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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세시 풍속 명절과 절기.

음력(陰曆) 8월 보름(8.15)은 한가위 명절(名節)입니다.

by 풀꽃사랑s 2025. 10. 6.

음력 팔월 보름(음력 815) 추석(秋夕).

추석(秋夕)은 음력 팔월 보름(음력 815)을 일컫는 말입니다. 추석(秋夕)을 글자대로 풀이하면 가을 저녁, 나아가서는 가을의 달빛이 가장 좋은 밤이라는 뜻이며, 한 해 농사를 끝내고 오곡(五穀)을 수확하는 시기이며, 음력 8월 보름달이 유난히도 밝은 가장 풍성한 명절이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추석(秋夕)을 다른 말로 한가위, 가위, 가배(嘉俳), 가배일(嘉俳日), 중추(中秋), 중추절(仲秋節), 중추가절(仲秋佳節)이라고도 합니다. 여기서 가위’, ‘한가위는 순수한 우리말이며, 가배(嘉俳)는 가위를 이두식(吏讀式)의 한자(漢字)로 쓰는 말이라고 합니다. 이두(吏讀)=신라 때부터 한자(漢字)를 빌려 우리말을 적던 차자(借字) 표기법. 또는 그 문자. 넓은 의미로는 향찰이나 구결 등을 포함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한문(漢文)을 국어(國語) 어순에 따라 배열하고 이에 토를 붙인 것을 이른다. 고려(高麗)와 조선시대(朝鮮時代)에는 관공서 문서에 서리들이 주로 사용하였다.

중국인들은 추석(秋夕) 무렵을 중추(中秋) 또는 월석(月夕)이라 하는데, 예기(禮記=유교 오경의 하나로, 예의 이론과 실제를 기술한 책)에 나오는 조춘일(朝春日), 추석월(秋夕月)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추석(秋夕)날 밤에는 달빛이 가장 좋다고 하여 월석(月夕)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중엽 이후 한자(漢字)가 성행하게 된 뒤 중국인이 사용하던 중추(中秋), 월석(月夕)이라는 말을 합하거나 축약(縮約=줄여서 간략하게 함)하여 추석(秋夕)이라고 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중추절(仲秋節)이라 하는 것은 가을을 초추(初秋), 중추(中秋), 종추(終秋)로 나누었을 때 추석(秋夕)이 음력 8월 중추(中秋)에 해당하므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추석(秋夕)의 시원(始原=사물이나 현상 따위가 비롯되는 처음)이나 유래(由來)에 대한 명확한 문헌이나 자료는 없습니다. 중국의 수서(隋書), 동이전(東夷傳), 신라조(新羅條)에는 음력 815일이면 왕이 풍류를 베풀고, 관리들을 시켜 활을 쏘게 하여 잘 쏜 자에게는 상으로 말이나 포목을 준다.”라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구당서(舊唐書), 동이전(東夷傳), 신라조(新羅條)에도 해마다 정월(正月) 초하룻날(음력 11)이면 서로 하례하는 예식을 여는데 왕이 잔치를 베풀고 또 해와 달의 신에게 절을 한다. 음력 팔월 보름(음력 815)이면 풍류를 베풀고 관리들을 시켜 활을 쏜 자에게는 상으로 포목을 준다.”라는 기록이 있으며. 신라인들은 산신(山神)에게 제사를 지내기 좋아하며 음력 8월 보름날이면 크게 잔치를 베풀고 관리들이 모여서 활을 잘 쏜다. “라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수서(隋書)=중국 이십오사(二十五史)의 하나. 중국 당나라 때 위징(魏徵) 등이 황제의 명에 따라 펴낸 중국 수나라의 정사(正史)636년에 간행되었다. 동이전(東夷傳)=서진(西晉) 시기에 진수(陣壽, 233~297)가 쓰고, ()나라의 배송지(裴松之, 372~451)가 보충한 위(), (), () 삼국시대(三國時代)의 역사서로서 동이전(東夷傳)이라는 항목을 따로 두어, 우리나라 고대 역사 기록이 있는 책. 구당서(舊唐書)=중국 당나라의 정사(正史)를 엮은 책

대구광역시 북구 학정동 경북 농업기술원 벼수확을 마친 논에 흰뺨검둥오리들이 찾아와 열심히 먹이를 찾고 있습니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우리 민족은 쌀과 보리를 주식(主食)으로 했으며, 따라서 벼와 보리는 우리나라에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식량작물입니다. 지금도 변함없이 벼농사는 농촌에서 중요한 식량작물로 재배되고 있습니다. 올해도 들녘은 이렇게 황금물결이 일렁이며 대풍을 이루고 있습니다. 특히 한가위 명절 무렵이 되면 이렇게 들녘은 황금물결을 이루며 길손의 마음을 울렁이게 하지요. 이렇게 누렇게 잘 익은 벼들을 보면 유년 시절을 보낸 고향이 그리워집니다.

우리나라 문헌에는 1145년 고려, 17 대왕 인종(仁宗) 23년에 김부식(金富軾)이 기전체(紀傳體)로 엮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추석(秋夕)에 대한 기록이 최초로 나타나지만, 추석(秋夕)에 대한 시원(始原)을 밝히는 내용은 아니라고 합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기록된 자료를 통해서 추석(秋夕)이 신라 초기에 이미 자리 잡았으며, 신라시대의 대표적인 명절이었음을 할 수 있습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1권인 신라본기(新羅本紀)에 신라, 3대 왕인 유리이사금(儒理尼師今) 9년 조에 기록된 추석(秋夕)에 관한 기록 내용을 살펴보면 왕이 육부(六部)를 정한 후 이를 둘로 편을 나누어 두 왕녀가 각각 부내(部內)의 여자들을 거느리게 하여 편을 짜고, 음력 716일부터 날마다 마당에 모여 길쌈을 했는데 밤늦게야 일을 파하게 하고, 음력 8월 보름에 이르러 그 공()의 다소(多少)를 살펴지는 편은 음식을 장만하여, 이긴 편에 사례하고 모두 노래와 춤과 온갖 놀이를 하였으니 이를 가배(嘉俳)라 한다. 이때 진 편의 여자들이 일어나 춤추며 탄식하기를, ‘회소회소(會蘇會蘇)’ 하였는데 그 소리가 구슬프면서 아름다웠으므로 뒷사람들이 그 소리를 인연으로 노래를 지어 회소곡(會蘇曲)이라 하였다.”

위 기록 내용처럼 특히 여자들이 패를 나누어 길쌈을 했다는 것은 두레길쌈의 효시로 볼 수 있는데, 이는 그때 당시 이미 길쌈이 보편화하였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사실 추석(秋夕)은 앞으로 다가올 겨울의 의복(衣服)을 준비하고 장만하는 시기로 볼 수 있습니다. 옷감을 짜는 풍속(風俗)은 농경(農耕)이 시작된 신석기시대(新石器時代)부터 있었는데, 세시명절(歲時名節=한해 절기나 달에 전통적으로 그 사회의 대부분 사람이 해마다 즐기고 기념하는 날)은 농경(農耕)에 적응하여 생성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세시명절(歲時名節)인 한가위는 고대 농경시대(農耕時代)부터 있었던 것으로, 신라시대에는 이미 일반화된 명절로 자리 잡았다고 추정할 수가 있습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규경(李圭景)이 조선과 청나라의 여러 책의 내용을 정리하여 편찬한 백과사전인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 추석(秋夕)의 관습(慣習=한 사회에서 역사적으로 굳어진 전통적 행동 양식이나 습관)이 가락국(駕洛國)에서 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락국(駕洛國)=고대 부족 국가 시대, 낙동강 하류에 일어난 나라들을 통틀어 이르던 말. 금관가야(金官伽倻), 대가야(大伽倻), 소가야(小伽倻), 아라가야(阿羅伽倻), 성산가야(星山伽倻), 고령가야(古寧伽倻) 등의 여섯 나라로 이루어졌다. 562년 신라에 멸망되었지만, 수준 높은 문화를 이루었고 이후 신라 문화 발전에 영향을 주었다. 특히 김수로왕(金首露王)12대손인 김유신(金庾信)은 훗날 신라 진골로 편입되어 삼국 통일의 위업을 달성하는데 큰 몫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일본인 승려 원인(圓仁)은 그의 저서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에 그때 당시 산동(山東=중국의 성의 하나. 황허강(黃河江) 하류와 산둥반도로 이루어진다) 근방에 살던 신라인(新羅人)들이 절에서 가배명절(嘉俳名節)을 즐겼던 사실을 기록한 글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일본인 승려 원인(圓仁)은 신라인들이 발해와 싸워 이긴 기념으로 추석(秋夕)을 명절로 즐겼다고 해석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추석(秋夕)에 대한 기록이 곳곳에 기록으로 전해지고 있지만, 실제로 삼국사기(三國史記)에 기록된 육부(六部)를 방증(傍證=어떤 사실의 진상을 간접적으로 증명함)할 수 있는 자료가 발굴되기도 했습니다. 신라가 육부(六部)였음은 1988415일 경북 울진군 죽변면(竹邊面) 봉평리(鳳坪里)에서 출토된 신라 비석(碑石)의 내용으로 확인이 되었습니다. 비석(碑石)은 신라, 23대 왕인 법흥왕(法興王) 11(524)에 세워진 것으로, 육부(六部) 중의 하나인 탁부(啄部) 출신의 박사가 건립하였다고 하여 가배풍속(嘉俳風俗)과 관련된 육부(六部)의 존재가 분명해졌습니다.

이처럼 신라시대(新羅時代)에 이미 세시명절(歲時名節)로 자리 잡던 추석(秋夕)은 고려시대(高麗時代) 때에도 큰 명절로 여겨져 9대 속절(俗節=제삿날 이외에 철을 따라 사당<祠堂>이나 선영<仙塋>에 차례를 지내는 날)에 포함되었습니다. 고려 9대 속절(俗節)은 원정(元正=음력 11일 설날), 상원(上元=음력 115일 정월대보름), 상사(上巳=음력 초사흗날, 삼월 삼짇날<음력 33>), 한식(寒食=음력 2~3, 양력 45일에서 6), 단오(端午=음력 55), 추석(秋夕=음력 815), 중구(重九=음력 99), 팔관(八關), 동지(冬至)였습니다. 고려 9대 속절(俗節)은 조선시대(朝鮮時代)로 이어졌고, 조선시대(朝鮮時代)에 추석(秋夕)은 설날, 한식(寒食), 단오(端午)와 더불어 4대 명절로 정해지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추석(秋夕)은 고대사회의 풍농제(豐農祭)에서 유래했으며, 신라와 고려시대에도 추석명절(秋夕名節)을 쇠었고, 조선시대에는 국가적으로 선대왕에게 추석제(秋夕祭)를 지낸 기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추석(秋夕)은 농경민족인 우리 조상들에 있어, 봄에서 여름 동안 가꾼 오곡(五穀)과 과일들이 익어 수확하는 계절이 되었고, 1년 중 가장 큰 만월(滿月=음력 보름에 떠는 둥근달)을 볼 수 있는 명절 중에서도 가장 풍성한 때입니다. 또한 여름처럼 덥지도 않고 겨울처럼 춥지도 않아서, 살기에 가장 알맞은 계절이므로 더도 말고 덜지도 말고 한가위만큼만이라는 속담(俗談)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추석(秋夕) 명절을 비롯한 세시명절(歲時名節)은 근래까지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세시풍속(歲時風俗=해마다 일정한 시기에 되풀이하여 행해 온 고유의 풍속)이 농경의례(農耕儀禮=농작물의 풍작을 빌거나 수확물의 영혼 또는 정령<精靈>을 위로함으로써 농신<農神>에 감사하는 의례나 주술<呪術>)로서 농사라는 생업과 직결되어 있었던 것만큼, 산업사회 이후 공업이 생업의 중심이 되면서 농촌사회가 변화하여 세시명절(歲時名節)이 약화(弱化)하기 시작했습니다. 추석(秋夕) 명절 또한 전통적인 성격이 퇴색하여 차례와 성묘하는 날로 축소되었지만, 국가 차원의 공휴일로 지정됨으로써 오늘날까지 우리나라에서 큰 명절로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대구광역시 북구 금호강 하중도 청자박 터널에는 통통하게 살이 오른 호박이 누렇게 익어서 싱그러운 가을 풍경을 보여줍니다.

오랜 전통과 달의 명절인 추석(秋夕)에는 풍요로움을 기리는 여러 가지 행사와 놀이가 세시풍속(歲時風俗)으로 전승(傳承=문화, 풍속, 제도 등을 이어받아 계승함)되고 있습니다. 추석(秋夕)이 되면 조석(朝夕=아침과 저녁)으로 날씨가 쌀쌀하여지므로, 사람들은 여름옷에서 가을옷으로 갈아입습니다. 추석(秋夕)에 입는 새 옷을 추석(秋夕)이라고 합니다. 옛날 머슴을 두고 농사를 짓는 가정에서는 머슴들까지도 추석(秋夕) 때에는 새로 옷을 한 벌씩 해주었다고 합니다. 추석(秋夕)날 아침 일찍 일어나 첫 번째 일은 조상(祖上)에게 예()를 갖추어 차례를 지내는 엄숙한 세시풍속(歲時風俗)이 있습니다. 가정주부(家庭主婦=한집안의 살림살이를 도맡아서 주관하는 여자 주인)가 수일 전부터 미리 준비한 제물(祭物=제사에 쓰는, 여러 가지 음식)을 차례상에 차려놓고 차례를 지냅니다.

추석(秋夕)은 애초 농공감사일(農功感謝日=한 해 동안 농사를 잘하게 해준 것을 감사하는 날)로서 이날 명절식(名節食)으로 설날과 달리 흰 떡국 대신 햅쌀로 밥을 짓습니다. 그리고 햅쌀로 술과 송편을 빚습니다. 이렇게 조상 제사상(祭祀床)에 올리는 제물(祭物)은 햇곡식으로 준비하여 먼저 조상에게 선보이며, 1년 농사의 고마움을 차례를 지내며 조상에게 전합니다. 또 성주신(성주=집을 지키고 보호하는 신령), 터주, 조상단지 같은 집안 신()들도 햇곡식으로 천신(薦新=철에 따라 새로 난 과실이나 농산물을 신에게 먼저 올림) 하며 추석치성(秋夕致誠)을 올립니다. 설과 추석(秋夕)명절 차례는 대체로 사대봉사(四代奉祀=고조<高祖>, 증조<曾祖>, 조부<祖父>, 아버지까지 4대의 신주(神主)를 사당(祠堂)에 모시는 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는 조선 후기부터, 내려오는 관행(慣行=사회에서 예전부터 해 오던 대로 함)으로 전해 지고 있습니다. 차례가 끝나면 차례상()에 올렸던 음식으로 온 가족이 음복(飮福=차례나 제사를 지내고 난 뒤에 술이나 음식을 나누어서 먹음)을 합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조상의 산소를 찾아서 성묘(省墓=조상의 산소를 찾아 인사를 하고 산소를 돌봄) 겸해 여름내 무성하게 자란 풀을 깎는 벌초를 하게 됩니다. 벌초는 대부분 추석(秋夕) 전에 미리 풀을 베어줍니다. 간혹 추석(秋夕)이 되어도 벌초하지 않는 무덤은 자손(子孫)이 없어 주인이 없는 무덤이거나, 자손(子孫)은 있어도 불효하여 조상의 무덤을 돌보지 않는 경우여서 남의 웃음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추석(秋夕) 민간(民間) 신앙적(信仰的) 행사(行事).

추석(秋夕) 전날 밤에 전라남도 진도(珍島)에서는 남자애들이 밭에 가서 벌거벗고 고랑을 기어다니는 풍속(風俗)이 있습니다. 이때 밭둑에다 음식을 차려놓고 토지신(土地神=땅을 맡아 다스린다는 신. 봄에는 부엌에, 여름에는 문에, 가을에는 샘에, 겨울에는 마당에 있으며, 그때 장소를 움직이면 화<>가 있다고 한다)을 위하는 일도 있는데, 이렇게 하면 밭곡식이 풍년이 들어 많은 수확을 올릴 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몸에 부스럼이 나지 않고 건강하게 자란다고 설()이 있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농업주술(農業呪術)과 건강을 축원(祝願=어떤 일이 희망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원하고 빎)하는 행위로 볼 수 있습니다.

추석(秋夕)에 행하는 의례(儀禮=어떤 행사를 치르는 법식이나 정해진 방식에 따라 치르는 행사)로 올게심니(추석 또는 중양절<음력 99>을 전후하여 벼, 수수, 조 등의 이삭을 묶어 방문(房門), 기둥 따위에 걸쳐 두는 풍습)와 풋바심(곡식이 완전히 익기 전에 베어서 떨거나 훑음)이 있습니다. 올게심니란 주로 전라남도와 전라북도 지역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올벼 천신(薦新)입니다. 다른 말로 올기심리, 올계심리, 오리십리, 올비신미라고 하는 이름을 붙여서 부르기도 합니다. 여기서 올벼란 일찍 수확한 벼를 말하며, 벼가 다 익을 무렵 혹은 채 익기 전에 완전히 익은 부분을 골라 정미소에서 가공한 쌀입니다. 벼가 완전히 익기 전에 미리 솥에서 볶아 말려두었다가 밥을 짓습니다. 지은 밥과 함께 술과 조기, 햇병아리, 햇무 같은 것들을 상()에 차려 조상에게 제사를 지낸 후, 온 집안 식구가 모여 그 음식을 나누어 먹습니다.

추석(秋夕)을 전 후하여 그해의 농사에서 가장 잘 익은 곡식으로 벼, 수수, () 등의 이삭을 한 줌 배다가 묶어 기둥이나 문설주에 걸어두는데 이것을 올게심니라고도 합니다. 올게심니를 할 때는 술과 음식을 차리고 이웃을 청해서 소연(小宴=간소하게 차린 잔치)을 베풀기도 합니다. 올게심니를 한 곡식은 무슨 일이 있어도 먹지를 않으며, 다음 해에 종자로 쓰거나, 다음 해에 새로 올게심니를 할 때 찧어서 밥이나 떡을 해서 조상의 사당에 천신(薦新)하거나 터주를 비롯한 가신(家神)에 올렸다가 먹습니다. 올게심니는 이듬해 풍년이 들게 해달라고 기원하는 주술행위(呪術行爲=사람이 의지를 갖추고 초자연적인 존재의 힘을 빌려 재앙을 물러나게 하거나 앞으로 다가올 일을 점치는 행위)와 조상의 은혜(恩惠)에 보답하려는 추원보본(追遠報本=조상의 덕을 추모하여 자기의 근본을 잊지 않고 제사를 지내며 은혜를 갚음)이 합하여진 행위로 볼 수 있습니다.

경북 안동을 비롯한 영남에서는 올게심니와 비슷한 풋바심(곡식이 완전히 익기 전에 베어서 떨거나 훑음)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풍습(風習)은 벼가 다 익기 전에 일부를 먼저 수확하는 것을 말합니다. 논 가운데(中央)에서 잘 익은 벼를 지게 한 짐 정도(벼 두 말, 쌀 한 말 정도) 미리 베어서 탈곡한 뒤, 그 쌀로 밥을 짓고 제물(祭物)을 갖춰 제사(祭祀)를 지내는 것은 올게심니와 같은 풍속(風俗)입니다.

또 다른 추석(秋夕)의 풍속(風俗)으로 반보기와 근친(覲親=친정에서 가서 어버이를 만나다)이 있습니다. 추석(秋夕) 때면 농가도 잠시 한가하고 인심도 풍부한 때이므로 며느리에게 말미(휴가)를 주어 친정에 근친(覲親)을 보냈습니다. 떡을 하고 술병을 들고 닭이나 달걀 꾸러미를 들고 친정에 가서 혈육을 만나 회포(懷抱=마음속에 품은 생각이나 정) 풀면서 보냈습니다. 이렇게 근친(覲親)을 갈 수 없는 경우에는 반보기를 했습니다. 충남 지역에서는 추석(秋夕) 무렵에 반보기를 하는데, 반보기는 시집간 여자가 친정에 가기 어려워, 친정 부모가 추석(秋夕) 전후로 사람을 보내서, 만날 장소와 시간을 약속하여 친정과 시집 중간의 경치 좋은 곳을 정하여, 딸은 친정어머니가 즐기는 음식을 마련하고 친정어머니는 딸이 좋아하는 음식을 마련해서, 시집과 친정 중간쯤에서 만나는 것을 말합니다.

늦여름이 다 가도록 농사에 바빴던 일가친척들이 추석(秋夕) 무렵이면 서로 약속하여, 양편의 중간 지점에서 만납니다. 이것을 반보기라고 하며, 중간 지점에서 만난다고 하여 다른 말로 중로상봉(中路相逢) 또는 중로회견(中路會見) 중로(中路) 보기, 반보기라고 합니다. 전라남도 강진지방에서는 한 마을의 부녀자들이 단체로 음식을 마련하여 경치 좋을 곳에 가서 하루를 놀고 즐기는 것을 반보기라 부르기도 합니다. 옛날에는 특히 시집간 딸이 이 반보기를 통해 친정 식구와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요즘은 반보기 풍속(風俗)이 없지만, 옛날에는 추석(秋夕) 뒤에 음식을 장만하여 친정에 가서 놀다 오게 하는 반보기라는 아름다운 풍속(風俗)이 있었습니다. 요즘은 대부분 지역에서 추석(秋夕) 전후가 되면 이런 반보기가 아니라 온보기로 새색시들이 근친(覲親=친정에서 가서 어버이를 만나다) 가는 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설날(음력 11)과 정월대보름(음력 115)에 날씨를 보고 농사점(農事占)을 보는 것과 똑같이 추석(秋夕) 때에도 그날 날씨와 사정(事情=일의 형편이나 그렇게 된 까닭)을 보아 여러 가지로 점()을 쳤습니다. 음력 8월 초순이면 대개 백로(白露) 절기가 들고 곧 서리가 내리는 중추(仲秋=음력 815일로 추석을 말한다)입니다. 만일 백로절기(白露節氣) 전에 서리가 내리면 그해는 시절(時節=한 해를 날씨에 따라 나눈 그 한철)이 나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백로절기(白露節氣)를 전후(前後)하여 날씨를 보고 그해 농사의 풍년과 흉년을 점()쳤습니다. 추석(秋夕)은 날씨가 청명(淸明)하고 밝아야 좋다고 합니다. 비가 내리면 흉년이 든다고 해서 불길한 징조(徵兆=어떤 일이 생기기 이전에 그 일에 대해서 미리 보이는 여러 가지 조짐)로 보았습니다.

추석(秋夕)날 저녁에 흰 구름이 많이 떠서 여름에 보리를 베어서 늘어놓은 것처럼 벌어져 있으면 농작물이 풍년이 들지만, 반대로 구름이 끼어 달빛을 볼 수가 없으면 보리와 메밀이 흉년이 들고, 토끼는 포태(胞胎=임신)하지 못해 번식(繁殖)을 못 하고, 개구리도 알을 낳지 못한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밖에 백로절기(白露節氣) 무렵에 바람이 불면 벼가 검은빛으로 여물면(익으면) 흉년이 든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벼는 늦어도 백로절기(白露節氣) 전에 이삭이 패야 하며, 백로절기(白露節氣)를 지나고 이삭이 올라온 벼는 결실(結實=식물이 열매를 맺음)이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추석절식(秋夕節食=추석 명절에 특별히 만들어 먹는 음식).

추석(秋夕)에는 시절(時節=일정한 시기나 때)에 맞는 여러 종류의 다양한 음식이 있습니다. 차례를 지내기 위해서는 음식을 준비하는데 설날의 음식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다만 추수(秋收)의 계절이라 햇곡식으로 밥을 짓고, 술과 떡을 빚습니다. 햇곡식이 익는 계절이 빠르면 추석(秋夕) 차례에, 햇곡식을 쓸 수가 있고 반대로 햇곡식이 익는 계절이 늦으면 아직 완전하게 익지 않은 벼를 베어 수확한 다음, 방아를 찧어서 햅쌀을 만들어서 이용했습니다. 햇곡식이 익는 계절이 늦은 해에는 미리 산도(山稻=밭에 심는 벼)를 심었다가 제미(祭米=제사에 쓰는 쌀)로 쓰는 일도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햅쌀로 밥을 지으면 맛이 새롭고 기름기가 있으며 떡도 맛이 있습니다.

음력 설날의 명절식(名節食)은 떡국이지만, 음력 팔월 보름(음력 815) 명절식(名節食)은 송편입니다. 명절식(名節食)은 차례상()에 올려 조상에게 제사(祭祀)를 지내고 가족과 친척 그리고 이웃이 나누어 먹습니다. 추석(秋夕) 떡으로 송편을 빼놓을 수가 없지요. 송편은 올벼를 수확한 쌀로 빚은 송편이라 해서, 다른 말로 올벼 송편이라고도 부르고 있습니다. 송편 속에는 콩, , , 대추 등을 넣는데, 모두 햇것으로 합니다. 송편 속에 넣는 소(송편이나 만두 따위를 만들 때 피<>속에 넣어 맛을 내는 여러 가지 재료)가 모두 햇곡식이기 때문에, 추석에 빚는 송편은 아주 맛이 있습니다. 추석 차례상에 올리는 송편은 음력 814일 저녁 밝은 달을 보면서 가족들이 모여, 송편을 빚습니다. 송편을 예쁘게 빚으면 예쁜 배우자를 만나게 되고, 잘 못 빚으면 못생긴 배우자를 만나게 된다고 해서 처녀, 총각들은 예쁘게 빚으려고 솜씨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또 임신 중인 부인이 태아(胎兒=모체의 태 속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가 아들인지 딸인지 궁금할 때는, 송편 속에 바늘이나 솔잎을 가로 넣고 찐 다음 한쪽을 깨물어서 바늘의 귀 쪽이나 솔잎의 붙은 곳을 깨물면 딸을 낳고. 바늘의 뾰족한 곳이나 솔잎의 끝 쪽을 깨물면 아들을 낳을 징조라고 점()을 치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밖에 수확 철이라 다양한 음식이 선보이며 추절시식(秋節時食=제철에 나서 그 계절에 맞춰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 하여 무나 호박을 넣은 시루떡도 빚습니다. 찹쌀가루를 쪄서 찧어 떡을 만들고 콩가루나 깨를 묻힌 인병(引餠=북한에서 쓰는 말인 찹쌀떡) 그리고 찹쌀가루나 찰수수 따위의 가루를 반죽하여 밤톨만 한 크기로 둥글둥글하게 빚어 끓는 물에 삶아 낸 후 고물을 묻히거나 꿀이나 엿물을 바른 떡인 경단(瓊團)을 빚었습니다. 또 찹쌀가루를 쪄서 달걀같이 둥근 떡을 만들고, 삶은 밤을 꿀에 개어 붙인 율단자(栗團子)도 추석(秋夕) 명절식(名節食)으로 빚어 차례상()에 올렸습니다.

추석 명절식(名節食)으로 송편과 함께 미각을 돋우는 숙주나물과 토란국도 명절식(名節食)입니다. 숙주나물은 소양(消陽=양기를 약하게 함) 한다고 하지만 잔칫상에 잘 오르고, 토란은 몸을 보호한다고 해서 즐겨 먹습니다. 토란국은 다시마와 쇠고기를 섞어서 끓입니다. 화양적과 누름적도 명절식(名節食)인데, 화양적은 햇버섯, 도라지, 쇠고기에 갖은양념을 하여 볶아 꼬챙이에 끼운 음식입니다. 누름적도, 화양적과 같은 방법으로 하되 밀가루나 달걀을 묻혀서 지진 음식입니다. 이 음식들 역시 차례상에 올립니다.

추석(秋夕) 무렵에는 송이버섯의 향기가 유난히 좋습니다. 송이회, 송이전, 송이전골이 일품이며 음식의 고명(음식의 모양과 빛깔을 돋보이게 하고 음식의 맛을 더하기 위하여 음식 위에 얹거나 뿌리는 것을 통틀어 이르는 말. 주로 버섯, 실고추, 지단, 대추, , 호두, 은행, 잣가루, 깨소금, 미나리, 당근, 파 따위를 이용합니다)으로도 송이버섯을 많이 사용합니다. 한편, 추석(秋夕) 무렵은 앞으로 다가올 겨울에 이용할 저장용 반찬거리를 마련할 시기여서, 박고지, 호박고지, 호박순, 고구마 순도 수확하여 말리고 산채(山菜=산나물)를 말려서, 묵은 나물을 준비합니다.

제사(祭祀)를 지내려면 술이 꼭 있어야 하는데, 추석(秋夕) 술은 백주(白酒)라고 하여 햅쌀로 빚기 때문에 신도주(新稻酒=햅쌀로 빚은 술)라 이름을 붙여서 불렀다고 합니다. 술을 많이 준비하여야만 이웃 사이에 서로 청하여 나누어 마시고, 소 놀이패 와 거북놀이패들이 찾아왔을 때 일행을 후하게 대접할 수가 있었습니다. 남성의 접빈객(接賓客=손님을 접대하는 일)은 첫째가 술인 만큼 술을 넉넉하게 준비했습니다. 이렇게 우리네 잔치에는 술만 풍족하면 되었습니다. 혼인, 환갑, 장례, 명절 때에는 손님 중에 술에 취해서 몇 사람쯤 쓰러져 있으면 그 집 잔치는 잘하였다고 할 만큼 술은 손님 접대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되는 음식이었습니다. 추석(秋夕) 때면 풍년도 짐작되기 때문에 인심이 후회서 술대접을 서로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추석(秋夕)에는 황계(黃鷄=털빛이 누른 닭)가 살이 통통하게 올라 가장 맛있는 계절이므로, 추석(秋夕)의 명절식(名節食) 닭찜을 하여 차례상에 올렸습니다. 황계(黃鷄)는 봄에 알에서 부화(孵化)한 병아리를 명절에 맞추어 길렀다가 추석(秋夕) 잡아 차례상 올릴 제물(祭物)로 이용했습니다. 이밖에 옛날에는 명절에 어른에게 드리는 선물로 닭을 많이 이용했습니다. 친정에 근친(覲親=시집간 딸이 친정에 가서 어버이를 뵘, 승려가 속가의 어버이를 뵘)하는 딸이 닭이나 달걀 꾸러미를 가지고 갔으며, 경사(慶事=축하할 만큼 매우 기쁘고 즐거운 일)가 있을 때도 닭을 선사(膳賜=남에게 선물을 줌)하였으며, 반가운 손님이 찾아오면 손쉬운 닭을 잡아 대접했습니다. 사위가 오면 장모가 씨암탉을 잡아 대접하는 것이 그 예입니다. 추석(秋夕)에 백주(白酒)와 황계(黃鷄)는 좋은 술과 안주로 아주 좋았습니다.

추석(秋夕) 차례상에 올리는 가을 과일로는 감, , 대추, 호두, 은행, 모과 등은 전래(傳來=예로부터 전해 내려옴, 다른 나라로부터 전하여 들어옴)의 것이고, 요즘에는 사과와 배가 첨가되었습니다. , 대추, 곶감은 제물(祭物)로 필수여서 가을에 알밤을 말려두었다가 씁니다. 대추는 단맛이 있어 여러모로 쓰였고 약식에도 넣었으며 약으로도 많이 이용하고 있습니다. 호두와 은행은 값이 비싸므로 남겨 두었다가 상원(上元=음력 115일 정월대보름) 날 부럼에 쓰기도 합니다. 모과는 약으로 쓰거나 차()로 이용하고, 술로 담기기도 합니다. 추석(秋夕) 때 이용하는 풋밤은 제사상(祭祀床)에 올리고 밥과 송편에도 넣고 단자(團子=찹쌀가루에 수분을 준 다음 시루에 쪄서 스테인리스 볼에 넣어서 친 다음 속에 소를 넣어서 친 다음 속에 소를 넣고 빚은 후 꿀을 발라 고물을 묻힌 떡. 종류는 쑥단자, 밤단자, 석이단자 등이 있습니다)를 만들기도 합니다. 이밖에 밤을 대신하여 토란을 사용한 토란 단자도 있습니다.

추석명절(秋夕名節)에 즐기는 민속(民俗)놀이.

추석명절(秋夕名節)은 음력 115일 정월대보름보다는 작은 명절이지만, 풍성한 민속놀이도 행해졌습니다. 추석(秋夕)에 즐기는 대표적인 민속놀이는 씨름, 소 놀이, 거북놀이, 줄다리기, 강강술래, 가마싸움, 소싸움, 닭싸움 등 많은 놀이를 하면서 명절을 즐겼습니다. 특히 추석(秋夕)과 같은 보름 명절(음력 15)에는 강강술래와 같은 원무(圓舞=여럿이 둥그렇게 둘러서서 추거나 돌면서 추는 춤)가 중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한가윗날(음력 815) 보름달 아래서 노는 원무(圓舞)는 한층 운치가 있습니다. 추석(秋夕)놀이는 단순한 놀이일 뿐만 아니라 풍농(豊農=농사가 잘됨)을 기원하고, 예축(豫祝=미리 축하함)하는 신앙적인 의미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추석(秋夕) 민속(民俗)놀이 방법.

(1). 강강술래=강강술래는 풍요를 상징하는 달에 비유되는 놀이로 알려져 있습니다. 농경사회(農耕社會)에서 보름달은 풍요를 상징하며 이는 여성과도 관련되어 있습니다. 여성은 생산의 주체이므로 여성 자체가 풍요를 상징하는 존재이며, 음력 정월대보름과 한가위 보름달의 만월(滿月=가장 크고 둥근달)과 만삭(滿朔=아이 낳을 달이 참)은 여성으로 비유됩니다. 따라서 음력 팔월 한가위 보름날의 강강술래 놀이는 여성들이 풍요의 달 아래에서 논다는 의미에서 풍요의 극치(極致=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를 의미합니다.

강강술래는 여러 가지 형태의 놀이로 이루어지지만, 그중에서도 원무(圓舞)는 보름달의 형상을 상징(象徵)하여 한층 중요합니다. 강강술래는 원무(圓舞)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사리 꺾자, 덕석몰이, 청어 엮자, 문을 열어라, 기와밟기, 가마 등, 닭살이, 남생이놀아라 같은 여러 놀이가 있습니다. 이것을 모두 하는 것이 아니고 몇 개씩 어울려서 한 놀이를 이루게 됩니다. 하지만 놀이의 성격을 두드러지게 드러내는 것은 역시 원무(圓舞)입니다.

노래는 목청이 좋은 사람이 선소리(先唱=노래나 구령, 구호 따위를 맨 먼저 부르거나 외침)하면 다른 사람들이 뒷소리인 합창(合唱=여러 사람이 목소리를 맞추어 같은 선율로 노래함)으로 받습니다. 가사는 시집살이 노래건 베틀가건 전해 내려오는 민요나 즉흥적인 작사를 하면 후렴을 강강술래라는 합창(合唱)으로 받습니다. 처음에는 느린 가락의 진양조장단(산조<散調> 및 판소리 장단의 한 가지. 241 장단의 가장 느린 속도로, 6박자 넷으로 나눌 수도 있고 12박자 둘로 나눌 수도 있다)에 맞추어 춤을 추다가 점점 빠른 가락인 중모리장단, 중중모리장단, 자진모리장단으로 바뀌어 가고 동작도 빨라집니다. 이것을 뛴다라고 합니다. 이렇게 뛰다가 지치면 쉬고, 쉬었다가 뛰고 하면서 놀이를 즐깁니다. 둥글게 원을 그리며 뛰고 노는 늦은 강강술래가 잦은 강강술래로 바뀌고 그것이 끝나고 나면 고사리꺾기가 시작됩니다.

중모리장단=판소리 산조(散調), 민요 따위에 쓰이는 장단. 중간 빠르기로 몰아가라는 뜻으로, 진양조장단 다음으로 느린 장단이다. 보통 빠르기의 12박으로 1박을 4분음표로 나타내면 4분의 12박자가 된다. 빠르기에 따라 느린 중모리장단, 평 중모리장단, 자진 중모리장단으로 나누어진다. 산조와 민요에서는 평 중모리장단을 주로 쓰며 판소리에서는 세 가지를 두루 쓴다.

중중모리장단=판소리, 산조(散調), 민요 따위의 장단의 하나. 중모리장단보다 빠르고 자진모리장단보다는 느리다.

자진모리장단=판소리 산조(散調) 장단의 하나. 휘모리장단보다는 느리고 중중모리장단보다 빠른 것으로, 판소리에서는 한 내용을 길게 나열하거나 극적이고 긴박한 대목을 묘사할 때 쓰인다.

고사리꺾기는 손을 맞잡고 일렬로 서서 맨 앞에 있는 사람이, 다음 사람의 오른손과 맞잡은 왼손 밑으로 차례차례 꿰어가면서 노래는 부릅니다. 덕석몰이는 일렬로 서서 가장 끝에 선 사람이, 맨 앞에 서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큰 원을 그리며 도는 놀이입니다. 이렇게 몇 번이고 계속하면 한 덩어리로 뭉치게 되는데 이때 몰이몰이 덕석몰이 늦인늦인 뱅애몰이라며 노래를 부른다. 덕석이 다 풀리면 다시 일렬로 서게 된다.

청어 엮기의 놀이 방법은 고사리꺾기와 거의 같고 노래만 다를 뿐입니다. () 열기 놀이(문 열어라.)는 우선 두 사람이 마주 서서 손을 맞잡고 서 있으면, 다른 일렬로 선 사람들이 앞 사람의 허리를 잡고 약간 구부립니다. 그리고 일렬로 문()을 꿰어갑니다. ()지기인 두 사람은 맨 끝 사람이 문() 속을 꿰어가려는 순간 손을 내밀게 됩니다. 그때 잡히면 문()지기가 되고 문()지기였던 한 사람은 맨 앞에 가서 선다. 그러나 끝 사람이 날쌔게 뛰어나가면서, 다시 문지기를 해야 합니다. 이때에는 ()지기야 문()지기야 문() 열어라(여러 사람), 열쇠 없어 못 열겠네(()지기).”라며 노래를 부른다.

기와밟기는 놀이꾼들이 허리를 굽혀 앞 사람의 허리를 두 팔로 감아, 기와처럼 엮으면 맨 끝에 사람이 엎드린 사람들의 등 위를 밟고 가는 놀이입니다. 이렇게 하여 앞 사람들이 다 지나가면 다시 맨 끝의 사람이 올라가 밟고 지나갑니다. 이런 방식으로 계속 놀이가 이어집니다. 가마 등은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서서 양팔로 가마를 만들고 그 위에 한 사람을 올려 앉히고 노래를 부르면서 돌아다니며 노는 놀이입니다. 남생아 놀아라는 남생이(작은 거북이)의 흉내를 내며 노는 놀이다. 놀이꾼 중에서 춤을 잘 추고 사람들을 웃기는 몸짓을 잘하는 두세 사람이 원 안으로 들어가서 온갖 몸짓을 하며 놀게 됩니다. 이때 몸짓은 곱사춤, 궁둥이 춤, 아장거리는 춤 등 다양합니다. 닭살 이는 살쾡이가 닭을 잡아가는 시늉을 하는 놀이입니다. 가위바위보를 하여 골짜기가 된 사람이 살쾡이가 되고, 그다음에 사람이 닭이 된다. 나머지 놀이꾼들은 손과 손을 잡고 원을 그립니다. 이때 닭은 원 안에 있고 살쾡이는 원 밖에 서성이면서 닭을 잡는다는 놀이입니다.

강강술래가 주로 전라도 지방에서 즐기는 놀이지만, 경상도 지역에서는 이와 같은 맥락의 놀이로 월이청청(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음력 115일 정월 대보름날 저녁에 마을의 부녀자들이 손을 잡고 둥글게 원을 그리며 돌면서 노래를 부르고 노는 민속놀이이다), 놋다리밟기(경북 안동, 의성 등지에서 음력 정월 대보름날 밤에 부녀자들이 하는 민속놀이)가 있습니다. 월이청청과 놋다리밟기 놀이가 여성 원무(圓舞) 중심의 놀이지만, 남자들이 원무(圓舞)를 중심으로 노는 놀이로 꽤 지나 칭칭(경상도 민요의 하나. 한 사람이 사설로 메기면, 여럿이 쾌지나 칭칭 나네라는 후렴으로 받는다. 끝없이 무리 지어 부른다)이 놀이가 있습니다.

(2). 소 놀이와 거북놀이=소 놀이는 멍석을 쓰고, 소 모양으로 가장하여 집마다 찾아다니며 즐겁게 놀아주고 음식을 나누어 먹는 풍년 기원 놀입니다. 두 사람이 서로 궁둥이를 맞대고 엎드린 후, 그 위에 멍석을 씌운다. 앞사람은 멍석 밑에서 잘 깎은 막대기를 두 개 내밀어 마치 뿔처럼 보이게 하고, 뒷사람은 동아줄을 한 가닥 늘어뜨려 마치 쇠꼬리를 보이게 합니다. 이때 농부 한 사람이 앞에서 소의 고삐를 잡고 끌고 갑니다. 소 뒤에는 풍물패가 따르며 흥을 돋운다. 소를 앞세운 일행은 부잣집을 찾아갑니다. 대문 앞에서 쇠고삐를 잡은 사람이 소가 배가 고파서 왔습니다. 여물과 뜨물을 주시오.”라고 소리치면 주인은 음식을 차려 대접합니다. 이렇게 여러 집을 찾아다니며 마을 사람 모두가 즐겁게 보냅니다.

소는 농부와 마찬가지로 농사일하는 존재로서 생구(生口=경제생활에 이용할 목적으로 집에서 기르는 짐승을 통틀어 이르는 말. , , 돼지, , , 양 따위가 있다)라 할 정도로 가족의 일원으로 여겼다. 거북은 십장생(十長生=오래 살고 죽지 아니한다는 열 가지. 곧 해(태양), , , (바위), 구름, (소나무), 불로초, 거북, , 사슴의 열 가지를 말한다)에도 등장하는 영물(靈物=신령스러운 동물이나 물건)로서 수신(水神=물을 다스리는 신)과 농경신(農耕神)의 기능을 합니다. 따라서 소 놀이와 거북놀이는 풍년을 기원하는 농경의례(農耕儀禮=농작물의 풍작을 빌거나 수확물의 영혼 또는 정령<精靈>을 위로함으로써 농신<農神>에 감사하는 의례<儀禮>나 주술<呪術>)의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거북놀이는 추석(秋夕)날 밤에 하는 놀이로 수숫대를 벗겨 거북이 모양을 만들어 3~4(앞에 한 사람, 양쪽에 두 사람)이 그 속에 들어가서 마치 거북이가 돌아다니듯이 집마다 찾아다니며 한바탕 노는 놀이입니다. 그러다가 힘이 빠진 척 모두 쓰러져서 꼼짝도 하지 않을 때, 거북을 몰고 다니는 아이가 이 거북이가 동해를 건너 여기까지 오르라고 힘이 지쳐 누웠으니 먹을 것을 좀 주십시오라고 하면, 집주인은 송편, , 과일 등을 내놓는다. 그러면 음식을 먹은 뒤 거북을 모는 아이가 거북아 먹이가 나왔으니, 인사나 하고 가자라고 하면, 거북은 넙죽 절을 하고 한바탕 뛰며 놀다가 또 다른 집으로 갑니다.

이 놀이를 통하여 집마다 장수(長壽), 무병(無病)하게 되고, 동네의 잡귀신을 쫓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처럼 이 놀이는 한 해의 풍년을 축하하기 위한 풍년제(豊年祭)의 성격과 마을과 집안의 잡귀를 몰아내어 마을 전체의 화목과 복()을 비는, 무속신앙(巫俗信仰)의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거북놀이는 경기도와 충청남북도, 강원도 지역 등 옛날에는 우리나라 중부 지역 어디서든 흔히 볼 수 있는 놀이로 알려졌으나 지금은 보기 힘든 놀이가 되었습니다. 경기도 광주(廣州)와 충남 예산지방에서는 음력 정월대보름에도 거북놀이를 즐겼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요즘은 경기도 이천군(伊川郡) 대월면 초지리에서 추석(秋夕)날 세시(歲時)놀이로 전승(傳承)되어 오고 있습니다. 한동안 이 놀이가 완전히 사라졌던 것을 경기도 이천군(伊川郡) 대월면 초지리 마을 사람들이 재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3). 가마싸움과 원님놀이=가마싸움은 1900년대 초까지 경북 의성 지역에서 전해오던 서당 학동들이 했던 놀이입니다. 추석(秋夕) 때 훈장(訓長=글방의 선생)이 차례를 지내기 위하여 고향으로 돌아가 서당을 비우면 놀이를 시작했습니다. 모처럼 글공부에서 해방된 학동들이 모여서 나무로 가마를 만들며 놀이를 만끽하는 것입니다. 옛날 경북 의성지방에는 남부에 넷, 북부에 하나, 모두 다섯 곳의 서당이 있었습니다. 이 서당의 학생들이 남북으로 편을 가른 후 가마를 제작했습니다. 가마는 나무로 높이 1m, 길이 1.7m, 가로 1.2m의 크기이며 바퀴 4개가 달려 있었습니다.

가마(사람을 태우고 갈 수 있도록 만든, 조그마한 집 모양의 탈것) 안쪽에 애호박을 따서 먹()으로 사람의 얼굴을 그려놓고 원님이라 불렀습니다. 각각 선두에 사령기(관찰사, 절도사 통제사 등이 군대를 지휘할 때 쓰는 깃발)를 비롯한 깃발들을 선두에 세우고, 공격대와 수비대의 순서로 서로 싸움을 벌입니다. 힘센 공격대원들이 먼저 적진에 뛰어들어 기를 뺏고, 가마를 발길로 차고 혼전을 벌여 가마와 가마끼리 서로 부딪쳐, 가마가 부서지는 쪽이 지는 것으로 정해놓고 하는 놀이입니다. 이긴 편 서당에서 과거 급제자가 많이 나온다고 여겼다고 합니다.

(4). 씨름=추석(秋夕)날 남자들이 힘을 자랑하는 놀이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씨름입니다. 씨름은 음력 55일 단오(端午), 음력 715일 백중(百中)에도 하지만 추석명절(秋夕名節) 놀이로도 많이 즐겼습니다. 한 마을에서 힘깨나 쓴다는 씨름꾼들이 체급과 나이에 상관없이 모여들면 이들을 마을의 대표 선수로 삼아, 다른 마을 사람들과 겨루게 했습니다. 진짜 장사(壯士=기개와 힘이 아주 센 사람)는 그 자리에서 더 이상 도전자가 없을 때까지 겨루어 뽑는데, 이기게 되면 판막음했다(마지막 승부에서 승리하여 그 판을 마치게 하다)을 했다고 합니다.

씨름은 마을과 마을의 대항인지라 그 치열함이 상상을 뛰어넘었습니다. 이렇게 힘겨루기는 추석(秋夕) 무렵 알찬 수확을 과시하는 놀이임에 틀림이 없었습니다. 씨름 겨루기 싸움에서 이기는 편은 그해 혹은 이듬해에 풍년을 보장받기 때문에 씨름판의 열기는 더욱 뜨거워졌습니다.

(5). 소싸움=사람뿐만 아니라 추석명절(秋夕名節)에는 동물도 힘겨루기했습니다. 봄부터 여름내 소먹이는 머슴들이 산등성이와 강변에서 소싸움을 붙여 그 마을에서 가장 힘센 소를 뽑았습니다. 이렇게 뽑힌 소에게는 극진한 대접을 하는데 심지어 보약까지 먹였다고 합니다. 상머슴이 고삐를 잡고 싸움판에 소를 끌고 들어가 싸움을 붙인 한쪽 소가 밀리거나 달아나면 경기에서 지는 것으로 정했습니다. 만약 소가 다칠 염려가 있으면 중도에 싸움을 멈추게 했습니다. 소싸움은 주로 마을과 마을의 경계 또는 넓은 강변에서 벌어졌습니다. 넓고 튼튼한 우리를 만들어 황소 두 마리를 풀어두면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황소가 앞발로 땅을 긁어 흙을 파헤치면 화가 났다는 표시인데 이 신호를 시작으로 황소 두 마리가 서로 머리를 맞대고, 뿔로 밀고 받치며 열을 올리며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힘이 모자란 황소는 한쪽 구석으로 몰려 하고 나가떨어지거나 슬금슬금 도망가면서 승부가 납니다. 두 마리 황소끼리의 싸움이지만 주위의 열기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소싸움은 여름내 어느 집 머슴이 소를 잘 먹이고 건강하게 하였는가를 가리는 싸움이기도 했습니다. 그리하여 이긴 소는 목과 뿔을 비단과 종이꽃으로 장식하고, 그 위에 머슴이 타고 마을로 돌아옵니다. 그러면 주인집에서 거나하게 술을 한잔 대접합니다. 요즘은 경상북도 청도지방에서 소싸움이 유명하게 열리고 있습니다.

(6). 조리지희(照里之戱=제주도의 민속놀이. 음력 팔월 보름날 저녁에 남녀노소가 한데 모여 노래하고 춤추다가 좌우 두 패로 갈라져 줄다리기하며 노는 놀이이다).=줄다리기는 음력 정월대보름에도 많이 하지만 지역에 따라 추석(秋夕)에 하기도 합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조선 순조<純祖=조선 제23대 왕> 때의 학자 홍성모<洪錫謨>가 지은 세시풍속에 관한 책. 활자본으로, 1책이다. 우리나라의 연중행사 및 풍습을 설명한 책으로, 112개월의 기사 항목으로 나누어 해설하였다)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제주도 풍속에 매년 음력 8월 보름날에 남녀가 함께 모여 노래하고 춤추며 좌우로 편을 갈라 큰 줄을 양쪽에서 잡아당겨 승부를 가린다. 줄이 만약 중간에서 끊어지면 양편이 모두 땅에 자빠진다. 구경꾼들이 크게 웃는다. 이를 조리지희(照里之戱)라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줄다리기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입니다. 줄이 끊어지도록 만들어서 노는 놀이인 데 조상의 익살(남을 웃기려고 일부러 하는 우스운 말이나 행동)이 보입니다.

우리나라 보름 명절이 갖는 의의.

음력 815일 추석(秋夕)은 정월대보름(음력 115), 유두(流頭=음력 615), 백중(百中=음력 715)과 함께 대표적인 음력 보름(음력 15) 명절입니다. 음력 보름 명절 가운데서도 정월대보름과 추석은 가장 큰 명절입니다. 음력 정월대보름은 새해에 처음 맞는 명절이 이어서 중시되지만, 추석(秋夕)은 농작물인 오곡백과(五穀百果)의 수확기가 시작되는 시기에 들어 있는 보름 명절이어서 더욱 중시되고 있습니다. 추석(秋夕)은 그동안 농사를 잘하게 해준 것을 감사하는 농공감사일(農功感謝日)이며, 한 해 농사의 결실(結實)을 보는 절일(節日=명절)입니다. 아울러 한 해 농사의 마무리를 하는 시기로서, 또 이듬해의 풍농을 기리는 시기로서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농경사회(農耕社會)에서 음력 보름(음력 15)의 만월(滿月=보름달), 농사의 풍작(豐作=곡식이 잘되어 풍년이 드는 일)을 비롯하여 풍요(豐饒)와 다산(多産)을 상징하며 대단히 중시되었습니다. 추석(秋夕)은 만월(滿月=보름달)이 뜨는 보름날입니다. 만월(滿月)인 보름달은 곡물로 치면 수확 직전의 알이 꽉 찬 모습과 닮았습니다. 그래서 추석(秋夕)을 달의 명절이라고도 합니다. 곡물 농사는 싹이 돋아 꽃이 피고 만개하여 열매가 익으면 거두어들입니다. 이는 한해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해마다 반복, 순환하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재생(再生=다시 태어남) 하는 것인데 이는 생성(生成=사물이 생겨남. 또는 사물이 생겨 이루어지게 함)과 소멸(消滅=사라져 없어짐)을 반복하는 달의 속성(屬性=사물의 특징이나 성질)과도 같은 것입니다.

초승(음력으로 매월 초)에 소생(蘇生=다시 살아난다)한 눈썹 모양의 초승달은 점점 차올라, 보름에(음력 15) 생명력의 극치(極致=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를 보여주다가, 그믐(음력으로 그달의 마지막 날) 무렵이면 자취를 감추었다가 이어서 다시 초승에, 소생(蘇生)하여 차고 기움이라는 순환을 반복합니다. 이는 죽음과 삶의 반복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곧 재생(再生=다시 살아남)하는 속성(屬性=사물의 특징이나 성질)을 의미(義味=어떤 일이나 행동 따위에 담겨 있는 뜻이나 의도)합니다. 농경사회(農耕社會)에서는 이러한 달의 재생(再生)과 농사의 재생적인 속성을 같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달의 모양 가운데서도 풍요를 상징하는 만월(滿月=보름달)은 중요하며 음력 만월명절(滿月名節=음력 보름 명절)은 당연히 중시(重視=소중하고 요긴하게 여김)됩니다.

이렇게 추석(秋夕)1년 중 가장 큰 만월(滿月=보름달)을 맞이하는 달의 명절로서, 농경민족(農耕民族)으로서 수확의 계절을 맞이하여 풍년을 축하, 감사하며, 조상에게 천신(薦新=철을 따라 새로 난 과일이나 농산물을 조상신에게 먼저 올림)하고, 조상의 묘를 찾아서 성묘(省墓)하며 추원보본(追遠報本=조상의 덕을 추모하여 자기의 근본을 잊지 않고 제사를 지내며 은혜를 갚음)하였고, 명절의 기쁨에 넘쳐 여러 가지 놀이가 있어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였으며, 신을 섬기고 풍, 흉을 점복(占卜=점을 치는 일)하였습니다. 풍성한 음식을 서로 교환해서 후한 인심을 보였고, 농한기를 이용해서 놀이하고 근친(覲親=친정에 가서 어버이를 뵘)하는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자료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다음 백과, 한국 세시풍속 사전.

대구광역시 북구 금호강 하중도 하면 코스모스가 유명하게 알려졌지요. 코스모스 못지않게 올해는 백일홍이 아름답게 피었답니다. 백일홍은 무더운 여름에도 아름답지만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초가을에도 여전히 아름다움을 더하여 줍니다.

선선한 가을바람이 얼굴을 스치며 지나는 기분 좋은 계절인 초가을에 우리 민족  최대 명절인 한가위 날이 밝았습니다. 지금쯤 가족들이 함께 조상님들에게 차례상을 올린 후,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정담을 나누며 즐겁게 지내시고 있겠지요한가위 날인 오늘, 동쪽 지역은 흐리고 비가 이어져 휘황찬란한 보름달을 보기가 쉽지 않지만, 서쪽과 남쪽은 구름 사이로, 한가위 보름달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기온이 평년보다 높아 한결 온화한 명절이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풍요로움이 넘치는 한가위 명절 연휴 잘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