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산행 기행문

전북 정읍 겨울 내장산.

풀꽃사랑s 2016. 10. 4. 22:22

전북 정읍시 내장동, 순창군 그리고 전남 장성군 북하면 약수리에 걸쳐 있는 내장산은 남원의 지리산, 영암의 월출산, 장흥의 천관산, 부안의 변산과 더불어 호남의 5대 명산으로 손꼽힌다. 원래 이름은 영은 산이라고 하였으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도 계곡 속에 들어가면 잘 보이지 않아 마치 양의 내장 속에 숨어 들어간 것 같다 하여 내장산(內藏山)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해마다 단풍천지를 이루는 가을뿐만 아니라 봄에는 철쭉과 벚꽃, 여름에는 짙고 무성한 녹음 그리고 갖가지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만개하여 오가는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겨울이면 서해바다에서 만들어진 습기를 머금고 생성된 높은 구름들이 내륙의 험준한 산 능선을 넘으면서 동쪽에서 불어오는 찬 공기와 부딪치며 많은 눈을 내린다. 자연이 빚어 놓은 바위 절벽의 멋진 비경과 아름다운 설경을 보고 싶어서 내장산을 찾는다. 이번 산행 길은 기존에 이용하던 추령이 아닌 남쪽의 백양사로 가는 지방도 길목에 있는 옥정에서 시작한다. 주변에 대통령 공원이 조성되어 있는 산두들을 따라서 북쪽으로 잡목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는 누렁이재로 발품을 부지런히 팔면서 올라선다. 설 연휴에 많은 눈이 내렸다고 하여 내심 눈 산행을 하지 않을까 생각 했다. 그러나 겨울답지 않게 따듯한 날씨는 벌써 봄이 오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산 능선에는 눈은 없고 떨어진 낙엽들이 촉촉하게 습기를 머금고 있어서 발로 밟으면서 느끼는 감촉이 상쾌하다. 이마에서 땀방울이 송알송알 흘러내릴 때 즘 장군봉 아래에 있는 넓은 안부 갈림길에서 휴식을 취한다. 평소보다 산행 시간을 30분 정도 단축시키면서 내장산 남쪽 끝에 급경사로 이루어진 장군 봉에 올라선다. 내린 눈이 녹지 않고 잔설로 남아있는 정상은 겨울이라 찾는 사람이 거의 없다. 맞은편 동쪽으로 추령에서 올라오는 달을 감상 할 수 있다는 월영봉(月迎峯)과 나란히 이웃하며 기묘한 바위 절벽 아래로 아름드리 단풍나무가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어, 마치 여인이 고운 치마를 입은 듯한 자태를 자랑하는 서래봉(西來峯)이 눈인사를 건넨다. 화창한 햇살이 부셔져 내리는 산 중턱아래에 남향을 보고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는 벽련암이 고고한 자태를 보여준다. 푸른 잔디밭처럼 보이는 대나무 숲이 유일하게 푸른색이다. 잔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산죽 길을 따라서 조심스럽게 내려섰다가 올라서면 산봉우리가 붓끝 같다고 하여 일명 문필봉이라 부른다는 연자봉이다. 풍수지리상(風水地理) 바로 맞은편에 보이는 벽련암(碧蓮庵)을 연소(燕巢: 제비의 보금자리)라 부르는데 연자봉이 그곳과 마주 보고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에서 200m 떨어진 능선 위에 8각 정의 2층 전망대가 세워져 있고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내장사와 우화정(羽化停)사이를 운행하고 있다. 자연이 빚어 놓은 바위 전망대에서 북동쪽 계곡아래를 내려다보면 내장사 절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 능선에서 보는 내장사의 풍경은 수려하지만 계절이 바뀔 때 마다 산사의 풍경을 변화무쌍하게 만든다. 내장산에서 가장 우람하고 넓은 면적에다 터줏대감처럼 자리를 잡고 있는 신선봉을 보며, 눈이 녹아 질퍽한 바위 길을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며 내려서니 능선 갈림길 안부이다. 울창한 원시림의 숲을 이루고 있는 이곳은 여름에는 짙은 녹음이 푸름을 더해주고, 가을에는 붉게 물던 단풍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어 많은 사람들이 쉬어가는 쉼터이다. 누가 라면을 끌이나 보다. 구수한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평소에 즐겨 먹지 않았던 라면도 산에서 먹으면 맛이 일품이다. 겨울이라 평소보다 많은 사람이 찾지는 않지만 그래도 산을 오르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면 서로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는다. 여기서 북동쪽으로 내려서면 금선폭포와 기름바위, 신선문, 용굴로 이어지는 금선 계곡이다. 높이가 18m인 금선(金仙)폭포는 신선들이 목욕할 때 속인(俗人)들이 올라와 넘보지 못하게 바위에 기름을 발라 놓았다는 기름바위가 있다. 그 바위를 70도 경사의 협곡 단애가 2m 석문처럼 막고 있다. 용문(龍門)또는 신선문(神仙門)은 금선폭포 밑에 있는 천연석문으로 신선들이 신선봉을 오를 때 통과 하는 관문이므로 용문이라고도 한다. 용굴(龍屈)은 임진왜란 때 조선왕조실록 태조 영정을 모신 장소로 알려져 있다. 안부에서 잠시 쉬었으면 했으나 바로 신선봉 정상으로 발걸음을 분주하게 옮긴다. 햇볕이 들지 않는 음지라 그런지 눈이 많이 남아 있다. 물기를 머금은 눈은 발자국을 옮길 때 마다 자꾸 뒷걸음을 치게 한다. 평소보다 힘겹게 내장산에서 가장 높은 신선봉 정상에 올라선다. 사방이 탁 트여서 시원한 조망을 즐길 수 있다. 남쪽으로 눈 덮인 순창의 광활한 들녘은 아직 겨울임을 말해주고 저 멀리 통신용 철탑이 서있는 광주 무등산이 아스라하게 다가온다. 서쪽으로 이어지는 바위릿지 길을 따라서 조심스럽게 내려서면 능선 주위에 하늘을 향 해 줄지어 서 있는 껍질이 희고 미끈하게 자란 울창한 나무숲이 이곳을 찾은 길손의 마음을 즐겁게 한다. 높지 않은 능선 길 언덕에 있는 넓은 너럭바위는 중식장소와 무더운 여름이나 가을에는 달콤한 낮잠을 즐길 수 있는 간이 쉼터이자 바위 전망대이다. 지나온 신선봉이 손을 내밀면 닿을 듯 하고 흰 구름이 양 때처럼 둥실둥실 떠있는 파란하늘이 깊은 속살을 드러낸다. 대기(大氣)중에 떠다니는 먼지를 밤새 내리는 비가 말끔히 씻어 내려서 그런가! 시계 (視界)또한 아주 깨끗하여 기분까지 상쾌하다. 내장산 서쪽의 중심부에는 2개의 암봉으로 되어있는 까치봉이 있다. 휴식을 마치고 능선 오름을 따라서 헬기장에 올라선다. 매번 내장산에 올 때 마다 여기서 중식을 먹었던 장소이다. 작년 가을에 보았던 억새는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서북쪽으로 이어지는 능선 길을 따라 호남정맥 과 백암산을 연결하는 주봉인 까치봉 정상에 올라선다. 추령에서 내장산 서쪽 능선을 휘감아 돌아나가는 호남정맥 마루금은 여기서 남쪽으로 방향을 잡으며 소둥근재로 이어진다. 하늘 높이 우뚝 솟아 있는 험준한 백암산(상왕봉), 백학봉이 위용을 드러낸다. 저 멀리 담양 추월산, 순창 강천산, 광덕 산으로 힘차게 파노라마 치는 산줄기가 하늘과 맞닿으면서 한 폭의 그림을 그린다. 동으로는 방송 중계시설이 서있는 망대 봉에서 추령으로 이어지는 호남정맥 마루 금이 길게 누워있고 고갯마루를 굽이굽이 휘감아 돌아 전북정읍으로 내려서는 49번 국도가 조망된다. 추령에는 유명하게 알려진 장승촌이 있다. 갖가지 얼굴의 형상을 하고 서있는 장승들은 이곳을 찾는 산악인(山岳人)과 관광객(觀光客)들에게 내장산의 단풍과 함께 이국적인 풍경을 선물한다. 1995년 백제 전통문화 연구소와 추령 장승제전위원회에서 매년10월 중순에서 11월 중순까지 약1개월간 순창군 복흥면 서마리 일대에서 토속신앙의 모습을 발전시키고자 추령장승 축제를 열고 있다. 장승은 우리 조상들의 원시 신앙으로 솟대 선들, 돌합, 남근석과 함께 민중의 삶 속에서 전승되어 왔다. 마을에 장승을 세우게 된 목적은 여러 설이 있지만 나무에 새겨진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과 같은 글귀의 구절로 보아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보는 것이 좋을듯하다. 내장산의 9개봉우리는 까치봉을 중심으로 해서 동쪽으로 이어지면서 말발굽 형을 이루고 있다. 북동쪽으로 눈길을 주면 넓은 호남평야가 한눈 가득히 들어온다. 들녘곳곳에 점점이 나지막하게 앉아있는 야산은 푸른 바다 위에 보석처럼 뿌려진 섬을 보는 듯 하다. 저수지를 가득 채운 눈이 시리도록 푸른 물은 올 농사도 풍년을 기약한다. 내장산의 수목95%이상이 활엽수인 단풍나무이다. 선홍색의 붉은 단풍이 현란한 풍경을 보여주던 가을과 달리 살짝 잔설이 남아 있는 산 능선에는 황량한 겨울 풍경만 수묵화처럼 그려진다. 내장산을 찾는 사람들의 90%이상이 까치봉에서 하산을 한다. 가파른 언덕길을 30분 정도 내려서니 금선계곡이다. 졸졸 흘러가는 계곡의 물소리가 사랑의 하모니를 들려준다. 내장산에 이렇게 많은 양의 물이 흐르는 것은 처음 본다. 깨끗하게 흘러가는 물길을 따라서 산속에 있는 금선 휴게소로 내려선다. 가을철에 사람들이 많이 찾을 때는 활기가 넘치던 곳이 겨울이라 그런가! 썰렁한 기분마저 들게 한다. 소형 승용차 한대가 겨우 달릴 수 있는 임도 길을 따라서 내장산 연봉들이 병풍처럼 둘러 쳐진 임도 길로 내려선다. 금선계곡과 원적계곡의 물이 서로 만나 몸을 섞는 계곡 중앙 위쪽에 아담하게 자리 잡은 내장사는 백제 30대 무왕37년(636년)영은조사가 창건하였다. 임진왜란(壬辰倭亂)때 전소 되었으나 그 후 여러 차례에 걸쳐 중건, 수축하였으나 6.25때 또 다시 불타버렸다. 1958년 대웅전을 중건 하였고 1964년 무랑수전을 세우고 1965년 대웅전 불상과 탱화를 조성 봉안 하였다. 1974년 일주문, 명부전, 정혜루를 복원하고 사천왕문을 신축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일주문에서 사찰 사이에 있는 빈 공터에는 100여 년 전에 심었다는 108그루의 단풍나무들이 하얀 눈 속에서 겨울을 나고 있다. 이 많은 나무들을 보며 불교에서 말하는 108번뇌를 생각해 본다. 심어진 나무는 아기, 내장, 참, 옹(翁)이라 부르는 고유의 이름을 갖고 있다. 처마에서 쉬지 않고 떨어지는 물방울과 은은하게 들려오는 스님의 독경소리가 길손의 심금을 울린다. 대웅전 옆 공터에 심어 놓은 금송이 산사의 운치를 더해준다.   큰 나무 아래에 있는 작은 연못에는 얼음 사이로 머리를 내밀고 있는 물고기들이 꼬마들이 던져 주는 먹이를 맛있게 받아 먹는다. 내가 산을 오르며 살아 숨쉬고 있는 자연과 교감을 나누듯이 물고기와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나누는 것일까! 부모님을 따라서 산사로 겨울나들이를 나온 꼬마들의 티 없이 밝은 얼굴에서 동심의 세계를 본다. 내장사 대웅전을 둘러보고 사천왕문을 나서면 우측으로 수레 길처럼 넓은 자연관찰 로를 따라서 서쪽으로 올라서면 불출봉 아래에 산속 깊숙이 원적암이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는 천연기념물인 난대성 상록활엽교목(常綠活葉喬木: 제주도 울릉도 등 섬에서 자생, 내장산 이남에서만 자람)바자나무 (榧子)100여 그루 (수령500년 이상)가 자생하고 있다. 잎과 가지는 만병초(위장병 약제)로 쓰이고 주목과 열매는 식유(食油)와 구충제로 쓰인다. 무려 수령이 750년이 된 나무도 있다. 일주문을 지나10분 정도 도로를 따라서 내려오면 연못 중앙에 아담한 우화정(羽化停)이 있다. 남쪽으로 끝을 가지런히 모은 나뭇가지 위로 따듯한 겨울 햇살이 부셔지는 풍경이 싱그러움을 더해준다. 정자위로 길게 드리워진 산 그림자와 하얀 눈이 겨울의 풍취를 느끼게 한다. 물이 흘러가는 계곡에는 외롭게 서있는 갈대꽃이 갈 길이 바쁜 길손의 마음을 부여잡는다. 평소에 나는 내장산을 여름과 가을 산이라고 생각 했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 생각이 많이 잘못된 것 같다. 오늘 산행을 하면서 눈 쌓인 겨울의 내장산을 눈앞에 그려본다. 울창한 숲을 이루며 겨울을 나고 있는 수많은 단풍나무에 내리는 눈이 하얀 상고대와 눈꽃을 피운다면 멋진 겨울풍경을 그려낼 것이다. 이제머지 않아 꽃피는 춘삼월이면 겨울을 무사히 난 단풍나무에 파릇한 새싹이 돋고 진달래 벚꽃도 아름다운 꽃을 피울 것이다. 가을이 오면 붉게 물던 단풍이 우리들을 반길 것이다. 파란 하늘은 가을처럼 푸름을 더해주고 흰 솜털 같은 구름이 솔솔 불어오는 바람에 자유자재로 재 갈 길을 찾아서 흘러간다. 아쉽게도 올해는 보지 못했지만 내년에는 멋진 눈 산행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