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산행 기행문

강원도 홍천 가리산.

풀꽃사랑s 2016. 10. 4. 22:17

수려한 산세와 비취색의 푸른 물이 출렁이는 소양호가 한데 어우러지며 비경을 빚어 놓은 강원도 홍천 가리산은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올해의 마지막 눈 산행을 멋지게 마무리 짓고 싶어 가리산을 찾는다. 전국에 봄을 재촉하는 단비와 함께 남녘에서는 벌써 꽃 소식이 들려오지만 이곳은 아직도 눈이 내리고 험한 오지답게 쌀쌀한 겨울 날씨이다. 자연 휴양림 한쪽 모퉁이에 인공적으로 만들어 놓은 얼음벽이 인상적이다. 가리산 탐방은 통나무로 만든 산막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임도를 따라 올라서며 만나는 능선 갈림길에서 시작한다. 저 멀리 북쪽으로 도깨비 뿔처럼 생긴 두 개의 커다란 바위 봉이 하늘 아래 우뚝 솟아 있는 가리산 정상이 신비함을 자아낸다. 살짝 잔설이 남아 있는 바위 계곡 길은 미끄럽기가 그지없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안간 힘을 쓰며 곡예를 하듯이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겨 능선으로 올라선다. 깊은 협곡을 이루고 있는 산중턱에는 울창한 낙엽송 숲이 서로 자웅을 겨루며 서있다. 완만한 경사로 이루어진 능선 길이지만 결코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될 것 같다. 이마에 땀방울이 송알송알 맺힐 쯤 무쇠말재에 올라선다. 옛날 이 일대가 큰 홍수가 나서 물바다가 되었을 때 무쇠로 배 터를 만들어 배를 붙들어 놓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때 당시 모든 사람들이 다 죽고 송씨네 오누이만 살아남았다는 애틋한 전설이 남아 있는 곳이다. 차갑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북쪽으로 10분 정도 발걸음을 옮기면 서쪽에 있는 샘과 북봉으로 올라서는 능선 갈림길이다. 바위 벽면 사이에서 사계절 내내 흘러나오는 석간수(石間水)는 400리 홍천강의 발원지이다. 또한 산 꾼들에게는 바짝 마른 목의 갈증을 시원하게 풀어 주며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쉼터를 제공하여 준다. 생각 했던 것과는 달리 올라서는 길은 험준한 바위 절벽이다. 곳곳에 쇠파이프로 기둥을 세워 놓았지만 밤새 내린 눈이 얼어서 빙판길로 변해 버린 등산로는 위험하기가 짝이 없다. 조심스럽게 두 손과 다리를 이용하여 힘겹게 가리산 정상에 올라선다. 사면팔방이 탁 트인 정상은 시원스럽게 다가오는 조망이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해준다. 내륙 깊숙이 자리잡은 잿빛의 고산준령들은 한 폭의 진경 산수화를 펼쳐 보인다. 사방(四方)으로 여인의 허리선처럼 곱게 뻗어 내린 산줄기는 부드러움과 풍요로움을 겸비한 육산의 전형이다. 뿌연 운무 속에서 살짝 얼굴을 보여주는 소양호는 심한 겨울 가뭄으로 인해 물이 많이 줄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주변의 산세와 함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준다. 깎아 지를듯한 바위 절벽 위쪽에 노송이 피어내는 새하얀 상고대는 멋진 풍광과 운치를 선물한다. 산비탈에 남아 있는 하얀 눈은 얼마 남지 않은 겨울의 풍취를 느끼기에는 충분하다. 암봉과 암등이 우람하여 바위산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들의 오금과 간담(肝膽)을 서늘하게 한 가리산 정상을 벗어나면 오솔길처럼 한적한 능선 길이 이어진다. 산중과 계곡 부근에 빼곡히 줄지어 서있는 참나무 숲이 황량한 수묵화를 그리고 평평한 구릉지로 이루어진 남릉을 따라 진달래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봄이면 연분홍 진달래꽃송이가 화려한 융단을 펼치며 장관(壯觀)을 펼치는 곳 중하나이다. 높고 낮은 연봉이 이어지는 완만한 능선 길을 따라 발걸음을 재촉하여 내려서면 가섭고개이다. 여기서 동쪽 계곡 아래에 있는 휴양림으로 하산을 하였으면 좋으련만 항상 부질없는 욕심은 뜻하지 않은 것을 경험하게 한다. 10년 전 백두대간 산행을 할 때 이다. 겨울이면 적설 양이 많은 강원도는 눈 산행의 베테랑 이라 불리는 사람도 주의를 기울이는 곳이다. 추운 바람을 맞으며 구룡령 고개에서 새벽2시에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산행을 진행했다. 보이는 것이라곤 산 아래 있는 마을에 줄지어 서있는 희미한 가로등 불빛뿐이다. 하늘에 총총 박혀있는 별들도 구름에 가려서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이 어두운 산속은 몰려오는 공포와 무서움에 치를 떨게 했다. 산새들조차 깊은 단잠에 빠진 능선에는 바람소리만 들려왔다. 새벽5시가 넘어 주위가 서서히 밝아 질 무렵에야 깊은 산골의 겨울밤이 막을 내렸다. 산 능선에서 이른 아침 동해 바다에서 떠오르는 일출을 보며 새로운 하루를 시작했다. 볼기를 때리며 가슴을 파고 더는 차가운 바람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쉬지 않고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사람의 키보다 훨씬 크게 자란 울창한 산죽의 숲을 헤치면서 오전12시에 하산을 하고자 하는 지점인 조침령에서 휴식을 겸해서 간단하게 준비해온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었다. 여기서 하산을 하려다가 시간과 체력이 충분한 것 같아서 2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단목령까지 산행 길을 연장하기로 결정을 했다. 날씨는 추웠지만 정오가 넘으며 바람이 심하게 불지 않아 몸으로 느끼는 체감 온도는 그렇게 낮게 느껴지지 않았다. 조침령을 출발 하여 약30분이 지나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눈이 내리기 시작 했고, 추운 날씨에 장시간을 밖에서 보내며 체력을 만이 소모하여서 그런가. 양쪽 허벅지에 근육이 뭉치며 심한 통증을 느꼈다. 이렇게 되니 당연히 걸음은 늦게 되었고 같이 온 동료들과는 거리가 점점 멀어지기 시작 했다. 순식간에 내린 눈이 능선에 쌓이기 시작한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은 까마득한데 산골의 어둠은 빨리도 내린다. 몸의 체력은 이미 바닥을 보인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보이는 것이라곤 하얀 눈 쌓인 산 능선뿐이다. 이때 불현듯 왁자지껄한 환청마저 들려온다. 순간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불긴한 예감들 내가 여기서 죽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살아 보고자 혼자서 발버둥을 치며 발걸음을 재촉하지만 긴장을 하여서 그런가. 몸과 마음은 생각처럼 움직이질 않는다. 눈 위에 넘어지기를 여러 번 반복하면서 뭉쳤던 근육이 풀어졌는지 아니면 내 마음속에 잠재 되어있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자연과 교감을 나누었을까! 양쪽 허벅지 통증이 일순간 깨끗하게 없어진다. 겨우 눈 속을 빠져 나와 단목령 고개에서 잠시 휴식을 하고 저녁6시가 넘어서야 하산지점인 오색으로 무사히 내려왔던 일을 잊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不拘)하고 오늘 또 다시 산의 유혹을 단호하게 뿌리치지 못하고 만다. 약간의 급경사로 된 언덕 오름을 15분 정도 올라서니 해발985m터의 무명 봉이다. 지나온 능선 길과는 달리 이곳은 어머니 품처럼 따듯하고 아늑함을 느끼게 한다. 끝을 가지런히 모우고 울창한 군락을 이루고 있는 진달래 나뭇가지 끝에 조롱조롱 맺힌 겨울눈이 꼭 곤충의 홑눈처럼 앙증맞게 보인다. 저 멀리 북으로 향로봉에서 오대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고봉준령(高峯峻嶺)의 웅장한 풍모(風貌)가 엷은 구름이 드리워진 하늘과 맞닿을 듯이 파노라마 친다. 낙엽이 발목까지 빠지는 경사가 급한 능선 길을 내려선다. 희미한 흔적만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파릇한 잎이 돋아나는 봄철에 산나물을 채취하는 사람들만이 다니는 길이 아닌가 생각된다. 어느 곳에도 남쪽 휴양림 쪽으로 향하는 길은 없다. 아마도 동쪽 아래에 보이는 마을로 내려서는 것이 가장 손쉬운 방법이 될 듯싶다. “궁하면 구하라 그러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라고 했는가! 우측에 보이는 낙엽송 숲으로 새로운 길을 개척하며 하산을 시작한다. 산의 토양이 걸고 기름져서 그런지 잘 조림되어 심어져 있는 푸른 송림 숲은 산행에서 오는 피로와 답답한 마음을 말끔히 씻어 주며 기분마저 상쾌하게 해준다. 사람이 다닌 흔적이 남아 있는 오솔길을 겨우 찾아내어 휴양림으로 이어지는 지방도에 내려선다. 첩첩 산중인데도 불구하고 드문드문 마을이 있다. 낯선 이방인을 보고 심기가 불편한 개들만이 짖어 될 뿐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전형적인 산골 마을답게 텃밭과 집 앞 개울가에는 야생으로 자라는 두릅나무가 고향의 맛과 정취(情趣)를 느끼게 한다. 다행스럽게도 별 다른 사고 없이 산행을 마치게 된 것에 스스로 만족감을 느낀다. 만약 많은 양의 눈이 쌓여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된통 고생을 하였을 것이라 짐작 해본다. 산행을 하다 보면 이렇게 나도 모르게 필요한 과욕을 하게 된다. 그때 마다 산은 나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해준다. 가리산 정상은 좁은 협곡을 사이에 두고 두 개의 암봉이 솟구쳐 있다. 홍천-속초간 44번 도로에서 보거나 인근 산에서 보아도 특별히 눈에 띄어 인상에 오래 남는 산이다. 산세가 곡식을 차곡차곡 쌓아둔 ‘낟가리’와 닮았다고 해서 가리산 이라 이름을 얻었다고 하나 멀리서 보면 거인이 쓰고 있는 왕관처럼 혹은 심술 굿은 도깨비 뿔 등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모습을 선보인다. 험준함과 부드러운 육산의 혼합형의 수려한 산세를 자랑하는 이산은 겨울에 눈꽃과 상고대도 좋지만 꽃피는 봄이나 싱싱한 녹음이 무성한 여름에는 많은 사람들을 황홀경에 빠지게 한다. 남릉에 진달래 필 때면 백두대간도 ‘기웃’ 한다는 가리산은 봄철 산행의 최적지로 그 명성이 자자하다. 강원도내 이름난 산 가운데 봄의 전령사인 진달래가 가장 많이 피는 산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주변 산세와 어우러져 소박한 아름다움을 발하는 꽃이 진달래이다. 산중을 뒤덮는 진달래와 울창한 참나무 숲이 파릇한 푸름을 더해주는 잎사귀와 부드러운 산줄기가 절묘한 조화를 이뤄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낸다. 매년 5월이면 봄꽃의 향연을 즐기려는 많은 산악인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진달래도 유명하지만 계절을 바꾸어 가며 꽃이 피는 야생화들도 많아 천상 화원을 펼치는 곳이다. 많은 사람들은 장미꽃의 아름다움만 알지 그 뒤에 숨어 있는 날카로운 가시가 있는 것을 모른다. 미모의 여인이 가슴속에 남이 모르는 비수(匕首)를 숨기고 있듯이 가리산 역시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바위산처럼 우리를 유혹하지만 눈 덮인 겨울에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무서운 것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15년 넘게 겨울 산행을 하면서 한번도 아이젠을 착용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하여야만 했다. 안전사고를 방지하고자 바위벽에 지나칠 만큼 많이 세워 놓은 철로 만든 구조물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자연은 본래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을 때 더 빛을 발휘하고 아름답다. 더 이상 사람의 손때가 묻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개인적으로 가져본다. 강원도에 봄은 늦게 찾아온다. 꽃이 활짝 핀 연분홍 진달래가 산 능선을 붉게 물들이고,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에 어지럽게 몸을 흔들며 군무를 출 때 다시 찾아와 아름다운 추억을 담아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