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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천 기룡산 묘각사 낙대봉.

풀꽃사랑s 2016. 10. 3. 23:04


다른 어느 해 보다 올 가을은 유난히도 우여 곡절이 많은 가을이 될 것 만 같다.
예년에는 찾아 볼 수 없는 심한 가을 가뭄이 계속 이어지고 있고
해외에서 시작된 국제 금융위기가 우리라고 비켜가지 앉고 엄습하여 왔다.
그 무서운 소용돌이 속에서도 가을은 어김 없이 찾아 왔다.
이른봄 파릇한 새싹이 돋아나서 무더운 여름날 싱싱한 푸른 잎을 자랑하던 애기 단풍과
잎이 넓은 활엽수 나무들이 한창 아름다움을 뽐내는 늦가을 이다.
하지만 아름다워야 할 단풍잎은 심한 가뭄으로 인하여서 저 절로 말라 버리면서
한줌의 낙엽이 되어서 그 생을 마감한다.
참으로 오랜 만에 메마른 대지를 촉촉히 적셔주는 반가운 단비가 내린다.
촉촉히 내리는 비를 맞으면서 단풍 산행을 떠나 본다.

노란색으로 곱게 물던 은행나무 잎 과 선홍색의 붉은 단풍잎이 스산하게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영천임고,
초등학교 교정은 언제 보아도 좋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작년 이맘때 찾았을 때는 길게 가지를 아래로 축 늘어지게 서있는 은행나무와
단풍나무 숲이 정말로 보기 좋았는데 그렇게 많던 나뭇가지를 모두 잘라 버려서 아름다움이 반으로 줄어 버렸다.
그 아쉬움을 영천 임고서원 앞에 서있는 수령이 500년이 넘은 은행나무를 보면서 달래본다.
고목나무에서 은은하게 풍기는 고고한 자태와 멋은 깊어가는 상큼한 가을 맛을 자아낸다.
뭇 여인의 긴 머리카락 인양 땅을 향하여 길게 내려진 수 많은 잔 가지에 노랗게 물던
단풍잎이 소박한 아름다움을 선물한다.
흔히들 붉은색이 정열과 희열을 느끼게 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노랗게 물던 은행나무와
들국화 와 국화 그리고 감국 과 겹황매화 와 개나리 등에서도 이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곤
한다. 특히 산행 들 머리에서 본 자양초등학교와 우체국 앞에 붉은 꽃송이처럼 곱게 물던
애기 단풍나무 잎은 활활 타오르는 꽃불을 보는 듯하다.
나무 아래에 소복이 쌓여있는 은행나뭇잎에서 이제 겨울 문턱으로 들어서는 늦가을의
풍취를 조용히 음미하면서 즐겨본다.

울창한 송림 숲길을 따라서 북쪽으로 올라서면 바위 전망대이다.
구슬프게 내리는 가는 빗줄기는 산행 길에 오른 길손의 마음을 더욱 찹찹하게 한다.
남쪽에 있는 영천댐의 푸른 물위로 하얀 물안개가 피어 오른다.
벌써 산 능선에는 나무들이 그 많던 낙엽을 모두 떨구어 버린 채 앙상하게 알몸을 하고 있는 나뭇가지에서
벌써 소리 없이 오고 있는 겨울을 느낀다.
새콤한 낙엽냄새는 감미로운 향수보다 향이 더 진하고 좋다.
바스락 바스락 발아래서 들려오는 낙엽이 부서지는 소리가 고요한 산속의 적막을 깨트린다.
짙게 내리는 운무와 안개비로 인해서 마땅히 보여야 할 풍경을 볼 수가 없다.
부더러 운 감촉이 느껴지는 오름으로 이어지는 산 능선을 따라서 꼬깔산 정상을 지나
단숨에 기룡산 정상까지 발걸음을 분주히 옮긴다.
싸늘하게 불어오는 바람은 유난히도 가을이면 심한 우울증을 앓곤 하는 길손의 가슴을 더욱 쓰라리게 한다.
기룡산 정상에서 남쪽으로 800m정도 내려서면 산 중턱에
천년 고찰 기룡산 묘각사가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다.
이 묘각사는 1300여 년 전 신라선덕여왕 당시 의상조사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절의 대웅전 앞에 서니 신기하게도 꾸준하게 내리던 가을비가 서서히 그친다.
때 맞추어 주위가 훤하게 밝아 지면서 환상적인 풍경을 선물한다.
대웅전 북쪽에 있는 산신각에서 낮은 구릉을 따라 울창한 송림 숲이 정원수(庭園樹)처럼
연두색의 푸르름을 더한다.
절간의 장독대가 옹기 종기 모여 있는 아래에는 붉은 색으로 곱게 물던 벚꽃나무 단풍이
가을비를 맞으면서 산사를 찾은 길손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동쪽에 꼬깔산이, 서쪽에는 낙대봉이, 북쪽으로 기룡산이 하늘 금을 그리고
남쪽으로 탁 트이면서 둥근 유선형의 산 능선이 마치 소쿠리처럼 아늑하게 휘감아서 돌아 나간다.
사방으로 겹겹이 누워있는 능선들이 숨 고르기를 하고
그 위로 이제 막 절정에 이르고 있는 붉은 갈색의 단풍들이 마치 어린아이의 색동저고리처럼 눈이 부신다.
이렇게 숨어있는 비경을 보여 주려고 오전부터 짙은 운무가 모든 것을 감추어 버렸나 보다.
이곳에 이런 아름다움이 숨어 있을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 현실이 되어서 보여진다.
눈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니 내가 마치 선경의 세계에 서있는 기분이 든다.

아 부끄럽다!
바로 앞에 숨어 있는 보석 같은 보물을 두고 어찌하여서 그 동안 멀리서만 모든 것을 찾으려고 했던가!
대구에서 가깝다고 멀리하고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이 영천에 이런 멋진 진주가
숨어 있다는 것에 새삼 놀라게 된다.
묘각사 절에서 남으로 임도 길을 따라서 용화리 마을로 하산 길을 재촉한다.
마지막 남은 모든 것을 붉게 불태우려고 하는가 계곡에서 만나는 애기 단풍은 곱고 곱다.
울창한 숲 속에는 노란색으로 곱게 물던 활엽수 단풍이 또 다른 아름다움을 선물한다.
용화리 마을을 지척에 두고 여기까지 와서
운암지를 보지 않고서 가면 후회가 막심 할 것 같아 혼자서 운곡지 제방에 올라선다.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저수지 물 위에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이 잔잔한 물결을 일으킨다.
성곽처럼 줄지어 서있는 준엄한 산 봉우리들이 저수지를 둥글게 원을 그리면서 서있다.
서있는 모양이 꼭 메산자(山)처럼 보인다.
맑은 물위에 오색찬란한 가을 그림자가 비취면서 그림 같은 절경을 보여준다.
구비구비 깊은 골짜기 마다 갈색의 단풍이 절경을 펼친다.
붉은 갈색의 단풍에 노랗게 물던 은행잎 푸른 송림 숲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운암지의 가을은 깊어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