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산행 기행문

전남 진도 조도, 돈대봉.

풀꽃사랑s 2016. 10. 3. 23:51

동서양을 막론(莫論)하고 새해맞이 행사는 각별(各別)하다.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와 유럽 그리고 북미에서는 하늘을 향해 폭죽을 쏘아 올리며 새해를 맞는다. 한국의 새해맞이 행사는 이웃에 있는 중국, 일본과는 또 다른 소박하면서도 서정적이며 독창적이다. 예부터 우리선조들은 이른 새벽 동해 바다에서 떠 오르는 새해 일출을 보며 서로 상대방과 덕담을 주고받으며 새해를 맞이 했다. 이 전통적인 풍습은 후손들에게 그대로 계승(繼乘)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삼면이 바다에 둘러싸인 한반도는 해안선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수려한 산세를 자랑하는 많은 산들이 전국 방방곡곡에 아담하게 들어 앉아 있다. 산뿐만 아니라 동해와 서해 그리고 남해의 짙푸른 바다 위에는 보석처럼 뿌려진 많은 섬들이 있다. 10년 전만 하여도 새해 일출장소는 산 정상이나 아니면 특정한 곳으로 한정되어 있었다. 하나 지금은 새해 일출 행사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대중화가 되었다. 지역마다 행사의 성격도 색다르게 열리고 있다. 전국을 일일 생활권에 들게 할 만큼 잘 정비된 도로망(道路網)과 나날이 발전을 거듭하는 운송체계는 많은 사람들이 즐기고자 하는 여가 생활의 욕구를 충족 시켰다. 뿐만 아니라 자연스럽게 일출 장소도 일정한 지역에서 탈피하여 여러 곳으로 다양하게 선택의 폭이 넓어 졌다. 경인년(庚寅年) 새해의 일출을 보고자 을축년(乙丑年)12월 마지막 날 저녁11시에 대구를 출발하여 전남 진도로 우리를 태우고 갈 애마에 승차한다. 요 며칠 몸과 마음을 움츠리게 하는 매서운 추위가 전국에 휘몰아치며 많은 눈을 내리게 했다. 해상에는 태풍을 능가는 폭풍이 불어와 바닷물을 요동치게 한다. 새해맞이 일출 행사는 이렇게 해마다 연례행사처럼 날씨와 한바탕 치열한 힘겨루기를 하면서 시작된다. 화려한 전등불빛과 네온사인이 대낮처럼 밝은 대구를 벗어난 애마는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남도로 숨 가쁘게 달려간다. 낮에 일에 시달린 고단한 몸을 의자에 의지하여 잠시 깊은 단잠에 빠진다. 얼마를 잤을까! 달리는 버스 창문을 스쳐가는 매서운 바람소리가 단잠을 깨운다. 일어나 앉아 창 밖을 내다보니 우리나라 최남단인 해남 에도 하얀 눈이 널찍한 들녘을 덮고 있다. 벌써 경인년 새해 새벽4시20분이다. 잠시 버스에서 내려 어둠을 밝히며 줄지어 서있는 가로등불빛아래 비춰지는 진도대교의 야경을 구경하면서 짧은 휴식을 취한다. 한양에서 천릿길 서해와 남해의 해류가 서로 만나는 중간지점 에 위치한 남도의 망망대해. 이곳에는 수많은 섬을 거느리며 아담하게 들어 앉아 있는 진도 섬이 있다. 육지와 섬을 사이에 두고 항상 일렁이는 바닷물이 길을 막고 있어서 뱃길이 아니면 왕래(往來)조차 할 수 없는 고립된 섬이었다. 옛날부터 나라에 중죄(重罪)를 지은 죄인(罪人)들의 유배지로 이용되었던 곳이다. 한번 들어가면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다는 애틋한 사연을 품고 있는 섬이다. 진도대교아래는 조선 선조30년(1597년)정유재란 때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포함하여12척 밖에 안 되는 함선을 이끌고 수군을 독려하며 왜군과 치열한 해상전투를 치렀던 울돌목이다. 모든 면에서 불리한 형국인데도 불구하고 조선을 침범한 왜선330여 척을 수장 시킨 곳이기도 하다. 자연의 힘을 적절하게 이용한 충무공의 뛰어난 지혜와 지략 그리고 탁월한 리더십에 머리가 절로 숙여진다. 울돌목은 전남 해남군 우수영과 진도군 녹진 사이를 잇는 가장 협소한 해협으로 폭이 약320m, 가장 깊은 곳의 수심이20m, 유속이 11노트(약24km)로 동양에서 최고로 빠른 곳이다. 바닷물이 빠지는 썰물 때는 굴곡이 심한 암초 사이를 사나운 파도처럼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소용돌이치는 급류가 흘러 배들이 운항하기 힘든 곳이다. 순식간에 흐르는 물살이 암초에 부딪치며 토해는 울음소리가 들린다고 하여 이 곳의 지명을 명랑(鳴粱)이란 애칭을 붙여 부르고 있다. 우리선조들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바다 물결위로 1984년10월18일 제1진도대교가, 2005년12월15일에는 허공을 가르는 둥근 아치형의 제2진도대교가 놓이면서 섬이 아닌 육지가 되었다. 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진도 대교가 놓이며, 지금은 낮과 밤의 황홀한 풍경을 보기 위해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는 아름다운 명소가 되었다. 여객선 터미널이 있는 팽목항에 도착하니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5시이다. 칠흑같이 어두운 바다에는 섬에서 밤을 밝히며 깜빡이는 붉은 전등 불빛이 활짝 핀 꽃송이를 보는 듯 아름답다. 오전6시 산악회에서 나누어 주는 아침을 겸한 따듯한 떡국 한 그릇으로 뼛속에 스며드는 겨울 추위를 녹인다. 야외에서 먹는 떡국이 꿀맛이다. 서서히 진도 팽목항에 어둠이 걷히기 시작하며 새벽이 찾아온다. 오전7시 조도행 페리호에 승선을 마친다. 7시30분 우리를 태운 배는 푸른 바닷물을 힘차게 가르며 미끄러지듯이 팽목항을 떠난다. 새해 아침 물결초자 일렁이지 않는 잔잔한 호수 같은 바다에서는 뽀얀 물안개가 아지랑이처럼 솔솔 피어오른다. 언제나 그렇듯 새해의 아침은 설렘이 가득하다. 날씨는 화창하지만 이른 아침 몸으로 직접 느끼는 체감온도(體感溫度)는 차갑기가 그지없다. 산봉우리처럼 붕긋하게 솟구친 섬 너머 동쪽 하늘이 서서히 붉게 물들기 시작한다. 추위를 아랑곳 하지 않고 여객선 갑판 위에 삼삼오오 모여 오순도순 정담을 나누는 많은 사람들의 얼굴에서는 함박 웃음꽃이 핀다. 모두 서남해 바다에서 올라오는 새해 일출을 기대하며 마음이 들떠있다. 구름한점 없는 하늘을 소원한다면 지나친 욕심일까! 아쉽게도 일출이 올라오는 동쪽하늘에 짙은 먹구름이 뒤덮고 있다. 그 러나 많은 사람들의 기다림을 하늘은 외면하지 않았다. 구름 사이로 찬란한 새해의 붉은 태양이 살짝 얼굴을 보여주며 방긋 미소 짓는다. 사람들은 저마다 환호성을 지르며 바다에서 떠오르는 새해 일출을 보며 마음속에 품고 있던 소원을 빈다. 환호와 기쁨도 잠시 살며시 얼굴을 보여주던 해님은 다시 구름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나오기를 반복한다. 시간이 지나며 잔잔한 바다 위에 구름 사이로 무지갯빛을 발산하는 따뜻한 새해의 햇살이 곱게 부서져 내린다. 눈앞에 서서히 오늘 탐방 길에 오를 조도 섬이 얼굴을 드러낸다. 동서로 길게 나래를 펼치는 능선 곳곳에 옹골차게 들어 앉아 있는 바위들이 예사롭지 않다. 배는 속력을 서서히 줄이며 조도의 어유포 항구에 정박(碇泊)한다. 새해 아침이라 그런가! 항구에는 오가는 사람조차 뜸하다. 전형적인 시골의 버스정류장을 연상시키는 수수한 항구의 표정이 오히려 정감(情感)이 간다. 항구에서 산행마을 까지는 걸어서 가도 좋지만 섬에서 운행하고 있는 마을버스를 이용한다. 조도 돈대봉의 탐방은 산행마을에서 마을 농로를 따라 남쪽으로 올라서며 시작한다. 섬답지 않게 마을 안쪽에는 널찍한 들녘이 펼쳐진다. 붉은 황토밭에는 겨울을 나고 있는 봄 무우가 지천에 늘려 있다. 간밤에 살포시 내린 서설(瑞雪)을 맞은 무우 잎은 매서운 추위를 아랑곳 하지 않고 파릇한 잎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무우뿐만 아니라 곳곳에 새파란 잎이 꼿꼿하게 서있는 드넓은 대파 밭도 장관이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해남에서 겨우내 해풍을 맞으며 시퍼런 배추들이 겨울을 난다는 봄동 이 있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다. 제주도가 아닌 남도의 또 다른 섬에 이와 비슷한 환경이 있다니 자연의 경이로움에 감탄사가 절로 나오며 새삼 놀라게 된다. 산행 마을은 전형적인 섬마을의 풍경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떨어지지 않고 다닥다닥 붙어 있는 몇 안 되는 집 그리고 돌로 가지런히 쌓아 올린 울타리가 정겹다. 밤새 살포시 내려앉은 서설(瑞雪)이 덮인 미끄러운 오솔길을 넘어지지 않으려고 외줄을 타는 광대가 곡예를 부리듯이 조심스럽게 올라선다. 억새가 우거진 풀숲에서 열심히 풀을 뜯고 있던 흑염소 두 마리가 인기척에 놀란 듯 잠시 경계 어린 눈빛으로 낯선 이방인을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돌린다. 경사가 그리 급하지 않은 완만한 언덕 오름 길로 올라서면 하늘을 향해서 장대하게 치솟은 손가락 바위가 앞을 가로막는다. 맞은편 산중턱에는 강진 화방산에서 보았던 큰 바위 얼굴을 닮은 바위가 인상적이다. 손가락 바위를 우회하여 능선에 올라서면 앞쪽에서 보았던 것과 또 다른 형상을 하고 있는 바위가 들어 앉아 있다. 시루떡을 포개어 놓은 듯한 퇴적암으로 이루어진 집채만 한 바위는 자연의 신비함을 자아낸다. 바위 중앙에는 커다란 하마의 입을 닮은 듯한 천연동굴 입구가 눈길을 끈다. 나무로 만들어 놓은 사다리를 발로 밟으며 올라서서 동굴 안쪽으로 걸어서 들어가면 반대편에 환상적인 전망대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고소 공포증이 있어서 올라가는 것을 포기하고 앞쪽으로 더 진행하여 능선에 올라 겉모습을 보는 것으로 만족을 한다. 키가 나지막한 곰솔 들이 듬성듬성 숲을 이루는 아기자기한 능선 길로 부지런히 발품을 팔면서 올라선다. 부드러운 흙과 바위들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능선 길은 섬 산행에서만 맛 볼 수 있는 또 다른 묘미를 느끼게 한다. 은빛으로 반짝이는 새하얀 서설을 밟으며 안부로 살짝 내려섰다가 올라서는 언덕배기에 성난 코뿔소가 머리를 들고 달려들 기세로 서 있는 바위가 눈을 즐겁게 해준다. 미끈한 화강암 바위가 기다란 옹벽(擁壁)을 이루고 있는 능선 길로 올라서면 돈대산 정상이다. 돈대란 높은 언덕에 옹벽을 쌓아 놓은 지형을 가리키는 말인데 실제로 돈대산 주위의 지형을 살펴보면 둘러쳐진 바위 능선이 그렇게 보인다. 이곳에 봉수대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흔적조차 찾아 볼 수가 없다. 허물어진 봉수대의 돌로 쌓아 올린 여러 개의 기원탑 역시 온데간데없다. 사방이 탁 트인 조도 돈대산 정상에서 휘둘러보는 다도해의 멋진 풍광은 탁월(卓越)하다. 조도는 커다란 두 개의 섬으로 나누어져 있다. 북쪽에는 상조도, 남쪽에는 하조도가 서로 마주보며 길게 동서로 누워 있고 주변 바다에 크고 작은 섬들이 올망졸망 무리를 이루며 모여 있는 풍경이 정겹다. 남쪽과 서쪽으로 눈길을 주니 아득한 수평선 너머 바다 위에 엷게 드리워진 하얀 해무(海霧)속에 관매도를 비롯한 또 다른 섬들이 얼굴을 드러낸다. 주발에 밥을 수북하게 담아 놓은 듯한 둥근 원형의 섬들이 있는가 하면 고구마처럼 길게 늘어진 섬도 있다. 특히 관매도와 주변에 모여 있는 섬들은 남해 바다에서 보았던 삿갓섬을 연상케 한다. 우리나라에서 섬의 무리가 가장 아름다운 곳은 경남 통영 한려 해상 국립공원과 남해의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 그리고 서해의 태안반도와 벌천포, 군산 앞바다의 고군산도 일대이다. 똑 같은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에 속해 있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풍광은 전혀 색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산 아래 북쪽 해안선에서 멀지 않은 포구 안쪽에는 바둑판처럼 경지정리가 잘된 논들이 풍요로움을, 파릇파릇한 무우와 대파가 심어진 채소밭은 황량한 겨울 풍경이 아닌 이른 봄 남도의 봄 풍경을 연상케 한다. 산 아래 쪽에는 유토마을과 조도면사무소 그리고 옹기종기 빼곡하게 모여 있는 형형색색의 알록달록한 지붕들이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다. 마을 중앙에 널찍한 조도 저수지에는 생명수나 다름없는 맑은 청수가 철철 넘친다. 수많은 섬들이 병풍처럼 휘감아 돌며 거친 파도를 잠재우는 조도 앞바다는 연초록의 융단을 깔아 놓은 듯 화려하다. 북서쪽에는 바닷물 위를 가로 질러 상조도와 하조도를 이어주는 연육교와 도리산 전망대가 아스라하다. 해안선을 따라 쭉쭉 뻗으며 울창하게 우거진 곰솔 숲은 섬의 운치를 더욱 돋보이게 해준다. 아무리 보아도 싫증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환상적인 풍광은 또 하나의 잊지 못할 추억을 안겨준다. 동쪽으로 눈길을 주니 능선 상에 삐쭉 솟아 올라온 투스타 바위 넘어 신금산으로 유연하게 파노라마 치며 달아나는 산줄기가 시원스럽다. 산 위에서 보았을 때는 그냥 밋밋한 맛을 느끼게 하던 투스타 바위가 앞에서 직접 보니 사나운 호랑이가 서쪽을 응시하며 서 있는 듯하다. 투스타 바위에서 바로 직진하여 신금산으로 넘어가는 능선 길은 없다. 왔던 길을 뒤돌아 삼거리 안부 갈림길에서 북동쪽에 있는 유토마을로 이어지는 오솔길을 따라 내려선다. 내린 눈이 미처 녹지 않은 경사가 급한 길은 얄미울 정도로 미끄럽다. 뒤로 넘어지지 않으려고 최대한 몸의 자세를 낮추며 조심스럽게 내려선다. 산 아래쪽에 갈증을 달래주는 시원한 약수 물이 나오는 샘이 있다. 사시사철 물이 흘러내리는 변변한 계곡조차 없는 섬에서 약수 물을 마실 수 있는 기회는 하늘에 있는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다. 바위틈에서 졸졸 흘러나오는 물맛이 일품이다. 약수터에서 유토마을 쪽으로 잰 걸음을 하며 내려서니 남근석처럼 끝이 뾰족한 선돌을 세워 놓았다. 무슨 연유로 이곳에 선돌을 세워 놓았는지는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음력 정월 대보름날 마을주민들이 모여 당제를 지내는 장소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폭이 널찍한 오솔길 주위에는 삼나무와 측백나무를 많이도 심어 놓았다. 남부 해안가의 포구와 섬에서만 자생하는 후막나무도 보인다. 유토마을 정자(亭子) 앞에는 수령이 200년이 된 팽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이 웅장한 자태를 하며 서 있다. 나무의 허리둘레는1.8m, 높이가 무려30m이다. 옛날부터 선조(先祖)들은 마을의 동구 밖 아니면 물이 흘러가는 계곡이나 운치가 좋은 곳에 정자를 세우고 느티나무 나 은행나무를 즐겨 심었다. 드물게 소나무를 심어 놓은 마을도 있지만 90%이상이 은행나무와 느티나무이다. 대개가 이런 나무들은 장수(長壽)를 상징하는 당(堂) 나무라 하여 마을의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팽나무는 섬에서 종종 보게 된다. 특히 은행나무와 느티나무는 깊은 산중에 있는 큰 사찰의 뜰 앞이나 앞마당에 정원수로 심어 놓은 것을 심심찮게 보아 왔다. 팽나무 앞에는 또 다른 선돌이 세워져 있다. 조도를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산행마을에서 돈대산 정상에 올랐다가 유토마을로 하산하는 것을 선호한다. 하나 대구에서 먼 거리에 있고 좀처럼 올 기회가 자주 없다. 그러다 보니 유토마을의 진산이라 할 수 있는 돈대산과 신금산을 한꺼번에 탐방하려고 계획을 세웠다. 팽나무가 서 있는 정자에서 남쪽으로 마을길을 따라 올라서면 유토마을 표지 석과 함께 정자가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서 남쪽으로 해안선 도로를 따라 올라서면 고갯마루에 신금산 등산로 안내 간판이 세워져 있다. 이미 앞서 돈대산을 탐방을 마친 터라 조금 여유를 갖고 신금산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을 따라 동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올라선다. 오전에 돈대산에 오를 때와는 달리 자연스런 흙 길이다. 줄지어 들어선 곰솔 나무에서 수북하게 떨어진 솔잎을 발로 밟으니 감촉이 한결 부드럽고 산행의 피로를 덜어 준다. 서서히 고도를 높이는 녹녹하지 않은 언덕길로 올라서니 소망 탑이 서있다. 신금산 정상으로 올라서는 산 비탈에는 잎에 싱싱한 생명력과 활력이 넘치는 쥐똥나무가 무리 지어 군락을 이루고 있다. 검은색의 둥근 옥구슬처럼 초롱초롱 나무에 열려있는 열매가 앙증맞다. 신금산 정상에 올라서니 하늘을 향해 솟구친 바위가 하나의 독립된 봉우리를 이루고 있다. 돈대산과 신금산을 관장(管掌)하는 산신령님들이 서로 힘겨루기라도 하였는가! 아니면 바다의 용왕님이 도술을 부렸는가! 길쭉한 바위가 높은 기둥처럼 서 있는 위쪽에 또 다른 바위가 얹혀있다. 두 손으로 밀면 아래쪽으로 떨어질 것만 같은 바위가 아찔하다. 이곳 역시 또 다른 전망대이다. 가을하늘처럼 유난히도 푸른 하늘에서는 금방이라도 파란 물이 뚝뚝 떨어질 것 만 같다. 솜털 같은 하얀 구름송이가 한 무리의 양떼처럼 둥실둥실 떠있고 화창한 날씨는 봄날을 방불케 할 정도로 포근하다. 저만치 거리를 두고 멀어졌다가 가까워지기를 반복하는 섬의 무리는 볼 때마다 색다른 풍광을 선물한다. 아득한 수평선너머 북동쪽에 설악산 화채(花菜)능선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듯한 진도의 동석산 바위들이 소박하게 석화(石花)를 꽃피웠다. 연초록 푸른 물결 위로 보석처럼 점점이 뿌려진 많은 섬들이 한눈 가득히 들어온다. 정상에서 동쪽으로 내려서는 산 중턱에는 섬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노간주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널찍한 멍석을 펼쳐 놓은 듯한 가파른 바위 절벽을 조심스럽게 내려서니 안부이다. 안부에서 한적한 오솔길로 접어들면 몸통을 하늘을 향해 높게 치솟은 큰놈 바위와 애기어깨바위, 거북이 바위를 차례로 만나게 된다. 제일 나중에 만나는 거북이 바위를 우회 할 때는 커다란 바위가 순식간에 머리위로 떨어질 것만 같은 무시무시한 공포와 함께 몸에 소름이 돋는 듯한 오싹함이 느껴진다. 섬에 이렇게 홀로 우뚝 솟은 큰 바위가 있다니 자연이 빚어 놓은 작품이라 하기에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아주 멋진 풍경이다. 겨울 산의 백미는 역시 푸른 소나무이다. 바다와 접하고 있는 섬에는 소나무 못지않게 많은 후박나무들이 자생하고 있다. 오늘 탐방을 하고 있는 이곳 역시 예외는 아니다. 능선 곳곳에 빼곡하게 들어선 푸른 후박나무들이 섬에서만 맛 볼 수 있는 진귀한 풍경을 연출한다. 장대한 바위 능선을 지나니 동쪽 해안가에 있는 조도 등대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약30분 정도 호젓한 능선 길을 내려서면 하늘을 가리는 울창한 동백나무 숲이 장관이다. 수백 년 나이를 고스란히 간직한 동백나무 숲길은 지친 몸과 마음을 쉬어 갈수 있는 휴식처로는 그만이다. 쉬엄쉬엄 발걸음을 옮기며 나무와 도란도란 재미있는 대화를 나누어 본다. 동백은 대부분 아직 꽃이 피지 않은 채 꽃망울만 맺어 있다. 그러나 수줍어하는 새색시 볼처럼 벌써 붉은 꽃을 피운 동백나무도 보인다. 산 위쪽 능선에서 보았을 때는 야트막한 야산처럼 보여서 쉽게 지나갈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하나 짙게 내려앉은 나무 그늘이 어두컴컴한 터널을 방불케 하는 동백 숲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바닷물에 둘러싸인 섬이라 그런가! 숲 속에는 그 흔한 새들이 지저귀는 울음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그야말로 고요한 적막만이 흐른다. 가끔씩 보이는 풀밭 에는 꽃송이와 잎이 말라 버린 층 꽃이 많이 보인다. 숨쉬기조차 조심스러운 조용한 동백나무 숲길을 따라 동쪽으로 부지런히 올라서면 해안가에 들어 앉아 있는 낙타봉으로 이어지는 갈림이다. 친구처럼 함께 가며 이어지던 동백나무 숲은 여기서 끝이 난다. 낙타봉에 올라보고 싶지만 하산 시간이 촉박하다. 갈 길을 재촉하며 무명봉에 살짝 올라서니 운조루와 조도 등대가 손을 뻗으면 닿을 듯 한 거리에 있다. 해안가에는 바위들이 층층이 높은 단애를 이루고 바다로 향해 돌출된 기암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하조도 등대는 서해와 남해를 연결하는 해상 교통의 요충지인 장죽수도(長竹水道)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다. 등대 위쪽에는 선박 통항 관제서비스 레이더 기지국과 운조루 전망대가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다. 전망대에 서면 청잣빛 푸른 바닷물이 끝 간 데 없이 펼쳐지고 줄지어 앉아 있는 진도와 고만고만한 섬의 무리들이 하늘과 맞닿았다. 뒤쪽에는 바다와 접하고 있는 해남이 아련하다. 바로 앞쪽 해안 포구에는 일천 개의 미끈한 얼굴 형상을 하고 있는 만물상이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금강산에 있는 만물상이 남도의 바닷가에 유람을 왔나 보다! 좀더 머물고 쉽지만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상조도에 있는 도리산 전망대를 탐방하고자 등대아래에서 대기 중인 마을버스에 승차한다. 꼬불꼬불하게 제멋 되로 휘어진 섬 일주도로를 달려서 반달모양의 우아한 곡선을 그리는 조도대교를 건넨다. 1997년에 완공된 조도대교는 진도대교(480m)보다 긴510m에 왕복2차선 도로를 깔았다. 모든 행정시설물과 널찍한 마을이 있는 하조도와 달리 상조도는 해안선 포구 안쪽에 작은 마을이 간간히 들어 앉아 있을 뿐이다. 산중턱에는 자그마한 밭들이 줄지어 있다. 촘촘히 구명이 뚫린 그물망이 덮인 밭에는 봄에 파릇한 새싹이 돋아나는 쑥들이 겨울을 나고 있다. 이른 봄 이곳에서 생산되는 쑥은 향이 좋아서 전국에 날개 달린 듯 팔려 나간다고 한다. 바다에서 차갑게 불어오는 해풍을 맞으며 추운 겨울을 난 달콤한 맛이 일품인 봄 무우와 함께 그 명성이 자자하다고 한다. 불어오는 해풍에 이리저리 몸을 일렁이는 갈대숲이 나그네의 심금을 울린다. 어느새 버스는 도리산 전망대 아래쪽에 있는 간이 주차장에 정차한다. 동쪽에 지붕을 얹은 정자에서 서쪽으로 언덕으로 이루어진 도로를 따라 5분 정도 올라서면 산 정상에 KT중계소 건물로 들어서는 정문이다. 정문 앞 널찍한 빈 공터에 목재로 아담하게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하조도 돈대봉에 버금가는 상조도 도리산 전망대에 서면 코앞에 나배도를 비롯한 다도해의 올망졸망한 섬이 한눈에 들어온다. 특히 조도가 거느리고 있는 유인도35개와 무인도119개를 합친 154개의 섬을 한곳에서 모두 휘둘러 볼 수 있는 곳이다. 하조도에 있는 손가락바위를 여기서 바라보면 만삭이 된 임신한 여인이 반듯하게 누워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마치 태산에 올라 천화를 굽어보는 듯하고, 손을 뻗으면 잡힐 듯 아스라하게 다가오는 섬의 무리들이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룬다. 오늘처럼 날씨가 맑은 날이면 섬 사이로 뜨고 지는 일몰이 장관을 이루는 것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전남 진도군 조도는 섬 속의 섬이다. 섬과 섬 사이를 이리저리 헤집고 가야만 볼 수 있다. 섬 하나를 지나면 또 다른 섬이 아련하게 다가온다. ‘조도(鳥島)’라는 애칭은 새떼처럼 많은 섬이 모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나라 면 단위 섬 중에 가장 많은 섬을 거느렸다. 조도군도의 어미섬인 조도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속했지만 찾는 이가 많지 않다. 바로 밑 관매도의 유명세 때문이다. 그만큼 개발의 혜택에서 벗어나 세상의 손때가 묻지 않았다. 모든 탐방을 마치고 다시 진도로 돌아오는 선상에서 뒤돌아보니 하늘이 내려준 천혜의 아름다운 비경을 그대로 간직한 ‘한국의 하롱베이’라 불리는 조도에 새해의 따듯한 햇살이 내려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