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산행 기행문

경남 남해 대방산.

풀꽃사랑s 2016. 10. 3. 20:28

제주도, 거제도, 진도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인 남해 도는 보물섬이라 하여도 손색이 없다. 푸른 바다와 어우러지며 수려한 산세를 품고 있는 남해 도는 애초부터 큰 섬과 작은 섬인 창선도로 구분되는 2개의 큰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1973년 남해대교가 바다를 가로질러 큰 섬과 연결되면서 육지가 되었다고는 하나 아직도 섬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곳이다. 남해군의 진산이라 할 수 있는 망운산을 비롯하여 금산, 호구산, 송등산, 괴음산, 설흘산, 응봉산 등 이름난 명산들을 큰 섬이 품고 있다. 이웃에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 작은 섬 창선도는 남해대교가 놓인 지 약30년이 지난 2003년도에 한려해상 국립공원에 있는 정선도와 삼천포 사이의 3개의 섬을 나란히 잇는 다섯 개의 다리가 차례로 놓이면서 섬이 아닌 육지가 되었다. 종전에 여객선을 타고 푸른 바다를 보며 나도 모르게 가슴 설레며 섬을 찾았던 감동은 이제는 느낄 수가 없다. 그러나 바다를 가로질러 놓여 있는 연 육교를 버스를 타고 건너는 재미는 쏠쏠하다. 이번 산행 길은 최근에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한 창선도 대방산이다. 탐방 길은 해안선을 따라 시원스럽게 이어지는 국도3호선과 77번 국도가 훤하게 내려다보이는 율도 고개에서 시작한다. 고갯마루에는 이곳을 찾는 산 꾼들이 쉬어 갈 수 있게끔 아담한 정자가 자리하고 있다. 북서쪽과 동쪽으로 드넓은 바다 위에 속살을 드러낸 새파란 가을 하늘이 살포시 내려앉았다. 물결조차 일렁이지 않는 바닷물 위에 점점이 떠있는 굴 양식장의 새하얀 부표들이 장관이다.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이 마치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던 갈매기가 고단한 날개를 접고 무리를 지어서 내려앉아 있는 듯하다. 북으로 연태산이 터줏대감처럼 들어 앉아 있고 산비탈을 따라 줄지어 들어서 있는 손바닥만한 밭에서는 정겨움이 물씬 풍긴다. 밭에는 요즘 좀처럼 보기가 어려운 조들이 무거운 고개를 숙이고 알알이 여물어 가고 있다. 주로 벼가 재배되지 않는 산골오지에서 아니면 제때 모내기를 하지 못한 논에 벼를 대신하여 메밀과 함께 재배하던 농작물이다. 노랗게 익어가는 조를 보니 유년시절 어머니께서 좁쌀로 밥을 지어서 주시던 옛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남쪽으로 올라서는 평평한 구릉지로 이루어진 푸른 언덕에는 억새꽃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에 휘날리며 서로 몸을 비벼 되며 어지럽게 군무를 춘다. 따가운 햇볕이 내리쬐는 여유로움이 가득한 한낮에 보는 갈색의 억새꽃은   또 다른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거칠고 억샌 억새 풀잎 사이로 둥근이질풀 꽃송이가 살며시 고개를 내민다. 이른 봄에 새싹이 돋아나 무더운 여름을 보낸 왕고들빼기, 보라색의 작은 꽃송이가 작은 구슬처럼 주렁주렁 달린 무릇이 섬을 찾아온 나그네를 반긴다. 살갗을 애무하는 선선한 바닷바람이 피로에 지친 몸과 마음을 가뿐하게 하며 기분까지 상쾌하게 해준다. 오솔길처럼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올라서니 시멘트로 포장된 수레길이다. 멀리서 보면 섬 전체가 해송들이 빼곡하게 들어서는 듯하지만 실제로 올라서니 전국 방방곡곡 어디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참나무와 잡목들이 더 많다. 해발이 500m미터가 채 되지 않는 산이라 하지만 육지의 1000m미터 높이의 산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올라서면 설수록 높이를 더하는 언덕길이 몸을 지치게 할 만큼 얄밉지만 마음은 벌써 또 다른 그리움을 향해서 달려간다.   여인의 늘씬한 종아리처럼 미끈하게 잘 빠진 편백나무 숲이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여 주니 산행의 즐거움이 두 배가 된다. 이마에서 굵은 땀방울이 뚝뚝 떨어질 무렵 앞이 탁 트인 바위 전망대에 올라선다. 저 멀리 서쪽11시 방향에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눈에 익은 산이 모습을 드러낸다. 작년 이맘때 올랐던 하동 금오산이다. 섬과 육지를 사이에 두고 푸른 물이 그득한 바다는 꼭 커다란 호수를 보는 것만 같다. 울퉁불퉁한 리아스식 해안선을 따라 크고 작은 섬 들이 둥근 유선형으로 돌출되어 있다. 높이가 거의 비슷한 산봉우리 형상을 하고 가지런히 옹기종기 놓여 있는 보석 같은 섬들.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이 마치 무리를 지어서 열심히 바닷물을 가르며 헤엄치고 있는 거북이 등 같다. 북쪽 12시 방향에는 삼천포 화력발전소와 그 뒤쪽에 와룡산이 검푸른 실루엣으로 눈도장을 찍는다. 동쪽 3시 방향으로 눈길을 주니 동대만 해안선을 따라 높이가 고만고만한 산봉우리들이 점점이 바다 위에 놓여있는 섬처럼 일렬로 줄지어 서서 맞은편 산줄기를 응시하며 들어앉았다. 봉우리마다 싱그러운 초록의 푸른 숲은 수채화 같은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다. 바위 전망대에서부터는 호젓한 능선길이다. 해발358.2m미터인 속금산 정상은 그 흔한 정상석 조차 없다. 잡목들만 울창한 속금산 정상을 뒤로하고 부드러운 능선 길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서는 길은 흙먼지만 날린다.   가을 가뭄이 심해서 그런가! 능선에서 만나는 보라색의 층꽃 꽃잎도 시들어 있다. 조그마한 꽃송이들이 탑을 쌓아 올리듯이 층층이 올라가면서 비좁은 바위틈에 피어 있는 것이 앙증맞다. 육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취나물이 섬에서 자생하고 있는 것을 보니 신비스러움마저 느껴진다. 개미취를 닮은 하얀색의 꽃송이가 이채롭다. 동서를 가로 질러 널찍한 수레길이 지나가는 산두곡재에는 전주이씨 재실이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다. 현대식 건물의 기와집은 산속에서 볼 수 있는 사찰을 연상케 한다. 제실 앞쪽 풀밭에 방긋 웃고 있는 금불초의 작은 꽃송이마다 행복함이 가득 담겨있다. 여기서부터는 한적한 임도 길을 따라 울창하게 우거진 원시림의 숲길을 따라 산림욕을 즐겨본다. 길섶 잡초 속에서 강원도 깊은 산골에서 보았던 등골나물과 같은 종류인 골등골 나물이 가던 발걸음마저 멈추게 한다. 꽃송이는 똑같지만 잎이 서로 다른 것이 특징이다. 이른 봄에 꽃이 피지 않았을 때는 푸른 잎만 보아서는 그냥 흔한 잡초로 여기고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계절이 바뀌고 꽃들이 송송 피어나는 것을 보고서야 산나물임을 알게 된다. 대자연속에는 이렇게 우리가 모르는 신비스러움이 숨어 있다. 풀숲에서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향긋한 풀 내음이 코끝을 자극한다. 끝이 보이지 않을 듯이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 국사봉으로 발걸음 옮긴다. 쉽게 올라설 것만 같았던 국사봉으로 올라서는 길이 오늘 따라 나의 인내심을 시험하기라도 하는 것일까! 갑자기 온몸에서 힘이 쭉 빠져 버린다. 시원한 산들바람이라도 불어주었으면 좋으련만! 날씨는 가을이 아닌 여름을 방불케 할 정도로 매우 덥다. 국사봉 정상에는 커다란 바위 하나가 억새풀 속에 덩그렇게 앉아 있다. 한쪽 모퉁이 에는 돌로 나지막하게 담장처럼 원형을 그리며 차곡차곡 석 축을 쌓아 놓았고 가운데에는 묘의 봉분처럼 돌무더기가 소복이 놓여 있다. 봄에 호구산을 오르며 보았던 돌무덤을 연상케 한다. 이곳을 국사봉으로 부르는 연유는 저 둘 무더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국사봉을 지나면 헬기장이다. 산은 항상 정상을 쉽게 오르게 하지 않는다. 대방산 역시 헬기장을 지나면서부터는 급경사로 이루어진 언덕길로 올라서야 한다. 바람이라곤 없는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서있는 숲길은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다. 시원스럽게 펼쳐지는 바다를 보고 싶지만 그것마저 나무숲에 가려버렸다. 이곳이 오늘 산행의 백미구간이라 자랑을 하였더니만 나만 실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산딸기와 비슷한 산딸나무아래에는 붉은 열매가 많이도 떨어져 있다. 똑 같은 딸 나무이지만 후자의 열매는 식용으로 이용하지 못한다. 땅에 수두룩하게 떨어진 열매의 모양이 우리가 즐겨먹는 산딸기와 많이도 닮았다. 마지막 힘을 다해서 올라선 대방산 정상. 사면이 탁 트인 섬에서 둘러보는 독특한 풍광이 나그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산의 단풍은 북쪽에서 내려오고 들녘의 단풍은 남쪽에서 올라간다고 했던가!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이 초록의 잎사귀를 흔들어 되며 여름을 덜어내고, 푸른 잎들 사이로 어느새 노랗게 물들기 시작하는 가을을 소리 없이 내려놓았다. 나지막한 야산에 둘러 싸인 평평한 구릉지에 황금빛으로 곱게 물던 풍요로움이 넘치는 들녘이 장관이다. 멀리 북동쪽에 시계방향으로 양쪽에 대문처럼 산 능선들이 하늘 금을 그리고 중앙에 푸른 물이 넘실거리는 새파란 가을바다가 유유히 흘러가는 강줄기 같다. 해안선을 따라 들어앉은 낮은 지붕들을 이고 있는 마을들이 고향의 맛을 느끼게 한다. 남쪽 지족해협 너머 보리암을 품고 있는 금산과 맞은편에 다랭이 논과 암수바위로 유명하게 알려진 설흘산과 응봉산이 서로 얼굴을 맞대며 절경을 펼친다. 그 뒤쪽에 호구산 정상이 양떼 같은 하얀 구름이 드리워진 청명한 가을 하늘을 향해 높이 솟구쳐 있다. 저 멀리 청정 해역인 한려해상 국립공원에 자리하고 있는 섬들이 까마득하다. 꽃봉오리처럼 생겼다는 애칭답게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일품이다. 대방산 정상에서 북쪽으로 내려서면 돌을 쌓아서 아래쪽만 복원해 놓은 봉수대를 만나게 된다. 주변의 넓은 공터에는 꽃망울이 채 열리지 않은 며느리밑싯개가 별처럼 촘촘히 흐드러졌다. 꽃말이 알알이 영근 사랑이라는 이 꽃은 시골의 시냇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고마리와 잎과 꽃송이가 많이 닮았다. 깜찍한 애칭답게 꽃송이 또한 예쁘장하다. 꿀의 원천이라 불리는 고마리는 물을 정화시켜준다고 한다. 봉수대를 지나면 경사가 완만한 능선 길이 운대암 갈림길까지 이어진다. 고려시대 세워진 망경암(望景庵)을 둘러보고 싶었으나 하산 시간이 촉박하여서 둘러보지 못한 것이 많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의 문턱으로 들어서는 숲, 아직 단풍이 곱게 물들지 않은 온통 싱그러운 생명력이 철철 넘쳐흐르는 깊고 그윽한 숲. 크고 작은 나무와 돌, 바람이 함께 사는 곳, 옅은 물안개가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숲에서는 이슬방울 뚝뚝 떨어지는 아련한 그리움이 몰려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