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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남해 호구산(虎丘山), 송등산. 봄꽃 산행.

풀꽃사랑s 2021. 2. 5. 16:17

남해 호구산, 송등산.

경상남도 남해군 남해읍 이동면 남해지맥 마루금에 우뚝 솟구쳐 있는 해발619m미터인 호구산은 지도에는 존재하지 않는 산으로 알려져 있다. 그 연유를 알게 되면 고개가 절로 끄덕이게 된다. 호구산의 원래이름은 원산(猿山) 또는 납산이라고 했다. 실제로 정상에 세워 놓은 정상석의 글귀도 호구산(虎丘山)이 아니라 납산이라고 새겨져 있다. 여기서 ‘납’은 원숭이의 옛말이다. 원숭이를 한자로 표기하면 ‘원(猿)’이니 산 이름을 원산(猿山)로 표기해야 맞다. 1530(중종25)년에 왕명에 의하여 이행(李荇), 윤은보(尹殷輔)가 펴낸 인문 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원산(猿山)’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산 이름을 원숭이 ‘원(猿)’자와 원숭이의 옛말인 ‘납’ 자를 사용한 이유는 이산을 북쪽에서 바라 봤을 때 원숭이가 웅크리고 앉아 있는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호구산의 공식명칭은 1961년4월22일에 납산으로 정해졌다. 그러나 정상 봉우리에서 남쪽 산중턱에 있는 용문사 쪽으로 뻗은 남해지맥의 형태가 호랑이가 누워있는 모습이라 해서 또 다른 이름인 호구산(虎丘山)이라 불렀고, 1983년 서쪽에 있는 송등산(해발617m)과 북쪽에 있는 괴음산(해발600m)을 묶어서 호구산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지리산 호랑이가 이 산으로 건너와 살았다는 전설도 있다. 실제로 산세가 수려하여 사람들도 감탄하는데 산 짐승인 호랑이가 그 것을 느끼지 못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널찍한 너럭바위로 이루어진 호구산 정상에는 2단 원통으로 쌓아 올린 봉수대가 난공불락 같은 견고한 요새처럼 서 있다. 사방이 확 트인 정상에서 휘둘러보는 장쾌한 풍경은 천하의 일품이다. 사방팔방 어디로 눈길을 주어도 시원스럽게 펼쳐지는 남해의 아름다운 풍경이 한눈 가득하게 들어온다. 정상에서 북쪽은 하동금오산과 남해 대방산 호두산 창선대교가 시원스럽게 조망된다. 동쪽은 창선도와 사천만이, 서쪽은 여수 영취산과 진례봉, 남해 망운산이 선명하게 조망된다. 남쪽으로는 남해 금산과 설흘산, 응봉산산이 앵강만을 포근하게 감싸고 있다. 호구산 정상에서 남쪽 산자락에는 염불암, 백련암등 부속암자와 천연고찰 용문사가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다. 신라문무왕 3년(663)원효대사(元曉大師)가 창건한 용문사에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석불좌상, 천왕각, 명부전, 촌은선생의 집책판, 심혈포와 수국사 금패등 많은 문화재가 있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앵강만의 아름다운 풍경은 놓쳐서는 안 되는 아름다운 볼거리중의 하나이다. 비취색의 푸른 남해 바닷물 위에 보석처럼 뿌려져 있는 다도해 섬들 사이로, 서포 감만중이 유배생활을 하며 ‘사씨남정기’를 집필했던 노도 섬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이다.

 

보물섬이라 불리는 남해도는 많은 명산을 품고 있다. 여린 새순이 돋아나기 시작하는 4월 중순이면 육지에서 볼 수 없는 진기(珍奇)한 연두색 신록(新綠)을 볼 수가 있다. 진기(珍奇)한 봄 손님을 맞으러 남해로 길을 나선다. 남해를 찾는 많은 사람들은 새하얀 벚꽃이 절정일 무렵이면 남해대교를, 벚꽃이 지고 섬이 연두색의 푸른 물결이 출렁일 무렵이면 창선대교를 많이 애용한다. 다리를 지나 섬에 들어서니 산비탈에는 노란 유채꽃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이른 봄이면 유채꽃이 만발하여 이국적인 풍경을 선물하는 제주도가 부럽지 않다. 마음 같아서는 차를 세우고 잠시 내려 노란 꽃송이 사이를 마음껏 거닐고 싶다.

 

호구산 탐방은 1024번지방도인 앵강고개에서 수레 길을 따라 북서쪽으로 올라서며 시작한다. 앵강고개에서 숲 속에 있는 묘를 지나 서쪽으로 산 능선으로 올라서도 될 것 같다. 시멘트로 포장된 수레길 한쪽 모퉁이에는 파릇파릇한 쑥갓, 고사리가 산뜻한 봄맛을 느끼게 해준다. 푸름을 자랑하는 편백나무 숲이 봄날의 운치를 더하여 주고 보라색의 제비꽃과 노란색의 양지꽃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야생화들이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해준다. 수레 길을 지나 10분 정도 올라서면 호구산 이정표를 만나게 된다. 경사가 완만한 언덕 오름 길을 지나 올라서면 널찍한 헬기장이다. 용문사와 호구산 정상으로 올라서는 갈림길 입구에는 많은 표지기가 붙어 있다. 호구산이 아닌 원산이란 글귀가 머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처음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낯선 산 이름을 보고 약간의 혼란을 가져오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원시림을 방불케 하는 빼곡하게 줄지어 들어선 나무들 사이로 꿈길 같은 호젓한 오솔길이 이어진다. 떨어진 솔잎을 밟으며 발걸음을 사뿐사뿐 옮기니 양탄자처럼 푹신푹신한 부드러운 감촉이 발끝에서 온몸으로 전해져 온다. 허리 높이로 담장처럼 쌓아 놓았던 석성(石城)은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허물어져 버리고 파편들만 남아 있다. 남아 있는 작은 돌들이 마치 시골의 돌담처럼 끝없이 길게 능선 길을 잇는다. 올라서면 설수록 높이를 더하는 호젓한 오솔길은 지루하고 힘들기 보다는 발걸음을 옮길 때 마다 기분이 상쾌하다. 곳곳에 아담하게 자리 잡은 미니전망대에 올라서 휘둘러보는 아름다운 풍경은 산행의 묘미를 한층 더하여준다. 허물어진 두 봉분이 있는 묘를 지나면서부터는 수목원에 온 듯한 푸근한 호젓한 오솔길은 끝이 나고 험준한 바위길이 나타난다. 양지바른 쪽에 보라색의 꽃을 피운 각시붓꽃이 앙증맞게 고운 자태를 드러낸다. 비좁은 바위 틈새에는 핑크색의 꽃을 피운 산철쭉이 질박한 아름다움을 선물한다.

 

가파른 언덕길로 올라서면 두 개의 바위기둥이 널찍한 너럭바위 전망대이다. 우뚝 솟은 반석 위에 서면 삼면이 탁 트여서 북쪽에 강진해와 남쪽 앵강만의 조망이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고개를 숙여 깎아 지를듯한 벼랑 아래를 굽어 내려다보면 너무도 깊고 험준해서 눈앞이 아찔하다. 형형색색의 곱고 고운 단풍은 가을철에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울창하게 원시림의 숲을 이루고 있는 나무에는 일제히 초록, 파랑, 연두색의 여리고 여린 새순이 돋아나고 있다. 알록달록한 연두색 신록이 바닷물과 어우러지며 한 폭의 진경산수화를 빚어 놓았다. 파릇파릇한 연두색의 싱그러운 신록이 첫사랑의 여인을 만난 것처럼 가슴을 설레게 해준다. 해안선에서 육지 깊숙이 붉은 황토 흙으로 이루어진 광활한 기름진 들녘이 들어앉아 있다. 산비탈에 줄지어 서 있는 푸른 편백나무들은 모양이 크리스마스 추리를 만들 때 많이 사용하는 전나무 같다. 바위 안부를 지나 기암괴석이 거대한 군락을 이루고 있는 돗틀바위 정상에 올라선다. 신기하게도 바위 틈새에 흰색에 가까우면서 엷은 분홍색의 꽃송이가 탐스러운 철쭉꽃이 길손을 반긴다. 바다를 내려다보며 외롭게 서있는 푸른 소나무가 싱그러움을 더하여준다.

 

이곳에서 북서쪽으로 올라서는 짧은 바위능선은 비좁은 협곡을 가로 질러 놓여 있는 다리 같다. 자연 지형을 그대로 이용한 성벽의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동화책속에서나 볼 수 있는마법의 성을 보는 듯하다. 능선에 올라서서 몇 발자국을 옮기면 봉분이 흙이 아닌 넙적한 돌무덤이 인상적인 진양 하씨 묘이다. 땅속에 묻힌 망자가 유언을 남겼는가? 아니면 후손들이 풍수지리학을 풀어서 그렇게 하였는지 신비스러움과 궁금증만 더해진다. 무덤을 지나 만나는 널찍한 헬기장에는 각시붓꽃과 야생화들이 수줍은 듯이 꽃망울을 열었다. 부드러운 흙 길이 10분 이상 이어진다. 나무 숲 아래쪽에는 바람난 여인네 마냥 어여쁜 꽃송이는 봄나들이를 갔는지, 잎만 남은 얼레지가 처량한 모습을 하고 있다. 험준한 바위 능선 길을 이으면서 잡목이 무성한 삼거리 안부에 올라선다. 바로 지척에 하늘 높이 우뚝 솟은 우람한 호구산 정상이 터줏대감처럼 앉아 있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봄바람을 맞으며 잠시 휴식을 취한다. 남쪽 용문사에서 올라온 산 꾼들이 점심을 먹으려고 분주하게 움직인다. 오전 내내 산사처럼 조용하기만 하던 산속이 갑자기 시끌벅적한 소리로 요란하다.

 

오늘 산행의 최고 백미라 할 수 있는 호구산 정상으로 올라서기 위해서는 높은 언덕처럼 되어 있는 가파른 절벽으로 올라서야 한다. 생각 했던 것보다 그렇게 힘들이지 않고 쉽게 오를 수가 있다. 커다란 하나의 바위 봉우리로 된 호구산의 일자머리 부분은 100m미터에 가까운 용마루(등성마루)를 위에 두고 남쪽으로 지붕처럼 생긴 비탈의 바위가 널찍하고, 그 처마 끝은 높은 벼랑을 이루고 있다. 북쪽과 서쪽, 그리고 동쪽으로 눈앞이 아찔한 깎아 지를듯한 가파른 천 길 낭떠러지를 이루고 있다. 남쪽으로 눈길을 주면 꾀꼬리 앵(鶯)자와 강강(江)자를 써 새소리가 들릴 만큼 고요한 강과 같다는 듯을 가진 앵강만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비취색의 푸른 앵강만 바닷물위에 보석처럼 점점이 뿌려져 있는 올망졸망한 섬들이 무리지어 있다. 이 섬들 중에서 서포 김만중이 유배생활을 하며 사씨남정기 서포만필을 집필하고 생을 마감했던 큰 섬인 노도 섬이 조망된다. 아이러니 하게도 조선시대 정치를 하던 죄인들이 유배생활을 했던 유배지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유명한 관광지로 탈바꿈하고 있다.

 

앵강만 동쪽으로 남해의 명소 다랭이논을 품고 있는 응봉산과 설흘산으로 이어지는 힘찬 산줄기가 얼굴을 내민다. 앵강만 서쪽에는 전국에 유명하게 알려져 있는 보리암과 울창한 송림 숲과 황금빛 모래사장이 아름다운, 상주해욕장을 품고 있는 남해의 금산이 지긋이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다. 양쪽에 덩치가 큰 산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풍경은 멀리서 보면 국경이나 요새의 커다란 성문처럼 보인다. 그 안쪽 깊숙이 물결조차 일렁이지 않는 새파란 바닷물이 일품인 앵간만을 금산과 설흘, 응봉산 산줄기가 감싸 안고 있다. 북쪽으로 눈길을 주면 저 멀리 하동 금오산과 남해 대방산, 사천 와룡산과 남해창선대교가 한눈에 조망된다. 서쪽으로 눈길을 주면 길게 북쪽으로 파로나마치고 있는 남해지맥 산줄기에 솟구쳐 있는 송등산과 괴음산이 있다. 저 멀리 여수 영취산 진래봉과 남해 망운산이 조망된다. 동쪽으로 눈길을 주면 창선도와 사천만이 한눈 가득하게 조망된다.

 

북쪽에는 비취색의 푸른 바닷물이 일렁이고 있는 널찍한 강진해가 내륙 깊숙이 들어앉아 있다. 똑 같은 비취색의 푸른 바다인데 도 불구하고 갯벌이 훤하게 비취는 강진해는 순하고 부드러운 여성미를, 짙은 청색을 하고 있는 앵강만은 힘이 넘치는 남성미를 느끼게 해준다. 남해바다 해안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남해시가 그 뒤로 저 멀리 경남 하동이 어렴풋이 조망된다. 호구산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섬섬옥수가 한곳에 모이는 다정저수지물이 마치 새파란 가을 하늘처럼 푸른색이다. 아래쪽에 광활한 면적의 널찍한 남해들녘은 풍요로움을 느끼게 해준다. 산 중턱에 빼곡하게 우거진 파릇파릇한 연두색 신록은 선경의 세계를 보고 있듯 하고, 듬성듬성 서있는 산 벚꽃나무에 피어있는 새하얀 꽃송이가 봄 산행의 운치를 더하여 준다. 서쪽으로 길게 남해지맥이 파노라마치고 고만고만한 높이를 자랑하는 봉우리들이 서로 자웅을 겨룬다. 남해지맥에서 좌우로 긴 날개를 펴고 힘차게 골짜기를 이루며 움푹 페인 지능선의 산줄기는 사나운 호랑이의 줄무늬 같다. 호구산 남쪽 양지바른 산속에는 백련암이 아담하게 들어앉아 있다. 바로 옆에는 호구산 정상의 상징인 옛날 봉화를 올렸던 봉수대가 있다. 잔돌을 쌓아 올린 탑의 윗부분은 무너져 버렸고 지금은 아랫부분만 남아 있다.

이렇듯 사면팔방이 시원스럽게 탁 트인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풍광이 절경을 펼치고 있다.

 

깎아지른 바위 절벽인 만큼 내려서는 길 또한 쉽지만은 않다. 갈라진 비좁은 바위 틈 사이를 두발과 두 손을 이용하여 세미클라이밍(Semi-Climbing)을 하면서 내려서야 했다. 5분 정도 내려서면 염불암과 송등산, 삼거리 갈림이다. 삼거리 갈림길에서 동쪽은 지나온 호구산 정상으로 올라서게 된다. 서쪽은 송등산으로 내려서는 길이다. 남쪽은 염불함과 백련암 용문사로 내려서는 길이다. 능선 길에서 안쪽으로 조금 떨어져 있는 삼거리 갈림길과 이정표를 확인하고 널찍한 장소에서 점심을 먹는다. 사루비아님이 준비해 오신 푸짐한 음식을 겉들이니 만찬이 따로 없다. 적은 인원이라 그런가. 도란도란 서로 살아온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먹는 밥이 꿀맛이다. 점심식사 후 휴식을 한 다음 바로 용문사로 하산 길을 잡으려다 시간이 충분한 것 같아 처음 계획한 서쪽에 있는 송등산 까지 산행 길을 이어서 진행을 한다.

 

상당히 험할 것만 같았던 남해지맥 길은 생각했던 것과 달리 호젓하고 운치가 있다. 오지 않았으면 크게 후회할 뻔 했다. 숲 속에서 만나는 붉은색의 꽃송이가 탐스러운 산철쭉은 정겨움을 더해준다. 나지막한 언덕을 넘고 크고 작은 바위 돌이 늘려있는 비좁은 바위틈 사이로 붉은 속살을 드러낸 선홍색의 붉은 산철쭉 꽃송이가 수줍은 봄 색시마냥 싱그러움을 더하여준다. 꽃잎 밖으로 길게 얼굴을 내밀고 있는 꽃 수술 끝부분에 검붉은 색의 새까만 반점이 메뚜기의 홑눈 같이 보인다. 이팝나무처럼 새하얀 꽃잎이 조롱조롱 매달려 있는 연두색 신록이 아름다운 쇠풀푸레나무를 능선 길 곳곳에서 만난다. 솜사탕처럼 보이는 새하얀 꽃송이가 상큼한 봄 향기를 느끼게 해준다. 이윽고 송등산 정상에 올라선다. 이곳 역시 정상에서 휘둘러보는 풍경은 정말로 아름답다. 송등산 정상에서 서쪽으로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남해지맥너머 남서쪽으로 여수만과 광양만의 푸른 바닷물이 넘실거린다. 붉은 햇살이 부서져 내리는 바다 위에 보석처럼 뿌려진 다도해의 섬들이 정겨움을 더하여준다.

 

저 멀리 남서쪽으로 여수 돌산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북쪽으로 통신 중계 탑이 서있는 남해망운산은 비취색의 남해 바다를 조망 할 수가 있고, 철쭉이 아름다운 산으로 명성이 자자하게 알려져 있다. 정상에서 서쪽으로 남해 귀비산과 천황산이 북쪽으로 괴음산이 조망된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뒤 돌아본 능선 길. 여인의 허리선처럼 미끈하게 호구산 정상을 향해 달려가는 남해지맥 그리고 주위의 아름다운 풍광이 절경을 펼쳐 보이고 있다. 비록 군수에 해당하는 벼슬자리는 호구산에 내어 주었지만, 중앙에 터줏대감처럼 앉아서 이곳저곳을 관장 할 수 있는 수장의 자리로는 손색이 없을 듯하다. 이제 하산 길. 송등산 정상에서 조금 전에 지나온 동쪽 호구산 정상 쪽으로 다시 발걸음을 재촉하며 내려선다. 전방에 보이는 해발 561m미터 봉우리에 올라섰다가 동쪽으로 내려서면 삼거리 갈림길이다. 삼거리 갈림길에서 서쪽은 지나온 송등산 정상으로 올라서는 길이다. 동쪽은 호구산 정상으로 올라서는 길이다. 남쪽은 두곡해욕장으로 내려서는 길이다. 삼거리 갈림길에서 동쪽으로 내려서면 또 다른 갈림길인 용문사로 내려서는 삼거리 갈림길과 만나게 된다. 삼거리 갈림길에서 동쪽으로 올라서게 되면 호구산 정상이다. 서쪽으로 내려서면 송등산 정상이다. 남쪽으로 내려서면 염불암과 백련암을 지나 용문사로 내려서게 된다.

각시붓꽃.

 

호구산의 참 맛은 하산 길에 있다고 할 만큼 내려가는 길에 다양한 볼거리가 기다리고 있다. 삼거리 갈림길에서 남쪽으로 파릇파릇한 연두색 신록이 푸른 울창한 숲길을 지나서 내려선다. 울창하게 우거진 원시림의 숲에서 뿜어져 나오는 맑은 산소로 산림욕을 즐기며 호젓한 오솔길을 지나 20분 정도 내려서면 산 중턱에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는 염불암이다. 염불암으로 들서는 길 입구에는 하늘을 찌를 듯한 푸른 대나무 숲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푸른 대나무 숲 옆에는 수령이 수십은 족히 넘어 보이는 은행나무가 서 있다. 파릇파릇한 연두색 잎이 막 돋아나고 있는 은행나무가 상큼한 봄맛을 느끼게 해준다. 용문사에 거주하고 있는 스님들의 수행 처라 그런가! 대웅전의 문은 굳게 닫혀있다. 한쪽 모퉁이의 산비탈에는 잘 가꾸어 놓은 싱그러운 녹차 밭이 산사의 아름다운 운치를 더하여준다. 앞마당에는 동백나무에서 떨어진 선홍색의 동백꽃송이가 땅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 여린 연두색 새싹이 돋아나기 시작하는 고목나무는 화사한 봄 꽃 못지않게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여기서부터는 널찍한 임도 길이다. 찾아오는 사람 하나 없는 깊은 산사를 내려서는 조용하고 호젓한 오솔 길은 혼자서 사색을 겸해 산책을 즐기기에는 그만이다. 약10분 정도 내려서면 백련암이다. 이곳은 일제강점기때 대한민국 독립선언에 참가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인 용성스님과 조계종 종정을 지낸 석우스님 그리고 성철스님이 수행을 했다는 유서 깊은 사찰이다.

 

사계절 푸른 편백나무와 울창한 나무들이 병풍처럼 둥글게 감싸 안으며 수려한 경관을 보여주는 백련암은,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속에 깊은 인상을 남기게 해준다. 백련암 앞마당에는 조그마한 화원을 꾸며놓았다. 붉은 영산홍이 흐드러지게 피었고 파릇한 연두색 새순이 돋아난 나지막한 나무들이 울타리를 만들어 놓았다. 아기자기한 4층 석탑이 세워져 있는 옆에 붉은색 영산홍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붉은 영산홍 옆에 큰 얼굴에 지긋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포대화상이 편안하게 앉아 있다. 작은 돌로 쌓아 올린 담벼락은 아기자기한 맛을 느끼게 해준다. 절을 나서니 싱싱한 연두색 초록의 잎을 자랑하는 녹차나무와 산 괴불주머니, 상사화, 파릇파릇한 풀들이 어우러지며 초원지대를 이루고 있다. 밖에서 보면 사찰이 아니라 비밀의 정원(庭園)을 보는 기분이 들게 해준다.

 

백련암에서 남쪽으로 살짝 내려서니 남해에서 절의 규모가 가장 크다는 용문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뒤뜰에 조성하여 놓은 연두색 잎이 싱그러운 녹차 밭과 야생화 조성단지부터 둘러본다. 텃밭처럼 조성하여 놓은 화단에는 새 생명이 움트고 있다. 이곳에서 겹벚꽃을 본다. 절세미인을 보고 있는 것만 같은 화사한 꽃송이가 이곳을 찾아온 길손의 발목을 잡고 놓아 주지 않는다. 일반 벚꽃과는 달리 겹벚꽃은 꽃이 피면 상당이 오래간다고 알려져 있다. 대웅전 앞에 조롱조롱 매달려있는 형형색색의 오색찬란한 연등(燃燈)이 화사한 봄꽃송이 같다. 뜰 앞에는 모란꽃도 보인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검은 기와지붕에서는 천연 고찰이 품고 있는 멋과 향기를 느끼게 해준다. 새소리와 바람소리 그리고 파도소리만 들려오는 산사는 인간 세상이 아닌 딴 세상에 온 것만 같다. 절 탐방을 마치고 일주문을 지나 15분 정도 내려서면 짙푸른 남해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용소리이다.

호구산 철쭉.

 

남해가 자랑하는 세 개의 사찰이 있는데, 남해군에서는 남해 삼사 순례라는 소책자까지 내놓고 있다. 남해 호구산 용문사, 고현면 망운산 화방사, 상주면 금산 보리암이 그것이다. 세 개의 사찰이 모두 남해의 명산에 자리 잡고 있다. 또한 3 개의 사찰 모두 원효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남해의 아름다운 경관을 배경으로 각각 독특한 멋을 지니고 있다. 그 가운데 용문사는 조계종 제13교구 본산인 쌍계사 말사로 호구산 군립공원의 아름다운 계곡에 자리 잡고 있다. 호구산용문사(虎丘山龍門寺)의 창건 연대는 신라문무왕3년(663년)원효대사(元曉大師)가 남해 금산(錦山)에 세웠다는 보광사(普光寺)를 1661년에 학진 스님이 보광사를 호구산으로 옮겨와 지금의 용문사가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임진왜란(壬辰倭亂)으로 인하여 사찰이 모두 불타버리고 나서 여러 차례 중건(重建)을 하였다. 조선조 현종 때 백원당 대사가 용이 하늘로 올라갔다는 용소 위에 다시 터를 잡아, 없어진 절을 또 다시 세우고 이름을 용문사라 한 뒤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용문사의 스님들이 서산대사와 사명당의 뜻을 받들어, 왜군과 싸웠기 때문에 호국사찰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러한 인연으로 인하여 조선 숙종(肅宗1675-1720)때에는 임진왜란 당시, 용문사의 승병(僧兵)이 활약한 공을 인정받아 수국사(守國寺)로 지정되어 왕실의 보호를 받았다. 조선조 숙종은‘수국사(守國寺)’패와 함께 연옥 촛대와 번(幡) 등을 내려주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때 일본인들이 연옥과 촛대등을 빼앗아가고 현재는 금패와 궁중매듭인 번(幡)만 남아 있다. ※번(幡)은 사찰에서 법요를 설법할 때에 절 안쪽에 세우는 깃대를 말한다.

용문사에는 이밖에도 대웅전을 비롯해 석불좌상, 천왕각, 명부전, 촌은선생 집 책판, 구멍이 셋인 화승총인 삼혈총 등의 문화재가 보존되어 남아 있다.

 

남해는 지금 한창 붉은색 수달래가 꽃을 피우고 있다. 수달래를 많은 사람들은 철쭉이라고 하는데 철쭉과 꽃송이가 거의 똑 같지만 엄연히 구분된다. 수달래(산철쭉)는 진달래 과에 속하는 산철쭉의 다른 이름이다. 진달래꽃보다 꽃의 색이 짙으며 꽃잎이 검붉은 반점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에 비해 철쭉꽃(연달래, 개꽃)은 꽃과 잎이 동시에 나오며 독성이 있어 먹으면 안 된다. 잎은 다섯 장으로 둥근 몽양을 나타내고 있다. 진달래꽃(참꽃, 두견화)은 꽃이 먼지 피고 잎이 나오며 잎 뒷면에는 검붉은 반점이 있다. 식용이 가능하며 전을 부쳐 먹거나 술을 담가먹는다. 참꽃으로 담근 술을 두견주라고 한다. 철쭉꽃은 꽃송이 안에 주근깨 같은 자주색 검은 반점이 없다. 그러나 산철쭉을 보면 자주색의 검은 반점이 주근깨처럼 있다.

호구산 용문사.

 

호구산은 남해의 산 꾼들이 외부에 알리기를 꺼린다고 말 할 정도로 아주 아름다운 절경을 품고 있다. 그 이유는 이산을 직접 올라보면 알 수 있다. 산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시원스럽게 끝없이 펼쳐지는 바다와 어우러지는 풍광은 환상적이다. 덤으로 수줍은 듯이 꽃망울을 여는 야생화들 그리고 섬에서만 볼 수 있는 진기한 연두색 초록 신록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한다. 용문사와 백련암, 염불암 주위에 울창한 수림과 겹벚꽃 그리고 고고한 사찰에서 풍기는 멋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물해준다. 봄꽃 향기 그윽한 절경에 흠뻑 취하며 나도 모르게 대자연의 세계로 깊숙이 빠져들어 간다. 오늘 호구산 송등산 산행은 남해 용문사에서 모두 정리하고 대구 출발 한다.

각시붓꽃.
구슬꽃 또는 박태기 나무라고도 합니다.
송등산에서 바라본 호구산 정상.
호구산 백련암.
호구산 정상 봉수대.
산철쭉.
산 벚꽃.
쇠풀레나무.
염불암 녹차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