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7월 백중(百中).
음력 7월 15일 ‘백중(百中)’은 이 무렵에 과일과 소채(蔬菜=심어서 가꾸어 먹는 채소)가 많이 나와, 옛날에는 100가지 곡식의 종자(種子=씨앗)를 갖추어놓은 데서 유래된 명칭(名稱=이름)이라고 합니다. 이날 사찰(寺刹=절)에서는 재(齋=죽은 이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부처에게 드리는 공양)를 올리고 공양(供養=부처 앞에 음식물이나 재물 등을 바침)을 드렸으며, 민간에서는 100가지의 과일을 차려 제사를 지내고 남녀가 모여 음식을 먹고 노래와 춤을 즐겼다고 전해 지고 있습니다. 농촌에서는 벼농사의 세 번째 김매기가 끝난 후 여름철 농한기(農閑期=농사일이 바쁘지 않아 한가한 시기)에 휴식을 취하는 날로, 농민들의 여름철 축제로 굳건하게 자리 잡았으며, 음식과 술을 나누어 먹으며 백중(百中)놀이를 즐기면서 하루를 보내던 농민명절(農民名節)이기도 합니다.
백중(百中)에 관한 기록들은 여러 문헌에서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17세기 김육(金堉)의 “송도지(松都志=고려의 수도였던 개성의 사적을 적은 지지)”에 음력 7월 15일을 백종(百種)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날 남녀가 주식(酒食=술과 음식)을 차려놓고 삼혼(三魂=사람의 마음 안에 있는 세 가지 영혼. 곧 태광(太光), 상령(爽靈), 유정(幽精)을 이른다)을 부르며 우란분재(盂蘭盆齋)의 고풍(古風=옛날에 행하던 풍속)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송남잡지(松南雜識=조선 말기, 학자 송남 조재삼(趙在三)이 편찬한 책. 천문, 지리, 국호, 음악, 동식물 등을 비롯해 33개의 항목으로 나누어 각 부분에 관계되는 사항을 서술하였다)”에서는 “백종(百種), 백중(白中)”을 나란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규합총서(閨閤叢書=조선시대, 1809년(순조 9년)에 빙허각(憑虛閣) 이씨(李氏)가 엮은, 가정 살림에 관한 책)” “이운지(怡雲志)”, “용재총화(慵齋叢話=조선 세조 때의 학자 용재 성현의 수필집)”에는 “백종(百種)”으로만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조선 정조 때 이긍익이 지은 역사책)”에는, 음력 7월 15일은 속칭(俗稱=통속적으로 일컬음) 백종(百種)이라 부르며, 백종(百種)에는 스님들이 백 가지의 화과(花菓)를 갖추어서 우란분(盂蘭盆=사후에 거꾸로 매달리는 고통을 받는 영혼을 구하기 위해 행하는 불사)을 설치하고 불공을 드린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열양세시기(冽陽歲時記=조선 정조 때의 문신 김매순이 1819년에 한양<漢陽>의 연중행사를 기록한 책)”에는 백종절(百種節)이라고 하여, 중원일(中元日)에 백종(百種)의 꽃과 과일을 부처님께 공양하며 복을 빌었으므로 그날의 이름을 백종(百種)이라 붙였다고 하였습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조선 순조 때의 학자 홍석모가 지은 세시풍속에 관한 책)”는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중국 육조 시대의 형초, 곧 지금의 후베이, 후난 지방의 행사와 풍속 등을 기록한 책)”를 그대로 인용하여 백종일(百種日)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사찰(寺刹=절)에서 행하는 우란분회(盂蘭盆會)와 달리 민간에서는 망혼일(亡魂日)이라 하여 여염집(閭閻집=보통 백성의 살림집)에서 중원(中元=음력 칠월 보름날(7월 15일)) 달밤에 채소, 과일, 술, 밥을 갖추어 죽은 어버이 혼을 부른다고 하였습니다.
음력 7월 15일 백중(百中)을 다른 말로 백중(白中), 백중(百衆), 백종(百種), 백종절(百種節), 중원일(中元日), 망혼일(亡魂日), 우란분절(盂蘭盆節)이라고도 부르고 있는 세시풍속(歲時風俗=한 해의 절기나 달, 계절에 따라 민간에서 전하여 온 풍속)입니다. 여러 가지로 불리고 있는 이름 중에서, 민간(民間=관청이나 정부와 같은 공적인 기관에 속하지 않음)에서는 백중(百中)이란 말로 통일되어 부르고 있습니다.
※‘중원(中元)’이라는 명칭의 유래는, ‘중원(中元)’은 도가(道家=중국 제자백가의 하나로, 도교를 믿고 그 도를 닦는 사람)에서 나온 말이며, 도교(道敎=황제와 노자를 교조로 하는 중국 고유의 토착 종교)에서는 천상(天上=하늘 위의 세계)의 선관(仙官=신선이 사는 곳의 관원)이 일년(一年)에 세 번 인간의 선악(善惡)을 살핀다고 하는데 그때를 ‘원(元)’이라고 합니다. 음력 1월 15일을 상원(上元), 음력 10월 15일을 하원(下元) 그리고 음력 7월 15일의 중원(中元)과 함께 삼원(三元)이라 하여 옛날부터 초제(醮祭=별을 향하여 지내는 제사)를 지내는 세시풍속(歲時風俗)이 있었습니다. 음력 1월 15일인 상원(上元)과 음력 10월 15일인 하원(下元) 그리고 음력 7월 15일인 중원(中元)을 합하여, 삼원(三元)이라는 초제(醮祭)를 지내는 도가(道家)의 세시풍속(歲時風俗)에서 백중(百中)의 다른 이름인 ‘중원(中元)’이라는 명칭이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상원(上元)인 음력 1월 15일은 우리나라 최대 명절 중 하나인 정월대보름이기도 합니다.
※‘망혼일(亡魂日)’은 음력 7월 15일 저녁에 여염집 부녀자들이 나물, 과일, 술, 밥 등을 차려 돌아가신 부모를 위해 제사를 지낸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날 망친(亡親=돌아가신 부모)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서 술, 음식, 과일, 밥을 차려놓고 천신(薦新=계절마다 새로 난 과일이나 농산물을 신에게 먼저 올림)을 하는 데서 유래한 것이라고 합니다.
백중(百中)은 원래 불가에서 부처의 탄생일인 음력 4월 8일, 석가출가일(釋迦出家日=집과 세속의 인연을 떠나 불문에 들어 수행 생활을 한다. 집을 떠난다)인 음력 2월 8일, 석가성도일(釋迦成道日=도를 깨달아 불타가 됨)인 음력 12월 8일, 석가(釋迦) 열반재일(涅槃齋日)인 음력 2월 15일, 과 함께 우란분절(盂蘭盆節=음력 7월 15일에 행하는 불교 행사의 하나)이라 하여 사찰에서 행하는 5대 명절에 해당합니다.
우란분절(盂蘭盆節)은 불가(佛家=부처를 믿고 그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또는 승려가 불상을 모시고 불도를 닦으며 부처의 가르침을 펴는 곳)에서는 불제자(佛弟子=불교에 귀의한 사람) 목련(目蓮)이 그 어머니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 음력 7월 15일에 오미백과(五味百果=다섯 가지 맛을 내는 백 가지의 과일)를 공양했다는 고사에 따라 우란분회(盂蘭盆會)를 열어 공양하는 풍속(風俗)이 있습니다. “목련경(目連經=불경의 하나. 목련존자<目連尊者>가 지옥에 빠진 어머니를 건진 일을 다운 경문으로, 음력 7월 백중날이면 이 경을 읽고 기념한다)”과 “우란분경(盂蘭盆經)”에 보면, 부처는 지금 살아 있는 부모나 7대의 죽은 부모를 위하여 자자(自咨=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참회하는 의식)를 끝내고 청정해진 스님들에게 밥 등의 음식과 5가지 과일, 향촉과 의복으로 공양하라고 하였다. 이는 신통력으로 자기 어머니가 아귀(餓鬼=생전에 탐욕이나 질투가 많아 육도 중 하나인 아귀도에 이르게 된 죽은 사람의 영혼) 지옥에서 고통받는 모습을 본 목건련(目犍連)이 어머니의 구원을 부처에게 청원하여 비롯된 것이라고 합니다.
이후 불가(佛家)에서는 자자(自咨)를 끝내는 날에 우란분재(盂蘭盆齋)를 올리는 것이 전통이 되었는데, 중국에서는 양(梁)나라 무제 때 동태사(東泰寺)에서 처음으로 우란분재(盂蘭盆齋)를 지냈다고 하며, 그 후 당나라 초기에 크게 성하다가 점차 민간풍습(民間風習)으로 축소(縮小)되었다고 합니다. 오늘날 중국의 우란분절(盂蘭盆節)은 도교(道敎) 행사와 습한(習合=절충된)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불교가 융성했던 고대 신라(新羅)나 고려(高麗) 때에는 일반인까지 참여했으나 조선시대(朝鮮時代) 이후로는 사찰(寺刹=절)에서만 행해지고 민간에서는 없어졌다고 합니다.
음력 칠월 백중(百中)은 불교에서 5대 명절 중의 하나이면서도,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님과 직접 관련되지 않은 유일한 날이기도 합니다. 본래 음력 7월 15일 백중(百中)날은 우리 민족 고유 머슴들의 명절인, 백중(百中)에 해당하는 날로 백종(百種)이라고 불리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우리의 고유풍속과 접속되면서, 날짜가 같은 우란분절(盂蘭盆節)과 백중(百中)이 합치게 되면서, 백중(百中)날 절에서는 우란분재(盂蘭盆齋)를 지내며 조상 영혼의 천도, 참회와 중생제도를 했고, 민간에서는 망혼제(亡魂祭)를 지낸 후 일꾼들이 흥겨운 축제를 즐겼습니다. 또한 절에서는 스님들이 3개월 동안 하안거(夏安居=승려들이 여름 장마 때 외출하지 않고 함께 모여서 수행하는 일)를 끝내는 날이기도 합니다.
백중(百中)날이 되면 각 가정에서는 한창 잘 익은 과일을 따서 조상의 사당에 천신(薦新=철을 따라 새로 난 과일이나 농산물을 신에게 먼저 올림) 차례를 지내고, 백중(百中) 잔치를 열었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종묘(宗廟=조선시대, 역대 임금과 왕비의 위패를 모시던 왕실의 사당)에 이른 벼를 베어 천신(薦新)하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백중(百中)을 전후로 장(場=많은 사람이 모여 물건을 팔고 사는 곳. 재래시장)이 섰는데 이를 백중장(百中場)이라 했습니다. 농가에서는 백중(百中)날이 되면 머슴(옛날에 부농이나 지주에게 고용되어 그 집의 농사일이나 잡일을 해주고 품삯을 받는 사내를 이르던 말)을 하루 쉬게 하고 휴가와 돈을 주어 백중장(百中場)에 가서 하루를 즐기도록 했습니다.
백중장(百中場)은 장꾼들이 많고 구매(購買=물건이나 권리 따위를 돈을 주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넘겨받음)가 많은 장(場)입니다. 취흥에 젖은 농군들은 농악을 치면서 하루를 즐기기도 하고, 이렇게 백중장(百中場)이 성시(成市=사람이 많이 모여 북적거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를 이루면 씨름판이 벌어집니다. 이러한 백중(百中) 명절은 중부 이남 지방에서 성대하게 펼쳐집니다. 또한 이날은 그해에 농사가 자장 잘 된 집의 머슴을 뽑아 소나 가마에 태워 마을을 돌며 위로하며 놀았습니다. 이것은 바쁜 농사를 끝내고 하는 농군의 잔치로서 이것을 “호미씻이.” “세서연(洗鋤宴=음력 7월경에 농가에서 날을 잡아 하루를 즐기며 노는 일),”“만두레(전남 지방에서, 세 벌 김매기를 마치고 벼가 가장 잘된 집의 머슴을 소나 사다리 위에 태워 농악을 울리며 즐기는 놀이)” 등이라고 합니다.
경북지역에서는 호미씻기를 ‘풋굿’ 혹은 ‘풋구’라 하고, 호남지역에서는 ‘질꼬내기’라고 합니다. 백중(百中)날 호미씻기는 마을의 지주 집에서 음식과 술을 대접하며 한해 농사의 수고를 위하는 행사였습니다. 원래 백중(百中)날 하루만은 일손을 놓고 쉬지만, 제주도에서는 일손을 쉬지 않고 바다에 나가 해산물 따기로 분주한 하루를 보냅니다, 그것은 백중(百中)날에 살찐 해산물이 많이 잡힌다고 하며 밤에는 횃불을 들고 늦도록 해산물을 따기도 했습니다. 한라산에서는 ‘백중와살’이라는 산신이 있어 백중(百中)을 고비로 익은 오곡과 산과(山果=산에서 나는 과일)를 사람들이 따 가면 허전하여 샘을 내고 바람을 일으킨다고 해서 산신제를 지내는 일도 있다고 합니다.
신라 때에는 백중(百中)을 기해서 삼(대마<大麻=뽕나뭇과의 한해살이풀>) 삼기(삼에서 외올실을 뽑아내는 일)가 시작됩니다. 도성 안의 부녀자를 두 파로 나누고 공주에게 각파를 이끌어서 한 달 동안 삼을 삼아 8월 가윗날(음력 8월 15일 한가위) 날에 그 성적을 심사해서 진 편이 이긴 편에 한턱 내도록 한 것입니다. 백중(百中) 무렵이 되면 삼이 자라서 그 껍질을 벗기기에 알맞게 익었을 때이므로 직조작업을 권장하는 뜻에서 왕녀를 주축으로 하여 집단작업인 두레삼, 삼기를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음력 7월에 행해지던 호미씻이는 농민들의 백중(百中) 행사로 풋굿(호미 씻음, 음력 7월쯤에, 날을 잡아 술과 음식을 먹고 풍물을 치면서 하루를 즐기는 농가의 휴일), 초연, 머슴날, 농부 날이라고 합니다. 한 해 농사에서 가장 힘든 일인 세 벌 김매기가 끝난 직후인 음력 7월 칠석이나 7월 보름(15일) 백중(百中)날에는 농민들이 농사일의 노고를 달래면서 놀이판을 벌인다, 두레(농촌에서 농사일을 공동으로 하기 위하여 리나 마을 단위로 둔 조직)농사를 결산하면서 땅 주인들은 농군들의 노고를 위로할 겸 돈을 내어 술과 음식을 마련하고, 풍물꾼들은 집마다 풍물을 치고 다니면서 무동(舞童=농악이나 걸립패에서, 남의 어깨 위에 서서 춤을 추고 재롱을 부리던 아이)을 태우고 하루를 즐겁게 논다.
백중(百中)에 호미씻이를 하는 지역에서는 인근 시장에서 열리는, 백중(百中) 씨름판에 놀러 가라고 주인이 머슴들에게 돈과 새 옷을 해주었습니다. 호미씻이라는 말은 농사 끝에 흙 묻은 호미를 씻어둔다는 뜻으로 힘든 농사가 다 끝났음을 의미합니다. 이날 두레패의 농기를 마을에 세워두고 베레 줄에 호미를 주렁주렁 매달아두는 지역도 있는데 이런 지역에서는 호미를 걸어둔다는 뜻으로 ‘호미걸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호미씻이는 농민들이 휴한기에 벌이는 농민들만의 축제로서 1년 중 가장 큰 명절의 하나였으나 아쉽게도 요즘은 두레가 없어지면서 점차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농민들에게는 일 년에 두 차례 거대한 농민축제가 존재했습니다. 겨울철 휴한기인 정월대보름(음력 1월 15일)과 여름철 휴한기인 7월 백중(음력 7월 15일)입니다. 그러나 대보름과 달리 음력 7월 백중(百中)은 두레가 없어지면서 거의 잊혀가는 풍습이 되었습니다. 요즘은 경상북도 밀양백중(密陽百中)놀이 등에 그 잔재가 남아 있을 뿐입니다. ※참고 문헌=다음 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 세시풍속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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