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부실 정도로 은빛을 발산하는 바위를 품고 있는 산. 이러한 산들은 수려한 산세와 절경을 이루고 있는 계곡을 함께 갖추고 있다. 보통 보면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산들이 바위의 절리가 크고 시원스러워 아름답게 보인다. 여기에는 해금강으로 유명하게 알려진 설악산을 비롯하여 그 숫자조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산들이 있다. 그러나 강원도 삼악산, 팔봉산, 용문산 용조봉 같이 화강암이 아닌 산들도 있다. 이런 산들은 바위의 절리가 독특하고 직선적이며 규모는 화강암 산에 비해 작고 세밀하다. 그리고 비교적 큰 단애와 오밀조밀한 바위 경관을 만들어 놓는다. 이번 산행 길은 미끈한 화강암이 아닌 일반 바위산의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는 용문산 용조봉이다. 꽃피고 신록이 싱그러움을 더해주는 봄이 절정을 이루던 계절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날씨는 지루한 장마철로 접어들고 있다. 이른 봄부터 심각할 정도로 가뭄이 심하더니 이제는 마시는 수돗물까지 모자라게 할 지경에 이르렀다. 모처럼 대구에 목마른 대지를 촉촉이 적셔주는 여름비가 흠뻑 내렸다. 하늘에서는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듯이 짙은 먹구름이 뒤덮고 있다. 매일 접하는 회색빌딩숲을 떠나 산천이 푸르게 곱게 물던 대자연을 찾아서 떠나는 길은 언제나 마음 설렘으로 다가온다. 어디론가 훌쩍 떠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한결 여유롭다. 천리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온 애마가 어느새 한양 땅에 들어선다. 남쪽은 벌써 초여름을 방불케 하지만 봄이 늦은 중부 이북지방인 서울, 경기도는 강원도 오지처럼 이제 봄이 절정을 넘어선다. 전번 주 산행을 하며 북한강 상류에 있는 소양호와 파라호에 물이 적어서 속살을 훤하게 드러내는 것을 보고 왔다. 그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으로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의 생명수이자 젖줄인 팔당호에는 맑은 물이 철철 넘친다. 깊이조차 알 수 없는 초록색의 푸른 물이 그득하게 담겨있는 호수는 물결이 일렁이지 않는 내륙 속의 잔잔한 바다를 보는 기분이다. 높이가 야트막한 야산 기슭에 흐드러지게 핀 밤꽃이 그윽한 꽃 향기를 뿜어낸다. 몇 년 전 한북, 한남정맥 산행을 하며 일년이 넘게 수도권을 오르내리며 야산에 심어진 많은 밤나무를 보며 마음속에 깊은 인상을 남겨 주었던 아련한 옛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산 아래서 보면 서쪽에 우뚝 솟아 있는 용문봉 옆쪽에 북쪽으로 용조봉 능선이 얼굴을 드러낸다. 그냥 얼핏 보면 평범한 동네의 뒷동산으로 보인다. 용조봉 탐방은 종합주차장에서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서며 시작한다. 이곳 역시 전원주택과 펜션이 계곡 옆에 을씨년스럽게 자리 잡고 있다. 아담하게 조성하여 놓은 정원에서 높은 산에서나 볼 수 있는 하늘나리를 닮은 백합이 고운 자태를 자랑한다. 옆에는 어미 닭이 따듯하게 품고 있는 알에서 막 깨어난 귀여운 노란 병아리 같은 달맞이 꽃이 먼 길을 온 나그네를 반긴다. 용문산 건강원에서 우측으로 아스팔트 길 모퉁이에서 환하게 미소 짓는 루드베키아 꽃송이를 보며 올라서면 전원주택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돌담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면 푸른 갈대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폭이 꽤 넓은 개울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수레길이 이어진다. 정면에 보이는 징검 다리가 놓여 있는 계류를 건너면 중원산과 불선사로 올라가는 길이다. 징금 다리를 건너지 말고 청수가 시원스럽게 흘러가는 상류 쪽에 보면 파릇한 풀과 개망초가 울창하게 자라고 있는 작은 공터가 있다. 그 앞을 지나면 조계골과 용계골의 물이 서로 만나 몸을 섞는 계류 합수점이다. 넓은 개울을 가로질러 건축용 철제로 된 커다란 구멍이 숭숭 뚫린 철제다리가 놓여 있다. 다리를 건너서면 좌측에 조계골집 식당이 자리하고 있고 우측에는 개인이 운영하는 농장이다. 전기철책까지 설치해 놓았으므로 어떠한 일이 있어도 농장으로 내려서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산 능선을 따라 5분 정도 올라서면 용조봉과 중원산 이정표가 서 있다. 처음 찾는 사람들은 두 갈래길이 모두 중원산으로 올라서는 길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엄연히 또렷하게 구분이 된다. 점점 높이를 더하는 가파른 언덕길에 올라서면 현대식 건물에 연등이 조롱조롱 매달려 있는 미륵전이다. 스님의 독경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미륵전 우측으로 능선 길을 따라 올라선다. 언덕 공터에는 여름산의 귀족이라 불리는 참나리가 우화한 자태를 하고서 눈인사를 건넨다. 재래종 소나무와 참나무 종류의 잡목이 한데 섞여서 울창한 숲을 이루며 시원한 그늘을 내려주지만 어제 내린 비로 인하여 습도가 높아서일까! 초입부터 후덥지근하며 이마에서는 땀이 물 흐르듯이 흘러내린다. 오늘따라 평소에 흔하게 불어오던 바람조차 없다. 솔잎이 푹신하게 깔려있는 부드러운 흙 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서서히 바위 봉우리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제부터는 높고 낮은 바위 봉우리를 연속적으로 오르고 내리며 세미클라밍을 해야 한다. 표면이 미끄러운 화강암과는 달리 손으로 잡을 수 있는 홀더와 발을 올려 놓을만한 곳이 있어서 올라서기가 한결 쉽다. 단아한 단애로 이루어진 봉우리와 산길 옆에 서있는 거대한 노송들이 바위와 어우러지는 풍경이 눈길을 끈다. 아무리 거대한 암벽이 앞을 가로 막아서도 천천히 오르면 어렵지 않으며 불가능한 곳은 우회로가 잘 나있어서 초보자도 쉽게 오를 수 있다. 거칠고 험준하기가 짝이 없는 비좁은 바위 틈새에 노란색 꽃송이가 탐스러운 돌양지 꽃이 산행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 준다. 솔잎이 어지럽게 쌓여 있는 바위 한쪽 모퉁이에 바위채송화가 소박한 꽃을 피웠다. 바로 앞에는 여러 방향으로 가지를 쭉쭉 뻗어 내린 소나무 한 그루가 멋진 몸매를 자랑하며 위풍당당하게 서있다. 거대한 나뭇가지에서는 세월의 흐름이 느껴진다. 소나무를 뒤로 하고 기암괴석의 바위를 본다. 바위의 모양이 꼭 한 마리의 새가 둥지 속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듯하다. 너럭바위로 올라서니 누가 쌓았는지 자그마한 돌탑이 여러 개 놓여 있다. 사면팔방이 탁 트인 이곳을 처음에는 용조봉이라 생각했다. 내려다보고 올려다보는 전망이 탁월한 이곳은 용조봉 전망대라 하여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멀리 남쪽으로 눈길을 주니 우화한 여성미를 품고 있는 크고 작은 산봉우리들이 서로 자웅을 겨루며 옹기종기 모여 있다. 그 풍경이 마치 남해바다 위에 점점이 뿌려져 있는 다도해 섬을 연상케 한다. 남서쪽에 오롯하게 우뚝 솟아 있는 밋밋한 봉우리는 주읍산이다. 중앙에 길게 움푹 분지처럼 형성된 평평한 구릉지에는 맑은 물과 푸른 산 빛을 닮은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이루며 살고 있다. 쌀을 주식으로 하여 살아야 하기에 국토 어디를 가도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논이다. 모내기를 끝마친 논들이 푸름을 더해간다. 앞쪽에는 용문사 주차장과 옛날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기와집으로 된 한옥들이 하나의 마을을 이루고 있다. 바로 눈앞에 용문봉과 문례봉에서 이어지는 산줄기가 동쪽에 있는 중원산으로 높은 성곽처럼 휘감아 돌아나간다. 용문봉 너머로 삼각형의 피라미드처럼 보이는 곳은 용문산의 미봉인 백운봉이다. 앞쪽에는 장군봉이 살짝 얼굴을 보여준다. 동쪽과 서쪽은 깎아지를 듯한 가파른 바위 절벽과 산비탈이 높은 단애와 깊은 협곡을 이루며 조계골과 용계골을 빚어 놓았다. 계곡과 산 능선을 빼곡하게 가득 메운 짙푸른 녹음이 싱그럽고 멋진 선경(仙境)의 세계를 펼친다. 양쪽 계곡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소리는 울창한 원시림의 숲 속에서 커다란 호랑이가 온 산이 떠나갈 듯 울부짖는 듯한 울음소리를 들려준다. 사계절 모두 아름다운 것이 산이라고 하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초록색의 푸른 녹음은 파릇파릇한 새싹이 돋아나는 신록의 계절 오월을 방불케 한다. 푸른 물감을 풀어 놓은 듯한 숲은 언제나 미모의 소녀를 만나는 마냥 나의 마음을 울렁이게 한다. 용문산은 용문봉에 가려서 얼굴은 보이지 않고 정상에 세워놓은 끝이 뾰족한 통신용 중계 탑 만 보인다. 북쪽에 솟아 있는 문례봉 아래쪽에 있는 초록색의 대평원 구릉지는 신선들만 산다는 이상향이 아닌가 싶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의 힘이 자꾸 나의 눈과 마음을 그곳에 머물게 한다. 북쪽으로 오늘 올라야 용조봉 전위봉에는 우람한 은빛의 바위 봉이 호위무사처럼 서있다. 푸른 병풍처럼 둥글게 원형을 이루며 길게 줄지어 서있는 소나무들이 장관이다. 산에서 소나무 숲을 만나면 왠지 친근감부터 먼저 든다. 그것은 아마도 나무가 주는 시각, 후각, 청각적인 자극이 나의 기분을 상쾌하게 해주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척박한 환경이 대부분인 바위 능선에서 자라는 소나무를 볼 때면 야생화를 보면서 느낄 때처럼 색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설악산 공룡능선의 축소판이라 해도 좋을 듯한 능선에 올라섰다가 내려와 다시 올라서면 용조봉 정상이다. 정상답게 커다란 바위가 중앙에 터줏대감처럼 서있다. 정상표지 석은 보이지 않고 바위벽에 글씨가 다 허물어져 가는 함석판이 썰렁하게 붙어 있다. 용조봉 정상을 지나 내려서면 아기자기한 바위능선이 끝이 나는 삼거리 안부이다. 이곳에서 동쪽으로 내려서면 용계골 계곡이다. 마음 같아서는 시원한 물을 만날 수 있는 계곡으로 내려서고 싶은 마음이 꿀떡 같다. 삼거리에서부터는 흙으로 된 육산 길이다. 부드러운 육산 이여서 방태산과 사명산처럼 대초원(大草園)과 함께 이름 모를 진귀한 야생화를 만나지 않을까 내심 기대를 많이 했다. 숲의 환경은 참나무종류와 키가 작은 철쭉나무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는 것이 방태산과 비슷하다. 그러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것이라 했던가! 겨우 보이는 것이라곤 둥글레와 잎이 옥잠화와 비슷한 일월비비추가 많이 자라고 있다. 그 외에는 가끔씩 노루발과 둥글레가 얼굴을 보여줄 뿐 다른 야생화는 볼 수가 없다. 작년 가을에 떨어진 낙엽이 아직도 썩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다. 낙엽이 정상적으로 썩어서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야 정상인데 공기 중의 대기가 오염되면서 미생물까지 자리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러니 풀 한 포기 제대로 자리지 못하는 척박한 환경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육산 이라고 하나 오히려 올라서는 능선 길은 지나온 바위 길보다 힘이 배로 든다. 녹녹하지 않은 된 비알을 숨을 헐떡이며 올라서면 해발800m미터 봉과 한강기맥으로 갈라지는 삼거리 갈림길이다. 동쪽에 있는 중원산으로 내려서는 능선 길은 높낮이가 심하지 않은 오솔길이다. 고지대라 한결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 오늘 산행을 하면서 좀처럼 만나지 못했던 산 꾼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대부분 서쪽에 있는 문례봉으로 올라선 다음 용문산이나 백운봉 쪽으로 내려서는 것을 선호하는 듯싶다. 지루하게 느껴지는 오솔길을 내려서면 용계골로 내려서는 첫 번째 갈림길이다. 이렇다 할 볼거리가 없는 능선이라 이곳에서 하산을 하려고 하다가 좀더 진행을 하기로 하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삼거리를 지나 굴곡이 심하지 않은 능선을 몇 번 올라섰다가 내려서기를 반복한다. 북쪽이 탁 트이는 미니전망대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장쾌하게 흐르는 한강기맥 줄기를 보며 휴식을 취해 본다. 늠름하고 시원스럽게 흐르는 산줄기에는 초록물결이 출렁이고 힘찬 기운이 느껴진다. 사거리안부에서 용계골 계곡으로 하산을 결정한다. 불과 700m미터만 더 올라서면 중원산 정상이다. 몰론 빠른 걸음으로 간다면 정상에 못 갈 것도 없다. 그러나 하산시간에 맞추려면 시간이 빠듯할 것 같다. 더 이상 아쉬움도 미련도 없다. 자연의 섭리와 이치에 따라 마음을 비우면 속세의 삼라만상(森羅萬象)이 대원경지(大圓鏡智)에 이르는데 무엇이 부족하여 부질없는 욕심을 부리겠는가! 용계골로 내려서는 길 또한 만만치 않은 가파른 급경사이다.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는 활엽수 잎들이 하늘을 가려서 그런가! 아직 해가 지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터널 속을 걸어가는 듯 어두컴컴하다. 너들 지대를 방불케 할 정도로 작은 바위 돌들이 여기저기 늘려있다. 습기가 많은 음지에는 여전히 독초인 관중이 무성하게 군락을 이루며 자란다. 듬성듬성 금낭화가 보이지만 꽃은 보이지 않고 잎만 무성하다. 약20분 정도 내려서면 계곡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과 만난다. 산의 골이 깊어서 일까! 흘러내리는 물의 양이 상당히 많다. 용계골은 아직 사람의 손때가 그렇게 묻지 않은 원시적인 미가 그대로 느껴진다. 흘러내리는 물은 자연스럽게 곳곳에 작은 폭포와 소(沼)를 만들어 놓았다. 유리알처럼 투명한 계곡물이 부서져 내리며 하얀 물방울과 포말을 일으킨다. 시간만 넉넉하다면 계곡에 발을 담그고 한참 쉬었다 내려가고 싶지만 하산 시간이 촉박하다. 생각했던 것보다 용계골은 험하고 거칠다. 이리저리 몇 번을 번갈아 가며 징금 다리를 건너듯이 아슬아슬하게 계류를 지나며 내려선다. 강원도 오지에서 보았던 쥐 다래나무를 여기서도 본다. 전생에 쥐 다래하고 무슨 인연이 그리도 애달프게 맺어졌는가! 연속해서 3주째 본다. 예상시간보다 20분 이상 늦게 하산을 완료한다.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에 위치한 용조봉(龍鳥峰)은 주변의 용문산과 폭산(문례봉), 중원산에 둘러싸여 있는 아담한 산이다. 용조봉은 비록 높지는 않지만 용문산이나 중원산에 비해 암골미가 뛰어나며 아기자기한 암릉산행을 즐길 수도 있다. 더욱이 용문산 쪽 협곡인 용계곡과 조계골이 봉우리 양편을 지나고 있어 시원한 계곡 탐방을 겸할 수 있는 곳이다. 용조봉을 중심으로 동쪽 계곡인 용계골은 옛날용이 숨어 살았다는 전설이 있고, 조계골은 원시림을 방불케 하는 울창한 수림지대에 산새들이 떼를 지어 서식하고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용문산과 용문사 절에 가려 이름을 드러내지 못했지만 계곡이 좋아 아는 이들 사이에서는 등산과 피서의 요람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올망졸망한 바위들이 비경을 품고 노송과 시원한 계곡이 산행의 묘미와 운치를 더해주는 용문산 용조봉이 마음속에 길이 남을 아름다운 추억을 선물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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