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산행 기행문

불갑산 용천사 꽃무릇 축제.

풀꽃사랑s 2016. 10. 3. 19:42

유년시절부터 고향집 마당 한쪽에 규모가 그렇게 크지 않은 화단이 있었다. 비록 남에게 자랑 할 만큼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부모님께서는 여러 종류의 꽃들을 심으시고 가꾸셨다. 그 중에서도 추운 겨울을 땅속에서 나고 이른 봄에 제일 먼저 초록색의 새싹이 땅속에서 얼굴을 내미는 화초가 있었다. 꽃샘추위가 지나고 개나리 복사꽃, 진달래, 철쭉이 활짝 필 무렵이면 잎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나무에 파릇파릇한 새싹이 돋기 시작하는 푸른 5월이면 연한 녹색 잎이 무성하게  자랐다. 이른 봄부터 푸른 녹색의 잎이 무성하였지만 무더운 여름철이 시작되면 잎은 말라서 사라지고 그 자리에 연한 홍자색의 아름다운 꽃을 피웠다. 부모님께서는 이 꽃을 항상 난초라고 부르셨다. 그때 당시 어린 나이였던 나로서는 부모님의 말씀이 맞는다고 생각 했고 45년을 한결 같이 그렇게 믿어왔다. 야생화에 관심이 많아서 산행을 하면서 종종 만나는 꽃을 카메라에 담아 오곤 했다. 그러다 올해 여름 충북 가령산 공림사 일주문을 지나면서 눈에 익은 꽃을 보았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낯이 익은 꽃이다.  바로 유년시절 고향집에서 본 그 꽃이다. 그러고 보니 몇 년 전 전북 부안 변산반도에서 배를 타고 바닷길을 30분 정도 달려서 도착한 위도 섬에서 본 상사화와 같은 종류가 아닌가! 홍길동이 율도국을 세우려고 했다는 위도는 상사화가 유명하게 알려져 있다. 이곳의 상사화는 육지에서 자생하고 있는 것과 또 다른 색다른 맛을 느끼게 한다. 직접 눈으로 보았지만 카메라에 담아서 오지 못한 것이 지금도 많은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여름날 줄기차게 내리던 장맛비가 그치고 소박하고 수수한 홍자색의 꽃잎을 열고 고운 자태를 자랑하던 위도상사화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어서 아련하게 떠오른다. 유년시절 고향집에서 본 꽃을 난초가 아닌 상사화란 것을 무려 긴 시간을 보내고서야 알게 된다. 바로 곁에 두고 까마득하게 모르고 지내 왔으니 울어야 할까 웃어야 할까! 꽃은 잎을 그리워하고 잎은 꽃을 그리워한다는 상사화(相思花)의 꽃말은 “이룰 수 없는 사랑이다.” 꽃말처럼 서로를 그리워한다는 애틋한 사연을 품고 있는 상사화는  꽃무릇과 함께 주로 사찰에서 많이 심는 화초중의 한 종류이다. 이와 똑 같은 꽃말을 품고 있는 꽃이 꽃무릇이다. 다르게는 “참사랑이라 부르고 있지만 크게 보면 상사화와 꽃말이 같다. 이번 산행 길은 깊어가는 가을 전남 영광군 불갑산 산자락에 있는  유서 깊은 불갑사와 용천사에서 열리고 있는 꽃무릇 축제장을 찾아서 길을 나선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꽃무릇 3대 군락지중 두 곳의 군락지가 이곳에 있다. 나머지 한곳은 봄이면 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고창 선운사이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는 가을의 문턱에 들어 설 무렵 붉은 선홍색의 꽃이 피기 시작하는 이곳의 꽃무릇은 아름답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꽃무릇의 또 다른 이름은 가을가재 무릇, 석산 또는 바퀴상사화라고도 부른다. 상사화와 다른 점은 꽃이 먼저 피고 잎은 꽃잎이 지고 나면 짙은 녹색의 잎이 돋아 눈 속에서 봄까지 그 탐스러운 자태를 뽐내는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나 또한 꽃무릇 꽃은 처음이다. 인터넷에 올려진 사진을 보고서 꼭 한번 보고 싶은 꽃이었다. 그런데 나와 인연이 맺어지려고 그런 것일까! 여름의 마지막 더위가 끝나는 날 대구 수목원에서 붉은 꽃잎을 펼치고 있는 꽃무릇을 보았다. 그 화려함에 반해서 산행을 떠나기 전날 꼭 사춘기시절 미모의 소녀를 만나는 것 마냥 마음이 설렜다. 가슴속 진하게 밀려오는 그리움을 안고 가을빛이 곱게 내리는 남녘의 들녘을 지나 꽃 무릇 축제가 열리는 전남 영광 불갑사 일주문을 들어선다. 넓은 면적에 단풍나무와 동백, 소나무가 일렬로 줄지어 서있다. 나무 아래에는 싱그러운 초록색 잔디가 새파란 융단을 깔아 놓았다. 그 위에 붉은 선홍색의 별들이 하늘에서 사뿐히 내려와 점점이 뿌려져 있다. 우아한 여인의 볼처럼 붉은 꽃송이들이 밤하늘에 떠있는 별빛처럼 반짝반짝 빛이 난다. 양쪽의 산 능선 아래에 다소 곳이 서 있는 꽃송이들은 초록 숲과 함께 싱그러움을 더해준다. 많은 사람들이 이 환상적인 풍경에 모두 넋을 잃어 버린듯하다. 너나 할 것 없이 휴대한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기 바쁘다. 금방이라도 살랑살랑 불어 오는 가을바람에 붉은 꽃물결이 일어날 것만 같다. 꽃말처럼 꽃과 잎이 서로 만나지 못하는 애틋함을 화려한 꽃잎을 열어 못 다한 애증을 풀고 있지나 않을까! 오솔길처럼 이어지는 꽃길을 따라서 불갑사 대웅전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백제 때 창건 되었다는 불갑사는 소박하고 수수한 느낌이 든다. 계절을 잊어버린 봉선화 꽃송이가 애처로움을 느끼게 한다. 경건한 마음으로 경내를 두루 돌아보고 산행에 임한다. 여기서 북쪽으로 덧고개까지는 가파른 오름을 올라서야 한다. 울창하게 원시림의 숲을 이루고 있는 참나무에서 여름내 잘 여문 살이 통통히 찐 꿀밤이 땅에 뚝 떨어지면서 조용한 숲 속의 적막을 가른다. 겨울철 다람쥐들이 먹을 소중한 식량이 될 것이다. 벌써 가을이 저만치 다가오는데 날씨는 여름처럼 더운 열기를 뿜어낸다. 물이 흘러내리듯이 이마에서 뚝뚝 떨어지는 땀을 닦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덧고개 마루에 올라선다. 야속하게도 오늘 따라 그 흔한 바람 한 점 불어오지 않는다. 자꾸만 짧아지는 가을 햇살을 늘리려는 듯이 숲 속에서는 몇 안 남은 매미들이 목청을 높이며 구슬프게 울어 된다. 들녘은 벌써 가을빛이 완연한데 숲은 아직도 초록색 녹음이 싱싱함을 자랑한다. 잠시 숨고르기를 한 다음 노적봉과 투구봉으로 부지런히 발품을 팔면서 내려선다. 안부에서 북쪽의 숲 속에 자홍색의 물봉선화가 무리를 지어서 군락을 이루고 있다. 야생화에서 풍기는 수수한 맛을 음미해 본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능선 오름을 따라서 투구봉 정상에 올라선다. 산세가 완만하게 이어진다고 하지만 실제로 올라보면 만만하게 볼 산이 아니다. 산은 언제나 쉽게 오르게 하지 않는다. 헬기장처럼 보이는 넓은 장군봉을 지나서 내려서면 불갑산 산마루 아래까지는 조금 험하게 느껴지는 바위릿지 길이 이어진다. 그렇지만 주위가 확 트여서 전망은 아주 좋다. 이윽고 불갑산 정상인 연실봉에 올라선다. 서쪽과 남으로 첩첩이 포개진 산 능선이 불갑산 주위를 휘감아 돌아 나가는 산세는 산행의 운치를 더해준다. 그 안쪽에 꽃무릇을 품고 있는 불갑사와 용천사가 아담하게 들어 앉아 있다. 북쪽과 동으로 광활한 함평, 나주 평야는 가을의 정취에 흠뻑 젖게 한다. 하지만 남도의 들녘 곳곳에 점점이 흩어져 있는 검푸른 야산은 아직도 여름을 느끼게 한다. 곡창 지대답게 푸른 호수들도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두리 뭉실하게 길게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서 내려서면 몇 사람이 충분히 쉬어 갈수 있는 너럭바위를 만나게 된다. 바위를 지나 여름의 흔적이 물씬 풍기는 숲길을 따라서 내려서면 구수재이다. 여기서 용봉에 살짝이 올랐다가 남쪽에 있는 용천사로 내려선다. 이 용천사는 600년 전(백제 무왕1년)행은(幸恩)이 창건하였다고 한다. 절 이름은 대웅전 층계 아래에 있는 용천(龍泉)이라는 샘에서 유래 되었다고 한다. 전성기 에는 3천여 명의 승려가 머물렀다고 전해진다. 대웅전과 절 주위로 붉은 꽃송이들이 천하의 절경을 품고 있다. 파릇한 잎새 사이로 주발에 밥을 담아 놓은 것처럼 소복이 모여 있는 꽃 송들이 장관이다. 초록 풀잎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황금색의 금불초와 하얀색의 개미취 가 상큼한 가을맛을 풍긴다. 눈앞에 그림처럼 펼쳐지는 선홍색 꽃송이들이 어머니 품처럼 아늑한 그리움이 되어서 살며시 내게 다가온다. 잔뜩 흐려있던 하늘에서 끝내 가을을 재촉하는 소낙비가 내린다. 욕심 같아서는 더 돌아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데 촉촉이 내리는 비가 방해를 놓는다. 내리는 양이 많지 않은 소낙비가 그치자 벌써 어두운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한다. 아담한 저수지 물위에서 오리들이 줄지어 한가롭게 노닐고 선홍색 꽃무릇이 지천에 늘려있는 용천사에 가을이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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