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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철승산(활인봉), 태화산(나발봉), 마곡사.

풀꽃사랑s 2021. 2. 13. 16:18

충청남도 공주시 철승산(활인봉), 태화산(나발봉), 마곡사.

충남 공주시 사곡면과 신풍면 유규면 사이에 있는 철승산(활인봉 해발423m), 태화산(나발봉 해발617m)은,충남 천안 아산의 경계에 있는 금북정맥 태학산(해발456m) 에서 남쪽으로 분기하는 산줄기에 솟구쳐 있다. 또한 철승산(鐵繩山),태화산(泰華山)은 충남 공주시에서 서북쪽으로 24㎞미터 지점에 있다. 실제 산 이름 보다는 태화산 남쪽 골짜기 평지에 아담하게 들어앉아 있는 태화산 마곡사(泰華山 麻谷寺)가 더 유명하게 알려져 있다. 오묘한 전설과 많은 국보급(國寶級)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마곡사도 일품이지만, 북쪽의 태화산 깊은 숲과 협곡에서 흘러내리는 청명하고 맑은 물이 마곡사 경내를 태극형(太極形)으로 돌아나며 절경을 펼치고 있다. 태화산(나발봉)정상에 올라서면 동남쪽 방향으로 저 멀리 닭과 용이 싸움을 하듯 성난 얼굴로 위엄을 과시하고 있는 국립공원 계룡산과, 충남 공주시가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처럼 아스라하게 한눈가득하게 들어온다. 겹겹이 스카이라인을 이루고 있는 산줄기와 들녘을 지나 저 멀리 남서쪽으로 충남 청양군 칠갑산이 아련하게 얼굴을 보여준다. 바로 눈앞 전방 동쪽으로 무성산(茂城山 해발613.6m)이 장승처럼 하늘을 향해 높게 솟구쳐 있다.

마곡사 대광보전 5층 석탑.

 

마곡사(麻谷寺)는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태화산 동쪽 산허리에 있으며 대한 불교 조계종 25개 본사 중 제6교구이다. 천연 고찰 마곡사는 640년 백제(百濟)무왕(武王)41년 신라의 고승 자장율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후 도선국사(道詵國師)가 다시 중수하고 각순(覺淳)대사가 보수한 것으로 전해 오고 있습니다. 신라의 고승 자장 율사가 창건할 당시에는 대웅전을 비롯한 건물이 30여 칸에 이르는 대사찰이었으나 신라 말부터 고려 초기까지 폐사로 남아 있었다. 이후 고려 명종(明宗)때인 1172년 보조국사(普照國師)가 중수하고 범일(梵日)대사가 보수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태화산 동쪽 산허리 평지에 아담하게 들어앉아 있는 마곡사는 경내(境內)에 모두19동(棟)의 전각(殿閣)과 12개의 암자(庵子)가 있다.

가람(伽藍)위치에 따라 남원과 북원으로 구분하고 있다. 마곡사는 약8000여 평의 널찍한 면적에 경내(境內)를 동서로 태극형(太極形)형태로 가로질러 돌아나가는 마곡천이 있다. 마곡천을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가람이 나누어서 배치되어 있다. 이러한 독특한 가람의 배치 형태는 오직 마곡사에서만 볼 수 있다.

 

마곡사의 남원(南院)은 영산전(靈山殿)을 중심으로 하여 수선사(修禪寺), 흥성루(興聖樓), 매화당(梅花堂), 명부전(冥府殿), 국사당(國師堂), 산신각(山神閣), 해탈문(解脫門), 부도군(浮屠群), 천왕문(天王門)과 요사채가 있다. 남원에 있는 법당은 스님들이 수행을 중심으로 하여 생활을 하는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광보전(大光寶殿)을 중심으로 한 북원(北院)에는 대웅보전(大雄寶殿), 응진전(應眞殿), 마곡사 오층석탑, 심검당(尋劒堂), 고방(庫房), 요사채, 연화당(蓮華堂), 관음전(觀音殿), 대향각이 있다. 이 밖에 백범 김구의 자취가 남아 있는 백범당(白凡堂)과 향나무가 있다. 북원은 예불과 부처님의 공간(極樂世界)을 상징하고 있다.

마곡사 명자꽃.

 

마곡사의 가람이 언제부터 지금과 같은 형태로 배치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의 약 60년 이상 폐사로 되어 있던 마곡사를 조선 효종2년 1650년 각순스님이 공주 목사 이태현의 도움을 받아서 마곡사를 다시 지으며 북원 구역을 완성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 무렵 예산 안곡사에서 범종(梵鐘)을 보내왔고 1741년에 법당의 중종을 만들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특히 마곡사의 오층석탑이 있는 북쪽에 대광보전(大光寶殿)을 세우고 다시 건축물 측대위에 대웅보전(大雄寶殿)이 자리한 일탑쌍금당(一塔雙金堂)식의 건물 배치는 매우 희귀한 사례이다. 마곡사는 한때 승려가 천명에 이를 정도로 번성하였으나 1782년 화재로 대법당을 비롯하여 천여 칸의 건물이 불에 타서 소실되는 사건이 있었다. 이후 다음해에도 화재가 일어나 대광보전이 또 소실되었고 마곡사 오층석탑과 불상 대웅보전만 남게 되었다. 이에 재봉당 채규스님이 중심이 되어 충청도 관찰사 심풍지 등이 적극 적으로 지원하여 1785년에 대광보전을 다시 세웠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후 3년 뒤인 1788년에 강세환이 쓴 대광보전의 현판을 다시 걸었다. 대웅보전은 원래 대장경을 보관하는 대장전(大藏殿)이었다. 이 시기에 부처님을 모신 대웅보전으로 바뀌었다. 이후 1791년 응진전(應眞殿)을 세우고 1797년에는 심검당도 세웠다. 이후에도 여러 번의 보수과장을 거쳐 오늘날의 마곡사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춘마곡추갑사(春麻谷秋甲寺)’라는 말이 전해지고 있는데 이 말은 봄에는 마곡사 가을에는 갑사의 풍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하게 알려져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옛날부터 마곡사는 연두색 신록이 절정에 이를 무렵이면 봄의 정취가 물씬 묻어나는 곳이다. 가을 또한 울긋불긋 형형색색으로 곱게 물든 단풍이 아름다운 곳이다. 북서쪽에 태화산, 동쪽에 무성산, 남서쪽에 철승산등 높은 산이 사방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지형이다. 천년 고찰 마곡사는 이 사곡면에 있는 산들 중 태화산 남쪽자락 평지에 아담하게 들어앉아 있다. 마곡사는 예로부터 전란을 피할 수 있는 십승지(十勝地)중 한곳으로 택리지(擇里志)나 정감록(鄭鑑錄)과 같은 지리서에 기록되어 전해지고 있다. 특히 마곡사 일대는 주변 산과 물의 형태가 태극형(太極形)이라 하여 산 태극, 물 태극(山太極, 水太極)’으로 불리는데, 태극형으로 감싸 안으며 청수(淸水)가 흐르는 마곡천이 절을 한층 아름답게 해준다. 예부터 이곳의 터는 길지로 명성을 드높였다. 풍수지리로 유명한 도선국사는 기근이나 전쟁 등 삼재가 없는 ‘길지라’ 칭찬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실제로 임진왜란이나 한국전쟁 때 피해를 입지 않았다. 오랜 시간 속에 풍상을 견디어 온 세월의 흔적이 엿보이고 고풍스러운 산사의 기품을 은근히 보여주고 있다.

 

마곡사(麻谷寺)라는 절의 명칭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본래 이 지역에 마(麻)가 많이 재배되던 골짜기(谷)라 하여 마곡(麻谷)이라 부르던 곳에 있는 절(寺)이란 뜻이라고도 하고,

자장율사가 당나라에 유학할 때 스승인 마곡 보철화상을 기려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고 하는 설이 있다. 또한 보조국사가 고려 명종2년(1172)에 이 절을 재건하고 법문을 할 때, 설법을 들으러 오는 사람들로 골짜기가 꽉 찬 모습이 마치 삼밭에 삼대(麻)가 들어선 듯 빼곡하다 하여 마곡이란 이름이 붙었다고도 전해지고 있다. 빼곡히 들어찬 송림은 하늘을 가리고 그 밑으로 흐르는 계곡물은 청명하고 맑은 청수가 마곡사 한 복판으로 흘러내려간다. 대웅보전의 기둥은 둘레가 2m미터가 넘는 싸리나무로 되어 있는데 모두 표면이 반들반들하게 윤이 반짝반짝 난다. 그 연유는 사람이 죽어 염라대왕 앞으로 가면 마곡사 대웅보전의 기둥을 안아 보았느냐고 물어 본다고 하는데 그런 일이 없으면 지옥으로 보내고, 안아본 사람은 극락세계로 보낸다는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매년 이곳을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은 몇 번이고 싸리기둥을 안아 보았기 때문에 윤이 반짝반짝 난다고 전해지고 있다.

마곡사에는 세조(世祖: 1417-1468)가 잠시 이곳에 머물렀던 일화가 전해지는데 생육신의 한사람인 매월당 김시습(梅月堂, 金時習)이 이곳에 은거하였으니 그를 만나고자 행차한 길이었다. 그러나 김시습은 세조가 자신을 만나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 마곡사를 떠났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세조는 김시습이 나를 버리고 떠났으니 연(輦)을 타고 갈수 없다하여 소를 타고 돌아갔다. 세조는 마곡사를 떠나면서 인연의 흔적을 남겼다. 그것이 바로 영산전(靈山殿)의 편액이다. 지금도 이곳에는 세조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 세조의 친필인 영산전의 편액과 마곡사에 올 때 타고 온 세조왕연(世祖旺輦)이 그것이다.

마곡사 진달래.

 

적송숲 사이를 지나 마곡사 대웅전앞 은적암 입구를 기점으로 하여 해발 423m미터 철승산(활인봉), 해발417m미터의 태화산(나발봉) 등산로를 돌아 내려서서, 마곡사 경내를 한 바퀴 돌아보는 이 등산로는 경사가 완만하여 어린이를 비롯한 노인이나 노약자가 등산하기에도 적당한 환경을 갖추고 있다. 활인봉에는 죽어가는 사람도 살린다는 생명수 샘터가 위치해 있으며, 사람에게 기와 건강을 유지시켜 주는 송림욕(松林浴) 중에서도 가장 으뜸이 된다는 적송림(赤松林)은 건강나무로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최근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며 계룡산의 동학사와 갑사만큼이나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갑사와 동학사, 신원사등 귀에 익은 많은 유명사찰을 말사로 거느리고 있다.

 

바야흐로 상춘(賞春)의 계절이다. 남녘에서 예쁘게 몸단장을 끝낸 봄 처녀가 어느새 중부지방까지 그 세력을 확장하며 무서운 기세로 올라오고 있다. “춘마곡추갑사(春麻谷秋甲寺)”라는 말이 있다. 봄이면 마곡사의 풍경이 절경이요 가을이면 계룡산 갑사의 단풍이 일품이라는 이야기이다. 이번 산행 길은 산보다 절이 더 유명하게 알려진 마곡사를 찾아 길을 나선다. 마곡사 탐방은 공주시에서 이어지는 629번 지방도 아래쪽에 있는 시설단지 주차장에서 시작한다. 작년 봄에 보았던 그 많던 유채 밭은 흔적을 찾아 볼 수가 없고 지금은 겨우 한쪽 모퉁이에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이곳의 봄이 이른가! 파릇한 잎이 싱그러운 유채는 꽃조차 피지 않아서 조금은 썰렁한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땅을 향해 잔가지를 뻗으며 줄지어 서있는 나무들도 이제 막 겨울눈이 터지고 있다. 강렬하게 내리쬐는 봄볕은 무더운 여름을 방불케 한다. 마곡사 시절지구에서 약10분 정도 올라서면 마곡사 입구에 있는 매표소이다. 마곡사는 마곡천계곡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북쪽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지나 올라서야 한다. 태화산 마곡사 일주문(泰華山 麻谷寺 一柱門)을 지나 새하얀 벚꽃 꽃송이와 눈인사를 건네며 산모퉁이를 돌아선다. 저만치 벚꽃이 만발한 나무 뒤편으로 마곡사가 얼굴을 드러낸다. 마곡사 매표소에서 일주문을 지나 마곡사 까지는 약700m거리이며 약20분 이상 소요된다. 마곡사 탐방은 산행을 마치고 하기로 하고 산행부터 먼저 시작한다.

 

미끈한 몸매를 자랑하는 편백나무가 개선문처럼 양쪽으로 줄지어 서있는 은적암 입구. 이곳에서 남쪽으로 울창한 천년송림 숲길을 지나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긴다. 높이를 점점 더하는 능선 길에 가지런히 나무 계단이 놓여 있다. 숲 속에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진달래가 화사한 연분홍 꽃을 피웠다. 이렇게 내륙 깊숙이 자리 잡은 산속에서 보는 진달래는 색이 연화고 질박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준다. 이와 반대로 차가운 해풍을 맞으면서 자란 진달래는 꽃송이의 잎이 두껍고 색이 진화며 화려함을 품고 있다. 이마에 송알송알 맺힌 땀방울이 흘러내릴 때쯤, 남동쪽 산 중턱에 아담하게 들어앉은 마곡사를 내려다보며 휴식을 취한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봄바람은 가슴속까지 시원하게 씻어 준다.

 

휴식을 취한 다음 해발 355m미터 봉우리에 올라서기 전 백련암 삼거리 갈림길로 올라선다.

백련암 삼거리 갈림길에서 동쪽으로 내려서면 지나온 은적암으로 내려서게 된다. 서쪽으로 올라서면 철승산 정상인 활인봉으로 올라서게 된다. 북쪽으로 내려서면 백련암과 마애불로 내려서게 된다. 백련암 삼거리 갈림길에서 높이가 나지막한 해발355m미터 봉우리를 넘어서면 남쪽으로 생명의 샘터가 있다. 생명의 샘터는 시간상 탐방을 하지 않고 바로 철승산(활인봉) 정상으로 올라선다. 사방이 확 트인 철승산(해발423m) 정상에는 산 꾼들이 휴식을 하며 쉬어 갈수 있게 아담한 정자가 자리 잡고 있다. 저 멀리 북쪽에 있는 나발봉과 주위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여기서부터는 비단길처럼 곱고 꿈길 같은 호젓한 능선 길이다. 계곡에서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을 맞으며 진달래들이 어지럽게 현란한 군무를 춘다. 수북하게 떨어진 솔잎을 밟으면서 걸으니 부드럽고 푹신한 양탄자 위를 걷는 기분이다. 양지바른 쪽에 순진무구한 사랑을 느끼게 하는 보라색의 제비꽃이 살며시 품속에 와 안긴다. 빼곡하게 줄지어 서있는 울창한 적송림 숲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맑은 산소는 송림욕 중에서도 가장 으뜸이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자연이 주는 선물을 마음껏 즐긴다.

마곡사 전경.

 

꿈길 같은 호젓한 오솔길을 지나 북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며 내려서면 샘골고개 삼거리 갈림길 안부이다. 삼거리 갈림길에서 남쪽으로 내려서면 지나온 철승산 정상이다. 북쪽으로 올라서면 태화산 정상이다. 동쪽으로 내려서면 마곡사로 내려서게 된다. 샘골 갈림길 안부에서 북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며 올라서면 할미바위다. 울창한 송림 숲속에 외롭게 서 있는 할미바위를 지나서 북쪽으로 올라서면 파릇파릇한 잔디가 봉분을 곱게 덮고 있는 변씨무덤이 있다. 흙으로 이루어진 유순하고 호젓한 오솔길에다 울창하게 우거진 송림 숲은 산행 길의 운치를 더하여 준다. 변씨무덤 과 아름다운 송림숲길을 지나 북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며 올라서면 태화산(해발417m 나발봉)정상이다. 그 흔한 정상석을 대신하여 국립지리원에서 설치한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다. 태화산 정상에서 호젓한 오솔길을 이으면서 동쪽으로 내려서면 해발 395m미터 봉우리이다. 동네 뒷산처럼 나지막한 야산 정상에 이곳 역시 쉬어 갈 수 있게 아담한 팔각정이 세워져 있다.

 

팔각정에 올라서서 주위에 보이는 산세를 둘러보는 재미 또 한 쏠쏠하다. 동쪽에 무성산, 남서쪽에 칠승산 등 높은 산줄기가 태화산 남쪽 산중턱에 있는 마곡사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다. 남동쪽으로 눈길을 주면 계룡산의 험준한 능선이 꿈틀거리는 한 마리의 용(龍) 같다. 저 멀리 남서쪽으로 칠갑산이 아련하다. 팔각정에서 휴식을 취한 다음 늘씬한 몸매를 갖춘 여인의 허리선처럼 부드러운 능선 길을 이으며 동쪽으로 하산 길을 재촉한다. 산비탈에는 새하얀 벚꽃송이가 봄바람에 휘날리며 산행의 운치를 더하여준다. 호젓한 오솔길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듯한 능선 길을 지나 동쪽으로 약30분 정도 내려서면 무덤이 있다. 무덤에서 남쪽으로 내려서면 태화산 골짜기에서 발원하는 청명하고 맑은 섬섬옥수가 시냇물처럼 흘러가는 계곡상류이다. 크고 작은 바위들이 바닥에 늘려 있다. 그 비좁은 틈새로 시원스럽게 물이 흘러내려간다. 널찍한 수레길을 지나 남쪽으로 내려서니 양쪽 계곡물이 만나는 합류지점이다.

 

북쪽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여기서 마곡천 계곡물과 서로 몸을 섞는다. 계곡을 가로 질러 영은교가 놓여 있고 소형승용차가 달릴 수 있는 널찍한 수레길이 이어진다. 양쪽 능선으로 눈길을 주며 내가 사무치게 그리워하던 싱그러운 연두색 신록을 찾아본다. 그러나 아직 봄이 무르익지 않아서 그런가! 파릇파릇한 연두색 새순이 돋아난 나무들이 그렇게 많이 보이지 않는다. 산 능선에 울창한 원시림의 숲을 이루고 있는 굴참나무들은 한결 같이 잿빛의 검은색이다. 산비탈에는 울긋불긋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봄꽃이 절정이다. 그러나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는 나무들은 겨울인양 황량한 수묵화를 그리고 있다. 심한 봄 가뭄이 계속되어서 일까. 싱싱한 푸름을 보여주어야 할 소나무들도 그 빛을 잃어가고 있다. 널찍한 수레길을 지나 남쪽으로 내려서니 졸졸 흘러가는 물소리가 상큼한 봄맛을 느끼게 해준다. 마곡천 계곡 중앙에 일렬로 가지런하게 놓여 있는 징금 다리가 정겨움을 더하여준다. 널찍한 수레길은 마곡천 계곡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남쪽으로 길게 이어지고 있다.

마곡사 극락교. 극락교에서 북쪽은 북원, 남쪽은 남원이다.

 

마곡천 징검다리를 건너서 동쪽으로 올라서면 남쪽 방향으로 웅장한 건물인 대웅보전이 들어앉아 있다. 조선 중기 목조 건물이다. 모두 2층으로 이루어진 대웅보전 법당에서는 선조들의 손재주와 슬기를 함께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밖에서 보아도 한눈에 주불전의 위엄을 느끼게 해준다. 법당 내부로 들어서니 세분의 부처님이 모셔져 있고 후불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마곡사 대웅보전(麻谷寺 大雄寶殿)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조선 효종2년1651년 각순대사(覺淳大師)가 다시 중수 하였다. 중수기 에는 대장전으로 지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언제부터 대웅보전으로 바뀌게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외관상으로는 2층 건물형태인 중층(中層)이나 법당 내부는 하나의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법당 내부 중앙에는 석가모니불을 좌측에는 아미타불 우측에는 약사불을 모시고 있다. 법당 내부에 모셔져 있는 공주 마곡사 대웅보전 목조세삼 불상은 모두 목불(木佛)이다. 현재 공주 마곡사 대웅보전(公州 麻谷寺 大雄寶殿) 목조세삼 불상은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85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웅보전 건물은 보물801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웅보전 법당 내부에는 몸집이 우람한 8개의 기둥이 있다. 이중4개의 기둥은 나무의 재질이 싸리나무이다. 대웅전을 받치고 서있는 몸집이 우람한 4개의 싸리기둥은 속신(俗信)을 간직하고 있다. 4개의 싸리기둥을 얼싸안고 시계방향으로 한 바퀴 돌면 수명이6년 연장된다는 것이 그것이다. 또한 재질이 싸리나무인 4개의 기둥은 모두 겉 표면이 반들반들 하며 윤기가 흐른다. 그 연유인즉 사람이 죽어서 염라대왕 앞에 서면 제일 먼저 마곡사 대웅보전 법당에 있는 4개의 싸리기둥을 안아 봤느냐고 물어 본다고 한다. 그런 일이 없다고 하면 모두 지옥으로 보내고 안아보았다고 하는 사람들은 극락세계로 보낸다는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그래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모두 몇 번이고 4개의 싸리기둥을 안아보았기 때문에 지금도 반짝반짝 윤이 흐르고 있다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경건한 마음으로 부처님께 절을 올리고 대웅보전을 나선다. 앞이 탁 트인 대웅보전 앞에서 내려다보는 널찍한 마곡사의 풍광은 선경(仙境)의 세계를 보여준다. 오밀조밀 모여 있는 검정색의 기와지붕과 줄지어 매달려 있는 오색의 연등(燃燈)이 함께 어우러지며 진풍경을 빚어 놓았다. 우측으로 하늘 높이 우뚝 서있는 전나무가 대문을 지키는 파수병처럼 외롭게 서있다. 돌로 석 축을 높이 쌓아 올려 아담하게 화단을 꾸며 놓았다. 선홍색의 붉은 꽃송이가 탐스럽게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명자 꽃이 길손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해남 달마산 산비탈에 있는 작은 동백꽃 송이와 많이도 닮았다. 파릇파릇한 연두색 잎이 싱그러운 상사화와 원추리 그리고 갈색 잎의 목단이 상큼한 봄 향기를 느끼게 해준다. 조그마한 꽃송이가 물방울처럼 조롱조롱 매달려 있는 구슬꽃나무가 싱그러움을 더하여준다.

 

대웅보전 법당에서 돌계단을 지나 남쪽으로 내려서면 중앙에 대광보전(大光寶殿)이 자리 잡고 있다. 조선후기 건축물로 보물 제802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광보전은 대웅보전과 함께 마곡사의 여러 건물 중에서 주가 되는 집채 즉 본전(本殿)이다. 대광보전 역시 임진왜란 당시 불타버려서 소실되었다. 이후1651년 각순대사가 뒤쪽에 있는 대웅보전과 함께 다시 중건을 했다. 그러나 1782년 또 다시 소실되고 말았다. 31년 후인 1813년에 다시 재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광보전 법당 정면에는 부처님이 모셔져 있지 않고 ‘관음보살도’, ‘나한도’ 벽화가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법당 내부좌측에 진리를 상징하는 비로자나불(毗盧遮那佛)이 동쪽을 바라보며 모셔져 있다. 불상 뒤편에 충청남도 유형문화제191호인 후불탱화(後佛幁畵) 영상회상도가 봉안되어 있다. 법당 내부 바닥에는 재질이 참나무로 만들어진 돗자리가 깔려 있다. 전면 창호(窓戶)에는 다양한 꽃살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대광보전은 안팎으로 구성과 장식이 풍부하고 건축 수법이 독특한 건축물로 조선후기 건축사 연구에 기중한 자료로 보존가치가 높다. 대광보전의 현판은 조선최고의 서예가인 강세황의 글씨로 글귀에서 힘이 느껴진다. 대광보전 뒤편에 대웅보전은 지형의 경사를 이용하여 건물이 중첩되어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이것은 다른 사찰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오직 마곡사에서만 있는 독특한 풍경이다.

철승산 진달래.

 

전통 한옥 정원 같은 널찍한 대광보전 앞마당에 서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다.

널찍한 마당 중앙에 하늘을 향해 높은 탑이 서 있다. 대광보전 법당을 향해 중앙에 정면으로 서 있는 모양이 특이한 보물799호인 공주 마곡사 5층 석탑(公州 麻谷寺 五層 石塔)이다. 이 석탑은 고려말기에 원나라 라마교 양식의 영향을 받아 세워진 탑이다. 다른 이름으로 다보탑 또는 금탑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탑의 2층 기단위에 5층 몸돌 탑신(塔身)을 올린 후 머리장식을 올렸다. 일층 몸돌에는 자물쇠를 새겼으며 이층 몸돌에는 사방을 지키는 사방불(四方佛)을 새겨 놓았다. 머리장식으로 보아서 라마탑에서 볼 수 있는 풍마동(風磨銅)장식을 두었는데 전 세계적으로 희귀한 사례이다. 임진외래란 당시 대광보전 화제와 함께 훼손되어 원래 탑재가 아닌 화강암으로 보수 한곳이 있으나 전체적으로 보존 상태가 양호하여 고려시대 석탑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전 세계적으로 단 3개만 남아있는 탑으로 매우 중요한 역사적 문화재로 평가 받고 있다.

 

대광보전 동쪽에는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35호 심검당(尋劍堂)이 있다. 심검당은 지혜의 칼을 찾는 집이다. 수행을 하고 있는 스님들이 일상생활을 하며 지내는 방이다.

심검당 건물이 언제 세워졌는지는 알 수가 없다. 남겨진 기록에는 조선 정조21년(1799년)에 보수 공사를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건물은 ‘ㄷ’자 형으로 건립되어 있으며 온돌방과 부엌 그리고 마루를 놓았다. 조선시대 상류층 가옥과 비슷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건물의 기둥은 네모기둥과 세모기둥을 혼합하여 세워져 있다. 마루 한쪽에는 조선 효종5년(1654년)충정도 대흥 안곡사(安谷寺)에서 제작한 유형문화재 제62호인 마곡사 동종(麻谷寺 銅鐘)과 목어 등이 있다.

 

심검당 북쪽에는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35호인 고방(庫房)이 있다. 고방은 2층 구조로 되어 있으며 스님들이 창고용으로 이용했다. 건립연대는 심검당과 같은 시기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고방 옆에는 특이한 형상을 하고 있는 굴뚝이 세워져 있다. 조선시대 말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마곡사로 숨어들어 옹기를 구웠다고 전해지고 있다. 지금 현존하고 있는 형상이 기이한 굴뚝은 그 때 당시 천주교인들이, 옹기를 구웠던 가마를 본떠서 진흙과 기와를 사용하여 굴뚝을 세웠다고 전해지고 있다.

 

대광보전 서쪽에는 백범 김구선생이 머물다간 백범당(白凡堂) 요사채가 있다. 요사채 옆에는 키가 나지막한 향나무 한 그루가 시선을 멈추게 한다. 이른바 백범 향나무’이다. 김구 선생이 활인봉정상아래 산중턱에 있는 백련암에서 한 동안 은거하며 지냈다고 한다. 김구 선생은 해방 후 1946년 이곳에 찾아와 대광보전 기둥에 걸려 있는 주련(柱聯) “각래관세간(却來觀世間), 유여몽중사(猶如夢中事) 돌아와 세상을 바라보니 꿈만 같구나! 라는” 능엄경에 나오는 문구를 보고 은거하던 시절을 회상하며 감개무량하여 향나무를 심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마곡사 백범당과 김구선생이 심어 놓은 향나무.

 

동쪽을 향해 문이 열려있는 응진전(應真殿) 앞에는 아기자기한 또 다른 조그마한 화원(花園)이 있다. 아직 꽃이 피지 않은 자목련, 연두색 초록색 잎이 싱그러운 상사화, 분재처럼 보이는 키 작은 소나무가 따뜻한 봄날의 싱그러움을 더하여준다. 마곡사 응진전은 백범당 남쪽에 있다. 마곡사(麻谷寺) 응진전(應眞殿)은 충청남도 문화재 자료 제65호로 지정되어 있다.

응진전은 부처와 부처의 가르침을 듣고 깨우침을 얻은 아라한(阿羅漢)을 함께 모신 전각으로 알려져 있다. 응진전을 다른 말로 나한전(羅漢殿)이라고도 한다. 응진전 법당 안쪽에는 중앙에 부처님을 중심으로 하여 부처님의 제자인 16 나한을 모시고 있다. 16 나한은 중생들에게 복을 나누어 주고 중생을 바른 법으로 인도하기를 원하는 성자(聖者)이기도 하다.

응진전의 불단(佛壇)은 불단 중앙에 석가모니부처님을 봉안했고 좌우에는 각각 미륵보살과 제화갈라보살, 아난존자(阿難尊者)와 가섭존자(迦葉尊者), 16 나한을 배치했으며 마지막에 범천(梵天)과 제석천(帝釋天)을 모셔 놓았다.

 

마곡사 북원에서 제일 남쪽에는 2층 누각으로 이루어져 있는 범종각(梵鍾閣)이 있다. 규모가 큰 사찰에서 볼 수 있는 범종각에는 불교 의식에 사용되고 있는 법고(法鼓), 운판(雲板),목어(木魚), 범종(梵鍾)등 사물(四物)있다. 여기서 사물(四物)은 불교 의식에 사용되는 북, 물고기, 범종, 그리고 시간을 알려주는 운판을 말한다. 이러한 사물(四物)의 용도는 모두 부처님께 예불(禮佛)을 드릴 때 사용하고 있는 불구(佛具)로, 새벽 예불과 오전9시~11시 사이에 부처님께 불공을 드리는 사시공양(巳時供養)과 저녁 예불 때 사용하고 있다. 불교(佛敎)에서 말하고자 하는 사물(四物)은 소리(佛音)를 전파 하는데 있다. 새벽과 저녁에 고요한 산사에서 울려 퍼지는 범종(梵鍾)의 소리는 청정하고 맑은 불사(佛寺)에서 지옥의 중생을 향하여 불음을, 법고는 모든 축산(畜産)의 무리, 운판(雲板)은 허공을 날고 있는 모든 생명을, 목어(木魚)는 수중에 있는 모든 어류와 살아 있는 모든 생명들을 향해 불음을 보낸다는 것을 의미(意味)하고 있다. 남쪽에 있는 마곡사 범종각을 끝으로 하여 마곡사 북원을 모두 돌아보고 극락교를 건너 남원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마곡사 범종각 남쪽에는 마곡사를 감싸고 흘러가는 태극형의 마곡천이 있다. 이 마곡천을 중심으로 하여 마곡사는 북원과 남원으로 나누어진다. 또한 청명하고 맑은 청수가 마곡사를 감싸며 흘러가는 마곡천에는 남쪽과 북쪽을 이어주는 극락교(極樂橋)가 놓여 있다.

극락교를 지나며 아래쪽을 무심히 내려다보면 조용히 흐르던 마곡천 계곡물이 부글부글하며 소란스러워진다. 사람의 발소리를 듣고 모여드는 잉어 떼 소리다. 다리 앞에는 잉어의 먹이를 판매하는 곳이 있다. 가족들과 함께 봄나들이를 나온 귀여운 꼬마들이 먹이를 뿌려주며 신기한 듯이 내려다보는 모습이 마냥 귀엽다. 극락교 아래쪽을 흘러가는 마곡천은 수심이 깊고 물의 양도 엄청나게 많다. 이 마곡천은 북쪽에 있는 태화산 골짜기에서 발원하는 물줄기이며 마곡사 중심부를 태극형으로 감싸며 돌아 흘러간다. 마곡천 양쪽으로 빼곡히 많은 나무들이 줄지어 서있는데 특히 화사하게 활짝 만개한 새하얀 벚꽃나무가 장관을 이루고 있다. 마곡천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이어지고 있는 호젓한 수레 길은 한적하고 조용하여 명상과 사색을 즐기는 장소로 손색이 없다.

마곡사 범종각.

 

마곡사 북원에 있는 범종각 앞에서 극락교를 건너서면 남원에 있는 천왕문(天王門)이 있다.

태화산 남쪽 기슭에 있는 마곡사의 두 번째 문인 천왕문은 1984년 5월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62호로 지정되어 있다. 천왕문 남쪽에는 마곡사의 정문인 해탈문(解脫門)이 있다. 마곡사 해탈문은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66호로 지정되었다. 해탈문을 지나면 속세를 벗어나 부처님의 세계 즉 법계(法界)에 들어서게 된다고 하며 ‘해탈을 하겠다는’ 원력(原力)을 갖게 된다고 한다. ※원력(原力)은 부처님에게 빌어 소원하는 바를 이루려는 의지를 뜻한다.

 

해탈문과 천왕문 사이 서쪽으로 담장을 둘러친 안쪽에 오래된 전각(殿閣) 있는데 이 법당이 바로 영산전(靈山殿)이다. 마곡사 영산전은 현재 남아 있는 법당 중 가장 오래되었다. 1650년에 중수돼 현재 보물 800호로 지정되어 있다. 마곡사 영산전은 예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진 정승과 용맹스러운 장수를 만들어 낸다는, 군왕대의 모든 기운이 모여 있는 가장 영험이 큰 전각으로 알려져 있다. 영산전에는 고려시대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목불 7구가 남아 있다. 마곡사에는 세조(世祖: 1417-1468)가 잠시 이곳에 머물렀던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생육신의 한사람인 매월당 김시습(梅月堂, 金時習)이 이곳에 은거하였으니 그를 만나고자 세조가 행차 했다. 그러나 김시습은 세조가 자신을 만나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 마곡사를 떠났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세조는 김시습이 나를 버리고 떠났으니 연(輦)을 타고 갈수 없다하여 소를 타고 돌아갔다. 세조는 마곡사를 떠나면서 인연의 흔적을 남겼다. 그것이 바로 영산전(靈山殿)의 편액이다. 지금도 이곳에는 세조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 세조의 친필인 영산전의 편액과 마곡사에 올 때 타고 온 세조왕연(世祖旺輦)이 그것이다.

 

영상전은 본래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인도의 영축산에서 법화경을 설하시던 당시의 광경인 영산화상을 재현해 모신 법당이다. 이곳에는 석가모니 부처님과 10대 제자 그리고 16나한을 모시기도 한다. 그러나 유독 마곡사의 영산전 불단(佛壇)중앙에는 석가모니의 과거칠불인 비바시불(毘婆尸佛),시기불(尸棄佛),비사부불(毘舍浮佛),구류손불(拘留孫佛),구나함불(拘那含佛),가섭불(迦葉佛),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을 모셔놓았고, 그 주위에 현겁(現劫)의 천불(千佛) 부처님을 모셔 놓았다. ※과거칠불이란 석가모니 부처님 이전에 이 세상에 출현하였다고 하는 일곱 분의 부처님이다. 석가모니 불과 그의 일대기를 표출시킨 영산전(靈山殿) 은 누구나 볼 수 있게 문이 활짝 열려있다. 중앙에 석가모니의 과거칠불인 부처님을 모셔 놓고, 양쪽에 1000분의 부처님이 일렬로 앉아 있는 모습을 보니 마치 극락세계(極樂世界)를 보는 것만 같다. ※과거칠불이란 석가모니 부처님 이전에 이 세상에 출현하였다고 하는 일곱 분의 부처님인 비사시불, 시기불, 비사부불, 구류손불, 구나함불, 가섭불, 석가모니불이다.

마곡사 연두색 신록.

영산전 정문에서 앞 동쪽으로 흥성루(興聖樓) 누각이 있다. 흥성루에서 북쪽으로 ‘ㄷ’자 형의 전통 건물인 매화당(梅花堂)이 마곡사 태화선원(泰華禪院)이다. 마곡사 태화선원은 그리 오랜 전통을 갖지는 못했지만 해마다 하안거(夏安居)와 동안거(冬安居)에는 몇 분의 수좌 스님들이 찾아와 정진(精進)을 하는 곳이다. 특히 선원이 자리하고 있는 북쪽으로 풍수지리학에서 말하는 천하의 대혈(大穴)인 군왕대(君王垈)가 있다. 이곳을 조선7대왕 세조가 ‘만세불망지지(萬世不忘之地)’라 부를 만큼 기가 융성한 곳이라서 장부일대사(丈夫一大事)를 해결하려는 선객(仙客)들의 해안(解顔)이 번쩍이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선원은 좌선(坐禪)을 수행하는 좌선방(坐禪房)또는 선방(禪房)이라고 부르고 있다. 선방에서 정진하는 스님을 수좌(首座)로 부르고 있다. 선원은 한국의 불교에서는 강원(講院)과 함께 전통적인 승려 교육기관으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원칙적으로는 일정한 교육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 강원 수료자가 들어가 자율적으로 수행하는 높은 단계의 평생 수행의 장이라고 할 수 있다.

 

선원은 수행이 자율적인 대신 그 규율은 엄격하여 파계나 나태한 행위는 일절 금지되고 있다. 대중이 규약한 규칙을 엄하게 지키는데 이를 대중청규(大衆淸規)라고 한다. 선원의 전통적인 수행방법은 스스로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다. 초하루와 보름에 삭발식과 함께 조실(祖室)또는 선지식(善知識)의 설법을 듣는다. 참구하는 도중 의심이 생기면 조실 또는 선원장에게 찾아가 질문하여 의심을 풀게 된다. 한국 선불교의 전통은 화두(話頭)를 가지고 이를 해결하는데 전심전력을 기울이는데 이를 간화선(看話禪)이라고 한다. 화두란 한자 그대로는 말의 머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일반 범부의 사량으로는 도저히 답을 낼 수 없는 의심 덩어리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화두를 든 수행자는 스스로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은산철벽(銀山鐵壁)에 자신을 가두고, 그곳을 빠져나오기 위한 다함없는 정신을 하는 것을 말하며 이렇게 정진하는 곳이 선원이다. 우리나라 선원은 정기적으로 일정한 기간 동안 단체로 수행을 하는 안거(安居)수행을 하고 있다. 음력4월15일에서 7월15일까지를 하안거(夏安居)거라 하고, 음력10월15일에서 다음해 1월15일까지를 동안거(冬安居)거라고 부르고 있다.

 

마곡사 매화당에서 북쪽에 있는 건물이 명부전(冥府殿)이다. 명부전은 다른 말로 지장전(地藏殿)이라고도 부르고 있다. 마곡사 명부전은 즉음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보면서 그 동안의 업장(業障)을 참회(懺悔)하고 소멸(消滅)하는 기도처로 알려져 있다. 명부전은 지장보살님을 중상 불단에 모시고 있으며 좌우에 ‘ㄷ’자형의 불단을 만들어 저승의 심판관인 시왕님을 모셔 놓았다. 법당 안에 모셔 놓은 지장보살님께 기도하면 과거와 현재의 모든 업보와 죄를 소멸 할 수 있다고 한다. 특히 지장보살님을 모시고 있는 명부전은 북쪽에 있는 군왕대의 좋은 기운이 모인 곳으로 참회와 정진에 좋은 터로 알려져 있다.

건물에는 지장보살님을 중앙 불단에 모시고 있으며, 좌우에 ‘ㄷ’자형의 불단을 만들어 저승의 심판관인 시왕님을 모셔 놓았다.

 

마곡사 매화당 서쪽에는 국사전 건물이 있다. 마곡사 국사전(國師殿)또는 조사전(祖師殿)은 역대 조사(祖師)나 그 종파의 조사스님, 사찰의 창건주, 역대 주지스님등 해당 사찰과 관련하여, 후세에 존경을 받는 스님들의 영정(影幀)이나 위패(位牌)를 모셔놓은 전각이다. 사찰에 따라서는 조당(祖堂)또는 조사당(祖師堂)이라고 도 한다.

마곡사 대웅보전 옆 금계 측백나무.

 

제일 북쪽에는 산신각이 있다. 대부분의 사찰에서 볼 수 있는 산신각은 풍수 지리학에서 핵심인 결혈처(結穴處)에 석가모니부처님을 모신 대웅전(大雄殿)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산신각 혹은 삼성각(三聖閣)이나 지장전(地藏殿)법당이 자리하고 있다. ※지장전은 다르게 명부전(冥府殿)이라고도 한다. 산신각(山神閣)은 한국 사찰 특유의 전각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산신은 불교와 전혀 관계가 없는 한국사찰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토착신이다. 산신각 내부에는 대부분 산신 탱화가 모셔져 있다. 그러나 산신각에는 호랑이와 노인의 모습을 묘사한 산신(山神)을 봉안 하거나 이것을 탱화(幁畵)로 도상화(圖像畵)한 그림을 모셔놓기도 한다.

 

이밖에 남쪽에 영산전 건물과 비슷한 면적의 흥성루가 있다. 흥성루는 마곡사에서 큰 행사가 있을 때 사용했던 건물로 보이고 있다. 흥성루 남쪽에 있는 수선사는 스님들이 일상생활을 하시면서 사용하는 요사채 건물이 아닌가 생각된다. 수선사 건물을 마지막으로 하여 마곡사 남원일대를 모두 돌아보게 되었다. 마곡사에는 작은 부속암자가 곳곳에 있다. 남쪽에 영은암(靈隱庵), 은적암(隱寂庵) 서쪽에 대원암(大願庵), 백련암(白蓮庵)이 제일 북쪽에 토굴암(土窟庵)이 있다. 모든 암자를 돌아보고 싶지만 아쉽게도 탐방 시간이 부족하다. 다음을 기약하면서 마곡사 탐방을 모두 마친다. 마곡사는 사방을 푸른 소나무 숲이 일품이 산 능선이 병풍처럼 아늑하게 감싸고 있다. 사찰 주위에는 아름드리 고목이 천연 울타리를 빚어 놓은 진풍경은 이곳이 산사가 아닌 딴 세상을 보고 있는 기분이 들게 해준다. 특히 법당 안쪽에는 정원수처럼 보이는 단풍나무가 줄지어 서있다. 마곡사에서는 매년 파릇파릇한 연두색 신록이 절정에 이르는 싱그러운 푸른 5월 달이면 마곡사 신록축제를 열고 있다. ‘춘마곡, 추갑사’(春麻谷, 秋甲寺)의 비밀은 태극형 물줄기로 마곡사를 감싸며 돌아나가는 마곡천과 울창한 나무들이 마곡사를 감싸고 있는 파릇파릇한 연두색 신록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사찰을 찾으면서 법당 앞에 걸려있는 현판의 이름에 관심을 한번쯤은 가졌을 것이라 생각된다. 사찰에 있는 법당의 이름은 법당 안에 모셔 놓은 부처님인 주존불(主尊佛)에 따라서 달라진다. 법당에 석가모니불상이 주존불로 모셔져 있으면 대웅전(大雄殿)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 사찰의 90% 이상이 대웅전 법당이 있다. 법당 중앙에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좌측에 아미타불(阿彌陀佛), 우측에 약사여래불(藥師如來佛)을 모셔 놓으면 대웅전이 아니라 대웅보전(大雄寶殿)이라고 불러야 한다. 법당에 시방극락세계(十方極樂世界)를 다스리는 아미타불(阿彌陀佛)이 주존불로 모셔져 있으면 미타전(彌陀殿), 아미타전(阿彌陀殿), 무량수전(無量壽殿),무량수각(無量壽閣)혹은 극락전(極樂殿)이라 부르고 있다. 법당에 미륵불(彌勒佛)이 주존불로 모셔져 있으면 미륵전(彌勒殿)이라 부르고 있다.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과 약사여래불(藥師如來佛)이 주존불로 모셔 놓은 법당은 관음전(觀音殿)또는 원통전(圓通殿)전이라 부르고 있다. 법당에 모셔놓은 관세음보살은 한손에 감로수병을 약사여래불은 한손에 약병을 들고 있다.

 

마곡사를 모두 돌아보고 오전에 올라왔던 도로를 지나 남쪽으로 내려서면 태화산(泰華山) 마곡사(麻谷寺) 일주문(一柱門)이다. 일주문은 사찰로 들어가는 첫 번째 문이다. 건물은 맞배지붕양식에다 건물양쪽에 일렬로 기둥을 세워놓았다. 일주문의 이러한 기둥양식은 일심(一心)을 상징하고 있다. 청정한 도량(道場)에 들어가기 전에 속세(俗世)의 모든 번뇌(煩惱)를 말끔히 씻고 한마음이 되어야 한다는 뜻을 품고 있다. 태화산 일주문을 지나 남쪽으로 내려서면 주차장이 있는 마곡사 시설지구이다. 마곡사 시설지구 맞은편에는 장승마을이 있다. 이곳의 산세를 둘러보니 우화한 여성미를 느끼게 해준다. 우람한 남성미를 찾아보았지만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선조들은 미리 이것을 알고 풍수지리학으로 풀었다. 음과 양을 맞추고자 십이지에 나오는 12마리 동물들의 형상을 나무를 이용하여 장승을 만들어 세워 놓았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 형상을 한 많은 장승을 세워 놓아 조그마한 장승 공원처럼 느끼게 해준다. 대부분의 사찰은 수려하고 아름다운 계곡을 품고 있는 산이나 비취색의 푸른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다. 마곡사는 깊은 산속에 있는 절이라기보다는 계곡 속에 자리한 절이라고 표현하는 게 어울릴 만큼 계곡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봄이 무르익어 가는 사월 하순이면 야생화들이 지천에 피어난다. 때맞추어 나무들도 포동포동 하게 물이 오른다. 파릇파릇한 연두색의 신록이 돋아 날 무렵 마곡사를 다시 한 번 찾아와 색다른 추억을 남기고 싶다.

사찰에서 즐겨보는 꽃들은 모두가 붉은 선홍색으로 화려하거나 흰색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동백, 명자, 구슬꽃, 꽃무릇, 연꽃, 벚꽃과 백목련, 자목련 그리고 간혹 노란색의 겹 황매화도 있지만 소수이다. 이것은 아마도 부처님께서 계신다는 극락세계를 화사한 꽃으로 표현하고자 함이 아닐 넌지? 따뜻한 봄이 무르익어가는 4월 중순 마곡사의 아름다운풍경을 소중한 추억으로 남기면서 오늘 산행 일정을 모두 정리한다.

※ 본문에 기록되어 있는 마곡사의 모든 내용은 마곡사 사찰을 탐방하면서 기록해 두었던 안내판 글과, 대한 조계종 제6교 본사 마곡사 홈페이지에서 일부 내용을 인용하였습니다.

마곡사 마곡천 계곡과 징검다리.
마곡사 구슬꽃.
마곡사 극락교 풍경.
마곡사 극락교에서 바라본 대광보전.
마곡사 붉은병꽃나무.
마곡사 대웅보전 서편풍경.
마곡사 대웅보전 화단.
마곡사 대웅보전앞에서 바라본 풍경.
마곡사 시설지구 유채꽃.
마곡사 명자꽃.
마곡사 자목련.
마곡사 응진전 풍경.
철승산 제비꽃.
철승산 진달래.
상사화, 원추리, 목단.
마곡사 극락교와 범종각.
마곡사 현호색.
마곡사 박태기 나무.
마곡사 안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