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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방랑자의 경주 나들이.^^^

풀꽃사랑s 2018. 12. 1. 21:52


경주대릉원 단풍.

즐거운 추석명절과 연휴가 끝나고 맞이하는 구월 달 마지막 주말을 경주 첨성대 야생화 단지와 동부사적지를 둘러볼 계획으로 경주로

나들이를 나선다.

새벽 6시50분에 대구를 출발하여 경주 고속터미널로 가는 금호고속버스를 타고 경주로 간다.

경주에 도착할 무렵 아침부터 먹구름이 드리워져 있던 하늘에서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혹시나 오늘 일정에 치질이 빚어지지 않을까 노심초사 우려 했는데 다행이도 내리는 비의 양도 적고 금방 그쳐서 예정대로 일정을 보낸다.

 

날씨가 선선한 가을이여서 일까 ! 무더운 여름과 달리 경주를 찾는 외국인들이 의외로 많다.

제일먼저 찾은 곳은 첨성대 주변에 아름답게 꽃을 피운 야생화 단지이다.

경주 첨성대 야생화단지와 동부사적지 인근에는 추운 겨울을 제외한 봄, 여름, 가을 내내

탐스러운 꽃망울을 활짝 열고 아름다운 꽃을 피운 꽃들이 피고 지기를 반복하는 꽃동산이다.

추석 전후에 야생화 단지를 붉은 꽃송이로 곱게 물들였던 꽃무릇의 꽃송이는 벌써 다 져버리고 꽃대만 남아 있다.

일반 상사화와 달리 꽃무릇은 초가을에 꽃이 피고난후에 그 꽃대가 쓰러지고 보리처럼 가을에 파릇한 잎이 돋아나서 겨울과 이른 봄이 지난 후 신록의 계절 푸른 오월에 잎이 마른다.

이와 반대로 일반 상사화는 이른 봄에 파릇한 새싹이 올라와 신록의 계절 푸른 오월을 보내고 역시 잎이 마르고 무더운 여름에 꽃대가 올라와 꽃이 핀다.

우리가 상사화라 부르고 있는 연유는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벌써 꽃이진 꽃무릇은 파릇한 새 잎이 돋아나고 있다.

 

깊어가는 가을 경주 첨성대와 동부사적지 일대에는 서양 억새인 핑크뮬리가 많은 관광객들을 불러 모우고 있다.

이른 아침부터 전국에서 찾아온 사진작가들과 관광객들이 분주히 카메라 셔트를 누르며 저마다 촬영에 여념이 없다.

핑크색으로 곱게 물던 서양억새는 나도 처음 보는 꽃이다. 사실 이 꽃이 벌써부터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었지만 그동안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 더 진실에 가깝다.

첨성대 야생화단지는 올 여름 이웃에 있는 동궁 월지의 연꽃을 보러 왔다가 한번 둘러보았던 곳이다. 여름에는 이곳에 플록스, 에키네시아, 베롱나무, 천인국, 바늘꽃(가우라),칸나. 베고니아, 배초향, 자주꿩의비름, 코스모스, 황화 코스모스, 붉은 숫잔대 등 많은 여름 꽃들이 지천에 피어 있었다.

 

가을에는 플록스와 에키네시아를 대신하여 산구절초와 꽃무릇, 층꽃나무, 해바라기, 베고니아, 칸나. 바늘꽃, 배초향, 자주꿩의비름, 코스모스가 꽃밭을 가득히 메우고 있다.

첨성대 주변 공터에 심어 놓은 배롱나무는 여전히 붉은 꽃송이를 간직하고 있다.

특히 여름철에 푸른 잎만 무성하던 배초향은 탐스러운 꽃송이가 아름답게 피어 상큼한 가을 맛을 느끼게 해준다. 해바라기는 얼굴이 큰 것만 보았는데 이곳에는 얼굴이 작은 해바라기가 무리지어 활짝 미소 지으며 길손을 반긴다.

활짝 핀 코스모스는 가을의 꽃답게 정겨움을 더하여준다. 소담스럽게 핀 코스모스 꽃송이 너머로 보이는 첨성대가 산뜻한 가을 맛을 느끼게 해준다.

꽃송이가 탐스러운 싱그러운 산구절초는 무르익어가는 가을의 향기가 물씬 풍긴다.

보라색의 꽃송이가 층층이 올라가면서 핀 층꽃나무 군락지가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무더운 여름을 붉은 꽃송이로 더욱 불타게 했던 연꽃은 잎만 남아 있다.

동부사적지 주변을 온통 노란색으로 곱게 물들게 했던 황화 코스모스는 온데간데없고 대신 검은 흙만 자리를 지키는 텅 빈 공터로 남아 있다.

야생화단지에서 차가 달리지 않는 도로를 넘어서면 남쪽으로 생태터널이 있다.

이곳 역시 무더운 여름 내내 공중에 주렁주렁 열려있던 표주박은 수확이 끝났는지 없고 길이가 길쭉한 수세미만 표주막이 있던 빈자리를 지키고 있다.

터널 주변에는 여름에 심어 놓은 백일홍이 아직도 싱싱함을 유지하며 이곳을 찾은 길손을 반긴다. 백일홍 주변에는 코스모스가 어느새 백일홍과 나란히 어깨를 맞대고 어우러지며 무리지어 있다. 코스모스가 심어져 있는 중앙에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이 기념사진을 남기라고 포토 존이 설치되어있다.

 

사적19호인 계림 숲은 멀리서 보면 평평한 평지에 있는 야산을 방불케 한다.

또한 아름드리나무들이 무리지어 빼곡하게 줄지어 서있는 계림 숲은 방풍림을 연상케 한다.

한눈에 보아도 예사롭지 않은 숲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경주 계림(慶州 鷄林)은 첨성대(瞻星臺)와 월성(月城)또는 신월성(新月城) 사이에 있는 숲으로 왕버들, 느티나무, 팽나무와 소나무 등의 고목(古木)이 주종(主宗)을 이루고 있다.

이 나무들은 신라 건국 당시부터 심어져 천년의 세월이상을 보내며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현재 계림에는 약 100여 그루의 고목이 울창하게 우거져 원시림의 숲을 이루고 있다.

계림 숲 정문에는 수령이 약 1,300년 이상 된 회화나무가 서 있다.

정문에 서있는 회화나무는 나무의 둘레 직경이 약 2m 정도이고 수령(樹齡)은 약 1,300년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회화나무는 한자로 표기하면 괴화나무(槐花)로 표기 하는데 발음을 중국 발음과 유사한 회화나무로 이름 붙여 부르고 있다.

회화나무를 뜻하는 한자인槐(괴)자는 귀신과 나무를 합쳐서 만든 글자이다.

회화나무를 사람이 사는 집에 많이 심은 것은 잡귀를 물리치는 나무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유로 조선시대부터는 궁궐마당이나 출입구 부근에 많이 심었다.

또한 산속에 있는 사찰에서도 은행나무와 더불어 회화나무, 팽나무를 정원수로 많이 심고 있다. 그리고 사원(祠院)이나 향교(鄕校) 등 학생들이 공부하는 학당(學堂)에도 회화나무를 많이 심었으므로 학자(學者) 나무로 전해지고 있다.

실제로 오늘날까지 회화나무는 마을 앞 동구(洞口) 밖에 몸집이 우람한 고목이나 거목이 되어서 마을을 지켜 주는 호위무사처럼 하늘을 향해 서 있다.

이러한 연유로 회화나무는 마을을 지켜주는 당산(堂山)나무로 많이 심어져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무더운 여름에 시원한 그늘을 제공해주는 정자(亭子)나무는 주로 느티나무나 팽나무, 회화나무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특히 섬에서는 팽나무를 마을을 지켜주는 당산나무로 보호하고 있는 것을 많이 보아 왔다.

 

계림(鷄林)숲은 경주 김씨(慶州 金氏)의 시조(始祖) 알지(閼智)가 태어났다는 전설(傳說)이 전해지는 유서(由緖)깊은 숲이다. 신라 4대왕인 탈해왕(脫解王)때 호공(瓠公)이 숲에서 닭이 우는 소리를 들었는데, 가까이 가보니 나뭇가지에 금궤(金櫃)가 빛을 내며 걸려 있었다.

이 사실을 임금께 아뢰어 왕이 몸소 숲에 가서 금궤를 내렸다. 뚜껑을 열자 궤속에서 사내아이가 나왔다 하여 성(姓)을 김(金) 이름을 알지라. 명하였다.

이일이 있은 후 본래 시림(始林), 구림(鳩林)이라 하던 이 숲을 계림(鷄林)이란 새로운 이름으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

계림 숲속에는 기와지붕으로 이루어진 비각(碑閣)이 자리하고 있다. 비각 안쪽에는 조선(朝鮮) 순조(純祖)3년인 1803년에 세워진 김알지 탄생에 관한 기록이 새겨져 있는 비석(碑石)이 세워져 있다.

원시림의 숲을 방불케 하는 계림 숲은 이른 봄이면 연두색 신록(新綠)이 아름답고 여름이면 짙푸른 녹음(綠陰)이 가을이면 오색으로 곱게 물든 단풍이 절경(絶景)을 보여준다.

아직 늦가을이 아니어서 푸른 녹음이 드리워져 있는 몸집이 우람한 고목 숲길로 사뿐 사뿐 서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새소리 바람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호젓한 숲속을 혼자서 걸으니 세상만사 모든 일이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마음도 한결 가볍다.

상쾌한 마음으로 숲이 주는 즐거움을 만끽 하면서 나 혼자 만의 낭만(浪漫)과 사색(思索)을 즐긴다. 계림 숲길이 끝나갈 무렵 눈앞에 여성의 허리선처럼 우아한 자태를 하고 있는 반송(盤松)이 길손을 반긴다. 반송은 소나무 줄기가 여러 갈래로 나누어져 자라는 소나무이다.

 

반송너머로 커다란 집채만 왕릉(王陵)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방금 전에 지나왔던 첨성대 앞에서 보았던 그 고분(古墳)이다.

파릇한 잔디밭에 모셔져 있는 고분들은 하나같이 조그마한 야산을 연상케 해준다.

바로 신라 제17대왕인 내물왕릉(奈勿王陵)이다. 왕릉이 들어앉아 있는 동쪽에는 회화나무 숲이 남쪽 과 서쪽에는 울창하게 무리지어 서있는 푸른 소나무 숲이 아름답게 조성되어 있다.

특히 동쪽으로 회화나무숲으로 조성되어 있는 계림 숲이 끝나는 지점에 있다는 것이 신비스러움 마저 느끼게 해준다. 또한 왕릉에서 북쪽 방향은 앞이 훤하게 다보이도록 비어 있다는 것이 특이한 점이다. 왕릉은 내물왕릉과 함께 또 다른 두 개의 왕릉이 나란히 함께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서 보면 북쪽에 있는 첨성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산이 아닌 평지에 이렇게 큰 왕릉이 들어앉아 있는 것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같은 일이다. 한눈에 보아도 이곳이 풍수지리학(風水地理學)에서 말하고 있는 명당(明堂)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왕릉 앞쪽에는 상석(床石)으로 보이는 돌이 놓여 있다.

 

사적 제188호인 경주 내물왕릉(慶州 奈勿王陵)은 신라 제 17대 내물왕 (재위 356~402)을 모신 곳으로 대릉원(大陵苑)의 남쪽에 위치해 있으며 월성(月城)에서도 가까운 곳에 있다.

능은 밑둘레가 약 68m, 높이가 약 5.5m, 봉분의 지름이 약22m 정도로 흙을 둥글게 쌓은 원형모양의 토분(土墳)이다.

봉분(封墳)아래 쪽에는 호석(護石)으로 추정되는 자연석의 일부가 노출되어 있다.

내물왕은 경주 김씨로는 두 번째 왕위에 올랐으며, 이후 경주 김씨성에 의하여 독점적 왕위(王位) 계승(繼承)이 이루어진다. 왕은 중국(中國)의 문물(文物)을 받아들이고 여러 차례 왜구(倭寇)의 침입을 물리치는 등 외교(外交)와 국방(國防)에 힘썼으며 고대(古代)국가(國家)의 체제(體制)를 확립(確立)하였다.

1285년 일연스님이 지은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내물왕릉을 점성대(占星臺) 서남(西南)쪽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점성대는 오늘날 첨성대(瞻星臺)이다.

 

계림 숲의 경계선에서 수레길 남쪽에는 경주 교촌한옥마을이 있다.

한옥마을에는 경상북도 시도 유형문화재 제191호인 경주향교와 중요민속자료 제27호인 경주 최씨 고택(故宅)이 있다. 이밖에 중요무형문화재 제86-다호인 경주 교동법주가 자리 잡고 있다. 교촌 마을은 12대 동안 만석지기 재산을 이으며 학문에도 힘써 9대에 걸쳐 진사(進士)를 배출한 경주 최부자의 얼이 서려있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원효대사와 신라요석공주가 살았던 요석궁(瑤石宮)이 자리고 있었던 유서 깊은 마을이다.

 

경주 향교(鄕校)는 훌륭한 유학자(儒學者)를 제사(祭祀)하고 지방민(地方民)의 유학 교육(儒學敎育)과 교화(敎化)를 위하여 국가(國家)에서 지은 교육기관(敎育機關)이다.

이 자리는 원래 신라 신문왕(新羅 神文王)2년 682년에 처음으로 세워진 국학(國學)이었던 곳이다. 고려시대(高麗時代)에는 향학(鄕學)으로 조선시대(朝鮮時代)에는 향교로서 지방교육기관의 역할을 이어왔다. 임진왜란(壬辰倭亂)때 불탄 것을 선조(宣祖)33년1600년도에 대성전(大成殿)을 비롯한 제향공간(祭享空間)을 다시 짓기 시작하여 광해군(光海君)6년 1614년에 명륜당(明倫堂)을 배롯한 강학공간(講學空間)을 원래 모습대로 고쳐지었다.

건물(建物)은 위쪽 높은 곳에 성현(聖賢)들의 위패(位牌)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공간인 대성전과 동, 서무(西廡)를 두고, 아래쪽 낮은 곳에 공부하고 생활하는 공간인 명륜당과 동, 서재(西齋)를 두고 전형적인 전묘후학(前廟後學)의 배치를 취하였다.

보물제1727호인 대성전은 건물 앞이 3칸이고 옆이3칸인 맞배지붕으로 엄숙함이 있다.

경상북도에 현존(現存)하는 가장 큰 향교이다.

※서무(西廡)는 고려와 조선 시대 공자를 모신 사당에서 중심 건물인 대성전 서쪽에 두었던 아래채 건물을 말한다.

※서재(西齋)는 조선 시대, 유생이 거처하며 공부하던 장소를 말한다.

 

경주향교에서 남쪽으로 눈길을 주면 하늘을 향해 높게 솟구친 옛날건물 형태의 누각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높이가 고층 아파트 3층 높이 정도 되어 보이고 기와로 지붕을 얹어 놓아서 그냥 얼핏 보아서는 일반 사찰 같은 건물 모양을 하고 있다.

이 건축물이 바로 신라시대에 존재 하였던 목조 교량인 월정교(月淨橋)이다.

첨성대와 계림 숲, 향교와 교촌한옥마을 그리고 동궁과 월지가 있는 널찍한 들녘은 옛날 신라천년의 왕궁이 자리 잡고 있던 곳이다. 이 왕궁의 외곽을 둘레 약2,400m의 길이로 성을 쌓았는데 그 성을 반월성(半月城)또는 신월성(新月城)이라 했다.

반월성 또는 신월성이라고 하는 연유는 성(城)의 모양이 반달처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은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옛 성은 허물어져 버리고 지금은 흔적만 남아있다.

 

이 반월성의 남쪽으로 문천(蚊川)이라는 작은 하전이 흘러가데 이 하천을 남북으로 가로 질러 다리가 놓여 있는데 이 다리가 월정교(月淨橋)이다.

1145년 김부식이 지은 삼국사기(三國史記) 기록에 의하면 통일신라 760년 경덕왕(景德王)19년에 “월성궁궐 남쪽 문천(蚊川)을 남북으로 가로 질러 일정교(日淨橋) 월정교(月淨橋) 두 개의 다리를 놓았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목조로 이루어진 두 개의 다리는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모두 소실되었으나 이중 월정교는 10년이란 긴 세월 동안 복원 공사를 마치고 최근에 일반인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월정교의 다리 길이는 약 66m, 폭과 높이가 9m 정하여 최근에 복원하였다.

남쪽과 북쪽에 2층 누각으로 이루어져 있고 누각과 다리중앙의 모든 부분을 기와지붕을 얹어 놓은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다.

 

다리 아래쪽으로 흘러가는 강물에 비취는 반영(半影)은 천하일품(天下一品)이다.

다리가 끝나는 지점인 남쪽과 북쪽에는 거대한 문루가 갖추어진 누각이 자리 잡고 있어서 신라시대의 독특한 다리 양식을 엿 볼 수가 있다.

또한 이 월졍교에는 신라시대 고승인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애틋한 사랑이 전해지고 있다.

사방이 확 트인 2층 누각에 서면 계림 숲과 첨성대 동궁 월지 그리고 교촌 한옥마을과 경주향교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월정교에서 반월성 성터를 지나 동쪽으로 약 15분 정도 발걸음을 옮기면 옛 신라시대 왕궁인 동궁(東宮)과 월지(月池)가 있다.

봄이면 만개한 벚꽃이 아름답고 동궁 옆에 있는 월지는 매년 여름이면 붉은색과 흰색의 연꽃이 만개하여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다.

최근에는 별도로 중국 꽃인 부용화를 심어 이색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가을에는 붉은 단풍이 아름답다.

 

동궁과 월지는 삼국사기 기록에 674년 문무왕 14년에 창건 하였다고 전해진다.

서쪽에 있는 별궁인 임해전(臨海殿)은 군신들이 연회나 회의를 하거나 왕이 귀빈을 접대 했던 장소로 알려져 있다. 기록에는 별궁으로 되어 있지만 신라시대 때 정국에서 차지하는 그 위상은 매우 높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궁궐 안쪽에는 동서남북으로 길게 해자(垓字)처럼 보이는 깊은 연못이 조성되어 있다.

연못 주변에는 현재 중국 사천성 동쪽에 있는 명산인 무산(巫山)의 12개 봉우리를 상징하는 산의 형상을 돌로 쌓아서 조성하여 놓았다.

연못 안쪽에는 전설속의 행중선산(海中仙山)인 봉래(蓬萊)방장(方丈)영주(瀛州)를 상징하는 3개의 섬을 만들어 놓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또한 꽃을 심고 사슴, 닭, 토끼 등 진기한 새와 많은 짐승을 길렀다고 전해지고 있다.

실제로 1975년 3월~1976년12월 달에 발굴조사를 하면서 이곳에서 많은 종류의 유물과 동물 뼈가 발굴되었다.

이 연못이 동해의 푸른 바다를 상징한 것으로 보아 이 중심 건물을 임해전이라 불렀다는 설이 있다.

 

특히 연못에 물을 공급하는 입수구와 물이 빠져 나가는 배수구등의 시설도 양호한 상태로 발견되었다. 현재도 이 입수구와 배수구를 사용하고 있다.

연못의 서쪽에는 별궁인 임해전 건물터가 남아 있다.

궁궐의 행랑(行廊)은 연못의 남쪽으로도 연결 되어 있었듯 하나 북쪽은 철길이 놓이고 남쪽은 차가 통행하고 있는 도로가 개설되었다.

아쉽게도 이로 인하여 동궁이 많이 손상되었기 때문에 건축물 전체의 윤곽을 확인할 길이 없다. 동궁과 월지 유적지는 1980년 정화공사를 거처 신라 궁궐의 원지(苑池)로 복원 되었다.

지금현재 3채의 누각이 복원되어 있다. 이 누각의 복원은 발굴조사 때 출토된 목조 건물 부재와 신라시대의 다른 유적들을 참고 하여 복원하여 놓았다.

이외 건물터는 주춧돌만 정연하게 확인하여 원래의 모습을 가늠해 볼 수 있게 빈 공터에 잔디를 심고 정비하여 놓았다.

 

경주첨성대 야생화단지와 계림 숲 그리고 경주 향교와 월정교, 동궁과 월지를 둘러보고 신라천년의 고분들이 모여 있는 대릉원을 찾는다.

대릉원(大陵苑)이란 명칭은 “삼국사기(三國史記)의 기록에 미추왕(味鄒王)을 대릉(大陵: 竹長陵)에 장사지냈다는 기록에서” 따와서 붙여진 이름이다.

사적 제512호인 경주 대릉원(慶州 大陵苑)경주 시내 황남동 일대에 분포되어 있는 신라초기의 무덤들로 일부는 대릉원 구역 안에 있다.

신라의 왕권(王權)이 강화가 이루어졌던 5세기~6세기 초기 까지 무덤으로 왕, 왕비, 귀족 등의 무덤으로 대릉원에는 총 30여기의 무덤이 있다.

큰 무덤은 대부분 돌무지넛더널무덤(積石木槨墳)이고 주변에는 봉분이 없는 무덤이 있다.

대릉원안에는 전 미추왕릉(傳 味鄒王陵)을 비롯하여 천마총(天馬塚)과 황남대총(皇南大塚)이 있다. 1973년에 발굴된 천마총은 지름이 47m, 높이12,7m로 금관을 비롯하여 많은 유물이 나왔다. 당시 천마도가 그려진 말안장 드리개가 출토되었기 때문에 ‘천마총’이라 이름 하여 내부를 공개하고 있다. 또한 1973년부터 1975년까지 발굴 조사된 황남대총은 남북길이 120m, 동서길이80m, 높이23m의 거대한 쌍무덤으로 남쪽 무덤에서는 금동 관과 남자의 뼈 일부 및 많은 유물이 나왔다. 북쪽 무덤에서도 금관과 부인대(夫人帶)라는 글씨가 있는 은제 허리띠 등 많은 유물이 나왔다. 남쪽 무덤의 주인은 남자, 북쪽 무덤의 주인은 여자로, 부부의 무덤을 붙여 만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무덤의 봉분이 모두 하나의 작은 야산을 연상케 하는 대릉원은 2000년도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집채만 한 고분들이 줄지어 자리 잡고 있는 대릉원은 다양한 종류의 수목과 아기자기한 산책로를 조성하여 놓아 공원을 연상케 한다.

이른 봄에는 벚꽃과 목련 산수유 꽃이 아름답고 무더운 여름에는 짙은 녹음과 붉은색 꽃송이가 탐스러운 배롱나무 꽃이 일품이다.

가을에는 형형색색으로 곱게 물든 단풍이 아름답기가 그지없다.

 

국보 제31호인 경주 첨성대(瞻星臺)는 신라 선덕여왕때 만들어진 천문관측 대이다.

전체 높이는 9.17m 로 지대석과 기단을 사각으로 쌓고 그 위에 27단의 원통형 몸체 부위를 곡선으로 쌓아 올린 후 다시 장대석을 우물정자(井) 형으로 얹어 정상에서 천문을 살피도록

시설되어 있다.

첨성대를 쌓아 올린 29단의 석단과 361개의 돌은 각각 음력의 한 달과, 1년의 날수와 같으며

제 13단과 15단 사이의 네모난 출구가 있어 내부로 들어 갈 수 있게 되어 있다.

경주시 반월성과 대릉원 사이에 있는 첨성대는 우리나라 최초의 천문대로 1300년의 긴 세월동안 변함없이 그 자리에 서 있다.

 

신라천년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고도(古都) 경주(慶州)는 발길과 손길 눈길이 닿는 곳마다

우리고유(固有)의 전통 문화재(傳統文化財)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이런 연유(緣由)로 도시 전체가 2000년 12월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世界文化遺産)에 등록 되어 있다.

이중에서도 국보 제31호인 첨성대 일대를 경주동부사적지대(慶州東部史蹟地帶)로 관리하고 있다. 이곳의 총 지정면적은 66만 9293㎡로 최대 규모이다.

이중 황남동과 인왕동을 뺀 첨성대 주면이 차지하고 있는 면적은 약9만 9000㎡이다.

경주 첨성대를 비롯한 이곳에는 봄, 여름, 가을 이렇게 계절별로 나누어 탐스럽게 꽃들이 피고 지기를 반복한다.

 

신라천년의 숨결이 느껴지는 널찍한 꽃밭에 사시사철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게 핀 꽃송이들이 아름답게 수놓은 풍경을 보고자 전국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 들고 있다.

이른 봄부터 목련, 벚꽃, 유채꽃을 시작으로 초여름에는 접시꽃, 튜울립, 팬지,개망초가 아름답게 핀다. 무더운 한여름에는 동부사적지와 동궁과 월지에 붉은 꽃송이가 탐스러운 연꽃과 노란색의 황화 코스모스, 에키네시아, 칸나, 플록스 등 많은 여름 꽃들이 지천에 피고지기를 반복하며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의 마음을 울렁이게 한다.

가을에는 핑크뮬리, 산구절초, 층꽃나무, 꽃무릇, 베로니아 등 이렇게 계절별로 다양한 꽃들이 꽃망울을 활짝 열어 아름다운 꽃동산을 이루고 있다.

 

이 기행문은 추석연휴가 끝나고 경주 첨성대와 계림숲 월정교 경주 향교와 교촌마을 그리고
대릉원을 둘러보고 느낀 점을 적은 글입니다.
벌써 올려야 했으나 그동안 개인적이 일이 많아서 이제야 마무리를 하고 올려봅니다.
무술년 새해가 밝은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송년의 달인 12월이네요.
올 한해는 저에게는 다사다난 했던 해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송년의 달인 12월은  즐거운 첫 주말부터 시작합니다.
불청객인 황사가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즐거움과 행복이 넘치는 넉넉한 주말 잘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