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의 70% 이상이 수려함을 자랑하는 산들이 들어앉은 한반도는 예로부터 금수강산이란 애칭을 붙여서 부르고 있다. 사람들의 얼굴생김새가 저마다 다르듯이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는 산들 또한 독특한 고유의 멋과 개성을 품고 있다. 예년에 비해 유난히도 추웠던 올 겨울도 남녘에서 서서히 기지개를 켜면서 치고 올라오는 봄의 기세에 자리를 내어 주며 서서히 북쪽으로 올라가고 있다. 이제 머지않아 봄의 문턱에 들어서면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나는 산들이 산 꾼들을 유혹하기 시작할 것이다. 이번 산행은 봄맞이 산행이다. 이웃에 지리산 고리봉이 들어 앉아 있어서일까! 전남 곡성 괴소리 마을은 높은 고산준봉들이 병풍처럼 마을을 휘감아 돌아나가는 중앙에 움푹 내려앉은 분지처럼 나지막한 언덕자락에 아늑하게 들어앉아 있다. 마을 앞을 지나가는 지방도 한쪽 모퉁이에 괴소리 마을 표지 석을 뒤로 하고 북쪽으로 올라서며 곡성 초악산 탐방을 시작한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널찍한 정원이 딸린 커다란 집이다. 집의 규모와 넓이로 보아서 요즘 흔하게 볼 수 있는 펜션을 연상케 한다. 마을로 이어지는 골목길을 따라 부지런히 발걸음을 재촉하며 괴소리 마을회관으로 올라선다. 보통 시골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마을은 널찍하고 평평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 대다수 이다. 그러나 괴소리 마을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대부분의 집들은 특이하게도 나지막한 구릉지에 들어 앉아 있다. 또한 여느 마을과는 달리 집의 울타리를 이루고 있는 담장이 모두 돌이다. 자그마한 돌로 아기자기하게 쌓아 놓은 검은색의 돌담이 시골에서만 맛 볼 수 있는 정겨움을 더해준다. 마을 뒤편에는 남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울창한 대나무 숲이 정겹다. 그 너머에는 마을의 뒷동산이라 하여도 손색이 없을 듯한 윤이 반짝반짝 비취는 미끈한 화강암 바위가 일품인 초악산이 하늘에 닿을 듯이 우뚝 솟아 있다. 사방이 훤하게 탁 트인 양지 바른 곳에는 마을 사람들의 사랑방이자 쉼터인 정자가 아담하게 들어 앉아 있다. 마을을 벗어나면 임도처럼 널찍한 농로 길이다. 농로를 따라 산비탈에 접어들면 제법 규모가 큰 저수지를 만나게 된다. 괴소리 마을 주민들이 이용하고 있는 상수원이어서 그런가! 저수지에 그득하게 담겨 있는 옥빛의 푸른 물은 투명한 유리거울처럼 맑고 깨끗하다. 마치 눈이 부실 듯한 옹달샘 속에 새파란 하늘이 살며시 내려앉은 듯하다. 맞은편에는 겨울 산의 백미라 하여도 손색이 없는 울창한 송림 숲이 나그네를 반긴다. 인적조차 뜸한 호젓한 송림 숲길을 따라 한발 한발 떼어 놓는 발걸음은 하늘을 날아 갈듯한 상큼한 기분을 맛보게 한다. 향긋한 솔 내음과 조용한 산사처럼 고즈넉한 숲길, 수북하게 쌓인 솔잎은 푹신한 양탄자를 밟는 기분이다. 감미로운 촉감이 온몸에 스며드는 호젓한 숲 속에 들어서니 산신이 따로 없다. 더없이 부드러운 흙으로 이루어진 오솔길을 따라 긴 겨울을 보낸 진달래나무들이 금방이라도 활짝 꽃망울을 열듯이 몸부림치고 있다. 서서히 높이를 더하는 산등성이를 이으며 올라서니 어느새 이마에 송알송알 맺힌 땀방울이 흘러내린다. 앞이 탁 트인 미니 전망대에 서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주위를 휘둘러본다. 날씨는 완연한 봄 날씨처럼 따뜻하고 포근하다고 하나 저 멀리 높은 산 등성이에는 겨우내 내린 눈이 채 녹지 않은 하얀 잔설이 아직도 남아 있다. 산기슭을 빼곡하게 메우고 서있는 푸른 소나무 숲은 이른봄 파릇파릇 새순이 막 돋아나는 신록을 보는 듯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고, 새파란 저수지물과 어우러지며 진풍경을 펼친다. 논두렁이 제멋대로 휘어진 황량한 들녘은 봄 빛이 완연하고 마을을 가로 질러 순천과 광주를 이어주는 호남고속도로가 시원스럽다. 엷게 드리워진 흐릿한 연무(煙霧)속에 겹겹이 누워있는 검푸른 산줄기는 망망대해에 넘실거리는 파도처럼 장관을 이루고 있다. 북쪽으로 깎아 지를 듯이 높게 솟구친 미끈한 화강암 바위 절벽 곳곳에 크리스마스추리를 연상케 하는 노간주나무는 바위틈새에 갓 피어난 아름다운 꽃송이를 보는 듯 하다. 가파른 바위 난간에 가지를 길게 내린 낙락장송 갈래소나무는 꼿꼿한 선비의 기개가 느껴진다. 양지바른 산 등성이에는 봄기운이 완연하다고 하지만 그늘진 응달에는 아직도 제법 많은 양의 눈이 쌓여 있다. 날씨가 따뜻해지며 녹아내리기 시작하는 눈은 미끄럽기가 그지없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면서 안부에 내려섰다가 올라서는 능선 길은 큼지막한 바위들이 어지럽게 늘려 있는 너들 지대를 방불케 한다. 이곳에 산재해 있는 많은 양의 돌무더기는 마을의 돌담과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돌무더기를 헤집고 올라서면 커다란 바위들이 모여 있는 무명봉 정상이다. 산 능선을 뒤 덮고 있는 울창한 소나무들은 대부분 가지가 여러 갈래로 갈라진 갈래소나무들이다. 여기에다 솔잎은 황금빛이다. 발 아래로 시원스럽게 펼쳐지는 황금빛 풍광이 탄성을 자아낸다. 송림 숲길을 따라서 북쪽으로 부지런히 발걸음을 재촉하면서 올라서면 커다란 기암들이 모여 있는 해발728m미터인 초악산 정상이다. 정상이라고 하지만 그 흔한 정상 표지 석 조차 세워져 있지 않다. 저 멀리 북동쪽으로 늘씬한 여인의 허리선처럼 물 흐르듯이 장쾌하게 파노라마 치는 산 너울의 부드러운 능선 상에 솟구친 기암괴석은 하나같이 기골이 장대하고 인물이 출중한 장수(將帥)들이 한 줄로 나란히 서 있는 듯하다. 깎아지를 듯한 가파른 양쪽의 산비탈에는 듬성듬성 서있는 소나무와 잎을 떨군 채 앙상한 속살을 훤하게 드러낸 회색빛의 참나무 종류인 활엽수 나무들이 어우러지며 겨울 산에서만 맛 불 수 있는 이색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동쪽에는 삐쭉 솟아 오른 형제봉이 아련하다. 험준한 바위능선을 조심스럽게 내려서서 해발744.5m미터인 대장봉으로 이어지는 부드러운 능선 길은 사람들의 발길조차 뜸한 곳이라 태고의 자연미가 그대로 살아 있다. 산세가 깊은 곳이라 그런가! 산기슭 곳곳을 멧돼지들이 헤집고 다니면서 흙을 파헤쳐 놓았다. 대장봉을 지나 해발 750m미터인 형제봉을 올라서기 전 얼굴이 잘생긴 바위로 이루어진 전위 봉에 올라서서 휘둘러보는 풍광은 또 다른 즐거움을 안겨준다. 남쪽 초악산으로 달아나는 골이 깊게 페인 산줄기는 힘찬 남성미를 품고 있다. 반면 대장봉에서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산세가 부드럽고 울창한 소나무 숲이 아름다움을 더해주는 우아한 여성미를 내 품고 있다. 맞은편에는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힘차게 솟아오르며 산줄기 곳곳에 기암고봉을 얹고 들어 앉아 마치 민둥산처럼 보이는 동악산이 훤한 속살을 드러내며 유혹의 눈길을 보낸다. 그 너머에는 지리산 고리봉과 올망졸망 한데 모여 검푸른 실루엣을 이루며 하늘을 가를 듯한 산줄기와 어머니 품처럼 넉넉한 들녘이 한눈 가득히 들어온다. 전위 봉에서 잰 걸음으로 몇 발자국만 더 옮기면 형제봉 정상이다. 초악산과는 달리 이곳에는 정상 표지 목이 서있다. 형제봉 정상에서 발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바위능선 하나가 눈길을 끈다. 해금강이라 불리는 설악산에 공룡의 등뼈를 닮은 공룡능선이 있다면 곡성 초악산 산자락에는 부처공룡능선이 있다. 북쪽에 병풍처럼 휘 감돌아나가는 동악산이 내려다보는 중앙에 가교처럼 길게 뻗어 있는 부처공룡 능선은 바위 하나하나가 금강산의 만물상을 옮겨 놓은 듯 장엄하고 준수한 얼굴들을 하고 있다. 헝제봉에서 아직 잔설이 남아 있는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서는 능선 상에는 여러 가지 형상을 하고 있는 바위들을 만나게 된다. 그 많은 바위들 중에서도 유난히 돋보이는 것은 폭이 넓은 부채바위다. 둥근 부채 모양을 닮은 부채바위는 경이로움마저 느끼게 한다. 안부에 내려서니 눈앞에 우람한 몸집을 하고 서있는 부처바위가 나그네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다. 이 부처바위는 원효대사가 성출봉(형제봉의 옛이름)아래쪽에 길상 암을 짓고 청류동 남쪽 원효골에서 강도(講道)하며 지내던 어느 날 꿈속에 성출봉에서 그를 굽어보는 부처님과 16 나한의 모습을 보고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성출봉에 올라보았더니 한 척 남짓한 아라한(阿羅漢) 석상들이 솟아났다는 것이다. 이에 원효는 일곱 차례에 걸쳐 성출봉을 오르내리며 아라한 석상을 모셔 놓으니 육시(六時)에 천상의 음악이 온 산에 올려 퍼졌다는 애틋한 전설이 서려있다. 바위 한쪽 모퉁이에는 자연이 빚어 놓은 조그마한 통천 문이 자리하고 있다. 자연이 정교하게 빚어 놓은 바위 문은 일품이다. 아쉽게도 겨우 한 사람이 지나다닐 만큼 문이 협소하여서 그런가! 이곳을 지나다니는 사람은 없는 듯하다. 얼핏 보기에도 바위의 형상이 예사롭지 않은 부처바위 등을 타고 올라서면 저 멀리 동쪽으로 곡성 읍이 한 폭의 풍경화처럼 다가온다. 바위 등을 넘어 앞쪽에서 바라보니 전설 속에 나오는 16 나한이 바로 내 앞에 서있지 않는가! 부처바위를 뒤로 하고 연속해서 앞쪽에 이어지는 부처공룡능선을 오르고 쉽지만 그러기에는 주어진 시간이 촉박하다. 삼거리 갈림길에서 북동쪽 길상골로 하산 길을 재촉하며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면서 내려선다. 제일 먼저 나그네를 반기는 것은 수령이 수백 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우람한 느티나무이다. 옛날 험준한 고갯마루를 넘으면서 돌로 쌓아 놓은 성황당이 있었듯이 이곳에는 느티나무가 서있다. 세월의 흐름 속에 모든 것이 변하였지만 옛사람들이 올랐던 오솔길은 지금도 또렷하게 남아 있다. 돌들이 아담한 계단 길처럼 이어지는 호젓한 오솔길은 이제까지 보아 왔던 소나무를 대신하여 겨울을 나고 있는 빼곡하게 줄지어 들어선 참나무들이 원시림의 숲을 이루고 있다. 황량한 회색의 수묵화를 그리는 나무들이지만 벌써 물이 오르기 시작하는 통통한 나무에서는 살며시 소리 없이 찾아오는 봄을 느낄 수가 있다. 새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조용한 숲 속에서 나무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내려서면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길상암이다. 인적조차 뜸한 깊은 산속에 외롭게 홀로 남아 있던 산사는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허물어져 버렸고 지금은 우물과 돌로 만든 절구만 덩그렇게 남아 있다. 암자가 들어 앉아 있던 앞쪽에는 노거수가 되어버린 우람한 느티나무가 줄지어 서있다. 나무 사이 텅 빈 공터에는 누가 쌓았는지 돌탑 두 개가 이곳을 찾은 낯선 이방인을 반길 뿐이다. 암자 주위에는 예전에 스님들이 심어놓은 듯한 운치와 멋이 풍기는 많은 느티나무들이 옛 주인이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화려한 단청을 한 대웅전은 없지만 하늘을 찌를 듯이 서있는 느티나무가 색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길상암터에서 내려서는 길은 다시 크고 작은 돌들이 늘려 있는 긴 너들 지대이다. 지루하고 따분함을 느끼게 할쯤 있는 듯 없는 듯 돌무더기 속을 흘러내리는 물소리가 정겨운 봄 소리를 들려준다. 끝이 보이지 않을 듯이 이어지던 골짜기가 끝이 나며 제법 폭이 넓은 청류동 계곡이 펼쳐진다. 골이 깊은 동악산과 초악산 산줄기에서 흘러내는 물들이 모여서 하나의 커다란 물줄기를 이루며 계곡곳곳에 조그마한 옹달샘을 닮은 소(沼)를 빚어 놓았다. 푸른 옥빛의 맑은 청수가 널찍한 바위 바닥을 타고 흘러내리며 높이가 나지막한 와 폭포를 이루고 있다. 뽀얀 물방울이 방울방울 떨어지는 개울가에는 봄을 기다리는 버들강아지의 가지마다 한껏 부풀어 오른 하얀 솜털이 상큼한 봄맛을 느끼게 한다. 시원스럽게 옥구슬처럼 흘러내리는 계곡의 물소리를 벗삼아 내려서니 동악산 산기슭 양지바른 곳에 아담하게 들어 앉아있는 도림사절이다. 동악산(動樂山)의 남쪽 아름다운 계곡을 따라 기암괴석을 이루고, 넓고 평평한 반석위로 맑은 물줄기가 비단을 펼쳐놓은 듯 흐르고 있어 일찍부터 “수석(水石)의 경(景)이 삼남(三南)에서 으뜸이라” 할 정도로 수려한 절경을 이루는 상류에 있는 도림사(道林寺)는 신라 무열왕 7년(660년)에 원효대사가 사불산 화엄사로부터 이주하여 지었다고 전해진다. 헌강왕2년(876년)에 도선국사가 중창을 하였다고 한다. 이때 도인(道人)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었다고 도림사라 했다. 절의 규모는 작지만 절 입구에 허백련 화백이 쓴 ‘오도문(悟道門)’의 현판이 걸려 있는 문을 통하여 경내에 들어서면 중앙에 법당인 보광전(普光殿), 좌측에 웅진전(應眞殿) 우측에 칠성각 (七星閣)과 명부전(冥府殿)이 있고 아래쪽에 요사채와 범종각이 자리하고 있다. 수려한 풍광과 널찍한 멍석바위가 절경을 이루는 곡성(谷城) 도림사 계곡(道林寺 溪谷)은 동악산의 남쪽 골짜기를 흘러내리는 계곡물이 이웃에 있는 동악계곡, 성출계곡과 더불어 절경을 이루고 있다. 사시사철 쉼 없이 맑은 청수가 흘러내릴 뿐만 아니라 바닥에 층층이 깔려 있는 청회색의 암반이 계곡 우측에 울창하게 우거진 푸른 송림 숲과 좌측에 나란히 줄지어 서있는 느티나무와 어우러지는 풍광은 장관이다. 도림사에서 시원스럽게 이어지는 도로와 나란히 이어지는 약1km미터 거리의 계곡에는 용소, 소금장이소등 크고 작은 소가 곳곳에 있고 오곡반석(五曲磐石)의 요요대(樂樂臺)아래에 있는 널찍한 담(潭)은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특히 벚꽃이 만개하는 봄이면 울긋불긋 꽃 대궐을 이룬다. 나무에 파릇파릇 새순이 돋아나는 봄날의 풍경과 계곡의 아름다운 절경은 전국에 명성이 자자할 만큼 유명한 곳이다. 예부터 인과 덕을 품은 지혜로운 선비들은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인적이 없는 깊은 산과 계곡을 찾아서 수려한 자연을 벗 삼아 혼자서 조용히 은둔의 생활을 즐겼다. 곡성 초악산은 마주보고 있는 동악산의 명성에 가려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수려한 산세와 아름다운 풍광 천연고찰 도림사등 하늘이 내려준 천혜의 비경을 품고 있는 곡성 초악산은 동악산 못지않은 명산이다. 항상 바쁘게 시간에 쫓기며 살아가야 하는 도심을 벗어나서 어머니 품처럼 넉넉한 대자연의 품 안에 안기면 속세의 모든 일이 봄눈 녹듯이 사라진다. 겨우내 꽁꽁 얼어 버린 대지에 파릇한 새싹이 돋아나듯이 내 마음속에도 어느새 봄이 움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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