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산행 기행문

전남 고창 화시산.

풀꽃사랑s 2016. 10. 3. 20:38

길옆의 싱싱한 은행나무 잎이 노란색으로 곱게 물들 때면 산 능선을 붉게 물들이던 단풍이 8부 능선 아래로 내려온다. 때를 맞추어서 활엽수 단풍들도 최고의 절정에 이르게 된다. 노랗게 물던 은행 잎은 붉은 단풍 못지 않게 길손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붉은 단풍도 좋지만 초가을부터 산과 들녘에 소박하고 수수한 꽃을 피우는 들국화 는 또 다른 맛을 느끼게 한다. 전북 고창 방장산 산기슭 아래에 약30만평의 넓은 면적에 300억 송이의 꽃을 피운 국화들이 길손을 반긴다. 비록 야생으로 자란 것이 아닌 사람이 정성스럽게 손길을 주어서 가꾸어 온 국화지만 들국화 못지 않게 향과 꽃이 아름답다. 끝이 보이지 않는 오색 찬란한 국화 꽃송이는 이곳을 찾은 길손의 마음을 황홀하게 한다. 울긋불긋 앙증맞은 크기의 국화꽃송이가 펼치는 현란한 군무는, 온 산을 불게 물들이는 단풍 잎을 보는 것만 같다. 한쪽에서는 주말 나들이를 나온 가족들이 함께 모여서 국화 꽃송이를 따는 손길이 정겹다. 진한 향기를 찾아서 날아온 벌과 나비들이 꽃송이에서 열심히 꿀을 모우는 모습이 정겹다. 국화들이 뿜어내는 향기에 듬뿍 취해보며 저물어 가는 가을 속으로 흠뻑 빠져본다. 광활한 고창의 들녘을 남쪽에 두고 화시산 끝자락인 성틀봉 주변의 죽림리와 상갑리 일대에는 무려447기의 고인돌이 밀집되어 있다. 드넓은 잔디밭에 점점이 뿌려진 크고 작은 고인돌들은 독특함 마저 느끼게 한다. 수많은 고인돌을 보면서 옛날 우리조상들의 매장 문화를 엿보게 된다. 고인돌 군락을 지나서 서쪽 임도 길을 따라서 올라서면 직업터(재)이다. 이재는 예전에 선운사 방면의 주민들이 고창을 오가던 큰 육로였지만 지금은 시골의 아늑한 임도 길이 되어있다. 양쪽에 세워진 두 장승만이 황량한 고개 마루를 지키며 서있다. 여기서 북동쪽으로 잡목과 낙엽이 빼곡한 산 길을 따라서 올라서면 회암봉 정상이다. 뚜렷한 특징이 없는 회안봉에 서니 북서 쪽으로 오베이 탐방로 아래에 있는, 운곡저수지 주변을 감싸고 도는 울창한 원시림의 버드나무 숲이 이국적인 풍경을 선물한다. 망개나무와 찔레나무가 발목을 잡는 능선을 내려서니 산내면과 고창을 오가던 행정치이다. 스산하게 불어오는 가을 바람을 맞으면서 갈 길을 재촉하여 올라서면 잡목만이 무성한 옥녀봉이다. 아무도 찾지 않는 이 산속에 고요한 적막만이 흐른다. 다만 동쪽에 있는 서해안 고속도로를 씽씽 달려가는 자동차 소리 만이 조용한 산속의 적막을 깨트린다. 키가 작은 참나무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산 능선에는 잎이 바싹 말라 버린 고사리들이 무리를 지어서 지천으로 널려 있다. 이른봄에 파릇한 새싹을 내밀쯤 산 나물채취 산행을 오면 아주 좋을 것 같다. 앞에 연두 색의 푸른 소나무 숲이 바위와 어울려 색다른 맛을 느끼게 하는 안부에 내려니 회안(回雁)재이다. 겨울 철새인 기러기들이 저 멀리 운곡지수지에 줄지어 내려왔다가 영산호로 다시 돌아간다는, 숨겨진 속 뜻을 품고 있는 회안재의 지명에는 조상들의 지혜와 해박함이 풍겨난다. 크다란 바위들이 입을 벌리고 있는 범바위를 지나면 하늘 높이 솟구쳐 있는 화시봉이 압권이다. 다들 저 높은 봉은 오리지 않고 그냥 비켜간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하지만 언제나 산은 굴곡이 많은 내 인생처럼 항상 오르고 내림이 존재한다. 운곡과 조양을 오가던 고갯길인 백운재는 길가던 나그네들이 목마름을 달래던 주막(酒幕) 터가 있던 곳이다. 그 옛날 주막 터는 자취를 감추어버리고, 아름드리 느티나무 두 그루와 돌탑만 외로이 남아 빈자리를 지키고 있다. 또한 고개 마루에는 한국전쟁 때 빨치산을 방어하기 위하여 쌓아 놓았던 무너져버린 석축만이 남아 슬픈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나무꾼들이 지게에 무거운 나뭇짐을 지고 넘었다는 된재는 이름에 걸 맞게 험하고 가파르다. 수직의 바위 절벽이 깎아지를듯한 릿지 길을 올라서면 화시봉 삼거리이다. 삼거리에서 화시봉 정상까지는 약100m를 서쪽으로 더 발 품을 팔아야 한다. 사방이 확 트인 화시봉 정상은 모든 것이 한눈에 들어온다. 멀리 남에서 북으로 휘감아 돌아 소굴치에서 꼬리를 내리는 힘찬 산줄기는, 자연이 살아 숨쉬는 비단길이다. 백마(白馬) 등처럼 미끈하게 잘 빠진 능선에 뜨문뜨문 돌출된 거북바위, 촛대바위, 가마바위, 투구바위는 신선들이 노닐든 곳이라 여기도 좋을듯하다. 중앙에 형성된 긴 협곡에는 붉게 물던 단풍이 저물어가는 가을이 마냥 아쉬운 냥 제 몸을 불살라 마지막 꽃불을 지핀다. 누가 갈색 단풍이 곱게 물던 저 화시봉을 요염한 여인이 교태를 부린다고 했는가! 연두색의 푸른 송림 숲과 단풍 그리고 기암(奇巖)이 절경을 이루니 결코 그 말이 빈 말은 아니다. 하산 길에서 본 구절초는 갈길 바쁜 길손의 마음을 부여잡는다. 벌써 아침 저녁으로는 초겨울을 연상케 하는 추운 날씨인데 외롭게 서 있는 구절초 꽃 한 송이가 심금을 올린다. 꿈길 같은 산행을 마치고 장소를 선운사로 옮겨 약1시간 정도의 가벼운 트레킹은 황금 같은 소중한 시간이었다. 찬 서리 맞은 오색 단풍도 좋았지만 계절의 감각을 잊어버린 개망초 꽃도 좋았다. 이른봄부터 늦은 가을까지 파릇한 잎새를 자랑하는 녹차가 하얀 꽃을 피웠다. 화려하지 않은 새하얀 녹차 꽃에서 은은한 향과 소박한 아름다움을 본다. 꽃과 잎은 서로 만나지 못하여 서로가 애타게 그리워한다는 꽃무릇 꽃대가 쓰러진 자리에는, 새로 돋아난 푸른 잎이 싱그러움을 더한다. 저물어가는 가을의 끝자락 곱게 물던 단풍이 품 안에 살며시 안기는 선운사에서, 소리 없이 내 곁을 떠나가는 가을을 배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