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틋한 사연이 담긴 첫사랑의 여인은 영원히 가슴속에 남아 평생을 간직하고 간다.
이와 비슷한 경험을 산행을 다니면서 종종 하게 된다.
가슴속에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것이 있다면 꿈속에 나타난다고 했던가!
꿈속에서 홀연히 백화산 아래에 있는 태을암 마애삼존불을 모셔놓은 건물의 전각을 보았다.
2년 전 태안반도 산 능선에 봄이 한창 무르익어 갈 무렵
진달래가 곱게 핀 금북정맥 마루 금에 아담하게 들어 앉아 있는 백화산 정상을 찾았다.
그리고 내려오며 태을암에 들러 마애 삼존불을 보며 이 아름다운 태안반도를
언제 다시 찾을 수 있을까! 나 혼자서 선문답을 했다. 우연(偶然)의 일치일까?
아니면 나와 인연이 닿아서 일까! 아련한 추억이 담겨 있는 그곳을 다시 찾아서 길을 나선다.
이른 아침 대구를 출발 할 때만 하여도 먹구름이 잔뜩 드리워져 있는 하늘에서는
금방이라도 새하얀 눈이 내릴 것만 같은 흐린 날씨였다.
하나 우리를 태운 애마가 태안에 들어서자 날씨는 화창한 가을날씨를 연상케
할 정도로 아주 맑다.
태안 백화산 탐방은 남동쪽에 있는 군민체육관에서 북서쪽으로 올라서며 시작한다.
산 아래쪽에서 보는 백화산은 꼭 동네 뒷동산처럼 보인다.
부드러운 흙으로 이루어진 오솔길을 따라 곰솔 숲을 헤집고 올라서면 곳곳에 기암괴석들이
들어 앉아있다.
제일 먼저 나그네를 반기는 것은 물개바위이다.
커다란 바위 위에 금방 태안 앞바다에서 올라온 물개 한 마리가 물에 젖은 몸을 말리며
다소곳이 앉아 있는 듯한 형상이 귀엽다.
호젓한 숲길로 올라서니 앞을 가로막고 있는 또 다른 바위가 눈인사를 건넨다.
겉모양을 보면 커다란 천도복숭아를 닮았지만 바위 머리 위에 조그마한 초롱이 놓여 있다.
아담하게 돌출된 형상이 초롱을 닮았다고 해서 불꽃바위라고 부른다고 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리 높지 않은 야트막한 야산을 방불케 하지만 능선 곳곳에
집채만 한 바위들이 늘려 있다.
사방에 늘려 있는 바위들은 하나 같이 늠름한 위용을 갖춘 웅장함 보다는
우아한 여성미를 느끼게 한다. 저 멀리 오늘 올라야 백화산 정상이 또렷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동쪽으로 긴 나래를 펼치는 금북정맥 마루 금이 동쪽으로 길게 횡단을 한다.
마루 금에 빼곡하게 줄지어선 곰솔 들이 울창하게 숲을 이루고 있다.
싱그러운 연 초록의 솔잎이 펼치는 아름다운 풍경이 신록의 계절인 푸른 오월을 연상케 한다.
약8부 능선쯤 올라서면 널찍한 용상바위와 둥근 공모양의 흔들바위가 나그네를 반긴다.
앞쪽에는 자연이 정교하게 빚어 놓은 의자 바위가 인상적이다.
이 많은 바위들 중에 이곳을 찾은 나그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바위 하나가 눈길을 끈다.
위쪽에 장대하게 우뚝 솟아 있는 백화산 정상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처녀바위이다.
저 멀리 남쪽으로 펼쳐지는 광활한 바다를 바라보면 좋으련만!
몸을 돌려 북쪽을 바라보고 서 있는 처녀바위에서는 말 못할 애틋한 사연이 숨겨져 있는 듯하다.
양지바른 산 중턱에는 계절의 감각을 잃어버린 듯한 진달래가 꽃봉오리를 열고 소박한 꽃을 피웠다.
비좁은 바위틈새에는 잎새를 다 떨어뜨려버린 백당나무 나뭇가지에
탐스럽게 주렁주렁 열려있는 붉은 열매가 산행의 운치를 더해준다.
정상까지 줄곧 아기자기 하게 이어지는 부드러운 능선 길 곳곳에
은빛을 발산하는 미끈한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기묘한 바위들은 수석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우리네 인생살이가 오르고 내림이 있듯이 산은 언제나 정상을 쉽게 내어주지 않는다.
아찔한 수직의 바위 절벽을 두 손과 발을 이용하여 올라서니
이번에는 가파른 언덕 오름이 앞을 가로 막는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발품을 부지런히 팔면서 올라서니 어느새 백화산 정상이다.
산 전체를 기묘한 모양을 하고 있는 하얀 돌(白石)은 봄이면 부용화(芙蓉花)가
가을이면 들꽃(石花)이 활짝 핀 것 같이 보인다 하여 백화산 이란 애칭을 붙였다.
경기도 안성 칠현산에서 서해안으로 뻗은 금북정맥이
태안반도 안흥진 앞바다에 가라앉기 전에 안간힘을 내 봉긋 솟구친 산이 백화산이다.
충남 태안읍 북쪽을 감싸며 사계절 푸른 숲을 이루고 있는 곰솔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지는 수려한 산세는 국내에 유명하게 이름이 알려진 여느 산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사방이 탁 트여서 바로 앞에 펼쳐지는 드넓은 태안반도의 아름다운 풍경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이기도 하다.
옛날 이곳에는 돌로 쌓아 올린 성과 봉수대가 있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한 성(城)과 봉수대는 허물어져 버리고 없다.
현재는 무덤의 봉분처럼 흙과 돌로 높게 쌓아 올린 봉수대지 자리와
널찍한 너럭바위로 이루어진 성터 일부만 남아 있다.
정상에 서서 동쪽으로 눈길을 주면 봉수대를 닮은 서산 팔봉산이
하늘과 맞닿을 듯이 우뚝 솟아 있는 풍경이 인상적이다.
팔봉산에서 이어지는 야트막한 산줄기는 여인의 허리선처럼 유연한 곡선미를 이루며
태안 앞 바다로 길게 파노라마 친다.
남쪽에는 높고 낮은 건물과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태안읍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읍 주변에는 풍성한 가을 수확을 마친 광활한 들녘이 지평선을 그리며 황량한 겨울 풍경을 연출한다.
아득한 수평선 너머 황금빛 모래사장 위로 따뜻한 겨울 햇살이
오색찬란한 무지개 빛이 되어 부서져 내린다.
저만치 밀려나 강물처럼 잔잔한 은빛으로 반짝이는 바닷물은 색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서쪽에는 높이가 고만고만한 야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안흥진 앞바다로
마지막 힘을 다해 달려가는 풍광이 정겹다.
금북정맥 마루 금을 잇는 저 태안반도 품속에는 하늘이 내려준 천혜의 비경이
곳곳에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아 그립구나! 들녘에 줄지어 서있는 나무에 파릇파릇한 새싹이 돋아날 무렵
이제 막 이삭이 올라온 보리밭위로 종달새가 높이 날아오르며 신나게 노래 부르고
붉은 황토밭에 싱그러운 푸른 생명력이 철철 넘치던 태안의 풍요로운 이른 봄 풍경이.
북쪽으로 눈을 돌리면 청옥빛 바닷물이 호수처럼 펼쳐지는 벌천포가 한눈 가득히 들어온다.
이곳이야 말로 내가 항상 마음속에 꿈꾸어오던 또 다른 유토피아요 신세계이다.
정상 석과 다른 것은 변한 것이 없는데 한쪽 모퉁이 공터에 심어져 있던
몸은 피라미드를 닮았고 위쪽은 옛사람들이 상투를 튼 모양을 하고 있던
주목 두 그루가 보이지 않는다.
정상에서 환상적인 풍경을 감상하고 서쪽 산중턱에 있는 태을암을 찾아서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긴다.
약15분 정도 오솔길을 따라 내려서면 양지바른 널찍한 곳에 태을암이 아담하게 들어 앉아 있다.
태을암은 규모는 작지만 법당 위쪽 진실법당에 봉안되어 있는 마애삼존불과 부근의 바위에 태을동천(太乙洞天),
일소계(一笑溪), 감모대(感慕臺)라 음각된 글자가 고풍스럽게
멋을 풍기는 아담한 작은 암자이다.
글자가 음각된 바위 아래에는 맑은 물이 그득하게 담겨 있는 자그마한 연못이 조성되어 있다.
태안 백화산 태을암에 보존되어 있는 마애삼존불(보물 제432호)과 운산 상왕산에 있는
서산 마애삼존불(국보84호)및 예산 화전리 사면불(보물 제974호)은 백제의 대표적인 마애불이다.
서산마애 삼존불이 "백제의 미소"라 불리며 볼우물 가득 웃음을 머금고 환하게 웃는 얼굴인데 비해
태안의 마애삼존불은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서민적이면서도 친근감이 들게 하며
소박한 미소를 보여준다.
태안 마애불은 태안반도의 서쪽 끝에 위치한 백화산 상봉에 바다를 등지고 선 거대한 화강암 암벽을
쪼아내어 입체조각에 가까울 만큼 고부조로 조성해 낸 높이 320㎝ 의 거대한 불보살 입상이다.
일반적인 삼존불의 형식은 중앙에 본존불을 모시고 좌우에 협시보살을 배치하는데,
이 삼존불은 세계 어느 곳에도 유례가 없는 좌측에 약사여래 중앙에 일반 보살을 우측에 석가여래를 모셔 놓은
2불1보살상의 기이한 삼존구도를 하고 있다.
맞배집에 검은색 기와를 덮은 진실법당 지붕을 보니 꿈속에서 보았던 그 전각이다.
몸과 마음을 단정히 하고 법당 안에 들어서서 부처님께 절부터 올린다.
산을 즐겨 찾아다니다 보니 자연적으로 많은 사찰을 둘러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생긴다.
매번 대웅전에 들러 눈앞에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큰 눈으로 앞쪽을 주시하고 있는
부처님의 얼굴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긴장을 하게 된다.
하나 오늘은 이상하게도 앞에 마주보고 있는 삼존마애불상이 여느 때와는 달리
어머니를 대하듯이 편안한 느낌이 든다.
진실법당 앞쪽에 심어 놓은 동백은 벌써 붉은 꽃망울을 열고 이곳을 다시 찾은 나그네를 보고
살짝 미소 짓는다. 동백나무 꽃길을 따라 서쪽으로 내려서면 태을암 대웅전이다.
널찍한 앞마당 안쪽에 아담하게 들어 앉아 있는 대웅전에서는 화려함보다는
소박한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대웅전에서 남쪽으로 시멘트로 포장된 도로를 따라 몇 발자국 내려서면
둥근 공처럼 커다란 바위가 작은 돌 위에 놓여 있는 백조암이 신비스러움을 자아낸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태안반도의 풍광은 산 정상에서 보는 것과 또 다른 맛을 느끼게 한다.
태을암에서 도로를 따라 남쪽에 있는 낙조대를 지나 모래기재로 내려서는 길은 벚꽃길이다.
새하얀 벚꽃송이가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에 꽃비가 되어 내리던 봄날
이곳을 지나 모래기재로 내려섰던 일이 눈앞에 아련하다.
오늘 또 다시 옛 추억을 더듬으며 낙조대로 내려서고 싶었지만 갈 길이 멀다.
아쉽지만 삼존마애불과 태을암 주변만 휘둘러보고 다시 백화산 정상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정상에서 동쪽에 자리하고 있는 흥주사로 내려서는 길은 금북정맥 마루 금과 나란히 이어진다.
솔향기 그윽한 숲 속에는 늘씬한 여인의 몸매를 닮은 S라인 바위가 눈을 즐겁게 해준다.
하루 종일 걸어도 싫증이 나지 않을 듯한 환상적인 원시림의 송림 숲길은
사색과 낭만을 즐기기에는 그만이다.
흙이 기름져서 그런가! 하늘을 향해 시원스럽게 쭉쭉 빵빵 높이 뻗어 있는 나무들은
모두가 미래의 동량들이다.
부드러운 흙을 뒤덮으며 수북하게 쌓여 있는 솔잎을 헤집고 진달래나무들이 무리 지어
긴 겨울을 나고 있다. 차가운 해풍(海風)을 맞으며 겨울을 나는 이곳의 진달래는
꽃송이가 더 진하고 예쁘다. 삼월의 매서운 꽃샘추위가 물러가고
온 산천을 연분홍 꽃송이로 곱게 물들 때 이곳을 지나던 나그네의 마음을 울렁이게 했던
그 진달래들이다.
메뚜기의 홑눈처럼 앙증맞은 진달래의 꽃눈이 정겹고 내 마음속에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서려 있는 옛길을 따라 사뿐사뿐 발걸음을 옮기니 감회가 남다르다.
보라색의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 있는 보라색의 자그마한 좀작살나무의 둥근 열매가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해준다.
살짝 언덕 오름을 올라서니 북쪽 산비탈은 널찍하게 벌목을 하여 놓았다.
지척에 보이는 벌천포가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하고 빼곡하게 올망졸망 무리 지어 둥근 원형을 이루는 곰솔 숲은
푸른 바닷물 위에 보석처럼 뿌려진 섬처럼 독특한 풍경을 선보인다.
봄산은 싱그럽고, 여름산은 풍요로우며, 가을 산은 다채롭다.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속살을 그대로 드러낸 겨울산도 어느 계절 못지않게 아름답다고 했던가!
저 멀리 지나온 백화산과 바로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서산 팔봉산 능선 자락에
푸르게 우거진 푸른 숲과 파란 하늘 그리고 내륙의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가 한데
어우러지는 풍경은 한 폭의 그림이다.
붉은 속살을 그대로 드러내 내놓은 벌목지대에 듬성듬성 자리를 메우고 있는
억새꽃이 늦가을의 운치를 맛보게 해준다.
이름조차 없는 무명봉에 국립지리원에서 설치 해 놓은 삼각점이 덩그렇게 놓여 있다.
삼각점을 지나 10분 정도 오솔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니 흥주사와 백화산 길 안내 표지목이 서있다.
안내 표지 목에서 동쪽으로 조용한 오솔길을 따라 약15분 정도 내려서니
아름답고 운치 있는 곰솔 나무숲이 울처럼 휘감아 돌아가는 중앙에
흥주사가 아담하게 들어 앉아 있다.
절로 내려서는 산기슭 모퉁이의 널찍한 공터에는 푸릇푸릇한 대나무 숲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대나무 숲을 뒤로 하고 오솔길을 내려서면 제일 먼저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흥주사 은행나무이다.
나무의 둘레가 8.4m, 높이 22m에 수령이 무려 900년 된 은행나무 한 그루가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이 은행나무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진다.
옛날 먼 길을 가던 노승이 백화산 기슭에서 잠시 쉬던 중 산신령님이 나타나
노승이 가지고 있던 지팡이를 가리키며 이곳은 부처님이 상주할 자리이니
지팡이로 표시하라는 말을 듣고 깨어보니 꿈이었다.
기이한 일이라 생각한 노승은 산신령이 가리킨 곳에 지팡이를 꽃아 두고 불철주야 기도를 하니
신비하게 지팡이에서 은행나무 잎이 피기 시작했다.
기도하는 노승 앞에 다시 나타난 산신령은 자식이 없는 자가 기도를 하면
자식을 얻고 태어난 자식들이 부귀를 얻어 부처님을 모실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다.
몇 십 년 후 산신령의 말씀 되로 자손들에 의해 불사가 이루어 졌고
부처님의 손길이 자손만대에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노승은 흥주사(興住寺)라 불렀다.
흥주사와 함께 백제의 찬란한 역사와 함께 했던 이 나무는
부처님을 지키는 사천왕의 역할을 하여 후세에는 국가가 위태로울 때
산천이 진동할 듯한 울음을 터트려 애통해 하였다 한다.
유서가 깊은 만큼 은행나무에 대한 마을주민들의 사랑이 남다르다.
이 마을 주민들은 은행나무가 건강해야 마을이 편하고 후손들이 잘되는 것으로 믿고
매년 은행나무에 막걸리 주는 일이 마을의 큰 행사로 이어지고 있다.
은행나무가 막걸리를 먹으면 청록색으로 변하는 등 건강한 모습으로 생기를 되찾게 된다고 한다.
이 은행나무는 전설로 전해지는 이야기처럼 예로부터 아낙이
이곳에서 200일 기도를 하면 자식을 얻는다는 속설을 갖고 있다.
실제로 최근에 수년째 자식이 없던 아낙이 이곳에서 기도를 한 후 쌍둥이를 얻었다는
입 소문이 퍼지면서 은행나무를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라면 은행나무를 눈여겨보아야 한다.
동쪽으로 뻗은 큰 가지 밑에 남근 모양의 또 다른 가지가 돌출해 계속 자라고 있다.
바위가 오랜 세월을 지나며 빗물과 바람에 깎여서 남근석이 된 것은 보았지만
나무가 이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을 보니 자연의 오묘함을 새삼 느끼게 된다.
중앙에 은행나무를 두고 좌측과 우측에는 역시 고목이 된 운치 있는 커다란
느티나무 두 그루가 서있다. 나무의 수령이나 둘레 높이는 은행나무와 비슷하지 않나 생각해본다.
특히 우측에 서있는 커다란 느티나무 밑동을 자세히 보면 혹처럼 돌출된 부분이
꼭 어린 동자승이 서 있는 것 같다.
흥주사 동쪽과 서쪽 북쪽은 곰솔이 자연스럽게 울타리를 만들어 놓았고
남쪽은 절에 주지스님이 많은 종류의 꽃나무와 화초(花草)를 심어 아담한 정원(庭園)을 꾸며 놓았다.
정원 안쪽에는 대리석을 깎아서 뒤쪽에는 부처님을 앞쪽에는 포대화상을 모셔 놓았다.
부처님과 포대화상이 온아한 미소를 머금으며 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얼굴 모습을 보니
이웃집 아저씨를 대하는 듯 마음이 편안하다.
층층이 가지런히 놓여 있는 돌계단을 한발한발 올라서니
중앙에 대웅전(大雄殿)을 중심으로 서쪽에 현대식건물로 지은 종무소, 동쪽에는 요사채,
남쪽에는 만세루(萬歲樓), 북쪽에는 산신각이 자리하고 있다.
흥주사(興住寺)는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다고 하나 상량문(上樑文)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대략 고려말엽(高麗末葉)인 13세기 말에서 14세기 초엽에 세워진 사찰로 추정하고 있다.
대웅전과 마주보고 있는 누각으로 된 만세루는 흥주사의 중문으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임진왜란 때 승병(僧兵) 들이 무기저장고로 사용 했다고 한다.
건물의 구조는 정면3칸 측면3칸 맞배집이다. 안쪽에는 나무로 널찍하게 마루를 깔아 놓았는데
안쪽에서 보면 바깥쪽이 훤하게 내다보인다.
불어오는 바람이 만세루 처마 밑에 달려 있는 풍경을 흔드니 조용한 산사에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풍경소리가 나그네의 방문을 환영(歡迎)하는 듯하다.
주지스님은 대웅전의 문을 열어 놓고 인근 마을에 외출을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종무소 앞에는 주지스님을 대신하여서 귀여운 강아지가 이곳을 찾은
방문객(訪問客)을 영접(迎接)한다.
흥주사 대웅전에 안치된 불상을 보면 중앙에 석가여래(釋迦如來)를 좌측에 아미타불(阿彌陀佛),
우측에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을 모셔 놓았다.
이것은 석가삼존의 형식도 아니고 또한 협시불(脇侍佛)로 아미타불을 배열해 놓은 것도
보기 드문 매우 이례적인 형식이다.
부처님이 가부좌를 하고 앉아 있는 뒤편에는 작은 불상이 가지런히 놓여 있고
우측에는 형형색색의 연등(燃燈)이 가지런히 천장에 달려 있다.
대웅전을 돌아보고 내려서면 앞쪽에 화강석으로 되어 있는 삼층 석탑이 세워져 있다.
탑의 형태를 살펴보면 정교함과 웅장함보다는 소박을 보여주고
고려시대의 귀족적인 생활에 비하면 비교적 서민적인 이미지를 담고 있다.
이러한 느낌은 화려하게 단청을 하지 않은 대웅전에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탑 주위에는 허브를 심어 놓았는데 향이 아주 좋다. 대웅전에서
우측으로 멀지 않은 거리에는 예스러운 멋을 품고 있는 우물이 있다.
북쪽 언덕에 자리하고 있는 산신각 앞에서 내려다보는 흥주사의 풍경은 가히 일품이다.
각종 볼거리가 넘쳐나는 명사찰 흥주사를 돌아보고 버스로 30분 거리에 있는 신진도로 출발한다.
신진도는 서해안을 굽이굽이 돌아 뻗어 내린 금북정맥 마루 금이 태안반도 안흥진 앞바다에 가라앉는
안흥항과 이웃하며 마주보고 있는 섬이다.
어민, 고깃배, 갈매기 떼가 살아 숨쉬는 신진도항은 먹을거리와 볼거리를 충족할 수 있는
태안군의 명소 중 하나이다.
예전에는 배를 타고 건너야 했던 물길위로 1995년 신진대교가 놓이면서
아름다운 풍경하나를 더 만들어 놓았다.
이로 인해 신진도는 이제 섬이 아닌 육지가 되었다.
태안반도에 있는 산은 백화산이 제일 높다. 신진도를 비롯한 주변에 점점이 놓여 있는
섬들은 섬 전체가 야트막한 야산처럼 낮은 구릉지이다.
섬에는 잡목은 찾아 보기가 힘들고 90% 이상 푸른 곰솔이 울창하게 숲을 이루고 있다.
마을은 바닷가에서 멀지 않은 해안선 포구를 따라 옹기종기 아담하게 들어 앉아 있다.
새파란 바닷물은 깊은 물속까지 훤하게 내려다보일 정도로 아주 깨끗하다.
부두에서 멀리 떨어진 거리에 양쪽으로 길게 놓여 있는 방파제 안쪽에는
바다에서 매섭게 불어오는 찬바람과 높게 치는 파도를 피해 크고 작은 어선들이
포구를 가득 메우고 있다. 방파제 양쪽 끝에는 기쁜 소식을 전해주는 빨간 우체통을 닮은
등대가 아담하게 서있다.
바다 건너 맞은편에는 고구마처럼 길쭉하게 놓여 있는 마도 섬이 자리하고 있다.
일몰을 보려면 2시간 이상 기다려야 한다.
무료한 시간을 달래보려고 신진도항에서 마도 섬을 휘돌아 돌아보려고 트레킹에 나선다.
해안선 도로를 따라서 바다에서 쉴 새 없이 매섭게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은
몸조차 제대로 가눌 수 없게 한다.
신진도항을 지나 서쪽으로 해안선 도로를 따라 내려서면 양쪽 섬 중앙으로
자연이 빚어 놓은 폭이 좁은 해협(海峽)이다.
이 해협을 가로 질러 높게 쌓은 방파제가 놓이면서 뱃길로 오고 가던 마도섬 역시
이제는 육지가 되었다.
잘 쌓아 놓은 방파제 위에는 2차선 도로가 개설되면서 자동차와 사람들의 통행에 불편함이 없다.
해협 사이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던 바닷물은 방파제에 막히면서
서로가 마주보고 있지만 졸지에 이산가족이 되었다.
두 섬을 잇는 연육교가 놓였다면 더 운치가 있지 않았을 까 생각해본다.
방파제 안쪽에는 비취색의 푸른 바닷물이 움직임조차 없는 잔잔한 호수처럼 아름답다.
반면에 방파제 밖은 파도에 일렁이는 바닷물이 물려와 부딪치며 새하얀 포말을 일으킨다.
아득한 수평선을 그리는 바다 너머 아늑하게 들어 앉은 태안반도의 나지막한 야산들과
점점이 뿌려져 있는 섬들은 서해안에서만 맛 볼 수 있는 절경의 극치를 보여준다.
주어진 시간이 넉넉하다면 신진도만큼이나 넓은 마도섬을 다 돌아보고 싶으나 시간이 촉박하다.
아쉽지만 폐교가 된 마도 초등학교너머 해안 마을까지만 돌아보고 신진도로 발길을 돌린다.
하늘을 자유롭게 무리 지어 날아다니던 갈매기들도 제 둥지를 찾아서 날아간다.
저녁에 조업을 나서는 어선들은 힘찬 뱃고동을 울리며 하나 둘 신진도 항구를 떠난다.
추운 겨울날 한낮을 밝게 비취 주던 태양이 서해바다로 서서히 빠져들고 있다.
구름조차 드리워지지 않은 파란 하늘을 아름다운 무지개처럼 붉게 물들이며
바닷속으로 내려앉는 낙조가 나그네의 마음을 황홀경에 젖게 한다.
바다 위에 서서히 땅거미가 내려앉으며 쌀쌀한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태안반도의 신진도 항구가 서서히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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