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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양 괘관산, 천황봉.

풀꽃사랑s 2017. 1. 15. 19:00


경남 함양 괘관산, 천황봉.

만개한 새하얀 아카시아 꽃향기가 코끝을 자극하고 싱그러운 푸른 신록이

녹색의 향연을 펼치는 5월 초순 이름도 생소한 산을 찾아서 길을 나선다.

이번에 탐방할 산은 영남 내륙의 전망대 갓걸이산.이라 이름 붙여진 경남 함양에

있는 괘관산이다.

경남 함양의 진산(鎭山)인 괘관산(掛冠山)은 이웃한 백운산과 함께 함양 읍 북쪽에

부챗살처럼 펼쳐진 능선을 이루며 하늘높이 솟아 있다.

함양군 병곡면, 서하면, 지곡면에 걸쳐 있으며, 이름을 우리말로 풀이하면 갓걸이 산이다.

이는 온 세상이 물바다를 이룬 천지개벽 때 이 산 정상에 갓을 걸어놓을 만큼의

공간만 남기고 물에 잠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괘관산은 걸괘(掛), 갓 관(冠)으로서 갓을 벗어 건다는, 즉 관직을 버리고

사퇴하는 것을 의미하므로 벼슬에서 물러난 선비가 은둔하기에 좋은 산이라는

재미있는 뜻도 품고 있다.

실제로 산에 올라보면 속세의 온갖 유혹을 뿌리치고 대쪽 같은 절개를 품고 깊은 산을

찾아서 은둔의 생활을 하고 있는 선비의 모습과 흡사하다.

이 산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서쪽에 솟아 있는 백운산은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산이다.


백운산은 백두대간이 북쪽에서 뻗어내려 오다가 덕유산을 지나 지리산으로

접어들기 전에 솟구친 봉우리이다.

이 백운산에서 백두대간을 벗어난 곁가지가 동쪽으로 뻗으면서 서래봉-대방령을 거쳐

원통재(빼빼재)에서 주춤했다가, 다시 긴 능선을 이루며

괘관산-천황봉-도숭산을 연결하고 있다.

백두대간이 지나는 언저리에 자리한 괘관산은 지리산과 덕유산의 중간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이러한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 일제 때 학병을 피해 이 산으로 숨어들거나,

한국전쟁 와중에 빨치산들이 은신처로 이용하기도 했다.

괘관산 산등성이는 밋밋한 육산으로 능선에 짙은 숲이 없어 우선 전망이 좋다.

겨울에는 눈이 많은 산으로 설화가 만발하고, 봄이면 철쭉꽃이 능선을 수놓아

함양8경의 하나에 괘관산 철쭉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가을철 산등성이 따라 억새가 하얀 솜털의 꽃을 피우는 장관을 연출해,

화원(花園)의 꽃동산이라 표현할 만큼 아름답다.

아직까지 잘 알려지지 않음은 물론이려니와 찾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

함양에는 지리산, 덕유산을 비롯해 굵직하고 높은 명산들이 많다.

이러다 보니 주변의 이름난 유명산들에 비해 발길이 뜸할 수밖에 없다.

이런 까닭에 조용하고 호젓한 산행을 즐길 수 있어 좋다.

경남 함양읍에서 버스를 타고 37번 지방도를 따라 은행마을로 들어서면 창문

밖으로 하늘 높이 삐죽하게 우뚝 솟아 있는 산봉우리가 얼굴을 드러낸다.

싱그러운 푸른 신록이 아름다운 산세를 구경하며 길모퉁이를 돌면 대운암

암자로 올라서는 등산로 입구가 또렷하게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서 약10분 정도 차를 타고 올라서면 해발800m미터인 빼빼재(원통재)이다.

이 지방도는 덕유산과 지리산을 잇는 관광벨트화를 시도하고자 산을 깎아서

뚫어 놓은 길이지만 지금은 자연훼손만 가중시키는 애물단지로 내몰리고 있다.

고갯마루에는 뜻을 알 수 없는 후해령(後海嶺)이라는 빗돌이 서있다.

한쪽 모퉁이에는 괘관산 등산안내도 와 함양군 관광안내도가 큼지막하게 나란히 서있다.

동쪽으로 능선을 따라 올라서며 오늘 괘관산 탐방을 시작한다.

이제 막 연두색의 여린 새잎이 돋아나 싱그러움을 더해주는 참나무가 빽빽하게

숲을 이루고 있는 능선 사면으로 붙어 돌면 처음부터 경사가 만만찮은 능선 길이다.

우리가 살아가며 높낮이를 알 수 없는 인생의 열두 고개를 넘어가듯이, 산 또한

처음부터 일사천리로 이어지는 평평한 길은 없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봄바람은 이마에 송알송알 맺힌 땀방울을 깨끗하게 씻어 준다.

처음부터 녹녹하지 않는 능선 길을 오르려고 하니 숨이 가쁘고 가슴이 답답하다.

하지만 가끔씩 산 중턱에서 만나는 하얀색의 철쭉 꽃송이가 상큼한 봄맛을 느끼게 해준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철쭉꽃은 연분홍색이다.


그러나 산행을 하면서 산에서 만나는 철쭉꽃은 연분홍색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인접한 바다와 접하고 있는 해안가에 있는 산에서 꽃을 피우는 철쭉은 붉은 색이 진하다.

반면 육지의 깊은 산속이나 높은 산에서 만나는 철쭉꽃은 대개가 연한 분홍색에 가깝다.

하얀색의 철쭉은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가끔씩 이렇게 종종 만나게 된다.

이렇게 산중에서 만나는 철쭉꽃과 야생화는 산행의 피로를 말끔하게 씻어준다.

약30분 정도 부지런히 발품을 팔면서 올라서면 해발1035m미터 봉이다.

처음 출발을 한 고갯마루가 해발800m미터였으니 높이로 계산 한다면

겨우200m미터를 조금 더 올라온 샘이다.

정상에는 삼각점이 있다고 하나 볼 수가 없고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괘관산 주능선과

남쪽의 원넘어재로 산 능선이 갈라지는 능선 분기점이다.

남쪽으로 등산로가 뚜렷하게 잘 나있어 안개라도 내리는 날이면 다소

헷갈릴 수 있는 곳이다.

1035봉을 뒤로 하고 내리막길로 이어지는 능선 길에 서면 앞쪽으로 전망이 탁 트이며

오늘 올라야 산 능선이 한눈에 올려다 보인다.

앞쪽으로 길게 쭉 뻗은 몸매가 늘씬한 산등성이 누워있고 그 너머로 괘관산

전위봉과 천황봉이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하며 고개를 내민다.

완만하던 산등성가 급경사로 변하고 곧이어 안부에 와 닿는다.

커다란 키에 꽃송이가 탐스러운 철쭉이 이곳을 찾은 길손의 마음속에 깊은 인상을 남긴다.

평평한 구릉처럼 이어지는 오솔길 주위에는 잎이 파릇파릇한 다래 순이 숲을 이루고 있다.

어느 방향에서 올라왔는지 산나물을 채취하는 아주머니의 손길이 분주하다.


떨어진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는 땅에는 흙을 비집고 올라온 여린 새순이 벌써 터져

푸른 잎이 싱그러운 은방울꽃이 무리를 지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손으로 툭 치면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만 같은 줄기에는 자그마한 꽃망울이

조롱조롱 매 달려 있다. 소담스럽게 꽃을 피운 풍경을 눈앞에 그려보며 갈 길을 재촉한다.

낙엽이 바스락거리는 오솔길위로 부지런히 발걸음을 떼어 놓으니 꼭 푹신한

양탄자 위를 걷고 있는 기분이다.

이윽고 이정표가 서 있는 옛 고개에 사거리를 지나 올라서면 첫 번째 헬기장이다.

전방에 가야 할 능선이 또렷하게 얼굴을 드러낸다.

높지도 않고 그렇다고 낮지도 않은 부드러운 산등성가 몸집이 커다란 소의 잔등처럼

밋밋하게 이어지고 주변이 탁 트여서 주변의 조망이 시원스럽게 한눈 가득히 들어온다.

드문드문 비비추가 초록색의 커다란 잎을 넘실거리며 길손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해준다.

성질이 급하여 땅속에서 꽃이 핀다는 쪽또리 꽃도 고운 몸매를 하고 얼굴을 내민다.

능선 곳곳에는 금방이라도 꽃이 필 것만 같은 둥글레가 다른 꽃에 뒤질세라

자웅을 겨루고 있다.

이 밖에도 녹색의 잎이 부채 살처럼 좌우로 곱게 펴진 원추리 꽃도 많이 보인다.

헬기장을 뒤로 하고 완만한 내리막길을 내려서면 이정표가 서있는 안부 갈림길이다.

 남쪽은 지소마을로 내려서는 길이다.

안부에서 은근히 높이를 점점 더하는 능선을 따라 올라서면 두 번째 헬기장이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세 번째 헬기장을 지나 네 번째 헬기장을 지나면

바위로 이루어진 널찍한 전망대이다.


이곳에 이렇게 많은 헬기장이 조성된 궁금증은 어디에서 풀어야 할까?

그것은 아마도 한국 전쟁 이 끝나고 이산에 숨어서 은신하고 있던 빨치산을

토벌(討伐)하려고 군(軍)과 경찰이 조성하여 놓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전망대에서 뒤돌아서서 보면 실뱀처럼 이어지는 37번 지방도 서쪽에 백운산이

아련하게 솟아 있다. 북쪽으로 백두대간 마루 금을 따라 영취산, 깃대봉,

남덕유산 줄기가 뻗어가고, 남쪽으로는 월경산 중재를 거쳐 100리길 지리산의

검푸른 주능선이 파노라마 친다.

동쪽에 우뚝 솟아 있는 천황봉을 잇는 산줄기에는 선홍색의 연분홍 철쭉이 능선을

붉게 물들이며 산 꾼들을 유혹하고 있다.

이곳의 철쭉은 아름답기로 유명하여 함양 8경에 이름을 올렸다.

전망대에서 언덕길을 따라 몇 걸음만 올라서면 서쪽으로 대운암으로 내려서는 갈림길이다.

직진하여 태양열 안테나 시설이 있는 괘관산 전위 봉 분기점에 올라선다.

멀리서 보면 이 봉우리가 마치 괘관산 정상으로 보이는 착시 현상에 빠질 수 있다.

동쪽의 맞은편에 우뚝 솟은 천황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몇 년 전만 하여도 대부분의 산 꾼들은 북쪽에 있는 괘관산 정상에 올랐다가 되돌아 나와 천황봉을 올라본 후

원산리 새재골로 하산하는 길을 많이들 선호했다.

참새가 방앗간을 보고 그냥 지나 갈수 없듯이, 눈앞에 보이는 철쭉을 보고도 그냥 지나친다면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을 것 같다.

 때마침 대장님이 올라오신다.


잠시 중미를 부탁드리고 경사가 급한 능선 길을 빠른 걸음으로 내려선다.

약10분 정도 내려서면 이정표가 서있는 안부 사거리 갈림길이다.

북쪽 중산 마을로 2-3분 정도 내려서면 샘터가 있다고 하나 시간이 촉박하여

확인은 하지 못했다. 천황봉 정상까지는 약15분 정도면 올라 설수 있는데

이 능선 일대가 유명하게 알려진 철쭉 군락지이다.

수령이 천 년 이나 된다는 철쭉나무가 있다고 하여 급하게 내려 왔지만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그 철쭉은 보이지 않는다.

약500년 정도 된 철쭉나무만 몇 그루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듬성듬성 서있는 만개한 연분홍 철쭉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어린아이 주먹만 한 탐스러운 철쭉 꽃송이는 높은 고산 지대에서만 볼 수 있는 철쭉이다.

산철쭉과 달리 꽃송이 안에 붉은색 혹은 검은색의 주근깨처럼 뿌려진

반점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가 남쪽에서 보았던 철쭉은 대부분 산철쭉(수달래)종류 이다.

많은 사람들은 모든 철쭉이 똑같다고 생각하지만 이렇게 꽃송이를 보면 산철쭉과

고산철쭉으로 구별이 된다. 철쭉을 쫓아서 올라서다 보니 어느새 천황봉 아래까지

올라오게 되었다. 여기까지 와서 정상을 올라보지 않고 그냥 갈수는 없지 않는가.

내친 김에 정상에 올라선다.

천황봉 정상에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여러 개의 돌탑이 나란히 줄지어 서있다.

무속 인이 세웠을까! 아니면 일반 주민들이 세웠는지 가지런히 마주 보고 서있는

돌탑들이 신비함을 자아낸다. 중앙에는 정상석이 세워져 있는데 뒤쪽에 폼 나게 서있는

돌탑은 또 다른 묘미를 느끼게 한다. 이곳에서 보는 조망은 일품이다.

백두대간의 장쾌한 등줄기와 지리산을 비롯한 함양 일대의 산과 들녘은 물론이고

산자락에 둥지를 튼 촌락까지 조망할 수 있다.

특히 이곳의 백미는 멀리 남쪽에 살짝 얼굴을 내밀고 있는 지리산 천황봉이다.

맞은편에 겹겹이 아담하게 누워 스카이라인을 이루고 있는 부드러운 산줄기에

싱그러운 신록의 초록물결이 출렁인다.


나 자신도 모르게 산이 품고 있는 아름다운 매력에 푹 빠져 버린다.

이곳에도 역시 태양열 안테나가 설치되어 있다.

무엇에 쓰려고 세워 놓았지 그 용도가 궁금하지만 알 수가 없다.

하산 시간에 맞추려면 시간이 넉넉하지만은 않다.

주위를 한 바퀴 휘둘러보고 다시 왔던 길로 발걸음을 빠르게 재촉한다.

시간적인 여유를 충분히 갖고 돌아보아야 하는데 이렇게 모든 것에 쫓기다 보니

심리적으로 항상 많은 부담을 느끼게 된다.

내려올 때와는 달리 전위 봉을 오르지 않고 갈림길에서 산기슭을 따라 이어지는

오솔길로 올라선다. 짧은 지능 선이 바위처럼 돌출된 한쪽 모퉁이에 아직

잎과 꽃이 피지 않은 철쭉이 아담하게 서있다.

겉으로 얼핏 보아서는 나이가 많은 고목이라 것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

천황봉 정상 주변에서 보지 못하였던 수령이 천년이라는 철쭉나무를 여기서 보게 된다.

수령이 천연이나 된다는 것이 입 소문을 타고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서 그런가!

나무가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보호수라면 그냥 조용하게 관리하였으면 좋았을 것을

옆에다 요란하게 표지 석까지 세워 놓은 것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자연은 원래의 그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을 때 가장 아름답고 좋다.

더 이상 사람들의 손때가 묻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공교롭게도 철쭉나무가 건너편 천황봉을 마주 보고 있지 않는가!

산 비탈길을 조심스럽게 올라서니 지나온 산세와는 달리 몸집이 커다란 바위로 이루어진

봉우리들이 위용을 뽐내며 하늘을 향해 높이 우뚝 솟아 있다.


조심스럽게 바위를 붙잡고 올라서니 괘관산 상봉이다.

함양군에서 세운 정상표석과 삼각점이 눈도장을 찍는다.

양쪽으로 깎아 지를듯한 천 길 낭떠러지는 눈앞이 아찔하고 짜릿한 맛을 느끼게 한다.

사면팔방이 탁 트인 상봉에서 바라보는 시원스러운 조망은 일품이다.

동쪽과 서쪽으로 지능선 산줄기가 갈라지며 깊은 협곡이 이루어져 있다.

그 사이로 평평한 구릉지가 마치 넓은 밭처럼 자연적으로 조성되어 있다.

고산지대라 봄이 늦다.

하늘은 가을하늘처럼 유난히도 파랗고 땅에는 연 초록 별들이 사뿐히 내려 앉아있다.

오후의 봄 햇살이 싱그러운 새파란 신록 위에 부서져 내리니 반짝반짝 빛과 윤기가

넘친다.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이 마치 물결초자 일렁이지 않는 고요한 푸른 봄 바다를 보고

있는 듯하다. 눈이 시릴 만큼 싱그러운 푸른 신록이 나그네의 마음을 울렁이게 한다.

서쪽으로 눈길을 주면 백두대간이 하늘 금을 그리고 멀리 북쪽으로 눈을 돌리면

마주보고 있는 거망, 황석산이 눈인사를 건넨다.

그 너머로 몸매가 늘씬한 말 잔등처럼 미끈하게 잘 빠진 기백산이 아래쪽에는

금원산이 살짝 얼굴을 내민다. 옛날 함양의 선비들이 벼슬길에서 물러나 허허 로이

고향으로 내려올 때 맞이하는 산이 바로 괘관산이라 했던가!

함양 선비의 기개를 엿 보듯 하늘을 찌를 듯이 우뚝 솟아 있는 첨봉의 기세는

보는 이로 하여금 입에서 감탄사와 탄성이 절로 나오게 한다.

북동쪽 산기슭에는 사찰처럼 보이는 아담한 기와집이 자리하고 있는 중산 외딴집이

봄날의 운치를 더하여준다. 깊은 산속에 있는 사찰이 아닌가 생각이 될 정도로

고풍스러운 멋과 맛이 풍긴다.


칼등같이 곧추 선 북쪽 산등성이에 몸매가 큼지막한 바위들이 줄지어 징금 다리를

놓아 둔 능선 길을 따라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겨 놓는다.

한마디로 긴장과 스릴의 연속이다. 바람이 세차게 불 때는 이곳을 피하여 험준한

바위로 이우어진 날등 아래로 잘 나 있는 우회 길을 이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신(神)이 아닌 이상 저 뾰족한 첨봉의 정수리에는 사람이 오르지 못할 것이라 생각 했다.

그러나 힘들이지 않고 다람쥐처럼 사뿐히 바위 위에 올라선 산 꾼을 보니

그저 놀랄 뿐이다. 평소에 고소 공포증이 있어서 높은 바위에만 올라서면

오금이 저려오고 간담이 서늘해진다.

마음 같아서는 남들처럼 오르고 싶지만 좌측으로 우회하여 내려선다.

울퉁불퉁한 돌들이 늘려 있는 능선 길을 내려서며 비좁은 바위 틈새에

탐스러운 꽃을 피운 현호색을 본다.

이른 봄 남쪽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꽃인데 깊은 산중에서 보니 느끼는 감정이 남다르다.

길쭉한 보물주머니 속에는 이세상의 온갖 진기한 보물들이 하나 가득 들어 있을 것만 같다.

약간 경사가 급한 길을 내려서면 안부이다.

평평한 바위 슬 랩을 올라서니 소나무 한 그루가 운치 있게 서있다.

마지막 바위 전망대에 올라 지나온 북등과 남쪽의 능선을 돌아본다.

첨봉에 가려서 정상은 보이지 않지만 건너편에 마주 보고 있는 천황봉은 또렷하게

얼굴을 보여준다. 오히려 북등은 산 정상에 몸집이 커다란 바위 들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부드러운 육산으로 보인다.

싱그러운 초록 신록 속에 감추어진 험준한 바위로 이루어진 산등성이 구간은

외유내강(外柔內剛), 즉 겉으로는 부드럽고 순하나 속은 곧고 꿋꿋한 선비의 기개가

숨어 있다. 깊은 협곡을 이루고 있는 산비탈에는 이팝나무 꽃을 많이도 닮은

쇠물푸레나무 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하얀 솜털 같은 꽃송이가 이색적인 풍경을

자아내고 지능선 산중턱에는 울창한 싱그러운 신록이 진초록의 곱고 고운 융단을

깔아 놓았다. 산을 곱게 물들이는 싱그러운 연두색의 신록이 화사한 봄꽃보다 더 아름답다.

험준한 바위로 이루어진 산등성이 구간을 벗어나면 능선 갈림길이다.


아무 생각 없이 무심코 걷다가는 북쪽으로 그냥 내려설 수가 있는 곳이어서

주의를 해야 한다.

혹시나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바로 앞에 가시던 두 분이 북쪽으로 내려섰다가

다시 올라오셨다.

하산 길은 산행을 시작할 때와는 반대로 무려 200m미터 이상의 고도차이가 나는

가파른 급경사 길을 따라 북서쪽으로 내려서며 시작된다.

벌써 잎이 무성한 떡갈나무와 잡목이 빼곡하게 우거진 숲길은 원시림을 방불케 한다.

힘은 들지만 조용하고 한적한 능선길이라 산행의 묘미가 쏠쏠하다.

첫 번째 무덤을 지나면서부터는 꿈길 같은 오솔길이 끝 간 데 없이 이어진다.

두 번째 무덤에서 세 번째 무덤 사이에는 사람의 키를 훌쩍 넘는 산죽길이다.

산죽길이 끝이 나면 이번에는 울창한 송림 숲길이다.

양쪽 산비탈을 자세히 살펴보면 흙으로 이루어진 깎아 지를듯한 낭떠러지이다.

그 경사면에 빼곡하게 소나무들이 줄지어 서있다.

산책길처럼 호젓한 송림 숲길을 걸으며 덤으로 삼림욕까지 즐긴다.

괘관산으로 올라서는 능선은 야생화들이 꽃밭을 연상시킬 정도로 많이 자라고 있다.

내려서는 길은 반대로 나무들이 울창하게 우거져 숲을 이루며 맑은 산소를 내 뿜고 있다.

 때때로 자연은 이렇게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게 한다.

마지막으로 높이가 야트막한 야산을 넘어선다.

지난해 가을 떨어진 갈잎으로 인해 발에 느껴지는 촉감이 부드러운 오솔길을 내려서면

은행 마을로 내려서는 널찍한 수레길이다.

인삼 밭과 사과나무를 심어 과수원을 조성하여 놓은 밭을 지나 마을사람들이

관리하고 있는 행산제(杏山齊)에서 배낭을 내리고 잠시 휴식을 취한다.

건너편에 마주 보고 있는 마을과 조금 떨어져 높은 언덕 위에 있는 행산제는 촌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윗대의 조상을 모셔놓은 사당(祠堂)이다.

자그마한 마당 앞쪽에는 운치 있는 갈래소나무가 한 그루 서있다.

한쪽 모퉁이에는 행산제(杏山齊) 중수(重修)및 유적비(遺蹟碑)가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 맞은편에 아담하게 들어 앉아 있는 은행마을은 동화 속에 나오는

비밀의 정원이요 푸른 수목원이다.

마을 뒤편으로 생명수가 흘러가는 계곡이 휘감아 돌아나간다.

시멘트로 포장된 수레 길을 따라 마을로 들어서니 자그마한 돌을 쌓아 올린

담장이 앙증맞다. 흐드러지게 핀 붉은 모란꽃이 집을 떠나버린 옛 주인이 오기를

기다리며 담장 밖으로 고운 얼굴을 내밀고 있다.

널찍한 마을 빈 공터에는 무려 수령이 800년이 된 함양 운곡리(咸陽 雲谷里) 은행나무가

터줏대감처럼 서있다. 마을의 보호수인 이 나무는 천연기념물 제406호이다.

은행나무는 살아있는 화석이라 불리며, 우리나라를 포함한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한다.

중국에서 유교와 불교가 전해질 때 같이 들어온 것으로 전해진다.

운곡리 마을이 생기면서 심은 나무, 마을의 이름도 이 나무로 인해 은행마을이라 부른다.

만약에 은행나무를 헤지면 그 집안과 마을에 재앙이 찾아 전다고 전하기도 하고,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마을이 배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바로 이 나무가

마을의 돛대 역할을 하여 마을을 지켜 준다고 여겨 소중히 보호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은 매년 정월(丁月) 정일(丁日)에 평안과 풍년을 비는 당제를 지내고 있다.

옛날부터 마을 입구에는 정자나무라 하여 느티나무나 팽나무 그리고 회나무를 즐겨 심었다.

나무 아래에는 항상 아담한 정자를 세워 무더운 여름에 더위를 식히며 휴식을 취하는

장소로는 그만이었다. 은행나무는 집이나 사찰의 정원수로 많이 심었는데

느티나무, 팽나무와 함께 장수(長壽)를 소원하는 애틋함을 품고 있다.

은행나무는 마을뿐만 아니라 전국의 주요 고찰에서도 고목이 된 은행나무를

많이 볼 수 있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는 계절마다 피는 꽃과 풍경이 색다르다.

이른 봄을 매화꽃과 진달래, 산수유, 벚꽃 등 여러 종류의 봄꽃과 야생화들이라면

여름의 문턱에 들어서는 5월초순은 산철쭉과 철쭉 그리고 온 산을 싱그러운 초록색으로

물들이는 푸른 신록이다.

잿빛의 황량한 숲 속에 연두색의 여린 새순이 돋아나 초록색으로 건너가 절정을

이루는 때가 바로 5월 초순이다. 나는 일 년 중 이때가 가장 좋다.

파릇파릇한 싱그러운 신록이 아련한 동심의 세계로 빠져들게 하기 때문이다.

함양 8경

1경-상림사계(상림의 사계절 풍경)

2경-금대지리(금대암에서의 장엄한 지리산 조망)

3경-용주비경(용추계곡과 기백산의 빼어난 경치)

4경-화림 풍류(농월정, 동호정, 거연정과 계곡의 경치. 청개서원과 연계하는 선비문화)

5경-칠선시류(지리산 칠선계곡의 경치와 화살과 같이 빠르게 굽이쳐 흐르는 물)

6경-서암석불(벽송사와 서암정사의 고느적한 풍경과 경이로운 석불)

7경-덕유운해(남덕유산 아래로 떨어지는 구름바다의 신비로움)

8경-괘관철쭉(백운산으로부터 괘관산까지 이어지는 봄 철쭉의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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