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9월 9일 중양절(重陽節).
중양절(重陽節) 절은 음력(陰曆) 9월 9일을 가리키는 날로 날짜와 달의 숫자가 같은 중일명절(重日名節)입니다. 중일명절(重日名節)은 음력(陰曆) 3월 3일, 5월 5일, 7월 7일, 9월 9일일 같이 양수(陽數)인 홀수가 겹치는 날에만 해당하므로 이날은 모두 중양(重陽)이지만, 이 중에서도 특히 음력(陰曆) 9월 9일을 중양(重陽)이라고 하며 다른 말로 중구(重九)라고도 합니다. 옛날부터 음양(陰陽) 철학적인 사상에서 음력(陰曆) 9월 9일을 중양절(重陽節) 또는 중구절(重九節)이라고 합니다.
또 중양(重陽)이나 중구(重九)는 홀수 곧 양수(陽數)인 ‘9’가 겹쳤다는 뜻으로 원정(元正=음력 1월1일), 상원(上元=정월대보름, 음력 1월 15일), 상사일(上巳日=음력 3월 3일 삼짇날), 한식(寒食=양력 4월5일~6일), 단오(端午=음력 5월 5일), 추석(秋夕=음력 8월 15일), 중구일(重九日=음력 9월9일), 팔관회(八關會=음력 10월), 동지(冬至=양력 12월 21일~22일)와 함께 고려시대(高麗時代)에는 9대 속절(俗節=명절)의 하나였습니다. 중양절(重陽節)을 ‘궐(厥)’이라고 부르는 지방도 있습니다. 음력(陰曆) 삼월 삼짇날에 중국 남쪽 강남(江南)에서 온 제비가, 음력(陰曆) 9월 9일 중양절(重陽節) 무렵에 다시 따뜻한 강남(江南)으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또 가을 높이 떠나가는 철새를 보며 한 해의 농작물 수확(收穫)을 마무리하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중양절(重陽節)의 유래(由來).
중양절(重陽節)은 고대 중국에서 유래한 명절로, 중국에서도 매년 음력 9월 9일에 행하는 한족(漢族=중국 본토에서 예로부터 살아온 종족으로, 중국의 중심이 되는 민족)의 전통(傳統) 절일(節日=명절과 국경일을 통틀어 이르는 말) 입니다. 중양절(重陽節)은 중국에서는 한대(漢代) 이래 오랜 역사가 있으며, 상국(賞菊), 등고(登高), 시주(詩酒)로 즐겨 온 날이었습니다. 당(唐)나라와 송(宋)나라 때에도 관리들의 휴가일로서 추석(秋夕)보다 훨씬 성대한 명절이었습니다. 특히 등고회(登高會)는 중양절(重陽節)의 중요한 행사인데 이날 우산(牛山)에 올라 눈물을 흘렸다는 제(齊)나라 경공(景公)에 대한 기록을 근거로 중국에서는 이미 전국시대(戰國時代)부터 행해졌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내려오는 전설에 동한(東漢) 때 앞날을 잘 맞추는 비장방(費長房)이라는 도인(道人)이 어느 날 학생(學生)인 항경(恒景) 에게 “자네 집은 9월 9일에 큰 난리를 만나게 될 터이니 집으로 돌아가 집사람들과 함께 수유(茱萸=산수유 열매)를 담은 배낭을 메고 높은 산에 올라가 국화주(菊花酒)를 마시면 재난을 면할 수 있네.”라고 말했습니다. 항경(恒景)이 음력(陰曆) 9월 9일 도인(道人)이 시킨 대로 가족을 데리고 산에 올라갔다가 집에 돌아오자, 집에서 키우던 가축(家畜)들이 모두 죽었다고 합니다. 중양절(重陽節)에 수유(茱萸) 주머니를 차고 국화주(菊花酒)를 마시며 높은 산에 올라가는 등고(登高) 풍속(風俗)은 이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수유(茱萸) 주머니를 차는 것은 나쁜 기운을 제거하기 위해서이고, 국화주(菊花酒)를 마시는 것은 노화(老化) 현상을 막기 위한 것이라는 기능적인 해석도 있습니다.

경주시(慶州市) 서악동(西岳洞) 삼층석탑(三層石塔) 위쪽에 있는 구절초(句節草)밭입니다. 이 고분(古墳)은 신라(新羅) 왕족(王族)의 무덤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경주시(慶州市) 서악동(西岳洞) 삼층석탑(三層石塔).
경주시(慶州市) 서악동(西岳洞) 삼층석탑(三層石塔)은 통일신라(統一新羅) 시대(時代)에 건립된 석탑(石塔)으로, 경상북도(慶尙北道) 경주시(慶州市) 서악동(西岳洞) 태종(太宗) 무열왕릉(武烈王陵) 동북쪽 경사진 언덕에 있는 통일신라 시대(統一新羅時代) 문화재(文化財)입니다. 삼층석탑(三層石塔)이 위치한 자리는 통일신라 시대(統一新羅時代)에 영경사(永敬寺)라는 절이 있었던 곳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서악동(西岳洞) 삼층석탑(三層石塔)은 당시 영경사(永敬寺)의 중심 건축물 중 하나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영경사(永敬寺)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많지 않지만, 이 지역이 신라(新羅) 왕릉(王陵)과 고분군(古墳群)이 밀접한 역사적 중심지였던 만큼, 중요한 사찰(寺刹)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학계에서도 보고 있습니다. 삼층석탑(三層石塔) 뒤쪽과 주위에는 신라 29대 왕인 태종무열왕릉(太宗武烈王陵)을 비롯하여 왕릉(王陵)과 왕족들의 고분(古墳)이 많이 분포(分布)하고 있습니다.
서악동(西岳洞) 삼층석탑(三層石塔)은 통일신라 시대(統一新羅時代) 모전탑(模塼塔) 계열에 속하는 탑(塔)으로써, 모전탑(模塼塔)은 전탑(塼塔=흙으로 구운 벽돌로 쌓은 탑)을 모방(模倣=다른 것을 그대로 본떠서 만들거나 옮겨 놓음)한 것으로,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아 올린 석탑(石塔)입니다. 바닥 돌은 낮게 받침돌을 깔고, 그 위에 쌓아 올린 탑의 기단(基壇=건축물이나 비석 따위의 기초가 되는 단)은 직사형 모양의 커다란 돌덩이 8개를 2단으로 쌓은 독특한 형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기단(基壇) 윗면에 1층 몸돌을 받치기 위한 1장의 평평한 돌이 끼워져 있는데, 현재 경주시(慶州市) 남산리(南山里) 석탑(石塔)에 3단의 층급이 있는 것에 비하면 간략화된 것입니다.
탑신부(塔身部=탑의 기단과 머리 부분 사이에 있는 탑의 몸체 부분)는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1장의 돌로 되어 있고, 1층 몸돌에는 남쪽 면에 큼직한 네모꼴 감실(龕室=불상을 모시는 방)을 얇게 파서 문(門)을 표시해 놓았습니다. 문(門)의 좌측과 우측에는 1구씩 금강역사상(金剛力士像=불교 사찰이나 석탑의 입구 좌우에 배치되어 악의 침입을 막는 역할을 하는 수문신장(守門神將)을 의미. 다른 말로 인왕상(仁王像)이라고도 한다)이 문(門)을 향해 조각되어 있습니다. 문(門) 모양 부분에는 문고리를 달았던 구명이 2개씩 남아 있습니다. 지붕돌은 벽돌처럼 아래 위쪽이 모두 계산식이고, 처마(석탑의 각 층의 지붕돌이 아래로 돌출된 가장자리(바깥쪽) 부분. 일반 건축물의 처마처럼, 비를 막거나 그늘을 만드는 기능은 없지만, 석탑에서는 장식적이고 구조적인 역할을 한다)가 평행한 직선을 이루고 있습니다. 석탑(石塔) 꼭대기의 머리 장식은 아쉽게도 모두 없어지고 없습니다. 통일신라 시대(統一新羅時代) 쌓은 서악동(西岳洞) 삼층석탑(三層石塔)은,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大韓民國) 보물로 지정된 귀중한 문화유산(文化遺産)입니다. 석탑(石塔)의 높이는 5.1m입니다.
큰 직사각형 돌을 쌓아 바닥 돌을 구성한 독특한 기단(基壇) 형식으로 미루어 보아 보물로 지정된 경주시(慶州市) 남산동(南山洞) 동(東), 서(西) 삼층석탑(三層石塔)을 모방(模倣)한 것으로 보이며, 통일신라(統一新羅) 후기(後期)의 석탑(石塔) 형식이 간략화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예로 평가됩니다. 그러나 경주시(慶州市) 남산리(南山里) 동(東) 삼층석탑(三層石塔)이 기단(基壇) 위에 3단의 층급을 둔 것에 비해, 서악동(西岳洞) 삼층석탑(三層石塔)은 바닥 돌 위에 놓인 몸돌 받침이 1단으로 줄어들고 크기도 작아진 형식을 하고 있어, 통일신라(統一新羅) 후기에 퇴화하는 과정에서 성립된 석탑(石塔)으로 추측됩니다. 또 각층의 몸돌에 비하여 지붕돌이 커서 균형이 맞지 않고 둔중(鈍重=둔화고 무겁다)한 느낌을 줍니다. 이러한 탑(탑)의 구조와 조각 기법은 당시 불교의 신앙과 예술적 감각을 잘 보여주며, 통일신라 시대(統一新羅時代) 경주 지역의 석탑(石塔)에서만 보이는 독특한 변천사(變遷史)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여겨집니다. ☻ 자료 출처=경주시 문화관광, 경주시 서악동 삼층석탑 현장 해설문을 참고로 하여 인용함.



◆중양절(重陽節)에 전해지는 풍속(風俗).
중양절(重陽節)은 우리나라에서도 신라시대(新羅時代)부터 경주(慶州) 월성(月城) 안압지(雁鴨池)의 임해전(臨海殿)이나 월상루(月上樓)에서 군신(君臣=임금과 신하)이 중구(重九)에 연례적으로 모여서 시(詩)와 가사(歌辭)를 짓고 품평(品評)하는 일종의 백일장을(白日場=글 짓는 솜씨를 겨루는 대회) 열었습니다. 특히 고려시대(高麗時代)에는 중구(重九)의 향연(饗宴이 국가적으로 정해져 있는 규례(規例=지켜야 할 규칙과 정해진 관례) 이였습니다. 또 내외 신하들과 송(宋)나라, 탐라(耽羅=삼국 시대 제주도에 있었던 나라), 흑수(黑水=중국 역사책에 전하는 말갈의 한 부족)의 외객(外客)들까지 중구(重九) 축하연(祝賀宴)에 참석하였습니다.
조선(朝鮮) 세종(世宗) 때에는 중삼(重三=삼을 거듭한다는 뜻으로, 음력 3월 3일 삼짇날을 이르는 말)과 중구(重九)를 명절로 공인하고, 중구(重九)를 무척 중요하게 여겨 나이가 많은 연로한 대신들을 위한 잔치인 기로연(耆老宴)을 추석(秋夕)에서 중구(重九)로 옮겼으며, 성균관유생(成均館儒生)들에게 인일(人日=음력 1월 7일), 상사절(上巳節=음력 3월 3일), 칠석절(七夕節=음력 7월 7일)에 실시하던 과거시험인 ‘절일제(節日製)’를 특별히 중양절(重陽節)에도 실시하여 이날을 기리기도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추석(秋夕)에 지내던 기로연(耆老宴)을 중구(重九)로 바꾸었다는 사례(事例)는 상징적(象徵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관(官)과 상류층(上流層)에서는 음양(陰陽) 철학적(哲學的)인 경향(傾向)을 많이 띠었고, 그것은 망월명절(望月名節=보름 명절)보다 중일 명절(重日名節)인 중양절(重陽節)을 성대한 명절로 여겼다는 것이 선명해지고 있습니다.
중양절(重陽節)에는 여러 가지 행사가 벌어지는데, 국가에서는 고려(高麗) 이래로 정조(正朝=음력 1월 1일 설날), 단오(端午=음력 5월 5일), 추석(秋夕=음력 8월 15일)과 함께 임금이 참석하는 제사(祭祀)를 올렸고 사가(私家)에서도 제사를 지내거나 성묘(省墓)했습니다. 또 양(陽)이 가득한 날이라고 하여 수유(茱萸) 주머니를 차고 국화주(菊花酒)를 마시며 높은 산에 올라가 모자를 떨어뜨리는 등고(登高)의 풍속(風俗)이 있었고 국화(菊花)를 감상하는 상국(賞菊), 건강과 장수(長壽)에 좋다는 국화주(菊花酒)를 마시거나 혹은 술잔에 국화(菊花)를 띄우는 범국(泛菊) 또는 황화범주(黃花泛酒), 시를 짓고 술을 나누는 시주(詩酒) 행사를 했습니다. 서울 사람들은 이날 남산과 북악에(北嶽=서울 북쪽에 있는 산) 올라가 음식을 먹으면서, 재미있게 놀았다고 하는데 이것도 등고(登高)하는 풍습(風習)을 따른 것입니다.
중양절(重陽節)에는 이처럼 제사(祭祀), 성묘(省墓), 등고(登高) 또는 각종 모임이 있었기 때문에 옛날 조정에서는 관리들에게 하루의 휴가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관리들이 자리에 없기도 하였지만 또한 명절이었으므로, 이날은 형(刑) 집행을 금하는 금형(禁刑)의 날이기도 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중양절(重陽節)은 농촌(農村)에서는 한창 바쁜 농번기(農繁期) 때였습니다. 남자들은 벼 수확을 하고, 여자들은 마늘을 심거나 고구마를 수확했습니다. 또 퇴비 만들기, 논물 빼기, 논 피사리 등은 남녀 공동 작업이었습니다. 지방에 따라서는 목화(木花)도 따야 하고, 또 콩, 팥, 조, 수수, 무, 배추 같은 밭작물의 수확이 겹치게 됩니다. 그러므로 농촌(農村)에서는 중양절(重陽節)이라고 하여 특별한 행사를 벌이기보다는 평상 때와 똑같이 보내는 곳이 더 많았습니다. 그러나 양수(陽數)가 겹친 길일(吉日)이므로 여유가 있는 계층(階層)에서는 중양절(重陽節)을 즐겼습니다. 등고(登高) 풍속이 그러하고 국화(菊花)잎을 따서 찹쌀가루와 반죽하여 국화전(菊花煎)을 부쳐서 먹는 것도 그 예가 될 수 있습니다.
추석(秋夕) 때 햇곡식으로 제사(祭祀)를 올리지 못한 집안에서는 뒤늦게 조상에게 천신(薦新=철을 따라 새로 난 과일이나 농산물을 신에게 먼저 올림)합니다. 떡을 빚고 집안의 으뜸 신(神)인 성주신(집을 보호하고 지키는 신)에게 밥을 올려 차례를 지내는 곳도, 있습니다. 전남 고흥의 한 지역에서는 이때 시제(時祭)를 지내는데, 이를 ‘궐제(厥祭)’라고 합니다. 옛날에는 마을마다 또는 두세 개 마을에 한 명씩 동네 단골무당이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연말(年末)이 되면 이장(里長)에게 이세를(里稅=마을 사람들이 마을의 무당에게, 내던 일종의 세금 또는 기부금) 내듯이 중양절(重陽節)이 되면 무당들에게 시주(施主=사찰의 승려 혹은 무당이나 당집 사찰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일)하는데, 이것을 하지 않으면, 다음 해에 탈이 있을 때 단골을 도움을 받지 못한다고 합니다. 또 중국 당(唐)나라에서는 중양절(重陽節)이 되면 나라에서 태학(太學)의 학생들에게 겨울옷을 하사하는(나누어주는) 의식이 있었습니다. 중양절(重陽節) 무렵이 겨울을 준비하는 적절한 때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중양절(重陽節)의 국화주(菊花酒)는 중국의 시인 도연명(陶淵明)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도연명(陶淵明)이 중양절(重陽節) 날 국화(菊花)밭에 무료하게 앉아 있는데 흰옷을 정갈하게 입은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손님은 도연명(陶淵明)의 친구가 보낸 술을 가지고 온 것이었습니다. 도연명(陶淵明)은 국화꽃과 함께 온종일 취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고려(高麗) 말(末)의 학자 목은(牧隱) 이색(李穡)도 중양절(重陽節)에 술을 마시며 도연명(陶淵明)의 운치를 깨달았는지 “우연히 울 밑의 국화(菊花)를 대하니 낯이 붉어지네, 진짜 국화(菊花)가 가짜 연명(淵明)을 쏘아보는구나.”라는 글귀를 남겼습니다. 당나라 시인 두목(杜牧)이 남긴 취미(翠微)의 시구에도 “이날 좋은 안주와 술을 마련해 놓고 친구들을 불러서 실솔시(蟋蟀時=귀뚜라미 시)를 노래하고 무황계(無荒戒=아무것도 경계할 것이 없다)를 익혔다고.” 했습니다.
제주도에서는 마마(天然痘=천연두)에 걸려 죽은 어린아이 귀신인명두(귀신인明斗=천연두를 앓다 죽은 어린 여자아이의 귀신)의 생일이라 하여 큰 굿판을 벌였고, 경남지방에서는 가을걷이가 끝난 논둑에 불을 놓았습니다. 또 봄에 담근 멸치젓을 이날 걸러 장(醬=간장)으로 쓰기도 하는 풍속(風俗)도 있었습니다.










◆중양절(重陽節) 의례(儀禮).
고려사(高麗史)에는 중양절(重陽節) 날 중구연(重九宴) 또는 중양연(重陽宴)을 열었다고 합니다. 특히 고려시대(高麗時代)에는 국가가 규례(規例)를 정하여 내외의 신하들과 송(宋)나라, 탐라(耽羅), 흑수(黑水)의 외객(外客)들까지 축하연(祝賀宴)에 초대하였다고 합니다. 조선시대(朝鮮時代)에는 임금이 사신(使臣)들에게 특별히 주연(酒宴=술을 마시며 즐겁게 노는 잔치)을 베풀었다고 합니다. 또 탁주(濁酒=발효된 술에서 청주를 떠내지 않고 그대로 걸러서 만든 흐릿한 술. 막걸리)와 풍악(風樂=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우리나라 고유의 음악)을 기로(耆老=육십 세 이상의 노인)와 재추(宰樞=예전에, 임금을 보좌하며 모든 관원을 지휘하고 감독하던 이품(二品) 이상의 벼슬을 통틀어 이르던 말)에게 내리고 보제원(普濟院=조선시대, 무의탁 병자나 환자를 무료로 치료해 주던 구휼(救恤) 기관)에 모여서 연회(宴會=축하나 위로, 환영, 석별 따위를 위하여 음식을 차리고 손님을 청하여 즐기는 일)하게 했습니다.
조선(朝鮮) 선조(宣祖) 때 예조(禮曹)에서 제향(祭享=나라에서 지내는 제사) 절차에 대해 아뢰면서 중양(重陽)이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조선시대에 다섯 가지 의례에 관하여 규정한 책)”에는 속절(俗節=명절)로 열거되어 있지 않지만, 이날 시식(時食)으로써 천신(薦新)하는 것이 고례(古禮)이므로 속절(俗節)에 해당하는 제사(祭祀)가 행해져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언적(李彦迪)은 봉선잡의(奉先雜儀)에서 정조(正朝=음력 1월 1일 설날), 한식(寒食=양력 4월 5일~6일), 단오(端午=음력 5월 5일), 중추(中秋=음력 8월 15일 추석)와 함께 중양(重陽=음력 9월 9일)을 속절(俗節=명절)로 여겨 아침 일찍 사당에 들러 천식(薦食=조상에게 음식을 올림)하고, 이어 묘(墓) 앞에서 전배(奠拜=조상에 묘를 향해 절을 함) 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문건(李文楗)의 묵재일기(默齋日記)를 보면 조선(朝鮮) 중기(中期)까지 사가(私家=일반 가정집)에서는 중양절(重陽節)은 등고(登高) 외에 간혹 간단한 천주과지례(薦酒果之禮) 곧 천신례(薦新禮) 있을 뿐 묘제(墓祭)를 행하는 한식(寒食)에 비하면 속절(俗節)로서 크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봉선잡의(奉先雜儀)는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이언적((李彦迪))이 저술한 예절에 관한 책입니다. 이 책은 제사 의식과 절차에 관해 서술한 책.
☻천주과지례(薦酒果之禮)는 하늘에 술과 과일을 올리는 의식을 의미합니다. 이는 조상에게 술과 과일을 바치며 존경을 표하는 간단한 제사 의식을 가리키는데, 특히 중양절(重陽節)에 행해졌습니다.
☻천신례(薦新禮)는 계절마다 새로운 음식을 조상에게 올리는 의식을 말합니다. 이는 조상에 대한 경의를 표하고, 계절의 변화를 기리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묘제(墓祭)는 조상의 묘소에서 지내는 제사를 의미합니다. 이는 조상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특정한 날, 특히 한식(寒食)이나 청명(淸明) 그리고 추석(秋夕) 같은 전통적인 명절에 행해지는 중요한 의식입니다.
이러한 의식들은 조선시대(朝鮮時代) 조상(祖上)을 기리고 자연의 순환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수행되었습니다. 천주과지례(薦酒果之禮)와 천신례(薦新禮)는 비교적 간소한 의식으로 중양절(重陽節)에 행해졌으며, 묘제(墓祭)는 한식(寒食)에 행해지는 것보다 중요한 제사(祭祀)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후기에 들어와 삼짇날과 중양일(重陽日)이 함께 또는 둘 중의 하나가 원래 중월(仲月=각 계절의 가운데 달로 음력 2월, 5월, 8월, 11월입니다.)에 복일(卜日=점을 쳐서 좋은 날)하여 행하던 사시제(四時祭)의 한 축으로 설정되는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 에는 조선시대(朝鮮時代) 전기(前期)까지는 시제(時祭)보다 기제(忌祭=사람이 사망한 후에 해마다 사망한 날인 기일(忌日)에 지내는 제사)를 중요하게 여기다가, 조선(朝鮮) 중엽(中葉)에 이르러 사대부(士大夫)들이 시제(時祭)를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는데, 일 년 4회의 시제(時祭)가 부담되었으므로 이를 춘추(春秋=봄과 가을) 2회로 줄여 봄에는 삼짇날에, 가을에는 중양절(重陽節)에서 지내는 자(者)가 많아졌다고 합니다.
☻사시제(四時祭)는 춘하추동(春夏秋冬=봄, 여름, 가을, 겨울)의 중월(仲月), 즉 음력 2월, 5월, 8월, 11월에 길일을 골라 부모로부터 고조부모(高祖父母)까지 한 해 4번 각 계절의 중간 달에 조상에게 지내는 것으로 가장 중한 제사이며, 제사 의식도 가장 완비되어 있습니다.
☻시제(時祭)는 우리나라 전통적인 제사 의식으로, 주로 음력 10월에 5대조 이상의 조상 묘에서 지내는 제사를 말합니다. 이는 한식(寒食)이나 10월에 정기적으로 묘제(墓祭)를 지내는 것을 일컫는데, 시사(時祀), 시향(時享)이라고도 합니다. 시제(時祭)는 조상을 기리고 추모하는 중요한 문화적 행사로, 가족 구성원들이 모여 조상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이 의식은 우리나라 사계절과 관련된 길일(吉日)이나 절일(節日)에도 행해지며, 제사(祭祀)의 절차와 내용은 매우 정교하게 이루어집니다.
중양절(重陽節)의 시제(時祭)는 조선 후기 이후 특히 영남지방에서 부조묘(不祧廟)를 모신 집안들을 중심으로 행해져 왔습니다. 유교(儒敎) 제례(祭禮=제사를 지내는 예법이나 예절)에서는 사대봉사(四代奉祀)라고 하여 4대가 지나면 사당(祠堂)에 모시던 신주(神主)를 묘(墓)에 묻게 되어 있으며, 나라에서는 부조(不祧), 즉 묘(墓)를 옮기지 않아도 된다는 허락이 있어야 사당(祠堂)에 신주(神主)를 두고 계속 기제사(忌祭祀=탈상 뒤 해마다 사람이 죽은 날에 지내는 제사)로 모실 수 있습니다. 이 부조(不祧)가 인정된 조상에 대한 시제(時祭)는 특히 중일(仲日)을 택하여 삼월 삼짇날이나 구월 중양절(重陽節)에 제사를 지내는데, 특히 중양(重陽) 때가 되어야 햇곡을 마련할 수 있었으므로 첫 수확물을 조상에게 드린다는 의미도 지닙니다. 영남지방에서는 중양절(重陽節)에 불천위제사(不遷位 祭祀)를 지내거나 성묘(省墓)하는 집안들이 간혹 있지만 날이 갈수록 더 귀해지고 있습니다.
●부조묘(不祧廟)는 조선시대에, 국가에 큰 공을 세운 인물이나 학덕이 높은 학자의 신주(神主)를 영구히 모시는 사당(祠堂)을 말합니다. 이는 불천위(不遷位), 제사(祭祀)의 대상이 되는 신주(神主)를 모신 곳으로, 본래 4대가 넘는 조상의 신주(神主)는 사당(祠堂)에서 꺼내 땅에 묻어야 하지만, 나라에 공훈이 있는 인물의 신위(神位)는 왕의 허락으로 옮기지 않아도 되는 불천지위(不遷之位)가 됩니다.
●불천지위(不遷之位) 제사(祭祀)는 큰 공훈(功勳)이 있는 사람을 영원히 사당에 모시도록 나라에서 허락하여 지내는 제사(祭祀)입니다. 이러한 것을 불천지위(不遷之位)라고 합니다. 불천지위(不遷之位)는 국가에서 정한 국불천위(國不遷位)와 유림에서 발의하여 정한 유림불천위(儒林不遷位) 혹은 사불천위(私不遷位)로 나누며, 일반적으로 국불천위(國不遷位)가 더 권위 있는 것으로 인정됩니다. 불천지위(不遷之位)를 모시는 사당은 부조묘(不祧廟)라고도 합니다. 이러한 제사(祭祀)를 불천위제사(不遷位祭祀) 또는 불천위대제(不遷位大祭)라고 합니다. 불천지위(不遷之位)는 계속하여 신위(神位)를 사당(祠堂)에 모시고, 기제사(忌祭祀)는 물론 묘사(墓祀)나 시제(時祭)를 지낸다는 점에 특징이 있습니다.
이처럼 불천위(不遷位)와 그에 대한 제사(祭祀)는 국가나 유림(儒林), 문중(門中)에서 정하는 공훈(功勳)이 있는 훌륭한 사람에 대한 예우이기 때문에 훌륭한 조상은 살아 있을 때의 지위에 따라 죽어서도 특별 대우받는다는 구조를 지닙니다. 또한, 죽은 이의 생존 때 업적(業績)이나 지위(地位)에 대한 평가를 받는다는 점에서 단순한 조상숭배(祖上崇拜)가 아니고 기념되거나 추도(追悼) 된다는 성격을 지닙니다. 불천위(不遷位)를 모시고 있는 문중(門中)의 처지에서 보면 조정(朝廷)이나 유림(儒林)에서 봉사(奉祀)할 만한 위대한 선조(先祖)를 가졌다는 영예(榮譽)가 주어지기 때문에 문중(門中) 성원(成員)들의 단결과 동질감(同質感)을 강화해 줄 뿐만 아니라 위세(威勢)와 우월감을 조장시키기도 합니다. 그래서 불천위(不遷位)가 있는 문중(門中)에서는 명조(名祖)를 두었다는 점을 자랑삼습니다.










◆중양절(重陽節)에 즐겨 먹는 절식(節食).
중양절(重陽節)에는 국화(菊花)가 만발할 때이므로 꽃을 감상하거나 국화주(菊花酒)를 빚거나 국화전(菊花煎)을 부쳐서 먹습니다. 또 유자화채(柚子花菜), 밤단자가 있습니다. 국화주(菊花酒)는 쌀과 감국(甘菊)의 꽃과 잎으로 담근 약주(藥酒)입니다. 또 약주(藥酒)에 국화꽃을 띄워 국화주(菊花酒)를 즐길 수도 있습니다. 화전(花煎), 화채(花菜), 술에 모두 쓰이는 국화(菊花)는 원예종(園藝種)보다 재래종(在來種) 감국(甘菊)이어야 향기도 좋고 오랫동안 싱싱함을 유지 할 수 있습니다. 국화주(菊花酒)는 그 향기가 매우 좋아, 많은 사람이 즐겼습니다. 또 가난한 사람들은 막걸리에 노란색 국화(菊花)꽃을 띄워서 즐겨 마셨습니다.
국화전(菊花煎)은 노란색 국화(菊花) 꽃잎을 따서 국화(菊花) 찹쌀떡을 만드는데, 그 방법은 삼월 삼짇날의 진달래 떡을 빚는 방법처럼 찹쌀가루를 반죽하여 둥글납작하게 빚어 국화(菊花) 꽃잎을 올린 뒤 기름에 지져낸 떡이지만, 봄철 삼짇날 즐겨 부쳐 먹는 화전(花煎)과 비슷하다고 하여 이름도 떡이 아닌 화전(花煎)이라고 합니다.
봄철 진달래 화전(花煎)은 율무를 많이 쓰는 반면 가을의 국화전(菊花煎)은 찹쌀가루를 많이 이용합니다. 잘게 썬 배와 유자(柚子), 석류(石榴)와 잣 등을 꿀물에 탄 것을 화채(花菜)라고 합니다. 유자(柚子), 화채(花菜)는 조선시대(朝鮮時代) 궁중음식(宮中飮食)의 하나로 국화전(菊花煎)과 곁들어 먹으면 제맛이 나는 음식이기도 하지만, 모두 중양절(重陽節) 제사(祭祀) 음식으로도 씁니다. 밤단자는 어린아이들도 좋아하는 음식으로 찐 찹쌀가루를 오래 치댄 후, 조그맣게 자르고 체에 내린 삶은 밤고물을, 소로 넣거나 겉에 묻혀서 빚습니다.
옛날 중국 양(梁)나라 사람 오균(五均)이 지은 서경잡기(西京雜記)에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 궁녀 가패란(賈佩蘭)이 9일에 이(餌) 떡을 먹었다.”라고 했는데, 이(餌)란 고(餻=경단) 즉 경단을 말하는 것입니다. 송(宋)나라 사람 맹원로(孟元老)의 동경몽화록(東京夢華錄)에는 “도시 사람들이 중구(重九)에 가루로 떡을 쪄서 서로 선물한다.”라는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 야생종(野生種) 산국(山菊)입니다. 매년 가을철이면 우리나라 산이나 들녘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토종(土種) 야생종(野生種) 국화(菊花)입니다. 산국(山菊)은 쓴맛이 강하여 주로 국화주(菊花酒)를 담아서 먹습니다.


우리나라 야생종(野生種) 감국(甘菊)입니다. 매년 가을철이면 우리나라 산이나 들녘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토종(土種) 야생종(野生種) 국화(菊花)입니다. 감국(甘菊)은 단맛이 강하여 꽃송이를 채취하여 말려 국화차로 이용하거나 국화전(菊花煎) 등 식용으로 많이 이용합니다. 특히 감국(甘菊)은 산국(山菊)에 비해 꽃송이가 더 큰 것이 특징입니다.




◆중양절(重陽節) 의의(意義).
추석(秋夕)이 햇곡으로 제사 지내기 이른 계절이 되어감에 따라 추수가 마무리되는 중양절(重陽節)에 중구(重九) 차례를 지내는 등 논농사의 발전에 따라 조상을 위하는 날의 의미를 더해갔습니다. 조선시대(朝鮮時代)에 이날 기로연(耆老宴=경로잔치)을 베풀었다는 사실은 장수(長壽)에 좋다는 국화주(菊花酒)를 마시는 것과 마찬가지로 국가에서는 물론 민간(民間)에서도 이날을 경로(敬老)의 날로 인식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일반농어민 사회에서는 어디까지나 추석(秋夕=음력 8월 15일), 백중(百中=음력 7월 15일), 정월대보름(음력 1월 15일) 등 보름 명절의 행사가 훨씬 성대하게 행하였습니다. 이에 반면 음력 9월 9일 중구(重九) 무렵에는 벼수확, 목화 따기 및 콩, 팥, 조, 수수, 참깨, 고구마, 감자에 무, 배추 등 김장 채소를 거두기까지도 겹치는 바쁜 농번기(農繁期)였으므로 중양절(重陽節)을 명절로 즐길 겨를이 없는 때였습니다. 그래서 중양절(重陽節)은 궁정(宮廷) 또는 선비들 같은 특수계급(特殊階級)의 절일(節日)이라고도 했습니다. 중양절(重陽節) 무렵에 단풍(丹楓)이 곱게 물들고, 등고(登高)와 상국(霜菊=서리가 내릴 때 핀 국화)에 알맞은 계절임은 분명하며 지금도 이 무렵에는 단풍구경꾼이 매우 많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요즘은 중양절(重陽節)의 명절(名節) 의식(儀式)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자료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 세시풍속 사전, 인터넷 검색.

























고양이 두 마리가 서로 마주 보며 영역 다툼을 벌이고 있습니다. 두 마리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기싸움을 하고 있지만 귀엽게만 보입니다.
올가을 날씨는 유난히도 변화무쌍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가을 날씨는 하늘이 맑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화창한 날씨가 연일 이어져야 들녘의 농작물의 결실을 좋게 해줍니다. 그러나 올가을 날씨는 잦은 가을비가 내려 농작물에 크고 작은 생채기를 많이도 남겼습니다. 그러고 보니 10월도 벌써 중반을 넘어 종반으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여기에 갑자기 기온이 떨어지면서 체감으로 느끼는 온도는 한결 낮게 느껴집니다. 아침저녁으로 일교차(日較差)가 심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건강관리 잘하세요.^^^
'우리나라 세시 풍속 명절과 절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오늘은 첫눈이 내린다는 절기(節氣) 소설(小雪)입니다. (54) | 2025.11.22 |
|---|---|
| 양력(陽曆) 11월 7일은 겨울이 시작된다는 입동(立冬)입니다. (65) | 2025.11.07 |
| 오늘은 찬 이슬이 내린다는 한로(寒露) 절기(節氣)입니다. (45) | 2025.10.08 |
| 음력(陰曆) 8월 보름(8.15)은 한가위 명절(名節)입니다. (32) | 2025.10.06 |
| 양력(陽曆) 9월 23일은 24절기 중 16번째 절기인 추분(秋分)입니다. (72) | 2025.09.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