어요. 서리가 내리고 추워도 새해, 인사드리러 왔어요. 어서 주머니에 손을 넣어 동전을 꺼내서 주세요.”라고 합니다. 오랜 농경국(農耕國)이었던 프랑스에서는 지역마다 다양한 설 풍속이 있는데, 마자르 그에서는 설날 새벽에 날씨가 맑으면 과일 풍년이 든다고 합니다.

알프스 저지대에서는 주부들이 설날 아침 일찍 샘물을 길어 옵니다. 맨 먼저 샘에 도착한 주부는 빵이나 치즈 같은 자기가 맨 먼저 만든 것을 우물가에 갖다 놓는다. 그다음에 온 여자는 이 헌물을 자기 집으로 가져가고 그 대신에 자기네 것을 갖다 놓는다. 꼭 우리나라의 대보름 풍속인 용알뜨기와 매우 유사한 점이 있습니다. 시푸르 지역에서는 젊은 부부가 조부모에게 세배하러 갑니다. 리얘스 지역에서는 대소가의 친척들을 나이 순서에 따라 방문하고 서로 껴안고 덕담을 나눕니다. 아이들에게는 형편에 따라 1프랑이나 2프랑 또는 5프랑짜리 동전을 세뱃돈으로 줍니다.

인도에서는 설날에 온 가족이 마당에 모여 냄비에 우유와 쌀을 넣고 죽을 끓입니다. 죽을 끓이면서 한 해의 길흉을 점치는데, 죽이 잘 끓지 않거나 냄비가 깨지면 불행이 닥친다고 합니다. 죽이 잘 끓으면 행운이 온다고 믿는데 이 죽을 무화과잎에 싸서 친지들에게 선물합니다.

베트남에서는 설날 전에 수박을 준비했다가 설날에 손님들이 모이면 수박의 가운데를 가릅니다. 가른 수박 가운데 빨갛게 익은 정도를 보고 한 해의 길흉을 점칩니다. 그리고 가족들이 모였을 때 녹두와 돼지고기를 넣은 찹쌀떡인 바이 쯩을 바나나잎에 싸두었다가 손님들한테 대접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음력(陰曆) 설날을 명절로 맞이하듯이 이스라엘은 유대 달력에 따라 양력(陽曆) 9월이 설날입니다. ‘로쉬 하사나로 불리는 설날에 서로 덕담하면서 꿀에 담긴 사과나 대추를 먹습니다. 헝가리에서는 설날 점심때 콩을 넣은 음식을 먹으면서 부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멕시코에서는 11일이 되는 시점인 자정에 시계탑 종이 열두 번 울리는 것에 맞추어 포도알 열두 개를 먹으며 새해 12개월 동안의 소원을 빕니다. 이란에서는 시르(마늘), 세르케(식초), (사과) 등 이란어로 로 시작되는 7가지 재료를 이용해 음식을 만듭니다. 이 음식은 풍요와 건강, 행복 등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청둥오리와 몸집이 비슷한 흰뺨검둥오리입니다. 흰뺨검둥오리도 몇 년 전에는 겨울 철새였지만, 요즘은 청둥오리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4계절을 보내는 텃새가 되었습니다.

설날 세시풍속(歲時風俗).

설날의 세시풍속(歲時風俗)으로는 차례, 세배, 설빔, 덕담, 문안비, 설 그림, 복조리 걸기, 야 광기 쫓기, 청참, 윷놀이, 널뛰기, 머리카락 태우기 등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합니다. 설날이 다가오면 음력 섣달그믐날(음력 12월 마지막 날) 자정(저녁 12), 지나서 대나무를 가늘게 쪼개어 엮어서 만든 조리를 사서 벽에 걸어두는 풍습이 있는데, 이것을 복조리라고 합니다. 전국에서 조리 장사가 복조리를 팔기 위하여 음력 정월 초하루(음력 11) 전날 밤부터 밤새도록 골목을 돌아다니면서 복조리를 사라고 외칩니다. 이러한 풍속은 조리가 쌀을 이는 기구이므로 그해의 행운을 조리로 일어 취한다는 뜻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각 가정에서는 1년 동안 필요한 수량만큼의 복조리를 사는데 일찍 살수록 좋으며 집 안에 걸어두고, 하나씩 사용하면 1년 동안 복이 많이 들어온다고 믿었습니다. 새벽에는 거리에 나가 처음 듣는 소리로, 한 해 운수를 점치는 청참(聽讖)을 행하기도 합니다.

음력 정월 초하루(음력 11) 아침에는 남녀노소 구분 없이 모두 일찍 일어나 세수하고 미리 마련해 둔 새 옷으로 갈아입는데 이새 옷을 설빔이라고 합니다. ‘경도잡지(京都雜誌)’에는 남녀가 모두 새 옷을 입는 것을 세장(歲粧=설빔)이라고 했습니다.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는 남녀노소가 모두 새 옷 입는 것을 세비음(歲庇廕=설빔)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설빔은 음력 정월 대보름(음력 115)까지 입었다고 합니다. 설날에 색깔이 있는 옷을 입는데 특히 어린이들은 색동저고리를 입습니다. 명절뿐만 아니라 돌과 같은 기념일에도 색동저고리를 입는데, 돌에 남자아이들은 남색 띠를 두르고, 여자아이들은 색동저고리를 입었습니다. 노랑이나 녹색 저고리에 붉은색 치마는 오늘날까지도 설에 어린이들이 입는 가장 보편적인 옷입니다.

아침에는 가족 또는 친척들이 모여들어 정초의 차례를 지냅니다. 차례는 모처럼 자손들이 모두 모여 오붓하게 지낼 기회이기도 합니다. 차례가 끝나면 어른들에게 순서를 따져 세배(歲拜)를 올립니다. 차례와 세배(歲拜)를 마치면 떡국으로 마련한 세찬(歲饌=세배하러 온 사람에게 대접하는 음식)을 먹고 어른들은 세주(歲酒=설에 쓰는 술)를 마십니다. 세찬(歲饌)이 끝난 후에는 차례상에서 물린 여러 명절음식을 나누어 먹는 음복(飮福)이 마련됩니다. 아이들에게는 세뱃돈을 주며 덕담을 나누고 한해의 운수 대통을 축원해 줍니다. 이웃이나 친인척을 찾아서 세배(歲拜)하러 다니는 일도 중요한 풍습입니다. 세배(歲拜)하러 온 사람이 어른일 때에는 술과 음식을 내어놓는 것이 관례지만, 아이들에게는 술을 주지 않고 세뱃돈과 떡 과일 등을 나누어 줍니다.

정초에 어른이나 친구를 만나게 되면 말로써 새해 인사를 교환하는데 이를 덕담이라고 합니다. “과세 안녕하셨습니까?” 또는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등과 같이 그 사람의 신분 또는 장유(長幼=어른과 아이를 아울러 이르는 말)의 차이에 따라 서로 설날 인사를 합니다. 벼슬을 하는 집에서는 옻질을 한 책상을 대청에 비치해 둡니다. 그러면 밑에 거느린 아전들이 종이를 접어 이름을 써서 책상 위에 놓아두고 갑니다. 이는 새해 문안드린다는 뜻이며, 각 관청의 서리와 영문(營門)의 교졸(校卒)들도 종이에 이름을 적어 관청이나 선생의 집에 들이는데 이를 세함(歲銜)이라고 했습니다. 또 설날에는 조상의 무덤을 찾아 성묘(省墓)도 다녀옵니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했다는 인사를 조상의 묘()에 고()하는 것입니다.

조선조 말까지의 풍속에, 설날 도화서(圖畫署=그림에 관한 일을 맡아보았던 관서)에서 수성(壽星) 선녀와 직일신장(直日神將)을 그려서 임금에게 드리고, 또 서로 선물로 주기도 하는데, 이를 세화(歲畫=설 그림)라고 합니다. 이는 축수(祝壽=오래 살기를 빎)하는 뜻을 표시하는 것이다. 수성(壽星)이란 장수(長壽)를 맡은 노인성(老人星=남극 부근 하늘에 있는 별)을 말하는 것이고, 직일신장(直日神將)은 그날을 담당한 신인데, 이는 모두 도교(道敎)의 신입니다. 한 사람은 도끼를, 또 다른 한 사람은 절월(節鉞)을 들고 황금 갑옷을 입은 두 장군의 화상(畫像)을 한자 남짓(30.33) 되게 그려서 대궐 문 양쪽에 붙이는데, 이것을 문배(門排=조선시대, 새해를 축하하는 뜻으로 궐내에서 만들어 신하들에게 나누어주던 그림)또는 설 그림이라고 합니다. 절월(節鉞)은 조선시대, 지방에 관찰사, 유수(留守), 병사(兵使), 수사(水使), 대장, 통제사 등이 부임할 때 임금이 내주던 절과 부월. ()은 수기(手旗)처럼, 부월(斧銊)은 도끼처럼 만든 것으로 군령을 어긴 자에 대한 생살권(生殺權)을 상징하였다.

또한 붉은 도포와 검은 사모를 쓴 형상을 그려 대궐의 겹 대문에 붙이기도 하며, 종규(鍾馗=중국에서, 역귀나 마귀를 쫓는다는 신)가 귀신 잡는 형상을 그려서 문에 붙이고, 또 귀신의 머리를 그려 문설주에 붙이니, 이것들은 다 사기(邪氣)와 역신(疫神)을 물리치는 뜻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궁가(宮家)와 척리(戚里=예전에, 임금의 내척과 외척을 아울러 이르던 말) 문짝에 붙이니, 여염집에서도 이를 본받아 그림을 문에 붙였습니다.

설날 밤에 야광(夜光)이라는 귀신이 인가에 들어와 사람들의 신을 신어 보아서 자기 발에 맞으면 신고 간다는 속설이 있는데, 만일 신을 잃어버리면 신임자는 그해 운수가 나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아이들과 어른들이 모두 신을 방안에 들여놓습니다. 이날 밤에는 모두 불을 끄고 일찍 자는데 야광귀를 막기 위해 대문 위에다 체를 걸어 두니, 이것은 야광귀가 와서 체의 구멍을 세서 보다가 잘못 세어 다시 또 세고, 하기를 반복하다가 신을 신어 보는 것을 잊어버리고, 새벽닭이 울면 물러가게 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설날 의례(儀禮=어떤 행사를 치르는 법식이나 정해진 방식에 따라 치르는 행사)-1.

설날을 비롯하여 각 세시명절(歲時名節)에 행해지는 세시풍속(歲時風俗)은 대체로 소망을 기원하는 사실상 거의 의례(儀禮)에 포함되어 전통적인 의미로 말하면 세시의례(歲時儀禮)’라고 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여기에 더해 속신(俗信)도 실상은 의례적이어서 의례(儀禮) 속신(俗信)을 구별하는 데에는 모호한 점이 있습니다. 따라서 기원의 대상은 신()과 같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때도 있지만 무언가 초월적인 힘을 대상으로 제의하는 것을 의례(儀禮)로 하겠지만 때에 따라서는 모호한 것도 있으리라고 봅니다.

세시의례(歲時儀禮)는 농사를 중심축에 놓고 행해지는 것이 대부분이어서 농경의례(農耕儀禮)라고도 합니다. 의례력(儀禮曆) 속에 포함되는 모든 세시풍속(歲時風俗)이 풍농의 기원과 예측, 풍흉을 점치는 점세(占歲), 농공과 풍농을 감사하는 내용입니다. 후대에 이르러 어업과도 관련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요즘은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바뀌면서 그만큼 농사가 약화하고 농경(農耕)을 위한 세시풍속(歲時風俗)으로서의 성격도 희박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에는 자의적이든 변화에 따르든 구별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의례(儀禮)로서의 구속력이 더 강한 것을 농경의례(農耕儀禮)라 합니다. 세시의례(歲時儀禮) 가운데서도 공동의례(共同儀禮)의 경우는 농경의례(農耕儀禮)의 기능을 주로 합니다.

명절을 전후하여 행해지는 세시풍속(歲時風俗)은 정월(正月), 설 명절 기간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 기간에 세시풍속(歲時風俗)이 집중된 까닭은 정월(正月)이 농한기(農閑期)인 데다 한 해가 한 해가 시작되는 신성한 기간이기 때문입니다. 신성한 기간에는 신과의 만남이 수월해져 인간의 기원 사항이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또 이날은 윷놀이, 종정도놀이, 널뛰기, 연날리기 같은 민속놀이가 시작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세시풍속(歲時風俗)은 음력(陰曆) 정월(正月=음력 1월)부터 섣달(음력 12)까지 해마다 같은 시기에 반복하여 전해오는 세시풍속(歲時風俗), 세시명절(歲時名節) 또는 그에 버금가는 날에 행해지는 주기(週期) 전승의례(傳承儀禮)입니다. 또 세시풍속(歲時風俗)을 세시(歲時), 세사(歲事), 월령(月令), 시령(時令)이라고 하는데 이는 모두 시계성(時季性), 주기성(週期性), 순환성(循環性)의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계성(時季性)과 순환성(循環性)은 기본적으로 주기성(週期性)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세시풍속(歲時風俗)은 주기성(週期性)을 중심축으로 같은 행사가 반복되는 것입니다. 음력(陰曆)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세시풍속(歲時風俗)은 대체로 농경문화(農耕文化)를 반영하고 있어 농경의례(農耕儀禮)라고도 합니다. 여기에는 명절(名節), 24 절후(節候) 등이 포함되어 있고 이에 따른 의례(儀禮)와 놀이 등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농경(農耕)을 주 생업으로 하던 전통사회에서는 놀이도 오락성이 주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풍농(豐農)을 예측하거나 기원하는 의례(儀禮)였습니다. 그래서 세시풍속(歲時風俗)을 세시의례(歲時儀禮)라고도 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세속화(歲俗化)되고 탈제의화(脫祭儀化)하여 의례(儀禮)로 행해지는 것이 구별되기도 합니다. 세시풍속(歲時風俗)의 기준이 되는 역법(曆法)은 음력(陰曆)이지만 양력(陽曆)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보편적으로 말하는 음력(陰曆)은 태음태양력(太陰 太陽曆)을 간략하게 글자로 음력(陰曆)이 중심을 이루되 양력(陽曆)도 추가된 것입니다. 24 절후(節候)는 양력(陽曆) 날짜로 고정되어 있는데 이는 태양력(太陽曆)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음력(陰曆)으로는 해마다 날짜가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24절기이자 세시명절(歲時名節)이기도 한 동지(冬至)의 경우 양력(陽曆) 1221일이나~22일에 들지만, 음력(陰曆)으로는 동짓달(음력 11) 상순, 중순, 하순 등 해마다 달라집니다. 세시풍속(歲時風俗)은 대체로 1년을 주기(週期)로 반복되는데 예외도 있습니다. 태음력(太陰曆)에서 윤월(閏月=윤달)이 더는 해에 행하는 세시풍속(歲時風俗)이 있고, 3, 5, 또는 10년 단위로 행해지는 별신제(別神祭=마을 수호신에게 드리는 제사)도 세시풍속(歲時風俗)의 범주에 속합니다.

전통사회에서 다달이 행해졌던 세시풍속(歲時風俗)은 명절 또는 그에 버금가는 날에 행하여집니다. 세시풍속(歲時風俗)의 다양성은 농경, 특히 복잡한 벼농사를 주 생업으로 했던 우리나라에서는 그에 적절하게 형성되었다. 세시풍속(歲時風俗)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기원적인 문제를 밝히기는 불가능합니다. 문헌자료와 고고학적인 자료를 통해 그 기원을 추정해 보지만 여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세시풍속(歲時風俗)이 농경과 깊게 관련되어 있어서 농경의례(農耕儀禮)라고도 하는데, 그래서 농경의 기원에서 그 역사성을 추정하기도 합니다. 고고학적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농경이 시작된 시기는 신석기(新石器) 문화시대(文化時代)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신석기문화(新石器文化) 전까지도 종전의 수렵과 어로 등의 경제가 기본이었으며 농경의 확실한 증거는 신석기(新石器) 중기(中期=기원전 2000~3000)부터 나타납니다.

시계성(時季性), 주기성(週期性), 순환성(循環性)은 모두 시간에 따라 반복되는 특성이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속성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면, 각각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시계성(時季性)=특정한 시기나 계절에 따라 나타나는 반복적인 현상이나 행사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농경사회에서 계절의 변화에 따라 농작물을 심고 수확하는 과정이나, 설날이나 추석과 같은 명절이 시계성(時季性)을 보여줍니다.

주기성(週期性)=일정한 간격을 두고 반복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순환성(循環性)=주기적으로 되풀이하여 도는 성질을 말하며, 이는 시계성(時季性)과 주기성(週期性)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순환성(循環性)은 세시풍속(歲時風俗)과 같이 음력 정월부터 섣달까지 같은 시기에 주기적으로 반복하는 행사나 의례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속성들은 전통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문화적, 사회적 중요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이들은 농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농한기에 집중되며, 음력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특징입니다.

농경의례(農耕儀禮)는 농작물의 풍요로운 수확을 위하여 초자연적인 존재에게 기원하는 행위입니다. 농작물 생산 과정마다 행해지는 주기적인 계절제 세시풍속(歲時風俗)입니다. 단군신화(檀君神話)와 같은 신화(神話)나 고려 시대 연등회 같은 불교적 행사에도 농경의례적(農耕儀禮的) 속성이 있습니다. 농경의례(農耕儀禮)는 수확의 풍요를 미리 축원(祝願)하는 축원의례(祝願儀禮)와 파종기에 이뤄지는 파종의례(播種儀禮)가 있습니다. 단오절(端午節)처럼 농작물의 성장기에 풍요를 기원하는 성장의례(成長儀禮), 수확 뒤에 감사드리는 수확의례(收穫儀禮)도 있습니다. 농경의례(農耕儀禮)는 의례 행위를 통하여 심리적 불안을 해소하는 기능을 합니다. 또 유희(遊戲) 오락(娛樂)의 기능과 사회결속의 기능도 함께 지니고 있습니다.

축원의례(祝願儀禮)=다가올 1년 동안의 수확 풍요를 미리 축원하고, 그 성과를 예측하려는 종교적 점세(占歲) 행위입니다. 음력으로 12월에서 다음 해 1~2월에 걸쳐 행해집니다.

파종의례(播種儀禮)=농작물의 씨를 뿌릴 때 이루어지는 의례입니다.

성장의례(成長儀禮)=농작물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풍작이 들기를 바라는 의례입니다.

수확의례(收穫儀禮)=농작물을 수화한 뒤 농경신 또는 조상에게 감사를 드리는 의례입니다. 이는 늦여름에서 가을, 초겨울에 행해집니다.

설날 의례(儀禮)-2.

설날 아침에는 조상에게 차례를 지냅니다. 차례는 종손(宗孫)이 중심이 되어 지내는데, 사대조(四代祖=할아버지의 증조할아버지)까지 모시고 오대조(五代祖) 이상은 시제 때 산소에서 모십니다. 차례를 마치고 가까운 집안끼리 모여 성묘하는데 근래에는 설을 전후하여 성묘합니다.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의정대신(議政大臣) 들이 임금에게 정조하례(正朝賀禮=예전에, 정월 초하룻날에 모든 벼슬아치가 임금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는 일이나 그런 의식을 이르던 말)를 드렸습니다. 이는 궁중의례(宮中儀禮)이면서 왕에게 올리는 세배의 성격을 지닙니다.

한편 가정에서는 정초에 안택(安宅=집안에 탈이 없도록 무당이나 소경을 불러 터주를 비롯한 조상신, 동신 등을 위로함)을 하여 집안의 평안을 빕니다. 안택(安宅)은 무당과 같은 전문적인 단골을 불러 집에서 보통 고사(告祀)보다는 규모가 큰 굿을 하는 것인데 정초에 행하는 신년제(新年祭)를 대표하기도 합니다. 또 지역에 따라서는 홍수 매기(=횡수(橫手)막이)라 하여 주부가 단골무당을 찾아가 비손(두 손을 비비면서 치성을 드림)하거나, 집에 불러서 비손 형식의 굿을 합니다. 홍수 매기(그해 뜻밖에 당할 수 있는 재액을 막으려고 정월에 무당을 시켜서 굿을 함) 는 횡수(橫手)를 막는 의례로서 가족 가운데 그해 운수가 좋지 않은 사람이 있으면 각별하게 의례를 행합니다. 홍수 매기를 지낸 후에 짚으로 제웅(짚으로 만든 사람의 형상)을 만들어 뱃속에 액운이 든 사람의 생년월일시를 적은 종이와 돈을 넣어 삼거리나 사거리에 버립니다. 이는 액운을 멀리 보낸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요즘도 서해안 지역에서는 정초에 무당을 불러 풍어제(豊漁祭)를 크게 지냅니다. 한 해 동안 무사하고 고기잡이가 잘되기를 기원하는 굿이기도 합니다.

음력 정월 대보름에 가정의 평화와 풍요를 위한 용궁맞이를 합니다.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의 상원조(上元條)깨끗한 종이에 흰밥을 싸서 물에 던지는 것을 어부슴(어부시=漁鳧施)이라 한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어부슴이란 대보름날에 그해의 액막이를 위해서 조밥을 강물에 던져 물고기가 먹게 한다는 것인데, 이것이 곧 용궁맞이입니다. 용궁맞이는 근래까지 계속되었는데 반드시 조밥이 아니더라도 제물(祭物)을 장만하여 강물에 던져 소지(燒紙=부정을 없애고 신에게 소원을 빌기 위하여 희고 얇은 종이를 불살라 공중으로 올림)를 올리는 등 용신(龍神)을 위해 제()를 지냅니다.

한 해 농사를 기원하는 농점(農占)도 다양합니다. 대보름날 저녁에 달이 뜨는 모습을 보며 절을 하며 소원을 기원하고 달의 모양과 색깔을 보고 한 해 농사의 점()을 쳐 보기도 합니다. 또 영남과 호남지역 등지에서는 정월 대보름 무렵에, 마을에서 동제(洞祭)를 지냅니다. 이 밖에 충남 서산을 비롯한 여러 마을에서 대보름날 볏가리를 세웠다가 2월 초 하루에 털어냅니다. 이는 놀이적인 성격도 있겠으나 애초에는 풍농을 위한 의례였습니다.

세시풍속(歲時風俗) 설날 속신(俗信=민간에 전하는 미신적인 신앙 관습).

정초에는 여러 가지 제액(除厄)을 물리치는 속신(俗信)이 있는데, 삼재(三災=나라에 일어나는 병난, 유행병, 기근의 세 가지 큰 재앙)를 물리치는 부적이나 문에 걸어두는 세화(歲畵), 귀신이 신을 신고 가면 불길하다고 신을 감추는 야광귀(夜光鬼) 쫓기, 간지(干支)마다 금기할 사항과 해야 할 일을 정해두는 속신(俗信)이 있습니다. 세시풍속(歲時風俗)에서 속신(俗信)은 의례성(儀禮性)을 지닌 것이 대부분이어서 의례(儀禮)와 속신(俗信)의 구별이 모호한 점도 있습니다. 설을 전후하여 세시풍속(歲時風俗)이 다양한 만큼 속신(俗信) 역시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설날은 섣달그믐(음력 12월 마지막 날)부터 시작된다고 할 만큼 그믐날 밤과 초하루는 직결되어 있습니다. 끝과 시작 사이에 간격이 있는 것이 아니라, 끝나면서 동시에 시작이 되기 때문입니다. 섣달그믐날 밤에는 잠을 자지 않는다. 이를 수세(守歲)라 하는데 잠을 자면 눈썹이 센다는 속신(俗信)이 있기 때문입니다. 설음식을 세찬(歲饌)이라고 합니다. 세찬(歲饌)의 대표적인 음식인 떡국을 먹어야 나이 한 살을 먹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떡국을 먹지 않으면 나이를 먹을 수 없다는 속설(俗說)도 있습니다. 또한 설날이나 상묘일(上卯日=첫 토끼날)에는 여자들이 아침 일찍 남의 집에 출입하면 그 집에 재수가 없다는 속신(俗信)이 있습니다. 지역에 따라서는 정월 대보름에 키가 작은 사람이 남의 집에 출입하면, 그해에 목화가 잘 자라지 않는다고 하여 금기하기도 합니다. 또 복을 끌어들인다는 복조리 풍속(風俗)도 속신으로 볼 수 있습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따르면, 조선시대 도화서(圖畵署=조선시대, 그림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청)에서는 세화(歲畵=조선시대, 새해를 축하하는 뜻으로 궐내에서 만들어 신하들에게 나누어주던 그림)라 하여 수성(壽星=인간의 장수를 맡고 있다는 신), 선녀(仙女), 직일 신장(直日 神將=하루의 날을 담당한 신) 등 액()을 쫓는 신(도교적인 신()을 그려 임금에게 올렸습니다. 또 도끼를 든 장군상을 그려 대궐문(大闕門) 양쪽에 붙였는데 이를 문배(門排)‘라고 합니다. 민간에서는 ()’ 자와 ()’ 자를 한지에 써서 대문에 붙였는데 이는 모두 궁중의 세화(歲畵)나 문배(門排)의 연장선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설날 새벽에, 밖에 나가 까치 소리를 들으면 길조이고, 까마귀 소리를 들으면 불길하다는 속설(俗說)이 있습니다. 설날 밤에는 야광귀(夜光鬼)라는 귀신(鬼神)이 하늘에서 내려와 신발을 신어 보고 발에 맞으면 신고 가는데 신발을 잃은 사람은 그해에 재수가 없다고 합니다. 지역에 따라서는 음력 정월 대보름에 이런 세시(歲時)를 행하고 또 열엿새(16)귀신(鬼神)’ 날이라 하여 이날 밤에 신발을 감추거나 엎어 놓는다고 합니다. 귀신(鬼神)을 쫓는 방법으로 체나 키를 지붕에 매달아 놓거나 혹은 저녁에 고추씨와 목화씨를 태워 독한 냄새를 풍기기도 합니다.

정초에 여자들은 널을 뜁니다. 널을 뛰면 그해에 발이 무좀에 걸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섣달그믐 무렵부터 즐기던 연날리기는 음력 정월 대보름까지만 합니다. 음력 정월 대보름 되면 액연(厄鳶)’이라 하여 연 몸통이나 꼬리에 송액(送厄)’ 또는 송액영복(送厄迎福)’ 등의 글자를 써서 멀리 날려 보냅니다. 예전에는 음력 정월 대보름 이후에도 연을 날리는 사람이 있으면 고리백정이라고 욕설을 퍼붓기도 했습니다. ()을 불러들일 수 있다는 속신(俗信)이 있기 때문입니다.

입춘(立春)날에는 보리 뿌리를 캐보고 점()을 칩니다. 보리 뿌리가 세 가닥 이상이면 그해 보리농사가 풍년이고 두 가닥이면 평년작, 한 가닥이면 흉년이 든다고 점()칩니다. 이는 농점(農占)으로 점복(占卜=점을 쳐서 앞날의 운수나 상황을 미리 알아봄), 이면서 또한 속신(俗信)에 포함할 수 있습니다.

정초에 십이지일(十二支日=정월 초하루부터 12일까지 기간)을 유모일(有毛日)과 무모일(無毛日)로 나눕니다. 정월 초하루가 유모일(有毛日), 즉 털이 있는 십이지(十二支) 동물의 날이면 그해에는 풍년이 들고, 무모일(無毛日) 즉 털이 없는 십이지(十二支) 동물의 날이면 흉년이 든다고 합니다. 유모일(有毛日) 동물 중에서도 소, 토끼, 호랑이 날이면 아주 좋다고 합니다. 이는 주술적(呪術的=초자연적인 존재에 힘을 빌려 재앙을 물러가게 하거나 앞으로 다가올 일을 점치는 행위), 인 사고(思考)에 따른 것으로 이때의 동물들의 털을 곡식의 성장에 비유했습니다.

십이지(十二支) 동물 중 첫 번째 날 첫 상자일(上子日=쥐 날)에는 모든 일을 금하는데 일을 하면 쥐가 곡식을 축낸다고 합니다. 쥐가 쏠고 갉아먹는 것을 예방하기 위하여 칼질이나 바느질하지 않습니다. 말과 소를 먹이기 위해서 여물을 썰면 쥐가 볍씨나 짚 등을 쏠아버린다고 하며, 길쌈을 하거나 옷을 지으면 쥐가 옷감을 쏠아 못쓰게 한다고 하여 금한다고 합니다. 반면 이날 주머니를 만들어 허리에 차면 재수가 있다는 속신(俗信)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십이지(十二支) 동물 중 두 번째인 첫 상축일(上丑日=소날)에는 소에게 좋지 않다고 하여 도마질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쇠고기를 요리할 때는 으레 도마질해야 하는데 소의 명절인 상축일(上丑日)에는 이와 같은 일을 삼가고 하지 않습니다. 또 쇠붙이나 연장도 다루지 않습니다. 이날 연장을 다루면 쟁기의 보습(쟁기의 술바닥에 끼워 땅을 갈아 흙덩이를 일으키는 데에 쓰는 삽 모양의 쇳조각)이 부러지고 방아를 찧으면 소가 기침을 한다고 합니다. 또 이날은 곡식을 밖으로 퍼내지 않는다고 합니다. 만약 곡식을 퍼내면 소에게 재앙(災殃)이 온다고 하여 금했다고 합니다.

십이지(十二支) 동물 중 세 번째인 첫 상인일(上寅日=호랑이 날)에는 일을 하면 호랑이가 나타난다고 하여 일을 하지 않고 쉬었다고 합니다. 또 짐승에 대하여 나쁜 말도 하지 않으며 외출도 삼가고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날 여자들이 외출하여 남의 집에서 대소변을 보면 그 집 가족이 호랑이에게 잡혀간다는 말도 있습니다.

십이지(十二支) 동물 중 네 번째인 첫 상묘일(上卯日=토끼 날)에는 여자가 남의 집에 일찍 출입하면 재수가 없다고 하여 금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남자가 먼저 일어나서 대문을 열고 불가피할 경우 누구라도 남자가 먼저 출입한다고 합니다. 이날 여자들은 실을 짜거나, 옷을 지으면 장수(長壽)한다고 하여 베틀이 있으면 한 번씩 올라가 베를 짜본다고 합니다.

십이지(十二支) 동물 중 다섯 번째인 첫 상진일(上辰日=용 날) 새벽에는 여자들이 우물에 가서 물을 길어 옵니다. 이날 새벽에 용이 내려와서 알을 슬어놓고 간다고 하여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물을 길어다 밥을 지으면 그해 농사가 태풍이 든다고 합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에는 이것을 노룡란(憦龍卵=용알뜨기)’이라 하여 대보름 풍속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경상북도에서는 용물뜨기라 하여 정월 대보름 풍속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이날은 긴 물건을 다루지 않고 머리도 감지 않는다. 그러면 뱀이 나온다고 하는데 용은 상상의 동물이지만 뱀처럼 몸이 길어 같은 동물로 여겨 꺼리는 것입니다. 반면 머리카락이 잘 자라지 않는 사람은 이날 머리를 감아 곱고 길게 자랄 것을 기원했습니다.

십이지(十二支) 동물 중 여섯 번째인 첫 상사일(上巳日=뱀 날)에는 머리를 빗거나 이발하면 뱀이 나타난다고 하여 금했습니다. 그 밖에 빨래도 삼가고 바느질도 하지 않으며 땔나무를 부엌에 들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십이지(十二支) 동물 중 일곱 번째인 첫 상오일(上午日=말 날)에는 지역에 따라 장 담그기 좋은 날로 알려져서 우리나라 많은 지역에서 이날 장을 많이 담습니다.

십이지(十二支) 동물 중 여덟 번째인 첫 상미일(上未日=양날)에 제주도에서는 미불복약(未不服藥)이라 하여 환자라도 약을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약을 먹을 때 약효가 나타나지 않는 것인데 이것 외에는 이날을 무탈하게 보았습니다.

십이지(十二支) 동물 중 아홉 번째인 상신일(上申日=원숭이날)에는 부엌에 귀신이 나온다고 하여 남자가 여자보다 일찍 일어나서 비를 들고 부엌의 네 귀퉁이를 쓸면서 청소합니다.

십이지(十二支) 동물 중 열 번째인 상유일(上酉日=닭 날)에 바느질하면 손이 닭발처럼 된다고 고하여 금했습니다. 그러나 지역에 따라서는 말()날처럼 닭 날 장()을 담그면 장맛이 달고 맛이 있다고 합니다.

십이지(十二支) 동물 중 열한 번째인 상술일(上戌日=개 날)에는 일을 하면 개가 텃밭을 해진다고 금하고, 또 이날 풀을 쑤면 개가 평소에 잘 토한다고 하여 금했습니다.

십이지(十二支) 동물 중 마지막 열두 번째인 상해(上亥日=돼지날)에는 콩가루로 세수하면 얼굴이 하얘진다고 했습니다.

음력 정월 대보름(음력 115) 하루 전인, 정월 열나흗날(음력 114) 저녁에 잘사는 집 부엌의 흙을 훔쳐다가 자기 집 부뚜막에 바르면 부자가 된다고 했습니다. 또 음력 정월 대보름날 아침에 부럼을 깨면 부스럼이 나지 않고 귀밝이술을 마시면 일년내내 좋은 소식을 듣는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음력 정월 대보름날 아침에 더위를 팔면 그해 여름에 더위를 피할 수 있다는 속신(俗信)이 있습니다. 여기에 자기와 성이 다른 세 가구 집의 오곡밥을 먹어야 그해 운수가 좋다는 속신(俗信)도 있습니다.

음력 정월 대보름 무렵에 하는 동제(洞祭)를 전후해서는 각종 금기가 따르는데 이것들을 어기면 부정을 탄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속신(俗信)이라기보다 민속신앙(民俗信仰)이라는 큰 범주에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제의(祭儀=제사 의식)가 끝난 후 제물 진설을 위해 깔았던 백지를 가지고 가서 사용하면 공부를 잘한다고 하고, 아들이 없는 가정에서 불 종지(기름을 넣고 종이 심지를 박아서 불을 켜는 종지)를 가지고 가면 아들을 본다는 속신(俗信)도 있습니다.

줄다리기를 위한 줄을 꼴 때 여성들이 줄을 타고 건너가면 그쪽 편 줄이 시합 중 끊어진다는 속신(俗信)이 있고, 상대방 줄을 넘으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고 합니다. 또 이긴 편 줄의 짚을 지붕 위에 올려놓으면 관운(官運=벼슬을 할 운)이 트고 일이 잘된다는 속신(俗信)도 있습니다.

설날에 즐겨 먹는 절식(節食).

설에 먹는 음식인 세찬(歲饌)은 설날에 조상님께 올리는 차례상 음식이자 명절식(名節食)으로 가족들과 함께 나누어 먹는 음식입니다. 세찬(歲饌)에는 가래떡과 만두를 빚어 넣어 끓인 떡국은 대표적인 설음식이며, 떡국 외에 시루떡도 있습니다. 고사(告祀)를 지낼 때의 시루떡은 붉은 팥시루떡을 쓰지만, 설날 차례를 지낼 때는 붉은색이 조상을 쫓는다고 하여 거피(去皮=껍질을 벗김)를 낸 하얀색의 팥을 사용하여 떡을 찝니다.

이 밖에 인절미, 전유어, 빈대떡, 강정류, 식혜, 수정과 등도 설날 세찬(歲饌)으로 장만합니다. 세주(歲酒=설에 쓰는 술)는 맑은 청주(淸酒)인데 역시 차례상에 오르고 산뜻한 봄을 맞는 의미에서 차례를 지낸 후 가족들과 함께 마십니다. 설은 보통 양력 절기인 입춘(立春) 무렵이나 입춘을 지나고 드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의 기록에 따르면, 입춘(立春) 날에 경기도의 산골 지방 육읍(六邑, 경기도에서 산이 많은 양근, 지평, 포천, 가평, 삭녕, 연천을 말함) 에서는 총아(葱芽=움파), 산개(山芥=멧갓), 신감초(辛甘草=승검초 당귀 새순), 올린다고 했습니다.

설날이 지나고 음력 정월 대보름날에는 오곡밥과 묵나물이 대표적인 명절 음식입니다. 지역에 따라서는 오곡밥을 찰밥이라고도 하는데 대체로 음력 정월 열나흗날(음력 114) 지어 보름날 또는 그 이후까지 먹습니다. 오곡(五穀)밥은 찹쌀, 차수수, 차조, , , 등 각종 곡물을 넣어 지은 밥입니다. 또 오곡(五穀)밥에는 오곡(五穀) 함께 대추와 밤을 넣어 밥맛을 내기도 합니다. 묵나물류는 박나물, 버섯 등을 말린 것과 대두황권(大豆黃卷=콩나물순을 말린 것), 무청을 말린 시래기, 가지 말린 것, , 등을 묵혀둡니다. 음력 정월 대보름이면 이들 나물을 삶아서 무치거나 볶아 나물 반찬을 만듭니다.

이 나물 반찬을 음력 정월 대보름에 먹으면 여름에 더위를 타지 않는다고 합니다. 오곡(五穀)밥과 묵나물은 세 집 이상의 타성(他姓=성씨가 다름) 집의 밥을 먹어야 좋다고 합니다. 그래서 백가반(百家飯) 풍속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백집의 오곡(五穀)밥을 먹을 수 없지만 그만큼 여러 집의 오곡(五穀)밥을 먹는다는 뜻입니다. 또 복 쌈이라 하여 오곡(五穀)밥을 참취나물, 배춧잎, 김으로 밥을 싸서 즐겨 먹습니다. 대보름 명절 식은 풍년을 기원하면서 예축(豫祝=미리 축하함)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백가반(百家飯) 풍속=음력 정월 대보름날에 어린아이나 병이 들어 마른 사람이 그해의 운수나 건강을 위하여 여러 집을 돌아다니며 밥을 빌어다 먹는 풍속, 특히 봄을 타서 피부가 검어지고 야위는 아이는 이밥을 개와 함께 절구에 마주 걸터앉아 개에게 한 숟갈 먹이고 자기도 한 숟갈 먹고 하면 다시는 그런 병이 도지지 않는다는 속신(俗信)에서 나온 풍속입니다.

대보름날 아침에는 부럼을 깹니다. 이른 아침, 새벽에 밤, 호두, 은행, , 무 등을 깨물면 일 년 열두 달 동안 무사태평하고 종기나 부스럼이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부럼을 작절(嚼癤), 또는 고치지방(固齒之方)이라고 합니다. 설날에 세주(歲酒)를 마시는 것처럼 대보름에도 아침에 청주(淸酒) 한잔을 마십니다. 이 술을 유롱주(牖聾酒), 곧 귀밝이술이라고 합니다. 귀밝이술을 마시면 귀가 밝아지고 한 해 동안 좋은 소식을 듣는다고 합니다. 약밥도 대보름의 명절식입니다. 찹쌀을 쪄서 대추, , 기름, , 간장 등을 섞어 함께 찌고 잣을 박은 음식이 약밥(약반<藥飯>은 약밥의 약식)입니다.

대보름에 즐겨 먹는 찰밥과 오곡(五穀), 약밥은 지역에 따라서 이름을 달리 부르고 있습니다. 경상북도 일부 지방에서는 오곡(五穀)밥은 찰밥이라 하고, 경기도와 충청도, 강원도, 전라도 지역에서는 오곡(五穀)밥이라고 합니다. 찹쌀로 밥을 지어서 찰밥이라 부르고 있는 찰밥은 찹쌀, , 대추, 곶감 등을 넣어서 밥을 짓고, 오곡(五穀)밥은 찹쌀, , 수수, 차조(또는 기장), 콩 등을 넣어 밥을 짓습니다. 그러나 찰밥과 오곡(五穀)밥은 실상 같은 밥입니다. 약밥은 찰밥에서 나누어진 음식으로, 찰밥에서 다시 발전 변형된 음식입니다.

설날에 즐길 수 있는 민속놀이.

설의 놀이는 이미 섣달그믐(음력 12월 말일) 무렵부터 시작하여 대보름까지 즐깁니다. 특히 연날리기는 섣달그믐 무렵부터 시작하여 대보름까지 즐기는 민속놀이입니다. 보름날의 연은 액연(厄鳶)이라 하여 멀리 날려 보냅니다. 원래 보름날 이후에는 연을 날리지 않습니다. 그 밖에 설날 무렵 윷놀이, 널뛰기, 승경도놀이, 돈치기 등을 합니다.

윷놀이는 남녀노소 구별 없이 모든 사람이 집 안에서도 하고 밖에서도 마을 사람들이 어울려 하는 정초의 가장 보편적인 놀이입니다. 윷의 종류도 장작윷과 밤 윷이 있고 놀이 방법도 다양합니다. 또 윷놀이를 통해 그해 운수를 점쳐 보기도 합니다. 윷놀이와 윷점에 대해서는 경도잡지(京都雜誌)’에도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널뛰기는 여자들이 즐기는데 역시 경도잡지(京都雜誌)’에 놀이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승경도(陞卿圖)는 승정도(陞政圖), 종경도(從卿圖), 종정도(從政圖)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립니다. 주로 양반 가문의 젊은이들과 여자들이 즐겨 놀던 실내 놀이로 관직이나 학업의 등급을 차례로 써넣고 주사위를 던져서 나온 끝수대로 승진하거나 후퇴하는 방식으로 합니다. 돈치기는 정초에 청소년들이 동전이나 동전 모양의 쇠붙이를 가지고 노는 놀이인데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정월 대보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설을 전후하여 세시풍속(歲時風俗)이 집중된 까닭은 정월(正月)이 농한기(農閑期)인 데다, 한 해가 시작되는 신성한 기간이기 때문입니다. 신성한 기간에는 인간의 기원이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설의 구비전승(口碑傳承=문자가 없거나 문자를 사용하지 못하던 상황에서 말로 이어져 계승되는 일)으로 설날과 대보름의 속담(俗談)을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설날의 명절 음식인 떡국에는 쇠고기나 닭고기를 넣는데 원래는 꿩고기를 넣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꿩고기가 구하기 어려워지자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닭고기를 넣게 되었는데 꿩 대신 닭이라는 속담(俗談)은 이래서 시작되었다는 속설(俗說)이 있습니다.

대보름에는 설날보다 더욱 많은 놀이가 행해집니다. 대보름에는 지신밟기를 비롯하여 줄달리기, 고싸움, 나무쇠싸움, 동채싸움, 석전, 횃불싸움, 놋다리밟기, 기와밟기, 털 놀이 등 다양한 놀이에 있습니다. 특히 대보름 놀이로는 불과 관련된 횃불싸움이 절정을 이룹니다.

쥐불놀이는 첫 상자일(上子日)에도 하지만, 대보름날 밤에 주로 합니다. 보름달 아래에서 즐기는 보름달과 불을 관련시키고 이를 성장, 풍요와도 관련시킵니다. 대보름 놀이는 불놀이뿐 아니라 다른 놀이도 풍요를 상징하는 것으로 풍요를 기원 예축(豫祝)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날 설날 무렵이면 음력 8월 한가위 보름 명절과 함께 민족대이동이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명절 연휴에 고향을 찾는 인파가 물결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근래에는 어른들이 자녀를 찾는 역류 현상도 일어나고 있지만 아직은 고향을 찾는 인구가 훨씬 많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설은 전통문화를 보존한다는 측면과, 만남을 갖는 절대적인 시간이 된다는 측면에서 대단히 소중합니다. 설날이면 온 가족이 모여 차례를 지내고 설날을 전후하여 성묘하는 세시풍속(歲時風俗)은 오늘날에도 전승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민속놀이를 비롯하여 갖가지 세시풍속(歲時風俗)은 퇴색되거나 단절되었습니다. 다행히 근래에는 민속박물관(民俗博物館)과 민속촌(民俗村) 등 민속(民俗)과 관련이 있는 기관에서 민속(民俗) 놀이판을 벌이고 이를 찾는 가족들이 날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떡국을 끓일 가래떡을 기계로 빼거나 상품으로 만들어진 것을 사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아직 떡국을 명절식으로 하는 세시풍속(歲時風俗)도 전승되고 있습니다. 떡을 먹지 않아서 밥으로 차례를 지낸다는 가정도 있지만 설날과 떡국이 연장선에 있다는 점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봅니다. 자료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다음 백과, 한국 세시풍속 사전, 인터넷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