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구룡산 기행(紀行).
주말이 다가오면서 날씨가 점점 추워지며 기온이 큰 폭으로 떨어진다.
이번 주 일요일에는 오전부터 중부와 호남내륙 그리고 북부지방에 눈이
내린다고 한다. 새해 들어 첫 눈 산행을 하지 않을까 싶다.
안동 휴게소에서 아침을 겸해 휴식을 하고자 타고 온 버스에서 내린다.
평소 같으면 한산하던 곳이 많은 사람들로 발길조차 옮길 수 없을 정도로
부산하다. 며칠 전부터 눈이 내린다는 일기예보를 보고 다가오는
설 명절 전에 서둘러 산행을 다녀오고자 길을 나서는 것 같다.
먹구름이 드리워진 하늘에서는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순식간에 내리는 눈이 도로에 쌓이며 달리는 차들 조차 속도를 줄이고
거북이걸음을 한다. 바람에 휘날리며 떨어지는 눈송이가 주위에 보이는
모든 것을 하얀색으로 바꾸어 놓는다.
눈 덮인 산골마을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이 동화책 속에서 본
아름다운 그림을 보는듯하다.
산행들머리인 두산리 두덕동 두산약수는 육각정 건물에 거북이 입에서
물이 흘러나오도록 하여 더욱 신비스러움을 준다고 한다.
하지만 추운 겨울 날씨로 인하여 물길조차 막혀 버렸다.
아무도 밟아보지 않은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며 능선 오름을 따라서
부지런히 발품을 팔면서 올라선다.
나뭇가지 위에 살포시 내려앉은 눈이 쌓이면서 소박하고 아담한 눈꽃을 피운다.
기세등등하게 내리던 함박눈이 멎고 구름 사이로 주홍색의 붉은 햇살이
능선 위에 부서져 내린다. 잠시 살짝 얼굴을 보여주던 해가 다시
구름 속으로 모습을 감추어 버린다.
산 능선에서 보는 해는 항상 따스함으로 다가온다.
가파른 절벽처럼 이어지는 동쪽과 서쪽능선 아래로 줄지어 서있는
진달래나무들 사이로 눈이 부실 것만 같은 새하얀 눈밭이 펼쳐진다.
하얀 눈을 보니 산을 오르면서 쌓인 피로가 순식간에 풀리며 기분도 상쾌하다.
대자연이 살아 숨 쉬고 있는 산과 나누는 교감은 언제나 즐겁고 행복하다.
합수지점을 지나 암릉지대로 이어지는 마지막 깔딱 고개를 힘겹게 올라서니,
영월의 서쪽 수주면 운학리와 도원리 사이에 운학천과 구절양장
굽이치는 섬 안이 강에 감싸여, 그 아름다움을 더해주는 해발955m인 구룡산 정상이다.
날씨가 맑은 날 이면 사방이 탁 트인 이곳에서의 조망은 아주 좋다.
땅속에서 올라오는 지온(地溫)과 하늘에서 내려오는 차가운 공기가
서로 부딪치며 생성된 짙은 운무(雲霧)가 계곡과 능선에 내려앉는다.
따뜻한 봄날 들녘에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처럼 흰 솜털 같은 운무가
한치 앞을 내다보기도 힘들게 하며 모든 것을 감추어 버린다.
정상에서 북쪽으로 내려서는 길은 경사가 심한 언덕길이 연속으로 이어진다.
운무 속에서 보는 눈꽃이 한 폭의 수묵화처럼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멀리 북쪽으로 검푸른 색의 된불데기산을 보면서 언덕길을 따라 능선 갈림길
안부인 소재에 내려선다.
소재에서 울창한 원시림의 숲을 이루고 있는 토종 소나무 숲길이
지그재그로 이어지는 능선 길을 따라서 서쪽으로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며 내려선다.
눈이 녹으면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조용한 숲 속에 큰소리를 내며
울려 퍼진다. 내려서며 양지 바른 언덕 위에 지금은 폐허가 되어
버린 농가를 본다.
마당처럼 보이는 빈 공터에는 잡초만 무성하게 숲을 이루고 있다.
한쪽 모퉁이 에는 조그마한 헛간이 보이고 길옆에는 수령이 오래된 듯한
복숭아나무가 외로이 서있다.
꽃피는 봄이 오면 울긋불긋 붉은 복사꽃을 피워 옛 주인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릴 것만 같다. 그러고 보니 소재로 내려오며 능선에서도
이와 비슷한 크기의 나무를 보았다.
허물어진 집에서 3m정도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 재래식 화장실을 보니
유년시절 고향집에서 보냈던 옛 추억이 떠오른다.
농사일을 하는 시골에서는 소를 기르는 외양간은 방문을 열면 바로
볼 수 있는 곳에 있었지만 화장실만큼은 멀리 있었다.
모두가 깊은 단잠에 빠진 밤, 하늘에 총총히 떠있는 별들을 보며
화장실을 다녀와야 했던 시절, 유난히도 겁이 많았던 나는
화장실을 가는 것이 호랑이를 만나는 것보다 더 무서웠다.
어쩌다가 야생동물이 구슬프게 우는 울음소리가 들려오기라도 하면
온몸을 부들부들 떨어야 했다. 구수한 옛 추억을 뒤로 하고 하늘을 향해서
높이 자란 검은색의 낙엽송들이 장승처럼 서있는 숲을 지나 호법 선원
운학사로 내려선다.
햇볕이 잘 드는 남향에 자리 잡은 운학사는 남동쪽으로 구룡산 정상을
바라보고 있다. 푸른색의 어린 주목이 양쪽에 가로수처럼 나란히 서있는
눈길을 따라 운학사로 올라선다. 운학사를 관리하시는 스님은 출타를
하셨는가 보이지 않는다.
스님을 대신하여 작은 돌을 주워 모아 쌓아 올린 돌탑 위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는 작은 돌부처가 이곳을 찾은 길손을 맞는다.
첩첩 산중인데도 위성안테나가 설치되어 있고 따듯하게 겨울을 나기 위해
처마 밑에 차곡차곡 잘 쌓아 놓은 마른 장작과 연탄을 보니
떠나온 고향집에서 풍기던 향수를 느낀다.
대웅전처럼 보이는 문 앞의 작은 대청마루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된장단지가 산사의 정겨움을 더해준다.
큰 나무가 서있는 양지바른 한쪽 모퉁이에는 겨우내 먹을 김칫독을
땅속에 묻어두었다. 요즘처럼 냉장고가 없던 시절부터 선조들은 땅속에서
올라오는 지열을 지혜롭게 이용하였다. 이렇게 해 놓으면 이듬해 3월까지는
거뜬하게 잘 익은 김치를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눈 속에 묻혀있는 김칫독 안에 있는 담백한 김치와 시원한 동치미 국물은
잊지 못할 고향의 맛이요 그리운 어머니의 손맛이다.
운학사는 일반 사찰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사찰의 원래 이름은 호법선원 운학사이다.
선원(禪院)이란 말은 불교에서 말하는 참선하는 방 즉 선방(禪房)이다.
똑같이 부처님을 모시고 있지만 일반 사찰과는 달리 선원은 기도
사찰이라고 보면 된다. 대구 영남대학교 수필대학에서 같이 수필을
수학(受學)한 동문이신 혜봉스님의 말씀처럼 선원은 일상생활에서 지치고
고달픈 삶에서 잠시 떠나 몸과 마음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쉼터이다.
마음 같아서는 나 또한 수려한 풍경이 펼쳐지는 유서 깊은 산사를 찾아서
지나온 내 자신을 돌아보며 푹 쉬고 싶다. 눈 내리는 겨울이라 그런가?
찾아오는 사람 하나 없는 산사는 썰렁하기만 하다.
유일하게 앞에 보이는 푸른 송림 숲이 황량한 겨울 풍경을 그린다.
절에서 조금 떨어진 언덕아래에는 양쪽에 두 개의 돌로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다시 세 개의 큰 돌을 올려놓은 돌탑이 세워져 있다.
탑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볼품이 없고 초라하지만 나름대로 소박함을 품고 있다.
오솔길을 버리고 넓은 임도 길을 따라서 두무골로 내려선다.
겹겹이 누워있는 산들이 병풍처럼 에워싼 마을이라 그런지
보이는 것이라곤 눈 덮인 밭뿐이다.
밭에는 땅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가시오가피가 무사히 추운 겨울을 나게
내린 눈이 따뜻한 이불이 되어 준다. 두무골은 이웃에 있는 운학마을과
함께 무더운 여름에도 시원한 날씨 때문에 고랭지 배추를 많이 재배하는 곳이다.
지금은 폐교가 되어 버린 운학분교를 지나 411번 지방도에서 산행을 마친다.
30분 정도 버스를 타고 섶 다리마을 다하누 촌을 찾는다.
이 마을은 2007년8월 명품 토종한우를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 있도록
다하누 매장이 조성되어, 강원도의 대표 먹을거리 촌으로 자리 매김 하였다.
이곳에는 한우고기와 함께 주천 강에 놓여 있는 섶 다리는 더 유명하다.
이 다리를 내가 자란 고향에서는 외나무다리라 불렀다.
평소에는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지만 겨울에는 물이 얼면 이렇게
섶 다리를 놓아서 건너 다녔다.
지금은 점점 우리들의 생활 속에서 잊혀 가는 것 중 하나다.
모처럼 하얀 눈이 덮인 추억의 섶 다리를 사뿐사뿐 건너본다.
다리를 건너며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나는 무슨 소원을 빌어 볼까! 기축년 새해에는 가족들 모두 항상 건강하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 내 삶에 새로운 삶의 희망이 찾아왔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소속되어 있는 산정 산악회의 무궁한 발전이 있기를 소원해 본다.
강 위쪽의 산 정상에 아담하게 세워진 정자는 운치를 더해준다.
겨우내 얼었던 강물이 풀리고 파릇한 새싹이 돋아나는 봄,
신록이 푸름을 더해주는 여름, 붉은 단풍이 곱게 물드는 가을에 산 위에 있는
정자에 앉아서 유유히 흘러가는 주천강을 내려다보면
시 한 구절이 절로 떠오를 것 같다.
모래사장을 따라서 끝없이 펼쳐지는 넓은 눈밭이 길손의 마음을
동심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
서서히 어둠이 내리는 강변에 하늘에서는 흰 운무가 비껴 내리며
겨울이 깊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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