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산행 기행문

충남 서산 가야산 석문봉 일락산 개심사.

풀꽃사랑s 2016. 10. 3. 20:24


남녘에 봄이 끝나갈 무렵 서산 가야산 석문봉을 찾아서 길을 나선다.

넉넉한 어머니 품처럼 서해바다를 품고 있는 내포 들녘은 지금쯤 한창 봄이 절정에 이를 때이다.

탐방은 대형버스 주차장에서 상가리 마을도로 길을 따라 5분 정도 북서쪽으로 올라서며 시작한다.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서있는 동편으로 불룩한 언덕이 들어 앉아 있다. 언덕길을 올라서면 기념물 제80호인 남연군묘이다.

남연군묘는 조선 고종의 생부 흥선대원군의 부친 묘이다. 현재 묘가 있는 자리에는 오래 전부터 가야사라는 절이 있었다.

절의 중심이자 금탑이 있던 자리가 이대천자지(二代天子地)라 하여 이 대에 걸쳐 왕이 나오는 명당자리라는 풍수설에

현혹된 대원군은, 마곡사의 두 스님을 시켜 가야사를 불 지르게 했다.

그런 다음 고려 때 나웅화상이 건립한 금탑을 허물고 부친의 묘를 경기도 연천땅 남송정에서 이곳으로 이장했다.

뒷날 도굴의 일을 염려하여 철수만 근을 붓고 강회로 비비고 봉분을 했다. 탑을 허물고 절을 폐한 것이 마음에 걸린 대원군은,

고종이 즉위한 몇 달 뒤에 가야골 상가리 마을에 한양에서 목수를 내려 보내 절을 짓고,

이름은 부처님 은덕에 보답한다는 뜻을 담고 있는 보덕사라 불렀다.


이후 조선 조정이 외국과 개화시기를 저울질 하며 혼란스러울 때인 1869년에 오페르트 도굴사건이 있었다.

먼 훗날 전주 이씨가 멸망한 후 묘소는 황폐화되었으나, 왕실 묘라 하여 후세사람들이 잘 보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곳이 명당이라 하자 호기심이 가득한 눈을 하고 모두들 한번씩은 묘를 둘러본다.

서쪽으로 내려서면 시멘트로 포장된 길 옆 널찍한 공터에 정자처럼 세워놓은 누각을 볼 수 있다.

안쪽을 살펴보면 상여가 놓여 있다. 남연군이 원래 묻힌 자리가 있던 경기도 연천에서 가야산자락까지 오 백리 길이다.

종실의 무덤을 옮기는 일이었으므로 상여는 한 지방을 지날 때마다 지방민들이 동원되어 옮겼다.

맨 마지막에 운구를 한 남은들 사람들에게 상여가 기증되었다고 하는데 여기에 보존 되어 있는 상여가 바로 그것이다.

시멘트로 포장된 수레길 을 따라 한쪽 모퉁이 풀밭에는 노란색 꽃송이가 탐스러운 민들레와 애기똥풀 그리고

유채꽃이 산뜻한 봄 맞을 느끼게 한다. 푸른 물이 가득한 저수지를 보며 북쪽으로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긴다.

바로 위쪽에 가야산 정상을 올려다보고 들어앉아 있는 저수지 제방에는 사진작가들과 관광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맑은 물에 얼굴을 비취는 산 그림자를 배경 삼아 사진을 찍으면 좋은 작품 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산기슭에는 수달래가 소담스럽게 꽃을 피웠고 병 꽃나무에 조롱조롱 매달려 아직 터지지 않은 초록색의 꽃망울이 앙증맞다.

북쪽으로 직진하여 가야산과 석문봉 중간으로 올라서는 능선 길을 따라 발품을 부지런히 팔며 올라선다.

약10분 정도 올라서니 널찍한 간이 쉼터이다. 어느 곳으로 올라도 석문봉으로 올라서게 되지만 이정표가 머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조그마한 바위들이 줄줄이 늘려 있는 능선 오름은 그리 녹녹하지 않다.

산중턱 곳곳에는 현호색을 비롯한 이름을 알 수 없는 야생화들이 많이 눈에 뛴다.

바위 틈새에 산 마늘처럼 잎이 넓은 식물을 보았는데 이곳 주민들은 그것을 촐랑이라고 부르며 약초라고 한다.

약40분 정도 올라서니 메인 등산로 이다. 그렇게 높아 보이지 않는 바위로 된 미니 전망대에 올라선다.

남쪽으로 바위능선 너머 가야산 정상에 들어선 한국 방송 원효봉 중계소가 빼 꼼이 얼굴을 드러낸다.

말 안장처럼 잘록하면서 평원을 이룬 산등성이에 하늘을 찌를 듯 삐쭉삐쭉하게 높게 솟은 중계 탑이 인상적이다.

암등을 머리에 인 산줄기는 장대하고 웅장하다. 북으로 끝이 보이지 않고 이어지는 금북정맥 마루금속에 이산의 진면목이 숨어 있다.

정상에서 남동쪽으로 지능선이 갈라지며 원효봉을 솟구쳐 놓았고 서쪽에는 고만고만한 높이를 한 봉우리들이 서로 자웅을 겨룬다.

하늘에는 짙게 드리워진 먹구름이 산 능선에 검은 그림자를 드리워 놓았다.

북쪽의 드넓은 서산평야 너머로 서해바다의 은빛모래사장과 푸른 바닷물이 어우러지며 진풍경을 빚어 놓았다. 이곳의 봄은 늦다.

파릇한 새싹이 돋아나는 산 중턱에는 새로운 새 생명이 움트고 있다.

아기자기한 암등에 서니 공룡의 잔등에서 천하를 호령할 듯 하고, 산의 높낮이를 잊게 된다.


지척에 태극기가 휘날리는 석문봉과 주 능선에서 갈라져 나온 지능선의 봉우리들이 산행의 운치를 더하여 준다.

암등이라 오르내림이 심하다. 커다란 가분수 바위가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계단처럼 생긴 움푹 페인 자리에 놓여 있는 자그마한 돌들이 앙증맞다.

군데군데 암봉을 넘어서 마주 오는 산 꾼들의 얼굴에는 함박 웃음꽃이 핀다.

가끔씩 만나게 되는 높게 치솟은 암등은 70-80도 되는 직 벽에 밧줄이 매어 있다. 수직 벽을 넘어서며 짜릿짜릿한 스릴도 맛볼 수가 있다.

벌써 가야산은 저만치 멀어진다. 어느새 석문봉 끝자락인가 했더니 커다란 석문 건너편에 우뚝 솟아 있다.

안부로 내려선 다음 우측으로 우회하여 올라선다.

석문봉 정상에는 충남 예산산악회에서 정상석을, 해미산악회에서 백두대간 기념으로 세운 돌탑이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다.

멀리서도 훤하게 보였던 태극기가 불어오는 봄바람에 힘차게 휘날린다. 석문봉은 가야산 봉우리 가운데 가장 바위가 많은 봉우리다.

남쪽으로 암등을 이루고 서남쪽은 깎아지를 듯한 단애를 형성하였다.

사면팔방이 탁 트여서 내포 들녘에 우뚝 솟아 있는 전망대이기도 하다.

내포라 함은 충남지방을 북동쪽에서 남서쪽을 대각선으로 양분하는 금북정맥 마루 금 서쪽지방이다.

여기에는 아산만과 천수만 사이의 아산, 예산, 당진, 서산, 홍성, 보령과 청양 일부를 통칭하는 말이다.

남쪽에 보이는 원효봉 중턱에 암자를 짓고 살았다는 원효대사는

그의 저서 원효결에서 『오서산과 성주산 사이는 산 모습과 줄기가 가장 뛰어나 나라의 내장부와 같아 내포라 한다.』라는 기록을 남겼다.

 

이 일대는 산은 적고 들은 넓다.

조선반도 남북을 오갈 때 거치는 길목이 멀어서 임진, 병자의 양대 전란 때도 그 파괴의 엄청난 불꽃이 비켜 지나간 천혜의 고장이다.

전국의 사찰을 다녀보면 임진병화에 불타지 않은 절을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개심사 절은 임진왜란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안전하게 남아 그 단아한 절 집을 오늘날까지 보여주고 있다.

현재도 가야산을 중심으로 하는 문화영역을 내포문화권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래서 그런가! 이곳에서 내려다보면 광활한 들녘과 시원스럽게 펼쳐지는 서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넓은 평야지인만큼 크고 작은 호수도 많다. 이것은 가야산이 넓은 들녘에 물을 대주는 젖줄이자 생명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갈수기에도 이산 주위에 있는 모든 저수지에는 맑고 푸른 물이 그득그득 담겨있다.

지나온 마루 금에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는 초목들이 하나같이 여린 새순들이다.

연두색과 초록으로 곱게 물들기 시작하는 숲이 이색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늘씬하게 이어지며 꿈틀대는 산 능선은 계룡산 자연성릉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석문봉에서 능선이 크게 두 갈래로 분기한다. 동쪽은 옥양봉으로 향하는 산줄기이고, 마루금은 북서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멀리 서해바다로 흘러가는 강물처럼 부드럽게 이어진다.

산불이 난 탓에 숲들이 많이 훼손되어 있다.

불이 나기 전에는 울창한 숲을 형성했던 곳이라 한다. 능선 아래쪽에 평평한 곳에 널찍한 쉼터가 있다.

쉼터를 지나 잡목 숲길을 따라 5분 정도 발걸음을 옮기면 선홍색의 붉은 꽃송이가 탐스러운 복사꽃이 유년시절 고향의 향수를 느끼게 한다.

여기서부터 한적하고 호젓한 송림 숲길이다. 동서로 길게 임도 길이 가로 놓여 있는 사잇고개를 앞에 두고 또 다른 간이 쉼터가 있다.

2년 전 진달래가 한창 만발할 때 이곳을 지나며 가족들과 함께 봄 나들이를 나온 꼬마를 보았던 곳이다.


초롱초롱한 꼬마의 눈매를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동쪽으로 내려서는 길은 용현 자연 휴양림이다.

더 내려서면 백제의 미소로 유명하게 알려진 삼존 마애불이 있다. 서쪽은 일락사 절과 주차장으로 내려서는 길이다.

능선으로 올라서는 입구에 자연 휴양림 표지판이 인상적이다.

검정색의 갈래 소나무들이 즐비하게 서있는 숲길을 따라 올라서면 첫 번째로 만나는 아담한 바위 전망대이다.

높이 우뚝 솟은 석문봉이 여기서 보니 그 높이를 실감나게 한다.

정맥에서 동쪽으로 갈라져 나오며 우람한 옥양봉을 솟구쳐 놓은 산줄기는 사나운 호랑이가 눈앞을 응시하며 서있는 듯하다.

산비탈에는 새하얀 꽃송이로 아름답게 수놓았던 산 벚꽃이 서서히 지고 있다.

화사한 봄꽃이 한차례 지나간 자리에는 나무 잎들이 피어나 연두색의 초록 물결이 출렁인다.

빼곡한 송림 숲의 비좁은 틈새로 줄지어 나란히 서 있는 활엽수의 여린 새순이 황홀함에 빠져들게 한다.

양쪽으로 깊은 협곡을 이루는 산 중턱에 연두색의 초록신록은 호랑이의 얼룩무늬를 닮았다.

저 멀리 수덕사를 품고 있는 덕숭산 정상이 까마득하고 가지런히 누워 있는 금북정맥 마루금은 아련한 옛추억을 떠 올려준다.

아름다운 풍경에 도취(陶醉)된 채 제2전망대에 올라선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거리에 신록이 아름다움을 더하는 일락산 정상이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속에 깊은 인상을 남긴다.

도토리나무에 이제 막 터지기 시작하는 겨울눈이 자연의 신비함을 자아낸다. 일락산 정상에는 그 흔한 정상석 하나 없다.

제 멋대로 쌓아 놓은 나지막한 돌탑이 이곳을 찾은 나그네를 반긴다.

고단한 몸과 다리를 잠시 쉬어 갈수 있게 사각정자가 아담하게 놓여있다.


몇 년 전 이곳에서 1대간 9정맥 산행 길에 나선 동료들과 쉬면서 기념사진을 찍은 곳이기도 하다.

주변의 모습은 하나도 변한 것이 없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변한 것이라곤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나이 들어 늙어가는 사람뿐이다.

정상에서 몇 발자국만 옮기면 오늘 정맥 마루 금에서 보는 마지막 전망대이다.

북쪽으로 만둥산 너머 금북정맥이 요동치고 발 아래는 여전히 서해 벌판이 지평선을 넘어 끝 간데 없이 펼쳐진다.

그 너머로 서해바다가 가뭇하다. 나지막한 야산에는 싱그러운 풀밭이 파릇한 초원을 이루는 삼화 목장이다.

이 목장은 충남 서산시 서산농협에서 한우 종축장으로 운영하고 있다.

면적은 무려 300만 평에 달하며 파릇파릇한 풀밭은 이국적인 풍경을 보여준다.

멀리 붕긋 솟아올라 있는 상왕산이 살짝 얼굴을 드러낸다.

서쪽으로 평평한 구릉처럼 들어 앉아 있는 산비탈에는 초록색으로 곱게 몸단장을 끝낸 아리따운 봄 처녀가 사뿐히 내려앉았다.

푸른 송림과 연두 초록색의 여린 새순이 함께 어우러지는 풍광이 화사한 봄 꽃 보다 더 가슴 설레게 한다.

만약 양쪽 어깨에 날개가 있다면 거침없이 창공을 향해 날아 오르고 싶은 유혹을 한 없이 느낀다.

전망대에서 내려서면 최근에 세운 듯한 고압철탑이 서있다. 주변에 심어 놓은 어린 소나무는 관리가 되지 않아 고사(枯死)한 것이 많다.

오솔길처럼 이어지던 마루금은 또 다시 널찍한 송림 숲 터널로 자리바꿈을 한다.

굴곡이라곤 없는 산책길이다. 땅에 떨어진 갈잎을 밟으니 발에 느껴지는 감촉이 한결 부드럽다.

호젓하고 운치 있는 송림 숲길은 조용하게 사색과 낭만을 즐기기에는 그만이다.

이런 길을 15분 이상 진행하면 펑퍼짐한 봉하나를 넘게 되는데 그 봉 이후에는 더욱 길 상태가 편안한 오솔길이다. 몇 분 후 황악리 갈림길이다. 서쪽의 황악리 방향에서 임도 길이 올라와 잠시 마루 금을 따라 이어지기도 하지만 동쪽으로 갈라지고 다시 호젓한 산길이다.

이길 또한 옛날의 임도 이지만 사용하지 않아서 그냥 오솔길로 남아 있다.

그야말로 평평한 대로길인데다 주변이 울창한 숲을 형성하여 정겨움을 더해준다.

산책코스로서는 아주 이상적인 요소를 갖추었다. 꿈길 같은 길을 걸으니 시간의 개념도 느끼지 못한다.

약20분 정도 진행하면 2번째 삼거리 갈림이다.


삼거리에서 5분 정도 발걸음을 옮기면 동편 숲 속에 팔각정 전망대가 아담하게 들어 앉아 있다.

송림터널을 따라 살짝 올라선 다음 널찍한 임도 길을 벗어나 서쪽 오솔길로 내려선다.

여기서 직진하면 삼화 목장으로 이어지는 정맥 마루 금이다.

조용한 오솔길을 따라 10분 정도 내려서면 아름드리 노송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숲 속에 하얀 꽃송이가 탐스러운

수달래가 무리를 지어 군락을 이루고 있다. 꽃길을 따라 부지런히 발 품을 팔면서 내려서면 개심사의 산신각이다.

산신각에서 몇 미터를 더 내려서니 우리나라에서 벚꽃이 가장 늦게 핀다는 개심사이다.

바깥쪽에는 아름드리 수목들이 울타리처럼 휘감아 돌며 짙은 녹음이 울창한 숲이 우거지고,

안쪽에는 진달래 철쭉, 벚꽃 나무가 사찰을 감싸고 있다.

서해 쪽으로 열린 공간을 바라며 심검당과 무령수전이 대웅보전을 떠받치고 있는 형상을 하며

1300년 고격을 간직한 전각들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대웅전 앞마당 중앙에는 5층 석탑이 아담하게 서있다. 남쪽으로 범종각과 안양루, 해탈문이 자리 잡고 있다.

개심사는 일반 사찰과는 달리 건물의 배치가 일직선이 아니고 대웅전을 비롯한 부속건물이 서로 둘러싸듯 옹기종기 독특하게 배치되어 있다.

개심사의 명부전은 절의 규모에 비해 유난히 크다.

명부전은 지상보살을 중심으로 죄의 유무를 가리는 염라대왕을 비롯한 지옥을 다스리는 열명의 왕 외에 사이사이에 동자승이 있다.

아이들처럼 무구한 마음으로 살면 지옥의 고통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가르침이 아닐지 생각해본다.

안쪽을 들여다보면 좌우에 사람과 같은 크기의 험상궂은 얼굴을 하고 있는 사자 상을 세워 두었다.

전생에 지은 업이라도 있는 것일까?  등골이 오싹하다. 건물을 찬찬히 살펴보면 목재들이 눈길을 끌게 한다.


특히 대웅전 좌측에 있는 심검당은 대범함과 소박함을 함께 전해주는 독특한 분위기를 품고 있다.

화려한 단청은 없지만 휘어진 목재를 그대로 기둥과 대들보로 쓴 것이 당연 돋보인다.

크고 잘난 것만 추구하는 현세에 보여주는 의미는 더 더욱 깊이가 느껴진다. 반듯하고 보기 좋은 목재는 손으로 꼽을 만큼 적다.

모두 울퉁불퉁한 자연 그대로 생긴 것을 껍질만 벗겨서 기둥을 세우고 서까래를 얻었다.

한마디로 말해 소박함이 물씬 풍긴다. 대웅전 뜰 아래에는 경지(鏡池)라는 직사각형의 연못이 있다.

사람이 인공적으로 만든 연못으로 상왕산의 모양이 코끼리 형국이라, 코끼리의 갈증을 풀어주기 위해 만든 것이라 전해진다.

경지(鏡池)란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란 뜻이다.

봄이면 떨어진 벚꽃송이가 한번 더 꽃을 피우고, 여름이면 배롱나무 꽃 그림자가 수련과 조화를 이루는 연못이다.

명부전과 대웅전 사이의 파란색의 함석지붕은 일엽 스님이 세운 요연선원(了然禪院)이다.

건물의 용도는 비구니 스님들을 정진케 했던 곳이다. 사찰경내에는 벚꽃길이 따라 없다.

주변이 모두 울긋불긋한 꽃 대궐이다. 절의 명부전 앞에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푸른빛이 도는 청 벚꽃이 있다.

아름드리 왕벚나무에 피는 꽃송이가 어린아이 주먹만하다.

하얀 꽃송이가 피어있는 나무를 올려다보면 하늘에서 구름송이가 살며시 내려와 머물고 있는 듯한 풍경이 장관이다.

 뜰 앞에는 순백색의 겹 벚꽃송이가 갈길 바쁜 나그네의 발목을 잡고 놓아 주지 않는다.  

뒤뜰로 내려서니 이번에는 선홍색의 홍 벚꽃이 항상 가슴속  저편에 그리움으로 남아 있는 첫사랑의 옛 애인을 만난 듯한 기분을 들게 한다.

나이가 많은 고목과 젊은 나무에 핀 꽃송이들이 모두 질박한 아름다움과 화려함을 품고 있다.

스님들은 절에 피는 벚꽃을 ‘피안앵(彼岸櫻)’이라고 했다. 벚꽃이 극락을 상징한다고 하더니 이곳이야 말로 극락세계가 아닌가!

소담스럽게 핀 왕 벚꽃송이는 우화한 기품이 있어 보인다.


약800m미터 남짓한 호젓한 송림 숲길은 휘어진 돌계단이 놓여있다.

굽이굽이 따라 꾸불꾸불하게 내려서는 계단 길은 오히려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혼자만의 사색을 즐겨본다.

자연스러우면서도 균형 감 있게 배치된 돌들이 석수(石手)의 정성을 느끼게 한다.

허리를 굽혀 예를 갖추는 듯 축축 늘어진 소나무 가지가 운치를 더해 준다.

일주문 앞에는 좌측에 세심동(洗心洞), 우측에 개심사입구(開心寺入口)라는 글귀가 쓰인

다듬지 않은 자그마한 돌 두 개가 나란히 마주보며 서있다. 글귀를

그대로 해석하면 ‘마음 씻는 골짜기’ ‘마음을 여는 절’로 드는 문이란 말이다. 하지만 굳이 애써 마음을 씻고 열고 할 것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길 따라 몸을 맡기면 그리 되는 것이다. 마음을 움직이지 않아도 몸이 돌계단 숲길로 발을 옮겨 놓을 것이다.

그것이 자연의 섭리이자 이치이다.

제 아무리 문명에 길들여진 몸이라 할지라도, 자연 앞에서는 본래의 원시성을 회복한다고 하지 않는가!

일주문을 나서면 좌우에 고목이 된 느티나무 두 그루에 여린 연두색의 새순이 일품이다.

개심사는 신라진덕영왕5년(651년), 또는 백제 의자왕 14년(654년)에 혜감국사가 개원사(開元寺)라는 이름으로 창건 했다고 전해진다.

1,000년이 넘은 사찰인 셈이다. 고려 충정왕 2년(1350년) 중건하면서 이름을 개심사로 고쳤다고 한다.

조선 성종실록에 성종6년(1457년)개심사가 화재로 불타 없어진 것을 성종15년(1484년)에 중창을 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지금의 고풍 어린 건물은 이때 재건축된 건물이다. 대웅보전은 제법 높고 길게 다듬은 돌로 만든 기단 위에 얌전히 올라 앉아 있다.

절간 건물로서는 큰 편이 아니지만 기품이 제법 풍겨 나온다. 보물 제143호인 대웅전은 정면3칸의 건물로 단아함을 한 것 풍긴다.

수수하면서도 건축미의 극치라는 찬사를 받는다.

이외에도 영상회개불정(보물 제1264호)등이 있다.

대웅전 오른쪽에 남향으로 있는 명부전(문화재자료 제194호) 요사체인 심검당(문화재 자료358호)등

조선시대 때의 독특한 건축양식이 볼거리이다. 개심사에는 경허선사(1849-1912)가 1889년

이후 20여 년간 호서지방의 문수사, 서산부석사, 수덕사, 정혜사, 천장사등을 돌며

신기 어린 행동과 법문으로 선풍을 일으키고 다 닐 때 머물기도 했던 곳이다.


대한 불교 조계종 제7교구 본사인 수덕사의 말사이다.

가야산은 백두대간에서 분기하는 한남금북정맥이 속리산에서 갈라져 경기도 안성까지 와서

현재 칠장사가 있는 칠장산에서 한남정맥과 금북정맥으로 다시 갈라진다.

한남정맥은 수원, 김포로 달리고 금북정맥은 서남쪽으로 바다를 향하여 달린다.

처음에 안성 서운산, 천안 흑성산, 광덕산을 거쳐 청양 일월산까지는 한 방향으로 내려간다.

그러나 일월산에서 갑자기 방향을 바꿔 북진하기 시작한다.

정맥마루금과 나란히 이웃하고 있는 오서산(해발791m)이 금북정맥에서 가장 높은 산이나 아쉽게도 정맥에서 살짝 벗어 나있다.

따라서 제일 높은 산은 가야산(해발677.5m)이다. 오서산에서 수덕사가 있는 덕숭산을

지난 금북정맥은 가야산 석문봉에 와서 서산을 향하여 꿈틀거리며 태안반도 안흥진 앞바다로 달려가 그 맥을 다하고

서해 바다에 몸을 푼다.

서해안을 따라 내려가는 금북정맥은 백두대간에서 가지를 친 9개의 정맥중 산세가 가장 순화고 송림 숲이 아름다운 곳 중하나이다.

물이 풍부하여 아산만의 삽교천을 중심으로 하여 널찍한 내포들녘이 들어앉았다.

또한 태안반도를 비롯한 내포 문화권에는 수려한 풍광을 조목조목 볼 수 있는 곳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왕 벚꽃을 2년 전 5월초 태안읍에 있는 태안 여고 교정에서 보았다.

그 때 당시만 해도 처음으로 보는 꽃이라 이름을 알 수가 없었다. 다들 산줄기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 꽃에는 관심이 없었다.

남해 두륜산 대흥사 뜰에서 왕 벚꽃 나무는 보았지만 초봄이라 꽃은 보지 못했다.

이번에 산행 기를 쓰며 참고삼아 그때 기록을 찾다가 찍어 놓은 사진을 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인연이 닿으면 이렇게 우연히 만나게 된다는 것을 자연 속에서 배운다.

개심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충남 서산 일대에서만 봄이 되면 왕 벚꽃이 아름다울 정도로 아주 작고 한적한 절에 불과 했다.

근자에 정맥 산행이 붐을 일으키며 서서히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아직은 번잡의 때가 묻지 않은 소박하고 조용한 사찰이다.

남쪽은 벌써 여름을 방불케 하지만 대전을 비롯한 중부와 서울 북부지방인 강원도는 이제 막 봄이 절정이다.

유성톨게이트를 내려서니 선홍색의 화사한 영산홍 꽃송이가 눈을 즐겁게 한다.

계룡산 자연성릉을 비롯한 산등성이에는 긴 겨울을 난 나무들이

연두색의 색동옷으로 곱게 갈아입고 고운 자태를 뽐내고 들녘에는 수정같이 맑은 물이  철철 흘러넘친다.

잎이 파릇파릇한 풀과 쑥들이 흐드러졌다. 화사한 봄꽃이 지천에 피어나고 점점 짙어지는 녹음은 초록으로 출렁인다.

하늘에 뭉개 뭉개 드리워진 구름은 꽃송이를 보는 듯하고 아직 찬바람이 불어오는 내포들녘에 봄이 싱그럽게 익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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