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절기(節氣) 중 22번째 절기(節氣) 동지(冬至).
24절기(節氣) 중 22번째 절기(節氣) 인 동지(冬至)는 21번째 절기(節氣) 인 대설(大雪)을 지나고 15일 후(後), 23번째 절기(節氣) 인 소한(小寒) 15일 전(前)에 있는 절기(節氣)입니다. 24절기(節氣) 는 기본적으로 태양의 궤도(軌道)인 황도(黃道)의 움직임을 기본으로 정해지므로, 양력(陽曆) 날짜에 연동(聯動)됩니다. 동지(冬至)는 태양의 황경(黃經=춘분점으로부터 황도를 따라 동쪽으로 잰 천체의 각거리) 270도인 날로 대개 음력(陰曆) 11월 중, 양력(陽曆) 12월 21~22일 무렵입니다. 일 년 중에서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기도 합니다. 여름철 절기(節氣) 인 하지(夏至) 절기(節氣)가 지나면서부터 낮의 길이가 차츰 짧아지고, 밤이 길어지기 시작하여 겨울철 절기(節氣)인 동짓날에 최대로 짧아진 다음, 동지(冬至)가 지난 다음 날부터는 차츰 밤의 길이가 짧아지고 낮의 길이가 길어지기 시작합니다. 또 ‘동지(冬至)’라는 이름답게, 동지(冬至)가 지나면 본격적으로 겨울이 시작되며 기온(氣溫)이 뚝 떨어지며 매서운 겨울 추위가 시작됩니다.
‘동지(冬至)’라는 말은 ‘겨울(冬)에 이르다(至)’라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북반구(北半球=적도를 중심으로 지구를 둘로 나누었을 때 북쪽 부분에 해당하는 지역)에서는 낮이 가장 짧은 날이며, 동지(冬至)가 지나고 다음 날부터 낮의 길이가 차츰 길어지게 됩니다. 농업(農業)을 중시(重視) 했던 고대(古代)에는 태양(太陽)이 죽음에서 새로 태어나며, 양(陽)의 기운이 시작되는 날이라고 보아 매우 중요한 절기(節氣)였습니다. 옛날부터 동지(冬至)를 ‘작은 설’ 수세(首歲=음력 11월), 원정동지(元正冬至), 아세(亞歲), 이장(履長), 지일(至日), 호랑이 장가가는 날 등 다양한 이름을 붙여서 불러왔습니다.
★수세(首歲=음력 11월)=한 해가 시작되는 첫 번째 날이라는 뜻으로 음력(陰曆) 11월에 들어 있는 24절기(節氣) 중의 하나인 동지(冬至)를 달리 부르는 말.
※아세(亞歲)=음력(陰曆) 11월에 들어 있는 24절기(節氣) 중의 하나인 동지(冬至)를 달리 부르는 말. 아(亞)는 버금간다는 뜻으로 우리 조상들은 동짓날을 ‘작은 설’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설날 다음가는 작은 설날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장(履長)=음력(陰曆) 11월에 들어 있는 24절기 중의 하나인 동지(冬至)를 다르게 부르는 말. 이장(履長)에 대한 기록은 중국 위(魏)나라 조식(曹植)의 조자건집(曹子建集)에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오랜 옛날부터 동짓날 신발(履)과 버선(襪=버선 말)을 바쳤다”라고 합니다. 이러한 이장(履長)의 기원(祈願)에는 두 가지 설(說)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아악(雅樂=고려와 조선시대, 궁중에서 연주된 전통 음악의 한 갈래를 이르던 말. 고려 예종 때 중국 송나라에서 들여왔던 것을 조선 세종이 박연에게 명하여 새로 완성 시켰다) 십이율(十二律)의 상징(象徵)과 관련지어 설명하는 것이다. 곧“동짓날의 태양(太陽)은 남극(南極)에 위치하고, 그림자가 가장 길며 율(律=고대 동양 음악에서 음계를 구성하는 12개의 기본음 즉 십이율을 말한다)은 황종(黃鍾=십이율 가운데 첫 번째 음으로, 음력 11월 동짓달에 해당하는 상징적인 음)에게 해당한다.”, 라고 하였다. 황종(黃鍾)은 아악(雅樂)의 기본음(基本音)으로 양율(陽律=고대 동양 음악에서 음계를 구성하는 십이율<十二律> 가운데 양성<陽聲>에 속하는 여섯 가지 음(音)을 가리킨다. 여섯 가지 음은 황종<黃鍾>, 태주<太蔟>, 고선<姑洗>, 유빈<蕤賓>, 이칙<夷則>, 무역<無射>)에 속한다. 따라서 동지(冬至)는 양(陽)의 기운(氣運)의 으뜸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동짓날의 상서로움을 맞아 그것을 신발(履)과 버선으로 오랫동안(長) 밟고 있어라.’라는 기원(祈願)의 의미로 해석(解釋)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부녀자(婦女子=결혼한 여자와 성숙한 여자)들의 노동(勞動)과 관련된 것입니다. 곧 “동지(冬至)에 양기(陽氣)가 처음 생겨나 낮이 동지(冬至)를 지나면서 점차 길어지게 됩니다. 부녀자(婦女子)들은 동지(冬至) 절기(節氣)에 신발과 버선을 시부모(媤父母)님께 바쳐서 여자의 일이 시작함을 보였다.”라고 하는 것은 동지(冬至)를 기점(起點=출발점)으로 부녀자(婦女子)들이 자신들의 주된 노동일(勞動日)을 상징(象徵)하는 신발과 버선을 바쳐 본격적인 노동(勞動)이 시작됨을 알린 것입니다.
★지일(至日)=음력 11월에 들어 있는 24절기(節氣) 중의 하나인 동지(冬至)를 달리 부르는 말.
★호랑이 장가가는 날=음력 11월에 들어 있는 24절기(節氣) 중의 하나인 동지(冬至)를 달리 부르는 말. 이 말은 호랑이의 생태적(生態的) 특성(特性)과 관련되어 유래(由來)되었다고 합니다. 옛날에 사람들은 호랑이는 열이 많은 동물(動物)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날씨가 춥고 밤이 긴 동짓날에 호랑이 암컷과 수컷이 교미(交尾)할 것이라 여겨 이날을 ‘호랑이 장가가는 날이라’ 했다는 설(說)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한편, 동짓날은 부부간(夫婦間)의 방사(房事=두 사람이 육체적으로 관계함)를 금기시(禁忌時)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호랑이가 동짓날 교미(交尾)를 하여 평생(平生) 한 마리의 새끼만 낳기 때문에 사람도 방사(房事)하면 자식이 적다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경상남도(慶尙南道)를 중심으로 이러한 세시풍속이(歲時風俗=한 해의 절기나 달, 계절에 따라 민간에서 전하여 온 풍속) 전해지고 있는데 현재는 그 의미는 다소 변하였다고 합니다. 이는 호랑이의 생태적(生態的) 특성(特性)에 대한 언급은 없고 단순히 방사(房事)를 금해야 한다는 의미로만 전승(傳承)되고 있기도 합니다. 이밖에 동지(冬至)는 일 년 중 밤이 가장 길어서 잡귀(雜鬼=온갖 잡스러운 귀신)의 활동(活動)이 왕성(旺盛)하다고 하여, 방사(房事)하면 잡귀(雜鬼)가 시기하여 남자에게 액운(厄運)이 닥치며 심지어 급사(急死=갑자기 죽음)하게 된다고 믿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방사(房事) 금기의 이유도 환경(環境)에 따라 달라지기도 했습니다.

올겨울에도 변함없이 저 멀리 북쪽에서 반가운 겨울 길손인 큰고니가 대구광역시(大邱廣域市) 동구(東區) 안심(安心) 가남지(街南池) 저수지(貯水池)에 찾아왔습니다. 가남지(街南池)는 여름에는 아름다운 연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겨울철에는 큰고니를 비롯하여 많은 종류의 철새들이 찾아와 겨울을 나는 중요한 월동지(越冬地)입니다. 매년 같은 장소에 큰고니가 찾아오는 것을 보면 정말로 신비스럽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해줍니다. 큰고니는 한자어(漢字語)로 백조(白鳥)라고 하지요. 백조(白鳥)를 순우리말로 ‘고니’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옛날부터 동지(冬至)를 ‘작은 설’이라고 불렀습니다. 정조(正祖=조선 22대 왕) 때 홍석모(洪錫謨)가 지은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조선 순조 때의 학자 홍석모가 지은 세시풍속에 관한 책. 우리나라의 연중행사 및 풍습을 설명한 책으로, 1년 12개월의 기사를 항목으로 나누어 해설하였다)”에는 동지(冬至)를 ‘아세(亞歲)’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설에 버금가는 날’이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부른 연유(緣由)는 동지(冬至)가 태양(太陽)의 부활(復活)이라는 큰 의미를 지니고 있어서 설 다음 가는 ‘작은 설’로 대접(待接)했습니다. 이런 관념(觀念)은 오늘날에도 여전해서 “동지(冬至)를 지나야 한 살 더 먹는다”. 또는 “동지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 라는 말처럼 동지첨치(冬至添齒=동지에 팥죽을 한 그릇 먹으면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뜻)의 풍속(風俗)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동지(冬至)가 드는 달인 음력(陰曆) 11월을 ‘동짓달’이라고 불렀는데. 동지(冬至)가 초순(初旬)에 들면 ‘애동지(兒冬至)’, 중순(中旬)에 들면 ‘중동지(中冬至)’, 하순(下旬) 즉 그믐(음력으로 그달의 마지막 날)에 들면 ‘노동지(老冬至)’라고 불렀습니다. 이처럼 우리 민족(民族)은 태양력(太陽曆=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시간을 일 년으로 하는 달력)인 동지(冬至)에다가 태음력(太陰曆=달이 지구를 한 바퀴 도는 시간을 기준으로 만든 달력)을 잇대어 태음태양력으로(太陰太陽歷=태음력을 기초로 하고 윤달을 두어 태양력과 절충한 역법. 우리나라의 음력, 유대력, 그리스력, 중국력이 이에 해당한다) 세시풍속(歲時風俗)을 형성시켜 의미를 부여하였다.
★애동지(兒冬至)=음력(冬至) 11월 10일 이전에 드는 동지(冬至). 동짓달 초순에 든 동지(冬至)를 일컫는 말. 동지(冬至)는 양력(陽曆)은 12월21일 또는 22일로 그 날짜가 고정되어 있지만 음력(陰曆) 날짜는 유동적(流動的=고정되지 않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것) 입니다. 동지(冬至)는 보통 음력(陰曆) 동짓달(음력 11월)에 드는데 음력(陰曆)으로 동지(冬至)가 동짓달 초순(初旬)에 들면 애동지(兒冬至)라고 합니다. 애동지(兒冬至)는 경상북도(慶尙北道)와 강원도(江原道) 지역에서는 아기 동지, 아동지(兒冬至)라고 하며, 전라남도(全羅南道) 지역에서는 아그동지, 소동지(小冬至)로 부르고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애동지(兒冬至) 때 아기가 있는 집에서는 아이에게 좋지 않다고 해서 팥죽을 먹지 않고 떡을 빚어서 먹는 풍속(風俗)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중동지(中冬至)=음력(陰曆) 11월 10일에서 20일 사이에 드는 동지(冬至). 동짓달(음력 11월) 중순(中旬)에 든 동지(冬至). 동지(冬至)는 대설(大雪)을 지난 후(後) 소한(小寒) 15일 전(前)까지의 절기(節氣)로 보통 양력(陽曆) 12월 22일 무렵에 해당합니다. 보통 아이 동지(冬至)에는 팥죽을 끓이지 않지만, 중동지(中冬至)에는 팥죽을 끓입니다. 경상북도(慶尙北道) 구미시(龜尾市)와 선산군(善山郡) 지역에서는 팥죽을 끓일 수 있는 중순(中旬)에 동지(冬至)가 들면 온 동지(冬至)라고도 합니다. 이는 중동지(中冬至)에 해당하는 말입니다. 온 동지(冬至)는 중동지(中冬至), 청년 동지(靑年 冬至), 보통 동지(冬至)와 같은 의미로 사용합니다.
★노동지(老冬至)=음력(陰曆) 동짓달(음력 11월)의 그믐 무렵에 든 양력(陽曆) 동지(冬至). 동지(冬至)를 새해로 여기던 유풍(遺風) 때문에 동지(冬至)가 늦게 들면 여생(餘生)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老人)들도 나이를 늦게 먹게 되니 그해가 노인(老人)들에게 좋다는 속설(俗說)이 있습니다. 동짓달 그믐(음력 11월 마지막 날) 무렵에 든 동지(冬至). 애동지가 음력(陰曆) 동짓달 초순(初旬)이라면 노동지(老冬至)는 지역에 따라 보름(15일) 이후 또는 하순(下旬)에 드는 상황에 해당합니다. 노동지(老冬至)를 경상북도(慶尙北道)에서는 어른 동지(冬至), 강원도(江原道)에서는 구동지(舊冬至), 늙은이 동지(冬至), 강원도(江原道) 삼척(三陟)에서는 늦동지, 전라남도(全羅南道) 화순(和順)에서는 노동지(老冬至), 제주도(濟州道)에서는 종동지(終冬至)로 전승(傳承=문화, 풍속, 제도 등을 이어받아 계승함)되고 있습니다.
애동지 때는 팥죽을 쑤어서 먹지 않지만, 노동지(老冬至) 때는 팥죽을 쑤어 먹습니다. 그러나 강원도(江原道) 삼척(三陟)에서는 음력(陰曆) 11월 25일 무렵에 드는 늦동지 때도 팥죽을 끓이지 않습니다. 애동지가 들면 그해는 아이들에게 좋고, 노동지(老冬至)가 들면 노인(老人)들에게 좋다는 속설(俗說)이 있습니다. 이것은 동지(冬至)를 새해로 여기던 유풍(遺風=옛날부터 전하여 내려오는 풍습)으로 동짓날에는 누구나 한 살씩 더 먹는데 어린애는 빨리 크기를 원하니 동지(冬至)가 며칠간이라도 빨리 들면 좋아할 것이고, 또 노인(老人)은 여생(餘生=죽을 때까지 남은 생애)이 얼마 남지 않은 운명(運命)이라 동지(冬至)가 늦게 들면 몇 날을 더 살아야 한 살을 먹게 되니 노인(老人)에게는 즐거운 일이 될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애동지, 노동지(老冬至) 같은 풍속(風俗)이 생겨났습니다.
중국 주(周)나라 때에는 이날을 생명력(生命力)과 광명(光明=밝고 환한 밝은 빛)이 부활(復活)한다고 생각하여 동지(冬至)를 새해의 첫날인 ‘설’로 삼았습니다. 이런 전통(傳統)은 고대 중국의 당(唐)나라에도 이어져, 당(唐)나라의 역법서(曆法書)인 선명력(宣明曆=중국 당(唐)나라 때, 서앙(徐昻)이 만든 태음력(太陰曆)에서도 동지(冬至)를 역(曆=달력의 첫날)의 시작으로 보았습니다. 역경(易經=‘주역<周易>’을 삼경의 하나로 일컫는 말)에서도 복괘(復卦=육십사괘(六十四卦)의 스물네 번째 괘(掛). 땅을 나타내는 곤괘(坤卦)와 우레를 나타내는 진괘(震卦)가 위아래로 이어진 것으로, 지뢰복괘(地雷復卦)라고도 한다. 우레가 땅속에 있음을 상징한다) 에 해당하는 음력(陰曆) 11월을 자월(子月=달의 간지(干支)가 자(子)인 달. ‘동짓달(冬至一)’을 달리 이르는 말이다) 이라 하여 동짓달을(음력 11월) 일 년의 시작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이것은 곧 동지(冬至)와 부활(復活)이 같은 의미를 지닌 것으로 판단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흰죽지와 물닭입니다. 흰죽지와 물닭 역시 겨울 철새입니다. 물닭은 오리가 아니라 물새라고 합니다.

검은색 털과 머리 부위가 아주 특이한 물닭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新羅)에 이어 고려(高麗) 시대에도 당(唐)의 선명력(宣明曆)을 그대로 섰으며, 고려(高麗) 26대 왕인 충선왕(忠宣王) 원년(1309)에 와서 원(元)의 수시력으로(授時曆=중국 원나라 때, 곽수경(郭守敬), 왕순(王恂) 등이 만든 달력. 1281년부터 쓰였으며 우리나라에는 고려 충렬왕<忠烈王=고려 제25대 왕> 때 도입되었다) 바뀔 때까지 선명력(宣明曆)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보아 고려(高麗) 충선왕(忠宣王) 이전까지는 동지(冬至)를 새해의 첫날인 설날로 삼았습니다.
한편, 구미(歐美=미국과 유럽을 아우르는 말) 각국(各國)의 성탄절(크리스마스)도 초기 기독교가 페르시아 미트라교(Mithraism)의 동지(冬至) 축제일(祝祭日)이나 태양(太陽) 숭배(崇拜)의 풍속(風俗)을 이용해서 예수 탄생(誕生)을 기념(紀念)하게 한 것입니다. 신약성서(新約聖書)에도 예수의 탄생(誕生) 날짜 기록은 없다고 합니다. 농경민족(農耕民族)인 이탈리아 로마인의 농업(農業) 신(神)인 새턴(Saturn)의 새턴네리아 축제(祝祭)가 12월 21일부터 31일까지 성행했고, 그중 25일이 특히 동지(冬至) 뒤 태양 부활일(復活日)로 기념(紀念)하게 된 날이었다고 합니다.
중국 고문헌(古文獻)에서 동지(冬至) 기간(期間)을 5일 단위로, 삼후(三候)로 구분하는데, 초후(初候)에는 지렁이가 움츠러들고, 중후(中候)에는 큰 사슴의 뿔이 떨어지며, 말후(末候)에는 샘물이 얼어붙는다고 기록하여, 본격적인 겨울 날씨가 시작됨을 밝히고 있습니다. 5일 단위로 삼후(三候)를 구분하는 것을 조선(朝鮮) 초(初) 이순지(李純之) 등이 펴낸 “칠정산내편(七政算內篇) 1444) 등 우리나라 여러 문헌(文獻)에도 인용(引用)되고 있는데, 중국 문헌(文獻)의 절기(節氣)는 옛날 고대 중국 주(周)나라 때 화북(華北, 지금의 화베이 지방으로 베이징과 톈진이 있는 지역) 지방의 기후(氣候)를 기준(基準)으로 기술(記述)된 것이어서 우리나라의 기후(氣候)와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동지(冬至) 궁중풍속(宮中風俗).
궁중(宮中)에서는 원단(元旦=음력 1월 1일 설날)과 동지(冬至)를 가장 으뜸 되는 축일(祝日=기쁜 일을 축하하는 날)로 생각하여 동짓날 군신(君臣)과 왕세자(王世子)가 모여 잔치를 여는 회례연(會禮宴)을 베풀었다. 해마다 중국에 예물(禮物)을 갖추어 동지사(冬至使)를 파견하여 이날을 축하(祝賀)하였고, 지방(地方)의 관원(官員)들은 임금에게 전문(箋文=예전에, 신하가 임금에게 올리는 사륙체의 글을 이르던 말)을 올려, 진하(陳賀=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벼슬아치들이 임금 앞에 나아가 축하한다) 했습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관상감(觀象監=조선시대, 천문, 지리학, 역수(曆數), 기후, 관측, 각루<刻漏=물을 넣은 항아리에 구멍을 뚫어 물이 일정한 속도로 떨어지게 하여, 고이는 물의 양이나 줄어드는 양을 헤아려 시간을 알게 하는 시계> 등의 사무를 맡아보는 관청을 이르던 말) 에서는 새해의 달력을 만들어 궁(宮)에 납품(納品)했습니다. 나라에서는 이 책(冊)에 동문지보(同文之寶)라는 어새(御璽=임금의 도장)를 찍어 백관(百官=모든 벼슬아치)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 달력은 황장력(黃粧曆=누른빛의 종이로 겉장을 붙인 책력), 청장력(靑粧曆=푸른빛의 종이로 겉장을 붙인 책력), 백장력(白粧曆=흰빛의 종이로 겉장을 붙인 책력)의 구분이 있고, 관원(官員)들은 이를 친지(親知)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이것을 단오(端午)에 부채를 주고받는 풍속(風俗)과 아울러 하선동력(夏扇冬曆=여름의 부채와 겨울의 새해 책력이라는 뜻으로, 선물이 철에 맞음을 이르는 말)이라 했습니다. 이조(吏曹)에서는 지방(地方) 수령(守令)들에게 표지(表紙)가 파란 청장력(靑粧曆)을 선사(膳賜) 하였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달력은 내용이나 효용도(效用度)에 따라서 많이 다르다. 특히 옛날에는 농경(農耕) 본위(本位)의 사회(社會)였던 만큼 24절기(節氣) 등 때에 맞추어 농사(農事)를 짓기 위해서는 달력이 요긴하였고, 기재(記載) 내용도 그것에 맞게 다양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동짓날이 부흥(復興)을 뜻하고 이날부터 태양(太陽)이 점점 오래 머물게 되어 낮이 길어지므로 한 해의 시작으로 보고 새 달력을 만들어 서로 나누어 가졌던 것입니다. 요즈음에도 동지(冬至) 무렵의 연말연시(年末年始)가 되면 새해 달력을 주고받는 풍속(風俗)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11월 초에 매년(每年) 동지(冬至) 무렵이 되면 제주목사(濟州牧使)는 제주도(濟州道) 특산품(特産品)인 밀감(蜜柑=귤), 유자(柚子)를 진상(進上)하는 일을 적고 있다. 이 귤들을 종묘(宗廟)에 진상(進上)하고 신하(臣下)들에게도 나누어주었고, 멀리에서 바다를 건너 귤을 가지고 상경(上京)한 섬사람에게 는 그 공로(功勞)를 위로(慰勞)하는 사찬(賜餐=임금이 음식을 내려줌)이 있었으며, 또 포백(布帛=베와 비단) 등을 하사(下賜)하였다. 멀리서 황은(皇恩=황제의 은혜)에 감화(感化=좋은 영향을 받아 생각이나 행동이 바람직하게 변함)되어 진기(珍奇)한 과일을 가져온 것을 기쁘게 여겨 임시로 과거(科擧)를 실시해서 사람을 등용(登用)하는 일이 있었는데. 이것을 황감제(黃柑製=예전에, 해마다 제주도(濟州道)에서 진상(進上)하는 황감(黃柑)을 성균관과 사학(四學) 유생(儒生)들에게 나누어 주고 동시에 보는 과거를 이르던 말)라 하였습니다. 옛날 탐라(耽羅)의 성주(城主)가 이를 바칠 때 치하하는 의미에서 과거(科擧)를 설시했다. 조선시대(朝鮮時代)에도 이를 답습(踏襲)하여 성균관(成均館)과 사학(四學=고려 시대에, 개경에 설치되었던 5부 학당을 조선이 계승하여 세운 교육 기관)의 유생(儒生)들에게 시험(試驗)을 보이고 귤을 나누어 주었는데 그 과거(科擧)의 이름을 감제(柑製)라 했다.
내의원(內醫院)에서는 소의 다리를 꼬아서 여기에 백강(白薑), 정향(丁香), 계심(桂心), 청밀(淸蜜) 등 한약재(韓藥材)를 넣어서 전약(煎藥=동짓날에 먹는 음식의 하나)을 만들어 진상(進上)하였는데, 각 관청(官廳)에 이를 나누어 주었다. 이 약(藥)은 악귀(惡鬼)를 물리치고 추위에 몸을 보호하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동지(冬至)가 되면 동지하례(冬至賀禮)를 행하며 버선을 선물하는데 이를 동지헌말(冬至獻襪)이라고 합니다. 또 종묘(宗廟)에 청어(靑魚)를 천신(薦新=계절마다 새로 수확한 과실이나 농산물을 신에게 먼저 올림) 하는데 경사대부(卿士大夫=조선시대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이외의 벼슬아치들을 통틀어 이르는 말)의 집에서도 이를 행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청둥오리와 함께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흰뺨검둥오리입니다. 흰뺨검둥오리 역시 늦가을에, 북쪽에서 날아와 우리나라에서 겨울을 나고 이듬해 봄에 다시 북쪽으로 돌아가는 겨울 철새입니다. 요즘은 일부 개체(개체)가 우리나라에서 텃새로 살아가는 무리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개체(個體)는 번식지(繁殖地)인 북쪽과 남쪽을 오가는 겨울 철새입니다.









◆동지(冬至) 민간풍속(民間風俗).
동짓날이 되어 기온(氣溫)이 영하(零下)로 내려가면, 연못의 수면(水面)이 얼어붙어 얼음의 모양이 쟁기로 밭을 갈아놓은 것처럼 보이게 됩니다. 이것을 용경(龍耕=용같이)이라고 합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11월 월내 조에는 “충청도(忠淸道) 홍주(洪州) 합덕지(合德池)에 매년 겨울이 되면 얼음의 모양이 용(龍)이 땅을 간 것같이 되는 이상한 변(變)이 있었다. 남쪽에서 북쪽으로 언덕 가까운 쪽으로 새롭게 갈라나간 흔적이 있으면 이듬해 풍년(豊年)이 들고, 서쪽으로부터 동쪽으로 중앙(中央)을 횡단(橫斷)하여 갈아나가면 흉년(凶年)이 든다고 한다. 혹 갈아나간 흔적이 동서남북 아무 데로나 종횡(縱橫=세로와 가로를 한데 이르는 말)으로 가지런하지 않으면 평년작(平年作)이 된다고 한다. 농사꾼들은 이것으로 이듬해의 농사일을 징험(徵驗=어떤 징조를 경험함)한다. 경상남도(慶尙南道) 밀양(密陽) 남지(南池)에서도 용(龍)이 땅을 갈아 이듬해의 농사일(農事)을 징험(徵驗)한다고 한다.”라는 내용이 기록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용경(龍耕)에 대한 기록 원문, 湖西洪州合德池(호서홍주합덕지), 每年冬有龍耕之異(매년동유용경지이), 自南而北(자남이북), 從而薄岸則歲穰(종이박안칙세양), 自西而東(자서이동), 經斷其腹則荒(경단기복측황), 或西惑東或南或北(혹서혹동혹남혹북), 橫從不整則荒穰半(횡종불정측황양반), 農人推之來歲輒驗(농인추지래세첩험), 嶺南密陽南池亦有龍耕(영남밀양남지역유용경), 以驗年事( 이험년사).
또 동짓날은 동지부적(冬至符籍)이라 하여 뱀 ‘사(蛇)’자를 써서 집의 벽이나 기둥에 거꾸로 붙여 잡귀(雜鬼)를 막는 속신(俗信)이 있으며, 팥죽을 쑤어먹지 않으면 쉬이 늙고 잔병이 생기며 잡귀(雜鬼)가 성행(盛行)한다는 속신이(俗信=민간에 전하는 미신적인 신앙 관습) 전해지고 있습니다. 동짓날 날씨가 따뜻하면 이듬해에 질병(疾病)이 많을 것이라 여겼으며, 반대로 눈이 많이 내리고 날씨가 추우면 풍년(豊年)이 들 징조(徵兆)라고 믿었다고 합니다. 또 동짓날이 추우면 해충(害蟲)이 적으며 호랑이가 많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옛날부터 동짓날이 되면 백성(百姓)들은 모든 빚을 청산(淸算)하고 새로운 기분으로 하루를 즐겼다고 합니다. 또 일가친척이나 이웃 간에는 서로 화합(和合)하고 어려운 일은 서로 마음을 열고 풀어 해결하였다고 합니다. 오늘날 연말(年末)이면 불우이웃 돕기를 펼치는 것도 동짓날의 전통이 이어 내려온 것으로 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청둥오리입니다. 청둥오리 역시 우리나라에서 흰뺨검둥오리와 함께 함께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야생 오리입니다. 청둥오리는 우리나라 농가에서 가축으로 기르고 있는 집 오리의 조상입니다. 실제로 가축으로 기르고 있는 집오리와 유전자가 같다고 합니다. 청둥오리의 수컷은 머리의 색이 짙은 청색입니다. 청둥오리 역시 요즘은 일부 개체(개체)가 우리나라에서 텃새로 살아가는 무리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개체(個體)는 번식지(繁殖地)인 북쪽과 남쪽을 오가는 겨울 철새입니다.


얘들은 쇠오리입니다. 흰뺨검둥오리나 청둥오리보다 몸집이 작습니다. 그냥 보아서는 일반 새처럼 몸집이 조금 작습니다. 쇠오리 역시 겨울 철새이지만 최근에는 우리나라 환경에 적응하여 텃새로 살아가는 개체(個體)도 있습니다.





흰뺨검둥오리가 물 밖에서 먹이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흰뺨검둥오리는 물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물 밖으로 나와 벼 이삭이나 풀씨도 즐겨 먹습니다.





◆동짓날 시절음식(時節飮食).
동짓날에는 동지팥죽 또는 동지두죽(冬至豆粥), 동지시식(冬至時食)이라 하여 동지팥죽을 끓여 먹는 것이, 고려(高麗) 때 이후에 우리나라에 내려오는 오랜 관습(慣習)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동짓날 팥죽을 쑤게 된 유래(由來)는,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중국 문헌(文獻)인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중국 육조(六朝)시대의 형초, 곧 지금의 후베이(湖北), 후난(湖南) 지방의 행사와 풍속 등을 기록한 책)에서 인용(引用)한 동지팥죽에 대한 유래(由來)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중국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의 기록에 의하면 옛날 중국 요순시대에 살았던 공공씨(共工氏)의 망나니 아들이 어려서부터 붉은 팥을 무서워했다고 합니다. 그 아이가 동짓날에 죽어 전염병을 옮기는 역신(疫神)이 되었는데, 그 아들이 평상시에 붉은 팥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역신(疫神)을 쫓기 위하여 동짓날 붉은 팥죽을 쑤어 악귀(惡鬼)를 쫓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동짓날 팥죽은 팥을 푹 삶고 고아서 죽을 만들고 여기에 찹쌀로 단자(團子=찹쌀가루로 빚어 만든 둥근 떡, 즉 팥죽에 넣는 새알심)를 빚어 넣어 끓이는데, 단자(團子)는 새알만 한 크기로 빚기 때문에 ‘새알심’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팥죽을 다 끓이면 먼저 사당(祠堂)에 올려 동지고사(冬至告祀)를 지내고, 각 방(房)과 장독, 집의 문 안팎과 담장, 집안의 고목 둥치와 헛간 등 집안의 여러 곳에 뿌려서 귀신(鬼神)을 쫓았습니다. 이렇게 집안 여러 곳의 귀신을 쫓아 버린 다음에 가족(家族)들이 모여서 먹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또한 사당(祠堂)에 올리는 것은 천신(薦新=철을 따라 새로 난 과실이나 농산물을 신에게 먼저 올림) 의 뜻이 있고 집안 곳곳에 놓는 것은 축귀(逐鬼=잡귀를 쫓음)의 뜻이 있습니다. 이렇게 하므로 해서 집 안에 있는 모든 악귀(惡鬼)를 모두 쫓아낸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동짓날에 즐겨 먹는 팥죽은 시절음식(時節飮食)의 하나이면서 신앙적(信仰的)인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또 시절음식(時節飮食)인 팥죽은 팥의 붉은색이 양색(陽色)이므로 음귀(陰鬼)를 쫓는 데 효과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처럼 붉은 팥은 옛날부터 벽사(辟邪=요사스러운 귀신을 물리침)의 힘이 있는 것으로 믿어 모든 잡귀(雜鬼)를 쫓는 데 이용했습니다. 설날의 떡국과 같이 동지팥죽을 먹으면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고 했으며 이것을 ‘동지첨치(冬至添齒)’라 했으며, 이 아름다운 풍습(風習)은 오늘날까지 전해져오고 있습니다.
동짓날에 팥죽을 쑤어 사람이 드나드는 대문이나 문 근처의 벽에 뿌리는 것 역시 악귀(惡鬼)를 쫓는 축귀(逐鬼)이자 주술(呪術=초자연적인 존재의 힘을 빌려 재앙을 물러가게 하거나 앞으로 다가올 일을 점치는 행위) 행위의 일종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동짓날이라도 동지(冬至)가 음력(陰曆) 11월 10일 안에 들면 애동지라 하여 팥죽을 먹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는 아이 귀신(鬼神)을 물리치는 팥죽의 위력(威力)이 집안의 아이한테도 미쳐 좋지 않은 일이 있을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 그 집안에 전염병(傳染病)으로 사망한 사람이 있어도 팥죽을 쑤어먹지 않는다고 합니다.
경기도(京畿道) 지역에서는 사당(祠堂)에 팥죽을 올려 차례를 지낸 다음 방, 마루, 장독대 등에 한 그릇씩 놓아둔 후, 집안 식구들이 둘러앉아 먹는다고 합니다. 경상도(慶尙道) 지역에서는 동지(冬至)에 팥죽을 쑤어 소나무 가지에 묻혀서 집안 대문을 비롯하여 담벼락이나 마당에도 뿌리며 마을 입구(入口)에서 있는 큰 고목(古木)에도 뿌려 잡귀(雜鬼)들의 동네 침입(侵入)을 막았다고 합니다. 강원도(江原道) 지역에서는 팥죽의 새알심으로 찹쌀이나 수수쌀로 만든 ‘새알심’을 넣어 나이 수대로 먹는다고 합니다. 또 일꾼들은 이날 팥죽 아홉 그릇을 먹고 나무 아홉 집을 져야 한다고 하는 재미있는 속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날씨가 더워서 팥죽이 쉬면 이듬해 농사(農事)가 풍년(豊年)이 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충청남도(忠淸南道) 연기(燕岐)에서는 동짓날 동지불공(冬至佛供)을 드리러 절에 다녀오며, 집에서 팥죽을 쑤어먹는다고 합니다. 또 애동지에는 팥시루떡을 빚어서 먹고, 노동지(老冬至)에는 팥죽을 쑤어서 먹습니다. 그리고 중동지(中冬至) 때에는 팥떡이나 팥죽 중 하나를 선택해서 먹습니다. 전염병(傳染病)이 유행(流行)할 때 우물에 팥을 넣으면 물이 맑아지고 질병(疾病)이 없어진다고 하며, 사람이 죽으면 팥죽을 쑤어 상가(喪家)에 보내는 관습(慣習)이 있습니다. 이것은 상가(喪家)에서 악귀(惡鬼)를 쫓기 위한 것입니다. 팥죽은 동지(冬至)에만 쑤어먹는 것이 아니고 이웃이 상(喪)을 당하였을 때 팥죽을 쑤어 부조(扶助)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조상(祖上)들은 경사(慶事)스러운 일이나 재앙(災殃)이 있을 때는 팥죽, 팥밥, 팥떡을 빚어서 먹는 풍습(風習)이 있습니다. 요즘도 이러한 풍습(風習)이 이어져 고사(告祀)를 지낼 때는 팥떡을 해서 고사(告祀)를 지고 있습니다. 고사(告祀)의 목적은 사업(事業)하는 사람은 사업(事業)이 번창(繁昌)하기를 기원(祈願)하고, 공사(工事)를 하는 사람은 공사(工事)가 아무런 사고 없이 완공되기를 기원(祈願)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팥이 들어가는 음식(飮食)은 소원(所願)을 이루어 준다고 믿었지만, 그 사실 여부를 떠나 팥이 지닌 여러 가지 효능으로 보아 건강식품(健康食品)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팥은 피부가 붉게 붓고 열이 나고 쑤시고 아픈 단독에 특효가 있으며, 산모(産母)에게는 젖을 잘 나오게 하고 설사, 해열(解熱), 유종(乳腫), 각기병(脚氣病), 종기(腫氣), 임질(淋疾), 산전(産前) 산후통(産後痛), 수종(水腫), 진통(鎭痛)에도 효과가 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무형유산(無形遺産) 정책(政策)이 전문(專門) 기능(技能)과 예능(藝能)을 보유(保有)한 전승자(傳承者) 중심(中心)에서 온 국민(國民)이 함께 전승(傳承)해 온 공동체(共同體)의 생활관습(生活慣習)으로 확대됨에 따라, 2023년 가족(家族)과 지역 공동체(共同體)의 생활관습(生活慣習)으로 향유(享有), 전승(傳承) 되어온 24절기인 동지(冬至)는 명절(名節)처럼 2023년 국가 무형유산(國家無形遺産)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동지(冬至) 풍속(風俗)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조선(朝鮮) 후기(後期)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아들 정학유(丁學游)가 지은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중 ‘11월령(月令=음력이므로 대체로 양력 12월 무렵에 해당)’에 동지(冬至) 절기(節氣)에 대한 당시 농촌(農村) 풍습(風習)이 전하고 있습니다. ☻. 자료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다음 백과, 한국 세시풍속 사전.











동지(冬至)는 일 년 밤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로, 매년 12월 22일경 찾아오는 절기(節氣)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태양(太陽)의 부활(復活)을 뜻하는 ‘작은 설로’ 대접(待接)해 왔습니다. 예로부터 농가(農家)에서는 붉은색이 잡귀(雜鬼)를 쫓는다는 믿음에 따라 팥죽을 쑤어 먹고 집안 곳곳에 뿌리며 액운(厄運)을 막는 풍습(風習)을 지켰습니다. 또한 이날 날씨가 추워야 이듬해 풍년(豊年)이 들고 호랑이가 장가가는 날이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동지(冬至)가 지나면 낮이 노루 꼬리만큼 길어진다는’ 말처럼 동지(冬至)는 추운 겨울의 한복판에서 따뜻한 봄의 기운이 시작됨을 알리는 소중한 절기(節氣)입니다.
벌써 2025년도 동지(冬至)인 오늘이 지나면 9일밖에 남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니 성탄절도 바로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성탄절을 지나고 며칠 더 보내면 다사다난 했던 올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하는 연말입니다. 조용히 올 한 해를 뒤돌아보면서 보람된 일과 아쉬운 일을 다시 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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