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산행 기행문

강원도 삼척 덕항산의 두얼굴.

풀꽃사랑s 2016. 10. 4. 00:03



누구나 한번쯤 평생 잊지 못할 첫사랑을 경험한다. 
나 또한 첫사랑 만큼이나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는 곳이 있다. 
강원도 삼척시 덕항산 그리고 북쪽 에 있는 귀넘이골 능선 위에 있는 고랭지 배추밭이다. 
워낙 험준한 오지인지라 좀처럼 갈 기회가 오지 않았는데 이번에 눈 산행을 가게 된다. 
전날 강원도에 많은 눈이 내렸다는 기쁜 소식에 마음이 설레서 밤잠도 설치게 된다. 
대이리 매표소에서 시멘트로 포장된 신작로 길을 따라 
동쪽에 있는 환선굴 입구가 있는 곳으로 부지런히 발품을 팔면서 올라선다. 
높지 않은 언덕길이지만 금새 가쁜 숨을 물아 쉬게 한다. 
날씨는 겨울답지 않게 바람이 없고 따뜻하다. 
밤새 잣나무 위에 살포시 내린 하얀 눈이 눈꽃을 피어낸다. 
신작로 변에 나란히 이웃하며 자연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굴피집과 너와집이 
점점 사라져 가는 옛 풍경을 보여준다.
강원도 산간 마을 오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너와집은 나무 기와집이라고도 한다. 
200년 이상 자란 적송(赤松)을 도끼로 적당한 두께와 길이를 맞추어 
쪼갠 널판으로 지붕을 올린 집이다. 
굴피집은 20년 이상 자란 굴피나무, 상수리나무, 삼나무 등에서 채취한 나무껍질로 
지붕을 올려서 만든 집이다. 
집의 뼈대가 되는 나무나 흙벽돌을 쌓아 올린 벽은 
모두 공기가 안밖으로 스며들며 자연이 살아 숨쉬는 친환경적 구조로 되어 있다. 
선조들의 해박한 지혜를 느낄 수 있게 한다.
매표소를 출발하여 약20분 정도 신작로 언덕 오름을 따라 오르다 
마지막 철 계단으로 올라서면 장암재와 환선굴로 올라서는 간이쉼터가 있는 능선 갈림길 안부이다.
눈앞에 90도를 넘는 급경사가 펼쳐지는 산비탈에 촛대바위를 위시로 
협곡에 즐비하게 늘려있는 기암들이 한눈 가득히 들어온다. 
여러 협곡과 함께 깊은 계곡을 이루고 있는 덕항산, 자암골의 산세는 
산명수려(山明水麗)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한다. 
동쪽 양태봉 아래에는 유명하게 알려진 환선굴이 자리 잡고 있다. 
천연 기념물 제178호인 환선굴은 길이와 천정 높이가 동양최대의 동굴이라고 한다. 
시간이 충분하면 동굴을 한번 둘러보고 싶었다. 
그러나 촉박한 산행 시간에 쫓기다 보니 선녀폭포와 안쪽에 수천여 명이 모일 수 있는 
넓은 광장과 각양각색의 종유석이 만들어 내는 신비스러운 모습을 
보지 못하고 가는 것이 많은 아쉬움을 남기게 한다.
수직 절벽을 이루고 있는 가파른 능선을 지그재그로 올라선다. 
능선에 눈이 쌓여 있어서 발걸음을 옮길 때 마다 조금이라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중간에 놓여 있는 철 계단을 지나 힘겹게 능선에 올라서니 겉이 두꺼비 등처럼 
울퉁불퉁한 병풍바위가 터줏대감처럼 버티고 서 있다. 
오솔길처럼 이어지는 능선 길을 따라 조심스럽게 우회하여 돌아서니 
하마가 큰 입을 벌리고 있는 듯한 천연동굴입구이다. 
동굴안쪽은 사나운 산짐승의 송곳 이처럼 커다란 바위들이 돌출되어 있다.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오면 천연동굴 전망대이다. 
눈앞에 보이는 풍경이 갈 길이 바쁜 나그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새하얀 눈이 덮여 있는 백두대간 능선에 하늘 높이 솟아 있는 
환선봉 과 양태봉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다. 
능선 위에 울창한 원시림의 숲을 이루고 있는 나뭇가지 마다 하얀 상고대가 올라붙었다. 
천연동굴 전망대에서 계곡 쪽으로 내려서다 
우측 가파른 능선 길을 따라 바위 전망대에 올라서서 보는 큰골의 수려한 절경은 
자연이 빚어 놓은 멋진 작품이다.
산 중턱에 약수터가 있다고 하나 눈 속이라 찾아 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무더운 여름이나 가을에 다시 올 기회가 있다면 
시원한 약수 물로 목마른 갈증을 풀고 그 맛을 음미해 보고 싶다.
산 능선에서 보는 하얀 눈이 나그네의 마음을 동심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 
발목이 눈 속에 푹푹 빠지는 능선 오름을 따라 올라서면 넓은 공터로 이루어진 장암재이다.
살포시 내려앉은 눈밭에 울창한 원시림의 숲을 이루고 있는 나무들이 황량한 수묵화를 그린다. 
솔솔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하늘에서 소리 없이 내리는 운무(雲霧)가 눈꽃 위에 사뿐히 내려앉는다.
각종 기암(奇巖)이 줄지어 서있는 가파른 능선과는 달리 
부드럽게 이어지는 백두대간 마루 금이 아늑한 어머니의 품속처럼 정겨움을 더해준다. 
어느 곳으로 눈길을 주어도 보이는 것은 눈뿐이지만 가파른 절벽이 있는 동쪽이 
밋밋한 산기슭으로 이루어져 있는 서쪽보다 더 아름답다. 
장암재에서 출발하여 20분 정도 남쪽으로 내려서면 헬기장이 조성된 안부이다. 
겨울을 나고 있는 땅 버들과 가지런히 끝을 모우고 있는 
나뭇가지에 피어난 하얀 눈꽃이 소박한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화전민(火田民)이 경작(耕作)을 하다 버리고 간 밭에는 전나무가 조림(造林)되어 있다. 
하늘을 향해 줄지어 서있는 검은색의 전나무는 벌써 재목(材木)으로 자라나 있다. 
이곳에는 계절을 번갈아 가며 많은 야생화들이 싱그럽게 피어난다. 
백설이 융단을 깔아 놓듯 한 평평한 구릉에 울창한 숲을 이루며 겨울을 나고 있는 
나무들이 산속에서만 맛 볼 수 있는 멋진 운치를 보여준다. 
능선 언덕 오름을 올라서며 북쪽으로 하얀 눈이 쌓인 산 정상을 본다. 
혹시 내가 보고 싶어하던 북쪽의 귀넘이골 위에 있는 고랭지 배추밭이 아니었을까! 
발걸음을 재촉하며 남쪽에 있는 덕항산(해발1071m)보다 
더 높다는 환선봉(幻仙峯 해발1080m) 정상에 올라선다. 
순식간에 겹겹이 쌓인 하얀 구름층이 하늘에서 밀려내려 온다. 
그리고 산허리를 휘감아 돌며 구름바다를 빚어 놓는다. 
하늘은 파란 속살을 드러내고 주홍색의 붉은 햇살이 나뭇가지 위로 부서져 내리며 
눈꽃과 한데 어우러져 눈이 부실 만큼 환상적인 풍광을 보여준다. 
방금 전 능선아래에서 보았던 것은 산 정상이라 아니라 
중턱에 비껴 내려앉은 하얀 눈처럼 보이는 구름바다 이지 않은가! 
순간적으로 눈에 착시현상이 있었나 보다.
저 멀리 북쪽으로 광활한 구릉 위에 백설(白雪)이 덮인 배추밭이 
수줍은 듯이 살짝 구름사이로 모습을 드러낸다.
10년 전 백두대간 산행을 하며 덕항산 정상에서 아침 일출을 보고 능선 길을 이으며
해발1036m봉에 올라섰다.
눈앞에 현대식으로 깨끗하게 새로 신축한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 능선 중앙에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는 귀넘이골이 얼굴을 드러내보였다.
마을 언덕위로 해발1100m고지를 넘으며 큰재로 방향을 잡으며 이어지는 백두대간 마루금 너머 
동쪽은 삼척땅이다.
"정감록"은 최적의 피난지 중 하나로 이곳을 꼽았다.
새 세상 어귀에 놓인 골짜기란 숨겨진 속뜻을 간직하고 잇는 귀넘이골은 
1989년 광동댐이 인근에 들어서며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살던 주민들이 마을이 물속에 잠기자 
이곳으로 이주하여 고랭지 배추밭을 개간하여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한 마을이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가을바람을 맞으며 눈앞에 모습을 보여주는 귀넘이골 과 위쪽에 있는 
야트막한 구릉은 별천지였다.
약35만평에 이르는 능선과 산비탈에는 속이 통통하게 살찐 배추들이 수확을 앞두고 있었다.
파란 가을 하늘아래 펼쳐진 푸른 배추밭은 초록색의 융단을 깔아 놓은듯 장관을 연출했다.
유난히도 신록의 계절 푸른5월을 좋아하는 나에게 이곳은 세차게 불어오는 봄바람에 보리들이
몸을 흔들어되며 일렁이는 풍경을 보는 겇처럼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었다.
이 시퍼런 땅 위에 눈이 내려 쌓이면 어떤 모습일까! 때맞추어 새하얀 서설(瑞雪)이 소복히 내려앉은
풍경을 환선봉에 올라 바라본다.
먼발치에서 보는 수만 평의 고랭지 채소밭은 광활한 설국을 연출한다. 
예년에 찾아보기 힘든 이상기온 현상으로 날씨가 변화무쌍하게 변한다. 
평소 같으면 첩첩 산중인 능선으로 매서운 추위와 차가운 바람이 휘몰아쳐야 하나 
오히려 날씨는 따뜻한 봄날처럼 느껴진다. 
골짜기에는 언제나 운무가 차 있다고 하더니 순식간에 내리는 하얀 솜털 같은 운무가 
덕항산 마저 시야에서 모습을 감추어 버리게 한다. 
오르내림이 심하지 않은 백두대간 능선 길을 따라 줄지어선 나뭇가지에 피어난 눈꽃은 
겨울 산행이 주는 백미이다. 
올 겨울에 많이 보지 못한 눈을 한꺼번에 원 없이 보고 즐기며 사거리 쉼터로 내려선다. 
여기서 덕항산 까지는 왕복800m 거리이다. 
오후가 되면서 내리는 운무가 더욱 짙어 지며 한 치의 앞을 내다보기도 힘들게 한다. 
덕항산 정상에 올라 검푸른 동해 바다가 수평선을 그리는 것을 보고 싶지만, 
아무것도 보지 못할 것 같아 오르는 것을 접고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하산을 결정한다. 
최근 텔레비전 메인 뉴스에 방영되었고 신문의 사회면에 보도(報道)된 
기사(記事)한 토막이 전 국민을 분노에 떨게 했다. 
죄책감이 없고 슬픔의 감정을 모르는 전형적인 사이코패스 범죄자가 저지른 끔찍한 사건이다. 
남에게 호감을 주는 인상에 주변에 있는 이웃주민들과도 알고 지냈다고 한다. 
고급차량을 소유하고 있었고 경제적으로도 생활하는데 아무런 불편이 없었다고 한다. 
겉으로 보아서는 그냥 평범한 사람이 그런 끔찍한 범죄자라는 것에 대해 지금도 믿어지지가 않는다.
졸지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족들이 오열하는 모습이 가슴을 아프게 했다.
골짜기를 가득 메운 운무는 온도가 떨어지며 날씨까지 추워지자 
나뭇가지에 하얀 상고대를 피어나게 한다. 
피어난 상고대가 소박하고 단아한 운치를 보여주는 능선 길은 생각 보다 가파르고 험하다. 
경사진 수직 철 계단을 내려서며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옮긴다. 
바닥에 내린 눈이 녹지 않고 그대로 있어서 더욱 미끄럽다. 
자칫 잘못하여 발걸음을 헛되게 옮긴다면 큰 사고로 이어질 아찔한 곳이다. 
계단이 끝나며 다시 철 기둥이 줄지어 세워져 있다. 
한 시간 이상을 내려서도 끝이 보이지 않고 이어지는 칼 능선은 
육체적 피로와 정신적 고통을 함께 주며 나를 지치게 한다. 
장암목에 내려서니 926개의 철 계단이 끝이 난다. 
이제는 좀 평평한 능선 길을 내려가겠지 했는데 기대와는 달리 가파른 능선 길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내린 눈이 얼지 않아서 발걸음을 옮겨놓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환선굴 전망대가 있는 동산고뎅이에 힘겹게 내려선다. 
첩첩 산중이라 겨우내 짧기만 해는 빨리도 저물어 간다. 
이곳에서 전방에 있는 환선굴이 보인다고 하나 벌써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깊은 산골은 
모든 것이 검은색으로만 보인다. 
능선 아래로 낮은 산등성이가 보이는 것으로 보아 하산지점인 골말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여전히 절벽 같은 능선 길이 나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것 같다. 
1000m터를 더 내려서자 끝나지 않을 것 같던 험준한 능선 길에서 벗어나게 된다. 
향긋한 솔잎 향이 느껴지는 송림 숲 사이로 이어지는 오솔길을 따라 
발걸음을 재촉하여 골말로 내려서니 초저녁의 짙은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다.
첫사랑은 이루어지기 힘들다고 한다.
아이러니 하게도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평생 잊지 못하고 가슴속에 애틋한 사연을 품고 살아간다.
첫사랑만큼이나 애틋한 사연을 품고 있는 눈 덮인 산을 종종 만나게 된다.
강원도에는 해발1000m를 넘는 고지 위에 펼쳐진 광활한 구릉으로 이루어져 있는 "안반"처럼 생긴 "덕"이 많다. 
그래서 그런가!
일제 강점기 때부터1968년 산림녹화 및 토양보존의 중요성으로 화전정리 
법을 제정하기 전까지 화전민도 많았다. 
그러나 화전정리 법이 제정되며 많은 화전민들은 한곳에 모여 마을을 이루며 살게 되었다.
화전민들이 농사를 짓던 황량한 산 능선과 구릉에는 대부분 울창한 전나무 숲이 조림되어 있다.
일부 토양이 깊고 흙살이 부드러우며 기름진 밭에는 고랭지 배추밭이 조성되있다.
경사가 완만한 산비탈에 있는 배추밭에 겨울이면 내리는 눈은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게 
하는 소중한 관광광자원이 되고 있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위에 뽀드득뽀드득 발자국 소리를 내며 산을 오를 때면 
누구나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게 한다. 
하얀 눈꽃과 나뭇가지에 앙증맞게 달라붙은 상고대는 겨울 산행의 백미처럼 보이지만 
실제 그 속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위험이 곳곳에 숨어 있다. 
눈 쌓인 칼 능선은 극기 훈련을 생각하게 할 만큼 나의 몸과 마음을 힘들고 고달프게 했다. 
자연은 때대로 이렇게 혹독한 시련을 안겨 주기도 한다. 
그것이 때로는 사회생활을 하며 살아가는데 많은 도움을 주기도 한다. 
살아 숨쉬고 있는 자연과 서로 교감을 나누며 그 동안 내가 미처 알지 못한 
자연의 심오한 신비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겨우내 온 세상을 하얀색으로 곱게 물들게 했던 눈이 녹고 파릇한 새싹이 돋아나는 봄이 오면
곰취, 곤드레, 취나물등 봄나물이 풍성산 귀넘이골을 다시 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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