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산행 기행문

강진 만덕산 , 다산 초당(草堂).

풀꽃사랑s 2017. 3. 1. 23:22



강진 만덕산 깃대봉, 다산 초당(草堂).

동쪽은 호남정맥(湖南正脈)이, 남동쪽에는 사자지맥, 남서쪽과 북쪽은 땅 끝 기맥이 사면을

모두 산줄기가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탐진강 하구 북쪽에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모두

갖추고 있는 전남 강진군이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다.

남동쪽과 남서쪽으로 나란히 남해바다를 향해 나란히 어깨를 맞대고 이어지는 두 산줄기 중앙 남쪽에 탐진강

물이 흘러들어가는 강진만이 있다.

탐진강 하구 북쪽에 자리 잡은 강진군은 자연이 빚어 놓은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우리에게 너무나도 유명하게

알려진 고려청자(高麗靑磁), 도요지(陶窯址)이다.

명성이 자자한 고려청자 와 함께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만덕산 산자락 아래쪽 산속에 있는

다산초당과 백련사 동백나무 숲이다.

 

만덕산(해발762m) 깃대봉은 동쪽에 있는 호남정맥 깃대봉과 삼계봉 사이의 해발 434m인 노적봉에서

 분기하는 땅 끝 기맥 주능선에서 동쪽으로 살짝 벗어나 있다.

탐진강 하구에 눈이 시릴 듯한 푸른 강진만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만덕산은 높이가 해발 1000m에

못 미치지만 남도 특유의 아기자기한 바위봉우리를 품고 있는 산이다.

이산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을 맞이하여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역사적 전적(戰績)지 이기도 하다.

또한 6.25 한국 전쟁 때 무장 공비의 출몰이 심했던 산이다. 만덕산(萬德山)의 유래는 한자로 일만만(萬)에

큰덕(德)자를 써서 만인에게 덕을 베푸는 산이란 뜻을 품고 있다.

이곳에 살고 있는 지역 주민들에 의하면 임진왜란과 6.25 한국전쟁을 비롯한 수많은 전란을 겪으면서도

전란으로 인한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이것은 만덕산이 덕을 베풀었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특히 만덕산 아래에 잡고 있는 백련사 주위의 동백나무 숲은 붉게 핀 동백꽃이 아름답기로 유명하게 알려져 있다.

백련사 동백꽃과 함께 또 하나 우리에게 알려진 것이 다산 정약용이다.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의 저서를

집필한 다산 정약용은 한국 최고의 실학자이자 개혁가이다. 다산 정약용은 정치적인 이유와 천주교도라는

이유로 무려 18년 동안 이곳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해야만 했다.

백련사 아래쪽 산속에는 조선시대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 선생이 18년 동안 이 강진 땅에서 유배 생활을 하며

목민심서등 많은 글을 쓰고 후학을 교육시킨 다산초당이 있다.

언제 꼭 한번 찾아보고 싶은 만덕산과 백련사 동백나무 숲길 그리고 다산 초당이었다.

오늘에서야 그 꿈을 이루어 탐방 길에 나선다.

 

봄기운이 완연한 남도의 들녘에 전남 강진에서 이어지는18번국도 변에 자리 잡고 있는 기륭마을이

아담하게 들어 앉아 있다.

마을에서 서쪽으로 최근에 포장된 마을 도로에서 5분 정도 올라서면 만덕산 옥연사(萬德山 玉蓮寺),

덕산농장(德山農場)이란 글귀가 표기 되어 있는 표지석이 서 있다.

그렇게 크지 않은 돌로 된 표지 석에 새겨진 글귀가 인상적이다.

오늘 만덕산 탐방은 기룡마을 표지 석이 서있는 곳에서 남쪽으로 올라서며 시작한다.

남쪽에 보이는 만덕산 정상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아래쪽에 만덕산 옥연사가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다.

옥연사 절로 올라서는 포장된 임도 길에는 아직 이른 춘삼월 봄꿈에서 깨어나지 않은 벚꽃 나무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줄지어 서 있다.

벚꽃나무가 줄지어 서있는 임도 길이 옥련사 절로 길게 이어진다.

벌써 따뜻한 봄 날씨 어서 일까! 아직 달콤한 봄꿈을 꾸면서 깊은 단잠에 빠져 있는 벚꽃 나무는

금방이라도 아름다운 새하얀 벚꽃을 피울 듯이 벌써 붉은 색의 꽃눈이 앙증맞다.

서쪽으로 이어지는 덕산 농장 농로 길 주위에는 아담하게 묘지들이 줄지어 들어 앉아 있다.

묘지 주위에 심어 놓은 편백나무 숲이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그 묘지 아래쪽 탐진강 하구에 넓게 자리 잡고 있는 남도의 들녘에 이른 봄이면 메마른 땅에

목을 축여줄 널찍한 호수처럼 보이는 저수지가 있다. 수정처럼 투명하고 맑은 비취색의 푸른 물이

연두색 신록처럼 싱그럽다.

금방이라도 벚꽃들이 나를 보고 방긋 미소 지을 듯이 서 있는 임도 길로 발걸음을 재촉하며 5분 정도

올라서니 서쪽에 옥련사 절이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렇게 화려하게 단청을 하지 않고 검소하게만 보이는 옥련사 절 뒤편에는 푸른 편백나무 숲이

싱그러운 봄 풍경을 그린다.

수령이 수십 년은 되어 보이는 소나무가 울창하게 원시림의 숲을 이루고 있는 능선 길로 발걸음을 재촉하며 올라선다. 이제 막 새싹이 돋아나는 향긋한 쑥 향기와 봄 냄새가 나의 코를 자극한다.

여기서부터는 가파른 능선 길로 올라서야 한다.

약110m정도 능선 길로 올라서니 조그마한 옹달샘이 자리 잡고 있다. 아직도 샘의 물은 마르지 않았는데

샘에서 솟아 나오는 물의 양이 적어서 일가 물은 그렇게 맑아 보이지 않는다. 향긋한 봄 냄새가 물씬 풍기는

가파른 능선 길을 약20분 정도 땀을 흘리면서 올라서면 지도에 표기되어 있는 해발205m인 필봉 정상이다.

여기서 잠시 숨 고르기를 하며 주위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들을 조망해 본다.

저 멀리 북쪽의 보은산 아래쪽에 천 년의 신비를 자랑하는 고려청자 도요지가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는

강진읍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강진읍 뒤편 북쪽방향에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 있는 영암 월출산이 지척에 있다.

팀진강 하구에는 면적이 광활한 강진 평야가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처럼 펼쳐진다.

강진만의 푸른 물줄기와 어깨를 나란히 하여 남쪽으로 내려가며 경지 정리가 잘된 농경지들이 꼭 바둑판처럼

반듯반듯하게 조성되어 있다.

넓은 들녘에는 푸른 보리밭이 벌써 봄기운이 완연한 남도의 싱그러운 봄 풍경을 그린다.

들녘의 양지바른 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 마을은 꼭 푸른 바다 위에 보석처럼 뿌려져 있는

섬처럼 한 폭의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연두색의 푸른 보리밭 들녘너머로 강진만의 푸른 물결이 넘실거린다.

그 물결너머로 호남정맥에서 분기한 사자지맥의 주능선이 남쪽으로 길게 강진만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끝 간 데 없이 펼쳐진다.

필봉 정상에서 남쪽에 자리 잡고 있는 만덕산 깃대봉으로 아기자기한 바위로 이루어진 봉우리들이

서로 자기들이 잘났다고 자랑을 하며 무리지어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 있다.

몸집이 커다란 바위봉우리로 이루어진 능선 동쪽과 서쪽으로 푸른 소나무 숲이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이곳 남도에서 보는 소나무 숲은 또 다른 아름다운 풍경으로 길손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잠시 달콤한 휴식을 취한 다음 필봉정상에서 남쪽으로 내려서니 서쪽에 있는 강진광업소로 내려서는

안부 갈림길 이다. 안부 주변에서 꼭 푸른 오월에나 볼 수 있는 빨간색 앵두열매를 닮은 붉은

망개 열매가 탐스럽게 열려 있다.

산기슭에는 키가 나지막한 진달래나무가 빼곡하게 무리지어 숲을 이루고 있다.

금방이라도 연분홍 진달래꽃이 필 것만 같다. 올망졸망 모여 있는 연분홍색 꽃눈이 통통하게 살이 올라 있다.

안부에서 앞에 보이는 바위봉우리로 이루어진 무명봉에 올라서니 서쪽으로 산이 절반 정도가 잘려나간

천 길 낭떠러지의 절벽이다. 산비탈 곳곳에는 광물을 캐면서 사용하다가 방치하여 놓은 폐광이 곳곳에 남아 있다.

광물을 캔 광산의 흔적이 남아 있는 서쪽의 산자락 아래쪽에 빼곡하게 줄지어서 있는 푸른 소나무 숲이

산행의 운치를 더하여준다.

똑 같은 장소에서 서로 다른 풍경이 이색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산 능선에는 꼭 바다 모레를 누가 일부러 등산로에 뿌려 놓은 것처럼 능선 곳곳에 입자가 고운 모래가 뿌려져 있다.

후미에 함께 계시던 솔향기님과 회원님들이 이 지역이 옛날에 바닷물에 잠겨 있다가 육지로 변한 것이

아닌가 생각 된다고 말씀 하신다.

실제로 바로 앞 동쪽으로 푸른 강진만이 자리 잡고 있지 않은가? 아기자기 하게 이어지는 바위 능선 길을

이으며 다시 무명봉에 올라서니 바로 앞에 보이는 해발301m의 바위 봉우리가 오늘 따라 왜 이렇게 높아만 보이는지!

이런 기분은 벌써 몇 년 전 호남정맥 산행을 하면서 경험을 한 적이 있지 않은가!

안부에서 301봉으로 올라서는 능선 길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웅장하게 병풍처럼 이어지는

바위봉우리로 이루어진 능선은 꼭 옛날의 견고한 성벽과 같다.

그 능선으로 발걸음을 재촉하여 올라서니 해발301m봉 정상이다.

듬성듬성 솟아 있는 바위 틈사이로 군락을 이루고 있는 진달래능선은 남쪽에 있는

주작산(해발428m), 과 덕룡산(해발433m) 의 바위로 이루어진 산등성이와 많이도 닮았다.

여기서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숨 고르기를 하며 휴식을 취한다.

주위에 펼쳐지는 풍경을 돌아보니 아름답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저 멀리 북쪽에 보이는 필봉을

여기서 바라보니 꼭 옛날 벼루에 먹을 갈아서 종이위에 붓글씨를 쓰던 붓끝의 모양과 너무나도 흡사하게 닮았다.

휴식을 취한 다음 앞에 보이는 바위로 이루어진 해발337m 봉우리 정상을 동쪽으로 살짝 우회하여

능선 길로 발걸음을 옮기니 바로 앞에 만덕산 깃대봉 정상이 자리 잡고 있다.

내가 그렇게 올라 보고 싶었던 산이라 그런가! 오늘따라 감회가 남다르게 느껴진다.

정상에는 만덕산 깃대봉 정상석과 함께 국립지리원에서 설치한 삼각점이 있다.

 

사방이 확 트인 만덕산 깃대봉 정상은 남도에서만 맛볼 수 있는 전망대이다.

저 멀리 북쪽으로 영암월출산과 올망졸망 모여 스카이라인을 이루고 있는 산봉우리들이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처럼 펼쳐진다.

동쪽으로 눈길을 주면 물결이 잔잔한 호수처럼 보이는 강진만 너머 제암산과 천관산이 눈인사를 건넨다.

강진만과 마주보며 남동쪽으로 길게 이어지는 사자지맥이 끝나는 남해 바다에는 해신촬영장으로

명성이 자자한 완도 상황봉이 아련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남쪽으로는 강진만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땅 끝 기맥에 올망졸망한 크고 작은 바위봉우리들이

하늘을 향해 솟구쳐 있는 덕룡, 주작, 두륜, 달마산 산등성이가 길게 파노라마 친다.

북 서쪽에는 가학산과 흑석산이 손에 잡힐 듯 지척에 있다.

북동쪽으로 눈길을 주면 전라남도 장흥군 유치면과 영암군 금정면의 경계에 있는

국사봉(國師峰) 해발 613m에서 발원하는 탐진강(耽津江) 하구이다.

탐진강은 장흥군과 강진군을 휘감아 돌아 나와 남해바다와 인접하고 있는 강진만으로 흘러든다.

강(江) 길이 51.5㎞, 강물이 흘러내리는 언저리 면적이 862㎢ 인 탐진강은 전라남도의

3대강에 속해 있다. 흘러내리는 강물에 의해 강(江)유역(流域) 비옥한 구릉지에는 면적이 넓은

 평야지대를 빚어 놓았다.

대표적인 평야는 용반, 군동, 성전, 작천, 병영, 강진평야가 있다.

탐진강물이 흘러드는 강진만 일대에는 자연이 빚어 놓은 잘 발달된 간적지가 있다.

밀물 때에는 물속에 잠겨 있다가 썰물이 되어 바닷물이 빠지면 드러나는 개펄인 간석지(干潟地)는

1970년대부터 간척사업으로 농경지로 조성되기 시작했다.

눈앞에 그림처럼 펼쳐지는 강진만과 나란히 이어지는 강진 들녘은 1989년 간석지를 메워서 농경지로 조성한 곳이다.

이른 봄 해안가에서 보는 파릇파릇한 연두색의 싱그러운 보리밭은 언제보아도 정겨움을 더하여준다.

 

만덕산 깃대봉 정상에서 동쪽에 보이는 푸른 강진만의 물줄기를 바라보면서 능선 길을 내려서면

산중턱에 조성되어 있는 헬기장이다.

남동쪽으로 내려서면 동백 숲으로 유명한 백련사이다.

오늘 산행코스가 짧아 정상에서 남서쪽에 보이는 무명봉으로 약540m정도 내려선 다음

능선 삼거리에서 남동쪽에 자리 잡고 있는 백련사로 발걸음을 옮긴다.

남동쪽으로 이어지는 호젓한 능선 오솔길은 소나무와 잡목이 울창하게 원시림의 숲을 이루고 있다.

아직도 황량하기만 한 겨울 풍경을 그리고 있는 호젓한 능선 길을 10분 정도 내려서니 백련사와

동백 숲으로 내려서는 갈림길이다.

갈림길에서 동남쪽으로 바로 직진하여 능선 길을 이으며 내려서면 다산초당으로 바로 내려서는

능선길이 이어진다. 갈림길에서 남쪽으로 울창하게 원시림의 숲을 이루고 있는 잡목 숲길을 이으며

 5분 정도 내려서니 잡목 숲 속에 푸른 대나무 숲이 넓게 자리 잡고 있다.

대전을 중심으로 중부 이남과 남부 지방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푸른 대나무 숲은 금북정맥과 금남정맥,

낙남정맥, 호남정맥 산행을 다니면서 많이 보아 왔다.

주로 마을 주변에서 푸른 대나무 숲을 많이 보게 된다. 깊은 산 속에서는 키가 나지막한 산죽과

조릿대가 많이 자라고 있다. 그런데 깊은 산속에서 푸른 대나무 숲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풍경을

보니 신선함 마저 느끼게 해준다.

 

오솔길처럼 이어지는 능선 길을 이으며 내려서니 우리에게 유명하게 알려진 백련사 동백림(白蓮寺 冬白林)이다.

이곳 백련사 동백나무 숲은 국가지정 천연기념물(151호)로 관리되고 있다.

산 아래쪽에는 다산초당과 백련사를 잇는 길목에 약5.2ha 면적에 수목의 높이가 약7m 쯤 되고

수령이 100~300년인 동백나무 1500여 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다.

약 300m에 달하는 동백나무 숲길은 다산 정약용과 혜장선사가 교류하던 사색의 숲이며

철학과 구도의 숲으로 유명하게 알려져 있다. 백련사의 동백은 2월부터 꽃망울이 맺기 시작하여

3월초부터 개화하기 시작하여 3월말에 낙화한다. 백련사 사적비에도 이 동백나무가

아름다운 숲이라고 기록 되어 남아 있다.

이제 막 붉은 꽃망울을 활짝 열기 시작한 아름다운 동백나무가 빼곡하게 원시림의

숲을 이루고 있는 숲 속에 서있으니, 마치 꼭 동화 속에 나오는 비밀의 정원에 온 기분이 느껴진다.

동백나무 아래쪽에는 강진백련사 원구형 부도가(康津 白蓮寺 圓球形 浮屠) 둥근 원을 그리며 서 있다.

이곳에 말없이 서있는 동백나무와 함께 그 동안 흘러온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는 듯하다.

 

울창하게 숲을 이루며 줄지어 서 있는 동백나무 숲을 지나 내려서면 남쪽의 양지 바른

산중턱에 천연고찰 백련사가 자리 잡고 있다.

천연고찰 백련사(白蓮寺)는 통일신라시대 문성왕 때 무염국사(801~888)가 창건 했다고 전해진다.

그때 당시는 사찰이 만덕산 산중턱에 있어서 산 이름을 사용하여 만덕사(萬德寺)라 사찰 명을 사용했다.

이후 1211년(고려 희종 7년)에 원묘국사 요세(1163~1245년)스님이 옛 만덕사 옛터에 새로 중창 하였다.

이때부터 백련결사를 맺어 수행하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사찰이름이 만덕사에서 백련사로 바뀌었다.

불교가 한반도에 들어온 삼국시대에는 호국불교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삼국시대 때부터 화려한 불교문화를 꽃피운 불교는 고려시대에는 국교에 지정 되는 전성기였다.

고려시대 120년간 백련사에서는 고려 8국사(원묘국사, 정명국사, 원환국사, 진정국사, 원조국사,

원혜국사, 진감국사, 목암국사)를 배출하고 크게 번창(繁昌)했다.

그러나 고려 말 공민왕 때 나라가 혼란에 빠지고 왜구가 세 차례나 사찰에 침입하여 백련사는

폐허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이후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되고 난후 세종12년(1430년)에 행호대사가 효령대군의

후원으로 동원 20동과 서원 4동을 건립하여 새롭게 백련사를 다시 중창 했다.

사찰을 중창하고 왜구의 침입을 막고자 백련사 주변에 행호토성을 쌓고 사찰의 기틀을 다시 세웠다.

이후 조선 효종 때 3차 중수를 하면서 탑과 사적비(事跡碑)를 세웠다.

조선시대 말기 백련사에서는 청허 휴정선사의 의발을 전수 받은 8명의 종사(소요대사, 해운대사,

취여대사, 화악대사, 설봉대사, 송파대사, 정암대사, 연마대사)를 배출하며 법맥을 이어왔다.

이렇듯 백련사는 참 세상을 염원하는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백련사에서 8국사와 12종사가 나온다고’ 했다.

8국사는 고려 때 나왔고, 조선시대 8종사가 배줄 되었다. 앞으로 4종사가 배출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오늘날 까지 전해진다.

백련사 망경루, 대웅보전 현판은 동국진체(東國眞體)를 완성한 원교 이광사(員嶠 李匡師 1705~1777)의 글씨이다.

지금현재 백련사는 대웅보전(大雄寶殿), 시왕전(十王殿), 나한전(羅漢殿), 만경루(萬景樓),

칠성각(七星閣) 건물과 백련사 사적비가 보존되어 있다.

백련사는 강진에 유배되어 생활하던 다산 정약용(1762~1836)과 대흥사 12대 강백을 지낸

아암 혜장선사(1772~1811)가 백련사 주지로 계시면서 다산과 종교와 나이를 초월한 애틋한

우정을 서로 나눈 사찰로 유명하게 알려져 있다.

백련사 경내에서 남동쪽으로 눈길을 주면 울창하게 우거진 동백나무 숲 너머로 연두색

푸른 물결이 넘실거리는 광활한 강진만의 아름다운 풍경은 천하일품이다.

 

백련사 일주문을 나서면 남쪽으로 산 능선을 따라서 울창하게 원시림의 숲을 이루고 있는

약 300m의 동백나무 숲길이 끝이 난다.

여기서 남쪽으로 산허리를 휘감아 돌아 내려서며 약800m 거리는 다산 초당까지 길게

이어지는 호젓한 오솔길이다.

다산 초당으로 내려서는 길은 참나무, 소나무, 치자나무, 비자나무, 후박나무, 야생차나무

가시나무 등 천연혼효림 사이로 호젓한 오솔길이 열린다.

이 오솔길은 다산 정약용 선생이 강진에서 18년 동안 유배 생활을 하면서 혜장선사,

와 함께 이곳 야산에서 자생하고 있는 야생차와 시국담을 나누며 걸었던 산책길이다.

다산 산책길을 따라서 약200m정도 남쪽으로 내려서면 동쪽으로 80m거리에 주위에 푸른

소나무와 잡목이 숲을 이루고 있는 산등성이에 운치 있는 정자가 세워져 있다.

정자 이름이 해월루(海月樓)이다.

해월루에 올라서니 저 멀리 북쪽에 자리 잡고 있는 만덕산 깃대봉에서 이어지는 산줄기가

한눈에 올려다 보인다.

남동쪽과 남서쪽으로 길게 휘감아 돌아나가는 양쪽 능선에 푸른 소나무 숲은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춘 푸른 성벽을 이루고 있다.

그 중앙인 남쪽 산중턱에 천연고찰 백련사와 빼곡하게 우거진 푸른 동백나무 숲이 싱그럽다.

동쪽으로는 드넓은 강진만의 해안선과 강진평야가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연두색의 잎이 싱그러운 파릇파릇한 보리밭이 아름답게 펼쳐지는 풍경은 마치 어머니 품처럼

 아늑함을 느끼게 해준다.

 

한양에서 이억 말리 떨어진 이 강진 땅에서 18년 동안 유배 생활을 한 다산 정약용 선생도

기나긴 유배 생활을 하면서, 봄이면 이 해월루에 올라 천연 고찰 백련사 동백나무 숲에

붉게 핀 동백꽃을 보았을 것이다.

긴 겨울잠에서 깨어난 나뭇가지에 연두색의 새파란 새싹이 돋아날 무렵, 저 멀리 북쪽에

자리 잡고 있는 만덕산 깃대봉 정상에 올라 연분홍의 아름다운 꽃을 피운 진달래를 감상 했을 것이다.

남으로는 강진만의 드넓은 들녘에 아지랑이가 뭉개 뭉개 피어오르고 푸른 보리밭과

강진만의 푸른 물결을 바라보면서 남도에 찾아오는 봄을 즐기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숲 속의 나무들이 연두색 푸름을 더해가는 신록의 계절인 푸른 5월을 보내고, 무더운 여름날에는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에서 아름다운 곡조로 노래를 부르는, 새들과 매미들을 벗 삼아 무더운

한여름의 더위를 식혔을 것이다.

가을이면 북쪽에 있는 만득산 깃대봉 주위에 곱게 물던 아름다운 단풍을 감상하고,

남으로 넓은 강진만의 들녘에 황금물결이 출렁이는 풍경을 보았을 것이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추운 겨울에는 나무들이 모두 잎을 떨구고 기나긴 겨울잠에 들어간

황량한 겨울 풍경을 바라보면서,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과 형제들 그리고 옆에서 함께 하지 못하는

아내와 자녀들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잠시 해월루에 올라 저 멀리 펼쳐지는 강진만의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며 나만의 사색을 즐긴다.

울창하게 잡목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 오솔길로 발걸음을 재촉하며 내려서니 나무아래쪽 푸른

야생 차 밭이 또 하나의 아름다운 봄 풍경을 그리고 있다.

이곳 야산에 자생하고 있는 야생 차 잎은 전국에 명성이 자자하게 알려져 있다.

실학자인 정약용 선생의 호인 다산(茶)은 바로 이 야생 차 밭에서 자생하고 있는 차(茶)에서 따 왔다고 전해진다.

야생 차 밭에서 소나무와 잡목이 숲을 이루고 있는 오솔길을 지나 고개 마루에 올라서면

저 멀리 방금 전에 지나온 해월루 정자가 지척에 있다.

여기서부터 다산초당까지 이어지는 오솔길은 서쪽으로는 선비의 절개를 비유하는

푸른 대나무 숲이 울창하게 숲을 이루며 장관을 이루고 있다.

동쪽에는 하늘을 향해서 곧게 서 있는 푸른 삼나무와 소나무 숲이 한 폭의 그림처럼 싱그럽다.

 

아름다운 오솔길을 지나 800m 정도 남쪽으로 내려서니 산 아래쪽에 천일각이란 정자가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다.

천일각(天一閣)은 ‘하늘골 한모통’ 이라는 뜻의 천애일각(天涯一閣)을 줄인 말이다.

다산이 유배시절에는 없었던 건물인데 1975년 강진군에서 새로 새운 정자이다.

목조 건물인 천일각은 돌아가신 조선 22대 임금 정조 대왕과 흑산도 유배지에 계시는

다산의 둘째 형인 정약전을 그리며 심회를 달래던 정자로 정면과 측면이 한 칸씩인 소박한 정자이다.

이곳은 날씨가 좋으면 멀리 완도 쪽 다도해가 한눈에 보일정도로 풍경과 운치가 아주 좋은 전망대이다.

북쪽에 있는 백련사에서 남쪽에 있는 천일각 까지 이어지는 호젓한 오솔길은 다산 정약용 선생이 즐기던

산책과 사색의 코스로 오늘날 유명하게 알려져 있다.

다산이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 벗이자 스승이고 제자였던 혜장선사와 연결통로였던 800m의 호젓한

오솔길은 천일각에서 끝이 난다.

 

천일각에서 서쪽방향에 다산동암(茶山東庵), 보정산방(寶丁山房)이란 현판이 걸려 있는 암자처럼

보이는 건물이 자리 잡고 있다.

이 동암(東庵) 건물은 다산 선생이 유배 생활 중 이곳에 초막을 짓고 거쳐 하셨던 장소이다.

여기서 목민심서(牧民心書), 흠흠신서(欽欽新書), 경세유표(經世遺表)등 주옥같은 500여권의 책을 여기서

저술한 장소이자 우리나라의 실학(實學)을 집대성 한곳이다.

특히 이 다산동암(茶山東庵)을 일명 송풍암(松風庵)이라고 불렀다. 이는 동암 근처에 소나무들이 무성하여

솔바람이 불어오는 암자라 하여 그렇게 이름 지어 불렀다고 전해진다.

동암 건물과 다산초당, 서암 이 자리 잡고 있는 남쪽으로 이제 막 붉은 꽃을 피운 동백이 이곳을 찾은 길손을

보고 아름답게 미소 짓는다.

울창하게 우거진 원시림의 숲을 이루고 있는 푸른 소나무 숲은 또 다른 운치 있는 풍경으로 길손의

마음을 설레게 해준다.

다산동암(茶山東庵)이란 현판은 다산 정약용 선생의 친필이라고 하며 보정산방(寶丁山房)이란 현판은

추사 김정희 선생의 글씨를 모각(模刻)한 것이다.

원래 이 건물은 지붕을 볏짚으로 덮은 초가집이었던 건물이 허물어져 없어진 것을 1976년 강진군에서

복원하면서 지붕을 볏 집이 아닌 기와로 덮었다.

동암에서 서쪽으로 세 번째 건물이 바로 다산 초당(茶山草堂)이다.

이 건물은 귤원처사 윤단(尹慱)이 초가를 건립하여 후손을 가르치던 서당(書堂)으로 사용 하였던 곳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1808년 봄 이 곳으로 옮겨와 유배가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가던1818년 8월까지

18명의 제자와 함께 강학(講學)을 하던 뜻 깊은 장소이다.

1936년 무너져 없어진 건물을 1957년 해남 윤씨의 협조를 받고 정다산 유적 보존회가

지금의 건물로 복원하면서 지붕을 기와로 덮었다.

다산초당(茶山草堂)이란 현판은 추사 김정희 선생의 친필을 모각 한 것이다.

초당의 방문은 활짝 열려 있고 방안에는 인자하게 보이는 다산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초당 바로 옆에는 푸른 동백나무 숲 아래에 연지석가산(蓮池石假山)이란 아담한 연못이 있다.

이 연못은 1808년 봄 다산선생께서 이곳으로 이주하여 바닷가의 돌을 가져다가 만든 연못 이다.

연못 가운데 조그마한 봉을 쌓아 석가산 이라 하고 나무 홈통을 이용하여 산속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떨어지게 만들어 비류폭포라 불렀다.

또한 연못에 잉어를 길렀다고 전해진다. 앞에 보이는 연못의 풍경은 옛날 그대로 인데 연못에서

유유히 헤엄쳐 다니던 아름다운 잉어는 찾아볼 수가 없다.

다만 그 동안 흘러간 세월을 아랑곳 하지 않고 그 옛날 다산이 쌓았다는 석가산과 나무의 홈통은

지금도 옛 모습이 남아 다산의 흔적을 엿보게 해준다.

 

다산 초당에서 서쪽으로 마지막 건물인 서암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서암(西庵) 건물은 다산의 제자들이 유숙 하였던 곳으로, 차와 벗하여 밤늦도록 학문을 탐구 하였던

뜻 깊은 장소이다.

일명 다성각 이라고도 부르는데 이 건물 역시 1975년에 복원하였다.

초당서편 뒤쪽에는 해배를(解配)을 앞두고 발자취를 남기는 뜻으로 선생께서

직접 정석(丁石)이란 글씨를 새긴 바위가 아직도 남아 아련한 옛 자취를 느끼게 해준다.

다산의 흔적이 남아 있는 다산 초당, 동암, 서암, 연지석가산, 천일각을 돌아보고 울창하게

원시림의 숲을 이루고 있는 푸른 소나무 숲길을 지나 92개의 돌계단을 내려선다.

돌계단이 끝나는 곳에 빼곡하게 숲을 이루고 있는 푸른 대나무 숲이 아름다운 풍경을 펼친다.

푸른 대나무 숲길을 지나 내려서니 남동쪽에 자리 잡고 있는 귤동마을로 이어지는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개설되어 있다.

 

마을곳곳에는 옛날 모습을 간직한 고택 건물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오래된 고택과 기와지붕에서는 옛날 선조들의 생활상이 눈앞에 그려진다.

정다산 유물전시관을 둘러보기 위해서 시멘트로 포장된 마을도로를 지나 500m 정도

서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며 올라선다.

정다산 유물전시관이 있는 곳 까지는 다시 약300m 정도 남쪽으로 다시 내려서야 한다.

내려서는 길목에 남도의 따뜻한 섬에서 많이 자생하고 있는 후박나무 한 그루가 따뜻한 봄볕아래에서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면서 외롭게 서있다.

남쪽으로 약300m정도 이어지는 도로 양쪽으로 나무 밑동이 하얀색인 자작나무를 닮은 두충나무들이

울창하게 터널을 이루고 있다.

숲길을 지나 내려서니 다산의 혼과 얼을 다시 한 번 음미해볼 수 있는 정다산 유물전시관이 자리 잡고 있다.

유물 전시관은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 선생의 생애와 업적 등이 전시되어 있다.

18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며 편찬한 책과 영정 그리고 다산의 가계도, 다산연분, 학통, 다산의 일생,

다산의업적과 유물등이 판넬과 조형물로 입체감 있게 전시되어 있다.

이밖에도 강진이 고려청자 도요지답게 천연의 신비를 품고 있는 고려청자도 전시되어 있다.

유물 전시관에 들러 18년 동안 강진 땅에서 유배 생활을 한 다산 정약용 선행의 발자취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다시 한 번 돌아본다.

고려청자의 도요지에 우뚝 솟아있는 강진의 만덕산 깃대봉과 백련사 동백나무 숲 그리고

정다산의 초당과 유물전시관을 마지막으로 해서 오늘 산행 일정을 모두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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