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산행 기행문

광양 쫓비산, 해남 금강산.

풀꽃사랑s 2016. 10. 4. 22:37


있는 듯 없는 듯 수줍은 새색시처럼 오는 봄을 시샘이라도 하려는가!
차가운 바람을 동반한 꽃샘추위가 몸을 움츠리게 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고달픈 삶을 잠시 뒤에 두고 봄 꽃을 찾아서 길을 나선다.
쫓비산 탐방은 이리저리 물줄기가 굽이치는 섬진강을 마주 보고 있고 있는 관동 마을에서 시작한다.
산비탈을 개간하여 심어놓은 매화나무 밭에는 벌써 하얀 꽃들이 만개하여
이곳을 찾은 나그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나지막한 임도 길은 점점 높이를 더하여 급경사로 이루어진 산 능선을 숨 가쁘게 올라서게 한다.
넓은 공터로 이루어진 배딩이재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검은색과 잿빛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나무숲 사이로 따듯한 봄 햇살이 부서져 내린다.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는 매서운 봄바람은 전 세계를 흔들어 놓은 경제(經濟) 한파만큼이나 차갑다.
살짝 얼어버린 급 오름 능선 길은 미끄럽기가 그지없다.
발걸음을 옮길 때 마다 외줄을 타는 광대마냥 곡예를 하듯 하며 힘겹게 갈미봉 정상에 올라선다.
잡목만 무성한 정상을 지나 낙엽이 쌓여서 감촉이 부러운 능선을 따라 남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이제 막 핑크색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하는 참꽃이 앙증맞게 보인다.
부드럽게 이어지나 싶더니 중간 중간 바위들도 나타나면서
아기자기한 느낌을 주는 능선 길은 산행의 묘미를 더해준다.
시야가 탁 트이는 바위 전망대에 올라서서 서쪽으로 눈길을 주면
하늘을 향해 삐쭉 솟아 있는 억불봉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위쪽으로 밤새 살포시 내린 하얀 눈이 살짝 덮인 백운산 정상을 보며
새삼 꽃샘추위의 위력을 실감한다.
그 뒤로 시원스럽게 이어지는 지리산 산줄기는 이곳을 찾은 나그네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흙과 바위가 적절하게 혼합된 능선 길을 오르고 내리기를 여러 번 반복하며
이름 조차 생소한 쫓비산 정상에 올라선다.
전북 진안 주화산에서 시작되는 호남정맥의 마지막 자락에 있는 최고봉이라고 하나
조망은 생각 했던 것보다 좋지 않다.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많은 표지 기들은 무당집을 연상시킨다.
정상에서 내려서서 몇 발자국만 옮기면 능선 갈림이다.

여기서 남쪽으로 내려서면 불암산을 지나 망덕산에서 그 맥을 다한 호남정맥이 섬진강에 몸을 푼다.
동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매년 3월이면 매화꽃이 일품인 청 매실 농장으로 하산 길을 재촉한다.
잡목만이 줄지어 서있는 능선에서 벗어나 울창한 송림 숲을 따라 내려서면 미니 전망대이다.
먼발치로 섬진강의 파란 물결이 넘실거리고 하얀색과 갈색 모래사장이 반짝반짝 빛이 난다.
강물너머 높은 산 언덕아래는 논과 밭이 들어앉았다.
산 아래쪽을 휘감아 돌며 빼곡하게 줄지어 서있는 푸른 소나무들은
싱싱한 신록처럼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금방이라도 꽃망울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른 진달래 군락 지를 지나
급경사 길을 내려서면 구불구불하게 이어지는 농로길이다.

낮은 산기슭의 구렁지대를 따라 약40만평에 달하는 넓은 면적에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는 청 매실 농원에는 봄이 무르익고 있다.
봄기운을 한껏 머금은 섬진강 변과 산 아래쪽에서부터 자락까지 활짝 핀 매화꽃이
하얀색의 융단을 깔아 놓았다.
언덕 위에 있는 전망대에서 내려다보이는 홍쌍리 여사의 집 모퉁이에 웅기 종기 모여 있는 장독대는,
엄숙한 분위기 속에 정연하게 정열 하여 열병식(閱兵式)을 하는 병정들을 보는 듯하다.
울타리 삼아 심어 놓은 푸른 대나무 숲은 선비의 꼿꼿한 절개가 느껴지고
한편으로는 봄날의 정겨움이 물씬 풍긴다.

산중턱에서 내려다보니 만개한 꽃송이로 산자락을 휘덮은 매화꽃무리가
겨울철 눈이 내리며 나뭇가지에 피어나는 하얀 눈꽃송이처럼 보인다.
농장 중앙에 점점 마음속에서 잊혀져 가는 옛 추억을 음미해 볼 수 있는
허름한 초가(草家)에서는 차를 팔고 있다.
조그마한 앞마당에는 상춘객(賞春客)을 위한 조촐한 음악회가 열리고 있다.
매화를 소재로 하여 세워 놓은 29개의 시비는 이곳을 찾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살찌우게 한다.

전북 진안군 백운면 팔공산 자락의 데미샘에서 발원하는 섬진강은
호남정맥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며 남녘의 광활한 들녘의 젖줄이자 생명수이다.
전라도와 경남의 고장을 두루 거치면서 남으로 굽이치는 이 강은
잘 보존된 자연 생태계에다 수려한 경관까지 품고 있다.
사계절에 걸쳐 어느 곳을 찾더라도 마음속에 길이 남을 추억을 쌓을 수 있는 곳이 섬진강변이다.
상류에서 흘러내리는 강물이 바닷물과 만나 서로 몸을 섞는 섬진강 하구는
꽃피는 춘삼월이면 매서운 겨울 추위를 이겨낸 만개한 매화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현란한 향연을 펼친다.

한반도의 봄은 먼저 섬인 제주도에 제일 먼저 내려앉는다.
육지에서는 당연이 해남이다.
한바탕 꽃샘추위가 유난을 떨고 물러가나 싶더니 이번에는 불청객인 황사가 찾아온다.
탐방 길은 해남 종합병원 뒤편에 있는 커다란 호수처럼 보이는 금강저수지를 지나,
체육 공원에서 북서쪽으로 급 오름 언덕으로 이루어진 바위 능선으로 올라서면서 시작된다.

아래서 위로 올려다보면 집채 만한 바위가 터줏대감처럼 버티고 앉아 위압감을 준다.
험준한 능선 길을 조심스럽게 올라서면 소의 정수리를 닮았다는 우정봉(牛頂峯)정상이다.
사면이 탁 트인 정상에서 남쪽으로 내려다보면 해남 읍이 손에 닿을 듯하다.
여기서부터는 완만한 능선 길을 이으며 전방에 모습을 드러내는 금강산성까지는 부드러운 육산 이다.

고려 말 해남을 침탈하는 왜구들을 무찌르기 위하여 세웠다는 금강산성.
지금은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버린 돌 파편들이 너들 지대를 연상케 한다.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겨 금강산과 금강령의 중앙에 홀로 우뚝 솟아있는 무명봉에 올라선다.
여기서 정상까지는 왕복하여 다녀와야 한다.
사면팔방이 탁 트인 금강산 정상은 전망대라 해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저 멀리 동쪽으로 주작, 덕룡산을 잇는 바위 연봉들과 해남기맥이
검푸른 실루엣으로 아스라하게 다가온다.
서쪽에는 남해 바다와 어우러진 붉은 황토로 이루어진 남도의 들녘이 이색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남쪽으로 눈길을 주면 해남 읍 너머로 두륜산 노승봉이살 짝이 얼굴을 내민다.
억새가 무성한 금강령은 헬기장이 조성되어 있다.
여기서 휴식을 겸해 점심을 먹는다.
후미에 함께 계시는 회원님께서 준비해 오신 삶은 돼지고기와
집에서 직접 담근 복분자 술이 궁합이 아주 잘 맞는다.

420고지에서 북쪽으로 내려다보이는 파릇파릇한 새싹이 돋아나는 푸른 보리밭은
아련한 유년시절의 추억을 느끼게 해준다.
뿌연 황사 속에서 지평선을 그리는 산줄기는 하늘과 맞닿은 듯 하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은 이곳을 찾은 나그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경사가 완만한 능선 길을 내려서면 금강재이다.
앞에 만대산이 바람난 여인네처럼 유혹의 눈길을 주지만 더 이상 부질없는 욕심을 버린다.
남쪽 금강 계곡으로 하산 길을 재촉한다.

산비탈에는 이제 막 붉은 꽃이 피는 동백나무가 많이 보인다.
산세가 깊지 않은데 많은 양의 물이 흘러내린다.
졸졸 흘러가는 물소리가 정겨움을 더해준다.
계곡을 건널 수 있게 가지런히 놓여 있는 징금 다리를 보니
“소설가 황순원 선생님의 소나기에 나오는 소년과 소녀가 떠 오른다”.
곳곳에 물놀이를 즐기며 쉬어 갈수 있는 너럭바위를 빚어 놓았다.
모퉁이를 돌자 바위 틈새에 겨우 한 사람이 앉아서 목욕을 즐길 수 있는 선녀 탕이 눈길을 끈다.
산행을 마치고 돌아 나오며 저수지 주위에 점점이 서있는 수양버들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여인의 긴 머리 결처럼 가지를 땅에 축 늘어뜨린 수양버들 나뭇가지에
연두색의 새싹이 산뜻한 봄맛을 느끼게 한다.

해남 읍 진산 금강산은 이곳 주민들이 매일 아침 금강산에 오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옥녀탄금의 형상이라는 해남 읍의 지형에서 가야금을 타는 선녀에 해당하는 곳이 바로 이산이다.
북쪽에 은적사, 남쪽에 금강폭포, 미암 등을 품고 있는 이 산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해남사람들의 지극한 사랑을 받고 있다.
최근에 전국에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산행지로 부각되고 있다.

해남 읍에서 버스로 30분 거리에 있는 산이면 보해 매실 농원으로 가는 도로변의 봄 풍경은 장관이다.
엷게 내려앉은 해무 사이로 강원도 산간 오지에서나 볼 수 있는 넓은 구릉지가 하늘을 이고 있다.
이곳의 90%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황토밭에서는 배추와 고구마, 감자를 많이 심는다.
최근에는 인삼까지 재배하고 있다.
이른 봄 남도의 들녘에는 겨우내 해풍을 먹고 자란 시퍼런 배추밭이 이색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이름하여 봄동이다.
내심 그리워하며 보고 싶었던 그 풍경은 아쉽게도 수확이 끝나버려서 볼 수가 없다.
솔솔 불어오는 봄바람을 맞으며 농부들의 손놀림이 분주하다.

좁은 농로처럼 보이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대형버스가 곡예를 하듯이 겨우 지나 보해 매실농원에 정차한다.
선홍색 꽃송이가 탐스럽게 피어 있는 동백나무 숲이 아담한 울타리를 만들어 놓았다.
축제에 맞추어 구름처럼 몰려든 사람들이 하얀 꽃잎 아래에서 봄날의 한때를 보낸다.
터널을 이룬 매화나무아래엔 개 불알풀이며,
광대나물 그리고 파릇파릇한 어린 쑥과 보리가 흐드러졌다.
나무 아래에 앉아 향기 그윽한 쑥을 뜯는 여인의 뒷모습에서 어머니를 떠 올려본다.
야생화들도 앞을 다투며 수줍은 꽃망울을 막 열고 있다.

약14만평의 황토밭에 1만4000여 그루의 매화나무가 심어져 있다.
이곳의 매화는 재래종 중심이다.
교배종까지 합하면 50종에 이른다.
앵숙, 백가하, 남고 등 많은 종류의 매화가 있으나 전문가가 아닌 다음에야
그 많은 종류를 육안으로 구분하기는 힘들다.
그냥 쉽게 생각해서 붉은 꽃은 홍매화 그리고 흰 꽃은 일반 매화라는 것 정도 밖에 모른다.
여기서 수확된 매실은 약720톤, 5월에서 6월초에
약20일간 200여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수확을 한다.
대부분의 매실은 매실주를 담그는데 쓰인다.
예전 매실주가 잘 나갈 때는 이곳에서 생산된 매실로만 충당하기에는 어려웠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매실주 판매량이 저조해 남는 매실은 시장에 내다 팔고 있다.
겨울 한파만큼이나 차갑게 몰아친 경제 한파의 영향으로 소비가 줄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먹고 사는 것이 힘든 세상이어서 그런가.
마음 편하게 매실주 한잔 마실 수 없는 여유조차 없는 것이 안타깝다.

엄동설한의 삭풍을 이기고 꿋꿋하게 버틴 끝에
고고한 향기를 내뿜는 매화는 봄에 가장 일찍 꽃이 피는 화목 중의 하나이다.
겨울이 끝나고 봄이 왔음을 알리는 전령사로서의 상징적 의미가 클 뿐만 아니라
미덕, 고결, 정절을 품고 있다.
세찬 눈보라 속에서도 그 푸름과 자태를 잃지 않고 절개를 지닌
송, 죽, 매(松, 竹, 梅)와 함께 세한삼우(歲寒三友)라 했다. 난초, 국화, 대나무와 함께 사군자라 하여
옛날부터 선비들의 사랑을 받았다.

섬진강 변의 매화꽃은 은은한 맛을 주고
해풍을 맞은 해남의 꽃은 수수하면서도 화려한 멋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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