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산행 기행문

강원도 양구 사명산 추곡약수.

풀꽃사랑s 2016. 10. 3. 23:29

녹음이 짙어질수록 나무에서 피는 꽃들이 많아지는 계절이다. 땅에서 피는 꽃도 아름답지만 나무에서 피는 꽃들도 예쁘다. 여기에다 새파란 대초원을 갖추고 있다면 금상첨화다. 겨울이 가장 길고 봄이 늦은 강원도 첩첩 산골 산간오지에는 이제야 봄이 절정이다. 아직도 원시림과 태고의 신비함을 자아내는 고산지대에는 자연을 닮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티 없이 맑고 순박한 사람들을 닮은 많은 종류의 야생화와 꽃나무가 소박한 아름다움을 피워낸다. 이번 산행은 양구 사명산 탐방 이다. 모내기를 끝마친 들녘이 초록 바다를 이루는 풍경이 산행 길에 나선 나그네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해준다. 달리는 버스가 강원도 원주를 지나 춘천에 들어서자 아침부터 먹구름이 짙게 드리워진 하늘에서 비를 뿌린다. 여름을 재촉하며 촉촉이 내리는 비를 맞은 들녘이 한결 운치를 북돋아 준다. 긴 성벽을 이루고 있는 산 중턱을 이리저리 휘감아 돌며 46번 국도가 끝 간 데 없이 이어 진다. 버스는 곡예를 하듯이 천천히 달려서 양구군 통일휴게소에서 정차하고 차에서 내려 잠시 짧은 휴식을 취한다. 휴게소를 출발한지 10여분이 채 되지 않아서 아래쪽에 소양호가 얼굴을 드러낸다. 겨울철에 눈이 적게 내리고 이른 봄 비까지 많이 내리지 않아서 그런가!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서 이 넓은 호수가 몸살을 앓고 있다. 호수를 따라 꾸불꾸불하게 이어지는 국도를 따라 험준한 강원도 산들이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해준다. 거리가 제법 되어 보이는 웅진 터널을 지나 수 십분 거리에 이르면 첩첩 산속에 자연이 빚어 놓은 널찍한 웅진리 분지가 있다. 옛날 이곳에 살았던 화전민들은 대부분 다 떠나고 없다. 지금은 조상대대로 삶의 터전을 마련하여 깊은 삶의 뿌리를 내리고 있는 주민들만이 조그마한 자연 부락을 이루며 살고 있다. 현대식 대형주차장이 있는 마을 입구에는 이곳에서 하나뿐인 웅진상회가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나고 있는 산 꾼들과 주민들에게 생필품을 팔고 있다. 마을 안쪽으로 길게 이어지는 도로는 아직 포장조차 되지 않은 부드러운 흙 길이다. 마치 푹신한 솔잎 위를 걷는 듯한 쿠션을 느끼며 부지런히 발품을 팔면서 마을 안쪽으로 올라선다. 길 한쪽 모퉁이 손바닥만 한 텃밭에는 푸른 잎이 싱그러운 옥수수와 감자 밭이 아담하게 들어 앉아 있다. 이제 막 꽃이 피기 시작하는 감자들이 싱싱한 고향의 맛을 느끼게 한다. 양쪽의 산기슭에는 잘 가꾸어 놓은 짙푸른 전나무 숲이 울창하게 장관을 이루고 있다. 푸른색의 나무들이 담장처럼 멋진 울타리를 만들어 놓은 양구 학생야영장은 동화책 속에 나오는 비밀의 정원을 보는 듯하다. 점점이 드문드문 자리 잡고 있는 시골집의 굴뚝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가 유년시절 내가 자란 고향집의 아련한 옛 추억을 떠올려준다. 천수답이던 논은 경지정리가 되면서 물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새로운 물길이 났다. 모내기를 끝마친 논 위로 사명산과 선정사 계곡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물 흘러가는 소리가 정겹게 들려오는 계곡과 나란히 이어지는 농로를 따라 약30분 정도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며 올라서면 금강사와 선정사로 올라서는 삼거리 갈림길이다. 금강사로 내려서는 입구에는 커다란 소나무 한 그루가 서있다. 나뭇가지에 옹기종기 달려 있는 연등과 길 한쪽 모퉁이에 가지런히 아기자기하게 쌓아 놓은 돌탑이 유난히 눈길을 끈다. 파릇한 풀밭에는 보라색의 꽃송이가 탐스러운 꿀 풀과 개망초가 흐드러졌다. 사명산 등산로 안내간판이 서 있는 삼거리에서 널찍한 임도 길을 약10분 정도 올라서면 신흥사 말사인 선정사에 닿는다. 작고 아담한 선정사는 지은 지 40년밖에 안 되었지만 토속적인 신앙이 물씬 풍긴다. 스님이 거주하는 요사 채를 비롯한 일반 건물은 현대식 건물이나 산신각, 칠성각 등은 옛 건물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사찰 뒤편에 줄지어선 형형색색의 단풍나무는 이색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한쪽 모퉁이에는 무거운 2단의 작은 돌탑과 둥근 구슬을 머리에 이고 한쪽 손을 들고 환하게 미소 짓고 서 있는 미륵불이 인상적이다. 스스로 무거운 짐을 지고 서있는 부처님이 속세의 중생들을 꾸짖고 있는 듯하다. 섬섬옥수가 철철넘쳐 흐르는 계곡에서 들려오는 우렁찬 물소리는 고요하기만 한 산속에 메아리가 되어 울려 퍼진다. 널찍한 산책길을 따라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울창한 원시림의 수림(樹林)터널은 어두컴컴한 동굴 속을 걸어가는 기분을 들게 한다. 오전까지 내린 비로 인해 습도가 높고 바람까지 불지 않아서 그런가! 약간 답답한 기분을 느낀다. 약10분 정도 오르면 서쪽으로 계곡건너 차량통제 바리게이트가 설치되어 있는 임도 시발점에 닿는다. 시원스럽게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시멘트로 포장된 제방을 넘으며 인공폭포를 만들어 놓았다. 푸른 이끼가 무성한 계곡 바닥에 이리저리 자유자재로 흩어져 놓여 있는 바위틈 사이로 눈이 부실 정도로 맑은 물이 흘러내린다. 산세가 웅장하고 깊은 산골짜기라 물의 양이 상당히 풍부하다. 징금 다리를 건너듯이 계류를 건너서니 용수암이 산 중턱에 아담하게 들어 앉아 있다. 이곳 역시 요사 채는 현대식 건물이고 뒤편에 있는 대웅전과 옆에 명부전은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동편에 있는 조그마한 명부 전에는 좌측에 지장보살을 중앙에 염라대왕을 우측에 지옥을 다스리는 험상 굿은 사천왕을 배치해 놓았다. 건물 앞쪽에는 커다란 배 모양처럼 보이는 바위 돌이 놓여 있다. 안쪽을 정교하게 파내어 물을 담아 놓았는데 무엇을 의미하는지 용도조차 알 수는 없지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는 충분하다. 대웅전 양쪽에는 밤에 환하게 불을 밝혀주는 석등이 놓여 있다. 등 안쪽에는 옛날 전기가 없을 때 석유를 담아서 사용했던 작은 호롱이 놓여 있다. 지금은 민속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을 실제로 눈앞에서 보니 신비스러움마저 느껴진다. 한쪽 모퉁이에는 백당나무가 정원수로 심어져 있고 뒤편에는 돌로 세워 놓은 두 개의 사리탑이 서 있다. 암자를 한 바퀴 돌아보고 나오니 절을 지키고 있는 백구가 자기보다 작은 덩치의 귀여운 강아지를 데리고 종종걸음을 치며 걸어서 나온다. 좀처럼 사람을 만날 수 없어서 일가! 낯선 이방인을 보고서도 짖기는커녕 반갑다고 꼬리를 살래살래 흔든다. 오히려 절 앞까지 이곳을 찾은 길손을 배웅이라도 하듯이 옆에서 같이 동행을 하며 걸어서 나온다. 이곳에서부터는 크고 작은 바위 돌들이 울퉁불퉁하게 돌출된 너들 지대를 올라간다. 비좁은 바위 틈새에 긴 보라색의 보물주머니를 하고 있는 골무꽃과 하얀색의 초롱꽃이 살짝 얼굴을 보여주며 눈인사를 건넨다. 산비탈에는 습기가 많은 땅에서도 잘 자라는 둥근 부챗살 모양을 한 관중이 늘려 있다. 잎이 고사리를 닮았지만 독초이다. 물이 흘러가는 바위틈에는 박새도 모습을 드러낸다. 잎이 식용으로 먹는 산 마늘과 많이 닮았지만 이 꽃 역시 독초이다. 오솔길을 따라 올라서며 노란색의 큰 얼굴을 하고 있는 큰뱀무 꽃도 본다. 약20분 정도 소요되는 이 길은 사명산에서 만나는 대표적인 너덜지대이다. 돌너덜을 통과하니 사명산을 휘감아 도는 임도 길에 닿는다. 북쪽으로 올라서는 능선에는 하얀색의 꽃이 눈길을 주게 하는 산딸나무가 여기저기 몇 그루 서있다. 향긋한 향도 참 좋은데 비가 내려서 그런가! 코로 직접 느낄 수가 없다. 초록색의 풀밭 속에는 초롱을 닮은 초롱꽃들이 앙증맞게 군락을 이루고 있다. 산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희귀종이다. 임도를 가로 질러 오르면 자연미가 살아 숨쉬는 계곡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이어지는 오솔길과 만난다. 잎이 넓은 나무들이 울창하게 우거지며 서로 맞닿아 숲 터널을 이뤄 하늘조차 보이지 않는다. 물기가 많은 거친 돌밭 길로 올라서면 삼거리 갈림길이다. 서쪽보다 동쪽으로 올라서는 길이 지름길이다. 공터에 배낭을 내리고 잠시 휴식을 취해본다. 꽃이 지고 없는 쪽 동백나무에는 자세하게 설명서까지 쓰인 팻말이 붙어 있다. 여기에서 돌밭 길은 끝이 난다. 그 대신 경사가 급한 흙으로 이루어진 된비알로 올라서야 한다. 서서히 고도를 높이는 능선은 올라서면 설수록 나무들의 수가 줄어들며 밑동이 굵은 고목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눈앞에 덤불 조팝나무가 꽃을 피우고 반긴다. 산속에서 만나는 야생화는 항상 색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약8부 능선으로 올라서니 정겨움을 주던 물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가끔씩 이름 모를 산새들이 지저기는 소리가 들려올 뿐이다. 주 능선은 자욱하게 내려앉은 안개 속에 가려진 지 오래고 숲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던 하늘은 서서히 얼굴을 보여준다. 나무가 우거진 숲 속에는 풀들이 잘 자리지 못하는 환경이다. 하지만 기후가 서늘하고 잎이 넓은 활엽수가 있는 고산지대의 숲은 예외인 듯 하다. 쪽도리꽃 종류와 까치수염 등 이름도 생소한 들풀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부드러운 육산으로 이루진 사명산에서 기암괴석을 만나기란 하늘에 떠있는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다. 그러나 여기저기 사슴, 여신 등 다양한 형상을 하고 서 있는 아름드리 나무를 만나는 재미가 쏠쏠하다.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는 것이 육산에서만 맛보는 별미라고 말하지만 어느새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약40분 정도 올라서니 이정표가 서있는 도솔지맥 삼거리 갈림길이다. 아무리 가파른 산길도 능선에 붙으면 체력적으로 느끼는 힘든 고비가 절반으로 줄어든다. 하얀색의 꽃송이가 앙증맞은 산 꿩의 다리가 꽃길을 열고 이제 막 꽃이 피려는 참 둥글레는 신선한 감칠맛을 느끼게 한다. 금방 시집와서 수줍어하는 새색시마냥 붉은 얼굴을 하고 다소곳이 서 있는 큰앵초는 나그네의 마음을 울렁이게 한다. 어느 곳에 눈길을 주어도 보이는 것이 모두 꽃이다. 올라오면서 힘들었던 모든 일들이 봄볕에 눈(雪) 녹듯이 말끔히 사라지고 한걸음씩 사뿐사뿐 옮겨 놓는 발걸음은 하늘을 날아갈듯한 기분이다. 바로 정상이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다. 한달음에 달려가 올라서니 헬기장처럼 넓은 공터이다. 공터에서 몇 분을 더 올라서니 자그마한 바위로 이루어진 사명산 정상이다. 파라 소양 두 호수를 한눈에 굽어보며 화천, 양구, 춘천 땅을 능선으로 가른 청산(靑山). 사면팔방이 탁 트여서 하늘 아래 거칠 것이 없는 사명산(四明山)은 인제군을 포함해서 4개 고을의 전망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름만큼이나 정상에 서서 휘둘러보는 조망은 막힘이 없다. 그러나 순식간에 차가운 바람이 세차게 불며 먹구름이 몰려온다. 그리고는 짙은 운무가 내려앉으며 모든 것을 삽시간에 감추어 버린다. 그 기에다 부슬부슬 빗방울이 떨어진다. 정상에서 남쪽과 북쪽에 있는 거대한 두 호수를 내려다 볼 수 있는 것이 이 산이 품고 있는 최고의 백미이다. 하나 변화무쌍한 날씨는 모든 기대를 저버리게 하려고 한다. 한자리에 모여서 떠들썩하게 점심을 마친 회원님들이 하나 둘 자리를 떠나며 산은 다시 조요한 적막 속으로 빠져든다. 힘들게 올라온 만큼 인내심을 가지고 몇 분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기다린 보람은 있었다. 산과 호수를 감싸고 있던 운무가 서서히 걷히며 남으로 파란 물감을 풀어 놓은 듯 소양호가 펼쳐지고 북으로 전형적인 계곡 형 파라호가 서서히 고운 자태를 드러낸다. 물이 그득하게 담겨 있는 호수였다면 더 운치가 좋았겠지만 훤하게 속살을 드러내는 소양호와 파라호 의 풍경은 여전히 일품이다. 양떼처럼 뭉실뭉실 살포시 내려앉은 흰 구름 송이가 양쪽 호수에 아름답고 환상적인 꽃송이를 피워 놓았다. 엷은 구름이 드리워진 하늘아래 병풍처럼 휘감아 돌아가는 고봉준령(高峯峻嶺)의 웅장한 풍모(風貌)속에 부용에서 오봉산을 거쳐 용화산으로 이지는 산 능선들이 일렁이는 푸른 파도처럼 굼실댄다. 멀리 겹겹이 누워 검푸른 실루엣으로 스카이라인을 이루는 산줄기 속에는 설악산, 점봉산이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고만고만한 산줄기들이 너무나 닮아 있어서 구별조차 하기 힘 든다. 정상에는 국립지리원에서 설치한 삼각점이 놓여 있고 정상 석이 아담하게 서있다. 삼각점은 동서남북 방향을 알리는 좌표구실을 한다. 해발 1198미터 결코 낮지 않은 고산(高山)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많은 야생화가 꽃을 피웠다. 맞은편 숲 속에는 순백색의 함박꽃이 미소 짓고 있고 주변에는 꽃송이가 어린아이 주먹만한 공조팝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하산 길은 추곡약수터로 내려서는 남릉이다. 높고 낮은 산 능선이 구릉처럼 장쾌한 산줄기를 이루며 길게 파노라마 치는 남릉길. 이곳은 하늘이 내려준 또 하나의 산상화원(山上花園)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파릇파릇한 대초원이 눈앞에 펼쳐지고 호젓한 오솔길은 꿈길을 걷는 기분이다. 제일 먼저 반기는 꽃은 화려한 보석을 박아 놓은 듯한 꽃송이를 하고 있는 쥐오줌풀이다. 꽃송이도 크지만 꽃대가 키다리아저씨처럼 높이 솟아 있어서 눈에 가장 잘 보인다. 소박하게 꽃을 피운 흰색의 고광나무도 곳곳에서 자라고 있다. 해발 1180m 미터 봉우리를 넘어서니 고갯마루에 노란색의 원추리들이 벌써 꽃을 피웠다. 안부로 내려서며 계절을 잊어버린 철쭉 꽃송이를 본다. 몇 송이 남지 않은 붉은 색의 병 꽃이 애처롭다. 좁쌀처럼 옹기종기 꽃봉오리가 모여 있는 참조팝나무는 아직 꽃잎을 열지 않았다. 야트막한 야산을 넘는 기분으로 또 하나의 해발1180m 미터 봉을 살짝 올랐다가 내려서면 널찍한 헬기장이다. 남쪽에 얼굴을 보여주는 소양호가 지척에 있는 듯하고 멀리 도깨비 뿔처럼 솟은 가리산 정상이 하늘 금을 그린다. 겨울철에 내리는 많은 양의 눈이 나무들의 가지를 갖가지 기이한 형상으로 휘어 놓았나 보다. 자유자재로 휘어진 아름드리나무들은 야생화와 풀들이 자라는데 적당한 환경을 만들어 주는 듯하다. 초록의 융단을 깔아 놓은 대평원에는 벌깨덩굴을 비롯하여 산꿩의 다리, 산괴불주머니, 풀솜대, 눈개승마, 박새가 고운 몸매를 자랑하며 살짝 얼굴을 보여준다. 이밖에 꽃은 지고 푸른 잎만 무성한 홀아비꽃대, 노랑제비꽃도 남에게 뒤실 세라 얼굴을 드러낸다. 무엇이 그리도 수줍은지 물참대와 백당나무는 안부나 능선 한쪽 모퉁이 한적한 곳에서 다소곳이 소박한 꽃을 피우고 있다. 산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금낭화를 고목나무아래 풀밭에서 만난다. 몇 년 전 청송 주왕산 절 골에서 본 이후에는 산에서는 보지 못했다. 장미꽃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연분홍 붉은 꽃송이가 줄기에 조롱조롱 매달려 것이 앙증맞다. 이 꽃 역시 점점 야생에서 사라져 가는 희귀 야생화 중 하나이다. 산나물 종류의 하나인 참나물은 지천에 늘려 있다. 산은 내려가면서 높이를 점점 낮추더니 해발1004m 미터 삼거리에 다다르면 나의 마음을 황홀함에 빠져들게 했던 초원 능선이 끝이 난다. 삼거리에서 남서쪽으로 휘어지는 지능선 에는 철쭉과 진달래가 많이 보인다. 철쭉 숲길을 따라 내려서면 해주 최씨 묘에 닿는다. 묘 앞에 잡초가 무성한 폐 헬기장이 있다. 여기서부터는 수령이 수백 년은 되어 보이는 노송들이 듬성듬성 서있다. 경사가 완만한 능선 길은 지루함마저 느끼게 한다. 지루함을 느낄 때쯤 두 개의 커다란 바위가 대문같이 서 있는 문바위에 닿는다. 위쪽을 올려다보면 깎아지를 듯한 단애로 이루어진 바위 절벽이 아찔하다. 즐겨 찾는 사람조차 뜸한 심산유곡(深山幽谷), 절벽 양쪽을 가로 질러 구름다리가 놓여 있다. 이 다리를 건너면 사람이 살고 있는 세상이 아닌 하늘과 맞닿은 이상향이 있나 보다.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허물어져 버린 구름다리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기를 품고 있다. 좌측에는 돌로 쌓아 놓은 자그마한 7층 석탑이 있다고 하나 시간에 쫓기다 보니 미처 확인을 하지 못했다. 우측의 바위틈에는 덤불조팝나무 꽃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우측으로 돌아 올라서서 내려갈 수도 있겠지만 널찍한 중앙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을 따라 안부로 내려선다. 이 깊은 산중에도 화전민이 살았나 보다. 화전민이 떠난 자리에는 전나무를 조림하여 놓았다. 하늘을 향해서 쭉쭉 뻗어 있는 울창한 전나무들이 시원스럽다. 하나같이 모두가 재목(材木)으로 유용하게 쓸 수 있는 동량(棟樑)들이다. 자욱하게 운무를 내리게 했던 날씨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햇볕이 내리쬐며 서서히 걷히기 시작한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나무 사이로 걸어온 능선을 돌아본다. 짙푸른 녹음이 어우러진 산 능선의 풍광이 일품이다. 서쪽으로 힘차게 뻗어가는 도솔지맥 산줄기는 긴 나래를 펼치고 깊게 페인 골짜기에는 연 초록 파도가 출렁인다. 안부에서 무명봉을 올라서는 산사 면에는 완두콩 꽃송이처럼 보이는 강릉갈퀴 꽃이 많이 보인다. 한약재로 쓰이는 음 나무도 있다. 무명봉에서 도솔지맥이 갈라지는 분기점에서 남쪽으로 내려서는 길은 밋밋한 오솔길이다. 산은 올라서는 길보다 내려갈 때가 위험을 동반하고 힘이 배로 든다. 해발735m 봉에서 남서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추곡약수로 내려서는 능선 길은 노송들이 촘촘하게 군락을 이루고 있다. 여기까지 오면서 활엽수 나무숲에서 삼림욕을 했다면 이제부터는 잎이 뾰족한 침엽수이다. 삼림욕은 침엽수 숲이 가장 좋다. 솔향기 그윽한 노송 숲길, 금방 내려설 것 같았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거리가 상당히 멀다. 소나무 숲이라 관심 있게 볼만한 야생화도 없다. 간간히 솔잎 속에 아직 꽃이 피지 않은 노루발이 보일 뿐이다. 북서쪽 대방골로 내려서는 길은 경사가 가파른 급경사 길이다. 또 한번 육산의 묘미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는 산뽕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나무에 새까맣게 달려있는 작은 콩알 만한 오디열매가 풍성하게 많이도 열려있다. 얕은 협곡으로 이루어진 한쪽모퉁이에는 쥐 다래나무가 아예 한 자리를 차지하며 울창하게 군락을 이룬다. 가파른 경사 길을 내려서니 대방골이다. 남쪽으로 내려서는 길은 널찍한 임도 길이다. 산비탈에는 먹음직스러운 산딸기가 많지만 하산 시간이 촉박하여 발걸음을 재촉하며 내려선다. 추곡약수도 들리지 못한 채 겨우 하산 시간에 맞추어 산행을 마친다. 이 깊은 산골에도 벌써 사람의 손때가 묻어 있다. 계곡 주변에 을씨년스럽게 들어선 펜션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아무리 원시림의 자연이 잘 보존 되어 있다고 하나 사람들이 하나 둘 집을 짓고 들어서면 순식간에 주위의 환경이 훼손되어 버린다. 더 이상 이 아름다운 산천이 사람들로 인해 오염되고 훼손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누구나 한번쯤은 매일 반복되는 일상생활의 단조로움과 무려 함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호젓한 숲 속의 능선 길을 걸으며 산에 올라 어머니 품처럼 넉넉한 대 자연의 품속에 안겨 편안함과 아늑함에 흠뻑 취해보고도 싶을 것이다. 이름 모를 산새들과 물소리가 사랑의 하모니를 들려주는 계곡을 갖추고 있는 곳이라면 금상첨화가 따로 없다. 이와 같은 모든 조건을 충족시켜 주는 산이 사명산이다. 특히 해발 1000m미터 이상 고산지대에서 파릇파릇한 대초원과 많은 종류의 야생화를 볼 수 있는 곳은 그렇게 많지가 않다. 내려오는 길에서 만난 소나무 숲 속 오솔길, 진귀한 야생화들의 속삭임에 세상의 모든 시름을 잊을 수가 있어서 참 좋았다. 일상생활에서 잠시 벗어나 자연의 품속에 안긴다는 것은 참으로 삶의 기쁨이요 행복이다. 살아 숨쉬는 자연의 소리를 마음껏 들을 수 있는 사명산, 유명하게 알려진 국내유수의 명산들과 자웅을 겨룬다고 해도 산세가 뒤지거나 빠지지 않는 아름다운 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