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황사 보리밭.
분황사 범종각.
분황사 모전석탑.
분황사 석정.
보리밭 끝에 보이는 건물은 황룡사 역사 박물관입니다.
분황사 당간지주.
황룡사 절터.
갯메꽃.
경주 분황사는 634년 선덕여왕 3년에 창건된 신라 7가람중 하나의 사찰입니다.
원효, 자장등 한국 불교의 중심이 되었던 고승들이 거쳐 간 이름난 사찰입니다.
사찰 내에는 전탑을 모방한 국보 제30호 분황사 모전석탑이 있습니다.
모전석탑은 신라시대 최초로 만들어진 석탑이라고 합니다.
바로 옆 이웃에 있는 황룡사와 함께 신라의 대표적인 사찰입니다.
황룡사는 신라 진흥왕 14년(553)에 경주 월성의 동쪽에 궁궐을 짓다가 그곳에서 황룡(黃龍)
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절로 고쳐짓기 시작하여 17년 만에 준공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574년 인도의 아소카왕이 석가삼존불상을 만들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금과 철, 삼존불상의 모형을 배에 실어 보낸 것이 신라 땅에 닿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황금과 철을 재료로 사용하여 삼존불상을 만들게 되었고 이 불상을 모시기 위해 진평왕
6년(584)에 금당을 짓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선덕여왕 12년(643)에는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자장의 권유로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바람의 9층 목탑을 짓게 되었는데 각 층마다 적국을 상징하도록 하였으며 백제의 장인 아비지에 의해 645에 완공되었다고 하지요.
그러나 황룡사는 고려 고종25년(1238)에 몽고의 침입으로 모두 불타 없어져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 있습니다.
국보 제30호인 분황사 모전석탑은 현재 남아 있는 신라 석탑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걸작 품입니다.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아 올린 모전석탑은 원래 9층 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3층남 남아 있습니다.
선덕여왕 3년(634)분황사의 창건과 함께 건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부드러우면서도 힘차게 표현된 금강역사 조각은 당시 7세기 신라 조각양식을 살피는데 좋은 참고 자료가 된다고 합니다.
1915년 일본인에 의해 수리된 이후 지금까지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수리당시 탑 안에서 사리함과 구슬 등의 많은 유물들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당간지주는 사찰 입구에 설치하는 것으로 절에 행사나 의식이 있을 때면 이곳에 당이라는 깃발을 걸어놓았다고 합니다.
이 깃발을 꽂는 기다란 장대를 당간이라 하고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고 한답니다.
분황사의 것으로 보이는 이 당간지주는 양 기둥에 별다른 조각을 두지 않은 간결한 모양을 하고 있지요.
기둥사이에 놓인 당간의 받침돌이 특이하게도 거북이 모양을 하고 있답니다.
기둥 안쪽면의 아래 중간 윗부분에는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한 구명을 뚫어 놓았지요.
양쪽기둥 사이에 거북받침돌이 있는 특이한 양식으로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분황사와 황룡사 옛 절터에는 해마다 경주시에서 매번 다른 꽃과 식물을 심어서
이곳을 찾는 방문객들의 마음을 울렁이게 합니다.
작년에는 이곳에 백일홍을 심었고 올해는 보리를 심어놓았습니다.
이른 봄 청보리가 절정을 이룰 때는 찾지 못한 곳을 보리가 누렇게 익어 황금물결을 이룰 때 찾아보았답니다.
보리가 누렇게 익은 허허벌판 같은 빈 공터가 황룡사와 분황사의 주요
사찰과 탑이 있던 자리입니다. 널찍한 면적만 보아도 이곳에 있던 사찰 규모가 얼마나 큰지 짐작 할 수가 있지요.
아쉽게 신라시대의 화려 했던 황룡사의 사찰과 탑은 고려시대 몽고군의해 모두 불타버리고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 있습니다.
분황사도 지금은 일부 건물과 모전석탑만 남아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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