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산행 기행문

남해 설흘산, 응봉산.

풀꽃사랑s 2016. 10. 3. 19:48


오는 봄을 시샘이라도 하려는 것일까!
매서운 꽃샘 추위와 함께 강원도 산간 오지에는 많은 양의 춘설이 내리며 오는 봄을 주춤하게 한다.
그러나 따듯한 봄볕이 살포시 내려 앉은 남녘의 산비탈에는 겨울을 난 나뭇가지에 조롱조롱 매달려 있는
겨울눈들이 잠을 깬다.
이제 막 연분홍 꽃망울을 터뜨리며 흐드러지게 피기 시작하는 진달래가 보고 싶어 남해로 길을 나선다.
설흘산 탐방은 마을의 위쪽 응봉산 서편 산자락 아래에 있는 수령이 350년이 넘은 팽나무가 서있는 곳에서 시작한다.
불어오는 해풍과 모진 비바람을 견디며 마을 사람들과 함께 동고동락을 같이 해온
팽나무는 마을의 보호수로 지정되어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오솔길을 연상시키는 능선을 따라 올라서면 바위 틈새에 토굴처럼 보이는 작은 동굴 입구가 신비함을 자아낸다.
산행은 언제나 언덕 오름으로 시작한다. 넓은 너럭바위처럼 보이는 바위 전망대에 올라선다.
발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평평한 구릉으로 이루어진 남도의 붉은황토 밭과 향촌, 선구리 마을이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처럼 아름답다.
해변에 빼곡하게 줄지어 서있는 해송 숲 중앙에 아담하게 자리 잡은 정자가 봄날의 운치를 더해준다.
서편에는 고둥이 모양을 닮은 바위가 우뚝 솟아 있는 고둥산 아래에는
활처럼 휘어진 사촌 해수욕장과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사촌 마을이 어우러지며 진경산수화를 빚어 놓았다.
얼굴을 스치는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조그마한 바위들이 돌무더기처럼 늘려 있는 숲길을 지난다.
이제 막  피기시작하는 진달래 꽃송이와 입맞춤을 하며 서서히 높이를 더하는 숲과
바위 길을 번갈아 올라서면
양편이 거의 직 벽인 험준한 바위벼랑으로 된 능선 길이다. 아래쪽을 내려다보면 등골이
오싹하고 간담이 서늘해진다.
저 멀리 살짝 응봉산 정상이 교태(嬌態)부리는 여인 내 마냥 얼굴을 내민다.

구름조차 없는 하늘에서는 밝은 햇살이 비취색의 푸른 바다 위에 부서져 내린다.
찰랑찰랑 물결조차 일렁이지 않는 봄 바다에는 은빛의 별들이 사뿐이 내려앉았다.
북쪽으로 눈을 돌리면 높고 낮은 산 능선이 성벽처럼 길게 동서로 길게 누워 있다.
그 아래쪽에 이리저리 꾸불꾸불 하게 휘어진 논두렁을 따라 계단식으로 논배미들이 놓여 있다.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이 낯설지가 않다. 유년시절 고향의 들녘을 보는 듯하다.
산 중턱에는 섬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울창한 편백나무 숲이 푸름을 더해준다.
가파른 바위 절벽 사이로 수줍은 듯이 이제 막 진달래의 꽃망울이 터지고 있다.
세차게 몰아치는 차가운 해풍을 바로 맞은 핑크색의 꽃 망울에 시퍼런 멍이 들어 있는 것을 본다.
그러고 보니 벌써 꽃이 핀 진달래들도 예년에 비해 싱싱함과 생기가 없어 보인다.
이상 고온 현상과 변화무쌍한 봄 날씨가 자연 속의 생태계를, 혼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게 했나 보다.
이로 인하여 꽃들이 심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다. 유난히도 굴곡이 심한 내 인생처럼 능선
또한 오르내림이 심하다.

응봉산 정상으로 올라서는 능선은 급경사로 이루어 져 있으나 다행스럽게도 암벽을 이루는 벼랑은 없다.
이마에 땀이 흘러내릴 정도로 힘겹게 정상에 올라서면 아담하게 쌓아 놓은 돌탑이 서있다.
주로 섬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돌탑은 깊은 산 중에서도 종종 보게 되는데 볼 때마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한쪽에서 막걸리를 팔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시원한 막걸리 한잔 하고 싶지만
평소에도 소주한잔에 얼굴이 선홍색으로 붉어지는 체질이다.
바로 건너편에 커다란 바위 봉 뒤편으로 설흘산 정상이 모습을 드러낸다.
약간 가파른 능선을 내려서면 잘록한 안부로 이루어진 능선 삼거리 갈림이다.
양지바른 쪽에 항상 가슴속에 품고 있는 첫사랑 여인의 볼처럼 화사한 연분홍 진달래가 가슴을 설레게 한다.
부드러운 흙을 밟으며 10분 정도 더 내려서면 널찍한  헬기장이다.
이곳은 신록이 싱싱함을 더하는 유월이면 보라색의 엉겅퀴 꽃이 많이 핀다.
연두색의 파릇파릇한 새싹이 돋아나기 시작하는 나무 숲 길을 마지막 힘을 다해 발품을 부지런히 팔며
설흘산 정상에 올라선다.
바로 인접한 거리에 남해군 남면 홍현리의 망산이 내륙 깊숙이 들어온 앵강만을 마주 보고 있다.
건너편에는 보리 암을 품고 있는 금산이 터줏대감처럼 아담하게 앉아 있다.
남쪽으로 바다 건너 여수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향일 암으로 유명한 돌산도가 손을 뻗으면 잡힐 듯한 거리에 길게 놓여 있다.

사면팔방이 탁 트여서 주위를 넓게 관측 할 수 있고 남해 바다를 통해 오는 왜구의
동태(動態)를 쉽게 파악하고자
선조들은 이곳에 봉수대를 세워 놓았다. 자연 암반을 기단으로 둘레25m, 높이6m, 폭7m 높이로
돌을 차곡차곡 쌓아서 올렸다.
중앙에는 지름2m의 움푹한 홈을 만들어 봉수 불을 피울 수 있게 했다.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봉수대는 무너져 버렸지만 둘레와 중앙에 기둥처럼 보이는 일부분만은
지금도 흔적으로 남아 있다.
한려수도와 앵강만, 남쪽으로 망망대해가 한눈에 들어오는 설흘산 봉수대 일출은 거친 바닷물이 출렁이는
동해안 못지않게 장관이다.
아직까지는 많은 사람들에 널리 알려지지 않아서 이곳을 아는 사람들만 은밀하게 찾는 일출명소이다.
정상에서 남쪽으로 3-4분쯤 능선을 따라서 내려서면 시원한 바다를 내려다 볼 수 있게
자연이 빚어 놓은 널찍한 너럭바위 전망대에 올라서게 된다.
바로 맞은편에 삿갓을 닮았다고 하여 삿갓섬 혹은 노(櫓)처럼 생겨서 노도라 이름 붙여진 작은 섬
하나가 눈인사를 건넨다.
이 섬은 조선 숙종 때 국문소설인 구운몽의 저자 서포 김만중의 마지막 유배지이다.
서포는 이곳에서 저 유명한 사씨남정기와 서포만필을 지었다.
그때 당시 서로 정치적인 이권을 놓고 당쟁을 일삼았듯이
오늘날 국회 안에서 서로 몸싸움을 벌이는 정치인들의 모양새 또한 그와 별반 다르지 않다.

비록 나라에 중죄를 지은 죄인이라고 하나 그들이 유배를 살았던 곳은
하나 같이 자연 경관이 수려한 바닷가 외진 섬이 대부분이다.
이것은 아마도 조용한 곳에서 복잡한 머리도 식힐 겸 더럽혀진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 버리라는
선조들의 숨은 지혜를 생각하게 한다.
아이러니 하게도 오늘날 그 유배지들은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관광 명소가 되었다.
저 멀리 여수만 건너편의 해안지역과 한려수도의 아기자기한 작은 섬들이
검은 실루엣으로 살며시 얼굴을 내밀며 나그네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해준다.

전망대에서 가천 다랭이 마을로 내려서는 급경사로 된 능선 길은 잡목이 울창하게 원시림의 숲을 이루고 있다.
크고 작은 바위들이 널려 있는 너들 지대를 지나 임도 길에 서면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남해도는 곡선의 섬이다. 섬에서 직선은 드물다. 육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네모반듯한 논은 되레 식상하다.
평지가 부족한 남도의 섬답게 언덕에 기대 층층 계단을 이루고 있는 다랭이 논과 밭이 들어앉았다.
산비탈을 깎아 작은 돌을 쌓아 올려 논두렁을 만든 이런 논을 다른 말로 ‘삿갓논’ 혹은 ‘삿갓배미’라고도 부른다.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배기에 마을이 들어 앉아 있는 전경은 신비스럽고 평화스럽게 보인다.
최근에는 다랭이 마을이 영화 ‘맨발의 기봉이’ 촬영지로 더 알려지며
남해 관광지로 꼭 빼 놓을 수 없는 곳으로 자리 매김 되었다.  
마을 어귀에 세워져 있는 ‘암수바위는’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은 반드시 보고 간다.
경남 민속자료 13호인 암수바위를 마을 주민들은 ‘미륵불이’라 부른다. 이돌은 원래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던 선돌이었다.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비는 장소로 널리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 오고 있다.
높이 5.8m의 수바위는 남근을 상징하고, 높이가 3.9m인 암바위는 잉태한 여인의 배부른 형상을 닮았다.
이 바위의 유래를 살펴보면 아주 재미있다.
『영조 27년(1751년) 이 고을의 조광진 현감의 꿈에 어떤 노인이 나타나
‘내가 가천에 묻혀 있는데 그 위를 소와 말들이 지나다녀 견디기 어려우니
나를 파내어 일으켜 주면 좋은 일이 있을 것입니다’ 하더라는 것이다.
현감은 꿈에 노인이 지적한 가천의 현장에서 현재의 암수바위를 파내어 세워놓고
논 다섯 마지기를 제수 답으로 내주었다. 그래서 매년 이 바위를 발견한 음력 10월23일에 제사를
지내오고 있다.』

해안가 산책로를 따라서 내려서면 눈이 시리도록 파란색의 바닷물이 유혹의 눈길을 보낸다.
금방이라도 물에 풍덩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초록색의 싱그러운 마늘 밭과 노란 유채꽃 그리고 바닷물이 한데 어우러지는 진풍경은
이곳을 찾은 나그네의 마음을 황홀함에 빠져들게 한다.
논두렁 한쪽 모퉁이에 노란색의 꽃을 피운 민들레가 산뜻한 봄 맛을 느끼게 한다.
눈앞에 끝없이 펼쳐지는 붐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꼭 선경(仙境)의 세계에 서 있는 기분을 들게 한다.

경남 남해에는 진작부터 널리 알려진 금산 말고도 아름답고 좋은 산들이 많다.
그 가운데 하나가 남해군 남면 바닷가에 있는 설흘산이다.
이산은 땅 위에 있는 산이 아니다. 자연이 바다 위에 빚어 놓은 아름다운 그림이다.
설흘산이 아름다운 것은 주 능선이 아기자기한 바위로 되어 있고,
그 양편이 거의 직 벽인 바위 벼랑을 이루고 있으면서 푸른 바다와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다.
바위로 된 산등성이를 오르내리며 푸른 바다를 조망하는 멋은 모든 사람들이 좋아한다.
특히 내륙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가슴을 설레게 하는 풍경이다.
바위투성이의 산등성이지만 위험하거나 어려운 곳이 없다는 것이 이산이 지니고 있는 또 하나의 장점이다.

갯벌과 조수간만의 차가 심한 서해와는 달리
동해와 남해바다는 눈이 시릴 정도로 깨끗함을 유지하고 있다.
흔히들 남해를 보물섬이라 부른다.
그만큼 이곳에는 푸른 바다와 어우러지며 수려한 산세를 품고 있는 산들도 많지만
차근차근 찾아보면 곳곳에 아름다운 명소가 숨어 있다.
1973년 개통된 남해대교는 임진왜란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이 시작된 곳이자 남해의 역사가 묻어 있다.
남해도(南海島)는 지금은 다리가 놓이면서 섬이 아닌 육지이지만 종전에는 하나의 커다란 섬이었다.
산행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2003년 한려해상 국립공원에 있는 정선도와 삼천포 사이 3개의 섬을
잇는 5개의 다리를 차례로 지나 왔다.
30년 만에 새롭게 놓여진 이 다리들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해상국도 3호선이다.
커다란 강폭처럼 좁은 지족해협을 가로 질러 놓여 있는 창선교 아래에는
바닷물 위에 움막집처럼 보이는 죽방렴이 이색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좁은(손)바다 길이라 하여 손도라 불리는 26동의 원시어업 죽방렴은 V자 모양의 대나무 정치망이다.
길이 10m 정도의 참나무 말목300여 개를 물살이 빠르고 수심이 얕은 갯벌에 박고,
주렴처럼 엮어서 만든 그물을 물살 반대방향으로 벌려 놓은 원시 어장이다.
물이 맑고 물살이 빠르기 때문에 이곳에서 생산되는 멸치, 개불, 미역 등의 수산물은 담백하고
쫄깃하여 인기가 높다.
남해 섬과 육지를 이어주는 종전의 남해대교와 최근에 놓여진 5개의 다리는
죽방렴과 함께 남해를 대표하는 관광명소로 새롭게 부각 되고 있다.

바야흐로 상춘의 계절이다.
이제는 어디를 가나 꽃 세상이다. 이를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반짝 기승을 부렸지만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다.
매화를 전령으로 한 봄은 4월로 접어들면서 세력 확장 중이다. 주력부대는 벚나무 그리고 개나리, 산수유,
진달래가 뒤를 받친다.
남녘은 이미 화사한 봄꽃이 현란한 향연을 펼친다. 그 빈틈세로 야생화들도 수줍은 듯이 얼굴을 내밀었다.
짙푸른 봄 바다, 드넓은 청 보리밭, 연두색의 새싹과 초록 신록들이 한데 어우러지는
봄 풍경은 자연을 좋아하는 내가 빨려들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남해의 해안 도로를 따라 눈앞에 펼쳐지는 망망대해 풍경들은 답답한 가슴을 시원스럽게 풀어준다.
산 한 굽이 넘어설 때 마다 옹기종기 평화로 와 보이는 마을 전경은 제각각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갯바위에 파도가 부딪쳐 부서지며 하얀 포말을 만들고 은빛의 고운 모래사장 ,
푸른 파도가 일렁이는 해안선을 따라서 붉은 동백이 흐드러졌다. 섬 산행은 지루하지 않았으며 둘러보면
볼수록 재미가
쏠쏠하다.
봄이 무르익어가는 남해에서 길이 남을 소중한 추억을 가슴속 깊숙이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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