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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명산 다솔사, 이명산 마애불, 북천 코스모스 축제.

풀꽃사랑s 2017. 1. 9. 17:02


봉명산 다솔사, 이명산 마애불, 북천 코스모스 축제.

상큼하게 가을이 익어가는 9월 하순 경남 사천과 하동에 아담하게 자리 잡은

봉명산 다솔사와 이명산 마애불 그리고 북천 코스모스 축제를 돌아보고자

길을 나선다.

피부에 와 닿는 날씨는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는 가을이지만 아직 주위에

보이는 풍경은 여름과 가을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

싱그러운 녹색 잎이 무성한 고마리꽃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들길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연분홍색의 자그마한 꽃송이가 앙증맞은 고마리가 길손을 반긴다.

그 꽃송이 위에 앉아 열심히 꿀을 모으고 있는 꿀벌의 모습이 앙증맞다.

노란색의 황금들녘이 펼쳐지는 들길을 지나면 푸른 나무들이 울창하게 숲길을

이루고 있는 널찍한 도로 입구와 만나게 된다.

 

푸른 노송(老松)과 잣나무, 편백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며 하늘을 향해 높게 쭉쭉 뻗어

숲길을 이루고 있는 널찍한 도로 길로 분주히 발걸음을 재촉하며 올라선다.

울창한 나무들이 숲을 이루며 하늘을 가리고 있어 길게 드리워진 시원한 나무그늘은

산림욕장 한가운데 들어선 듯한 청량한 느낌이 몸 전체로 빠르게 퍼져나간다.

발끝에 와 닿는 부드러운 흙 길을 밟으며 피톤치드를 왕성하게 내 뿜는 싱그러운

숲길을 이으며 발걸음을 재촉하며 부지런히 다솔사를 향해 올라선다.

많은 군사를 거느린다는 글귀처럼 다솔사로 오르는 길 양 옆으로는 군사들이

마치 무리 지어 사열식을 하는 것과 같이 하늘 높이 쭉쭉 뻗은 소나무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사계절 내내 푸른 상록수 숲은 보는 이로 하여금 상쾌함을 느끼게 해준다.

약 10분 정도 상쾌한 숲길을 지나 올라서면 봉명산 자락에 숨어 있는

다솔사(多率寺)이다.

 

다솔사는 503년 (신라 지중왕 4년) 연기조사(緣起祖師)가 창건 하여

영악사(靈岳寺)라 불렀으며

636년(신라 선덕여왕 5년)에 부속건물 2동을 건립하고 다솔사(多率寺)로 개칭 하였다.

그 후 자장율사(慈藏律師), 의상대사(義湘大師)등 고승들이 머물면서 건물을 더 짓고

영봉사(靈鳳寺)로 불렀으며, 신라 말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부속건물 4동을

건립하고 다시 다솔사라 개칭하였다고 전해진다.

다솔(多率)은 소나무가 많았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지만, 이 절의 주산이 마치

대장군이 앉아 있는 듯해 군사를 많이 거느린다는 뜻에서 다솔(多率)이라 이름

붙여졌다고 전해진다.

다솔사는 규모가 큰 사찰에서 볼 수 있는 대문 역할을 하는 일주문(一柱門)과

천왕문(天王門)이 없다. 대신 소나무들이 절 진입로에서 나무 가지를 뻗으며

일주문과 천왕문 역할을 하고 있다. 일주문을 대신하여 이곳을 찾은 길손을 반기는

소나무들이 싱그럽다.

솔솔 불어오는 차가운 가을바람을 타고 향긋한 솔향기가 뭉개 뭉개 피어오른다.

 

다솔사 에는 다섯 개의 멋진 밭을 갖고 있다고 한다. 솔밭, 차 밭, 대밭, 그리고

항상 일렁이는 바람 밭, 마지막으로 다솔사를 찾은 나의 가슴에 안겨주는 생애

대한 그리움의 밭이라고 한다.

아직 초록빛 잎사귀가 푸름을 더하는 다솔사는 한적함 마저 들 정도로 아늑함으로

다가온다.

일주문과 천왕문이 따로 없는 다솔사는 이곳을 찾는 탐방 객이 제일 처음 접하는

건물이 대양루(大陽樓)이다.

대양루는 1748년(영조 24년)에 지은 건물이다.

중심 불전인 적멸보궁(寂滅寶宮)과 마주 보고 있는 대양루는 신도들에게 설법을

하거나 불구(佛具)를 보관 하는 곳으로 이용되었다.

정면 5칸 측면 4칸에 익공계(翼工系)맞배 지붕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외관상 화려하지는 않지만 정면 기둥의 간격이3m 가 넘을 정도로 위풍당당하다.

누각 아래쪽 기둥들은 뒤틀어진 고목의 밑동처럼 자연스러운 반면, 위쪽 기둥은

잘 다듬은 목재를 사용하여 질서 정연한 모습이어서 같은 건물임에도 서로 다른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큰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내부에 받침기둥을 많이 사용하지 않은 채 건물 가운데

10m 가 넘는 대들보 하나만을 세워 놓았지만 엄청난 지붕의 하중을 유지하고 있다.

대양루(大陽樓)란 글귀가 커다랗게 새겨진 현판이 내려다보이는 건물 정면 앞쪽

중앙에는 돌계단이 층층이 놓여 있다.

자연과 조화로움으로 꾸며진 자연석 돌계단에서 천연고찰의 풍취가 물씬 풍긴다.

계단 양쪽에는 향나무와 여러 종류의 정원수를 가지런히 심어 놓았다.

싱그러움이 넘치는 정원수를 보면서 다솔사의 색다른 운치를 맛본다.

 

대양루 와 마주보고 있는 다솔사 중앙에는 적별보궁(寂滅寶宮) 이 자리하고 있다.

이 건물은 원래 일반사찰에서 볼 수 있는 대웅전(大雄殿)이었다.

1978년 2월8일 대웅전 삼존 불상 개불사때 후불탱화 속에서 108과의 사리가

발견되어 대웅전을 적멸보궁으로 개축하고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게 된 사연을 품고 있다.

적멸보궁은 우리가 즐겨 찾는 보통 사찰에는 없다.

적멸보궁이란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奉安)한 전각(殿閣)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5대 적멸보궁은 경남 양산의 통도사, 강원도 평창 오대산 상원사,

설악산 봉정암, 사자산 법흥사, 태백산 정암사이다.

이중 태백산 정암사를 빼고 나머지 사찰은 모두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귀국할 때

친히 가져온 부처님의 진신시리를 봉안한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정암사의 적멸보궁은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왜적의 노략질을 피해 통도사

적멸보궁의 진신사리를 나누어 봉안한 곳이다.

부처님의 진시사리를 모셨으므로 불단(佛壇)은 있지만 불상(佛像)이나

후불탱화(後佛幁畵)를 모시지 않는다.

다만 법당(法堂)의 바깥이나 뒤쪽에 사리탑을 봉안하거나 계단(戒壇)을 설치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다솔사의 적멸보궁 내부에는 조용히 잠든 듯 기대어 있는

와불상(臥佛像)이 모셔져 있다.

또한 건물 뒤편에는 일반인들에게 유명하게 알려진 부처님 진신사리탑(眞身舍利塔)이

모셔져 있다.

탑의 형태는 익산미륵사지 석탑처럼 높이 2.3m, 30평 정도의 성보법당을 탑 안쪽에

설치하고, 동양 최대 규모의 적멸보궁 탑을 건립하고 불(佛)사리를 봉안하여 놓았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는 영험함이 크며 흔히들 삼학의 결정체라고 한다.

 

우요삼잡(右繞三匝)즉 합창하고 우측(시계방향)으로 진신사리탑을 세 바퀴 돌면

한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는 설이 전해진다고 한다.

얼핏 생각해보니 휘영 찬란한 보름달이 환하게 비취는 달밤에 여인네가 탑을 돌면서

이루고자 하는 소원을 빌었다는 것과 같지 않았나 생각된다.

생각 같아서는 한번 돌아보고 싶었으나 마음뿐이지 실제로 옮기지 못하는 내 마음을

누가 알리요.

아마 그것을 실행에 옮길 정도로 용기가 있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좋은 삶을 살았겠지.

 

적멸보궁 법당 처마 아래쪽에는 옹기로 만들어진 커다란 질그릇에 부레옥잠이 있다.

물이 가득한 연못에서 자생하는 연꽃처럼 이 부레옥잠 또한 물속에 뿌리를 내리고

둥근 잎을 물 바깥쪽으로 내 놓고 자라는 수생식물이다.

하얀색의 꽃송이에 자주색 얼룩무늬가 소박한 아름다움을 더하여준다.

뒤편 공터에는 빨간색 꽃송이가 이채로운 꽃무릇이 활짝 피어 있다.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한다고 하여 상사화와 닮았다고 하여 바퀴상사화로

불리기도 하는 이 꽃은 사찰에서 정원수와 함께 조경용으로 많이 심어 가꾸고 있다.

 

적멸보궁 우측에는 다솔사 응진전(多率寺 應眞殿)이 자리하고 있다.

응진(應眞)은 아라한(阿羅漢)과 같은 의미의 불교 용어로 응진전은 달리

나한전(羅漢殿)으로도 불린다.

나한 혹은 아라한은 부처님을 따르던 수행자들로 최고 경지에 이른 스승들이며,

이곳의 응진전에는 16 나한을 모시고 있다.

다솔사의 중심 건물인 적멸보궁보다 한계단 위쪽에 있는 응진전은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慈藏律師)에 의해 창건된 원 건물은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소실되고,

이후 1690년(숙종 6년)에 죽마 대사가 다시 중건 하였다.

그 건물도 노후하여 1930년 만해 한용운(萬海 韓龍雲) 선생이 중수 한 것이 지금 전하고 있다.

이 전각은 정면3칸, 측면 2칸 크기에 들보 3량(樑)으로 조성된 이익공계(二翼工系)

맞배지붕 건물로 천장은 우물천장으로 마감되어 있다.

이곳 다솔사 응진전에는 일제 강점기 때 독립운동가로 유명하게 알려진

만해 한용운선생님과 소설 등심불의 작가 김동리 선생이 머물렀던 곳 이다.

 

응진전 우측에는 적멸보궁과 같은 높이의 위치에 있는 극락전이 있다.

다솔사 극락전(多率寺 極樂殿)은 아미타불(阿彌陀佛)을 본존(本尊)으로 모시고

있는 전각이다.

아미타불은 무량불(無量佛)이라고도 하며 모든 중생을 제도 하려는 대원(大願)을 품은

서방정토 세계의 부처님이다.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에 의해 처음 건립된 이 극락전 건물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고 그 이후에도 여러 차례 중창과 소실을 거쳐 1910년 대 중건한 것이

지금에 전하고 있다.

이 전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 크기의 익공계(翼工系) 맞배지붕 건물이다.

정면 좌우측의 창호와 머름 벽체의 설치가 특이하다.

 

극락전 마당 우측 안쪽에는 안심료(安心寮) 요사채가 있다.

요사채는 사찰 내에서 전각이나 산문 외에 스님들의 생활과 관련된

일을 하는 건물이다.

다솔사 안심료는 만해 한용운과 소설가 김동리 선생이 머물렀던 건물로 알려져 있다.

안심료는 1930년대에 건립(建立)한 평범한 건물이지만 한용운이 이곳에 머물며

독립운동과 한국 불교의 법맥을 이은 인연이 깊은 곳이다.

요사채 앞에는 하늘을 찌를 듯한 풍채가 커다란 황금측백나무 세 그루가

이곳을 찾은 길손을 반긴다.

이 나무는 만해 한용운 스님의 회갑 때 지인(知人)들과 함께 심은 나무라고 한다.

회갑 기념으로 심었던 자그마한 나무는 어느새 아름드리 고목이 되어 있다.

나무를 심었던 사람들은 세상에 없지만 세 그루의 황금측백나무는

매년 황금 초록빛 색으로 우뚝 자라 그때 당시의 깊고 높은 뜻을 후손들에게 전하고 있다.

사찰 주변에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는 푸른 송림과 은행나무 그리고

많은 종류의 활엽수 나무들이 천연고찰의 명성을 보여준다.

 

다솔사 경내를 돌아보고 북쪽으로 굴참나무, 등 활엽수와 재래종 소나무가

빼곡하게 원시림의 숲을 이루고 있는 능선 길을 이으며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긴다.

초입에는 숨이 막힐 듯한 가파른 언덕 같은 능선 길이지만 이내 능선을 따라

평탄한 부드러운 산책길로 이어진다.

그러나 우리 내 인생살이가 높고 낮음이 있듯이 산에서 만나는 능선 길 또한 이와 같다.

봉명산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다시 가파른 능선 길을 이으며 올라서야 한다.

다솔사에서 약35분 정도 발품을 팔면서 부지런히 올라서면 봉명산 정상이다.

방장산 또는 주산으로 불리기도 하는 봉명산은 봉황이 우는 형국이라 하여

붕명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산의 이름답게 풍수지리학적으로 길지라. 하여 옛날부터 사찰 터로 점 찍히기도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실제로 산의 남쪽에는 다솔사가 그리고 동쪽에는 서봉암이, 서쪽에는 보안암등

유명한 사찰들이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다.

봉명산 정상에는 사방을 휘둘러 볼 수 있게 정자(亭子)처럼 나무로 만든 전망대가

높게 세워져 있다.

그러나 아름드리 소나무와 활엽수 종류의 나무들이 빼곡하게 숲을 이루고 있어서

전방의 풍경이 눈에 확 들어오지 않는 다는 것이 아쉽다.

그러나 전망대에서 거리상 조금 떨어진 조망바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일품이다.

이곳에 내려다보면 저 멀리 한려해상 국립공원인 다도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푸른 남해바다와 그 위에 보석처럼 뿌려진 섬들 그리고 주위의 풍경들이

절경으로 다가온다.

정상에서 남쪽으로 눈길을 주면 하동 금오산과 다도해, 서쪽으로는 백운산이,

서북쪽으로는 지리산 능선과 웅석봉 등이 한눈에 들어올 만큼 사방이

탁 트인 조망은 일품이다.

숲 속에서는 비둘기가 구슬픈 노래를 부르고, 동쪽 산 중턱에는 서봉암이 자리 잡고 있다.

서봉암에서 낭랑하게 들려오는 스님의 독경소리가 고요한 산속의 적막을

가르면서 은은하게 들려온다.

그 독경소리가 산사나이의 심금을 울린다.

 

봉명산 정상에서 서북쪽으로 약 20분 정도 능선 길을 내려서면

서쪽 이명산과 보안암, 남쪽 봉명산과 다솔사로 이어지는 삼거리 갈림길이다.

삼거리 갈림길에서 서쪽에 있는 보안암 탐방을 하려면 오솔길로 약10분

정도 발품을 팔아야 한다.

부드러운 흙 길과 키가 나지막한 잡목들로 이루어진 오솔길을 이으며

서쪽으로 부지런히 발걸음을 재촉하며 올라서면 산 중턱에 보안암이 자리 잡고 있다.

평평한 평지가 아닌 가파른 절벽처럼 보이는 곳에 터를 잡은

보안암의 담벼락은 마치 시루떡처럼 납작한 돌로 차곡차곡 쌓아 올려놓았다.

큼지막한 돌길로 이루어진 돌 축대 모서리를 돌아서니 보안암으로 올라서는 돌계단이다.

가파른 능선 길을 오르듯이 돌계단을 하나하나 발로 밟으며 올라서면 산중턱에

아담하게 자리 잡은 보안암 경내에 이르게 된다.

 

다솔사 부속암자인 보안암 우측에는 다솔사 보안암 석굴(多率寺 普安庵 石窟)이 있다.

이 석굴은 고려 말에 승려들이 수행(修行)하기 위한 시설이라고 하나.

정확한 조성 연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석굴은 뒷산의 경사면을 ‘L’자 모양으로 파내고 다진 터에 널빤지 모양의

돌을 반원형으로 쌓아 올려 만들었다.

석굴은 점판암으로 석굴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이다.

석굴에는 정면 양쪽에 기둥을 세워 현관과 통로를 만들었으며,

내부에는 화강암의 긴 돌로 벽과 천장의 뼈대를 만들고 그 사이를 널빤지

모양의 점판암으로 메웠다.

내부의 폭은 3.6m 이고, 길이는 2.5m 이며, 높이는 2.8m이다.

석굴 안에는 도깨비의 얼굴이 생동감 있게 조각된 향(香)받침대가 있고,

그 뒤로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이 봉안 되어 있다.

불상은 큰 코와 굳게 다문 일자형의 입, 지그시 감은 눈은 인자하기보다

엄격한 이미지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몸체의 옷자락(法衣)과 하체 부분은 매우 간략하게 표현되었다.

석가모니불의 좌우에는 50㎝ 내외의 16 나한상(羅漢像)이 일치 되어 있다.

나한상은 제각기 다른 모습을 취하고 있는데, 오른쪽의 1구는 사라져 버렸다.

석굴은 규모가 작고 조성 수법도 거칠고 투박하다.

내부 불상의 배치 등은 경주 석굴암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불상의 조성 수법 등에서 볼 때 고려시대에 조성된 석굴로 추정된다.

경건한 마음으로 석굴 내부를 둘러보고 밖으로 나온다.

석굴외부에 쌓아 올린 시루떡처럼 보이는 납작한 점판암은 보암의 돌담을 쌓아

올린 돌과 같은 종류이다.

 

석굴 동쪽에는 최근에 지은 듯한 건축물인 지장암이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다.

보안암과 석굴 그리고 지장암 앞마당 앞쪽에는 아담하게 돌로 쌓아 올린 돌담이

어릴 적자란 고향의 풍취를 느끼게 해준다.

돌담 한 모퉁이에는 야생화 종류인 하얀색 꽃송이가 앙증맞은

배초향이 조용한 산사의 정겨움을 더하여준다.

보안암을 뒤로 하고 왔던 길을 뒤 돌아 나와 삼거리에서 서쪽에 있는 이명산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삼거리에서 북쪽으로 정겹게 이어지는 오솔길을 지나다 보면

산 중턱에 누가 돌탑을 정성스럽게 쌓아 놓았다.

위아래 3개씩 모두 6개의 돌탑이 나란히 줄지어 서있다.

나는 이 탑을 내 나름대로 이름 붙여서 소망 탑이라 부른다.

우리나라 방방곡곡 산과 섬에서 많은 돌탑을 보아왔다.

매번 보고 느끼지만 탑의 높이와 밑의 면적은 조금씩 달라도

모양과 형태는 모두 같다.

분명히 탑을 쌓은 사람은 각기 다른 사람인데 어찌 이리도 닮았을까!

이 깊은 산속에 탑을 쌓은 사람은 무엇을 소원(所願)하면서 쌓았을까,

깊어가는 가을만큼 궁금증만 더한다.

돌탑을 뒤로 하고 북쪽으로 경사가 완만한 오솔길로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면

이정표가 서 있는 삼거리 갈림길이다.

 

삼거리 갈림길에서 서쪽으로 내려서면 잡초가 무성한 임도 길이다.

도로처럼 넓은 임도 길 양쪽으로 상큼한 가을 향을 품고 있는 꽃들이

꽃잎을 활짝 열고 방긋 웃는다.

하얀색의 둥근 얼굴을 하고 있는 쑥부쟁이, 구절초, 메밀꽃처럼 유난히도

흰색인 뚝갈, 노란색의 마타리, 미역취, 보라색의 꽃송이가 앙증맞은

도라지 모시대 등 소박하고 단아한 야생화들이 뿜어내는 향기가 산뜻한 맛을 느끼게 한다.

잡초가 무성한 풀밭에 왕고들빼기, 땅두릅이나 부르는 독활도 볼 수 있다.

깨끗하게 풀이 베어진 자리에 수줍은 듯이 피어있는 나도 송이풀이 나를 놀라게 한다.

겉으로 보아서는 여름철에 볼 수 있는 며느리밥풀과 꽃이 너무나 흡사하다.

작은 키에 초롱초롱 달려있는 꽃잎이 어찌나 앙증맞고 사랑스러운지 한참을 보았다.

1005번 지방도가 지나가는 깨살고개에서 북쪽으로 사방이 확 트인

이명산 정상 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며 덩치가 큼지막한 바위 전망대에 올라선다.

 

바위 전망대에서 지나온 봉명산 쪽을 바라보니 커다란 산등성이를 이루며

하늘 높이 솟구치며 둥근 원형을 이루고 있는 산봉우리들이 나란히 줄지어 자리하고 있다.

아직 가을이라고 하지만 단풍이 곱게 물들지 않은 푸른 산봉우리가 마치

커다란 왕릉의 봉분을 보는 듯하다.

나지막한 야산에 둘러싸인 들녘에는 노란색으로 곱게 물던 가을빛이

어느새 소리 없이 내려앉아 있다.

바위전망대를 지나 경사가 완만한 산등성이로 올라서면 이명상 정상이다.

이곳 역시 자그마한 정상 석과 함께 사방을 휘 둘러볼 수 있는

정자로 된 전망대가 서 있다.

전망대 주변에는 가을의 전령사인양 어느새 새하얀 억새꽃이 활짝 꽃을 피우고

살랑살랑 불어오는 차가운 가을바람에 몸을 흔들어 된다.

바로 코앞에 하동 금오산 정상이 손에 잡일 듯 하고 서쪽에는 광양 백운산,

윽불봉이 한결 가까운 거리에 있다. 어쩌면 이렇게 보는 위치에 따라

산의 거리감이 이렇게 달라 보일까!

불과 보름 전에 바로 눈앞에 있는 하동 금오산 정상에서 보았을 때는

오늘과 정반대로 보였다.

 

북쪽으로 솜털구름이 산 능선의 허리를 비끼고 장쾌하게 돌아나가는

지리산 주능선이 천왕봉으로 이어지면서 숨 고르기를 한다.

하얀 구름 속에서 살짝 얼굴을 내밀고 있는 천왕봉은 산행의 운치를 더하여준다.

저 멀리 푸른 바다너머로 살짝 내려앉은 구름을 머리에 이고 있는

남해의 산들이 다도해와 함께 아스라하게 다가온다. 해안선에서

육지 쪽으로 겹겹이 포개진 나지막한 산 능선이 둥근 원을 그리면서

아름다운 스카라인을 펼친다.

그 능선 사이로 기름진 옥토를 빚어놓았다. 마치 황금폭탄을 맞은 듯한

들녘이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과 같은 가을 풍경을 그린다.

정상에서 북쪽으로 내려서면 커다란 집채만 한 바위를 만나게 된다.

위에서 보면 그냥 평범한 바위에 지나지 않지만 아래로 내려서면

마애불이 조각되어 있다.

자연 암벽을 다듬어 작은 방을 만들고 그 자리에 불상을 조각하여 놓았다.

오랜 세월이 지나 머리 아래 부분은 비바람에 쓸려나가 버려

그 흔적을 찾기가 어려운 상태이지만, 얼굴만은 그 모습이 분명하게 남아있다.

머리는 민머리(素髮)이며 상투모양의 육계(肉髻)는 크고 높다.

얼굴은 풍만한 편이나 두툼한 턱 가늘게 뜬눈 꼭 다문 입 등을 보면 매우 근엄하게 보인다.

오른손을 들어 올리고 왼손은 팔을 굽혀 무릎 위에 올려놓은 듯한데

아미타여래의 (阿彌陀如來)의 손 모양 중하나이다.

그런 점에서 이 불상은 서반의 극락세계를 다스리는

아미타여래를 표현 한 것으로 보인다.

불교에서는 극락세계를 아홉 가지 등급으로 표현하며 각각의 극락을 다스리는

아미타불도 아홉 가지의 손 모양으로 차이를 두고 표현하였다.

지금도 관리를 하면서 도를 닦고 계시는 스님이 다녀간 흔적을 남겨 놓았다.

 

마애불에서 불과 두어 발자국을 옮기면 시루떡처럼 포개진 바위가 있다.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분명한대 그 형상은 사람이 직접 하나하나

쌓아 높게 포개어 놓은 것만 같다.

지나온 보안암에서 보았던 담벼락과 모양이 흡사하다.

바위는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갖가지 형상으로 보인다.

앞에서 보면 몸집이 큰 개구리가 웅크리고 앉아있는 형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바위 아래쪽에는 널찍한 공터로 이루어져 있어 쉼터로 이용하기에는 그만이다.

바로 아래쪽에 이와 비슷한 바위가 또 있다. 울창한 송림 숲길을 지나

북쪽으로 내려서면 능선 삼거리임도 길이다.

여기서 북쪽으로 직진하여 올라서면 계명산이다.

임도 삼거리에서 북서쪽으로 내려서서 다시 북쪽으로 내려서면

밤나무가 밭을 이루고 있다.

밭두렁에는 보라색의 자그마한 열매가 앙증맞게 열려 있는

좀작살나무가 드문드문 서있다.

따갑게 내리쬐는 가을 햇볕에 밤나무에 주렁주렁 열려 있는 밤송이가

반쯤 입을 열고 있다.

열려 있는 밤송이 안쪽에는 토실토실 살이 오른 알밤이 얼굴을 내밀며 방긋 웃고 있다.

금방이라도 땅에 떨어 질것만 같은 알밤이 유년시절 내가 자란 고향의

아련한 향수(鄕愁)를 물씬 느끼게 해준다.

 

밤 밭을 지나 내려서면 이명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계곡을 이루고 있다.

계곡은 임도 길과 나란히 어깨를 맞대고 북천 직진 마을까지 길게 이어진다.

풀숲에는 분홍색의 꽃송이가 앙증맞은 고마리와 하얀색의

꽃송이가 탐스러운 쑥부쟁이가 점점 깊어가는 가을의 향기를 물씬 풍긴다.

계봉과 계명산, 이명산에서 이어지는 산 능선이 휘감아 돌아나가는

북천 직전마을은 진한 고향의 향수를 느끼게 한다.

누렇게 잘 익은 황금색 벼들이 넘실거리는 들녘은 마음 가득히 풍요로움을

가져다준다.

논두렁에는 누리장나무가 꽃을 피우고 있다.

마을 곳곳에는 푸른 소나무들이 빼곡하게 푸른 숲을 이루며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다.

노란색으로 곱게 물던 벼들이 일렁이는 들녘과 싱그러운 푸른 소나무 숲 위로

가을황금 빛이 곱게 내려앉았다.

동구 밖을 지키고 있는 늙은 느티나무는 시원함을 느끼게 하고,

옆에 아담하게 서있는 푸른 잎사귀의 단풍나무는 아름다움을 더하여 준다.

 

토실토실 살이 찐 알밤이 지천에 널려 있다.

보라색 꽃향유에 요즘은 좀처럼 보기 힘든 나비들이 살짝 날개를 내려놓고

앉아 열심히 꿀을 따고 있다.

감나무에 열려있는 감들이 붉은 색으로 싱그럽게 익어간다.

텃밭에 심어놓은 푸른색의 무, 배추가 먹음직스럽게 자라고 있다.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 하나하나가 꼭 어릴 때 자란 고향을 느끼게 한다.

마을 앞으로 기찻길이 놓여있다.

그 철길을 건너면 북천 코스모스 축제장이다.

코스모스 축제 장 입구에서 제일 먼저 길손을 반기는 것은 과꽃이다.

선홍색의 붉은 과꽃이 멋진 몸매를 자랑한다.

마치 사춘기 시절 미모의 소녀를 만나는 것처럼 마음이 마냥 설렌다.

붉은 꽃송이가 지고 없을 까봐 얼마나 가슴 태우며 조마조마 했는지!

어쩌면 이리도 예쁠까! 초등학교에 다닐 때 즐겨 불렀던 동요가

아련한 추억으로 떠오른다. 꽃송이에서 피어나는 향이 길손의 코끝을 자극한다.

 

과꽃 길을 따라서 내려서면 붉은 코스모스 밭이 길손을 반긴다.

널찍한 논에 활짝 핀 코스모스 꽃송이와 푸른 야산이 어우러지며 장관을 이루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싱그러운 분홍색코스모스 꽃이 어머니 품 안처럼 마냥

아늑함을 느끼게 한다.

한쪽 모퉁이에는 새하얀 메밀꽃이 활짝 핀 널찍한 밭이 조성되어 있다.

또 다른 밭에는 면화와 화초용으로 새롭게 육종된 겹 해바라기 밭이

또 다른 풍경을 선물한다.

일반해바라기는 한 포기에 꽃송이가 하나인데 겹 해바라기는 꽃송이가

한 포기에서 세 개나 달려 있다.

터널처럼 이어지는 비닐하우스로 종종 발걸음을 옮긴다.

따가운 가을 햇살에 잎과 줄기는 벌써 말라버렸다.

그러나 말라버린 줄기에 조롱박과 많은 종류의 호박들이 주렁주렁 열려 있다.

자그마한 눈사람을 연상케 하는 조롱박이 공중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자그마한 몸통에서는 소박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몸집이 작은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몸집이 조금 큰 조롱박도 있다. 조롱박과 더불어

세계(世界)에 있는 호박들이 모두 모여 있다.

옛날부터 우리 선조들은 재래종 호박을 많이 심고 길렀다.

애호박은 주로 전이나 국거리 찌개용으로 많이 이용하였고 찬바람이

불어오는 늦은 가을에 수확하는 누렇게 잘 익은 늙은 호박은 식용과

약용으로 많이 이용하였다.

그런데 외국에서도 우리나라의 호박과 많이 닮은 품종이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한국에서는 호박을 주로 식용과 약용으로 이용 했다면

외국에서는 식용과 더불어 관상용으로 재배하고 있다는 점이 우리와 다른 점이다.

대표적인 관상용 호박은 독일에서 들여온 베레모 호박이 있다.

호박의 생김새가 꼭 베레모 모자를 닮아서 그런 이름이 붙여 지지 않았나 생각 된다.

이외에 도깨비 방망이를 닮은 마돈나 호박도 있다.

미국에서 들여온 오랜지 호박은 한국의 재래종 호박과 많이 닮았다.

이 호박은 스파게티용으로 사용 된다고 한다.

 

또한 몸길이가 뱀처럼 길다간 뱀 오이와 도깨비 방망이처럼 몸길이가

길쭉한 수세미도 있다.

이 밖에도 요즘은 좀처럼 보기 힘든 좁쌀 메조와 한약재인

율무도 밭을 조성하여 놓았다.

메조는 수확하여 방앗간에서 열매를 가공하면 좁쌀이 된다.

축제 장 곳곳에는 시골에서 여름에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원두막을 세워 놓았다.

원두막 지붕에 호박처럼 열려있는 몸집이 커다란 박도 있다.

푸른 송림 숲길, 상큼한 가을꽃인 쑥부쟁이, 구절초, 새하얀

억새꽃이 살며시 미소 지으며 반기고, 토실토실 살이 찐 알밤, 황금들녘,

수려한 산세, 비취색의 가을바다 마지막으로 조롱박과

선홍색의 붉은 과꽃 그리고 코스모스는 진한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고향길이다.

분홍색 꽃물결이 그림 같은 절경을 펼치는 하동 북천 직전 마을위로 가을이 무르익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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