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산행 기행문

전남 강진 화방산.

풀꽃사랑s 2016. 10. 5. 23:00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빛을 발휘하는 아름다움, 그것을 가리켜 우리는 흔히 명품이라 한다. 소장하는 차제만으로도 품격을 높여 주는 명품. 그 중에서도 푸른 빛이 우리네 산천을 빼 닮은 고려청자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한국의 명품이다. 탐진강 하구에 아늑하게 자리 잡고 있는 전남 강진군 대구면은 고려 청자의 발상지이자 중추 역할을 담당했던 곳 중하나이다. 우리나라의 국보급, 보물급 청자의 약80%가 탐진강 하구에 있는 강진군 대구면 청자도요지에서 구워졌다. 그리하여 청자의 고장이라는 애칭을 붙여서 부르고 있다. 천년 전 선조들의 숭고한 예술 혼을 오감으로 체험 할 수 있는 명품의 고장 강진에 요즘 청자와 자웅을 겨루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새롭게 명성을 더 높이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화방산 ‘큰 바위얼굴’이다. 화방산 탐방 길은 삼화마을 회관 옆 이정표가 서있는 수레길 에서 시작한다. 옛날부터 선비와 정자(亭子)의 고장답게 마을 안뜰에는 길을 가는 나그네가 쉬어 갈수 있게 아담한 정자(亭子)가 자리 잡고 있다. 정자를 뒤로 하고 마을 안쪽으로 이어지는 수레 길을 따라 북쪽으로 발걸음을 분주히 옮기다 휴식을 겸해서 가던 걸음을 잠시 멈추고 뒤돌아 보면 남향을 향해 아담하게 들어 앉은 마을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집 뒤편의 텃밭에는 싱그러운 도라지가 자라고 있고 한쪽 모퉁이에는 보라색의 꽃을 피운 엉겅퀴가 많이도 심어져 있다. 한약재로 쓰기 위해서 일부러 심어 놓고 가꾸고 있는 듯하다. 아래쪽에는 따갑게 내리쬐는 햇볕을 피해서 낮잠을 즐기던 견공이 낯선 이방인의 방문으로 심기가 불편한지 멍멍거리며 마구 짖어 된다. 초록색의 녹음이 짙어가는 수레 길은 산책길처럼 호젓하게 이어진다. 길옆에는 보라색의 꿀풀이 소담스럽게 꽃을 피우고 수줍은 새 색시 마냥 방긋 미소 짓는다. 무엇이 그리도 바쁜지 모두들 버스에서 내리기가 무섭게 종종걸음을 하며 저만치 앞서간다. 소담스럽게 꽃을 피운 야생화도 보면서 좀더 여유를 갖고 혼자만의 낭만과 사색을 즐기면서 서서히 발걸음을 옮겨놓는다. 조그마한 소류지를 끼고 돌자 산등성이에 우뚝 솟아 있는 큰 바위얼굴이 모습을 드러낸다. 크다란 입과 깊은 눈매 짙은 눈썹, 오뚝한 콧날은 요즘으로 말하자면 잘 생긴 호남형의 인물이다. 얼핏 보면 익살스러운 얼굴표정을 하고 풍자적인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경북 안동의 하회탈과 많이도 닮았다. 푸른 신록이 우거진 깊은 골짜기에서 조용하게 흘러내리는 실개천의 물이 모여드는 소류지에는 청수(淸水)가 그득하다. 물속의 수초 숲에서는 개구리들이 목청을 높이며 ‘응깽 응깽’ 구슬프게 노래를 부른다. 모처럼 듣는 개구리 울음소리는 유년시절 아련한 옛 추억이 담겨있는 고향의 구수한 맛을 느끼게 한다. 구릉지처럼 보이는 넓은 초원에는 큰 바위얼굴의 전설이 기록된 표지판이 외롭게 서 있다. 작은 개울에 소나무를 베어서 가로로 걸쳐 놓아둔 외나무다리를 건너서면 널찍한 길은 자취를 감추어 버리고 한적한 오솔길이다. 아직 많은 사람들이 찾지 않아서 그런가! 산 전체가 파릇파릇한 산나물 그리고 야생화들이 뒤덮고 있다. 땅을 비집고 올라온 싱그러운 풀들이 초목과 어우러지며 울창하게 숲을 이루고 자연이 빚어 놓은 초원지대에는 원초적 미(原初的 美)가 살아 숨쉰다. 높은 언덕처럼 경사가 완만한 능선을 올라서다 보면 곳곳에 미니 바위전망대가 자리 잡고 있다. 전망대에 서서 보는 큰 바위 얼굴은 환상적이다. 맨 앞쪽에 보이는 또 다른 바위는 사나운 사자의 얼굴 형상을 하고 있다. 점점 높이를 더하는 언덕길을 올라서면 능선 삼거리 갈림길이다. 동쪽으로 툭 튀어나온 바위 전망대에 올라서니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주변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제 막 모내기 준비가 한창인 들녘에는 농부들이 분주하게 손길을 움직여야 하나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예전처럼 손으로 모내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요즘은 모든 것이 기계화가 되어서 그런가 보다. 붉은 황토 흙으로 이루어진 논에는 봇물이 그득그득하다. 하얀 물보라가 일렁이는 논은 소금을 채취하는 염전을 보는 듯하고 또 다른 논에는 모진 겨울을 이겨냈던 청보리가 어느새 황금빛 바다를 이루고 있다. 누렇게 잘 익은 보리들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에 너울너울 춤을 춘다. 눈앞에 황금빛으로 넘실거리는 보리밭에는 유년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이 있고, 배고픔을 달래는 고향의 풍요로움이 있다. 평생 등이 휘도록 보리밭을 일궈 가족들을 부양한 부모님의 희생과 노고도 보인다. 모든 것이 풍족한 도시생활로 잊고 지내지만 시골의 들녘에서 만나는 보리밭은 언제나 따스한 어머니 품처럼 정겨움이 있다. 널찍한 들녘에 점점이 자리 잡고 있는 야트막한 야산은 육지 속에 놓여 있는 섬을 보는 듯 이색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북동쪽 직선 방향으로 눈길을 주니 푸른 봄 처녀가 사뿐히 내려앉은 큼지막한 야산들이 줄을 선다. 붕긋한 산봉우리의 모양이 금방이라도 꽃송이가 터질 것만 같은 연꽃송이 같다. 높고 낮은 산들이 휘감아 돌아나가는 낮은 구릉지 사이로 자그마한 들녘과 집들이 앙증맞게 들어앉았다. 깊은 산속에 들어 앉아 있는 들녘의 풍경이 마치 시냇물이 흘러가는 개울처럼 독특한 풍경을 연출한다. 산중턱에 있는 저수지의 물은 눈이 시릴 만큼 푸른빛이다. 하늘을 향해서 겹겹이 누워있는 산줄기가 검푸른 실루엣으로 스카이라인을 이루고 지평선 너머로 아득하게 장흥 억불산이 얼굴을 드러낸다. 앞쪽에 장승처럼 우뚝 서있는 며느리바위가 인상적인 모습을 풍기고 북쪽으로 제암산 산줄기가 하늘과 맞닿았다. 깊게 페인 골짜기마다 초록색의 신록이 나그네의 마음을 울렁이게 한다. 여름의 문턱을 향해서 달려가는 산들의 모습은 언제 보아도 정겹다. 좀더 머물고 싶지만 시간은 언제나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능선 삼거리에서 경사가 완만한 능선을 내려서면 황 부자(富者) 전설을 품고 있는 형제바위이다. 이 바위를 이곳 주민들은 양물 바위라고도 부른다. 멀리서 보면 하나의 커다란 바위로 보이지만 앞에서 직접 보면 나란히 서있는 두 개의 바위다. 자세히 보면 사이좋게 서있는 바위 가운데 위쪽에 틈이 벌어져 있다. 중앙에는 사람의 배꼽처럼 커다란 구멍이 뻥 뚫어져 있다. 실제로 보면 사람이 일부러 뚫어 놓은 듯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비바람에 의한 풍화작용으로 인하여 바위에 구멍이 생기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오묘한 신비를 자아내는 형제바위를 뒤로 하고 거칠고 가파른 바윗길을 아슬아슬하게 넘어서면 커다란 바위 하나가 앞을 가로막는다. 산행을 처음 시작하면서 보았던 사자를 닮은 바위이다. 바위를 정면으로 올라 설수가 없어서 우측으로 우회하여 올라선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면 지나온 형제바위가 남근석처럼 보인다. 오솔길처럼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거대한 바위가 기묘한 모양을 하고 있는 큰 바위얼굴에 올라선다. 이 바위의 정식 이름은 광대(廣大)바위이다. 남쪽에 자리 잡고 있는 삼화마을에서 올려다보면 볼수록 감탄과 탄성을 자아내게 하지만, 실제 옆에서 보면 그냥 평범한 바위에 지나지 않는다. 이곳에도 형제바위와 비슷한 전설이 전해져 온다. 『시주 온 한 스님을 문전 박대한 인색한 부자(富者)에게, 스님이 화방산 큰 바위 얼굴의 배꼽을 파면 더욱 큰 부자(富者)가 될 것이라 말해준다. 스님의 이야기를 듣고 바위 밑의 배꼽을 판 부자(富者)는 몰락하고 말았다. 지금도 그 큰 바위 얼굴 아래쪽을 보면 피가 흘러 굳어진 것처럼 빨갛게 보인다고 한다.』 형제바위와 광대바위에 얽힌 이야기들은 그 내용이 다른 것 같지만 실제로 이야기 속에서 말하고자 하는 인과응보는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 두 곳 중 전설 속의 이야기 속에 해당하는 곳은 큰 바위얼굴보다는 형제바위가 더 설득력이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바위 위에 흙이 있는 곳에는 좀처럼 보기 힘든 바위 채송화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광대 바위에서 화방산 정상으로 가는 길목에는 열두 폭 병풍을 세워 놓은 듯한 길이 수십 미터의 미끈한 병풍바위가 장관 이다. 병풍바위를 지나 능선 길을 이으면 널찍한 헬기장이다. 바로 눈앞에 하늘을 찌를 듯이 삐쭉하게 솟아 있는 첨봉은 위압감 보다는 신비로움을 겸비한 경이(驚異)로 움을 느끼게 한다. 산봉우리가 붓끝의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첨봉. 이런 모양을 한 산 봉우리 세 개가 나란히 마을을 품고 있으면 문학이나 벼슬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온다는 말이 있다. 여기서 화방산 정상까지는 짧은 거리라고는 하나 올라서는 길은 그렇게 녹녹하지 만은 않다. 떡갈나무를 비롯한 잡목들이 울창한 숲 속의 산비탈에는 백선, 홀아비꽃대, 땅비싸리, 층층이 꽃, 닭의장풀, 등 이름을 다 알 수 없는 진귀한 야생화와 청머루 종류인 망개나무 등 많은 식물이 자라고 있다. 바위 틈새에는 이끼처럼 보이는 푸른색의 거북손들도 많이 보인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올라서면 잠깐 쉬었다 갈 수 있는 사방이 확 트인 간이 전망대이다. 이곳에서 보는 풍광은 탁월하다. 남쪽으로는 삼화 마을이 한눈에 들어오고 지나온 형제바위와 광대바위, 헬기장으로 장쾌하게 이어지는 산줄기는 장관이다. 이리저리 제멋대로 휘어진 늘씬한 산 줄기는 살아서 꿈틀거리는 한 마리의 용을 보는 듯 하다. 이러한 형상을 풍수에서는 산이 살아 숨쉰다고 말하고 있다. 산 능선이 일직선을 이루며 같은 방향으로 뻗어 있는 산은 숨을 쉬지 않는 죽은 산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산은 거의 찾아 볼 수가 없다. 대부분의 산은 뱀처럼 능선이 꼬불꼬불하게 휘어지며 힘찬 생명력이 넘치고 있다. 북쪽으로는 공룡의 등짝처럼 울퉁불퉁한 수인산과 수리 봉의 높고 낮은 산줄기가 장쾌하게 파노라마 친다. 산줄기는 끝간데 없이 길게 나래를 펴고, 산비탈에는 삐죽삐죽 솟아 올라온 키다리소나무 그리고 나지막한 참나무와 떡갈나무 등 키가 작은 잡목들이 한데 어우러지며 진 풍경을 선물한다. 청자 빛처럼 곱고 고운 신록이 나그네의 마음을 황홀함에 빠져들게 한다. 아무리 깊은 골짜기라도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곳이면 선조들은 집을 짓고 삶의 터전을 일구어 놓았다. 북쪽과 서쪽 산속에 넉넉하게 펼쳐지는 들녘이 풍요로움을 안겨준다.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는 화산제 저수지의 비취색 푸른 물이 새파란 가을 하늘처럼 반짝반짝 빛이 난다. 전망대에서 몇 걸음 더 올라서니 화방산 정상이다. 정상에는 금릉 산악회에서 세워놓은 정상석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금릉은 강진의 옛 이름이다. 광대바위가 있는 화방산은 외지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 있지 않지만 이곳 사람들에게는 다른 산과 견줄 수 없는 명산이고 영산이다. 원래 이산의 이름은 천불산(千佛山)이다. 바위 봉우리가 천(千)의 부처(佛)를 닮았다 하여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이곳 강진 사람들이 천(千)자를 붙여서 천불산 이라 이름 붙이니 이웃에 있는 도암 마을사람들이 이에 지지 않으려고 ‘천(千)’자 보다 높은 ‘만(萬)’자를 붙여 만덕산 이라 지었다고 한다. 강진 만덕산 하면 산 아래에 있는 백련사 동백 숲과 다산 초당이 유명한 곳이 아닌가! 장흥 사람들도 만덕산에 뒤질세라 ‘억(億)’자를 따다 억불산이라 부른다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억불산은 편백나무 숲도 좋지만 봄이면 철쭉꽃이 유명한 곳 중 하나이다. 화방산(花芳山), 한자를 그대로 풀어 보면 꽃이 피는 산이란 뜻이다. 멀리서 보면 첨봉으로 이루어진 화방산이 연꽃송이처럼 보인다고 하여서 산 이름을 화방산이란 애칭을 붙여서 부르고 있다. 정상에서 서쪽으로 내려서다 보면 바위들이 장승처럼 줄지어 나란히 어깨를 맞대고 서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꼭 광주 무등산 서석대를 축소해 놓은 듯한 주상절리 바위는 스릴과 아찔함을 함께 맛 볼 수 있는 곳이다. 앞쪽에는 푸른 참나무 숲이 운치를 북돋아 준다. 자연이 빚어 놓은 작품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정교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놀라움과 함께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주상절리 바위를 지나 내려서면 삼거리 갈림길이다. 북쪽으로 200m미터를 내려서면 호랑이 굴이 있다고 하여 빠른 걸음으로 내려선다. 능선을 내려서니 바위 아래쪽에 커다란 토굴이 커다란 입을 벌리고 있다. 안쪽에는 조그마한 샘까지 있다. 호랑이가 살았다는 굴이 아니라 스님들이 도를 닦았던 토굴이 아닌가 싶다. 토굴이 있는 자리에서 아래쪽으로 가파른 능선 길을 따라 200m미터 정도 더 내려서니 깎아지를 듯한 절벽 아래쪽에 정말로 호랑이 굴 입구가 있다. 안쪽을 들여다보고 싶어도 입구가 협소하여 굴속을 들여다보기에는 많은 애로점이 있다. 호랑이 굴이라 하여 평상시 보았던 동굴입구처럼 사람이 선채로 들어 갈수 있지 않을까 생각 하고 내려왔는데 생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 혼란을 준다. 비좁은 바위 틈 위쪽에는 울퉁불퉁 돌출된 바위가 있어서 위험하기가 그지없다. 입구만 돌아보고 왔던 길로 올라선다. 삼거리에서 하산 길은 급하게 남쪽으로 꺾이면서 내려서게 된다. 오솔길을 따라 급하게 내려서면 Y자형의 삼거리 갈림길이다. 바로 직진하여 무덤으로 내려서서 능선을 이으며 돌아서 내려오니 계곡이다. 계곡 아래쪽에는 콘크리트로 물막이를 해 놓은 약수터가 자리 잡고 있다. P.V.C.호스가 길게 산 아래쪽으로 연결 되어 있는 것을 보니 바로 아래쪽에 있는 화방사에서 약수를 식수로 사용하는 것 같다. 비좁은 바위 틈새에 벌깨 등굴이 소담스럽게 꽃을 피우고 있다. 보라색의 앙증맞은 작은 꽃송이 안에 깨알처럼 뿌려진 주근깨가 깊은 인상을 준다. 산에서 만나는 야생화는 언제 보아도 질박한 아름다움이 묻어난다. 울창한 대나무 밭을 지나 내려서면 화방사 절이다. 야트막한 뒷동산을 등지고 산중턱에 의젓하게 자리 잡고 있는 절의 대웅전 주위에는 수령이 수천 년은 되어 보이는 느티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남향을 보고 들어 앉아 있는 대웅전은 특이하게도 넓은 너럭바위 위에 돌로 석 축을 쌓아 올려진 자리에 다소곳이 앉아 있다. 아래 쪽 바위 위에는 문곡당대사탑(文谷堂大師塔)과 비가 세워져 있다. 탑의 외부가 둥근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아서 부도 탑이란 것을 쉽게 알 수가 있다.    맞은편 아래쪽에는 스님이 거주하는 요사 채가 있지만 절을 관리하시는 주지 스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대웅전의 문도 굳게 닫혀있다. 규모가 작은 절이지만 절을 감싸고 있는 연두색의 신록이 화사한 아름드리 느티나무는 고풍스러운 멋과 맛을 풍긴다. 뜰 앞의 화단에는 상사화, 목단, 장미, 비비추 등 각종 화초들이 심어져 있다. 사면이 탁 트인 대웅전 앞에서 멀리 광활한 강진의 들녘을 내려다보니 눈앞에 사바세계가 펼쳐진다. 가지런히 놓여 있는 계단 길은 108번뇌를 생각하게 하고 우람한 크기의 나무 밑동에서는 흘러간 세월의 무게가 느껴진다. 나지막한 언덕에는 산 난초가 흐드러지게 군락을 이루고 있다. 화방사는 해남 대흥사의 말사인데 고려시대 1211년 월묘국사가 백련사를 중창하면서 보은산 고성암과 함께 지은 ‘화방암’이 그 시초다. 지금은 조계종 대둔산의 말사이다. 이 절에서는 해마다 주지님과 아래 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모두 모여 기우제를 지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15년 전 화방마을 뒤에다 저수지를 조성하고부터는 기우제가 없어졌다. 저수지가 없었을 때에는 모내기철이면 물이 부족하여 마을 주민들이 농사일에 많은 애로점이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속세의 모든 것을 버리고 조용히 쉬고 싶다. 아직은 그러기에는 때가 이른가? 언젠가 한번은 모든 미련을 버리고 정리 할 날이 있으리라. 시멘트로 포장된 수레 길을 따라서 발걸음을 분주히 옮긴다. 왜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을 훼손해가며 새로운 길을 내어야만 할까?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 오솔길이 운치가 더 있을 텐데. 자연은 원래의 모습을 간직하고 싶어하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놓아 두지 않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중간쯤 내려서니 컨테이너 박스가 놓여있다. 사람이 살고 있는 듯한데 주인은 없고 진돗개들이 집을 지키고 있다. 지루한 수레 길을 내려서서 삼화 마을 회관에서 버스로 보성 율포 해수욕장으로 장소를 옮긴다. 5월초에 보았을 때만해도 들녘에는 싱그러운 잎이 넘실거리는 감자 밭이 그림 같은 수채화를 연출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 보았던 아름다운 풍경은 온데간데 없고 들녘에서는 감자 수확이 한창이다. 썰물 때여서 그런가! 바닷물이 빠진 서해의 갯벌이 검은 속살을 드러내놓고 있다. 서해의 바닷물은 남해나 동해처럼 새파란 물이 아니다. 갈색의 흐릿한 물들이 저만치 밀려간 해변에는 고운 모래사장이 얼굴을 드러낸다. 개흙 위에는 낙지를 잡는데 쓰려고 설치 해놓은 통발만이 덩그렇게 놓여 있다. 해변을 따라 길게 조성되어 있는 송림 숲길은 바다를 찾아온 사람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제공해 준다. 모래사장에는 조개를 잡는 사람들도 보이지만 대부분 질퍽한 개흙이어서 그렇게 많이는 보이지 않는다. 횟집이 있다고는 하나 생선보다는 이곳에서는 녹차를 먹고 자란 녹 돈(豚)이 유명하게 알려진 곳이다. 백두대간이 맺어준 두 분의 지인과 함께 시원하게 불어오는 해풍을 맞으며 뻘 낙지회와 소라 찜을 곁들여서 맥주잔을 나누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운다. 어느새 저만치 밀려나 있던 바닷물이 밀물이 되어서 해변으로 밀려오기 시작한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에 찰랑찰랑 물결이 출렁이는 풍경이 신비스러움을 자아낸다. 밀물이 실제로 들어오는 모습을 오늘 처음 보았다. 정해진 시간은 주마등처럼 빨리도 온다. 저 멀리 방파제 끝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서해바다너머로 빠지는 일물을 보기 위해서 인지 아니면 즉석에서 파는 회를 즐기기 위해서 일가! 궁금증을 뒤로 하고 버스에 오른다. 보성읍내에서 바닷물이 출렁이는 해안선과 나란히 이어지는 18번 국도는 율포에서 내륙 쪽에 있는 활성산 기슭 붓재로 방향을 돌린다. 18번 국도가 이리저리 휘어지며 꾸불꾸불하게 가로지르는 고갯마루 정상에 올라서면 호남정맥 길목에 있는 붓재 소공원이다. 이곳에 있는 붓재 다원은, 가까운 거리에 있는 대한다원과 함께 녹차 밭이 아름답기로 유명하게 알려져 있다. 활성산 산비탈을 깎아서 조성해 놓은 녹차 밭은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라 하여도 손색이 없다. 일림산 철쭉이 만개할 때면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는다. 전망대라 할 수 있는‘다향각’에 올라서 둘러보는 서해안의 수려한 해안경관과 끝없이 펼쳐진 녹차 밭 풍경은 일품이다. 일정한 방향으로 휘어지며 계단식으로 심어져 있는 수만 그루의 녹차 밭은 화사한 봄꽃만큼이나 가슴 설레게 한다. 마치 눈앞에 물결조차 일렁이지 않는 잔잔한 초록바다를 보는 것만 같다. 이웃에 있는 대한다원이 우화한 여성미를 품고 있다면 이곳의 녹차 밭은 대자연의 모습에 가깝고 야생의 거친 맛을 느낄 수기 있어서 좋다. 마음까지 새파란 초록색으로 곱게 물드는 기분이다. 큰 바위 얼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바로 어린 시절 즐겨 읽었던 미국의 다니엘 호손이 쓴 소설, <큰 바위얼굴>이다. 어린 소년 어니스트와 마을 사람들은 언젠가 마을 뒷산에 새겨진 큰 바위얼굴을 닮은 이가 나타날 거라고 기대를 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유명한 장군, 부자, 정치가, 시인 등이 차례로 나타나지만 그들은 결국 실망만 안겨준다. 마음조리며 찾았던 큰 바위얼굴을 닮은 사람들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고향에서 언제나 큰 바위 얼굴을 보며 자란 어니스트의 설교를 듣던 자리에서 사람들은 그와 큰 바위얼굴이 닮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모두가 애타게 찾는 행복의 파랑새는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닌 우리 마음속에 있다. 삶에 지친 요즘 강진의 큰 바위얼굴이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어쩌면 가까운 곳에서 소박한 행복을 찾고자 하는 모든 이들의 바람이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닐는지? 그것은 아마 화방산 큰 바위얼굴을 찾는 모든 사람들의 한결 같은 마음일 것이다. 광대 바위는 마음 착한 이들에게는 복을, 심술 사나운 이들에게는 화를 주는 존재로 이 지역에 화자 되어 왔다. 자연을 의인화한 강진 사람들에게 광대바위는 단순히 산 위에 우뚝 솟은 독특한 바위가 아닌 고단한 삶을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자 벗이다. 흥미로운 전설에 원초적인 풍경이 어우러지니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봄은 화사한 꽃이요. 여름은 녹음이 우거진 신록이다. 계절의 징검다리를 건너는 5월 말이면 일상에 갇힌 마음이 날개를 단다. 꽃은 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봄을 대표하는 진달래 철쭉 꽃송이가 자취를 감추면 신록이 푸른 산에는 쪽 동백, 백당나무, 가막살이나무 등 여름의 문턱을 알리는 또 다른 꽃이 흐드러지게 핀다. 이뿐만 아니라 산속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야생화들이 계절에 맞추어 소담스러운 꽃을 피우고 지기를 반복한다. 똑 같은 연두색의 새싹이지만 보는 시각에 따라 색깔은 조금씩 다르게 보인다. 이번에 산행을 하면서 만난 큰 바위얼굴도 마찬가지 이다. 보는 시각은 각각 다르지만 추구하고자 하는 희망과 행복을 기다리는 바람은 누구나 같을 것이다. 어머니 품처럼 아늑한 대자연의 품속에서 또 하나의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을 가슴속에 담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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