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산행 기행문

경북 군위군 아미산.

풀꽃사랑s 2016. 10. 5. 22:57


경북 군위군 고로면 석산리는 마을 전체를 푸른 신록이 짙게 드리워져 있는 나지막한 산들이 마치 병풍처럼 휘감아 돌아나가며 아늑하게 감싸고 있다. 꼭 동네 뒷동산을 연상케 하는 높이가 서로 비슷한 봉우리들이 서로 자웅을 겨루지만 그 중에서도 마을 남서쪽에 하늘 높이 우뚝 솟구치며 산세가 빼어난 ‘앵기랑바위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마치 아름다운 여인이 고운 자태를 품고 눈앞에 서 있는 듯한 준수하게 잘 생긴 앵기랑바위는 아름답기가 그지없다. 이 바위를 품고 있는 산이 바로 최근에 알려지기 시작한 아미산(峨嵋山)이다. 한자대로 풀이하면 “높고 험한 모양의 산”이란 뜻인데 아마도 앵기랑바위를 뜻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눈앞에 웅장하게 모습을 드러내며 기골이 장대한 장수처럼 위용을 떨치며 들어 앉은 아미산은 5개의 커다란 바위봉우리로 이루어진 앵기랑바위와 여러 개의 높고 낮은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산에서 항상 마주치는 기암과 수려한 산세는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각기 다른 얼굴로 보여진다. 겉으로 얼핏 보아서는 금방 쉽게 오를 수 있을 듯한 아미산 그러나 이산을 이루고 있는 기암괴석과 험악함은 동해의 해금이라 불리는 설악산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하여 “작은 설악산”이란 애칭을 붙여서 부르고 있다. 바위하나하나는 금강산의 만물상을 연상케 할 만큼 자연이 정교하게 빚어 놓았다. 함께 탐방 길에 나선 동료는 꼭 설악산의 귀신 바위를 닮았다고 하지만 나의 눈에는 설악산의 용아 능선을 여기에다 옮겨다 놓은 것처럼 보인다. 바위틈새 자리에 푸르게 서있는 소나무들은 하나같이 나지막한 키를 유지하면서 양쪽 옆으로 줄기와 나뭇가지를 뻗어 내렸다. 그 풍경이 마치 화분이나 집안의 정원에 잘 가꾸어 놓은 분재 같다. 몇 년 전만 해도 이곳은 “한국 산악연맹” 대구지부에서 즐겨 찾는 암벽 훈련 교육장이었다. 그러나 아미산이 전국에 알려지면서 자연 상태의 등산로는 인공미를 가미하여 나무계단을 설치하여 놓았다. 나무계단이 설치 되면서 앵기랑바위를 올라서는 길은 쉬워 졌으나 암벽산행 특유의 짜릿함과 스릴을 맛 볼 수가 없는 것이 많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계곡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사방이 확 트인 바위 전망대에 올라서서 휘둘러 보는 풍광은 일품이다. 맞은편 야산에 흐드러지게 핀 하얀 밤꽃송이가 색다른 감흥을 불러 일으킨다. 모내기를 끝마친 논은 푸르름을 더해가고, 밭에는 잎담배와 고추가 풋풋한 초여름의 운치를 연출한다. 사람들의 얼굴이 저마다 다르듯이 산세의 형상 또한 그러하다. 많은 산 들은 대부분 봉우리가 하늘을 향해 둥근 원뿔처럼 끝이 뾰족하게 솟구친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눈앞에 펼쳐지는 산봉우리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먹을 갈아서 글을 쓰는 붓처럼 유연한 아치형이다. 이러한 모양의 산봉우리를 문필 봉이라 부르고 있다. 눈길 닿는 곳마다 부드러운 양탄자처럼 파릇한 초록의 신록이 드리워진 산 능선은 자연의 경이로움이 물씬 풍긴다. 능선을 뒤 덮은 물참나무 잎새가 어두컴컴한 그늘을 이루고 있는 오솔길을 따라 남동쪽으로 올라서니 촘촘히 서있는 나무 아래쪽에 기린초가 노란색의 꽃망울을 터뜨리고 산꾼을 반긴다. 사람의 손떼가 전혀 묻지 않은 야생화에서는 화려한 장미꽃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질박한 아름다움이 있다. 흙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수북하게 많은 낙엽이 떨어져 있는 오솔길은 발 걸음을 옮길 때 마다 부드러운 쿠션을 느끼게 한다. 산의 90%이상을 잎이 넓은 활엽수인 물참나무와 도토리나무가 서식하고 있다. 그 덕분에 햇볕이 전혀 들어 오지 않는 원시림의 울창한 숲길을 걸으며 덤으로 산림욕을 즐긴다. 잎이 뾰족한 침엽수 종류인 소나무와 전나무, 잣나무 숲에서 즐기는 것보다는 못하지만 이렇게 산림욕을 즐길 수 있는 것에 만족한다. 어느새 해발402.4m인 아미산 정상에 올라선다. 정상은 사방이 울창한 숲에 둘려 싸인 채 막혀 있어서 약간 답답한 기분을 들게 한다. 누군가 정성스럽게 쌓아 놓은 돌탑이 이곳을 찾아온 나그네를 맞는다. 주로 섬이나 바다에 인접한 해안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돌탑이다. 육지에서는 화려한 옛 백제 문화를 꽃피운 금북, 금남, 호남, 한북, 한남정맥 마루 금이나 산 정상 혹은 주요 고개마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돌탑이다.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이 돌탑의 모양이 모두가 하나같이 비슷하거나 거의 같다는 것이다. 분명히 탑을 쌓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인데 이에 대한 의문은 숙제로 남겨 두고 싶다. 이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다음 지도에 표기된 무시봉으로 발 걸음을 옮긴다. 울창한 물참나무 숲길을 따라 파란 풀들이 초원지대를 이루고 있다. 풀밭 속에는 새하얀 꽃을 피운 민백이꽃 한 포기가 애처롭게 자라고 있다. 꽃망울의 모양은 이른봄에 꽃을 피우는 튜울립과 비슷하게 생겼다. 근처에는 소백산에서 보았던 벌깨등굴과 꽃송이가 비슷한 골무꽃이 보라색의 예쁜 꽃망울을 터뜨리고 갓 시집을 온 수줍어하는 새색시처럼 방긋 미소 짓는다. 저 멀리 동쪽으로 경북 영천의 보현산 천문대와 산 정상을 겹겹이 에워싸며 이어지는 산줄기가 형성하고 있는 스카이라인은 환상적이다. 무시봉 정상에서 남쪽으로 내려서면 사람이 다닌 흔적이라곤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은 그야말로 미로의 산 능선이 해발730m로 이어진다. 얼레지를 많이 닮은 비비추와 곰취, 취나물, 우산나물이 무리 지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산비탈과 산자락 곳곳에 멧돼지들이 자기의 영역을 표시하고자 똥을 싸 놓았다. 산에 사는 짐승들도 사람들이 다니는 능선 길을 따라서 다닌다고 하더니 그 말이 틀린 것이 아님이 증명된다. 아득하게 멀게만 느껴지는 능선 길을 이으며 해발758m 봉에 올라서니 또 다른 돌탑이 세워져 있다. 처음에는 여기가 방가산 정상인줄 알았다. 나무 가지에 “대구 백두대간 종주회” 표지기가 걸려 있는 것을 본다. 나와는 백두 대간과 9정맥의 인연을 맺은 팀들이다. 이 팀들과 함께 10년 동안 동고동락을 함께하며 후미에서 산행 가이드를 맡아서 진행했다. 이분들 중에 지맥과 기맥을 하고 있는 분이 있다 것을 익히 알고 있었는데 벌써 대구 팔공산에서 보현산, 방가산으로 이어지는 팔공지맥을 오르면서 붙여 놓은 표지기이다. 아무도 찾지 않은 이 깊은 산중에서 낯익은 표지기를 보니 평소에 알고 지내던 친한 친구를 만나는 것 이상으로 반갑다. 돌탑이 있는 곳에서 약10분 정도 올라서면 해발755.7m인 방가산 정상이다. 방가방가 반가워서 방가산(方可山)이란 재미있는 애칭이 붙여진 것일까! 산 이름은 재미 있는데 그 흔한 정상석 하나 없다. 비닐에 코팅을 한 방가산 정상이란 표지기가 애처롭게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을 뿐이다. 다만 산 정상 중앙에 국립지리원에서 설치한 삼각점이 있을 뿐이다. 방가산 정상에서 내려서면 보라색의 엉겅퀴가 무덤의 봉분을 뒤덮고 있다. 무슨 말 못할 애틋한 사연이 숨어 있을 것만 같다. 노란색의 꽃을 피운 노란장대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곳곳에 산딸기도 군락을 이루고 있다. 붉게 잘 익은 열매를 하나 따서 입에 넣고 씹으니 새콤달콤한 맛이 일품이다. 하얀색의 꽃이 핀 향이 좋은 정향나무도 만난다. 한글로 수수꽃다리라 불리는 정향나무는 미국으로 건너가 다른 나무에 접목하여 새로운 품종으로 육종한 것이 정원수로 많이 심고 있는 라일락나무이다. 왕둥글레, 진한 붉은색의 꽃을 피운 하늘나리 등이 산행의 운치를 더해준다. 특히 층층나무 그리고 백당나무와 꽃송이가 비슷한 산수국을 본다. 초록의 잎새에 크다란 접시처럼 큰 꽃송이가 인상적이다. 이제 막 꽃망울 터뜨리기 시작하는 작은 꽃잎은 남녘의 개도섬에서 본 노루귀를 보는 듯하다. 이렇듯 깨끗한 마음을 열고 대자연을 보면 그 속에 숨겨진 아름다운 꽃들이 눈에 선명하게 보인다. 해발603m 봉에 올라서니 동쪽으로 영천군 화남면이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처럼 펼쳐진다. 마치 비취색의 푸른 바닷물에서 놀고 있는 미끈한 고래등처럼 무리를 지어 하늘을 향해 둥글게 솟구친 산 봉우리들과 하늘색을 닮은 파릇한 들녘이 어우러지며 절경을 펼친다. 신록의 계절 푸른 오월의 소백산 비로봉과 국망봉의 능선을 보는 듯하다. 내 마음속에 꿈꾸고 있던 이상향을 여기서 다시 본다. 항상 마음속에 숨겨 놓았던 무릉도원을 눈앞에서 보다니 신선이 따로 없다. 끝이 보이지 않는 팔공지맥 마루 금에는 백선이 무리를 지어 아름다운 꽃 길을 연다. 서쪽에 보이는 장곡 자연휴양림으로 내려서면서 처음으로 보는 노루발과 초롱꽃을 본다. 이른봄 꽃샘추위 속에서 하얀색의 꽃을 피우는 매화를 많이도 닮은 노루발, 꼭 옛날 초롱처럼 생긴 초롱꽃을 보면서 대자연의 오묘한 신비를 새삼 느끼게 된다. 모처럼 돌아본 작은 설악산 아미산, 방가산, 초록색 신록이 드리워진 숲 속에는 아직 사람의 손떼가 전혀 묻지 않은 아름다운 야생화에서 소박한 아름다움과 멋진 맛을 음미해 보았다. 대구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이런 멋진 산들이 있다는 것에 새삼 놀라게 되었다. 개망초 밤꽃이 흐드러지게 핀 시골 풍경과 저 멀리 살포시 내려 앉은 새하얀 구름송이를 머리에 이고 있는 대구 팔공산의 주 능선은 또 하나의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을 선물해 주었다. 바로 눈앞에 값진 보물을 두고 왜 그리도 멀리서 찾았는지 오늘 산행에서 많은 것을 깨 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