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절기 중 1번째 절기 입춘(立春).
입춘(立春)은 일 년 24절기 중 첫 번째 절기로 24번째 절기인 대한(大寒)과 3번째 절기인 우수(雨水) 사이에 있는 절기입니다. 24절기는 기본적으로 태양의 궤도(軌道=행성이나 혜성, 인공위성 따위가 중력의 영향을 받아 다른 천체 주위를 돌면서 그리는 일정한 곡선의 길)인 황도(黃道=1년 동안 별자리 사이를 움직이는 태양의 겉보기 경로. 또는 지구를 중심으로 한 천구상의 태양 궤도)의 움직임을 기본으로 정해지므로 양력 날짜에 연동(聯動)됩니다. 입춘은 태양의 황경(黃經=춘분점 0도를 기준점으로 정하고 태양이 지나가는 길을 황도면 동쪽으로 몇 도인지를 측정한 값) 이 315도(度)인 날로 대개 음력 1월 양력 2월 4~5일에 해당합니다. 입추(立秋)를 지나고 6개월째 되는 날이며 이날부터 우리나라에서는 봄이 시작됩니다. 입춘절(立春) 절입시간(節入時間=입춘이 시작되는 시간)은 오시(午時=오전 11시 43분)입니다.
★“양력(陽曆) 날짜에 연동(聯動)된다는”이라는 말은 24절기가 태양의 황도상 위치에 따라 정해지기 때문에, 양력(陽曆) 날짜를 기준으로 한다는 뜻입니다. 태양은 1년 동안 황도(黃道)를 따라 이동하며, 춘분점(春分點)에서 출발하여 다시 춘분점(春分點)으로 돌아오는 기간을 태양년(太陽年)이라고 합니다. 태양년(太陽年)은 365일 5시간 48분 46초이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양력(陽曆)은 365일로 계산하기 때문에 매년 6시간씩 차이가 발생합니다. 만약 24절기를 음력(陰曆)으로 계산한다면, 매년 24절기의 날짜가 달라지고 계절과 일치하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24절기는 양력(陽曆) 날짜를 기준으로 하여 계절의 변화와 일치하도록 설정됩니다. 이는 농어 등 계절에 따른 생활방식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입춘은 음력으로 정월(正月=음력으로 일 년 중의 첫 번째 달인 1월)에 들기도 하고, 섣달에 들기도 하며, 어떤 해는 정월과 섣달(음력으로 한 해의 맨 마지막 달인 12월)에 거듭 드는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재봉춘(再逢春=음력 윤달로 인해 일 년 동안 입춘이 두 번 듦)’이라고 합니다. ※음력 윤달(윤달=날짜상의 계절과 실제의 계절이 어긋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으로, 몇 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달)을 말합니다. 정월은 새해에 첫 번째 드는 달이고, 입춘은 대체로 정월달 첫 번째로 드는 절기입니다.
‘입춘(立春)’이라는 말은 봄(春)이 들어서는 날이라는 뜻에서 유래했습니다. 옛날 중국의 전통 의학서인 ‘황제내경(황제내경=기원전 475~221년에 중국 진나라, 한나라 때에 편찬되었다고 알려진 중국 최고의 의학서)’,당나라의 역사서인 구당서‘구당서(舊唐書=중국 당(唐)나라의 정사(正史)를 적은 책. 후진(後晉)의 유구(劉昫)가 시작하여 945년에 장소원(張昭遠)이 완성한 책)’, 원나라 ‘수리력(授時曆=중국 원나라 때, 곽수경(郭守敬), 왕순(王恂) 등이 만든 달력. 1281년부터 쓰였으며 우리나라에는 고려 충렬왕(忠烈王) 때 도입되었다)’등 여러 문헌에서 입춘 기간을 5일 단위로 삼후(三候)로 구분하고, “초후(初候)에는 동쪽 바람이 불어 얼었던 땅을 녹이고, 중후(中候)에는 동면(冬眠)하던 벌레가 움직이기 시작하며, 말후(末候)에는 물고기가 얼음 밑에서 활동을 시작한다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입춘(立春) 기간에 대해 이런 묘사를 고려사(高麗史=조선시대, 세종 때 왕명으로 정인지(鄭麟趾), 김종서(金宗瑞) 등이 개찬한, 고려 왕조의 기전체 역사책), 그리고 조선 초 이순지(李純之) 등이 펴낸 칠정산내편(七政算內篇=조선시대에 편찬된 역법서. 이 책은 조선의 실정에 맞게 역법을 정리한 것으로 1444년(세종 26년)에 완성된 책. 이순지와 김 담이 세종의 명으로 원나라 수시력의 원리와 방법을 이해하기 쉽게 해설하여 편찬한 역법서) 등 한국의 여러 문헌에도 인용되고 있는데, 중국 문헌의 절기는 옛날 주(周)나라 때 화북(華北, 지금의 화베이 지방으로 베이징과 텐진이 있는 지역) 지방의 기후를 기준으로 기술된 것이어서 우리나라의 기후와는 야간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전해져 오고 있는 입춘(立春) 풍속(風俗).
입춘은 새해의 첫 번째 절기이기 때문에 농경의례(農耕儀禮=농작물의 풍작을 빌거나 수확물의 영혼 또는 정령(精靈)을 위로함으로써 농신(農神)에 감사하는 의례나 주술(呪術))와 관련된 행사가 많습니다. 입춘이 되면 도시 시골 할 것 없이 각 가정에서는 기복적인 행사로, 입춘첩(立春帖)을 대문이나 문설주에 많이 붙였습니다. 입춘첩(立春帖)을 다른 말로 입춘축(立春祝), 춘축(春祝), 입춘서(立春書), 입춘방(立春榜), 춘방(春榜)이라고도 합니다. 입춘첩(立春帖)은 입춘날 아침에 대문이나 기둥에 “입춘대길(입춘대길)”, “건양다경(建陽多慶)” 등의 입춘첩(立春帖)을 붙였습니다. “입춘대길(立春大吉)은 입춘을 맞아 큰 복이 있을 것이라”라는 뜻이고, “건양다경(建陽多慶)”은 양(陽)의 기운이 일어나서 경사스러운 일이 많을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입춘축(立春祝=立春帖)은 ‘굿 한 번 하는 것보다 입춘축(立春祝) 한 장 붙이는 것이 낫다고 하여 옛날부터 기원과 벽사(辟邪)의 의미로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또 대문이나 문설주 등에 입춘축(立春祝)을 붙이는 것이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들이 독경(讀經=불경의 글을 소리를 내 읽거나 외움)하는 그것보다 낫다.’라는 말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입춘첩(立春帖)은 글씨를 쓸 줄 아는 사람은 자기가 직접 붙이고, 글씨를 쓸 줄 모르는 사람은 남에게 부탁하여 써서 붙였습니다. 입춘첩(立春帖)은 입춘이 드는 시각에 맞추어 붙이면 좋다고 하여 밤중에 붙이기도 하지만, 상중(喪中)에 있는 집에서는 써 붙이지 않습니다. 입춘첩(立春帖)을 쓰는 종이는 글자 수나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가로 15㎝ 내외, 세로 70㎝ 내외의 한자를 창호지를 두 장 마련하여 쓰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외에 창호지를 마름모꼴로 세워 ‘용(龍)’ 자와 ‘호(虎)’지를 크게 써서 대문에 붙이기도 합니다.
입춘축(立春祝=立春帖)의 유래는 옛날 중국 고대 황제가 악귀를 쫓기 위해 신도(神荼)와 울루(鬱壘)의 형상을 그려 놓은 데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신도(神荼)와 울루(鬱壘)는 귀문(鬼門=저승으로 들어가는 문)을 지키면서 사람에게 해를 미치는 악귀를 붙잡아 호랑이 밥으로 던져 준다는 전설속(傳說俗) 신(神)”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입춘축(立春祝=立春帖)을 붙인 시기는 고려시대 때부터 입춘(立春)날 신하들이 장수(長壽)와 행운(幸運)을 기원하는 오언율시(五言律詩) 또는 칠언율시(七言律詩)를 왕께 올렸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율시(律詩)=여덟 구(句)로 이루어지는 한시(漢詩) 형식. 한 구가 다섯 자이면 오언율시(五言律詩), 일곱 자이면 칠언율시(七言律詩)라 합니다.
조선시대에는 입춘축(立春祝=立春帖)을 궁중에서 음력 1월 1일 설날에 문신들이 지어 올린 새해를 축하하는 시문 가운데 뛰어난 것을 뽑아 대궐의 기둥에 붙였던 데서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또 입춘첩(立春帖)의 내용은 집안마다 다른 내용이 전해지기도 했고, 새로 글을 지어 써 붙이기도 했습니다. 입춘축(立春祝=立春帖)은 대개 정해져 있으며 일반적으로 많이 쓰는 문구는 대구(對句=말의 가락과 표현이 비슷한 어구를 나란히 늘어놓음), 대련(對聯=시문 따위에서, 같은 형식으로 나란히 있어서 대가 되는 연), 단첩(單帖=단구로 된 첩자(疊字=같은 글자를 두 번 씀) 등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대부가(士大夫家=예전에 사회적 지위가 높은 가문에서 출생했거나 벼슬이 높은 사람의 집안을 이르던 말. 조선시대에는 주로 전 현직 관리를 중심으로 형성된 유교적 지식인 계급의 집안을 의미하는 말로 쓰였다) 에서는 입춘(立春)을 축하하는 시를 새로 지어 붙이거나, 옛사람들 글귀 중 좋은 부분을 따다가 기둥, 문설주, 대문 등에 붙였습니다.
★입춘날 붙이는 입춘첩(立春帖) 대구(對句) 문장.
“國泰民安 家給人足(국태민안 가급인족)”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편안하며, 집마다 넉넉하고 사람마다 평화로울지니.
“箕疇五福 華封三祝(화봉삼축 기주오복)” 오복(五福)과 삼축(三祝)을 기원합니다.
“門神戶靈 呵噤不祥(문신호령 가금불상)” 문의 신과 집안의 신령이 지키고 있으니, 불길한 것을 꾸짖어 금한다.
“雨順風調 時和年豊(우순풍조 시화년풍)” 비가 때를 맞추어 오고 바람이 고르게 불어, 시절이 평화롭고 해마다 풍년이 든다.
★입춘날 붙이는 입춘첩(立春帖) 대련(對聯) 문장.
“去千災, 來百福(거천재, 내백복)” 천 가지의 재앙은 쫓아버리고, 백 가지의 복을 부른다.
“立春大吉, 建陽多慶(입춘대길, 건양다경)” 봄이 시작되니 크게 길하고 경사스러운 일이 많이 생기기를 기원합니다.
“壽如山, 富如海(수여산, 부여해)” 산처럼 오래 살고, 바다처럼 재물이 쌓여라.
“堯之日月 舜之乾坤(요지일월 순지건곤)” 요임금의 태평스러운 세대, 순임금의 태평스러운 세상을 기원합니다.
“掃地黃金出, 開門萬福來( 소지황금출,개문만복래)” 땅을 쓸면 황금이 생기고, 문을 열면 만복이 들어온다.
“父母千年壽, 子孫萬代榮(부모천년수, 자손만대영) 부모는 천년을 장수하시고, 자식은 만대까지 번영하라.”
“鷄鳴新歲德, 犬吠舊年災(계명신세덕, 견폐구년재)” 닭 울음소리에 새해의 덕이 들어오고, 개 짖는 소리에 묵은해의 재앙이 나간다.
“去千災, 來百福(거천재, 래복만)” 온갖 재앙은 가고, 모든 복은 들어오라.
“災從春雪消, 福逐夏雲興(재종춘설소, 복축하운흥)” 재난은 봄눈처럼 사라지고, 행복은 여름 구름처럼 일어나라.
“壽比南山, 福如東海(수비남산, 복여동해)” 수명은 푸른 남산의 솔과 견주고, 복은 동해 물결처럼 넘쳐라.
“千災春雪消, 萬福雲集起(천재춘설소, 만복운집기)” 모든 재앙은 봄눈 녹듯이 사라지고, 행복은 구름 일어나듯이 몰려온다.
★입춘날 붙이는 입춘첩(立春帖) 단첩(單帖) 문장.
“上有好鳥相和鳴(상유호조상화명)” 하늘 위에는 새들이 서로 조화롭게 운다.
“一振高名滿帝都(일진고명만제도)” 높은 이름을 한번 떨치니 장안에 가득하다.
“一春和氣滿門楣(일춘화기만문미)” 봄날의 온화한 기운이 문에 가득하다.
“春光先到吉人家(춘광선도길인가)” 봄빛은 길인의 집에 먼저 온다.
“春到門前增富貴(춘도문전증부귀)” 봄이 문 앞에 당도하니 부귀가 늘어난다.
입춘첩(立春帖)은 붙이는 장소에 따라 내용을 다르게 합니다. 입춘축(立春祝=立春帖)은 입춘(立春) 되면 보이 온 것을 기리고 축하하며 기원하는 내용을 적은 글귀를 대구(對句)로 마주하여 주로 큰방 문 위의 벽, 마루의 양쪽, 기둥, 부엌의 두 문짝, 곳간의 두 문짝, 대문의 두 문짝, 외양간의 문짝에 붙이는 입춘축(立春祝=立春帖)은 서로 내용을 다르게 합니다. 이렇게 입춘축(立春祝=立春帖)을 붙여서 내 집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 문을 드나드는 모든 이들의 행운과 건강을 기원했습니다. 다양한 장소에 입춘축(立春祝=立春帖)을 붙이지만 대부분 대문 앞에 여덟 팔(八)자 형태로 붙입니다.
옛날 궁궐(宮闕=예전에, 임금이 거처하는 집을 이르던 말)에서는 입춘이 되면 내전(內殿=예전에, 궁궐 안에 임금이 거처하는 전각을 이르던 말) 기둥과 난관에 문신이 지은 연상시(延祥詩=예전에, 문관이 정월 초하루에 임금에게 지어 올리는 시를 이르던 말) 중에 좋은 것을 뽑아 연잎과 연꽃무늬를 그린 종이에 써서 붙였는데, 이를 춘첩자(春帖子)라 하였습니다. 경도잡지(京都雜誌=조선시대, 서울의 세시풍속을 기록한 책)에 의하면, 입춘이 되기 열흘 전에 “승정원에서는 초계문신(抄啟文臣=당하문관(堂下文官) 중에서 문학에 재주가 뛰어난 사람을 뽑아서 다달이 강독, 제술의 시험을 보게 하던 사람)과 시종신(侍從臣=조선시대 임금을 가까이에서 모시며 국사를 처리하던 홍문관의 옥당(玉堂), 사헌부 또는 사간원의 대간(臺諫), 예문관의 검열(檢閱), 승정원의 주서(主書)를 통틀어 이르는 말) 에게 궁전의 춘첩자를 지어 올리게 하는데, 패(牌)로써 제학(提學=조선시대 규장각의 종일품이나 정이품 벼슬과 예문관과 홍문관 종이품의 벼슬)을 불러 운(韻)자를 내고 채점하도록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춘련(春聯)을 써서 붙이게 된 유래는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조선 순조 때의 학자 홍석모(洪錫謨)가 지은 세시풍속에 관한 책)에 의하면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중국 육조 시대의 형초, 곧 지금의 후베이(湖北), 후난(湖南) 지방의 행사와 풍속 등을 기록한 책) 에 입춘날에 의춘(宜春) 두 자를 써서 문에다 붙였다”라고 하였으니, 지금의 춘련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입춘날 관상감(觀象監=조선시대 천문, 지리학, 역수, 기후 관측, 각루 등의 사무를 맡아보는 관청을 이르던 말)에서는 주사(朱砂=수은과 황의 화합으로 만들어진 광물)로 벽사문(辟邪文=귀신을 물리치기 위하여 쓰인 글)을 써서 궁궐 안으로 올리면, 궁궐 안에서는 그것을 문설주에 붙이는데 이것을 입춘부(立春符)라고 합니다.
이 밖에 입춘날에는 ‘아홉차리’라는 풍속도 있었습니다. 아홉차리는 자신이 맡은 일을 아홉 번씩 한다는 뜻으로, 부인들은 빨래를 아홉 번 하고, 학생들은 글을 아홉 번 읽는다고 합니다. 이것은 자신이 감당하는 일을 아홉 번씩 부지런하게 하면 복을 받으리라는 것을 깨우치는 풍속이었습니다. 또 입춘에는 오신채(五辛菜)를 먹는 풍속이 있었는데, 오신채는 파, 마늘, 달래, 부추, 무릇 등 다섯 가지의 매운 나물을 말하며, 한해의 첫 절기에 맵고 쓴 오신채를 먹음으로써 삶의 쓴맛을 미리 깨우치고 참을성을 키운다는 교훈이 들어 있는 풍속입니다.
◆입춘(立春)에 행하여지는 의례(儀禮).
입춘은 새해에 드는 첫 절후(節候=한 해를 스물넷으로 나눈, 기후의 표준점)이므로 궁중과 지방에서 여러 의례를 베풀었다고 합니다.
●입춘하례(立春賀禮)=고려사(高麗史) 예지(禮志) 입춘하의조(立春賀儀條)에 의하면, “인일(人日=음력 정월 초이렛날, 음력 1월 7일)의 축하 예식과 같지만, 다만 입춘에는 춘번자(春幡子=입춘날 사대부의 집에서 채단을 재단하여 기(旗)를 만들어 춘번(春幡)이라 하고, 기를 가인(家人)의 머리에 달아주기도 하고, 혹은 꽃가지에 걸기도 하였다)를 받는다”. 라고 했습니다. 입춘날에 백관이 대전에 가서 입춘절(立春節)을 축하하면 임금이 그들에게 춘번자를 주고, 이날 하루 관리에게 휴가를 주었다고 합니다.
●출토우사(出土牛事=토우를 내는 일)=예기(禮記=유교 오경의 하나로, 예의 이론과 실제를 기술한 책)에 의하면 계동(季冬=음력 섣달을 달리 이르는 말. 음력으로 12월)에 궁중의 역귀(疫鬼=악성 돌림병을 일으킨다는 귀신)를 쫓는데 행사인 대나의(大儺儀=고려와 조선시대, 궁중에서 섣달그믐 전날 밤에 역신을 쫓는 행사를 하는 의식을 이르던 말) 때 “토우(土牛)를 만들어 문밖에 내놓아 겨울의 추운 기운을 보낸다, 출토 우이 송한기(出土牛以送寒氣)”라고 하였는데, 고려 때는 입춘에 토우를 내는 일이 시행되었다고 합니다.
●목우(木牛)=함경도에서는 입춘날 나무로 만든 소를 관청으로부터 민가의 마을까지 끌고 나와 돌아다니는 의례를 갖는데, 이는 흙으로 소를 만들어 겨울의 추운 기운을 내보내는 중국의 옛 제도를 모방하고 풍년을 기원하는 뜻에서 행한다고 하였다.
●입춘굿=제주도에서는 입춘날 굿 놀이를 하는데, 이 놀이는 농경의례에 속합니다. 해마다 입춘 전날에 무당들이 주사(州司=고을의 관사)에 모여 나무로 만든 소에게 제사를 지내고, 입춘날 아침에는 머리에 월계수꽃을 꽂고 흑단령(黑團領=조선시대, 벼슬아치가 입던 깃이 둥근 검은색의 옷) 의복을 차려입은 호장(戶長=예전에, 고을 아전의 맨 윗자리나 그 사람을 이르던 말)이 목우(木牛)에 농기구를 갖추어 나와 무격(巫覡=무당과 박수를 아울러 이르는 말)들로, 하여금 화려한 비단옷을 입고 앞장서서 호위하여 대오를 인도하게 하며, 큰 징과 북을 치며 행진하여 관덕정 앞마당에 이르면 호장(戶長)은 무격들을 나누어 여염집(일반 서민들 집)에 들어가서 쌓아둔 보릿단을 뽑아오게 하여 뽑아온 보릿단으로 실(實), 부실(不實)을 판단하여 새해의 길흉(吉凶)을 점치게 됩니다.
또 돌아서 객사에 이르면 문밖에 있던 호장(戶長)은 쟁기를 잡고 밭을 간다. 또한 아주 크고 붉은 가면에 긴 수염을 달아 농부로 차린 한 사람이 등장하여 오곡의 씨를 뿌린다. 이어서 초라니 광대처럼 채색한 새 탈을 쓴 다른 한 사람이 등장하여 곡식을 주워 쪼아 먹는 시늉을 한다. 또 두 사람이 여자 배우의 가면을 쓰고 등장한다. 처첩이 투기하여 서로 다투는 장면을 남편인 듯한 탈을 쓴 광대가 등장하여 거짓으로 서로 말리는 양하면 관중은 모두 이를 드러내고 웃는다. 이러한 장면은 꼭두각시놀음과 비슷하다. 이어 무격들이 한 떼를 이루어 어지럽게 춤을 추며 신을 놀리는 등 태평을 즐긴다. 동헌에 돌아와서도 그와 같이한다. 이는 대개 탐라 왕이 몸소 백성들 앞에서 밭을 갈아 풍년을 기원하던 유습이 전해 내려온 것이라고 합니다.
◆입춘(立春) 점복(占卜).
입춘날 입춘축(立春祝)을 붙이면 “굿 한 번 하는 것보다 낫다.”라고 하여 입춘축이 벽사(辟邪)로 붙여짐을 알 수 있다. 전라북도에서는 입춘축 붙이는 것을 “춘련(春聯=입춘에 문이나 기둥 따위에 써 붙이는 글씨).”이라 하고, 이를 붙이면 “봉사들이 독경하는 것보다 낫다.”라고 한다. 또 글씨를 직접 써서 붙이지 않고 그냥 글귀를 외워도 좋다고 합니다. 입춘일(立春日)은 농사의 기준이 되는 24절기의 첫 번째 절기이기 때문에 보리 뿌리를 뽑아보고 농사의 흉풍을 가려보는 농사점(農事占)을 행하기도 합니다. 열양세시기(冽陽歲時記=조선 정조 때의 문신 김매순(金邁淳)이 1819년에 한양(漢陽)의 연중행사를 기록한 책) 에 맥근점(麥根占=보리뿌리점)이라 하여 농가에서는 입춘날 보리 뿌리를 캐어 보아 그해 농사의 풍년과 흉년을 점치는데, 보리 뿌리가 세 가닥 이상이면 풍년이고, 두 가닥이면 평년이고, 한 가닥이면 흉년이 든다는 속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서울에서는 입춘날 맥근(麥根=보리 뿌리)을 보아, 뿌리가 많이 돋아나 있으면 풍년이 들고 적게 돋아나면 흉년이 든다는 속설이 있습니다. 경기도 시흥, 여주, 인천에서는 입춘 때 맥근(麥根=보리 뿌리)을 캐어 맥중근(麥中根=보리의 중간 뿌리)이 다섯 뿌리 이상 내렸으면 풍년이 들고, 다섯 뿌리가 아니면 흉년이 든다는 속설이 있습니다. 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 마산리에서는 입춘 때 맥근(麥根=보리 뿌리)을 뽑아 살강(그릇 같은 것을 얹어 놓기 위하여 부엌의 벽 중턱에 가로 드린 선반이나 시렁) 뒤에 놓아두면 보리 뿌리가 자라는데, 보리 뿌리가 많이 나면 길하고 적게 나면 그해 보리가 안 된다는 속설이 있습니다.
충청남도에서는 입춘날 오곡(五穀=쌀, 보리, 콩, 조, 기장의 다섯 가지 곡식)의 씨앗을 솥에 넣고 볶아, 맨 먼저 솥 밖으로 튀어나오는 곡식이 그해 풍작이 된다고 하고, 제주도에서는 입춘날 집안과 마룻바닥을 깨끗이 청소한 뒤 체를 엎어두었다가 몇 시간 뒤에 들어보면 어떤 곡식이 한 알 나오는데, 거기에서 나온 곡식이 그해에 풍년들 곡식이라는 속설이 있습니다. 또 입춘날 날씨가 맑고 바람이 없으면, 그해 풍년이 들고 병이 없으며 생활이 안정되나, 눈이나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면 흉년이 든다는 속설이 있습니다.
입춘날에 눈보라가 치는 등 날씨가 나쁘면 ‘입춘치(立春치)’라 합니다. ‘치’는 접미사(接尾辭=접사의 하나로 어귀(語基) 뒤에 붙어서 새로운 단을 만드는 형태소)로 보름, 그믐, 조금 또는 일진(日辰=그날의 운세, 날의 간지)의 진사(辰巳), 술해(戌亥) 같은 것에 붙여 그날 무렵에 날씨의 나빠짐을 나타내는 말을 뜻합니다. 따뜻한 봄을 맞이하는 첫날인 입춘에 이러한 입춘치(立春치=입춘에 눈보라가 치는 등 날씨가 나쁠 때 하는 말. 이날 눈이 오면 그해 농사가 좋지 않을 것으로 여긴다) 가 있는 것을 농사에는 나쁘다고 생각하였다는 속설이 있습니다.
전라남도 무안에서는 “입춘날 눈이 오면 그해 며루(멸구의 방언)가 쓰인다.”라고 하여, 그해 여름 벼농사에 며루(자방충<虸蚄蟲>벼멸구의 전라도 방언)가 많이 생겨 해농(害農=농사에 피해를 줌) 한다고 하고, 제주도에서는 입춘날 바람이 불면 그해 내내 바람이 많고 밭농사에도 나쁘다는 속설이 있습니다. 또 입춘날 입춘축(立春祝)을 써서 사방에 붙이면 그해 만사가 대길하나, 이날 망치질을 하면 불운이 닥친다는 속설이 있습니다.
제주도에서는 입춘날 여인이 남의 집에 가면 그 집의 논밭에 잡초가 무성하게 된다는 믿음이 있어서 특히 조심한다고 합니다. 또 이날 집안 물건을 누구에게도 내주는 일이 없는데, 만일 집 밖으로 내보내면 그해 내내 재물이 밖으로 나게만 된다는 속설이 있습니다. 전라남도 구례에서는 입춘날 절에 가서 삼재(三災=십이지로 따지는 불길한 운수)풀이를 하는데, 삼재를 당한 사람의 속옷에 ‘삼재팔난(三災八難=화재(火災), 수재(水災), 풍재(風災)의 삼재와 재지옥난(在地獄難), 재축생난(在畜生難), 재아귀난(在餓鬼難), 재장수천난(在長壽天難), 재울단월난(在鬱單越難), 농맹음아난(聾盲瘖瘂難), 세지변총(世智辯聰), 불전불후난(佛前佛後難)의 팔난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라 쓰고 부처님 앞에 빌고 난 후 속옷을 가져다 불에 태운다는 속설이 있습니다.
경상남도 창녕군 영산에서는 이날 새알심을 넣지 않은 팥죽을 끓여 먹고 집안 곳곳에 뿌려 벽사(辟邪)를 한다고 합니다. 충청도에서는 이날 보리 뿌리가 내리기 때문에 보리밥을 먹어야 좋다고 하여 보리밥을 지어 먹으며, 전라남도 무안에서는 입춘이 일 년에 두 번 들면 소금 시세가 좋다는 속설이 있습니다. 함경남도 북청에서는 입춘날 무를 먹으면 늙지 않는다고 하여 무를 먹고, 잡곡밥은 먹지 않고 흰쌀밥을 먹으며, 입춘은 나이 먹는 날이라 해서 명태 순대를 해 먹습니다. 함경남도 홍원에서는 이날 남자들이 명태를 통째로 쪄서 먹으면 등심이 난다고 하여 먹는다고 합니다.
◆입춘절식(立春節食).
입춘날은 입춘절식(立春節食=입춘에 따로 차려서 먹는 음식. 주로 햇나물을 뜯어다 무쳐 먹는다)이라 하여 궁중에서는 오신반(五辛盤=궁중에서, 입춘에 만들어 먹던 음식. 왕을 중심을 하여 당쟁을 뛰어넘으라는 뜻으로, 다섯까지 색깔의 맵고 자극성이 있는 나물로 차린 밥상이다)을 수라상(예전에, 궁중에서 임금에게 올리는 밥상을 높여 이르던 말)을 얹고, 일반 서민들은 세생채(細生菜=파, 겨자, 당귀의 어린싹을 나물로 무친 것)를 만들어 먹으며, 함경도에서는 일반 서민들은 명태 순대를 만들어 먹습니다.
경도잡지(京都雜誌=조선시대, 서울의 세시풍속을 기록한 책)와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의하면 “경기도 기협(畿峽=산골 지방)의 양근(楊根), 지평(砥平), 포천(抱川), 가평(加平), 삭녕(朔寧), 연천(漣川)에서는 총아(葱芽=움파), 산개(山芥), 신감채(辛甘菜=승검초) 등 햇나물을 눈(雪) 속에서 캐내어 임금께 진상했습니다. 궁중에서는 이것으로 오신반(다섯 가지의 자극성이 있는 나물로 만든 음식)을 장만하여 수리상에 올렸습니다. 오신반은 겨자와 함께 무치는 생채요리(生菜料理=나물을 익히지 않고 생것으로 무쳐 만든 요리)로 엄동(嚴冬=몹시 추운 겨울)을 지내는 동안 결핍되었던 신선한 채소의 맛을 보게 한 것입니다.
또 이것을 본떠 일반서민들은 입춘날 눈(雪) 속에서 돋아난 햇나물을 뜯어다가 무쳐서 입춘절식(立春節食)으로 먹는 풍속이 생겨났으며, 춘일(春日=봄날) 춘반(春盤=예전에, 입춘날 궁중에서 진상된 햇나물로 차린 음식을 이르던 말. 일반서민들은 떡과 나물로 만들어 먹습니다) 의 세생채(細生菜)라 하여 파, 겨자, 당귀의 어린 새싹으로 입춘채(立春菜)를 만들어 이웃 간에 나눠 먹는 풍속도 있습니다. ★ 오신채(五辛菜)는 입춘채(立春菜), 오신반(五辛盤)이라 불리는 대표적인 입춘절기음식(立春節氣飮食)입니다. 오행(五行)에 따라 다섯 가지 오색(五色)인 황색(黃色), 청색(靑色), 적색(赤色), 백색(白色), 흑색(黑色) 등 다섯까지 매운맛이 나는 나물인 오신채(五辛菜)는 요즘은 서민들이 즐겨 먹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달래, 부추, 파, 마늘, 흥거 또는 시대와 지방에 따라 음파, 달래, 갓, 평지(유채 나물), 부추, 승검초(당귀 새싹), 미나리 새순, 보리 새순 등 여러 가지 나물 중에서 오색(五色)을 골라 오신채(五辛菜)를 먹는 풍습입니다. 매운맛이 나는 나물인 오신채(五辛菜)는 한겨울 동안 부족했던 영양을 공급하고 자극적인 맛으로 식욕을 북돋워 주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입춘(立春)에 즐겨 먹는 대표 절식(節食)은 오신반(五辛盤), 세생채(細生菜), 입춘채(立春菜)로 식품 재료는 달래, 냉이, 씀바귀, 봄동, 유채가 있습니다.
대한(大寒)을 지나 입춘 무렵에 큰 추위가 있으면, “입춘에 오줌독(장독, 김칫독) 깨진다.” 또는 “입춘 추위에 김칫독 얼어 터진다.”라는 속담이 전해져오고 있습니다. 또 입춘이 지난 뒤에 날씨가 몹시 추워졌을 때는 “입춘을 거꾸로 붙였나.”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입춘 무렵에 반드시 꽃샘추위가 있다는 뜻으로 “입춘 추위는 꿔다 해도 한다.”라는 말이 생겼고, 격(格)에 맞지 않는 일을 엉뚱하게 하면 “가게 기둥에 입춘이랴(假家柱立春).”라고 했다고 합니다.
입춘은 24절기 가운데 첫 절기로, 이날부터 새해의 보이 시작됩니다. 따라서 이날을 기리고, 다가오는 일 년 동안 대길(大吉), 다경(多慶) 하기를 기원하는 갖가지 의례를 베푸는 풍속이 옛날에는 있었으나, 요즘은 더러 입춘축(立春祝)만 붙이는 가정이 있을 뿐, 안타깝게도 그 절일(節日=명절과 국경일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서는 기능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자료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다음 백과, 한국 세시풍속 사전, 인터넷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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