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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청송 주왕산 절골, 가메봉.

풀꽃사랑s 2021. 1. 9. 21:09

경북 청송 주왕산 절골, 가메봉.

“ㄷ” 자 모양의 웅장한 산세를 뽐내고 있는 경북 청송 주왕산은 힘찬 남성미가 물씬 풍기는 기암절벽과 모양이 괴상하게 생긴 괴석이 절경을 이루고 있는 산이다. 백두대간 마루금에 있는 강원도 태백시 삼수령고개에서 동해안을 따라 남하하는 낙동정맥 마루금에 위치하고 있는 산이기도 하다. 주왕산의 옛 이름은 석병산(石屛山), 제2의 금강산 또는 경북의 ‘금강’이리고 불리고 있다. 1976년 3월30일 국립공원 12호로 지정되어 있다. 용연폭포, 절구폭포, 용추폭포, 세 개의 아름다운 폭포가 있는 주방천 계곡 일대를 내주왕산, 주산지(注山池) 연못이 있는 일대를 외주왕산이라고 부르고 있다. 주왕산의 유래는 두 가지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왕권을 넘긴 다음 주왕산에 살았다는 신라시대 주원왕의 전설과 함께 동진(東晉)의 왕족(王族)중 주도가 주왕을 자칭하며 중국 당(唐)나라의 곽자의장군과 당파싸움을 하다가 패하고 이산에 들어와 숨어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신라의 마일성 장군에게 발각돼 화살과 철퇴를 맞고 죽었다는 후주왕의 전설이 오늘날 까지 전해지고 있다.

주왕산 대전사 대웅전 앞에서 바라본 기암.

 

주왕산 곳곳에는 주천왕의 전설과 관련된 지명이 많이 있다. 대표적인 곳이 주왕암(周王庵),주왕굴(周王屈), 주방산성, 망월대, 급수대, 주방천(周房川)이 오늘날 까지 전해지고 있다.주왕산의 공원면적은 105,582㎢에 달하며 경북청송군이70%, 경북 영덕군이 30%이상의 면적을 보유(保維)하고 있다. 산줄기의 분포는 경북 청송읍 부동면과 영덕군 달산면, 지품면에 걸쳐 있다. 이름난 명소는 높이45m에 달하는 기암봉(奇岩峰)이 있다. 기암봉은 주왕이 마일청 장군과 싸울 때 짚으로 엮은 이엉을 덮어 노적가리로 허장성세를 했다고 전해지는 바위봉우리이다. 주왕과 전투에서 승리한 마일청 장군이 고지를 점령한 후 대장기를 꽃은 자리라고 전해지고 있다. 바위의 형상이 메산 “山”자의 상형문자 같이 생겼다고 전해지고 있다.고적으로는 고려태조2년(919) 주왕의 아들 대전도군(大典道君)의 명복을 빌기 위해 창건한 대전사(大典寺)가 있다. 이 밖에 주왕암(周王庵),주왕굴(周王屈), 주산지(注山池), 시루봉, 왕거암(王居岩), 달기약수탕, 수달래(水丹花)가 있다. 주왕암(周王庵)은 여(女)승방과 기와에 청태가 낀 고색창연한 아름다운 사찰이다.

주왕굴(周王窟)은 3평가량의 바위굴로 이루어져 있다. 굴 입구 왼쪽에 폭포가 있다. 옛날 주왕이 이곳에서 살다가 신라 마일성 장군의 철퇴와 화살을 맞고 사망 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조선 숙종46년(1720년)에 이공(李公)이 계곡을 막아 제방을 쌓았다는 주산지(注山池)가 있다. 주산지의 제방 길이는 100m에 달하고 수심이 8m이며 전체 넓이가 약6000평에 이른다. 주변 경관이 빼어나고 저수지 중앙에 ‘떡버들’이 있어 운치를 자아낸다. 특히 안쪽 낙동정맥 마루금에 있는 ‘별바위’에 가을 단풍이 곱게 물들 무렵이면 옛날에 용이 하늘로 승천했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전설과 함께 파란 하늘을 담고 있어 “주산지”의 아름다운 경치는 명성이 자자하게 알려져 있다. 사람의 얼굴모양을 닮았다는 시루봉은 바위 밑에서 불을 때면 바위 중심부위에서 연기가 나는 같다는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주왕산의 최고봉인 왕거암(王居岩 해발907m)은 옛날에 주왕이 살았다고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조선 철종때 발견(1870)된 달기 약수탕은 닭이 바위를 쪼은 그 자리에 샘처럼 물이 솟아 올라와 달기약수라는 이름이 붙어 졌다고 한다. 천연 탄산수로 빈혈, 위장병, 관능성, 신경질환, 만성 부인병에 특효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주왕산에 4대명물은 수달래, 회양목, 천년 이끼, 송이가 있다.

 

청송 주왕산 절골 남쪽에는 사계절 내내 일반인들과 관광객 그리고 전국에서 많은 사진작가들이 즐겨 찾는 명소로 잘 알려진 주산지가 있다.

붐 가을 해가 뜨기 전 주산지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의 흐름은 처용무(處容舞)처럼 서럽고 아름답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처럼 수려하고 아름다운 주산지에서 피어오르는 신비와 오묘함은 뭇 사람들의 발목을 잡고 놓아 주지 않는다. 이곳 주산지는 한반도에 있는 모든 대지(大地)가 10년 넘게 가뭄에 시달린다 해도 주산지의 물은 마른 적이 없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런 주산지가 심한 가을 가뭄으로 인하여 연못에 물이 절반으로 줄어들었다고 매스컴에서 뉴스로 방송되고 있다. 주산지 연못에 오색으로 곱게 물던 떡버들(왕버들) 나뭇가지와 낙동정맥 마루금에 있는 별바위의, 잔영이 거울처럼 청명하고 맑은 물위에 비춰지는 것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심한 가을 가뭄으로 인하여 주산지의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없다고 하니 많은 아쉬움과 여운을 남긴다. 가뭄으로 물이 절반이상 줄어버린 주산지를 돌아보고 주왕산 절골 안내소가 있는 주차장으로 버스를 타고 이동한다. 주장에 내려서서 산행준비를 마치고 산행 길에 오른다. 산세가 험하지 않은 주왕산은 여러 방향으로 다양한 탐방 코스가 있다. 이번 산행은 종전에 북쪽에 있는 가메봉에서 절골로 내려오던 코스에서 반대로 남쪽에 있는 주왕산 절골 입구에서 북동쪽으로 올라서며 탐방 길로 나선다.

주왕산 가메봉 정상에서 바라본 낙동정맥 마루금.

 

신선들이 풍류를 즐겼던 주왕산 절골은 사람들의 손때가 묻지 않은 태고의 원시적인 신비스러움을 품고 있다. 어머니품속처럼 넉넉한 지리산이나 산세가 아름다워 해금강이라 불리고 있는 설악산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또한 절골은 깎아지를 듯한 수직절벽의 바이들이 병풍처럼 펼쳐지며 단애(斷崖)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단애가 길고 긴 협곡을 이루며 수려하고 아름다운 절경을 빚어 놓았다. 물이 흘러가는 절골 계곡 바닥은 높고 낮은 경사가 없어서 웅장한 폭포는 찾아 볼 수가 없다. 다만 개울바닥에는 바깥쪽으로 깊이가 깊지 않고 얕은 크고 작은 20여개의 물웅덩이와 자갈층 여울로 이루어져 있다. 절골을 즐겨 찾는 탐방객들은 바닥에 깔려 있는 자갈층 여울을 따라 가지런히 놓여 있는 징검다리와 절벽 옆길을 이용하여 다니고 있다.

 

이미 오색으로 곱게 물든 단풍잎은 모두 낙엽이 대어서 땅에 떨어져 버리고 긴 겨울잠에 들어갈 준비를 마진 나무들은 앙상한 나뭇가지만 보여준다. 차갑게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들이 몸을 흔들어 되는 절골은 황량하기 그지없다. 계곡의 폭이 여느 강폭처럼 넓은 절골은 심한 가을 가뭄에도 불구하고 졸졸 흘러내리는 시냇물처럼 물이 흘러내린다. 계곡 바닥에 윤이 반짝반짝 비취는 몽돌자갈밭 길을 부지런히 발품을 팔면서 북쪽에 있는 가메봉 정상으로 분주히 발걸음을 옮긴다. 계곡에 수북이 쌓여있는 낙엽에서 상큼한 가을 냄새가 풍겨진다. 계곡 바닥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징검다리를 건너서기를 여러 번 반복 하면서, 올라서니 절골 못지않게 아름다운 신술골 계곡으로 올라서는 초입이다. 여기서 동쪽으로 올라서면 남쪽에 있는 별바위에서 북진하는 낙동정맥 마루에 닿는다. 아쉽게도 신술골은 주왕산 국립공원 관리공단에서 사람들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약40분 정도 발걸음을 재촉하여 올라서니 대문다리 아래쪽에 있는 운수암(雲水庵)절터이다.

 

운수암 절터에는 주왕산 국립공원에서 세워놓은 안내간판이 세워져 있다. 안내간판에는 운수암은 주왕산지(周王山志)에 “계곡십리길이 끝나는 곳에 평평한 언덕 하나 있으니 바로 암자가 위치한곳이다. 운수함은 순조가 즉위한지9년이 되는 1808년에 이르러 161년이 되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1648년 인조때 창건된 절이다. 암자는 화재로 인하여 중창을 거듭 했다고 하는데 그 마지막은 알 수 없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곳 절골 계곡도 운수암 이라는 절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때 당시의 마을 이름도 운수동(雲水洞)이라 불렀다고 전해지고 있다. 절은 사라지고 차츰 이름도 잊혀 졌지만 그 기억만은 남아 계곡의 이름이 되었다. 지금은 절골 계곡과 함께 운수(雲水)글자를 따서 구름과 물을 벗 삼아 걷는 운수길이 불리고 있다. 현재는 운수암 절터만 덩그렇게 남아 있고 앞쪽에 몸집이 우람한 왕버들나무 2그루가 황량한 가을풍경을 그리고 있다. 말이 절터이지 지금은 잡목들이 빼곡히 들어차 원시림의 숲을 이루고 있다. 다만 그 잡목 아래쪽에는 돌로 쌓아놓았던 무너져 버린 석축만이 그 흔적을 말해 주고 있다. 이 계곡을 절골이라 부르고 있는 유래는 여기에 옛날 번성하였던 운수암(雲水庵) 있던 자리여서 오늘날 그렇게 부르고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절골계곡은 절골 말고 또 다른 이름인 운수길(雲水)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고 있다. 운수길의 유래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절골 입구에 청송 주왕산 국립공원 관리사무소에서 세워 놓은 안내 간판에 잘 올려져 있다. 운수길에 대하여 전해지고 있는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조선 후기 문인 천이복(1740~1819년)은 주왕산의 산줄기가 갈라져 골짜기를 이룬 곳이 셋인데 서쪽은 월폭이요, 가운데는 광혈이며, 동쪽이 곧 운수동(雲水洞)이다. 깎아 세운 듯한 암벽이 좌우에 병풍처럼 나열하여 저절로 십리 돌병풍을 형성하였다. “십리길이 끝나는 곳에 평탄한 언덕이 하나 있으니 바로 운수암(雲水庵)이 위치한 곳이다” 하였다.

또한 조선후기 문인 권렴은(1701~1781년)이곳의 경치가 빼어나 운수동천(雲水洞川)이라 하였고, 이상정은(1710~1781년) ‘우람한 주방산천 너무나 애틋하고 아득한 운수동천 참으로 어여쁘네! 라고 한데서 이 절골 이름을 운수길이라 명명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기록에 나오는 운수(雲水)는 3가지의 뜻을 품고 있다. 첫 번째는 ‘탁발승’을 멋스럽게 부르는 말이다. 두 번째는 구름과 물이다. 세 번째는 수행을 하며 전국을 다니는 승려를 무상한 구름과 물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그럼 운수(雲水)길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일까? 운수암(雲水庵)기록의 뒷부분에 나오는“구름과 물을 벗 삼아 걷는 운수길이라 불리고 있다.” 는 글의 구절처럼 여기서 말하는 운수(雲水)길은 전국에 있는 명산이나 아름다운 계곡을 찾아서, 돌아보며 수행을 하는 승려를 뜻하고 있는 것 같다. 많은 산 꾼들이 구름과 물을 벗 삼아 전국의 명산을 찾아다는 것 또한 수행이요 ‘힐링’ 이라고 말 하고 싶다.

운수암자에서 동쪽방향에 있는 대문다리를 올라서기 전 절골 계곡 바닥에 커고 작은 돌들이 우후죽순처럼 어지럽게 깔려 있다. 우후죽순처럼 깔려 있는 돌을 주워 모아 누군가 자그마하게 쌓아 놓은 돌탑이 정겨움을 더하여 준다. 절골에서 보는 나무들은 거의 대부분 잎이 넓은 활엽수 종류인 참나무 종류인 것 같다. 정겨움을 더하여 주는 돌탑을 지나 바닥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징검다리를 건너선다. 이곳 까지 올라오면서 여러 번 이렇게 놓여 있는 징검다리를 건넜다. 징검다리를 건너서면 호젓한 오솔길이 이어진다. 하늘을 향해 높이 쭉쭉 뻗은 나무들과 단풍나무가 많이 보인다. 늦게까지 남아 붉은색으로 정열을 불사르고 있는 단풍나무가 상큼한 만추(晩秋)의 맛을 느끼게 해준다. 경사가 완만한 나무계단 길을 지나 계곡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징검다리를 건너서면 지도에 표기된 대문다리이다.

 

제법 넓은 반석(盤石)이 경사진 대문다리에 다다르면 물길이 Y자로 갈라진다. 이곳은 북동쪽 왕거암 갈전골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리는 계곡물과 역시 북서쪽에 있는 가메봉 골짜기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리는 물이 절골에서 서로 만나는 합수지점이다. 대문다리에서 동쪽 계곡으로 올라서면 낙동정맥 마루금인 대관령 고개로 올라서게 된다. 절골 입구에 있는 대문 다리로 올라서면서 오늘 절골 계곡 길은 여기서 끝이 난다. 높고 낮은 경사가 없고 계곡 바닥이 평평하게 이루어진 절골은 이곳까지 오면서 힘든 곳은 한곳도 없을 정도로 일사천리(一瀉千里)길로 이어진다.

 

대문다리를 지나 북서쪽으로 경사가 가파른 협곡으로 올라서면 호젓한 오솔길로 이어진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있는 낙엽송 숲이 운치 있는 오솔길로 올라서면 종전에 지나온 대문다리에서 보았던 또 하나의 Y자 계곡이다. 이 계곡은 북쪽에 있는 가메봉과 북동쪽에 있는 왕거암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리는 계곡물이 너로 만나는 또 다른 합수지점이다.

합수지점에서 동쪽방향에 있는 계곡은 북동쪽 왕거암으로 이어진다. 서쪽에 있는 계곡은 북쪽에 있는 가메봉으로 이어지고 있다. 탐방할 능선 길은 양쪽의 두 계곡 사이 중앙에서 북쪽 방향으로 올라선다.

주왕산 가메봉 정상에서 내려다본 절골.

 

경사가 그리 급한 능선 길이 잠시나마 이곳에서 지그재그로 이어지기도 한다. 능선 길로 올라서면 산비탈에 분성배(盆城裵)씨 묘가 있다. 산소 앞에는 상석이 놓여 있고 동쪽에는 비석까지 세워놓았다. 분성배씨 묘를 지나 계속 능선 길을 이으며 올라서면 동자 할아버지 피난지 100m라고 적혀있는 표지석이 서 있다. 이 첩첩 산골짜기에도 옛날에 사람들이 살았었나 보다. 표지 석을 지나 조금 더 앞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며 올라서면 안동권씨(安東權氏)묘가 나온다. 안동권씨 묘 앞에도 상석이 놓여 있다. 이 깊은 산속에 조상님을 모셔 놓은 묘 앞에 석물이 놓여 있는 것을 보니 후손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능선 길 곳곳에서 우람한 몸집을 하고 서 있는 소나무 밑동에는 일제 강점기 때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러한 흔적은 일제 강점기 때 소나무에서 흘러나오는 송진을 채취하기 위하여 나무에 칼로 상처를 낸 자국이다. 낙동정맥 산행을 하면서 경상북도 북부 지방인 청송, 영양, 울진, 봉화군 지역에 있는 깊은 산속에서 수 없이 보아 왔다. 소나무 길을 지나면 동쪽으로 웅장한 주왕산 바위봉우리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크고 작은 바이들이 널려있는 능선 길을 지나 올라서면 지도에 표기된 가메봉 삼거리이다. 삼거리서 서쪽에 있는 가메봉까지는 약200거리를 두고 있다. 지나온 남쪽 대문다리까지의 거리는 1.7 ㎞이다.

 

오늘 하산 지점인 대전사까지는 7.6㎞이다. 동쪽에 있는 왕거암 까지는 1.6㎞ 거리이다. 지도상에 여기를 가메봉 삼거리로 표기해 놓은 것은 아마도 왕거암으로 올라서는 등산로가 폐쇄되어서 그렇지 않나 생각된다. 가메봉 삼거리에서 서쪽으로 눈길을 주면 하늘을 향해 깎아 찌를 듯한 절벽으로 이루어진 바위봉우리가 있다. 오늘 올라야 할 가메봉이다. 삼거리에서 가메봉을 조망하면서 약200m 정도 올라서면 사방이 확 트인 해발 883.0m 가메봉 정상이다.

주왕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는 가메봉 정상에서 동쪽에 있는 왕거암(해발907.4m)이다. 실제 지도에 표기되어 있는 주왕산은 가메봉 정상에서 남쪽에 있는 해발720.6m 봉우리이다. 상식적으로 해발이 가장 높은 봉우리가 그 산의 중심이다. 그러나 주왕산처럼 예외인 산도 있는 것 같다.

 

사방이 확 트인 가메봉 정상에 서면 주왕산의 모든 풍경이 한눈 가득히 들어온다. 전망대나 다름없는 가메봉 정상에서 휘둘러보는 풍경은 과히 천하의 일품이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역시 낙동정맥 마루금이다. 저 멀리 남쪽에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 있는 별바위에서 북진하는 낙동정맥 마루금은 북동쪽에 대관령을 솟구쳐 놓았다. 대관령에서 북쪽으로 방향 길을 잡은 낙동정맥 마루금은 느리미재를 지나 명동재로 미끈하게 이어지고 있다. 명동재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바꾼 낙동정맥 마루금은 해발846.2m인 먹구동을 하늘 높이 솟구쳐 놓고 다시 북쪽으로 마치 여인의 허리선처럼 길게 파로나마 치고 있다.

눈앞에 펼쳐지는 낙동정맥 마루금을 바라보니 새삼 감회가 남다르다. 연두색 신록이 싱그러운 푸른 5월 잎이 파릇파릇한 사초풀이 비단결 같은 부드러운 융단을 깔아 놓고, 연초록으로 곱게 물든 초원능선이 끝없이 펼쳐지던 저 낙동정맥 마루금을 두발로 걸으면서 넘어갔다. 그때 미처 기록으로 남기지 못한 많은 풍경을 오늘 여기서 카메라에 열심히 담아 보고 싶다. 오늘 여기 다시서서 눈앞에 여인의 허리선처럼 미끈하게 이어지는 낙동정맥 마루금을 바라보니, 그때 함께 호흡을 맞추었던 총무님과 회원님들이 진한 그리움이 되어서 다가온다.

주왕산 가메봉 정상에서 바라본 왕거암.

 

어디를 둘러보아도 깊은 협곡을 이루며 웅장한 위엄을 드려내며 옹골차게 겹겹이 포개어져있는 산등성가 스카이라인을 이루고 있다. 이렇게 깊은 산속에서 겹겹이 스카이라인을 이루고 있는 아름다운 산 너울을 바라보면 또 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남쪽으로 눈길을 주면 저 멀리 영덕팔각산과 바대산 경북포항 내연산 동대산이 하늘과 맞닿을 듯이 하늘 금을 그린다. 바로 앞 전방동쪽으로 주왕산 국립공원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해발907.4봉우리인 왕거암이 조망된다. 왕거암으로 이어지는 산등성이와 정상에는 빼곡하게 우거진 잡목이 울창한 원시림의 숲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낙엽을 모두 떨구고 빼곡하게 줄지어 서있는 하얀색의 나무들이 벌써 긴 겨울잠을 자고 있다. 멀리서 바라보니 흰색의 나뭇가지들이 꼭 새하얀 눈이 살포시 내려앉은 눈꽃송이를 보는듯하다.

 

꽃피는 봄이면 산 능선과 깊은 협곡 주위에 연분홍 수달래들이 앞을 다투어 꽃을 피웠고, 예쁜 꽃송이로 아름다운 수를 놓았지! 이제는 그 자리에 빼곡히 들어선 선홍색의 갈색 단풍이 저물어가는 가을의 끝자락을 잡고 몸부림치고 있다. 8부 능선에서 절골 계곡을 따라서 듬성듬성 서있는 연두색의 푸른 소나무는, 하늘에서 연두색 꽃송이를 살포시 뿌려 놓은 듯 화려함으로 다가온다. 산중턱과 협곡 중앙에 옹기종기 무리를 지어 서있는 노랗게 단풍이 곱게 물던 낙엽송 숲은, 깊어가는 가을의 운치를 더하여준다. 가메봉 정상에서 만추(晩秋)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고 동쪽 방향에 있는 가메봉 삼거리로 다시 내려선다.

 

여기서부터 오늘 하산지점인 대전사절 까지는 연속해서 내려서는 길이다. 삼거리에서 북쪽큰골까지는 당 단풍이 숲을 이루고 있다. 조금만 더 일찍 찾아 왔더라면 당 단풍이 뿜어내는 고운 자태를 볼 수 있었을 텐데, 어느새 찬 서리를 맡아 잎이 바싹 말라 버린 당 단풍잎은 애틋한 아쉬움만 가슴속에 남긴다. 가메봉 삼거리에서 북쪽방향으로 100m 정도 내려서면 능선 안부이다. 안부에서 잡목이 빼곡한 숲속에 있는 나무다리를 지나 약400m 정도 내려서면 큰골과 주방천 이 양쪽 계곡물이 서로 만나는 합수지점이 있다. 큰골의 계곡물과 합수하는 주방천은 이곳에서 남서쪽으로 흘러간다. 주방천의 발원지는 지나온 가메봉 정상에서 북쪽방향에 하늘 높이 솟구쳐 있는 산자당 (해발849m)으로 어지는 능선 북쪽 사면에서 흘러내리는 계곡물이다. 이물이 주방천의 발원지이다.

 

주방천 물과 큰골 계곡물이 서로 만나는 합수지점에서 남서쪽으로 내려서면 산신제단과 내원분교를 지나 내원마을로 들어선다. 내원마을은 높은 산 들이 병풍처럼 휘감아 돌아 나가는 산세가 깊은 산중턱 아래쪽 양지바른 널찍한 분지에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다. 지금은 집은 간 곳이 없고 억새들만 무성하다. 주왕산 국립공원 안에 아담하게 터를 잡은 내원마을은 전기 없는 마을로 유명하게 알려진 마을이다. 사방으로 첩첩이 높은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이곳에 집을 짓고 사람들이 거주하게 된 계기는,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산 아래에 거주하던 마을주민들이 계곡으로 피난을 와서 정착하여서 살게 되면서부터이다.

 

일제 강점기 때에는 목탄생산자들의 주거지로 사용되었고,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2000년까지 9가구가 거주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국립공원내의 자연환경 훼손을 방지하고 주방계곡의 수질오염원을 제거함으로써 산을 찾는 탐방 객 에게 아름답고, 쾌적한 자연경관의 탐방기회를 제공하기 위하여 2005년에6가구 2007년에 남은 3가구를 모두 철거하였다고 한다. 마을 앞을 흘러가는 주방천 계곡너머에는 돌로 쌓아서 올린 산신제단이 아직도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또한 마을로 들어서는 입구에는 커다란 나무아래에 주민들이 세워놓은 외롭게 서있는 성황당이 이곳을 찾은 길손을 맞는다. 비록 사람들이 모두 떠나버렸지만 우리들 마음속에는 영원히 내원마을이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동화책 속에서나 나올 법한 깊은 산속에 있는 내원마을에서 남서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며 내려선다. 남서쪽으로 흘러내리는 주방천의 계곡은 폭이 상당히 널찍하다. 이런 깊은 산속에서 이렇게 널찍한 폭을 품고 있는 계곡이 있다는 것이 이채롭다. 가메봉과 큰골의 물이 합쳐지면서 3개의 큼직한 폭포를 품고 있는 주방천은 절골과 함께 주왕산의 백미(白眉)이다.

 

주방천과 나란히 이어지는 능선 길을 지나 남서쪽으로 내려서면 세발골 삼거리 갈림길이다.삼거리 갈림길에서 남서쪽 방향으로 내려서면 주방천이 품고 있는 용연폭포이다.2단으로 구성되어 있는 용연폭포(龍淵瀑布)는 주방천에 있는 폭포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폭포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두 줄 기의 낙수 현상을 보고 쌍용폭포라고 불리기도 한다. 일단 폭포의 양쪽 벽면에는 각각 3개씩의 하식동굴이 있는 것을 관찰 할 수가 있다. 폭포가 형성되고 발달 하면서 흘러내리는 물로 인한 침식으로 인하여 폭포면 이 차츰 되로 물러나는 현상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지금 현재의 폭포 면에서 가장 먼 곳에 있는 하식동이 가장 먼저 만들어졌고 폭포가 점차적으로 후퇴 하면서 두 번째 세 번째 하식 동굴이 만들어 졌다고 한다. 하식동굴은 폭포에 흘러내리는 물이나 하천의 침식 작용으로 생겨난 동굴이라고 한다.≫ ≪주왕산 국립공원 관리 사무에서 세워 놓은 설명서에 발췌≫

 

날이 가뭄이 심하여 폭포에 흘러내리는 물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폭포에 걸맞게 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많은 양의 물은 아니지만 흘러내리는 물만해도 폭포다운 면모를 보여준다. 떨어지는 물이 작은 옹달샘 같이 보이는 작은 소(沼)를 만들어 놓았다. 맑은 물위로 새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부셔져 내리는 물방울이 조그마한 동그라미를 그리면서 잔잔한 물결이 일어난다. 주방천에서 15분 정도 계곡에서 동쪽 안쪽방향으로 깊숙이 걸어서 들어가야만 볼 수 있는, 절구폭포는 세차게 떨어지는 물줄기가 단단한 바위를 갈아서 예쁜 선녀탕을 빚어놓았다. ≪절구 폭포는 주왕산 응회암에 발달한 새로 방향의 틈에 의하여 생겨난 폭포이다.

2단 폭포로 이루어져 있다. 위에 있는 1단 폭포 아래쪽에는 선녀탕이라 불리는 개구멍이 있다. 2단 폭포 아래쪽에는 폭호가 발달되어 있다. 절구 폭포는 협곡 내부에 위치하고 있어 습도가 높고 폭포 주변 바위에는 이끼류가 자라고 있다. 마치 조각가가 공을 들인 작품처럼 오묘하고 아름다운 폭포이다.≫ ≪주왕산 국립공원 관리 사무에서 세워 놓은 설명서에서 발췌≫

폭포 앞에 있는 커다란 바위 틈새에 앙증맞게 쌓아놓은 돌탑은 애틋한 사연이 담겨 있을 것만 같다. 단순하게 폭포만 보고 간 것이 아니라 저마다 가슴속에 품고 있던 소원을 빌었을 것이다. 평소에 이루고자 하는 모든 소원이 이루지기를 빌어 본다. 절구폭포를 돌아보고 다시 종전에 왔던 길로 뒤돌아 나온다. 돌아나와 갈림길에서 남서쪽 대전사 방향으로 내려서면 주방천 계곡이 품고 있는 협곡이 시작된다.

 

하늘을 향해 까마득히 높게 솟구친 우람한 몸집을 하고 서 있는 바위벽 사이로 좁은 협곡이 이어진다. 협곡으로 이루어진 주방천 물길을 따라 나란히 놓여 있는 나무테크 계단 길을 남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며 내려선다. 중간쯤 남쪽으로 내려서면 아래쪽방향으로 물이 흘러내리는 주방천에, 자연이 만들어 놓은 탕처럼 보이는 작은 소(沼)가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다. 소(沼)에서 흘러넘치는 물이 또 하나의 폭포를 만드니, 이 폭포가 주방천을 올라서면서 제일 먼저 볼 수 있는 용추폭포이다. 폭포 물이 떨어지고 있는 바로 앞에는 몸집이 우람한 커다란 둥근 돌이 하나 놓여 있다. 마치 주왕산에 있는 산신들이 공깃돌 놀이를 하다가 놓아둔 거처럼 둥근모양의 돌이 천연덕스럽게 놓여 있는 모습이 묘한 신비를 자아낸다. 주방천을 가득하게 매우고 있는 새하얀 갈대꽃이 저물어 가는 가을의 풍취를 자아내고 있다.

 

용추폭포를 지나 남쪽으로 눈길을 주면 주왕산 주왕천 계곡에 숨어 있는 절경이 눈앞에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우람한 몸집으로 이루어진 집채만 한 바위 봉우리들이 저마다 장엄한 위용을 뽐내고 있다. 하늘에 닿을 듯이 우뚝 솟아 있는 커다란 바위 봉우리들은 보면 볼수록 신비스러움을 자아낸다. 용추 폭에서 남서쪽으로 내려서면 제일 먼저 시루봉이 이곳을 찾은 길손을 반긴다. ≪시루봉은 바위의 형상이 떡을 찌는 시루와 닮았다고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바위의 측면에서 바라보면 마치 사람의 옆모습처럼 보인다. 이 시루봉에 옛날 어느 겨울 한도사가 이 바위 위에서 도를 닦고 있을 때 신선이 내려와 불을 지펴주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시루봉 바위 아래쪽에서 불을 피우면 그 연기가 바위 전체를 감싸면서 봉우리위로 치솟는 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청송 주왕산 국립공원에서 세워 놓은 안내 설명에서 발췌≫

 

하늘을 향해 웅장하게 솟은 시루봉을 지나 남서쪽으로 내서면 주방천 서쪽으로 표면이 미끈한 높다란 수직바위가 널찍한 병풍처럼 서 있는 학소대이다. ≪ 하늘을 향해 깎아지를 듯이 솟아 있는 수직의 바위절벽위에는 청학과 백학 한 쌍이 둥지를 짓고 살았다고 하여 학소대로 불린다. 어느 옛날 백학이 사냥꾼에 잡혀 짝을 잃은 청학은 날마다 슬피 울면서 바위 주변을 배회하다가 자취를 감추었다는 슬픈 사연이 전해지고 있다. 지금은 학은 간데없고 그들의 보금자리 터만 바위 절벽위에 남아 옛 주인을 그리워하고 있다. ≫ ≪청송 주왕산 국립공원에서 세워 놓은 안내 설명서에서 발췌 ≫

 

학소대에서 남서쪽으로 조금 더 내려서면 역시 하늘에 닿을 듯이 깎아지를 듯한 수직의 절벽이 서 있다. 이곳이 급수대이다. ≪급수대는 옛 신라시대 왕으로 추애 받던 김주원이 왕이 되지 못하고 이곳 급수대 바위에서 대궐을 짓고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바위 위에서 생활하기 위해 물을 길어 올랐다고 하여 급수대라 이름 붙여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 청송 주왕산 국립공원에서 세워 놓은 안내 설명서에서 발췌 ≫

 

급수대에서 남서쪽으로 대전사로 내려서는 임도 길을 피하고, 남동쪽 산기슭을 따라 자연탐방로 길로 발걸음을 옮긴다. 자연탐방로에서 내려서면 망월대가 있다. 사방이 확 트인 망월대 전망대에서 북동쪽 방향으로 바라본 주방천 계곡은 천하의 절경을 이루고 있다. 주방천 계곡 양편으로 줄지어 서있는 깎아지를 듯 하늘을 향해 높이 우뚝 솟아 서 있는 우람한 몸집을 하고 있는 수직의 바위 절벽을 올려다보면 그 아찔한 절경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여러 형상으로 이루어진 진귀한 모양을 하고 서있는 바위 하나하나에는 태고의 신비스러움이 묻어난다. 하늘 높이 우뚝 솟구친 깎아지를 듯한 바위절벽 끝이 하나같이 둥근 유선형인 주방천 계곡은, 웅장한 남성미와 우아한 여성미와 화려한 아름다움을 모두 갖추고 있다. 울긋불긋한 만추(晩秋)단풍과, 저물어가는 가을햇살이 살며시 내려앉은 연두색의 푸른 송림 숲 풍경이 그림 같은 절경을 펼쳐 보이고 있다.

 

망월대에서 내려서서 남서쪽으로 하산 길을 재촉하며 스님의 독경소리가 조용한 산사에 울려 퍼지는 주왕암 대웅전에 잠시 들린다. 구구절절 들려오는 독경 소리가 주마등처럼 지나가버린 내 생애를 다시 돌아보게 해준다. 가만히 지난날들의 일들을 다시 생각 하면서 깊은 상념에 빠져본다. 하산 시간이 촉박하여 주왕굴 탐방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발걸음을 재촉하며 대전사 절로 발걸음을 재촉하며 내려선다. 주왕산 산자락 양지바른 곳에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는 대전사는 고려 태조2년(919)년 주왕의 아들 대전도군(大典道君)의 명복을 빌기 위해 창건한 사찰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오늘 마지막 하산 길의 대미는 대전사 대웅전 앞에서 북쪽으로 보이는 기암과 장군봉 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주왕과 마장군이 격전을 벌였다는 기암은 멀리서 보면 메산자(山)를 많이도 닮았다. 어느새 짧기만 한 가을해는 서산 넘어 지고 서서히 어둠이 내린다. 대전사 대웅전을 나서니 잎이 모두 떨어진 감나무에 주홍색의 감이 주렁주렁 열려있다. 먹음직스럽게 열려있는 감들이 얼마 남지 않은 가을의 운치를 더하여 준다.

 

기암괴석과 수려한 계곡 그리고 주산지 연못과 수달래가 유명하게 알려진 주왕산은 사계절 어느 때 찾아도 좋다. 산천체가 명품이라고 하여도 어느 것 하나 손색이 없고 나무랄 때 없는 좋은 산이 주왕산이다. 주왕산을 즐겨 찾는 관광객들은 보통 대전사에서 북쪽으로 올라 주방천 계곡이 품고 있는 용추, 절구, 용연폭를 돌아보고 내려서다가 주왕암, 주왕굴을 돌아보고 내려간다. 그러나 진정한 산 꾼들은 주왕산이 숨겨 놓은 명품코스를 즐겨 찾고 있다.

 

주왕산이 숨겨 놓은 명품 코스는 절골에서 시작하여 대문다리, 가메봉, 내원마을, 큰골, 주방천으로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계곡과 능선길이다. 계곡의 화려함은 3개의 폭포를 거느리고 있는 주방천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절골은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고 한적하고 조용하다. 또한 섬섬옥수 같이 청명하고 맑은 물이 흘러가는 계곡을 걸으며 체험할 수 있는 맛이 일품이다. 여러 번 주왕산 산행을 했지만 그때마다 이 산은 나로 하여금 숱한 마음고생을 시키고 그것도 모자라 나의 인내심을 테스트 했다. 곱게 물던 단풍이 절정을 지났다고 하지만 8부 능선에서 보는 단풍은 곱고 아름다웠다. 오랜만에 주왕산에서 만추(晩秋) 단풍을 즐기면서 마음속 깊이 남아있던, 징크스를 깨어 버린 참으로 멋진 산행 길이였다.오늘 대전사에서 오늘 주왕산 산행을 모두 마치고 대구로 출발 한다.

주방천 학소대 좌측, 우측 급수대.
내원 마을 산신제단.
내원마을 풍경.
내원마을 성황당.
대전사에서 본 산국.
학소대.
용추폭포에서 바라본 연화봉과 학소대.
주왕산 시루봉.
주왕산 연화봉.
주왕산 절골 단풍.
주왕산 용추폭포.
주왕산 절구폭포.
주왕산 절구폭포 아래쪽에서 있는 소망탑.
주왕산 절구폭포.
주왕산 용연폭포.
주왕산 대전사 감나무.
주왕산 용추폭포 아래쪽에 있는 둥근바위.
주왕산 큰골 풍경.