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설(春雪)이 오는 봄을 시샘하지만 산과 들녘에 겨우내 숨죽였던 초목에는 파릇한 새싹들이 돋아 나고 있다. 새싹과 꽃으로 시작하는 봄은 새로운 것에 대한 시작과 밝은 염원을 담아낸다. 겨우내 움츠렸던 몸과 마음을 훌훌 털어버리고 질박한 아름다움이 숨쉬는 곳, 생명의 싱그러움이 꿈틀대는 땅 끝, 항상 가슴속에 사무치며 밀려오는 그리움을 찾아서 해남으로 봄 마중을 나선다. 달마산 탐방은 하늘높이 일렬로 삐죽삐죽 솟구친 바위연봉들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미련마을에서 동쪽으로 올라서며 시작한다. 북에서 남쪽으로 길게 뻗어 내린 달마산 주 능선이 성곽처럼 휘감아 돌고 주위에 야트막한 야산에 에워싸인 미련 마을은 여느 시골마을과는 달리 남도 특유의 봄 풍경을 연출한다. 산기슭 밭에는 파릇하게 훌쩍 자란 싱그러운 초록색의 마늘잎이 상큼한 봄 맛을 느끼게 한다. 밭둑에는 수줍어하는 여인의 볼처럼 붉게 핀 동백꽃송이가 나그네를 반긴다. 시멘트로 포장된 마을 농로 길을 따라 약10분 정도 올라서면 흘러가는 시냇물처럼 시원스럽게 약수가 쏟아져 나온다. 약수터에 놓여 있는 바가지로 물 한 모금 떠서 마시니 그 맛이 일품이다. 벌써 양지바른 곳에는 진달래가 연분홍 꽃망울을 활짝 열고 방긋 미소 짓는다. 약수터에서 남동쪽에 우뚝 솟아 있는 도솔봉을 향해서 부지런히 발품을 팔면서 올라선다. 산허리를 휘감으며 굽이쳐 돌아나가는 미황사 천연 역사 길은 높은 언덕을 방불케 한다. 천연 역사 길은 소형승용차 한데가 겨우 달릴 수 있는 비좁고 협소한 수레길이다. 초입부터 언덕 오름을 올라서려니 이마에서는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린다. 수레길에서 고갯마루에 올라서면 남쪽으로 앞이 탁 트이며 쪽빛의 푸른 바다 위에 크고 작은 섬들이 올망졸망 무리 지어 모여 있는 다도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미니전망대이다. 바로 앞쪽에는 바다와 인접하고 있는 육지의 끝이란 애칭을 붙여서 부르고 있는 땅끝 마을이다. 남서쪽에는 진도가 아련하고 동쪽에는 통일신라시대 청해진 앞 바다를 자유자재로 누비며 호령하던 해신 장보고 장군의 정기가 서려있는 완도가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다. 높이가 야트막한 야산에는 속살을 훤하게 드러내며 겨울을 보낸 나무들이 봄맞이 준비로 분주하다. 이제 막 연두색의 새순이 돋아나기 시작하는 초목들이 정겹다. 수레길 한쪽 모퉁이에는 파릇파릇한 풀잎과 수북하게 쌓인 낙엽을 헤집고 노란 민들레와 자그마한 보라색의 꽃송이가 구슬방울처럼 앙증맞은 큰개불알풀이 무리 지어 군락을 이루며 흐드러졌다. 통신용 안테나가 서 있는 도솔봉 정상은 민간인들의 출입을 금하고 있다. 미련마을에서 길게 이어지던 수레 길은 도솔봉 아래에서 끝이 난다. 수레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서쪽으로 오솔길을 따라 우회하여 다시 북쪽으로 능선을 이으며 올라서면 눈앞에 금강산의 만물상을 빼 닮은 듯한 준수한 바위봉우리들이 서로 자웅을 겨루며 오밀조밀하게 들어앉아 있다. 보통 큼지막한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산들은 바위의 절리가 크며 아름답게 보인다. 그러나 달마산 능선을 가득하게 메우며 서 있는 바위봉우리들은 하나같이 화강암이 아닌 땅속에 묻혀있던 규암 층이 밖으로 노출된 것이다. 풍화에 매우 강한 규암의 표면은 두꺼비 등처럼 거칠고 울퉁불퉁 돌출되어 있지만 미끈한 화강암 못지않게 아름다운 매력을 발산한다. 눈을 즐겁게 해주는 만물상을 뒤로 하고 호젓한 오솔길을 이으며 나지막한 고갯마루를 넘어서 안부에 내려서면 서쪽 방향으로 돌출된 바위 절벽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작은 암자가 걸쳐져 있다. 자그마한 제비 집을 연상케 하는 도솔암은 통일신라시대 의상대사 창건하였다 전한다. 하나 옛날 암자는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허물어져 버렸고 지금 현존하고 있는 암자는 최근에 신축하였다고 한다. 최근에 모 방송국 인기드라마인“추노” 촬영장소이기도 한 도솔암은 달마산에 대한 강인한 인상을 심어주는 절경을 품고 있다. 좁은 앞마당에서면 앞이 탁 트인 남서쪽으로 땅끝 마을과 진도와 다도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맞은편 산중턱을 중심으로 하여 사방을 휘감아 돌아나가며 큼지막한 바위들이 촘촘히 박혀 있다. 병풍처럼 일렬로 도열해 있는 기묘한 바위들은 거대한 성벽을 연상케 할 만큼 아름답고 웅장하다. 암자 서쪽 한쪽 모퉁이에는 하늘 높이 가지를 뻗어 올린 팽나무 한 그루가 고고한 자태를 하고 서있다. 나뭇가지 사이로 솟구친 기암은 보는 이로 하여금 깊은 인상을 남긴다. 도솔암에서 나와 동쪽으로 올라서면 맞은편에 바다를 사이에 두고 아담하게 들어앉은 완도가 눈인사를 건넨다. 양지바른 언덕아래쪽에는 현대식 건물로 지어진 스님이 거주하는 요사채가 푸른 바다를 마주하며 들어앉아 있다. 요사채를 뒤로 하고 북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뒷동산처럼 나지막한 해발495m미터 봉우리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봄기운이 완연한 달마산의 풍광을 휘둘러본다. 사면이 확 트인 달마산 주 능선은 일정한 전망대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발길이 닿는 곳은 모두가 훌륭한 전망대라 하여도 손색이 없다. 달마산은 땅끝 기맥(해남기맥)의 종착역이다. 호남정맥 깃대봉과 삼계봉 사이에 있는 노적봉에서 분기한 땅끝 기맥은 영암 월출산을 솟구쳐 놓은 다음, 잠시 산세를 낮추며 흐른 뒤 강진 해남 땅에서 다시 솟구친다. 비취색 청자의 고장 강진의 주산인 만덕산을 기점으로 남으로 덕룡, 주작과 해남의 두륜산을 이으며 남쪽으로 힘차게 산줄기를 뻗어 내린 땅끝 기맥은, 마지막으로 달마산과 사자봉을 빚어 놓은 다음 그 맥을 다하고 남해바다에 몸을 푼다. 월출, 별매, 덕룡, 주작, 두륜, 달마산 등 장대한 산줄기를 이루며 땅끝 기맥에 들어앉은 산들은 모두가 아기자기한 바위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일직선상으로 내리 뻗어 내린 달마산의 주 능선은 부드러운 육산과 장엄한 바위산의 혼합형이다. 주 능선을 중앙에 두고 양쪽으로 짧고 촘촘하게 가지를 치며 뻗어나간 지능선 들은 모두가 바다를 향해 달린다. 저 멀리 북쪽에 살짝 얼굴을 내밀고 있는 불썬봉으로 물 흐르듯이 장쾌하게 파노라마 치며 달아나는 산줄기는 영락없는 지네형상이다. 인접하고 있는 바다에서 세차게 휘몰아치는 해풍의 영향 때문일까? 커다란 지네의 등뼈처럼 솟구친 산등성이 중앙에는 큼지막한 바위들이 마치 장승처럼 일렬로 나란히 줄을 서서 이어진다. 바위 사이로 키가 작은 잡목과 진달래나무만 자라고 있어서 멀리서 바라보면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없는 벌거벗은 민둥산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능선에 올라서서 보면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풍광을 연출한다. 산중턱과 아래쪽 나지막한 구릉지 같은 산기슭에는 소나무와 삼나무가 울창하게 숲을 이루고 있다. 남서쪽으로 섬의 무리처럼 붕긋붕긋 솟구친 야트막한 야산에는 푸른 소나무 숲이 장관을 펼친다. 뒷동산을 연상케 하는 야산 사이로 분지처럼 널찍한 들녘 곳곳에는 크고 작은 저수지가 들어앉았다. 저수지에 가득하게 담겨 있는 옥빛의 맑은 물은 정겨움을 더해준다. 동쪽과 남쪽은 사시사철 거친 바닷물이 사나운 호랑이처럼 일렁이는 동해와는 달리 올망졸망 무리 지어 있는 다도해에 가두어 진 듯한 남해바닷물은 호수처럼 잔잔하다. 달마산과 나란히 마주보며 어깨를 맞댄 완도 사이에 있는 강진만은 강물이 바다와 만나는 포구 같다. 물속까지 훤하게 들여다보이는 초록색의 바닷물은 해안선을 가득하게 메우고 서 있는 소나무와 어우러지며 초록색 용단을 깔아 놓은 듯 아름답기가 그지없다. 완도에 닿을 듯 넓게 드리워진 해안가에는 금빛으로 반짝이는 모레 톱은 그 어디에도 없다. 대신 바둑판처럼 반듯반듯한 사각형으로 이루어진 논과 밭이 널찍널찍한 들녘을 펼치며 들어 앉아 있을 뿐이다. 붉은 황토 흙 위에 파릇파릇한 새싹이 돋아난 보리와 마늘 밭은 유년시절 동심의 세계로 흠뻑 빠져들게 한다. 해안선을 따라 옹기종기 모여 있는 울긋불긋한 지붕을 머리 위에 이고 있는 시골의 집 그리고 초록색의 바닷물과 시퍼런 남도의 들녘이 어우러지며 한 폭의 아름다운 봄 풍경을 그린다. 섬진강 하구와는 달리 해남은 매화와 봄꽃이 바다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으로 인하여 약10일 정도 꽃이 늦게 핀다. 그러나 벌써 크고 작은 바윗돌이 즐비하게 늘려 있는 양지바른쪽에는 습기를 머금은 부드러운 흙 위로 새싹을 밀어 올린 아리따운 아가씨들이 봄 마중을 나왔다. 봄이라곤 하지만 아직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차갑다. 꽃샘추위를 견디며 꽃망울을 활짝 열고 방긋 미소 짓고 있는 야생화는 장미처럼 화려하지 않지만 질박하고 소박한 아름다움이 물씬 풍긴다. 길쭉한 보물주머니가 주렁주렁 열려있는 현호색, 꽃송이가 제비꽃처럼 앙증맞고 잎 모양이 노루의 귀를 닮은 노루귀, 파릇한 잎과 꽃송이가 싱그러운 산자고, 꽃잎에 곤충의 홑눈을 닮은 주근깨가 인상적인 큰개별꽃 등 이른 봄에 피어나는 꽃들은 모두가 색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산등성이를 빼곡하게 메우고 있는 진달래나무에는 핑크색의 자그마한 꽃망울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 몸부림치고 있다. 해발이 낮은 산 중턱과 산기슭에는 진달래들이 꽃망울을 열었지만 고지대에는 아직 꽃이 피려면 이르다. 그리움과 아름다움의 상징인 진달래가 흐드러지려면 4월 초순까지 기다려야 한다. 달마산의 백미(白眉) 중 하나인 진달래가 능선에 흐드러진 것을 보지 못하여 아쉽지만 예쁘장한 봄 처녀들이 수놓은 꽃길을 따라 아기자기하게 이어지는 능선을 오르고 내리며 이름이 생소한 떡봉 정상에 올라선다. 부드러운 흙으로 이어지던 능선은 여기서 끝이 나고 이제부터는 서서히 짜릿한 스릴이 넘치는 바위봉우리의 문턱에 들어선다. 떡봉에서 잰 걸음으로 내려서면 하숙골재이다. 큼지막한 바위들이 어지럽게 늘려 있는 사이를 조심스럽게 헤집고 불썬봉과 미황사 도솔암으로 이어지는 대밭삼거리에 올라선다. 삼거리를 지나 때때로 험준한 바위를 타고 오르고 내려설 때는 다리가 후들거리고 간담이 서늘해진다. 해발471m봉에 올라서니 눈앞에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 거대한 바위석순들이 앞 다퉈 서로 자웅을 겨루며 환상적인 퍼레이드를 펼친다. 하얀색의 수직바위봉우리를 이루며 큰 단애와 세련미 넘치는 풍광을 빚어 놓은 규암은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절로 자아내게 한다. 높고 낮은 바위봉우리를 하나하나 넘을 때 마다 고도(高度)는 불쑥불쑥 높아지고 길쭉길쭉하게 솟아 오른 집채만 한 바위연봉들이 연속해서 이어진다. 다양한 형상을 하고 줄지어 서있는 바위연봉들은 천상(天上)의 수석(水石)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험준한 바위틈새를 비집고 노란 꽃송이가 앙증맞은 생강나무가 끈질긴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붉은 꽃망울을 막 틔운 동백나무는 산행의 묘미를 맛보게 해준다. 어느 곳으로 눈길을 주어도 아름답지 않은 곳은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없다. 터줏대감처럼 버티고 앉아 있는 문바위에 닿으면 하늘에 닿을 듯한 바위봉우리들이 파도가 일렁이는 듯한 아름다움을 펼치며 끝 간 데 없이 도열해 있다. 세미클라밍의 실력을 갖춘 사람이라면 누구나 손쉽게 저 바위봉우리에 올라 설 수 있다. 이곳은 달마산에서 가장 험준한 바위봉우리들이 밀집하여 있는 곳이기도 하다. 언제나 자연의 순리에 따리지 않고 부질없는 욕심은 화를 부르는 법! 이렇다 할 안전장치 하나 없는 문바위는 직접 오르지 않고 동쪽으로 우회하여 돌아나가는 길을 선택한다. 돌아간다고 하지만 우회길 또한 결코 녹녹하지만은 않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큼지막한 바윗돌이 늘려 있는 내리막길이 바닥끝까지 이어진다. 공룡의 등줄기처럼 울퉁불퉁하게 돌출된 바위봉우리 사이를 이리저리 헤집고 첫 번째 바위 문을 무사히 빠져 나오면 이번에는 커다란 대문바위 문을 지나야 한다. 지상에서 하늘로 올라서는 통천문(通天門)처럼 자연이 빚어 놓은 협소한 역삼각형으로 이루어진 대문바위 문을 통과 하면 나무 계단이 위쪽에 있는 문바위재 까지 가지런히 놓여 있다. 언덕 오름처럼 경사가 급한 나무계단을 올라서면 문바위재 이자 불썬봉 안부이다. 능선 서쪽으로 눈길을 주면 양지바른 널찍한 산 중턱에 들어앉은 미황사와 동부, 서부도가 한눈 가득히 들어온다. 바로 앞쪽에는 손이 닿을 듯한 달마산 정상인 불썬봉이 어서 오라며 손짓한다. 한달음에 달려서 불썬봉 정상에 올라선다. 땅끝 마을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은 달마산 정상을 상봉 또는 불썬봉이라 부른다. 불썬봉은 전라도 사투리로 불을 켜놓은 봉우리란 뜻이다. 실제로 이곳에는 불을 이용했던 봉수대가 있다. 예전의 봉수대는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허물어져 버리고 없다. 현재는 허물어져버린 돌들을 모아서 옛날 봉수대를 닮은 소망 탑을 쌓아 놓았다. 사면팔방이 탁 트인 정상은 땅끝 기맥과 다도해를 한눈에 굽어보는 환상의 전망대이다. 마치 새파란 하늘이 드넓은 바다 위에 잔영을 드리운 듯한 파란 바닷물에 옹기종기 보석을 뿌려 놓은 듯한 다도해와 기암을 품고 있는 달마산의 빼어난 능선 미(美)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끝없이 펼쳐지는 산 너울에 은빛으로 반짝반짝 빛을 발산하며 솟구친 일천 개의 갖가지형상을 갖춘 바위연봉들은 지루함을 느낄 겨를 초자 주지 않는다. 속살을 훤하게 드러낸 강진만 너머로 완도 상황봉과 숙성봉이 또렷하다. 봄기운이 완연한 오후의 봄 햇살이 바닷물 위에 부서져 내리며 잿빛의 갯벌과 어우러지는 풍광이 나그네의 마음을 울렁이게 한다. 높고 낮은 산등성이에는 무채색 천지인 겨울 산에서 벗어나 연두색의 푸른 초원으로 곱게 물들고 있다. 서편 산기슭에는 동백나무와 후박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숲의 면적은 고창 선운사와 강진 만덕산 아래에 있는 백련사 동백 숲과 비슷하다. 선운사의 동백은 천연기념물이라 하여 철제 펜스로 출입을 제한하고 있지만 백련사와 미황사 뒤편에 있는 동백 숲은 자유롭게 가까이에서 마음껏 감상 할 수가 있어 좋다. 달마산의 동백은 2월 하순부터 꽃을 피워 장관을 펼치지만 올해는 날씨가 추워서 그런가! 이제 막 꽃망울을 열기 시작하는 동백은 아름답기가 그지없다. 북쪽으로 눈길을 주니 두륜산의 노승, 가련, 두륜봉으로 힘차게 달려가는 땅끝 기맥이 아련하다. 동편에는 여인의 허리선처럼 곡선미가 아름다운 해안선을 따라 강진만이 북쪽으로 수평선을 그리며 하늘 길을 연다. 황토색의 모랫바닥이 훤하게 내려다보이는 바닷물 위에 듬성듬성 들어앉은 섬들이 정겹다. 시냇물처럼 쉼 없이 흘러가는 바닷물을 가로 질러 둥근 아치형을 그리며 놓여 있는 완도대교가 멋진 풍경을 연출한다. 정상에서 멋진 달마산의 묘미와 풍광에 흠뻑 심취하며 휴식을 취한다음 호젓한 오솔길을 이으며 서편 산중턱에 있는 미황사로 발걸음을 분주하게 옮긴다. 산죽과 산동백이 우거진 경사가 완만한 오솔길을 따라 약30분 정도 내려서면 남향의 산중턱에 널찍하게 들어앉은 미황사가 나그네를 맞는다. 남해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양지바른 산중턱에 남향을 향해 보고 있는 미황사는 태고의 신비스러움이 물씬 풍긴다. 사찰 동쪽과 서쪽 북쪽은 수령이 수백 년은 되어 보이는 후박나무와 동백이 빼곡하게 병풍처럼 휘감아 돈다. 고목이 되어버린 노거수들이 울창하게 숲을 이루며 천연의 울타리를 빚어 놓았다. 대웅보전 뒤편에는 갓 피어난 꽃송이처럼 하늘에 닿을 듯이 기암괴석이 들쭉날쭉 장식하고 있는 바위연봉들이 거대한 수석을 세워놓은 듯 수려하기 그지없다. 북쪽 중앙에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하여 서쪽에는 명부전, 삼성각, 염화실, 향적당, 종무소, 범종각, 정은당이 있다. 동쪽에는 세심당, 웅진당, 연화당, 달마전이 대웅보전에서 남쪽 아래 중앙에는 자화루가 있다. 사찰 앞쪽 후박나무 아래에는 전통 차를 판매하는 찻집이 자리하고 있다. 대부분 많은 사찰의 법당 주춧돌에는 권위를 상징하는 용의 문양이 새겨져 있다. 하나 달마산 미황사의 대웅전을 받치고 있는 주춧돌 받침대에는 바다 속에 살고 있는 게와 거북이의 문양이 용을 되신 하고 있다. 화려한 단청을 하지 않고 자연의 나뭇결을 그대로 살린 대웅보전은 고전적인(古典的)미(美)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대웅전 앞마당 한쪽 모퉁이에는 초록색의 잎이 싱그러운 상사화와 노란 꽃송이가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닮은 수선화가 나그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향적당 앞쪽에는 정원수로 심어 놓은 후박나무 한 그루가 정겹다. 웅진당 뜰 앞에는 활짝 핀 봄꽃이 운치를 더해주고, 큼지막한 돌담에 둘러 싸여 있는 세심당과 달마전 앞 빈 공터에는 이제 막 꽃을 피운 하얀 매화 꽃송이와 구릉처럼 나지막한 언덕에 듬성듬성 멋진 자태를 하고 다소곳이 서 있는 소나무가 함께 어우러지는 풍경은 아름다운 수채화 같다. 이제 막 꽃이 피기 시작한 붉은 동백 꽃송이가 흐드러지며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어깨가 서로 맞닿을 듯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검은 기와지붕은 한 폭의 아름다운 동양화를 보는 듯 하다. 대웅보전에서 시야를 가리는 장애물조차 없는 앞이 확 트인 남쪽에 펼쳐지는 풍광은 달마산 에서만 맛볼 수 있는 절경이다. 여기에다 쪽빛의 남해바다로 빠지는 일몰을 불 수 있다면 금상첨화가 따로 없다. 한반도 육지의 최남단에 있는 미황사는 두륜산 아래에 있는 대흥사의 말사이다. 749년(경덕왕8년)에 의조대가 창건했다. 사적 기에 따르면 금인이 인도에서 돌배를 타고 가져온 불상과 경전을 금강산에 모시려고 하였으나 이미 많은 절이 있어 되돌아가던 중 이곳이 인연의 땅임을 알고, 의조에게 경전과 불상을 소에 싣고 가다가 소가 멈추는 곳에 절을 짓고 봉안하라 이렀다고 한다. 이에 의조는 금인의 말대로 경전과 불상을 소에 싣고 가다가 소가 크게 울고 누웠다가 일어난 곳에 통교사를 창건하고 마지막 멈춘 곳에 미황사를 지었는데, 소의 울음소리가 지극히 아름다워‘미(美)’자와 금인을 상징한 ‘황(黃)’자를 따서 사찰 이름을 미황사(美黃寺)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미황사 대웅전에는 천불상이 모셔져 있고 달마 산엔 만불상이 계시니 대웅전에서 3배를 올리면 삼천 배가 되고 마당에서 삼배를 올리면 삼만 배가 된다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흔히들 남해를 보물섬이라 한다면 봄의 전령인 매화가 가장 먼저 꽃망울을 여는 섬진강 하구 있는 광양과 하동 해남은 모든 것을 감싸 안을 만큼 따뜻하고 아늑함이 있다. 한반도의 끝에 삐쭉 솟은 해남은 그 자체가 삼면이 바다인 섬 같은 반도이다. 호수 같은 바다와 보석 같은 다도해에 둘러싸여 있고 붉은 황토의 들녘이 출렁이는 넉넉한 땅이다. 해마다 봄이면 산 능선을 붉게 물들이는 진달래가 사무치게 그리운 첫사랑의 여인을 떠 올려 주듯이 어머니품속처럼 아늑하고 넉넉한 대자연을 찾는 것은 평소에 살아가며 만나지 못한 또 다른 그리움을 만나기 위함이 아닐까!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에 파릇하게 웃자란 보리들이 눈앞에서 어지럽게 군무를 춘다. 싱그러운 봄바람을 깊숙이 마시고 화사한 봄꽃을 마음속 가득하게 담아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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