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산행 기행문

전남 여수 개도(蓋島)의 봄.

풀꽃사랑s 2016. 10. 4. 22:45

새하얀 파도가 몰려와 부서지는 푸른 바다 위에 자리 잡고 있는 미지의 섬. 오늘도 변함없이 또 다른 미지의 섬으로 산행 길을 잡는다. 전남 여수항에서 뱃길을 이으면서 약1시간 정도 거리에 개도(蓋島)라 이름 붙여진 아담하고 아름다운 섬이 자리 잡고 있다. 우리를 태운 여객선은 파도조차 일지 않는 잔잔한 푸른 봄 바다를 힘차게 미끄러지며 나아간다. 약30분을 소요하고서야 오늘 산행지인 개도 섬 여석항구에 정박한다. 항구에 내려서니 눈앞에 벌써 싱그러운 초록색으로 곱게 물던 새싹이 돋아난 나무들이 빼곡하게 들어서선 야트막한 야산이 푸른 뒷동산을 보는 듯하다. 비릿한 바다 냄새와 갯내음이 코를 자극한다. 해안가에 아담하게 자리 잡은 여석마을 입구에는 당산나무인 커다란 느티나무가 하늘에 닿을 듯이 높은 가지를 뻗고 서있다. 고기 잡이를 주업으로 하는 마을 주민들이 매년 정월 초에 이 당산나무 아래에서 풍어와 마을의 평온함을 빌었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어머니들은 항상 위험을 무릅쓰고 세찬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로 고기잡이를 나가는 지아비와 아들의 무사 귀환을 빌었을 것이다. 마을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은 대부분 아기자기하게 돌로 담을 쌓아 놓았다. 정성스럽게 쌓아 놓은 돌담에서는 옛날의 멋과 풍취가 물씬 풍긴다. 산행 길은 언제나 고행길이다. 섬에 있는 산이라고 결코 쉽게 정상을 허락하지 않는다. 저 멀리 동쪽으로 병풍처럼 이어지는 수려한 산줄기를 바라보면서 오늘 올라야 할 천재봉과 봉화산 정상을 조망해 본다. 산 능선을 따라 여름철에나 볼 수 있는 산딸기를 연상시키는 불게 잘 익은 망개열매가 지천으로 널려 있다. 육지의 높은 산에서는 좀처럼 볼 수가 없는데 유독 전남 여수를 기점으로 남해에 있는 다도해 섬에서 많이 보게 된다. 어린 시절 고향에서 보았던 망개열매를 개도섬에서 보니 아련하게 떠오르는 고향의 향수를 느끼게 한다. 붉게 잘 익은 망개열매가 꽃송이처럼 수놓은 능선 길을 따라서 낙타봉 정상에 올라선다. 동쪽으로 눈이 시리도록 푸른 남도의 봄 바다가 한눈 가득히 들어온다. 푸른 물결 위에 보석처럼 뿌려져 있는 많은 섬들이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한다. 섬은 보는 사람들의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 모양으로 보인다. 멀리서 보면 하나의 점처럼 보이기도 하고 또 다르게 보면 옛날 우리 조상님들이 즐겨 사용하던 유기그릇인 주발에 밥을 수북하게 담아 놓은 듯 하다. 오늘 따라 하늘에서 구름들이 살포시 섬과 바다에 소리 없이 내려 앉았다. 저 멀리 수평선 너머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봄 바다 풍경은 섬 산행에서만 맛 볼 수 있는 진풍경을 보여준다. 지나온 능선 길을 돌아보니 싱그러운 푸른 송림 숲이 푸름을 더한다. 금방이라도 향긋한 솔향기 가 솔솔 불어오는 봄바람을 타고 내게 날아 올 것만 같다. 눈앞에 보이는 널찍한 빈 공터에 올라선다. 이곳은 조선시대에 전란에 사용할 목적으로 말을 사육하였던 목장이 있던 자리이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휘둘러본다. 옛 목장은 온데간데 없고 돌로 성벽처럼 나지막하게 쌓아 놓은 돌담만이 큰 사각형 모양으로 남아있다. 왜 조선시대에 말을 육지가 아닌 푸른 바다가 삼면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섬에서 길렀을까? 그것은 아마도 겨울에도 날씨가 따뜻한 남도의 섬이 말이 자라는데 적합한 환경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바로 발아래 보이는 동쪽으로 바닷물에 닳고 닳아서 새하얀 윤이 반짝반짝 빛나는 아름다운 몽돌해변의 풍광이 일품이다. 능선을 따라서 울창하게 군락을 이루고 있는 진달래나무에는 꽃눈이 금방이라도 활짝 꽃잎을 열려는 듯이 몸부림 치고 있다. 가을에 수북하게 떨어진 나뭇잎 속에서 긴 겨울을 보낸 노루귀가 벌써 아름다운 꽃망울을 활짝 열었다. 아직도 날씨는 손이 시릴 정도로 차가운 날씨인데 이른 봄에 새 생명을 싹 틔운 노루귀가 벌써 봄 맞이를 나왔다 보다. 우리나라의 산과 들에서 보는 야생화는 정말로 아름답다. 특히 아름다운 산세가 어우러지는 깊은 산속의 바위틈이나 나무 아래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화사한 향기를 머금고 있는 장미를 꽃의 여왕이라는 애칭을 붙여 주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장미보다 수수하고 청순한 멋이 품기는 우리나라 야생화가 더 호감이 간다. 봄의 전령사 노루귀가 아름답게 수놓은 능선 길을 따라서 해발 382.5m미터인 천재봉 정상에 올라선다. 비록 해발이 300m미터를 조금 넘지만 육지에 있는 해발1000m미터 이상의 봉과 동등하다. 힘들게 고생하여서 올라온 만큼 정상에서 느끼는 환희와 기쁨도 두 배가 된다. 천재봉은 매년 음력 삼월 삼짇날 전야에 천재신에게 제를 올리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당연히 제를 올리던 제단과 음식을 장만하던 아궁이 등을 불 수 있지 않을까 생각 했지만 허물어져 버린 바위파편들만 보일 뿐 아쉽게도 옛모습과 흔적은 찾을 길이 없다. 저 멀리 서쪽으로 쪽빛의 푸른 바다를 앞에 두고 이제 막 파릇파릇한 새순이 돋아난 보리밭이 남도의 완연한 봄기운을 느끼게 한다. 이른 봄 남도의 들녘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보리밭은 신록의 계절 푸른 오월을 연상케 한다. 눈앞에서 멀어졌다가 살며시 가까이 다가오는 보리밭이 넉넉한 어머니 품처럼 가슴에 안기는 듯하고 때로는 사춘기 때 미모의 소녀를 보는 듯 황홀경에 빠져들게 한다. 산등성이가 병풍처럼 휘감아 돌아나가는 안쪽에 아늑하게 자리 잡고 있는 화산 마을은 유년시절을 보낸 고향 같다. 천재봉 정상에서 아지랑이가 아롱거리는 남도의 들녘에 찾아온 완연한 봄기운을 마음껏 음미 하면서 해발338m미터인 봉화산 정상에 올라선다. 봉화산은 말 그대로 옛날 우리 선조들이 통신 수단으로 이용했던 봉수가 있던 곳이다. 봉수대는 허물어지고 없지만 그때 쌓았던 커다란 돌들이 늘려 있다. 선조들의 지혜와 풍취를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장소이다. 사면이 막힘이 없이 탁 트인 정상에서 북쪽으로 전남 여수시가, 북동쪽에 돌산도, 남동쪽에 금오도, 서쪽에 고흥반도가 한눈 가득히 들어온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거리에 있는 남동쪽에 있는 금오도는 나에게 섬 산행의 묘미를 깨닫게 해준 섬이다. 봉화산 정상에서 능선 길을 재촉하며 내려서며 주위에 펼쳐지는 수려한 봄 풍경을 다시 한번 휘돌아 보며 화산마을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마을에 내려서니 활짝 핀 매화꽃송이가 나그네를 반긴다. 이에 뒤질세라 동백도 붉은 꽃망울을 열고 방긋 미소 짓는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 앞마당에는 정원수로 유자나무를 심어 놓았다. 키가 나지막한 나뭇가지에 오렌지 색과 푸른색의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있는 유자는 육지에서 가을에 풍성하게 열려 있는 선홍색의 감을 많이도 닮았다. 담장 밖으로 예쁘장한 얼굴을 드러내며 열려있는 오렌지 색의 유자가 감귤처럼 앙증맞다. 그냥 지나치기에는 너무나 아쉬움이 남아 휴대한 카메라에 몇 장 담아 오려고 집 안마당에 들어서니 집주인듯한 할머니가 어디서 오셨냐고 존대말로 물으신다. 할머니의 고운 얼굴을 보니 올해 팔십이신 나의 어머니를 보는 듯한 친근감이 든다. 대구에서 왔다고 말씀 드리니 이 멀리 있는 섬에 무엇이 볼 것이 있어서 왔냐고 말씀 하신다. 내가 대구에 살면서 가까이에 있는 팔공산의 아름다움을 모르고 살아가듯이 개도(蓋島)의 섬에 살고 있는 주민들 또한 이 섬이 품고 있는 천혜의 아름다움을 모르고 있다. 자연의 이치에 맞추어 슬기롭게 살아가는 섬사람들의 순수한 얼굴에서 소박하고 티 없이 해 맑은 마음이 가슴에 와 닿는다. 개도(蓋島)는 주위에 크고 작은 섬들을 거느리고 있다고 해서 한자로 덮을개(蓋)자와 섬도(島)자를 써서 개도(蓋島)라는 애칭을 붙여 부르고 있다. 하늘이 내려준 때묻지 않은 천혜의 비경을 간직하고 있는 개도섬에서 남도의 아름다운 붐 풍경에 흠뻑 취하며 소중한 추억을 가슴에 담고 여수항으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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